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지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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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지리아 연방 공화국
Federal Republic of Nigeria
Flag of Nigeria.svg
국기
표어 Unity and Faith, Peace and Progress
(통일과 신념, 평화와 진보)
국가 동포들이여, 일어나라
Nigeria on the globe (Africa centered).svg
수도 아부자 북위 9° 04′ 00″ 동경 7° 29′ 00″ / 북위 9.066667° 동경 7.483333° / 9.066667; 7.483333
최대도시 라고스 북위 6° 27′ 11″ 동경 3° 23′ 45″ / 북위 6.453056° 동경 3.395833° / 6.453056; 3.395833
정치
공용어 영어
정부 형태 연방 공화제
대통령 굿럭 조너선
역사
독립 영국으로부터 독립
1960년 10월 1일
지리
면적 923,768km² (31 위)
내수면 비율 1.4%
시간대 (UTC+1)
DST (UTC+2)
인구
2005년 어림 133,530,000명
2006년 조사 144,003,542명 (9위)
인구 밀도 145명/km² (71위)
경제
GDP(PPP) 2005년 어림값
 • 전체 $1,755억 (47위)
 • 일인당 $1,188 (165위)
HDI 0.471 (153위, 2012년 조사)
통화 나이라 (NGN)
기타
ISO 3166-1 566, NG, NGA
도메인 .ng
국제 전화 +234

나이지리아(영어: Nigeria, 문화어: 나이제리아) 또는 나이지리아 연방 공화국(Federal Republic of Nigeria)은 서아프리카에 있는 나라로서, 144,003,542명의 인구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는 아프리카에서는 1위이다. 주요 도시로는 수도인 아부자, 최대도시 라고스, 그리고 이바단, 오쇼그보, 카두나 등이 있다.

역사[편집]

15세기에 포르투갈인이 침입하여 노예무역의 근거지로 삼은 연유로 해서 ‘노예해안’이라고 불린다. 19세기에 침투하기 시작한 영국 세력이 20세기초에 여러 부족을 진압, 지금의 나이지리아를 총독 통치하에 넣었고 남부 나이지리아 보호령, 북부 나이지리아 보호령이 되었다.

그 이전에는 나이지리아에서 살던 흑인들이 대부분 노예로 미국의 대통령 가문이나 부잣집에 팔려 갔다. 1960년 10월 1일 토요일, 영국으로부터 영연방의 자치국으로 독립했으나, 북부의 하우사족풀라니족, 서부의 요루바족, 동부의 이보족 등 대부족들을 단일통치체제 속에 묶었기 때문에 문제가 많이 일어났다. 1963년에는 연방제 국가가 되었다.

특히 독립 후, 부족간의 반목이 격화되었고 존슨 아그이-이론시 대통령이 암살된 후 1966년 북부 앙가스족 출신 야쿠부 고원이 쿠데타를 일으켰고 이에 오두메구 오주쿠가 이끄는 이보족이 반란을 일으켜 1967년 5월 동부에서 비아프라 공화국을 선포했다. 결국 고원이 비아프라 전쟁을 일으켰고 전쟁은 비아프라 공화국이 점령당하면서 1970년에 끝났다.[1]

1975년 군부에 의해 고원이 해임되고 무르탈라 모하메드가 대통령이 되었으나 그 역시 암살당하고 끝없는 혼란 속에서 독재자 사니 아바차가 대통령이 되어 석유 기업 셸과 함께 개인 사업을 벌였고 석유 약탈을 당하던 오고니족을 박해했다.

