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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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Malaysia
Flag of Malaysia.svg Coat of arms of Malaysia.svg
국기 국장
표어 Bersekutu Bertambah Mutu
(단결은 힘)
국가 나의 땅
Malaysia on the globe (Southeast Asia centered).svg
수도 쿠알라룸푸르 (공식)
푸트라자야 (행정) 북위 3° 08′ 09″ 동경 101° 41′ 17″ / 북위 3.135833° 동경 101.688056° / 3.135833; 101.688056
북위 2° 55′ 00″ 동경 101° 40′ 00″ / 북위 2.916667° 동경 101.666667° / 2.916667; 101.666667
정치
공용어 말레이어
정부 형태 입헌 군주제, 연방제, (사실상) 일당제
아공 압둘 할림
총리
부총리
나집 툰 라작
무히딘 야신
역사
독립 영국으로부터 독립
 • 독립 1957년 8월 31일
 • 확장 1963년 9월 16일
지리
면적 329,847km² (67 위)
내수면 비율 0.3%
시간대 MST (UTCUTC+8)
DST UTC+8
인구
2005년 어림 25,347,000명
2000년 조사 23,953,136명 (45위)
인구 밀도 77명/km² (115위)
경제
GDP(PPP) 2012년 어림값
 • 전체 5,067억$ (29위)
 • 일인당 16,922$ (56위)
HDI 0.769 (64위, 2012년 조사)
통화 링깃 (MYR)
기타
ISO 3166-1 458, MY, MYS
도메인 .my
국제 전화 +60¹

¹ 020은 싱가포르에서 전화를 걸 때 사용된다.

말레이시아(말레이어: Malaysia), 음차하여 마래서아(馬來西亞) 또는 말련(-聯)은 동남아시아에 있는 연방제 입헌 군주국이다. 말레이시아는 13개의 주와 3개의 연방 직할구로 구성되어 있고, 남중국해로 나뉜 말레이 반도 지역과 보르네오 섬 지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타이, 인도네시아, 브루나이와 국경을 맞대고 있고, 해상국경은 싱가포르베트남, 필리핀과 맞대고 있다. 연방정부는 푸트라자야에 있지만, 수도는 쿠알라룸푸르이다.

말레이시아의 역사는 18세기부터 대영 제국의 식민지가 된 말레이 왕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 영국의 식민지가 된 곳은 해협식민지로 불리었고, 다른 곳들은 보호령이 되었다. 1946년 말레이 반도의 주들이 연합하여 말라야 연합을 세웠고, 1948년 연합을 재편성하여 말라야 연방이 설립되었다. 1957년 8월 31일 영국으로부터 완전히 독립을 하게 되었으며, 1963년 9월 16일 말라야 연방사바, 사라왁, 싱가포르와 연합하면서 Malaya란 이름에 si를 추가해 Malaysia가 되었다. 그러나 2년도 채 지나지 않은 1965년, 싱가포르는 정부와의 마찰로 연방에서 탈퇴하게 되었다.[1] 말레이시아는 독립 이후 아시아에서 최고의 경제적인 기록을 가지고 있는데, 거의 50년동안의 GDP 성장률이 평균 6.5%라는 것이다. 말레이시아의 경제는 전통적으로 천연 자원에 거의 의존하고 있었으나, 최근에 과학, 관광, 무역, 의료관광 등의 산업이 성장하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입헌군주국이며, 국가 원수는 군주로, 9개 주가 5년에 한 번씩(단, 궐위가 있을 경우에는 예외) 술탄이 임명한다.[2] 군주의 칭호는 양디-퍼르투안 아공이며, 지금 군주는 압둘 할림이다. 정부의 장은 수상이다. 정부체제는 웨스트민스터 체제에 가깝고, 법체계는 영국의 법에 기초한다. 말레이시아는 민족과 문화가 다양하고 그 다양성이 정치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국교이슬람교이지만, 헌법상 종교의 자유는 인정되고 있다.

말레이시아에는 유라시아의 최남단 지역인 탄중피아이가 있고, 적도 근처에 위치하고 있어 열대 기후의 국가이다. 다양한 동식물군이 있어 생물 다양성이 큰 국가이다. ASEAN, 이슬람 회의 기구의 창립멤버이며, APEC, 영국연방, 비동맹 운동의 회원국이다.

