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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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티오피아 연방 민주 공화국
የ ኢትዮጵያ ፈደራላዊ ዲሞክራሲያዊ ሪፐብሊክ
Flag of Ethiopia.svg Coat of arms of Ethiopia.svg
국기 국장
표어 없음
국가 전진하라, 나의 어머니 에티오피아
Ethiopia on the globe (Africa centered).svg
수도 아디스아바바 북위 9° 01′ 동경 38° 44′  / 북위 9.017° 동경 38.733° / 9.017; 38.733
정치
공용어 암하라어
정부 형태 연방제 의원 내각제 공화국
대통령
총리
물라투 테쇼메
하일레마리암 데살렌
역사
건국  
 • 악숨 제국
제국 시대
제정 폐지
민주화
전설에 의하면
기원전 980년
1137년
1975년
1991년
지리
면적 1,104,300km² (27 위)
내수면 비율 0.7%
시간대 EAT (UTC+3)
DST 없음
인구
2010년 어림 85,237,338명
2007년 조사 73,918,505명 (14위)
인구 밀도 79명/km² (123위)
경제
GDP(PPP) 2005년 어림값
 • 전체 $6,909억 9,000만 (69위)
 • 일인당 $823 (175위)
HDI 0.396 (173위, 2012년 조사)
통화 비르 (ETB)
기타
ISO 3166-1 231, ET, ETH
도메인 .et
국제 전화 +251

에티오피아(암하라어: ኢትዮጵያ 이티오피아)는 아프리카에 있는 공화국이며 수도는 아디스아바바이다. 정식 명칭은 에티오피아 연방 민주 공화국(암하라어: የ ኢትዮጵያ ፈደራላዊ ዲሞክራሲያዊ ሪፐብሊክ 예 이티오피야 페데랄라위 디모크라시야위 리페블리크)이다. 1931년 이전에는 '아비시니아'라 불렀다.

역사[편집]

기원전 1000년 , 이스라엘솔로몬 왕과 지혜를 겨루던 시바의 여왕솔로몬 왕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메넬리크 1세가 북에티오피아로 이주하여 황제가 된 것이 에티오피아의 기원으로 알려져 있다.(그전에도 여러 왕국이 있었다.) 고대에는 발원한 도시의 이름을 따 악숨 제국으로 불렸다. 이후, 에티오피아 제국이 되었으며 1974년 쿠데타로 군주제가 폐지될 때까지 존재했다.

에티오피아 고원을 중심으로 아프리카 문명 중 이집트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고유한 문자와 국가체제를 유지해 왔다. 19세기에는 이집트, 이탈리아의 침략까지 막아내어 독립국으로써의 위상을 전 세계에 알렸다. 1931년에는 입헌 군주제 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1935년 10월 2일부터 이탈리아의 에티오피아 침략이 개시되었고 1936년5월 2일 , 이탈리아의 2차 공격에 패배하여 황제가 예루살렘으로 망명을 하기도 하였다. 마침내 5월 5일 오후 5시(역사적 대사실을 기념하기 위하여 일부러 택한 날짜와 시간이다.)를 기해 이탈리아군은 수도 아디스아바바에 입성하였다.[1]1941년, 영국의 도움으로 이탈리아군을 몰아내었으며 외국으로 망명 간 황제는 복위하여, 에티오피아를 재건하는 데 힘썼다.

그 후, 1952년 에리트레아와 연방을 맺었고 1962년에는 자국 영토로 병합하였다. 한국 전쟁 때는 대한민국에 병력을 지원하여 123명의 전사자와 536명의 부상자를 냈다. 1960년 로마 올림픽 때는 육상선수 아베베 비킬라가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1974년에는 멩기스투 소령을 비롯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쿠데타로 황제가 폐위되고, 제정도 폐지되었다. 군부는 에티오피아를 사회주의 국가로 선포하였고, 군부의 공포정치에 의하여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으며, 2천년 동안 이어져 온 에티오피아 정교회는 교회가 문을 닫는 등 박해를 받았다.

