로마 가톨릭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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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가톨릭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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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 시국성 베드로 대성전
배경
예수

사도  · 기독교  · 가톨릭주의
사도 전승  · 교회의 네 가지 속성
십계명
성탄  · 십자가형  · 부활  · 승천

조직
교황

성좌  · 추기경단
공의회  · 주교제
사제  · 부제
수사  · 수녀
라틴 교회  · 동방 가톨릭교회
교회법

신학
삼위일체 (성부·성자·성령)

성경  · 성전
천국  · 연옥  · 지옥
원죄  · 구원  · 성인의 통공
교의  · 그리스도론  · 마리아론

전례
미사  · 성찬예배

시간 전례  · 전례력
로마 전례  · 아르메니아 전례
알렉산드리아 전례  · 비잔티움 전례
안티오키아 전례  · 서시리아 전례
동시리아 전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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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가톨릭교회(라틴어: Ecclesia Catholica Romana, 영어: Roman Catholic Church) 또는 가톨릭교회(라틴어: Ecclesia Catholica, 영어: Catholic Church), 천주교(天主敎)는 전 세계적으로 약 12억 명의 신도를 가진 세계 최대 규모의 기독교이다.[1]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기독교로서 특히 역사적으로 서양 문화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2] 교계제도교황을 정점으로 한 피라미드식 성직자 제도를 고수하고 있다. 가톨릭교회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오직 하나의 교회만을 세웠으며,[3][4] 그 교회는 바로 사도들의 으뜸인 성 베드로의 유일한 계승자인 교황을 단장으로 하는 그리스도의 사도들의 계승자인 주교들이 있는 교회, 즉 가톨릭교회라고 가르치고 있다.[5][note 1][6][note 2][note 3] 더불어 가톨릭교회는 교황이 신앙과 도덕에 관한 교리를 확정하는데 있어 결코 오류를 범할 수 없다는 무류성의 특권을 누린다고 가르친다.[7][8][9][10][11][note 4]

로마 가톨릭교회의 4대 교리는 천주존재(天主存在), 삼위일체(三位一體), 상선벌악(賞善罰惡), 강생구속(降生救贖)이다. 천주존재는 우주를 창조하고 다스리는 창조주(천주) 즉 신이 존재함을 믿는 것이며, 삼위일체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三位)가 한 하느님이라는 뜻으로, 세 위격(位格)이 서로 구별됨과 동시에 하나의 신성(神性)을 이룬다는 교리로 제1차 니케아 공의회에서 확정되었다. 상선벌악은 하느님은 선한 사람에게는 상을 주지만, 악한 사람에게는 벌을 내린다고 믿는 것이며, 강생구속은 인간이 죄를 지어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지 못하게 되었으나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이 됨(강생)으로써 인간의 죄를 대신 보속했으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으면 구원을 얻는다는 교리이다. 가톨릭교회의 경신례는 미사 또는 성찬예배라고 불리며, 이 경신례 안에서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성변화하는 성체성사를 거행한다. 가톨릭교회는 예절과 규율, 교리와 신학의 주안점 등의 다앙성을 반영하여 라틴 교회와 자치 조직인 동방 가톨릭교회 그리고 탁발수도회봉쇄수도회 등의 여러 조직으로 구성되어 있다.[12][13]

가톨릭교회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를 공경하는 특징이 두드러지는데, 성령(하느님)의 힘으로 그녀가 처녀의 몸으로 예수를 잉태하였다고 가르친다. 그녀와 관련된 가톨릭교회의 주요 교리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그녀를 간택한 하느님의 특은으로 그녀가 잉태되는 순간부터 원죄가 감면되었으며(원죄 없는 잉태), 삼위일체에 따라 참 하느님이신 예수님의 어머니이며(하느님의 어머니), 평생을 처녀로 살았고(마리아의 평생 동정), 사망한 다음에는 하느님에 의해 들어올림을 받았다는 것(성모 승천)이다.

가톨릭교회의 사회 교리는 병들고 가난하며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지원을 강조하는 자선 사업으로 요약할 수 있다. 오늘날 가톨릭교회는 세계에서 교육 및 의료 서비스 분야에서 가장 규모가 큰 비정부단체(NGO)이다.[14]

명칭[편집]

‘가톨릭’이라는 용어는 그리스어로 ‘공번(共繙)되다’ 또는 ‘보편(普遍)되다’라는 뜻의 ‘카톨리코스’(καθολικός)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2세기 초에 교회에 대해 설명할 때 처음으로 사용된 말이다.[15] 카톨리코스라는 용어는 ‘모든 이를 아우르는’을 의미하는 καθ' ὅλου (kath' holou)의 축약형인 καθόλου (katholou)와 동일 개념이다.[16] ‘가톨릭교회’(he katholike ekklesia)라는 용어는 서기 110년경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가 스미르나 교회 신자들에게 보낸 서신에서 처음으로 등장한다.[note 5] 예루살렘의 성 치릴로가 쓴 교리문답에서도 교회가 당시 유대교에서 분리된 다른 여러 종교 집단으로부터 구분하기 위해 스스로 가톨릭교회라고 자처한 것으로 나온다.[17][18]

1054년 동서 교회의 분열 이후, 동방 교회는 스스로 ‘정교회’라고 부른 반면에 교황과 친교를 이룬 서방 교회는 ‘가톨릭교회’라고 자처하였다. 그리고 16세기에 서방 교회의 분열이 일어나면서 교황과의 친교를 중단한 이들은 ‘프로테스탄트’(또는 개신교)라고 불려지게 되었다.

‘가톨릭교회’라는 명칭은 《가톨릭교회 교리서》 등 교회의 공식 문서들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표현이다. 이 명칭은 교황 바오로 6세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문헌들에 서명할 때에도 사용되었다.[19] 그러나 교황청 문서 뿐만 아니라 지역 주교회의에서도 가끔씩 ‘로마 가톨릭교회’라는 용어가 등장하기도 한다. 1908년에 출판된 《성 비오 10세 교황의 교리문답》에서는 가톨릭교회와 교황과의 친교가 끊어진 다른 기독교 공동체들의 구별을 위해 가톨릭교회 앞에 ‘로마’라는 글자를 삽입하였다.[20]

대한민국중국 등에서는 가톨릭교회를 가리켜 ‘천주교’라고도 부른다. 천주교라는 명칭의 유래는 중국으로 선교하러 간 예수회 사제였던 마테오 리치는 중국인의 사상을 연구한 후, 중국에서 온 우주를 창조하고 주재하는 조물주의 개념으로 천주(天主), 즉 천하의 주인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음을 알고 중국이 갖고 있는 천주라는 하느님의 개념을 토착화하여 천주교라는 명칭을 만들어낸 것이다. 한국에서는 천주교가 전래된 이후에 서학(西學), 천주학(天主學), 천주교(天主敎), 가톨릭교 등으로 혼용되어 오다가 주교회의에서 ‘천주교 또는 가톨릭교’를 선택 공인하여 《가톨릭 지도서》(Directorium, 1932년)에 규정함으로써 공식 명칭이 되었다.