2013년을 기점으로 말레이시아의 구매력 평가는 1인당 $17,674로 평가되었다.[3]

역사[편집]

인도양과 남중국해 사이의 말레이 반도는 예부터 동서양 무역상 및 여행객들의 장소였다. 5-6세기 유입된 힌두 문화와 불교 문화는 말레이시아 북서 지역에 빠르게 보급되었고, 14세기 무렵 아랍 상인들이 이슬람교를 소개하였다.[4] 말라카 해협(Straits of Malacca)을 중심으로 13세기까지 상업과 무역의 중심지로 번성한 말레이시아는 식민 열강들이 향료가 풍부한 말라카에 침범하기 시작하면서 외세의 지배를 받기 시작했다. 16세기 포르투갈의 침공 이후 네덜란드의 말라카 점령을 거쳐, 18세기 영국이 페낭(Penang)을 점령하면서 말레이시아 지역은 20세기 초까지 외세의 지배를 받았다. 바다 건너 보루네오 섬에 있는 사라왁주는 1841년 이후 영국 모험가인 제임스 브룩(James Brooke)과 후손들에 의해 통치되었으며, 1888년 사라왁주와 북 보루네오(추후 사바로 개칭됨)는 영국의 보호령이 되었다.[4]

1957년 8월 31일 말라야 연방(Malayan Union)이 대영제국에서 독립하였다. 이후 툰쿠 압둘 라만(Tunku Abdul Rahman)이 초대 총리가 되었으며, 투앙쿠 압둘 라만(Tuanku Abdul Rahman)이 초대 국왕이 되었다. 사바 주, 사라왁 주싱가포르, 브루나이와 함께 1961년 9월 16일에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여 현재의 말레이시아 연방을 성립하였다.[5] 1962년에 브루나이가 독립하였다. 1965년에 싱가포르가 독립하였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지배계층이며, 말레이시아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말레이인들을 우대했다. 인민행동당을 이끌었던 중국계 정치가 리콴유는 이를 비판하였다. 그는 "중국계도 말레이 원주민과 같은, 엄연한 말레이인이다"라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민족 간의 불화로 인한 폭동은 종종 일어났고, 말레이시아 정부는 싱가포르가 이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다며 자국에서 추방하였다(싱가포르 입장에서 보면, 원치 않은 독립이다).[1]

라만의 정책에도 불구하고, 1969년에 민족 간에 일어난 불화로 폭동이 일어나자(일명 5·13 사건), 인기를 잃게 된다. 라만은 사건이 터진 그 이듬해에 사임하였고, 대신에 부총리 압둘 라작이 신임 총리로 임명되었다. 라작은 민족 간의 불화를 막고 빈곤을 뿌리뽑고자 했으나 재임 중 급사하고 만다. 후임 총리 후세인 온은 단결을 강조하였으며, 민족 간의 불화를 막고자 했다.

후세인 온도 건강이 악화되었고, 5년만에 중도 사임했다. 이후 마하티르 빈 모하마드가 후임 총리로 임명되었는데, 그는 경제 발전을 위해 한국과 일본으로부터 본받고자 했다. 그는 여러 차례의 총선에서 승리하여 장기 집권에 성공한다.

2003년 압둘라 아마드 바다위가 신임 총리로 임명되었다. 2009년 압둘 라작의 아들인 나집 라작이 신임 총리로 임명되었다.

2011년 현재 말레이시아는 싱가포르, 브루나이, 인도네시아, 필리핀, 미얀마,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으로 구성된 동남아시아 국가 연합(ASEAN) 10개 회원국 중 하나로 활동하고 있다.

자연 환경[편집]

지리[편집]

말레이시아는 남중국해를 사이에 두고 크게 말레이 반도의 서말레이시아, 보르네오 섬 북부의 동말레이시아 두 부분으로 나뉜다. 국토는 329,758km2로, 3/4가 밀림 및 습지대로 구성된다.