이후 올루세군 오바산조가 대통령에 오르면서 다시 안정을 되찾게 되었고 잦은 내전과 쿠데타로 아프리카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를 보유한 나라가 되었다. 나이지리아의 굿럭 조너선 대통령은 2013년 1월 23일에 다보스 포럼에 참석하면서 말리사태가 해결이 안되면 다른 서아프리카의 국가들도 위험에 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2]

자연 환경[편집]

지리[편집]

전체 면적은 923,768㎢이며 세계에서 32번째로 큰 나라이다. 서쪽으로는 베냉, 동쪽으로는 차드카메룬, 북쪽으로는 니제르와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기니 만에 면하고 있다. 지형은 국명을 낳은 니제르강 계곡·해안평야 및 동부의 산지, 그리고 북부의 하우사 고원으로 구분된다.[1]

기후[편집]

해안지대는 열대우림, 내륙부는 열대 사바나이다. 북으로 갈수록 강우량은 감소된다.[1] 북부는 덥고 건조하며 남부는 습한 편이다. 북부의 우기는 4월 부터 9월 사이이고 남부의 우기는 3월부터 11월 사이이다. 11월 부터 3월까지 하르마탄 열풍이 불 때에는 먼지 날리는 건조한 기간이 길게 이어진다.

정치[편집]

행정 구역[편집]

나이지리아는 연방제를 채택한 나라로, 36개의 주(state)와 연방 수도 지구(Federal Capital Territory)로 구성된다.

외교[편집]

나이지리아는 비동맹중립노선을 기조로 하였으나 한때 친소(親蘇) 노선을 걷기도 하여 미국,영국 등 서방국과의 관계가 한때 소원해지기도 했으나 1977년 서방과의 관계를 정상화하였다. 북한과는 1976년에, 남한과는 1980년에 수교하였다.

대한관계

손원일(당시 주서독 대사) 특사 일행은 1960년 7월, 나이지리아를 친선 방문하고, 상호간의 이해증진과 외교관계 수립에 관하여 원칙적인 합의를 보았다.[3] 1980년 2월 22일 양국은 국교 수립에 합의하여 3월 24일 이코이 호텔에 공관을 개설하였고, 7월 1일 공관을 임차하여 영사업무를 개시하였으며, 7월 10일 신기흠 초대 대사가 부임하였다. 1981년 3월 2일 임동원 제2대 대사가 부임하였고, 1982년 12월 현 청사 부지를 확보하고, 1984년 8월 13일 현 청사를 준공하고 입주하였다. 1985년 1월 21일 노창희 제3대 대사가, 1987년 12월 15일에는 오채기 제4대 대사가, 1991년 1월 13일에는 조명행 제5대 대사가 부임하였다. 1994년 3월 15일 안종구 제6대 대사가 부임(4월 24일 신임장 제정)하였고, 1996년 3월에 신 수도인 아부자에 사무소를 개소하였으며, 1996년 3월 30일 이동진 제7대 대사가 부임하였고(1998년 4월 26일 신임장 제정), 1999년 3월 8일 정문수 제8대 대사가 부임하였고(1999년 4월 16일 신임장 제정), 2002년 2월 27일 박신웅 제9대 대사가 부임하였고 (2002년 4월 26일 신임장 제정), 2004년 3월 18일 김동원 제10대 대사가 부임하였다. 2006년 3월에 한국의 노무현 대통령이 나이지리아를 공식 방문하였고, 2006년 3월 28일 이기동 제11대 대사가 부임하였고, 2009년 3월 9일 박영국 제12대 대사가 부임하였다.[4]

2005년 한국석유공사는 나이지리아의 OPL321, 323 탐사광구 사업을 낙찰받아, 2006년 3월 나이지리아를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과 오바산조 당시 나이지리아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생산물 분배계약까지 체결했다. 그러나, 2007년 5월 우마르 무사 야라두야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전임 정부에서 시행된 석유 광구 분양에 대해 전면조사를 실시, 한국컨소시엄(석유공사, 한전, 대우조선해양 등)의 OPL321, OPL323 광구 분양 건도 상기 조사대상에 포함되면서 광구 탐사권을 무효화시켰다.[5] 이 나라는 88 서울 올림픽 때 선수단과 임원을 서울로 파견하였다. (단, 한일 월드컵 때 대표팀은 F조였기 때문에 일본으로 파견됨) 아직 한국과의 직항편이 개설되지 않았기 때문에 영국, 이집트 등 제3국을 경유해야 하는 불편이 남아 있다.

군사[편집]

이 나라는 내전이 일어난 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지원병제를 실시하고 있다. 한때 아프리카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력를 보유하고 있었다.

