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먄마폐 연방 공화국
버마어: ပြည်ထောင်စု သမ္မတ မြန်မာနိုင်ငံတော်
Flag of Myanmar.svg State seal of Myanmar.svg
국기 국장
표어 없음
국가 세상이 끝날 때까지
Burma on the globe (Asia centered).svg
수도 네피도 북위 19° 45′ 00″ 동경 96° 06′ 00″ / 북위 19.7500° 동경 96.1000° / 19.7500; 96.1000
최대도시 양곤 북위 16° 48′ 00″ 동경 96° 09′ 00″ / 북위 16.8000° 동경 96.1500° / 16.8000; 96.1500
정치
공용어 버마어
정부 형태 연방제 공화국
대통령 테인 세인
부통령 사이 마욱 캄
냔 툰
역사
독립 영국으로부터 독립
 • 독립 1948년 1월 4일
지리
면적 676,578km² (40 위)
내수면 비율 3.06%
시간대 MMT (UTC+6:30)
DST UTC+6:30
인구
2009년 어림 50,020,000명
1983년 조사 33,234,000명 (24위)
인구 밀도 73.9명/km² (119위)
경제
GDP(PPP) 2012년 어림값
 • 전체 $909억 (75위)
 • 일인당 $1,393 (160위)
HDI 0.498 (149위, 2012년 조사)
통화 챠트 (MMK)
기타
ISO 3166-1 104, MM, MMR
도메인 .mm
국제 전화 +95

미얀마 연방 공화국(버마어: ပြည်ထောင်စု သမ္မတ မြန်မာနိုင်ငံတော 피다운주 산마다 먄마 나인응간도, 문화어: 먄마 련방 공화국), 줄여서 미얀마(버마어: မြန်မာပြည် 먄마폐), 버마 또는 면전(緬甸)은 동남아시아에 있는 국가이며 수도네피도이다. 68%의 버마족샨족, 꺼인족, 친족, 카친족, 몬족의 소수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공용어버마어이다.

국명[편집]

1989년 이전에는 버마(ဗမာ [bəmà], 영어: Burma)라고 불렸다. 미얀마의 군사 정권이 버마족 외에 다른 소수 민족도 아우른다는 차원에서 미얀마(မြန်မာ [mjəmà], 영어: Myanmar)로 국호를 변경하였다. 현재도 민주화 운동을 하는 활동가들은 군사 정권에서 붙인 국명인 미얀마와 현 국기를 거부하고, 버마라는 호칭과 옛 국기를 고집하고 있다. 미국·영국정부 등도 반체제 인사들의 예를 따라 버마라고 부르고 있다. 대한민국의 경우 1991년 외래어 심의 공동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미얀마라고 부르고 있다. 국제 연합은 '회원국이 원하는 대로 부를 수 있다'는 원칙에 따라 미얀마로 부르고 있다. 그러나 2007년 미얀마 반정부 시위의 여파로 대한민국의 언론사인 경향신문은 공개적으로 미얀마 표현을 영구히 쓰지 않을 것과 그 대체표현은 '버마'임을 선언하였고, 대한민국 내부의 여론으로 인하여 한/글 워드프로세서의 자동 맞춤법 전환에서 '버마' 입력시 자동으로 '미얀마'로 고쳐지는 명령 체계는 폐지되었다. 이에 발맞춰 대한민국의 일부 사회 단체도 '버마' 단독 표기를 시작하였다.[1]

역사[편집]

미얀마에서는 10세기 이전에 몇 개의 민족 문화가 번영했던 것을 볼 수 있지만, 버마족의 존재를 나타내는 증거는 현재로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유적에서 버마족의 존재가 확실시되는 것은 버간 왕조(11세기 ~ 13세기) 이후이다. 버마족은 10세기 이전까지는 아직 에야와디 강(이라와디 강) 유역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었다.