기후[편집]

말레이시아는 적도와 가까워서 4계절이 없고 우기건기가 있는 고온다습열대성 기후에 속한다. 열대지역에 속하는 말레이시아의 기후는 연중 고온 다습한 편이다. 연평균 기온이 21~32℃로 연평균 강우량 2,000~2,500mm, 평균 습도는 63~80%이다. 최저 기온과 최고 기온의 기온 차는 9~12℃ 전후로 낮에는 30℃를 웃돌다가도 저녁과 밤에는 매우 선선한 기후를 유지한다. 건기와 우기는 지역마다 차이가 있으며, 우기라도 일시적인 열대성 소나기의 횟수가 증가하는 것이므로 여행에는 불편함이 없다.[6]

정치[편집]

말레이시아의 의회

말레이시아는 연방제 국가이며, 선거군주제를 기반으로 한 내각 책임제 체제이다. 현재 말레이시아의 정치 체제는 웨스트민스터 체제와 유사한데, 이는 영국 식민지의 유산이다. 국가 원수는 양디퍼르투안 아공인데, 흔히 왕으로 부른다. 왕의 임기는 5년이며, 프낭, 말라카, 사바, 사라왁을 제외한 9개 각 술탄(Sultan) 중에서 교대로 선출된다. 현재의 왕은 2011년에 선출된 압둘 할림이다. 왕은 총리와 내각을 임명할 권리와 군대 최고 사령관으로서의 통솔권 등을 갖는다. 1994년 헌법 개정 이후 왕은 대개 의례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의회는 연방의회와 주의회로 나뉜다. 양원제로 상원과 하원이 존재한다. 현재 국회의원은 총 222명이고, 최대 5년 임기를 갖는다. 상원의원 70명은 3년 임기를 갖으며, 그 중 26명은 13개의 주의회에서 선출되고, 나머지 44명은 총리의 제안에 따라 국왕이 임명한다. 국회는 다당제를 기초로 하며, 소선거구제 형태로 선출한다. 말레이시아는 1957년 독립한 직후 여러 개의 정당이 연합해 만든 국민전선(Barisan Nasional, BN)이 현재까지 집권하고 있다.

입법[편집]

말레이시아는 상.하원 양원제이다. 국회는 하원(대의원)과 상원(원로원)으로 나뉘어있다.

말레이시아의 정당으로는 민중운동의 성과인 말레이시아 사회주의당(PSM), 50년 이상 장기집권 중인 통일말레이국민조직(UMNO), 그리고 중국계들이 이끄는 말레이시아화교협회, 인민동맹 등이 있다. 통일말레이국민조직은 여권연합인 국민전선(Barisan Nasional)의 일원이자 가장 큰 정당이다. 반면 야권연합은 인민동맹(Pakatan Rakyat)이며, 인민정의당(PKR), 민주행동당(DAP), 말레이시아이슬람당(PAS)로 구성되어 있다. 말레이시아이슬람당은 한때는 국민전선의 일원이었으나, 현재는 인민동맹에 가입했다. 국민전선은 부미푸트라, 특히 무슬림들의 지지를 받는데 반해, 인민동맹은 논부미푸트라, 특히 중국계들의 지지를 받는다. 하지만 중국계를 대표하는 정당인 말레이시아화교협회는 국민전선의 일원이다. 사라왁과 사바에는 각 주를 대표하는 정당들이 있는데, 그 예로 사바통일당(PBS)이 있다. 현재 집권여당은 UMNO이고, 예전에는 말레이시아공산당(PKM)도 있었으나 불법이었다.

말레이시아는 복수정당제를 채택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UMNO에 의한 일당독재체제이다. 집권연합인 국민전선은 철저한 부정선거 및 개리멘더링 선거구로 60년 가량 장기집권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부정부패 및 인권침해라는 결과를 낳았다. 특히 22년간 장기집권한 마하티르 모하마드는 집권 시 '경제발전'을 명목으로 강도높은 인종차별 정책을 실시했으며, 이 시기 정권을 비판한 비말레이계 청년들이 구속, 수감되었다. 2013년 총선에서 인민동맹이 더 많은 표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선거 조작 및 협박 등으로 국민전선의 승리를 이끌어, 수많은 사람들의 비난을 받고 있다. 실제로 말레이시아에는 야권지도자 안와르 이브라힘 및 야권 소속 의원 티엔 추아 등을 구속, 수감 및 위협할 정도로 야권인사 및 야당에 대한 탄압이 매우 심각하며, 이는 사라왁, 사바 등 보르네오 지역으로 가면 더욱 더 심각해진다. 1990년대 초반 PBS 소속 당원들이 대규모로 구속, 수감된 사건이 있어 큰 비판을 받았다.