1987년 국민투표에 의하여 군부의 기구인 에티오피아 임시 군사 평의회(EPMAC)가 폐지되었고, 멩기스투는 초대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그러나, 에티오피아 내전에 패배한 멩기스투는 1991년에 대통령 직을 사임하였다. 그 이후, 에티오피아는 민주화되었다. 한편, 에티오피아의 영토였던 에리트레아1993년에 독립하였다. 하지만 사회주의 정권에 의해 피폐되어버린 경제를 다시 되살려야 하는 등 많은 일이 남아 있다.

지리[편집]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의 뿔에 위치해 있으며, 북쪽에 에리트레아, 동쪽에 지부티소말리아, 남쪽에 케냐, 서쪽에 수단남수단에 국경을 접하고 있다. 동아프리카 지구대가 지나간다. 전체 면적은 1,127,127 km²이며 세계에서 27번째로 큰 나라이다. 볼리비아와 크기가 비슷하며 알래스카 주의 3분의 2에 해당한다. 에티오피아의 주요 부분이 아프리카의 뿔에 해당하여 아프리카 전체의 가장 동쪽 부분에 해당한다.

에티오피아의 지도

행정 구역[편집]

에티오피아의 행정 구역

기본적으로 연방 정부로서 9개 주(티그라이 주(11), 아파르 주(2), 암하라 주(3), 베니샨굴 구마즈 주(4), 감벨라 주(6), 하라리 주(7), 오로미아 주(8), 소말리 주(9)), 남부 국가 민족 주(10))와 2개의 특별시(아디스아바바(에티오피아의 수도(1), 디레 다와(5))가 존재한다. 각 지역에는 별도의 행정 자치권을 행사하는 지방 정부가 있다.

정치[편집]

국가 원수는 대통령으로, 대통령제1987년에 도입되었다. 국군 통수권은 총리가 행사한다. 의회 제도는 양원제이며, 1995년부터 연방제를 시행했다.

군사[편집]

방위는 국방부(Ethiopian National Defense Force)에서 책임을 지며 육군과 공군과 헌병이 존재한다. 예전에는 해군(1956년~1991년)도 존재하였으나 에리트레아가 독립한 이후, 해군 전력이 없다. 병력은 182,500명이며, 징병제를 채택하고 있다.

주민[편집]

암하라, 오로모, 티그라이가 3대 종족을 구성하지만 전체적인 세부 부족 및 언어는 대략 80개에 달한다. 한편 가장 많은 인구와 지역을 차지하는 것은 오로모족(오로모인)으로 이들은 수도 아디스아바바를 중심으로 중부 및 중서부, 중남부 지역에 걸쳐 거주하고 있다. 다음으로 많은 것이 암하라족이며 티그라이족이 그 뒤를 잇는데 현재 집권 세력은 티그라이족 출신이다. 암하라족은 1970년대 공산정권이 수립되기 이전까지 약 2,000년간 이 나라의 왕가를 구성하고 있었다.

인구[편집]

이 나라는 아프리카에서 나이지리아 에이어, 2 번째로 인구가 많으며 1995~2000년 연평균 인구 증가율은 2.92%, 유아 사망률은 1,000명당 99.96명(1999년 기준)이다.

언어[편집]

1994년 헌법 5조 2항에 "암하라어는 연방정부의 업무어이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9개주 2개 자치시는 각주별로 독자적으로 공용어(일부는 "업무어"라고 표현)도 인정되고 있다. 영어는 행정 언어로서 많이 사용된다. 인도의 산스크리트어나 유럽의 라틴어처럼 그으즈어라는 사멸된 고대 언어도 존재한다. 그으즈어는 정교회의 전례에 사용된다.

종교[편집]

에티오피아는 역사적 뿌리가 깊은 기독교 국가로, 국민의 45%가 에티오피아 정교회 신자들이다. 에티오피아 정교회는 비 칼케돈 계열 기독교 교회 즉, 칼케돈 공의회의 결정을 따르지 않는 오리엔트 정교회의 일파이며, 멩기스투 대통령 치하에는 교회가 문을 닫고 사제들이 체포되는 등 탄압을 받았다. 에티오피아 정교회 이외의 기독교 교파로는 성공회개신교(KHC 등의 복음주의적인 교단이 대부분)가 있다. 그 외의 종교로는 이슬람교(35%)가 존재하며 기타 샤머니즘 성격의 토착 신앙도 존재한다.