버마 왕조[편집]

미얀마 남부의 땅에는 예부터 몬족이 살아, 도시 국가를 형성했고 해상 교역을 행하기도 하였다. 북부에서는 7세기에 퓨족이 퓨국을 건국했지만, 몬족과 퓨족의 성채는 9세기에 남조에게 멸망했고 남조 지배하에 있던 티베트버마어계의 버마족이 무인지대가 된 이라와디 평원(미얀마)에 침입해 바간 왕조를 수립했다. 바간은 최초의 작은 성시로서, 아나우라타 왕(재위 1044년 ~ 1077년) 때에 왕도가 되었다. 버간 왕조는 13세기에 몽골의 침공을 받아 멸망해 미얀마 동북부에 사는 타이계의 샨족이 강성해졌지만 이윽고 버마인에 의한 따웅우 왕조가 건국되어 한때는 아유타야 왕조란쌍 왕조, 운남 변경의 타이족 소국을 지배했다. 17세기에 따웅우 왕조는 쇠망하고, 남부의 몬족이 강성해졌지만, 18세기 중엽 얼라웅퍼야 왕이 버마를 재통일했다. 이것이 꼰바웅 왕조이다.

식민지 시대[편집]

꼰바웅 왕조 시대에 버마는, 영국령 인도에 대한 무력 침략을 발단으로 하는 영국-미얀마 전쟁에서 지고, 1885년에 멸망했다. 1824년부터 1826년에 걸친 제1차 영국-미얀마 전쟁에서는, 버마가 인도를 지배하는 영국에 대해서 벵골 지방의 할양을 요구, 영국측이 거부하면서 무력에 호소했지만 패했다. 영국의 도발로 일어난 1852년의 제2차 영국-미얀마 전쟁에서 버마는 국토의 반을 잃었고 1858년부터 1861년에 걸쳐 새 수도 만달레이를 건설해 천도했지만, 1885년의 제3차 영국-미얀마 전쟁으로 왕조는 멸망했고, 1886년에, 영국령인 영국령 인도에 병합 되어 그 한 주가 된다. 티바우 민 왕(Thibaw Min)과 왕의 가족은 인도의 고아에 가까운 라트나기리로 보내져 그곳에서 사망했다. 1936년에는 자치권을 얻어 영국령 버마가 되었다. 1942년 아웅산과 일본군이 진출하면서 일본은 미얀마에서 영국을 내쫓고 버마 자유주라는 괴뢰정권을 세웠다. 그러나 이도 얼마 오래가지 못하고 1945년에 일본이 패망하면서 다시 영국의 소유가 되었다.

  • 1937년 : 버마가 인도로부터 분열되어 영국의 직할 식민지가 되다.
  • 1942년~1945년 : 일본군 점령기. 이때 많은 미얀마인이 일본군에 학살당하였다.
  • 1947년 2월 12일 : 팡롱 조약에 따라 자치 공화국으로 승격되다.

민주 공화국 (1949-1962)[편집]

1948년 1월 4일에 미얀마는 독립하여 버마 연방이 성립되었고 사오슈웨타익이 첫 대통령, 우누가 첫 국무 총리가 되었다. 예전의 다른 영국 식민지나 해외 영토와 달리 버마는 영국 연방의 일원이 되지 않았다. 대의원으로 이루어진 양원제 의회가 성립하였고 다당제하에서의 선거가 1951~1952, 1956, 1960년에 치러졌다. 그러나 민주 정치 시대는 1962년, 네윈 장군의 쿠데타로 종식되었다. 네윈은 거의 26년간 버마식 사회주의를 추구하며 버마를 통치하였다.

군사 정권[편집]

민정 이양[편집]

2010년 11월 7일 미얀마 군사 정권은 총선을 통해 민간에 정권을 이양했다. 군부의 지원을 받는 통합단결발전당(USDP)이 압승했다. 2010년 총선은 관제 야당들을 들러리로 내세운 사실상 관제선거였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2]

지리[편집]

미얀마의 지형도

미얀마의 총 면적은 678,500㎢로, 인도차이나 반도의 국가 중에서 가장 크고, 세계에서는 40번째로 크다. 북서쪽은 방글라데시치타공 구와 인도의 미조람 주, 마니푸르 주, 나갈랜드 주, 아루나찰프라데시 주, 북쪽은 중화인민공화국의 티베트 자치구, 북동쪽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윈난 성과 접하고 국경의 총 길이는 2,185km이다. 미얀마는 남쪽과 남서쪽으로 벵골 만안다만 해에 이르는 1,930km의 해안선을 가지고 있다.