조직 및 통계[편집]

가톨릭교회의 지도는 성품성사를 받은 성직자들이 맡고 있다. 성직자들의 품계는 총 세 가지 품으로 분류하는데, 가장 으뜸은 주교품으로서 일반적으로 교구라고 불리는 자신의 지역을 사목하는 이들을 가리킨다. 주교들 중에는 대주교라는 지위로 올라가는 일도 있지만, 이것들은 서품에 따른 위계가 아니라 교구의 규모에 따라 정해진 교회 행정상의 직무를 나타낸다. 즉 사제가 주교로 서품되는 일은 있어도, 주교가 대주교로 서품되는 일은 없다. 물론, 대주교 중에서도 명의 주교직을 갖는 대주교가 있다. 그 다음은 사제품으로서 보통 주교로부터 지역 본당을 부여받아 사목하는 이들을 가리킨다. 마지막으로는 부제품으로서 주교와 사제를 각종 전례에서 보조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궁극적으로 가톨릭교회 전체를 지도하는 것은 로마의 주교, 즉 교황이다. 여러 수도회 및 단체는 해당 지역 교구의 소속으로서 지역 교구장 주교의 치리권을 받기는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자치적으로 활동한다. 이들 단체 가운데 오직 교황의 치리권만을 받는 곳도 더러 있다. 대부분의 수도회 및 단체의 회원은 성별로 서로 구별되어 있지만, 남성과 여성 모두를 회원으로 받아들이는 곳도 있다. 추가적으로 평신도 회원들은 각종 전례 집전에 보조 자격으로 참여한다.

교황과 교황청[편집]

교황의 상징인 성 베드로의 교차된 천국의 열쇠

가톨릭 교계제도에서 가장 으뜸은 로마의 주교인 교황이다. 교황은 로마 주교좌와 온전한 친교를 이루는 라틴 교회동방 가톨릭교회를 아우르는 가톨릭교회 전체의 영적 지도자이다. 현재 교황은 2013년 3월 13일에 선출된 프란치스코이다.

교황의 직위는 ‘교황직’(敎皇職)이라고 불린다. 교회에서는 그리스도가 성 베드로 사도에게 천국의 열쇠를 부여함으로써 교황직을 세웠다고 설명하고 있다. 교회의 법률적·사목적 최고 권위의 주체로서 교황을 가리킬 때는 성좌(聖座, Sancta Sedes) 또는 (성 베드로 위에 세워진) 사도좌(使徒座, Sedes Apostolica)라고 부른다.[21][22] 교황청은 교황을 위하여 최측근에서 일하며 매일 가톨릭교회의 모든 업무를 관리 담당하는 중앙 기구이다. 교황은 또한 로마 시 안에 있는 작은 독립국가인 바티칸 시국의 국가원수이기도 하다.[23] 참고로 바티칸 시국과 성좌, 교황청은 서로 별개의 존재이다. 교황이 세계 각국의 대사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외교 사절들을 세계 각국에 파견할 때는 바티칸 시국의 국가원수로서가 아니라 성좌의 수장으로서 하는 것이다.[24]

추기경은 교황청에서 교황을 최측근에서 보좌하는 고위 성직자들로서, 주로 주요 도시를 주교좌로 두고 있는 주교들이나 저명한 신학자들 중에서 교황이 직접 서임한다. 80세 이상의 성직자로 교회에 큰 공헌을 한 성직자 역시 명예직으로 추기경에 임명하는 때도 있는데, 그런 추기경들 중에는 종종 중국이나 베트남 등 독재 정권이나 공산주의 정부에 의해서 장기간 걸쳐 투옥된 성직자도 포함되어 있다. 교황에게 여러 가지 사안에 대해 조언을 하거나 지원을 하기 위해 추기경들로 구성된 단체를 추기경단이라고 부른다.[25]

교황이 선종하거나 사임할 경우, 추기경단 가운데 80세 이하의 추기경들이 후임 교황을 선출하기 위한 비밀 선거인 콘클라베에 참석한다.[26] 교회법으로는 남자 가톨릭 신자라면 누구라도 교황으로 선출될 수 있지만, 1389년 이후로는 오직 추기경들 가운데 한 사람을 선출하고 있다.[27]

교회법[편집]

가톨릭교회의 교회법(CIC)은 교회의 고유한 조직과 운영, 그리고 신자들이 교회의 목적을 좇아 이루도록 합법적인 교회의 권위로 제정한 법을 말한다. 가톨릭교회는 영신적이면서도 가시적인 형태로 존재하며,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이 함께 존재한다. 그러므로 교회법도 자연히 신약성경과 성전 안에 나오는 신법과, 교회와 인간이 제정한 실정법으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법의 제정 및 공표는 교황만이 할 수 있다. 교황은 보편 교회의 최고 목자로서 자기 임무에 의하여 교회에서 최고의 완전하고 직접적이며 보편적인 직권을 가지며 이를 언제나 자유로이 행사할 수 있다.[28]

따라서 교회법이란 교회의 존재 목적을 이루기 위해 교회의 고유한 조직과 운영 및 신자 생활의 규율을 정한 모든 법들을 지칭하는 것으로서, 여기에는 가톨릭교회의 성문법과 불문법이 포함된다. 성문법으로는 성경과 성전에 계시된 하느님의 실정법(jus divinum positivum)과 교회가 제정한 법률이 있고, 불문법으로는 자연법(jus naturale)이 있다.[29] 현행 교회법(1983년 교회법)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1983년 1월 25일에 선포하여 1983년 대림 첫 주일(11월 27일)에 발효되었는데, 전체가 1725 조항으로 되어있고, 전7권이며 내용은 총칙, 하느님 백성, 교도권, 성화권, 교회 재산 문제, 교회 형법, 교회 재판법의 순서로 되어 있다. 동방 가톨릭교회의 경우, 1990년 제정된 동방 교회법(CCEO)의 적용을 받는다.

자치 개별 교회[편집]

가톨릭교회 안에는 교리 문제에 있어서 교황의 최고 권위를 수용하는 23개의 자치 총대주교좌 교회들이 존재하고 있다.[13][30] 이들 교회들을 아울러 ‘자치 교회’(sui iuris)라고 부른다. 이 교회들은 라틴 교회와 다른 역사적·문화적 배경을 갖고 있으며, 이들의 전례 양식이 이를 반영하고 있다. 통상 각 동방 자치 교회들은 총대주교 또는 대주교를 주축으로[31] 고유한 교회 조직 구성이나 전례 양식, 전례력, 기타 영성을 갖고 있다.

현재 가장 규모가 큰 개별 교회는 라틴 교회이며, 신자 수가 대략 10억 명 이상으로 보고되고 있다. 본래 라틴 교회는 남유럽과 북아프리카에 걸쳐 분포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세월이 흘러 서유럽과 중유럽, 북유럽까지 교세가 확장되어 오늘날에는 세계의 대부분에 널리 퍼져 있다. 라틴 교회는 스스로 서방 기독교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되고 교세가 큰 교회로 자부하고 있으며,[32] 여러 유럽 국가의 사상 및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소위 종교개혁 이후 발생한 여러 개신교 교파들도 이러한 라틴 교회의 많은 유산을 함께 공유하고 있다.[32]

라틴 교회에 비해 상대적으로 교세는 적지만, 가톨릭교회의 전체적인 구조 안에서 중요한 교회가 바로 2010년 현재 약 1,730만 명의 신자와 22개의 자치 교회로 이루어진 동방 가톨릭교회이다.[33] 동방 가톨릭교회들은 동방 기독교의 전통과 영성을 따르되 교황과 항상 일치하였던 동방 기독교인들과 동서 교회의 분열 및 그 이전의 분열이 있은 지 수세기가 지나서 다시 교황과 일치하는 길을 선택한 동방 기독교인들로 구성되어 있다. 일부 동방 가톨릭교회들은 자치적으로 주교 시노드를 통해 선출된 총대주교가 다스리고 있으며,[34] 또 다른 일부에서는 상급대주교[35]관구장 주교[36], 주교[37] 등이 다스리고 있다. 교황청은 이들과의 긴밀한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 동방교회성이라는 부서를 두고 있다.

