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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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족(Mon people)
မောန
YoungMon.jpg
인구 8,145,500
거점 미얀마 미얀마 8,000,000
타이 타이 114,500
언어 몬어
종교 상좌부 불교
관련민족 크메르족

몬족(몬어:မောန် 또는 မည, 버마어: မွန်လူမျိုးို့, 타이어: มอญို့, 영어: Mon people)은 미얀마의 민족으로 대부분 몬 주, 바고 구, 이라와디 삼각주와 타이-미얀마 경계를 따라 산다.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초기부터 거주하던 민족의 하나인 몬족은 미얀마와 타이에 상좌부 불교를 전파하였다. 몬 문화는 버마 문화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동부의 몬족은 오래 전에 타이/시암 사회에 흡수되었고 서부의 미얀마의 몬족은 마찬가지로 동화의 압력에 직면해 있다. 미얀마에서 몬족은 몬어와 문화 자치권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고 있다. 한 때 저지 미얀마의 지배적인 민족 언어 집단이었던 몬족 사용자는 현재 100만 명 이하로 줄었다. 많은 몬족이 버마어 밖에 읽고 쓸 줄 모른다.

역사[편집]

기원전 1500년경에 동남아시아에 도달했다고 여겨진다. 이것은 현재의 동남아시아의 소수민족으로서는 최초라고 생각되고 있다. 그 후 기원전 300년쯤에 수완나품 왕국을 건국했고, 기원전 200년쯤에는 아소카 왕이 보낸 전도자에 의해 상좌부 불교를 신앙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몬족은 그 이전부터 해로에 의한 불교와의 접촉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몬족은 그 후에도 1000년경까지 동남아시아에서 번영했고, 몬 문자 등을 개발해 선주의 문명 민족으로서 동남아시아에 군림했다.

그 후, 몬족은 현재의 타이 왕국람푼하리푼차이 왕국을 세웠지만, 전설에는 콜레라가 유행해 람푼의 수도를 버리고 남하해 페구에 페구 왕조를 세웠다. 1000년쯤부터는 윈난으로부터의 버마족·타이족의 등장으로, 페구 왕조를 세웠지만 서서히 힘을 잃어 1757년에 결국 페구 왕조는 무너졌다. 그 후 대부분의 몬족은 남하를 계속해 현재의 거주지역인 타이와 미얀마의 국경 지역에 도달했다.

미얀마에 있어서는 식민지 시대에 버마의 왕에게 대항하기 위해 지배자측인 영국을 지원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영국이 미얀마 주변지역의 식민지로부터 손을 떼면서 몬족의 독자적인 왕국을 복고 시키려는 경향이 나타났다. 현 미얀마의 군사 정권은 이것을 인정하지 않고, 몬족은 미얀마 연방의 구성 민족의 하나나라고 하여, 연방내의 다른 민족의 복국운동처럼 단속을 실시하고 있다. 카렌족, 그 외의 민족과 제휴해 독립 투쟁을 실시했으나, 현재 운동은 침체된 상황에 있다. 더욱이 이 사이에도 몬족의 타이 국경 지역으로의 남하는 계속 되었고, 특히 군사 정권 초기에 미얀마 국내가 내란 상태에 빠졌을 때, 타이 북부로 피한 카렌족이나 샨족처럼, 수많은 난민이 타이측으로 탈출하고 있다. 그 때문에 국경을 사이에 두고 생활하고 있지만 친척 관계에 있는 예가 몬족과 그 외의 민족에게서 대부분 볼 수 있다.

타이에서는 같은 상좌부 불교를 신앙하는 평지 민족인 것으로부터 동화되는 경향이 심하고, 타이 왕국에서는 대부분의 몬족이 동화되었다. 미얀마 난민인 몬족에 대해서 타이 정부는 비교적 너그럽다. 냉전기에 서방에 속하는 것을 일관적으로 고집한 타이 정부는, 주변 제국이 공산화나 쇄국화를 진행시키는 가운데서도 난민의 대부분을 받아 들이고 있다. 내정을 잘 아는 난민으로부터 정보를 얻는 것과 동시에, 당시 타이 정부도 미지인 타이 변경 지역의 방위에 임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고 한다.

1947년에, 전설에 의해 몬족의 건국기념일이 만들어졌다. 몬 음력의 11월의 만월이다. 다만 이 건국기념일은 타이의 사뭇쁘라깐 주암포프라 군의 몬족 사이에서는 축하일이 아니다.

언어[편집]

몬어는 이른바 몬크메르어파에 속하고 데바나가리 문자계의 몬 문자라고 하는 독자적인 문자를 가지고 있다. 몬 문자는 크메르 문자와 함께 말레이 반도나 도서부를 제외한 동남아시아의 문자의 형성에 큰 역할을 하였고, 버마 문자, 란나 문자 등의 바탕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