인도차이나 반도의 서단에 위치하고 있고, 지형적으로는 서부의 아라칸 산맥, 북부의 고산지대, 중부의 저지, 동부의 샨 및 테나세림 산지가 펼쳐져 있다. 중부는 다시 건조지인 상(上)미얀마분지와 저습지인 하(下)미얀마로 나뉜다. [3]

기후[편집]

국토가 남북으로 길기 때문에 차이가 많다. 대부분의 지역이 열대 몬순 기후로서 동쪽의 타이와 비슷하나 만달레이 이북은 온대동계건조기후이다. 그리고 북쪽의 산악지대는 겨울에 서리도 내린다. 몬순의 영향으로 5월부터 우기이다. 강우량은 하미얀마에서 2,500㎜, 산간부에서는 5,000㎜에 달한다. 11월에서 4월에 이르는 동안 몬순이 북동쪽에서 불게 되면 비가 거의 오지 않는 건조기가 된다. [4]

정치[편집]

1962년 쿠데타 이후, 1987년까지 네윈사회주의 정부가 다스렸다. 8888 항쟁, 아웅산 사건과 맞물려 1988년 새로운 군부가 집권했다. 1988년부터 2011년까지 군사 정권이 통치했으며, 미얀마 최고통치자인 탄 슈웨국가평화발전평의회가 국정을 주도했다.

군사정권의 아웅 산 수 치 가택연금 조치로 인해, 미얀마 군정에 대한 국제적인 압력이 강화되고 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009년 5월, 미얀마 군정이 의연히 민주세력에의 억압을 계속하고 있어, 미얀마에 대한 제재를 2010년 5월까지 1년간 연장한다고 발표하였다. 군정 관계자와 국영기업의 미국내 자산 동결, 송금 금지 등의 조치가 계속되고 있다. 유럽연합의 외무장관 이사회도 2006년부터 도입되고 있는 미얀마 군사정권에의 제재조치의 연장을 2009년 4월에 결정했다. [5]

행정 구역[편집]

미얀마의 14개 구와 주

공식 수도네피도(2006년 초까지는 양곤)이며 행정 수도는 핀마나(2005년 11월 7일부터)이다.

행정구역은 7개 구역(yin)과 7개 주(pyine)로 되어 있다. 구역은 버마족이, 주는 소수 민족이 주로 거주한다.

구(Yin)[편집]

  1. 사가잉 구(Sagaing Division)
  2. 타닌타리 구(Taninthayi Division)
  3. 바고 구(Bago Division)
  4. 마궤이 구(Magway Division)
  5. 만달레이 구(Mandalay Division)
  6. 양곤 구(Yangon Division)
  7. 에야와디 구(Ayeyawady Division)

주(Pyine)[편집]

  1. 카친 주(Kachin State)
  2. 카야 주(Kayah State)
  3. 카인 주(Kayin State)
  4. 친 주(Chin State)
  5. 몬 주(Mon State)
  6. 라카인 주(Rakhine State)
  7. 샨 주(Shan State)

외교[편집]

네팔과 버마 양국 수상은 1960년 3월 9일 밤, 양국간의 외교관계수립을 발표하였다. [6]

대(對)한국 관계[편집]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는 우호적으로 수교했으나, 1983년 10월 9일 아웅산 묘역 폭탄테러사건으로 인해 20여 년간 유지되던 국교가 단절되었다. 그 뒤 2007년 4월 26일 국교 정상화로 재수교가 이루어졌다. 대한민국과는 1975년 5월 16일에 수교하였다.