교구와 본당, 수도회[편집]

각 국가 및 지역 또는 주요 도시는 교구 또는 대교구로 알려진 개별 교회가 관리하고 있다. 각 교구는 교황으로부터 교구 관할권을 받은 주교교구장이 되어 다스린다. 교구는 흔히 대교구와 단순한 교구로 구분되는데, 한 개 이상의 교구를 갖는 교구를 대교구라 부르며, 그 외의 교구를 단순히 교구라고 부른다. 즉 교구는 가톨릭교회를 지역적으로 구분하는 하나의 기본 단위로서 교회 행정상의 한 구역을 말한다. 이러한 몇 교구가 모여 관구를 이룬다. 2008년 통계에 따르면 가톨릭교회에는 2,795개의 교구가 존재하고 있다.[38] 각 교구의 교구장 주교들은 해당 국가 또는 지역 주교회의의 일원이기도 하다.[39]

각 교구는 다시 좀더 작은 신자 공동체인 본당으로 나뉘어, 주교들의 대리자인 사제들이 직접 신자들을 보살피게 한다. 각 본당은 한 명 이상의 사제와 부제 또는 평신도 사도직을 두고 있다.[40] 주교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주교의 협조자인 사제는 항상 본당에 상주하면서 주교에 의해 정해진 관할 구역의 공동체를 위해서 사목해야 하며 성사를 집전해야 할 의무가 있다.

미사를 비롯한 전례 집전은 오직 사제 또는 부제로 서품받은 남성 가톨릭 신자만이 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복사, 독서자, 성체 분배자는 남성만이 맡는 분야였지만, 최근 들어 여성도 서서히 참여하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봉헌 생활회에 입회하려면 정신적ㆍ육체적으로 건강한 미혼 남녀여야 하며, 평신도 뿐만이 아니라 사제로 서품받은 남성 신자들도 수도자로서 복음적 권고인 청빈과 정결, 순명을 지키겠다는 서원을 함으로써 자신의 욕망을 억제하고 그리스도와 일체가 되는 완덕에 도달하기 위해 수도 생활을 시작해야 한다.[41] 대표적인 봉헌 생활회로는 베네딕도회가르멜회, 도미니코회, 프란치스코회, 사랑의 선교 수녀회, 그리스도의 레지오 수도회 등이 있다.

신자 수 통계[편집]

2010년 나라별 가톨릭 신자 비율.[42]      1억 명 이상      5천만 명 이상      2천만 명 이상      1천만 명 이상      5백만 명 이상      1백만 명 이상

2011년 통계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 가톨릭 신자 수는 약 1,214,000,000명으로 세계 인구의 17.5%를 차지하고 있다.[1]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증가율은 2.3%, 아메리카와 유럽의 증가율은 0.3%이며, 전체적으로 1.5% 증가하고 있다. 아메리카의 48.8%(5억 9,882만 명), 유럽의 23.5%(2억 8,687만 명), 아프리카의 16.0%(1억 9,859만 명), 아시아의 10.9%(1억 3,464만 명), 오세아니아의 0.8%(970만 명)가 가톨릭 신자이다.[1] 전체 기독교 신자 수에서 가톨릭 신자 수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43]

유럽에서 신자의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를 보자면, 라틴 유럽에서는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이 있고, 비(非)라틴계 유럽에서는 오스트리아, 벨기에, 크로아티아, 체코, 헝가리, 아일랜드, 리투아니아, 몰타, 폴란드,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등이 있다. 독일네덜란드, 스위스, 영국북아일랜드 지방에서는 가톨릭교회와 개신교의 교세가 얼추 비슷하다.

아메리카에서도 가톨릭 신자가 폭넓게 분포하고 있는데, 일반적으로 앵글로아메리카보다 라틴 아메리카가 다수를 점유하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특히 멕시코, 브라질, 아르헨티나, 콜롬비아에서 교세가 강하며, 브라질은 세계에서 가톨릭 신자의 절대 수효가 가장 많은 나라로 알려져 있다. 앵글로아메리카에서 미국은 2012년 말 기준으로 약 7,118만 명의 가톨릭 신자가 거주하는 나라로 전체 국민의 4분의 1 가량이 가톨릭 신자이다. 캐나다 역시 상당 수의 신자가 분포하여 현재 캐나다에서 최대 신자 수를 가진 종교로 꼽힌다.

아프리카에서는 사하라 사막 이남의 여러 나라에 폭넓게 분포되어 있다. 신자는 콩고 민주 공화국, 나이지리아, 우간다 등에 많은 편이며, 국민 중 가톨릭 신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나라로는 세이셸, 우간다, 부룬디 등이 있다.

아시아에서는 전체 인구 중 그 비중은 낮으나, 필리핀동티모르는 국민의 대다수가 가톨릭 신자이며, 대한민국은 국민의 10 분의 1 가량이 가톨릭 신자인 점은 아시아 전체에서 특이할 만한 사항이다. 오세아니아에서는 오스트레일리아에 가톨릭 신자가 가장 많으며, 이외의 중소 국가들에도 폭넓게 분포되어 있다.

2011년을 기준으로 가톨릭교회 사제 수는 413,418명이다. 주요 성장 지역은 아시아와 아프리카로 2000년도 이래 각각 39%와 32%가 증가하였다. 반면, 아메리카에서는 성장률이 그대로였고 유럽에서는 9% 하락하였다.[1] 2006년을 기준으로 가톨릭교회의 수도자 수는 945,210명이다. 이 가운데 여성 수도자인 수녀의 수는 743,200명이다.[44]

전례[편집]

가톨릭교회의 기본적인 종교물인 성경십자고상, 묵주.
예수 그리스도의 봉헌을 기념하고 재현하는 장소이자 경신례의 중심인 제대.

《한국 가톨릭 전례사전》은 전례에 대해 ‘그리스도의 신비체이며 하느님 백성인 교회가 거행하는 공적 경배로서 행위로 드러내는 기도이며 그리스도와 그분 교회의 기도이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교황 비오 12세는 회칙 《하느님의 중개자》(Mediator Dei)에서 “전례는 우리 구세주께서 교회의 머리로서 아버지께 드리는 공적 경배인 동시에 신도들의 공동체가 공동체의 창설자께 바치는 공적 경배이며 그분을 통해 아버지께 바치는 공적 경배이다. 간단히 말해 전례는 머리와 지체가 하나 되어 그리스도의 신비체에 의해 봉헌되는 경배이다.”(20항)라고 설명하였다.

가장 많이 알려진 대표적인 전례 양식은 로마 전례일반 양식이지만, 동방 가톨릭교회들은 물론 라틴 교회 안에서도 다양한 전례 양식이 전해져오고 있다. 가톨릭교회를 구성하는 23개의 개별 교회(sui iuris)마다 여러 가지 전례 양식이 존재하는데, 이는 신앙의 차이라기보다는 역사적·문화적 다양성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동방 교회 교회법에서는 “전례 예식은 전례적·신학적·정신적·규율적 유산으로서, 다양한 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반영하여 각 개별 교회마다 저마다의 방식에 따라 고유의 형태로 나타난다.”[45]라고 정의하고 있지만, 주로 전례적 유산에 한정되어 있다.