경제[편집]

나이지리아는 블랙 아프리카에서 처음으로 OPEC에 가맹을 달성하였으며, 경제규모는 아프리카의 유수한 곳이다. 1996-2005년 기간 동안 연평균 4.3%의 경제 성장을 기록하였다.[6] 상품작물은 지역에 따라 다르다. 남부해안지방에서는 기름야자·코코야자가, 서남부에서는 카카오·고무가, 북부사바나 지역에는 낙화생과 면화가 재배되고 있다. 모두가 원주민에 의한 소규모 농업이다. 세계 유수의 산유국으로 총수출의 90%를 석유가 차지하며, 그 밖의 지하자원으로는 석탄·컬럼바이트·주석 등이 수출되고 있다.[1] 신식민주의의 전형으로 꼽히는 나이지리아경제에서 외화 수입의 80%가 석유 수출에서 나오고, 그 석유 수출량의 절반 이상을 로열 더치 쉘이 차지한다. 나이지리아 역대 최고 권력과 쉘의 공생관계는 상호 유익한 관계이다. 쉘은 40여년 동안 약 300억달러 상당의 나이지리아 석유를 서양 국가(주로 미국)에 판매했고, 나이지리아의 역대 정권은 석유 소득 이외에도 쉘이 수입해준 무기와 쉘의 돈과 해외에서의 정권 홍보의 혜택도 받을 수 있었다.[7]

사회[편집]

언어[편집]

공용어는 영어이다. 하지만 에도어, 에픽어, 풀라어, 하우사어, 이도마어, 이그보어, 중부 카누리어, 요루바어 등의 언어들도 널리 쓰이고 있다.[8]. 교육은 잘 보급되어 있고 대학이 13개 있다.[1] 그러나 필요에 따라서는 프랑스어 사용도 있으며, 주변국이 프랑스어 사용국가들로 프랑스어 교육도 일부적으로 실시되어가고는 있다. 하지만 프랑코포니의 회원국이 아니다.

주민[편집]

250개 이상의 부족이 거주한다. 북부의 하우사족풀라니족이 인구의 29%, 남서부의 요루바족이 21%, 남동부의 이보족이 18%, 이자우족 10%, 카누리족 4%, 이비비오족 3.5%, 치부족 2.5%로 등 구성되어 있지만, 민족분쟁이 자주 일어났기 때문에 현재는 주가 세분화되고 있다.

문화[편집]

종교[편집]

이슬람교가 40%, 기독교가 50%, 아프리카 전통 신앙이 10%다. 북부는 이슬람교 지구에 속해 있고 해안부에는 기독교도가 많다.[1] 나이지리아의 이슬람교도 비율에 대한 주장은 60%로 집계하는 무슬림측의 주장과 30%라는 비이슬람교도측의 주장으로 양분되어 있어서 정확한 비율은 알 수 없다.

나이지리아의 기독교 최대교단은 나이지리아 성공회로 1,300개의 교회를 갖고 있다.

주석[편집]

  1.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나이지리아
  2. "말리사태 해결 안되면 서아프리카 전체 위험"
  3. "阿洲六國과修交...孫親善特使合意報告", 《동아일보》, 1960년 7월 22일 작성, p. 석간 1.
  4. 공관약사. 주 나이지리아 대한민국 대사관. 2009년 6월 21일에 확인.
  5. 송창범 기자. "나이지리아 유전광구 탐사사업 위기", 《에너지경제신문》, 2009년 1월 30일 작성. 2009년 6월 21일 확인.
  6. ""아프리카 전환점 돌아..성장 국면으로 들어선 듯" [WB보고서] ", 《매일경제》, 2007년 11월 15일 작성. 2010년 5월 1일 확인.
  7. 박노자. "[박노자의 북유럽탐험]쉘의 피비린내나는 기름", 《한겨레신문사》, 2001년 6월 27일 작성. 2010년 5월 1일 확인.
  8. (영어) Etnologue. Languages of Nigeria. 2011년 8월 22일에 보존된 문서. 6 сентября 2008에 확인.

같이 보기[편집]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