대(對)중국 관계[편집]

중화인민공화국은 국제사회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미얀마와의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은 중국을 국빈방문 중인 미얀마 군사정부의 최고지도자인 탄 슈웨 국가평화발전위원회(SPDC) 의장과 2010년 9월 8일 오후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간 우호 협력 관계 강화에 합의했다. 중국 외교부 발표에 따르면 후 주석은 "2천200㎞에 이르는 국경을 맞댄 이웃국가로서 양국은 역사적으로 '친형제'와 같이 가깝게 지냈고 수교 60년간 상호 이해와 지지, 평화공존, 우의와 신뢰가 끊임없이 깊어져 왔다"면서 "국제사회의 정세가 어떻게 변하든 양국간 선린우호협력 관계의 강화와 발전이란 중국의 정책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탄 슈웨 의장도 "역사적으로 형제 국가인 양국간의 선린우호협력 관계의 강화와 발전을 강화하자는 것은 미얀마 정부의 정책이기도 하다"면서 "수교 60주년을 계기로 함께 노력해 관계를 강화하고 경제협력의 수준을 제고하자"고 말했다. [7]

대(對)캄보디아 관계[편집]

18세기 말에는 미얀마인의 아유타야 침공의 여파로 캄보디아는 국토가 황폐화되기도 하였다.[8]

대(對) 타이 관계[편집]

수코타이 왕국 시절에도 타이 북부에는 치앙마이를 중심으로 란나타이 왕국이 융성했으며 독립 왕국으로, 또는 버마와 아유타야와 번갈아 가며 동맹을 맺어가며 오랜 기간 동안 존속되다 결국에는 아유타야 왕국의 일부가 되었다. 1569년 미얀마와의 전쟁에서 아유타야가 함락되었고, 1584년 중흥의 시조 나레수안 대왕이 다시 미얀마군에 승리하여 타이의 독립을 되찾았다. 4백년 이상 계속된 아유타야 왕국은 1767년 버마의 침략으로 수도가 불타고 6개 부분으로 분열되는 운명을 맞았다. 이때 중국계 장군 딱신 대왕(鄭昭)이 곧바로 군대를 정비해 미얀마군을 무찌르고 타이의 독립을 회복하였다. 그는 타이 왕국을 재통일하여 톤부리에 새로 수도를 정하고 1769년 스스로 왕이 되었다. 차끄리 왕조의 라마 1세(재위 1782년 - 1809년)는 타이 세력을 크게 확장해 미얀마의 타보이까지 지배하였다.

경제[편집]

미얀마의 경제는 국제적인 고립과 미얀마식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실패, 장기적인 군사 독재 등의 정치적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 매우 침체되어 있다. 미얀마는 50년째 군부가 통치하고 있는 국가로 인권 탄압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 속에 미국 등 서방국가들로부터 경제 제재조치를 받고 있다. [7]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의 하나로, 수 십년간의 침체와 정책의 실수, 고립으로 고통받고 있다. 미얀마의 연평균 GDP 성장률은 2.9%로 메콩 강 유역의 국가들 중 가장 낮다. 미얀마는 또한 풍부한 천연 자원과 노동력을 가지고 있었다. 전 세계 티크의 75%를 생산했으며 문자 해독률도 높았다.

경제사[편집]

영국 통치하에서 미얀마는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였다. 이 당시 미얀마는 세계 최대의 쌀 수출국이었다. 미얀마의 경제는 2차대전과 전후의 내란으로 심한 타격을 입었는데 1959년에 이르러서야 겨우 전전(戰前)의 수준을 회복했다. 1948년에 의회 정부가 구성된 후에 수상 우 누는 미얀마를 복지 국가로 만들기 위해 중앙 정부가 주도하는 경제 계획을 채택하는 형편없는 시도를 하였다. 쌀 수출량은 2/3, 광물 수출량은 96%가 감소했다. 양적 완화를 통한 재원 조달 계획은 인플레이션을 초래하였다. 1962년의 쿠데타 후에는 버마식 사회주의로 불리는 경제 계획하에서 농업을 제외한 모든 산업이 국영화되었다. 이 재앙스런 정책으로 미얀마는 세계의 빈곤국 중 하나가 되었다. 1962년 계획 경제체제의 채택으로 경제가 침체되자 1977년부터 폐쇄적 경제체제를 완화하였으며 서구의 원조를 받아들였다. 1976년에는 석유를 자급하기 시작하였다. 1977∼1978년의 경제성장률은 6.4%로 네윈정권이 들어선 이래 가장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1986년 미얀마식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탈피하고 시장 경제체제로 전환하였다. 1988년 이후 전체주의 체제는 완화되었다. 민간 부문의 확장과 외국인 투자가 어느 정도 허용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미얀마는 북한과 함께 경제적 자유가 거의 없는 나라로 평가받고 있다. 모든 기본적인 시장 제도는 억압받고 있다. 시장 경제체제로의 전환 후 풍부한 천연자원과 값싼 노동력을 바탕으로 제5차 4개년개발계획을 시행, 연평균 GDP 성장률 8.2%로 목표치(5.6%)를 초과 달성하였다. 2001년까지 성장률 6% 목표로 신경 제1차 5개년계획을 추진하였다. [9]