성찬례 거행[편집]

가톨릭교회의 모든 전례를 통틀어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은 성체성사를 이루는 미사 또는 성찬예배이다. 가톨릭교회에서는 오직 유효하게 수품된 사제만이 미사를 집전하여 제병과 포도주를 그리스도의 몸성변화시킬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46] 가톨릭교회에서는 미사 중에 사제가 제병과 포도주를 축성하면 참으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 즉 성체와 성혈로 바뀐다고 가르친다. 즉 축성된 뒤에 제병과 포도주 자체가 남아 있지 않고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하되 다만 제병과 포도주의 형상만 남아 있는 것이다. 가톨릭교회에서는 성체성사 안에 그리스도가 참으로 실재적으로 그리고 실체적으로 존재한다고 가르친다.[47] 가톨릭 신자라 하더라도 죄중에 있는 사람은 사전에 고해성사를 보고 죄를 용서받은 후에야 비로소 성체를 영할 수 있다.[48] 일반적으로 가톨릭 신자들은 성체를 영하기 전 1시간 동안 공복재를 지켜야 한다. 공복재란 성체에 대한 존경과 영성체를 준비하는 마음에서 어떠한 음식이나 음료의 섭취를 삼가하는 것이다.[48] 하지만 물과 약은 언제든지 먹을 수 있으며, 노인이나 병약자, 병자를 간호하는 사람들은 공복재 규정을 지키지 않고서도 성체를 영할 수 있다. 가톨릭 신자가 아닌 사람들은 성체를 영할 수가 없다.

가톨릭 신자들은 모든 주일과 더불어 의무 대축일에 해당하는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1월 1일), 예수 부활 대축일, 성모 승천 대축일(8월 15일), 예수 성탄 대축일(12월 25일)에 미사에 참례해야 하는 것이 기본적인 의무이다.

서방 전례 양식[편집]

로마 전례는 가톨릭교회의 가장 대표적이면서 일반적인 전례 양식이다. 이 전례 양식은 유럽의 선교사들의 활발한 선교 활동을 통해 전세계로 널리 퍼졌다.[49] 현재 로마 전례의 일반 양식은 1969년판 로마 전례로서, 교회의 공식 언어인 라틴어보다는 나라별로 자국어로 봉헌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트리덴티노 미사를 집전하는 사제의 모습.

2007년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더 오랜 관행’(usus antiquior)이라고 일컬어지는 로마 전례의 특별 양식을 담고 있는 1962년판 로마 미사 경본을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승인하였다.[50]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소집되기 몇달 전에 출판된 이 미사 경본은 1570년 트리엔트 공의회의 요청에 따라 교황 비오 5세가 표준화하여 반포한 트리덴티노 미사의 마지막 개정판이다. 교황 비오 5세의 로마 미사 경본은 1604년 교황 클레멘스 8세, 1634년 교황 우르바노 8세, 1911년 교황 비오 10세, 1955년 교황 비오 12세 그리고 1962년 교황 요한 23세에 의해 조금씩 개정되어왔다. 1969년 교황 바오로 6세가 새로운 로마 미사 경본을 공표하면서, 1962년판 로마 미사 경본에 따라 미사를 거행하려면 교구장 주교의 승인을 사전에 받아야만 했다. 2007년 교황 베네딕토 16세자의교서 《교황들》(Summorum Pontificum)을 발표하여 신자들 없이 사제 혼자 임의로 또는 신자들이 요청하면 교구장 주교의 승인 없이도 사제가 자유롭게 트리덴티노 미사를 거행할 수 있도록 허락하였다. 베네딕토 16세는 또한 독서 봉독은 자국어로 읽는 것을 허용하였지만, 복음서를 봉독할 때는 오직 교회의 공식 언어인 라틴어로 낭송하도록 하였다.

2009년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사도적 서한 《성공회 신자 단체》(Anglicanorum Coetibus)를 반포하여 성공회를 떠나 가톨릭교회와 완전한 친교를 이루는 전(全) 성공회 신자들로 구성된 성직 자치단이 성공회의 전통에 따른 전례와 영성과 사목 전통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게 하였다.[51]

암브로시오 전례모자라빅 전례는 로마 전례와 뚜렷한 차이점을 보이는 서방 전례의 일종으로서 일부 라틴 교회에서 거행되고 있다.

동방 전례 양식[편집]

그리스 가톨릭교회의 주교가 집전한 성찬예배

동방 가톨릭교회에 속한 지역 교회들의 전례 양식들은 종류가 매우 다양하며, 개중에는 동방 정교회나 기타 동방 기독교 종파들의 전례와 비슷하거나 완전히 동일한 것도 있다.

교리[편집]

삼위일체[편집]

가톨릭교회의 4대 교리중 하나인 삼위일체는 325년제1차 니케아 공의회를 통해 아리우스파를 이단으로 단죄하며 정통 교리로 확정되었다. 교리의 본질은 성부, 성자, 성령의 3개 위격이 서로 독립적이면서도 완전히 하나의 하느님을 이룬다는 것이다. 현재 가톨릭교회와 일치의 친교가 없는 동방 정교회개신교(일부 분파는 제외)에서도 대체적으로 이 교리를 계승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독교의 주요 교리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그러나, 여호와의 증인이나 유니테리언 등 일부 교파에서는 성경에 그런 근거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받아들이지 않기도 한다.

거룩한 전승[편집]

로마 가톨릭교회는 거룩한 전승(傳承, Tradition)을 기독교 신앙의 규범으로 삼는다.

그중에서 특히 문자 기록인 성경397년 카르타고 공의회에서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권위를 부여하였다. 특히 교황 다마소 1세의 지시로 성 예로니모가 라틴어로 번역한 불가타(Vulgate)는 현대까지도 공식적인 라틴어 성서로 취급되고 있다. 추후 트리엔트 공의회에서는 불가타역(譯)이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번역본이라 하여 46권의 구약성경와 27권의 신약성경이 정경(Cannon)임을 추인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그 사도들이 가르친 교리는 문헌으로만 전해진 것이 아니라 구두(口頭) 전승으로도 전해졌다. 기록된 것(성경)이든 구두나 유무형적 전통을 통하여 전해온 것이나 '하느님의 말씀'을 해석하고 가르칠 권한은 오직 교회에게 있다. 성전(聖傳, Sacred Tradition)ㅡ성경(聖經, Sacred Scripture)을 포함ㅡ, 그리고 교도권(敎導權, Magisterium of the Church)은 성령 안에서 서로 연관되어 있어 어느 하나만 빠져도 불충분하다고 믿는다.

기독교 신앙은 단순히 경전에만 국한되지 아니하고 '말씀'(로고스)으로 오신 주님을 믿는 종교이므로, 성경을 해석할 때에는 성경 전체의 맥락과 일관성에 유의하여 거룩한 전승에 따라 읽을 것을 요청한다. '신앙진리의 일관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성사[편집]

성사는 총 7가지로 구분하며, 교회에서 가장 거룩한 예식으로 간주되고 있다.


사후 심판[편집]

성모 마리아[편집]

역사[편집]

로마 교회의 기원[편집]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유대인 거주지역에서 시작됐다. 유다교의 입장에서 기독교는 새로운 분파로 이해됐고 기독교예수의 죽음에 대한 책임 문제로 유다교와 늘 갈등과 마찰을 일으키고 있었다.