현재 양 종교의 비율은 거의 반반에 해당하여 일반적으로는 에티오피아 정교회 신도가 많은 것이 통설이나 통계 자료에 따라서는 이슬람교 신도가 기독교 신도보다 많다는 주장도 있다. 연방헌법 11조는 정교 분리의 원칙을 명시하고 있다.

문화[편집]

공용어인 암하라어게즈 문자라는 고유의 문자를 사용한다. 게즈 문자는 남아라비아 계통을 잇고 있는 유일한 문자이다. 기본적으로 자음 문자에 모음 기호의 변형을 통해서 음의 변화를 표시하는 음절문자이다. 그레고리력 외에 독자적인 에티오피아력을 사용하고 있다.

스포츠[편집]

육상 경기가 발달하였으며, 축구는 아프리카 컵에 나간 것이 유일하다.

대외 관계[편집]

대한 관계[편집]

에티오피아는 남북한 동시수교국이다. 대한민국과 에티오피아는 1963년12월 23일에 수교하였다. 수교 이전인 1950년 한반도에서 일어난 한국전쟁에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에서 남아프리카 연방과 함께 더불어 전투병력을 파견하였다. 에티오피아 전투병력은 황제의 친위대로서 한국전쟁에서 최정예 군인에 걸맞은 전투성과를 내고 명예롭게 귀국하였다. 이에 셀라시오 황제는 직접 그들의 전공를 치하하였다.

1974년입헌 군주제가 폐지되었는데 멩기스투 공산주의 정권은 황제를 살해하고 암매장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들은 마르크스주의에 근거한 공산주의 체제를 표방하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가까운 관계가 되었다. 공산정권은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을 핍박하였으며 많은 참전용사들이 죽고 다치고 고국을 등질수밖에 없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는 불안정한 국내 사정(내전)으로 불참하였다.[2] 1991년에 옛 동유럽 공산주의 정권들의 몰락과 남북동시 유엔 가입, 멩기스투 공산주의 정권 종식과 멜레스 제나위 총리의 집권으로 대한민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기위해 노력중이다. 모두 255명(재외국민 255명, 시민권자 0명)의 한민족들이 에티오피아에 거주(2010년 12월 기준)하고 있다. [3]

2013년 8월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교관에티오피아에서 근무하던 도중 대한민국 대사관으로 넘어가서 망명을 요청했다. 결국 대한민국넘어오는데 성공했다고 전해지나 고위급 외교관은 아니었다.[4]

대미 관계[편집]

이 나라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연합국으로 참전하여, 국제 연합의 창설회원국이 되었다. 제정이 폐지되기 전까지는 미국의 지원을 많이 받았으며, 하일레 셀라시에 1세는 케네디 대통령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멩기스투 정권의 집권 이후 미국과의 관계가 소원해졌다. 1991년에 멩기스투 정권이 전복된 이후, 미국과 다시 협조 관계를 맺고 있다.

주 및 출처[편집]

  1. "에치오피아滅亡의 輓歌", 《동아일보》, 1936년 5월 13일 작성. "昨年十月二日부터 開始된 伊太利의 에치오피아侵略은 今年五月五日에 그 終結을 보게 되엇다. 五月二日에는 에치오피아 皇帝가 首都아디스․아베바를 버리고 예루살렘으로 向하게 되엇고 伊太利軍은 五月五日五時(午後)에 堂堂하게 首都에 進入하게 되엇다. 伊太利는 아마 이 歷史的大事實을 記念하기 爲해서 이와 같은 時日일 選擇하엿나보다."
  2. 1987년부터 에티오피아 연방민주주의공화국(People's Democratic Republic of Ethiopia)이 집권하고 있었으나, 1991년 붕괴되었다.
  3. 국가별 재외동포현황(2011).xls (엑셀). 대한민국 외교통상부.
  4. 에티오피아 주재 북한 외교관 1명 망명…고위급 아닌 듯 (인터넷 기사). KBS.

바깥 고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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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