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코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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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즘

Flag of the NSDAP (1920–1945).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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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코스트(Holocaust) 혹은 유대인 대학살제2차 세계 대전 동안 나치 독일유대인을 전멸시키려는 목적으로 자행하였던 제노사이드이다. 히브리어로는 쇼아(ha-Shoah, השואה)라고 하는데, 구약성서레위기에 나오는 제사를 가리키는 단어이기도 하다.

학살대상[편집]

나치 독일은 유대인 외에도 공산주의자, 동성애자, 집시, 간질성 장애인, 정신지체 장애인을 포함한 장애인, 소련의 전쟁포로, 여호와의 증인프리메이슨 등 여러 ‘원치 않는 부류’를 유대인과 함께 학살하였다.[1] 이들은 대부분 집단수용소에 옮겨져 조직적으로 학살되었으며, 장애인의 경우는 의사에 의해 안락사시키는 방법으로 5만명이나 학살했다.

학살규모[편집]

홀로코스트로 인해 사망한 유대인의 수는 대략 6백만 명[2][3] 정도이며, 나치의 탄압에 의해 죽은 비유대인을 포함시킬 경우 총 사망자 수는 9백만에서 천만까지 올라간다.[4] 하지만 종전 후 희생자 수에 대한 과장 부분에 대한 의문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으며 148만명에서 최소 86만명까지로 주장하는 프랑스의 라니에리 같은 외국 학자들도 있다[출처 필요]. 아우슈비츠의 추모 기념 석판에는 학살자수가 400만명으로 기재하다가 1990년 이후 150만으로 수정한 석판으로 교체하였다.[출처 필요]

히틀러와 NSDAP가 왜 이렇게 많은 유대인을 학살했는지에 대해서는 단지 히틀러가 내세운 "반유태주의" 때문이라고만 알려져 있다. 히틀러가 반유태주의자가 된 이유에는 다양한 요인들이 제기되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심리학을 통한 설명도 있고, 어머니가 어느 유대인의 정부였다는 설도 있다.[5][6]

그러나 홀로코스트는 히틀러의 반유대주의만으로 설명되기 힘든 사회적 요인들을 수없이 안고 있다. 나치 독일 이전부터 유럽 전역에 만연해있던 반유대주의가 나치의 집권과 함께 극우아리안민족주의와 맞아떨어지면서 홀로코스트의 첫 추동력을 형성하였으며, 이것이 나치의 폴란드 침공으로 발발된 제2차세계대전의 진행과 함께 그 형태를 달리하며 심화된 결과 홀로코스트라는 대학살극, 일명 '최종해결책'으로 귀결된 것이다.[출처 필요] 나치는 집권 후 상당수의 유대인 관련 법을 제정하였는데 이는 유럽 역사에 있었던 수많은 유대인 억압 규범들과 많은 부분 유사성을 보이고 있는데, 이를 통해 나치의 반유대주의 정책이 나치의 순수한 창작물이 아닌 기존에 있던 반유대주의의 심화임을 짐작할 수 있다. 나치는 유대인이란 누구인가를 법적으로 규정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그러한 규정에 따른 사회적 불이익을 가하였고, 이것이 심화되어 격리수용, '게토'로 대표되는 정책으로 발전한다. 그 후 나치는 유대인으로 분류되어 사회로부터 격리된 이들의 강제이주를 고려하기 시작하는데 전쟁으로 인해 해외강제이주정책에 어려움을 겪게 되자 '최종해결책'이라는 이제껏 인류사에 유래없는 학살정책을 추진하게 된다.

같이 보기[편집]

  • 이란 홀로코스트 국제회의
  • (영어) Dean, Martin: Robbing the Jews - The Confiscation of Jewish Property in the Holocaust, 1935 - 1945,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8.

참고자료[편집]

  1. Berenbaum, Michael. The World Must Know, The United States Holocaust Memorial Museum, pp.125ff.
  2. 유대인 희생자의 수에 관해서는 상당한 논란이 있다. 1993년 로퍼 사가 미국 유대인위원회(American Jewish Commitee)의 발주를 받아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22%가 유대인 대학살의 사실성에 의혹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경쟁사인 갤럽 사는 설문 구성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여론 조사를 새로 시행하여 로퍼 사의 결론이 과장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Peter Novick, "홀로코스트 이후, 집단 학살과의 대면" 최호근, "나치 대학살"에서 재인용
  3. 홀로코스트 희생자가 600만명에 이른다는 주장은 뉘른베르크 국제 군사법정에서 빌헬름 회틀 박사가 아돌프 아이히만이 1944년 8월 말, 유대인 희생자 총 수를 600만으로 추정했다고 증언한데서 비롯되었다. 최호근, "나치대학살" p.31
  4. Donald Niewyk suggests that the broadest definition would produce a death toll of 17 million. A figure of 26 million is given in Service d'Information des Crimes de Guerre: Crimes contre la Personne Humain, Camps de Concentration. Paris, 1946, p. 197.
  5. 히틀러의 아버지나 조부가 유대인일 가능성에 관한 이야기는 상당히 있으며 히틀러도 집권중에 이에 대해서 신경이 쓰인 듯, 고문 변호사인 한스 프랑크에게 이에 관한 조사를 부탁한 적이 있다. 조사 결과는 불분명하지만 전후 프레라드 비크 교수의 연구로도 이 지역에는 1956년 이전에 유대인이 거주한 기록이 없다고 하고 있으며 조부가 유대인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 Robert G. Waite, "Hitler : The Psychopathic God(New York, 1978), p.448 송충기, "히틀러와 홀로코스트"에서 재인용.
  6. 히틀러의 아버지 알로이스 쉬클그루버는 마리아 안나 쉬클그루버의 사생아로 그녀가 프랑켄베르거 또는 프랑켄라이터라는 부유한 유대인 가정에서 하인으로 일하던 중에 낳은 것으로 되어 있으나 주민기록으로는 프랑켄베르거 가는 바이에른에 거주하는 가톨릭 교도이고 당시에는 그다지 부유한 가정은 아니었던 것으로 나타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