로마 제국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한 다음에 예루살렘은 더 이상 기독교의 중심지 역할을 할 수 없게 됐다. 이에 따라 그리스도인들이 제국의 수도인 로마로 자연스럽게 집중되게 됐다. 비록 예루살렘기독교의 발상지이지만 오히려 로마가 중심이 되었다는 사실은 당시의 정치 상황 등 복합적인 이유에 기인한다. 로마 교회가 언제 생겼는지, 즉 로마에 첫 그리스도인이 언제 정착했고 어떻게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형성됐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다만 바울의 로마를 근거로 적어도 그 집필 연대인 58년 이전에 이미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로마에 존재했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바울59년에서 61년 사이에 로마에 도착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베드로의 경우에는 로마 도착 사실이 명확하게 나타나 있지 않다. 다만, 전승에 따르면 베드로의 로마 체류 사실과 순교 사실을 전해주고 있다. 이 시기에 64년 7월 19일 로마에 대화재가 발생한다. 이때 네로 황제는 그의 출생지인 안티움 해변가에 휴양을 가 있었다. 화재 소식을 듣고 로마로 급히 돌아온 네로는 시간이 지날수록 로마 대참사에 대한 항간의 방화을 사주한 것이 황제라는 의혹을 받고 있었다. 이때 그동안 그리스도인들을 시기 질투해 왔던 광적인 유대인들은 화재 혐의가 자기들에게 돌아올까봐 그리스도인들이 화재를 일으켰다는 소문을 퍼트리자, 로마시민들로부터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분노와 미움이 극에 달해 있었다.[52]

네로는 자기에게 쏠리는 의혹을 모면하기 위해 그리스도인들에게 모든 방화 혐의와 책임를 뒤집어 씌웠던 것이다. 이로 인해 모든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은 방화범으로 몰려 4여년간 박해와 화형으로 처형되어 나갔다. 이 기간에 바울베드로로 순교했을 것으로 추정된다.[53]

로마는 기독교 공동체의 박해의 주무대였으며 베드로바울 두 사도의 순교지라는 특수한 의미와 배경으로 인해 지역교회를 넘어선 새롭고 확고한 위치를 차지한다. 따라서 로마 교회는 초기 교회의 다양한 문화적 배경 속에서 일치의 기준이었고 가시적인 정점이었다. 이후 로마 주교는 스승처럼 다른 지역교회와 공동체의 문제에 가르침을 내린다. 클레멘스는 고린토 교회의 내부 분쟁에 직접 개입함으로써 로마 주교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음을 알려준다. 당시 지역 공동체 지도자들은 로마를 방문해 로마 공동체와의 일치를 확인하고 보장받곤 했다.[54]

2011년 기준, 가톨릭교회의 사제 수는 413,418명이다.

로마 제국의 박해[편집]

로마 제국의 박해는 대체로 10번에 걸쳐 일어났다고 하는데 그 성격은 3기에 걸쳐 뚜렷이 구분된다. 100년경 까지의 제1기는 교회에 호의적이다가 로마 시 대화재 사건으로 일어난 우발적이고 산발적인 박해기이며, 250년까지의 제2기는 교회를 반인류적 반국가적 금지된 종교로 규정하고 신자라는 이름만으로도 처벌의 대상이 되던 시기다. 가장 조직적이고 잔인하게 시행된 250년에서 313년까지의 제3기는 로마 제국의 정치·사회적 혼란을 무마시키기 위해 일어난 박해시기였다. 이 4년여에 걸친 박해 때 베드로바오로 사도도 순교했다.

박해가 일어나기 전까지 교회와 로마 제국은 비록 호의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서로 부딪힐 수밖에 없는 요인들을 안고 있었다. 먼저 로마인들은 병역을 노예나 무산자(無産者)들에게는 부과 시키지 않을 만큼 시민의 권리요 의무라고 생각할 정도로 개인보다 국가를 절대시하는 성향이어서 하느님을 유일신으로 믿는 기독교와 상충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황제들은 로마 제국의 정치·사회적 혼란기를 맞으면 종교적 기반에서 제국의 쇄신과 내적 강화를 꾀했는데 황제숭배 같은 국가종교 예배가 국가에 대한 충성의 시금석으로 강조될수록 이를 거부하는 그리스도인은 국가의 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또한 로마인들은 영적 세력이 인간 삶에 영향을 미친다고 믿고 있었는데 타치우스나 아우렐리우스 같은 황제들의 재위기간에 전염병, 기근, 홍수, 야만족 침입 등의 재난이 발생하자 기독교 반대파들은 기독교 때문에 신들의 분노를 사서 이러한 일들이 일어난다며 군중들을 부추키기도 했다. 300여 년에 걸친 모진 박해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는 마침내 로마제국의 새로운 사회·통치 질서로 자리잡게 되는 승리를 거둔다.[55]

제국 교회[편집]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312년 이탈리아로 출정해 막센티우스와 서로마제국의 패권을 두고 다투게 된다.

군사적으로 열세에 있던 콘스탄티누스는 로마의 티베르 강 밀비오 다리에서 결정적인 전투를 치르게 되는데 전투 전 콘스탄티누스가 그리스도인들의 신에게 기도하면서 도움을 청했을 때 공중에서 빛나는 십자가와 ‘이것을 가지고 승리하라’는 문구를 보았다. 이에 자신감을 얻은 콘스탄티누스는 그리스어로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키(Χ)와 로(Ρ)로된 군기를 만들어 가지고 싸워 승리했다고 한다. 이 밀비오 전투의 승리로 콘스탄티누스는 서로마의 주인이 됐고 그리스도를 수호신으로 숭배하게 된다. 콘스탄티누스의 이러한 개종은 박해의 종식과 함께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교가 되는 길을 열어놓는 대전환점이 된다.[56]

313년 밀라노를 방문한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제국의 안정을 위해 동부지역의 황제 리치니우스와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논의하게 되고 그 중에서도 십자가 발현 체험을 한 콘스탄티누스는 종교문제, 특히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문제를 다루면서 로마 제국 내에서 기독교의 신앙의 자유를 허용한다는 포고형식의 영을 내리게 된다. 이를 밀라노 칙령 혹은 관용령이라 부른다.

밀라노 관용령은 내용상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첫째는 그리스도인들을 지칭하면서 그리스도인이나 비그리스도인을 막론하고 제국 내 모든 시민들에게 적용되는 종교자유의 원칙을 선포한 것이다. 둘째는 그리스도인들이 박해시대에 몰수당한 재산이나 팔린 재산까지도 교회에 반납하도록 명시한 것이다.

이 밀라노 관용령 자체가 기독교를 국교화 하거나 특권을 베푼 것이 아니라 타종교와 같이 신앙의 자유를 허용한 것뿐이지만 기독교가 제국의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내는 기초가 됐다. 밀라노 관용령 이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취한 여러 조치들은 대중의 대량 입교와 함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방면에 기독교 정신을 확산시키게 된다.

324년 콘스탄티누스는 반 교회적 정책을 시행한 리치니우스를 물리치고 전 로마의 유일한 통치자가 됨으로써 기독교 정책은 더욱 강화된다. 뿐만 아니라 콘스탄티누스 대제를 이은 아들들은 콘스탄티누스의 친 교회 정책을 더욱 강화했다. 비록 율리아누스 황제 때 반 교회 정책이 시행되긴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고 결국 테오도시우스 1세 때인 380년 2월에 '가톨릭 신앙에 대한 칙령'(De fide catholica)의 반포와 함께 기독교가 제국의 공인 종교가 됐다. 이로써 300년 간의 혹독한 박해를 이겨낸 기독교는 제국교회, 국가교회가 됐다.

콘스탄티누스의 개종을 단초로 제국의 공인교회가 된 기독교는 박해받는 교회에서 특권의 교회로, 순교자의 교회에서 국가교회로 전환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로마 제국의 기독교화는 광범위한 복음전파와 함께 대중의 대량 입교로 인해 양적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교회가 국가 교회가 됨으로써 국가권력과 너무 밀착되어 부와 권력을 누리면서 세속화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를 우려한 인물들 중 몇몇은 교회 복음화와 내적 쇄신 그리고 신앙생활의 심화를 위해 사막으로 은거하기도 해 초기 수도원 운동의 시초가 되기도 했다.[57]

십자군 운동[편집]

11세기 서유럽은 클뤼니 수도회와 그레고리오 개혁 등에 의해 수도원 문화가 확산되었고 종교적 열성이 고양된 상태였으며 새로운 공동체 의식이 생겨났다. 기독교 정신은 사회전반에 걸친 기본 토대였다. 따라서 기독교 신앙을 위협하는 요소는 전체 사회구조를 위협하는 위험이었다.