행정 구역[편집]

말레이시아는 13개 주[2]와 3개의 연방직할시로 구성되어 있다. 1959년 14개 주로 독립한 후, 1965년 싱가포르가 탈퇴하여 13개로 줄어들었다. 연방지구로는 쿠알라룸푸르, 푸트라자야, 라부안이 있다.

대외 관계[편집]

말레이시아와 필리핀사바 주 일부 지역에 관한 분쟁을 외교 문제화하지 않기로 합의하였다. 또한 2003년 브루나이와 분쟁 중인 대륙붕 지역에서 가스 및 석유 채굴작업을 중단하기로 합의하였다.[7] 과거 싱가포르가 탈퇴하기 전에는 인도네시아와 리아우 제도를 두고 영토 분쟁을 벌였으며, 후에 싱가포르의 탈퇴로 싱가포르와 그리 좋지 않은 관계에 놓여 있다.[1] 한때 싱가포르의 조호르 해협 매립 관건으로 양국 간의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추측도 있었다.[1]

말레이시아는 강력한 외국인 이민 제한 및 탄압 정책으로 외국과 종종 마찰을 빚고 있으며, 일각에서는 이를 과거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 정책과 맞먹는 수준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특히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주변국에서 온 불법체류자들에 대한 인권유린이 심각해, 이들이 직접 정부를 상대로 시위를 벌이기도 하며,[8] 이 때문에 이들 나라들과 빚는 마찰은 매우 심하다. 최근 말레이시아는 부정선거 및 반대파 억압은 물론, 일당독재체제로 전환하려는 움직임 등으로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의 비판을 받고 있다.

대한 관계[편집]

대한민국과 말레이시아는 1960년에 수교하였다. 1960년 2월 23일, 양국은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1962년 5월 콸라룸푸르에 주말레이시아 대한민국 대사관이, 1964년 4월에는 서울에 주한 말레이시아 대사관이 개설되었다.[9] 대한민국의 대(對)말레이시아 수출은 62억7513만USD, 말레이시아의 대(對)대한민국 수출은 104억6781만USD(각 2011년)에 달하여, 말레이시아는 대한민국에 있어서 제21위의 수출국이자 제14위의 수입국이다.[10] 모두 14,409 명(재외국민 14,403 명, 시민권자 6 명)의 한민족들이 말레이시아에 거주(2010년 12월 기준)하고 있다.[11] 말레이시아의 전 총리 마하티르 빈 모하마드는 "국가 경제의 발전을 위하여 일본과 대한민국으로부터 배우자"는 소위, 향동학습정책(向東學習政策, Look East Policy)을 펼쳤다.[12] 이 정책의 일환으로 말레이시아 정부는 장학생을 대한민국에 있는 대학으로 보내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도 수교하였다.

한편 대한민국의 최규하 전 대통령(1979-1980 재직)이 말레이시아 대사를 지내기도 했다.

대 타이 관계[편집]

라마 1세(재위 1782년 - 1809년)는 타이 세력을 크게 확장해 말레이반도의 클란탄까지 지배하였다.

대 싱가포르 관계[편집]

싱가포르는 1963년 사바, 사라왁과 함께 신설 말레이시아에 가입했으며, 당시에는 싱가포르 주(말레이어: Negeri Singapura)라는 말레이시아의 한 주였다. 그러나 싱가포르 정부는 말레이시아 정부와 적지 않은 마찰을 빚었는데, 가장 큰 이유는 인종 문제였다. 싱가포르만 따지고 보면 인구의 대부분이 중국인이지만, 말레이시아 전체에서는 말레이인이 대부분이었다. 당시 싱가포르 주의 총리였던 리콴유는 "말레이시아인의 말레이시아"를 내세워, 말레이인을 우대하고 편애했던 툰쿠 압둘 라만 당시 말레이시아 총리를 비판했다. 1964년 싱가포르에서 인종 폭동이 발생했고, 이후 적지 않은 마찰이 빚어지자 말레이시아 정부는 사실상 싱가포르를 축출했다(그러나 실제로는, 정부의 압력 상황에서 싱가포르가 자발적으로 탈퇴한 것이었다). 1965년 8월 9일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에서 분리독립했다.[1]

