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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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어: (없음) | |||||
| 국가: 미얀마여, 온 세계 끝까지 | |||||
| 수도 | 네피도(공식) 핀마나(행정) 19°45′N 96°12′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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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용어 | 버마어 | ||||
| 정부 형태 | 군사독재, 연방제 탄 슈웨 마웅 아예 테인 세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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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 • 독립 |
영국으로부터 독립 1948년 1월 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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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면적 • 전체 • 내수면 비율 |
676,578km² (40위) 3.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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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구 • 2005년 어림 • 1983년 조사 • 인구 밀도 |
50,519,000명 (24위) 33,234,000명 75명/km² (119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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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DP (PPP) • 전체 • 일인당 |
2005년 어림값 $937.7억 (59위) $1,691 (150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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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DI • 2006년 조사 |
0.585 (135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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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화 | 차트 (ISO 4217:MM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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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대 • 여름 시간 |
MMT (UTC+6:30) UTC+6: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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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O 3166-1 | 104 | ||||
| ISO 3166-1 alpha-2 | MM | ||||
| ISO 3166-1 alpha-3 | MMR | ||||
| 인터넷 도메인 | .mm | ||||
| 국제 전화 | +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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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연방(
Pyi-daung-zu Myan-ma Naing-ngan-daw피다웅주 먄마 나잉강도, 문화어: 먄마)은 동남아시아의 사회주의 국가이며 공식 수도는 네피도(행정 수도는 핀마나)이다. 68%의 버마족과 샨족, 꺼인족, 친족, 카친족, 몬족의 소수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공용어는 버마어이다. 1989년 이전에는 버마라고 불렀는데 미얀마의 집권 군부가 버마족 외에 다른 소수민족도 아우른다는 차원에서 미얀마로 국호를 변경하였다. 현재도 민주화운동을 하는 반체제인사들은 군사정권에서 붙인 국명인 미얀마와 현 국기를 거부하고, 버마라는 호칭과 옛 국기를 고집한다.(미국, 영국정부 등도 버마라고 부른다. 한국(남한)의 경우 1991년 외래어 심의 공동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미얀마라고 부른다. 유엔은 회원국이 원하는 대로 부를 수 있다는 원칙에 따라 미얀마로 부른다.)
목차 |
[편집] 역사
[편집] 바간 왕조 (1044-1287)
1044년, 아노라타 왕에 의해 바간 제국이 건설되었다.
[편집] 작은 왕국 (1287-1531)
[편집] 따웅우 왕조 (1531-1752)
[편집] 콘바웅 왕조 (1752-1885)
1752년, 알라웅페야 황제에 의해 알라웅페야 제국(콘바웅 왕조)이 건설되었다.
1824년 - 1826년 : 제1차 영국-미얀마 전쟁 : 영국에 패배함으로써 아라칸, 아삼, 마니푸르와 테나네심이 영국령이 되다.
- 1852년 - 1855년 : 제2차 영국-미얀마 전쟁 : 저지미얀마가 영국에 합병되다.
- 1885년 : 제3차 영국-미얀마 전쟁 : 고지 미얀마가 영국에 합병되다. 이 때 미얀마는 국가적인 위기를 겪게 되었다.
[편집] 식민지 시대 (1886-1948)
당시 독립 제국이었던 미얀마는 1886년 대영 제국에 의해 합병되어 인도의 식민지가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중 버마는 일본군에 점령되었다가 다시 해방되었다.
- 1937년 : 버마가 인도로부터 분열되어 영국의 직할 식민지가 되다.
- 1942년-1945년 : 일본군 점령기. 이 때 많은 미얀마인이 일본군에 학살당하였다.
- 1947년 2월 12일 : 팡롱 조약에 따라 자치 공화국으로 승격되다.
[편집] 민주 공화국 (1949-1962)
독립 후, 미얀마는 우 누(U Nu)의 신정권을 수립하였으나 크나큰 정치적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된다.
연방을 구성하고 있는 소수 종족들은 아웅산이 약속했던 자치주의 실현을 요구하고 무장 공산주의자들의 공산정권 수립을 주장하는 등 이념과 정파별로 정쟁이 계속되면서 버마연방공화국 건국을 혼란으로 몰고 간다.