경제적으로는 상업의 발달 등으로 봉건지배 체제가 해체되고 자치도시의 독립이 진행되는 시기로 무역세계의 확대가 당면과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층민과 농민들의 생활 수준은 열악하여 생활수준이나 사회신분의 향상을 바라는 욕구나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심이 날로 점증되어갔다.

십자군 전쟁의 또 다른 중요한 배경은 기사계급의 동요였다. 끊이지 않던 제후들간의 세력다툼이 11세기 이후 사회의 안정과 함께 소멸되었으며 교회도 게르만족의 이동으로 교회 안에 유입된 호전성을 순화시키기 위해 「하느님의 평화」(Pax Dei)와 「하느님의 휴전」(Tregua Dei)이란 제도를 만들어 많은 전투 행위를 금지 시켰다. 이렇게 되자 기사들은 전투정신을 발휘할 기회가 없었고 신분마저 위태로워졌다.

서유럽과 동로마 제국, 이슬람으로 삼분되어있던 국제정세 또한 셀주크 투르크족의 발흥으로 균형이 깨지고 동로마 제국이 교황을 비롯한 서유럽 사회에 구원을 요청하게 됐다. 637년부터 팔레스티나 지역은 이슬람의 세력아래 들어가 있었지만 성지순례와 그 지역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어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셀주크 투르크족이 점령한 이후부터는 성지순례가 어려워졌고 심한 박해를 받았다.

이리하여 11세기말부터 13세기까지 근 200여 년 동안 8차례에 걸쳐 원정이 이루어졌다. 농민십자군에 이어 기사들과 귀족들로 이뤄진 제1차 십자군이 1099년 예루살렘을 탈환하고 예루살렘 왕국을 세우기도 했으나 대부분 실패로 끝났다. 십자군 원정이 거듭될수록 그 순수성도 잃어버리게 되는데 4차 원정에서는 베네치아 상인들에게 놀아나 성지회복이 아니라 오히려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해 라틴제국을 세움으로써 동서 교회의 분열을 더욱 심화시키고 회복할 수 없게 만들기도 했다. 이처럼 십자군 운동은 원정이 거듭될수록 신앙의 순수한 열정이 퇴색되고 변질된 채 엄청난 희생에도 불구하고 군사적으로는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교황의 주도로 이뤄진 십자군은 초기에는 교황권의 신장을 가져왔지만 궁극적으로 십자군이 실패함으로써 교황권이 쇠퇴의 길로 들어서는 동시에 유럽의 종교적 열정도 식었다. 또한 영주들이 십자군 원정에 나선 후 영지관리를 소홀히 하게 되고 경제적으로 쇠퇴하자 봉건제도가 무너지고 왕권이 절대화하는 한편 공동체의식이 강화돼 민족의식 내지는 국민의식이 싹트기 시작함으로써 서유럽사회가 근대로 넘어가는 계기가 마련됐다. 또한 동방과 이슬람 문화와의 접촉은 학문을 증진시켜 스콜라학의 발전을 가져왔다.[58]

종교 개혁[편집]

중세 말기에 에라스무스등의 인문학자들은 로마 가톨릭교회의 부정과 부패를 풍자하며 도덕적인 개혁을 부르짖었지만 그것으로는 역부족이었다. 그런 가운데 마르틴 루터가 비텐베르크 대학교의 교회 정문에 95개조에 달하는 반박문을 못 박은 사건은 역사를 움직인 종교개혁을 일으키게 되었다. 마르틴 루터를 따르는 자들이 루터교회를 세운 것을 시작으로, 장 칼뱅울리히 츠빙글리의 신학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장로회를 세우는 등 개신교가 로마 가톨릭교회의 수위권을 거부하며 독자적인 신학 노선을 만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개신교측에서 일반적으로 "종교 개혁"이라 부르는 이 사건을 로마 가톨릭 교회의 보수적인 신학자와 신자들 사이에서는 "제2차 종교 분열"이라고 칭하고 있다.

이 종교 개혁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로마 가톨릭교회의 독일 주교들의 부정한 교도권 남용이었다. 당시 교황은 성 베드로 성당의 건축을 위한 헌금 봉헌, 고해성사 참여, 성지순례 등의 이행을 조건으로 신자들에게 대사 특전을 부여하고 있었는데, 마그데부르크 대주교 알브레히트 등 북유럽(독일) 교회들은 이러한 대사특전 교도권을 남용하여 더 많은 돈을 끌어모으려고 했다. 따라서 원래 신앙의 촉진을 위해 주어지던 특전인 대사의 의미가 변질되어 "미래의 죄"까지 사해진다고 믿는 신자들이 생기기에 이르렀다. 루터는 성직자들의 올바르지 못한 사죄권 남용과 이러한 독일 교회의 부패를 비판하기 위하여 95개조의 반박문을 올린 것이다.

루터는 독일 교회에서 이루어진 작금의 대사특전이 성실한 신앙생활을 위한 노력보다는 돈으로 자기 영혼을 구하려고 고심하고 보이기식 순례와 같은 외적 행사에 더 신경을 쓰고 있는 현실을 개탄하였다. 그리하여 루터는 독일 교회 대주교에게 새 훈령을 통해 대사설교의 폐단을 없앨 것을 요구하고 신학자들이 대사 교리를 명확히 밝힐 것을 촉구하면서 작금의 대사 시행을 반박하는 신학 명제로서 대사 명제와 대사 논문을 첨부했다. 루터는 후에 자신이 95개 조문을 발표하게 된 동기는 바로 이 편지에 대해 주교들이 아무런 회답을 주지 않은데 있었다고 말했다. 이 95개 명제는 루터 자신의 의지와는 달리 출판업자들의 손에 들어가 1518년 95개 항목으로 정리돼 「95개조 명제」로 인쇄됐다.

논쟁이 이어지면서 루터는 자신의 신학 체계를 전 분야에 걸쳐 발전시키게 되고 쇄신의 주장은 분열의 빌미가 되어가고 있었다. 1518년 1월 대사 설교가로 활동하던 도미니코회 수사 텟첼이 106개조 반박문으로 95개조 명제를 논박하자 루터는 대사 명제에 대한 해설서와 대사와 은총에 관한 글로 대응했고 저명한 신학자인 요한 에크(Johann Eck, 1486~1543)와도 논쟁을 벌였다.

알브레히트 대주교는 교황청에 루터가 이단적 새 교리를 전파시키고 있다고 보고했고 교황 레오 10세는 독일에서 발생한 대사 사건을 교리 논쟁으로 간주해 직접 개입을 피하려고 했다. 루터는 교황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대사 명제의 출판에 대해 해명하고 교황에 대한 충성을 표시했다. 하지만 이러한 충성 선언과는 달리 루터가 동봉한 「대사 효력에 관한 해설서」는 교황의 권위보다는 공의회의 결정이 우선적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으며 따라서 교황에게 복종을 표시하면서도 자신의 주장은 결코 취소할 수 없음을 고집했다.

레오 10세 교황은 8월 23일 아우구스부르크 제국 의회에 교황특사로 파견한 가예타노 추기경을 교황 특사로 파견해 10월 12일부터 14일까지 루터에 대한 청문회를 열었지만 논쟁은 계속됐다. 루터는 분열을 원치 않았고 대사특전의 폐단과 교회의 타락을 개혁하고자 하였으나 교황청은 이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으며 외면하였고 루터를 지지하는 움직임은 유럽 전역으로 확산됐다.

