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기스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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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르그즈 공화국
키르기스어: Кыргыз Республикасы
러시아어: Киргизская Республика
Flag of Kyrgyzstan.svg National emblem of Kyrgyzstan.svg
국기 국장
국가 키르기스스탄 공화국 국가
Kyrgyzstan on the globe (Eurasia centered).svg
수도 비슈케크 북위 42° 52′ 29″ 동경 74° 36′ 44″ / 북위 42.874722° 동경 74.612222° / 42.874722; 74.612222
정치
공용어 키르기스어, 러시아어
정부 형태 공화정
대통령 알마즈베크 아탐바예프
총리 잔퇴뢰 사트발디예프
역사
독립 소련으로부터 독립
 • 독립 선언 1991년 8월 31일
 • 승인 1991년 12월
지리
면적 19만 8500 (85 위)
내수면 비율 3.6%
시간대 KGT (UTC+5~+6)
DST (없음)
인구
2005년 어림 5,264,000명
1999년 조사 4,896,100명 (111위)
인구 밀도 25명/km²
경제
GDP(PPP) 2005년 어림값
 • 전체 $9억 3240만 (134위)
 • 일인당 $2,088
HDI 0.622 (125위, 2012년 조사)
통화 (KGS)
기타
ISO 3166-1 417, KG, KGZ
도메인 .kg
국제 전화 +996

키르기스스탄(키르기스어: Кыргызстан 크르그즈스탄 [qɯrʁɯsˈstɑn], 러시아어: Киргизия 키르기지야[*], 문화어: 끼르기즈스딴, 끼르기지야)은 중앙아시아 내륙의 공화국으로 소련의 구성 공화국이었다가 1991년에 독립했다.

중화인민공화국,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카자흐스탄과 마주하고 있다. 2005년까지는 혁명내전으로 정국불안이 이어졌다. 키르기스스탄은 국토가 대부분 산이여서 중앙아시아의 스위스라고 부르기도 한다. 13세기경 몽골에 정복됐으며 17∼18세기 청제국에 편입됐다. 19세기에는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다. 1936년 지금의 공화국이 되었으며 1991년 8월 독립을 선언하고 12월 CIS에 가입했다. 톈산 산계(山系)와 파미르 아라이 산계가 달리고 있는 중앙아시아의 산국으로서 기후는 매우 건조하다. 주민은 키르기스인이 48%, 러시아인이 26%, 우즈베크인이 12% 등이다. 종교는 이슬람이며 의무교육은 9년이다. 산지의 목초지가 넓기 때문에 양의 이목(移牧)을 행하고 있다. 귀리, 밀, 사탕무, 담배, 과수재배 등의 농업과, 석탄, 석유, 천연가스, 수은, 안티몬, 망간, 제분업, 제당업 등의 공업이 있다. [1]

2010년 4월부터 12월까지는 쿠테타로 집권한 과도정부와 전 대통령 쿠르만베크 바키예프의 지지자들 사이의 갈등, 키르기스스탄 전역의 수십 개 민족사이의 갈등과 분쟁때문에 키르기스스탄 전역에서 소요 사태가 잇달아, 키르기스스탄은 사실상 내전에 가까운 상황이었다. 키르기스스탄 정부는 소요사태때문에 자국민과 외국인의 피해가 늘면서 6월 22일까지 남부지역에 긴급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그러나 수도인 비슈케크에서도 대규모 폭력사태와 시위, 소요가 끊임없이 일어났다.[2] 러시아는 키르기스스탄 내 자국 군사시설 보호, 자국민 보호명목으로 특수부대를 긴급파견했다.[3]

역사[편집]

1세기 무렵 흉노의 지배 하에 들어갔다가, 다시 6세기에 돌궐의 지배를 받게 된다. 7세기에는 당나라의 지배를 받았으며, 8세기에는 다시 위구르의 침략을 받아 지배를 받게 된다. 9세기에는 위구르 제국을 멸망시키고, 키르기스스탄 제국을 건설했다.

그러나 13세기에는 몽골 제국의 지배 하에 다시 들어가고, 16세기에 이르러 현재의 지역으로 이주하게 된다. 1863년 북쪽 지역이 러시아 제국에 병합이 되며, 1922년 소비에트 연방이 성립되게 된다. 1926년 키르기스 자치공화국으로 개칭을 하고, 1991년 8월 31일 소련의 쿠데타에 의해 독립을 하게 된다. 1993년 새 헌법을 제정하고, 지금의 명칭을 사용하게 된다.