대표적인 세력들은 아웅산 등이 결성하고 독립 후 집권여당이 된 반파시스트 인민자유연맹(AFPFL), 점진적 공산정권 수립을 주장하는 트로츠키류의 백기파 공산주의자들이 결성한 CPB(Communist Party of Burma), 즉각적인 공산정권 수립을 외치던 스탈린의 적기파 BCP(Burmese Communist Party)와 이와 같은 공산당에서 이탈하여 정식 미얀마 연방군에 흡수되지 못한 인민 의용군(PVO), 꺼인족을 대표하는 꺼인 민족 방위군(KNDO)과 샨,몬,꺼친족 등 소수민족의 세력들이 이합집산의 형태로 조직화하거나 세력화 하였다.
우 누 수상은 공산주의자들을 제도권내로 흡수하고 소수종족의 자치를 약속하는 등 폭동을 진정 시키려 하지만 연방 분열 불가를 주장하는 군부로부터 불신을 사게 되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아웅산과 초대 수상이 된 우 누 등 독립 민족주의자들은 자본주의를 제국주의와 동일시 하며 식민잔재를 철패하고 평등사회 구축을 위해서는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뜻은 같이 하였으나 아웅산은 종교를 배제한 대신 우 누 수상은 ‘불교교리가 바로 사회주의 이론의 핵심이다. 그러므로 미얀마인의 가치추구는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신앙에 기초한 정신세계이며 그것은 자본주의가 아니라 사회주의이며 불교 사회주의여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1954년 우 누 수상은 복지 국가론을 주창하며 그 실현을 위하여 산업 국유화의 전단계로 농지 국유화 등 정책을 펴지만 오히려 경제 위축만 가져오고 실패 하고 만다.
한편 선거 공약을 이행하지 않고 친여 성향의 상공인과 결탁하고 일관성 없는 정책으로 지도력을 상실하면서 여권이 분열하는 사태에 이르게 되고 이러한 혼란 상황에 공산당과 꺼인 반군의 제휴로 내전이 확대되면서 결국 1958년 10월 군사령관인 네윈의 위기관리내각에 권력을 넘기고 물러난다.
2년여 동안 위기관리 내각을 맡았던 네윈은 정정을 안정시키고 1960년 공명정대한 선거를 통하여 다시 집권한 우 누에게 정권을 이양하고 군으로 원대 복귀한다. 그러나 우 누는 불교 국가 복지론을 강조하는 정책을 펴 다시 새로운 내분으로 나라를 혼란하게 만들었다. 즉 우 누는 불교를 국가의 종교로 하는 불교국교화법 제정을 추진하면서 타 종교는 물론 소수종족별 심한 반발을 사면서 무장봉기를 확산하는 결과를 가져 오게 된다.
기독교, 무슬림, 토속 종교 등 전국적으로 종교적 저항에 부딪치면서 소수종족이 불교국교화법에 반대한다면 자치 연방제를 재고하지 않겠다고 선언함으로서 소수종족의 무력 봉기를 부채질 하였다.
양곤 카톨릭 대주교의 종교 자유 보장책과 타종교 박해 방지 대책 없는 법제화 추진은 국민단합에 심대한 문제가 될 것이라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1961년 8월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불교국교화가 비불교도 및 소수종족의 심한 반발을 사자 우 누는 제4차 헌법 개정안에 모든 종교의 자유화를 선언해 버리는데 이제는 불교 승려들의 반발을 초래 하였고 반 회교 폭동이 발생했다. 나아가1961년 3월1일 소수종족에 대한 자치권을 의회에서 논의하기에 이르렀는데 이것은 불교 국교화를 무색케 할 뿐만 아니라 국토의 분할을 용납 할 수 없다는 네윈을 비롯한 군부의 반발에 부딪치면서 마침내 다음날 3월2일 쿠테타로 이어지는 결과를 가져 왔다. 그 결과 버마 연방 공화국은 붕괴 되었다.
1983년, 아웅 산 사건이 일어났는데 이 사건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 북조선) 공작원들이 한국 대통령및 각료들을 암살하기 위한 목적으로 방문장소였던 아웅 산의 묘소에 설치한 폭탄이 터져 한국인각료와 미얀마인 다수가 살상된 사건으로, 사건 당시에 한국(남한)측은 미얀마가 같은 공산주의 국가라는 이유로 미얀마당국이 연관된 것으로 오해하였으나, 사건을 조사한 미얀마정부가 북한(북조선) 외교관을 추방하고 국교를 단절함으로서 오해는 해소되었다. 아웅 산은 미얀마 독립의 영웅으로 대단한 추앙을 받는 인물이었기에, 미얀마에서는 북한을 대대적으로 규탄하는 움직임도 일어나기도 하였다. 후일 네윈 장군은 한국(남한)에 답방하였다.