무역과 통화[편집]

고무가 수출품목의 대종을 이루며 총수출고의 70%를 차지한다. 미얀마의 기본경제인 쌀농사는 저미가와 공출제도로 인해 생산의욕이 저하되어 쌀수출은 증가하지 않고 있다. 그 외에 수출품은 콩·면화 등의 농산물과 수산물 목재(티크재)·광물(보석) 등이며 해마다 상당량이 밀수된다. 석유는 1976년부터 자급하고 있으며 소량이지만 수출한다. [9] 공업 제품을 수입한다. 무역은 국유화되어 정부기관이 이를 장악한다. [10]주요 투자국은 중화인민공화국, 싱가포르, 대한민국, 타이, 인도 등이다.

미얀마의 통화는 미얀마 챠트이다. 미얀마는 쿠바와 유사한 이중환율제를 채택하고 있다. 인플레이션은 미얀마 경제의 심각한 문제이다. 2005년부터 2007년까지의 평균 물가상승률은 30.1%였다. 2007년 8월 15일, 군사 정권은 하룻밤 사이에 휘발유 가격을 67% 인상, 천연 가스도 네 배 인상하면서 물가가 500% 이상 급등함으로써 출퇴근을 하는 회사원들은 버스비도 내지 못해 불만을 겪었던 적이 있다.

산업[편집]

농업이 산업의 지주이며 하(下)미얀마 지방의 도작(稻作)이 국력의 기반이다. 주요 농산물은 쌀로 국가 전체 경지 면적의 약 60%를 차지하고 있다. 쌀은 무게 기준으로 총 곡물 생산량의 97%를 차지한다. 하미얀마의 논은 19세기 후반 이후에 개척되었으며, 미얀마 농민은 대부분이 인도인 지주의 소작인이었다. 전후 농업개혁이 실시되었고 1965년의 포고령으로 농민은 겨우 소작인의 신세를 면할 수가 있게 되었다.[11]

광업은 석유·주석·텅스텐 등의 자원이 풍부하나, 전쟁과 계속되는 내란 때문에 그 생산고는 아직 전전의 수준에도 미달하는 상태이다. 공업은 정미, 제재가 중요하며, 임업에서는 티크재가 유명하다. [12]

교통[편집]

친드윈 강을 오가는 배

교통은 하천수운이 가장 중요하며 이라와디 강(버마어: ဧရာဝတီျမစ)이 교통의 대동맥이 되고 있어, 하구에서 1,500㎞ 떨어진 바모까지 기선이 통행하고 있다. 시탕 강(버마어: စစ်တောင်းမြစ်), 살윈 강도 교통에 이용되고 있다. 철도교통은 뒤떨어져 있으나 양곤에서 프롬, 만달레이 등지에 철도가 개설되어 있다. 대외무역은 주로 양곤항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항공은 국영 미얀마항공 외에 국제항공의 편이 있다. [13]

인구[편집]