키르기스스탄은 2005년튤립 혁명으로 아카예프 대통령이 쫓겨났는데, 혁명 주역 가운데 고려인도 들어 있어서 눈길을 끌고 있다.[4]

2005년 7월 10일 쿠르만베크 바키예프가 대통령 선거에서 압승을 하여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2008년 10월 6일에 키르기스스탄 남쪽에서 지진이 발생, 사망자가 65명으로 늘었다. [5]

2010년 4월 7일 경기 침체와 정부의 언론 통제로 수도 비슈케크를 중심으로 야당 측에 의한 반정부 운동이 격화되어 야당 세력이 대통령궁을 점거하였다. 다음 날 4월 8일 전 외상 로자 오툰바예바가 임시 정부 수립을 발표하였다.

2010년 6월 11일 남부 오슈에서 청소년 단체 간의 대립을 계기로 키르기스인과 우즈벡인 사이에 민족 항쟁이 격화되고 약탈과 방화, 살인이 잇따르면서 사태 수습이 불가능한 상태에 빠졌다. 유엔은 10만명이 우즈베키스탄으로 대피하고, 난민 30만명이 발생하였다고 발표했다.[6]

폭동 이후, 대한민국 외교통상부는 오쉬주, 잘랄아바드주, 바트켄주를 3단계 여행제한지역으로 그외 지역은 2단계 여행자제지역으로 여행경보를 조정했다. 2012년 9월 3일에 키르기스스탄의 세 정당은 새 연정을 구성하기로 합의했다.[7]

지리[편집]

국토 전체의 40%가 해발 3000m를 넘는 산간 지방이다. 국토는 동서로 길고, 중화인민공화국과의 국경에는 톈산 산맥이 펼쳐져 있다. 남쪽에 위치하는 타지키스탄으로는 파미르 고원이 펼쳐져 있다.

국토의 중앙과 동서로 산맥이 펼쳐져, 국토는 수많은 협곡으로 갈린다. 최고봉은 중화인민공화국 국경에 우뚝 솟은 포베티산(Pobeda 또는 Jengish 혹은 승리봉, 7439m), 그 다음으로 칸·텡리(Khan-Tengri 또는 Kan-Too, 6995m)이다. 4000m급의 봉우리가 적지 않다.

주요 하천은 시르다리아강 지류의 나른 강이고, 주요 호수는 국내 북동부에 위치하는 이스쿨 호수(Issyk-Kul)이다. 동서로 180km, 남북으로 60km, 둘레가 700 km에 이른다. 호수 표면의 해발은 1600m이다. 이스쿨 호수와 나른 강은 서로 다른 수계를 가지고 있다.

기후[편집]

주변의 카자흐스탄이나 중화인민공화국과는 달리 국내에 사막은 존재하지 않고, 이 지역은 천혜의 기후를 가지고 있다. 동서로 뻗어있는 계곡 부분은 사람이 거주하기 적절하며, 쾨펜의 기후 구분으로는 하계에 비가 적은 온대의 지중해성 기후 (Cs)에 해당한다. 이것은 이탈리아로마나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와 같은 기후 지역이다. 산지는 아한대 습윤기후 (Df)이고, 특히 고지대는 고산기후(H)가 된다. 톈산 산맥을 끼고 남쪽의 중화인민공화국과 아라 산맥을 끼고 북쪽으로 카자흐스탄에는 스텝기후(BS)와 사막기후 (BW)가 펼쳐진다.

실제 강수량을 비교하면, 톈산 산맥의 100km 남쪽에 위치하는 중화인민공화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 카슈가르의 연강수량은 60mm이지만, 비슈케크(북위 43도, 해발 800m)의 강수량은 450mm에 이른다. 이것은 로마나 샌프란시스코와 비슷한 수준이다. 비슈케크의 평균 기온은 1월에 -3도, 7월에 25도이다.

비슈케크와 제2의 도시 오시, 중앙부의 나린에는 구 소련 시대에 대규모 관개 시설이 부설되어 있기 때문에, 면화를 중심으로 한 경작에 적합하다. 이러한 관개지는 시르다리야 강, 나린 강의 지류에서 물을 얻고 있다.

