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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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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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의 밤(독일어: Kristallnacht, 1938년 11월 9일 ~ 11월 10일)은 17세 독일계 유대인 청년 헤르셸 그린슈판(Herschel Grynszpan)이 파리 주재 독일 대사관의 3등 서기관이었던 에른스트 폼 라트를 암살한 사건을 대상으로 한 보복으로서 일어난 사건이다. 한국어로는 ‘깨진 수정의 밤’ 혹은 ‘깨진 유리의 밤’으로도 불리는데 이 명칭은 사건 당시 수많은 유리창이 깨졌다고 해서 붙여졌다.

경과[편집]

수정의 밤 다음 날 촬영했으리라 추측되는 영상.

일설에 의하면 그린슈판은 독일의 유대인 박해를 복수하겠다는 일념으로 파리 주재 독일 대사였던 요하네스 폰 벨체크(Johannes von Welczeck, 1878년 9월 2일 - 1972년 10월 11일)를 암살하려고 계획했으나 마침 3등 서기관 라트가 용무 차 대사관저를 방문했다가 대신 저격당했던 것이다. 라트로서는 참으로 불행한 일이었다. 라트는 나치를 반대하는 행동으로 말미암아 게슈타포에게 감시당하고 있었다. (1938년 11월 7일) 또 특정한 사람을 죽이려고 한 것이 아니라 대사관에서 독일인 아무나 죽일 생각이었다고도 한다. 그린슈판이 라트를 사사로운 원한으로 말미암아 죽였다는 설은 더 논란이 되나 그런 건 상관없었다. 11월 9일 저녁부터 다음날까지 요제프 괴벨스가 라트가 암살된 사건에 항의하는 독일 국민의 "자연발생스러운 항위 시위"였다고 선전 매체를 동원해 보도한 이 사건의 결과로 점포 815개소, 주택 171동, 유대인 예배당 시나고그 193개소가 불에 타거나 파괴되었다. 유대인 2만 명이 체포되었고 하나 정확한 수치는 기록에 없다.

11월 10일 새벽 1시 20분에 제국보안본부의 수령 하이드리히는 전국의 경찰과 SS보안방첩부에 시위 운동 조직을 협의하라는 내용을 훈령했다. 이 훈령에는 유대인 상점과 집은 파괴할 것, 유대인 예배당은 주변에 불이 번질 염려가 없으면 소각할 것, 경찰은 시위를 저지하지 말 것, 가능한, 부유한 유대인을 우선 순위로 체포할 수 있는 만큼 체포하라는 명령이 들어 있었다.

유대인의 수난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라트가 유대인에게 살해된 죄값을 치르라는 의미에서 일단 피해한 유대인이 보험사에서 보험금을 수령하자 당시 경제부 장관이었던 괴링이 이 유대인들의 보험금과 재산을 라트의 암살을 대상으로 한 보상을 국가에 한다는 명분으로 모두 몰수해 간 것이다. 이 조치를 확립한 것은 11월 12일이었다.

이 사건은 나중에 뉘른베르크 재판에서도 추궁되었고 괴링도 사실을 인정한 바 있다.

참고문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