미얀마의 인구는 약 5600만 명이다. 1983년에 군부 통치하에서 수행된 인구 부분적인 인구 조사가 마지막이기 때문에 이 수치는 추정된 것이다. 1931년 이래로 미얀마에서는 신뢰할만한 전국적인 인구 조사가 행해진 적이 없다. 타이에는 60만 명 이상의 등록된 미얀마의 이주 노동자와 100만 명 이상의 불법 노동자가 있다. 미얀마의 이주 노동자는 타이 전체 이주 노동자의 80%를 차지한다. 미얀마의 인구 밀도는 km2당 75명으로 동남아시아의 국가들 중에서도 가장 낮은 축에 속한다. 난민촌이 말레이시아 및 인도, 타이, 방글라데시의 국경을 따라 존재한다. 보수적인 추정에 의하면 미얀마의 난민은 295,800명이 넘고 대부분이 로힝기야족, 카렌족 등이며 주로 미얀마-타이 국경을 따라 위치한다. 미얀마-타이 국경에는 9개의 영구 난민촌이 있는데 이들 대부분은 1980년대 중반에 성립되었다. 난민촌은 타이-버마 국경 협회(TBBC)의 보호 아래에 있다.

민족[편집]

소수민족인 카렌족

미얀마에는 중국티베트어족, 따이까다이어족, 오스트로아시아어족, 인도유럽어족의 4개의 주요 어족이 살고 있다. 중국티베트어족은 가장 폭넓게 사용된다. 이 어족에는 버마어, 카렌어, 카친어, 친어, 중국어가 포함된다. 주요 따이까다이어족로는 샨어, 몬어, 파라웅어가 있고 와족은 주요 오스트로아시아어족 사용자이다. 인도유럽어족 언어로는 팔리어와 영어가 있다.

유네스코의 통계국에 따르면 2000년에 미얀마의 공식적인 문자 해독률은 89.9%이다. 역사적으로 미얀마의 문자 해독률은 높았다.

미얀마의 민족은 다양하다. 미얀마에는 정부가 공식인정하고 있는 135개 민족이 존재하고 있다.

언어[편집]

버마어공용어이다. 소수민족들은 자신들의 언어를 사용하며, 약간의 영어도 사용된다.

문화[편집]

종교[편집]

전 국민의 대다수가 불교 신자인 미얀마에서 승려들은 국민들로부터 사회적 영향력이 상당히 강력하다.

관광[편집]

인레호수는 미얀마에서 가장 큰 호수 중의 하나로 우기철에 길이 22km, 너비 11km, 수심 6미터이며 해발고도 875m의 산에 둘러쌓여 있다. 인레지역은 고산지대이기 때문에 1년 내내 서늘한 날씨가 유지되어서, 관광지로 각광받는 지역이기도 하다. 호수와 그 주변에는 12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아간다. [14]이곳의 생활수단은 대부분이 토마토 재배, 물고기 잡이, 관광업 등으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15]

같이 보기[편집]

주석[편집]

  1. “버마라 부르자” 네티즌도 뜨거운 반응, 《경향신문》, 2007년 9월 30일
  2. 사이비 자유총선이 몰고 온 미얀마 유혈사태중앙일보 2010-11-10
  3.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미얀마의 자연
  4.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미얀마의 기후
  5. 기리야마 노보루(桐山 昇). 〈アジア・オセアニア〉, 《현대용어의 기초지식(現代用語の基礎知識)》 (일본어). 지유고쿠민샤(自有国民社), 528쪽. ISBN 978-4-426-10128-2
  6. "토막뉴스", 《동아일보》, 1960년 3월 11일 작성.
  7. "中, 국제사회 비판속 미얀마와 관계강화", 《매일경제신문사》, 2010년 9월 9일 작성.
  8. Cambodia e-Gov Homepage:Country's History (영어) (html). 2009년 2월 24일에 확인.
  9.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미얀마의 산업·무역
  10.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무역
  11.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농업
  12.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광공업
  13.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미얀마의 교통·도시
  14. 박하선 (나레이터). (2009-01-05). 미소의 나라 미얀마 1부 물 위의 삶, 인레 호수 [텔레비전 프로그램]. EBS. 2010-04-25에 확인. 3:15에 언급. "호수와 그 주변에는 12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아간다."
  15. "[필진] 인레호수 사람들", 《한겨레신문사》, 2006년 12월 29일 작성. 2010년 4월 26일 확인.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