[편집] 이후 (1962-현재)
- 1988년 : 경제적, 정치적 상황에 대한 불만으로 터져나온 민중시위를 군부가 무력진압하다. 1988년 8월 8일 일어났기 떄문에 일명 "8888 시위"라고도 불린다. 그러나 이 운동의 결과로 자유 선거가 허가되었다.
- 1990년 : 자유 선거에서 아웅 산 수 치가 이끄는 야당세력이 압승하자 군부는 선거무효를 선언하고 아웅산 수 치를 무기한 가택연금하다.
- 1991년 : 아웅 산 수 치의 노벨 평화상 수상.
- 2005년 : 11월 7일 핀마나를 행정 수도로 하였다.
- 2006년 : 미얀마 정부의 공식 수도를 양곤(영어 표기로는 랑군)에서 네피도로 이전하였다.
- 2007년 : 2007년 미얀마 반정부 시위
지금까지도 미얀마는 일반인들의 전화소유를 금지할 정도로 군부가 철권 독재를 하고 있는 상태이다. 군사 정권의 물가 인상으로 국민들과 승려 모두가 군정에 항거하고 있다. 승려들은 1988년에 일어난 8888 시위를 주도한 바 있다.
[편집] 지리
미얀마는 인도차이나 반도의 왼쪽에 위치하고 있고, 북쪽은 고산지대가 펼쳐있다. 원래 수도는 양곤이나 2005,6년에 네피도와 핀마나로 옮겼다.
[편집] 행정 구역
- 이 부분의 본문은 미얀마의 행정 구역입니다.
공식 수도는 네피도(2006년 초까지는 양곤)이며 행정 수도는 핀마나(2005년 11월 7일부터)이다. 행정구역은 7개 구역과 7개 주로 되어 있다.
[편집] 기후
[편집] 정치
- 이 부분의 본문은 미얀마의 정치입니다.
1962년까지는 민주주의적인 정치를, 쿠데타이후, 1987년까지 네윈의 사회주의정부가 다스렸다.
반정부 운동과 아웅산 사건과 맞물려 군부가 집권했다. 이 때부터 지금까지 군사 독재를 하고 있다.
[편집] 주민
미얀마에는 정부가 공식인정하고 있는 135개 민족이 존재하고 있다.
[편집] 언어
버마어가 공용어이다. 소수민족들은 자신들의 언어를 사용하며, 약간의 영어도 사용된다.
[편집] 종교
전 국민의 대다수가 불교 신자인 미얀마에서 승려들은 국민들로부터 존경받는다. 그리고 승려들은 사회적 영향력이 상당히 강력하다.
[편집] 교육
[편집] 경제
미얀마의 경제는 국제적인 고립과 미얀마식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실패, 장기적인 군사 독재 등의 정치적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 매우 침체되어 있다. 주요 투자국은 중화인민공화국, 싱가포르, 대한민국, 타이, 인도 등이다.
2007년 8월 15일, 군사 정권은 하룻밤 사이에 휘발유 가격을 67% 인상, 천연 가스도 네 배 인상하면서 물가가 500% 이상 급등함으로써 출퇴근을 하는 회사원들은 버스비도 내지 못해 불만을 겪었던 적이 있다.
[편집] 문화
[편집] 대한 관계
1983년까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 북조선)과 수교했지만 아웅산 사건으로 인해 20여년 간 외교 관계가 단절되었으며(2007년 4월 26일 외교 관계 회복), 대한민국(남한, 한국)과는 1975년 5월 16일에 외교 관계를 수립하였다.
[편집] 같이 보기
[편집] 바깥 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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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일부 영토가 유럽에도 속함. 2.지리적으로는 아시아에 속하지만 역사적, 문화적 이유로 종종 유럽으로 분류. 3.중동 지역 이슬람 국가들의 조약 또는 합의에 의해 인정되고 있는 지역. 4.중화인민공화국의 특별행정구역 5. 나라 목록 245개 국가에 포함되지 않는 나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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