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시 프랑스
| 프랑스국 État Françai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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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제국의 괴뢰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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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어: "Travail, famille, patrie" 노동, 가족, 조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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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 원수들이여, 우리는 여기에 있다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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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 | 비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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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용어 | 프랑스어 | ||||
| 정부 형태 | 의회 필리프 페탱 (1940~19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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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수립 • 해체 |
1940년 7월 10일 1944년 8월 2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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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화 | 프랑 | ||||
비시 프랑스(Vichy France)는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나치 독일의 점령하에 있던 북부를 제외한 남부 프랑스를 1940년부터 1944년까지 통치한 정권이다. 프랑스에서는 비시 정권(Régime de Vichy)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정식 명칭은 프랑스국(État français)이다.
역사 [편집]
파리 남쪽에 있는 비시를 수도로 하였으며, 정부 수반은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프랑스의 영웅이었던 필리프 페탱 원수였다. 공식적으로는 전쟁에 대해 중립임을 내세웠지만 일본 제국의 괴뢰 국가인 만주국, 왕징웨이 정권(난징 국민 정부)과 성격이 비슷한 사실상 나치 독일의 괴뢰 국가였으며, 그나마 1942년 독일이 프랑스의 나머지 지역을 모두 점령하면서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 비시 프랑스는 합법적인 정권이라고 주장했지만 샤를 드 골이 이끄는 자유 프랑스와 윈스턴 처칠의 영국은 이 정권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미국은 합법적인 프랑스의 정부로는 비시 정부를 인정하는 분위기여서 이로 인해 연합국 내에서 갈등이 있었다.
비시 프랑스의 관할 구역은 프랑스 북부와 대서양 연안을 제외한 나머지 중남부 및 알제리와 모로코였다. 독일 점령 지구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의 행정, 경찰 기관은 비시 정권의 명령에 따랐으며 1940년 프랑스 전역 후에 남은 잔존 프랑스군(자유 프랑스군과 구분하여 비시 프랑스군으로 불린다)과 식민지군은 공식적으로 비시 정권의 명령을 따랐지만, 독일군 및 경찰의 간섭도 많았다.
1940년 비시 프랑스가 임명한 장 드쿠(Jean Decoux) 장군의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정부는 일본과 협력하여 일본군의 베트남 주둔을 허용하는 조약에 서명하여 [1] 일본군이 베트남에 주둔하게 되었다.
1942년 연합군이 횃불 작전을 전개할 당시 모로코 및 알제리 주둔 프랑스군(비시 프랑스군 및 식민지군)은 법적으로는 비시 정권의 명령을 받아 ‘침략자’(미군 및 영국군)들과 싸워야 했지만, 이 지역의 프랑스군들은 일부는 연합군에 합류하는가 하면 일부는 연합군과 치열한 총격전을 전개하는 등 혼란상을 보였던 것도 이런 사정에 기인한다.
주석 [편집]
- ↑ 메이슨 플로랜스, 버지니아 젤러스 [2003년 11월 17일]. 《론리플래닛:베트남》, 책임감수 최하나, 초판, 서울: 인그라픽스,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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