루터는 자신의 문제가 교황청이 아닌 독일 법정에서 취급되도록 요청하여 이는 정치적인 문제로까지 연결되었고 교도권을 넘어 심각하게 부패하고 있는 교회를 쇄신하기 위해 세계 공의회 소집을 청원했다. 마침내 교황청은 파문장을 보냈으나 루터는 이를 불살랐다. 루터는 이후 세속 군주의 보호 아래에서 자신의 확신을 실현하게 됐다.[59]

반 종교 개혁[편집]

교회개혁[편집]

15세기 말에서 16세기에 걸쳐 루터 등에 의한 종교개혁 운동으로 서방 교회는 기존의 가톨릭교회로부터 개신교가 분열되었고 이 분열을 치유하려는 운동이 16세기 들어서 본격적으로 전개됐으며 이러한 쇄신 운동을 19세기 초 역사가들은 로마 가톨릭 교회 종교개혁이라고 불렀다. 로마 가톨릭 교회 개혁은 루터의 종교 개혁 이후에 생겨난 반 로마 가톨릭 교회적인 운동의 확산을 저지하고 교회의 가르침을 명확히 하려고 했다. 로마 가톨릭 교회 개혁은 특히 교회의 내외적인 개혁을 정치적으로 후원했으며 정치적 결속을 공고히 하고 잃어버린 교회의 영향력과 영토 회복을 도모하기도 했다.

예수회[편집]

당시 교황으로부터 쇄신의 주역으로 각별한 관심을 받던 예수회가 16세기 로마 가톨릭 교회 개혁 운동의 중추가 됐다. 예수회는 특히 영성 생활 지도와 선교지역의 전통을 존중하는 선교 활동, 자선 사업, 청소년 교육과 신학 연구 등을 통해 로마 가톨릭 교회 개혁과 신앙 복구의 원동력이었다. 이러한 운동은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폴란드, 헝가리 등 여러 유럽 국가에서 거의 동시에 나타났다. 즉, 로마 가톨릭교회가 수천년간의 역사를 가지는 것은 예수회 운동등을 통해 스스로 개혁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아우크스부르크 화의[편집]

이유[편집]

독일의 가톨릭 성향 제후들은 새롭게 변모하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모습에 고무되어 쇄신을 실행했고 자기들의 영지 안에서 로마 가톨릭교회만을 인정했다. 이에 따라 가톨릭 제후들이 통치하는 지역에서 개신교가 확산되면서 개신교 신자가 억압을 받는 정치적· 종교적 갈등이 야기되어 1555년 아우크스부르크 화의가 열린다.

내용[편집]

아우크스부르크 화의에서는 제후와 자유도시의 종교의 자유가 허용되었으며, 루터교와는 달리 장로교는 종교의 자유에서 제외되었다. 아우크스부르크 화의에서는 제후의 신앙을 인민이 따르게 하였으므로 종교의 자유 곧 개인이 종교를 선택하고 거부할 권리가 허용된 것은 아니었으며, 제후와 신앙을 달리 할 경우에는 인민이 거주지를 이동하는 것이 인정되었다.[60]

30년전쟁[편집]

1617년 페르디난드 2세보헤미아의 왕이 됐을 때 개신교를 억압함으로써 같은 기독교인끼리 전쟁을 벌인 30년 전쟁(1618~1648년)이 일어났다.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전쟁이 끝났을 때 정치적으로는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의 권위가 실추됐고 종교적으로는 로마 가톨릭교회와 개신교 모두 동등한 권리를 갖는 데 합의함으로써 신구 교회 간의 종교 분쟁이 종결됐다.[61]

한국의 로마 가톨릭교회[편집]

대한민국의 천주교 교구

도입[편집]

한국(대한민국) 로마 가톨릭교회는 선교사들이 복음을 전한 다른 나라와는 달리 지식인이 자발적으로 받아들였다는 특징이 있다. 청나라에서 활동하던 예수회선교사와 사신으로 청나라에 간 조선의 지식인 간의 교제로 로마 가톨릭이 조선에 들어온 것이다.

박해[편집]

주로 정계에서 소외되어 있던 시파가 로마 가톨릭을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정적인 벽파에서는 로마 가톨릭교회 탄압을 빌미로 시파를 탄압했다. 즉, “조상을 몰라보는 사람”(무부지자[無父之者])이라는 게 박해의 명분이었지만, 실제로는 정치성을 띤 사건이었다. 황사영의 백서사건으로 유명한 황사영은 ‘백서’에서 ‘천주교회가 반대 당파를 제거하는 데 이용되고 있다.’라고 하였다.[62] 1866년 병인박해시 6,000여 명의 신자들이 처형되기도 하였다.

일제강점기군사독재정권 당시 독립운동민주화운동, 인권운동, 통일운동에 참여했다.[63]

성장[편집]

현재 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회는 16개 교구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교구는 서울, 대구, 광주의 3개의 관구 안에 소속되어 있으며, 한국 내 각 교구장의 협의회인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가 있다. 한국의 가톨릭 신자 수는 2013년 12월말 현재 544만 2,996명으로서 전체 인구의 10.4%이다.

같이 보기[편집]

참고 자료[편집]

  1. 《가톨릭교회 교리서》 77항: “사도들은 교회 안에 복음이 영구히 온전하게 또 생생하게 보존되도록 주교들을 후계자로 세워 ‘자기 교도직의 자리를 넘겨주었다.’ 그러므로 ‘영감 받은 책들 안에 특별한 방식으로 표현되어 있는 사도적 설교는 세상 종말까지 지속적인 계승으로 보전되어야 했다.’”[5]
  2. 《주님이신 예수님》 IV. 교회의 유일성과 단일성, 17항: “그러므로 가톨릭교회 안에 존재하는 그리스도의 유일한 교회는 베드로의 후계자와 그와 친교를 이루고 있는 주교들을 통하여 다스려진다. 가톨릭교회와 완전한 친교 안에 존재하지는 않지만, 긴밀한 결속으로써, 곧 사도적 계승과 유효한 성체성사로써 결합되어 있는 교회들은 진정한 개별 교회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교회는, 비록 그들이, 하느님의 뜻에 따라 로마의 주교가 객관적으로 전 교회에 대하여 가지고 있고, 행사하고 있는 수위권에 대한 가톨릭 교의를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가톨릭교회와 맺는 완전한 친교에 결함이 있기는 하지만, 이 교회들 안에서도 현존하고 작용한다. …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그러므로, 현재 분열되어 있지만 어느 정도 일치점을 유지하고 있는 교회들이나 교회 공동체들의 총합이 그리스도의 교회라고 상상할 수 없고, 또 그리스도의 교회는 오늘 현재 아무 데에도 없고 다만 모든 교회와 교회 공동체가 추구하여야 할 목표라고 주장할 수도 없다.”[6]
  3. 교회에 대한 교리의 일부 측면에 관한 몇 가지 물음에 대한 답변: “가톨릭 교리에 따라, 가톨릭교회와 아직 온전한 친교를 이루지 않은 교회들과 교회 공동체들 안에도 성화와 진리의 요소들이 있는 만큼, 그리스도의 교회는 그들 안에도 ‘현존하고 활동한다’(adesse et operari)고 올바르게 말할 수 있다.”
  4. 《가톨릭교회 교리서》, 890: “교도권의 사명은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 백성과 맺으신 계약의 결정적 성격과 관련되어 있다. 교도권은 하느님의 백성이 빗나가거나 쇠약해지지 않도록 보호해야 하며, 올바른 신앙을 오류 없이 고백할 수 있는 객관적 가능성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 이처럼 교도권의 사목적 임무는 자유를 주는 진리 안에 하느님의 백성이 머물도록 보살피는 임무이다. 이 봉사 직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그리스도께서는 목자들에게 신앙과 도덕에 관한 무류성의 은사를 주셨다. 이 은사는 여러 가지 모양으로 행사될 수 있다.”
  5. 성 이냐시오가 스미르나 교회에 보낸 서신 (약 110 A.D.):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신 곳에 가톨릭교회가 있듯이, 주교가 나타나는 곳에 공동체가 있어야 합니다.”[17]