정치[편집]

의회는 120석의 일원제이다. 2005년에 신헌법이 발포되기 이전, 1994년 10월부터 2005년 1월까지는 양원제로서, 상원에 해당하는 입법의회(정원 60석)과 하원에 해당하는 국민대표의회(45석)로 나뉘어 있었다. 2010년에 대통령제에서 의원내각제로 개헌하는데에 성공하여 지금은 중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의원내각제 체제의 국가이다. 현재는 중앙아시아의 유일하게 독재가 아닌 민주주의 국가이다.

사람과 언어[편집]

전통적인 길가 무덤

키르기스족들이 69.5%정도 차지하고, 유르트와 야크를 방목한다. 기타 소수민족은 러시아인 (9.0%), 남부의 우즈벡족 (14.5%)이다. 소수그룹을 차지하는 위구르족 (1.1%), 타지크족 (1.1%), 카자흐족 (0.7%), 둥간족 (1.2%)과 터키인 (0.9%), 고려인 (0.3%), 우크라이나인 (0.5%)이다.

키르기스어러시아어가 공용어이며, 키르기스어는 1991년 9월부터 공용어로 지정되었다. 이것은 신생국인 키르기스스탄에 거주하는 러시아인들이 대부분 떠나게 되는 원인 중 하나였다. 러시아어는 2000년에 다시 공용어로 지정되었다. 키르기스어는 투르크어족에 속한 언어로 20세기까진 아랍 문자로 표기되었다. 1928년에서 1941년까진 로마자로 표기되다가, 1942년부턴 키릴 문자로 표기되었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러시아어를 이해할 줄 안다. 특히 비슈케크 주민들은 러시아어가 모국어이고, 사업과 정무에서 많이 사용된다. 소수 민족들은 자신들의 언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종교[편집]

75%가 이슬람교에 속하고, 25%는 러시아 정교회이며[8]다른 종교들도 존재한다.

문화[편집]

키르기스인은 유목민의 전통을 의식하는 민족으로서, 부족주의적 성격이 강하며 지역적으로 남부북부문화적 차이가 크다. 옛 실크로드를 따라서 취락이 발달하였으나, 코칸드 한국이 1825년에 토성의 요새를 건설하고 피슈페크(Pish Pek)라는 취락이 형성되었다. 1940년 후 러시아가 이 요새지를 파괴하고 자국의 수비대를 주둔시켰다. 토성 요새지의 흔적은 제2차 세계대전 후까지 일부 남아 있었으나 오늘날 신흥 아파트 지역으로 바뀌었다. 도시경관 중에서 중앙아시아적 경관은 없고 러시아의 도시풍이 압도하여 오래된 고목, 뒷골목의 주택우크라이나 양식이다.

행정 구역[편집]

키르기스스탄은 현재 7개의 주(주; 단수область 복수областтар)로 구분되어 있다. 수도는 비슈케크이다. 도시(Шаар)도 구분되어 있다.

Provinces of Kyrgyzstan

현재 키르기스스탄의 주와 주도는 다음과 같다.

  1. 비슈케크
  2. 밧켄 주 (밧켄)
  3. 추이 주 (비슈케크)
  4. 잘랄아바트 주 (잘랄아바트)
  5. 나린 주 (나린)
  6. 오시 주 (키르기스스탄)
  7. 탈라스 주 (탈라스)
  8. 이식쿨 주 (카라콜)
  9. 오시

외교[편집]

러시아 및 중앙아시아 여러국가(구 소련 분리독립국가)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대한관계

대한민국과는 구 소련 해체와 한-소 수교 이후인 1992년에 수교하였으며, 1993년 대전 세계박람회CIS공동관 국가로 참여한 적이 있다.

휴일[편집]

휴일 한국어 키르기스어 비고
1월 1일 새해 Жаңы жыл ~
1월 7일 러시아 정교회의 성탄절 Рождество Христово ~
2월 23일 조국 수호자의 날 День защитника Отечества ~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 Сегизинчи март айымдар майрамы ~
3월 21일 ~ 3월 23일 누루즈 Нооруз майрамы ~
3월 24일 혁명의 날 Элдик революция күнү ~
5월 1일 키르기스스탄 국민 단결의 날 (노동절) День международной солидарности трудящихся (Первое Мая) ~
5월 5일 헌법 제정일 Конституция күнү ~
5월 9일 제2차 세계 대전 승전 기념일 Жеңиш күнү ~
8월 31일 독립 기념일 Эгемендүүлүк күнү ~
11월 7일 10월 혁명 기념일 Улуу Октябрь Социалисттик революциясынын күнү ~

출처[편집]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