주석[편집]

  1. Vatican statistics report church growth remains steady worldwide. National Catholic Reporter (2014년 5월 2일). 2014년 5월 30일에 확인..
  2. Gerald O'Collins, p. v (preface).
  3. Vatican congregation reaffirms truth, oneness of Catholic Church. Catholic News Service. 2012년 3월 17일에 확인.
  4. 교회에 대한 교리의 일부 측면에 관한 몇 가지 물음에 대한 답변. 신앙교리성 (2007년 6월 29일). 2012년 4월 18일에 확인.
  5. 사도 전승. 《가톨릭교회 교리서》. 바티칸. 2011년 6월 22일에 확인.
  6. Cf. 신앙교리성 (2000년 8월 6일). 《주님이신 예수님》(Dominus Iesus). 2012년 3월 12일에 확인.
  7.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인류의 빛》(Lumen gentium), 25항
  8. 가르치는 임무. 《가톨릭교회 교리서》. 바티칸. 2011년 4월 28일에 확인. “889. 진리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사도들이 전해 준 순수한 신앙으로 교회를 보존하기 위해 교회를 당신의 무류성에 참여시키고자 하셨다.”
  9. 가르치는 임무. 《가톨릭교회 교리서》. 바티칸. 2010년 7월 24일에 확인.
  10.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제3장 25항. 《인류의 빛(Lumen Gentium)》. 바티칸. 2010년 7월 24일에 확인. “주교들은…성령의 빛으로 밝혀 주며, 그 신앙이 열매를 맺게 하고, 자기 양 떼를 위협하는 오류를 경계하여 막는다”
  11. Pope, Hugh. "The Rule of Faith." The Catholic Encyclopedia. Vol. 5. New York: Robert Appleton Company, 1909. 6 Jul 2014.
  12. 가톨릭교회 교리서, 835; cf.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 《인류의 빛》(Lumen gentium), 23: “하느님의 섭리로, 사도들과 그 후계자들이 여러 곳에 세웠던 여러 교회가 세월의 흐름에 따라 유기적으로 결합된 여러 집단을 이루고, 하느님께서 세우신 보편 교회의 단일성과 신앙의 일치를 보존하면서도, 고유한 규율과 고유한 전례 관습과 신학적 영성적 세습 자산을 지니게 되었다.”
  13. Colin Gunton. "Christianity among the Religions in the Encyclopedia of Religion", Religious Studies, Vol. 24, number 1, page 14. In a review of an article from the Encyclopedia of Religion, Gunton writes: "[T]he article [on Catholicism in the encyclopedia] rightly suggests caution, suggesting at the outset that Roman Catholicism is marked by several different doctrinal and theological emphases."
  14. Agnew, John (2010년 2월 12일). Deus Vult: The Geopolitics of Catholic Church. 《Geopolitics》 15 (1): 39–61. doi:10.1080/14650040903420388.
  15. MacCulloch, Christianity, p. 127.
  16. Definition at http://www.Dictionary.com. Dictionary.reference.com. 2011년 6월 30일에 확인.
  17. Catholic”.. (1908년 11월 1일). Newadvent.org. 2012년 8월 17일에 읽어봄.
  18. Cyril of Jerusalem, Lecture XVIII, 26. Tertullian.org (2004년 8월 6일). 2012년 8월 17일에 확인.
  19. 바티칸.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2009년 5월 4일 확인. 참조: 교황의 라틴어 서명을 볼 수 있다.
  20. The Catechism of St Pius X, The Ninth Article of the Creed, Question 20. Cin.org. 2010년 10월 28일에 확인.
  21. Jaroslav Pelikan, Christian Tradition: A History of the Development of Doctrine, Volume 4: Reformation of Church and Dogma (1300–1700)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85 ISBN 978-0-226-65377-8), p. 114
  22. Robert Feduccia (editor), Primary Source Readings in Catholic Church History (Saint Mary's Press 2005 ISBN 978-0-88489-868-9), p. 85. Accessed at Google Books
  23. Vatican City State – State and Government. Vaticanstate.va. 2010년 8월 11일에 확인.
  24. British Foreign and Commonwealth Office. "Country Profile: Vatican City State/Holy See". Travel and Living Abroad, 2012년 2월 27일. 2012년 6월 26일 확인.
  25. McDonough (1995), p. 227
  26. Duffy (1997), p. 416
  27. Duffy (1997), pp. 417–8
  28. 1983년 교회법 331항.
  29. 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 "교회법", 《한국 가톨릭 대사전》, 제1권, 713쪽.
  30. Orientalium Ecclesiarum. 《Vatican Council II》. 30 April 2011에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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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 Annuario Pontifico per l'anno 2010 (Città di Vaticano: Libreria Editrice Vaticana, 2010)
  40. Barry, p. 52
  41. 교회법 573–746. Vatican.va. 2008년 3월 9일에 확인.
  42. Hacket, Conrad and Grim, Brian J. "Global Christianity A Report on the Size and Distribution of the World’s Christian Population", The Pew Forum on Religion and Public Life, Washington, D.C. December 2011. Accessed June 2014. Note: The Pew methodology produced an estimated world Catholic population of 1.1 Billion in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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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6.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성찬(성체)의 성사를 이룰 수 있는 집전자는 유효하게 수품된 사제뿐이다. - 1983년 교회법 900조.
  47. 《신자 재교육을 위한 5분 교리》, 354 page, 이중섭 신부, 가톨릭신문사
  48. Kreeft, p. 331
  49. Emissary (2007). Karitas Publishing: 《A Faraway Ancient Country.》. United States: Gardners Books, 216쪽. ISBN 978-0-615-15801-3
  50. 2007년 7월 7일 1970년 전례 개혁 이전의 로마 전례 사용에 관한 자의 교서 「교황들」(Summorum Pontificum) 발표에 즈음하여 주교들에게 보내는 교황 베네딕토 16세 성하의 서한
  51. 베네딕토 16세 교황 성하의 교황령 「성공회 신자 단체」(Anglicanorum Coetibus). 2009년 11월 4일. 2011년 7월 31일 확인.
  52.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네로 황제의 박해는 엄격히 말해서 종교적 박해는 아니다. 로마 대참사로 인해서 발생한 박해이다. 네로 이후 황제들에 의해서 자행된 박해는 종교적 박해였다."<하승무 교수, 고대교회사 강의, 한국장로회신학교, 2012.>, "네로는 유대인을 혐오하지 않았으며 그의 둘째 아내 포파이아 사비나는 대화재가 발생하기 1년 전에 요세푸스에게 특별한 호의를 보이고 선물을 하사했다."<필립샤프, 교회사전집 1권, 크리스찬다이제스트,2004.>
  53. 하승무 교수, 고대교회사 강의, 한국장로회신학교,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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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 아우구스부르크 화의
  61. 박영호 기자 (2003년 1월 12일). 세계교회사 100대 사건 - 역사의 현장을 찾아서 (71) 반종교 개혁. 가톨릭신문. 2012년 4월 29일에 확인.
  62. 이덕일, 《여인열전》, 김영사.
  63. 《현대신학이야기》/박만 지음/살림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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