양국은 한편으로는 교류도 하면서 어느 정도 괜찮은 관계를 보이는 듯 했으나, 실제로 그 안에는 씻기 어려운 앙금이 있었으며, 심지어 2002년 당시에는 양국 간의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관측조차 있었다.[1] 싱가포르는 영토가 너무 작아 간척사업을 통해 영토를 인위적으로 늘렸는데, 이 과정에서 양국의 국경이 되는 조호르 해협에 대한 매립을 논의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1] 당시 말레이시아는 싱가포르가 조호르 해협을 매립하여 각국 선박들의 말레이시아의 탄중플르파스 항 이용을 방해하려 한다고 비난했다.[1]

양국의 관계는 한편으로는 주변국이나, 싱가포르와 함께 말레이시아에 가입한 사바, 사라왁에도 적지 않은 영향력을 미쳤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가 리아우 제도(인도네시아가 지배 중) 일대를 두고 분쟁을 일으켰던 것이 싱가포르가 탈퇴하면서, 이 분쟁은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로 바뀌었다. 또 다른 관건은 사바, 사라왁을 두고 벌어진 것이었다. 당시 사바의 지도자였던 툰 푸아드 스테픈스는, "우리 사바는 싱가포르 때문에 말레이시아에 가입했다"며 "그러나 싱가포르가 나갔으니, 우리가 왜 말라야와 함께 해야 하는가?"라며 사실상 말레이시아 조약의 무효를 선언했다. 그들의 주장은 즉슨, 그들도 싱가포르처럼 독립했음을 선언한 바였다. 하지만 독립은 승인되지 않았고, 현재까지 말레이시아로 남아있는 과정에서 사바 인에 대한 탄압 등 적지 않은 문제가 발생했다. 현재 일부 사바 인들은 "사바와 사라왁이 말레이시아를 떠나다(SSKM)" 등 독립운동 단체를 결성해 독립 투쟁을 벌이고 있으며, 실제로 말레이시아 정부가 스코틀랜드 독립문제처럼 사바의 독립을 허락할 지는 큰 의문이다.

대 인도네시아 관계[편집]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는 문화적, 민족적으로도 공통점이 많은 나라다. 두 나라 다 말레이인, 또는 말레이 계열의 민족들이 대부분이며 언어도 말레이어를 사용하지만, 서구 열강들의 분단으로 인해 서로 다른 생각과 특징들을 많이 갖고 있다. 말라야가 1957년 독립한 이후 수하르토는 위대한 인도네시아(Indonesia Raja; 말레이시아에서는 '위대한 말라야'라는 뜻으로 'Melayu Raya'라고 했다)를 주장하며 말라야와 함께 대(大)말레이 국가의 건설에 대해 논의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논의 과정에서 파열음이 생겼고, 말라야가 싱가포르, 사라왁, 사바를 합병한 뒤 '말레이시아'를 건국하려 하자 관계가 틀어져, 결국 위대한 인도네시아는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후에 인도네시아는 사바를 무력으로 합병하였고, 이에 말레이시아가 군을 보내 사바를 되찾았다. 1960년대 양국간의 관계는 그리 좋지 않았으며, 1965년 1월 1일 인도네시아가 말레이시아가 안전보장이사회 회원국으로 선임된데 대하여 항의의 표시로 유엔을 탈퇴한 일도 있었다.[13]

그 후 영토분쟁 등 모든 것이 그나마 해결됐지만, 현재도 양국간의 분쟁은 이어지고 있다. 특히 외국인 배척 및 탄압이 심한 말레이시아는 인도네시아에서 온 노동자들의 인권을 유린한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가운데, 불법체류자들에 대한 강제추방, 심문, 고문, 심지어는 강제처형으로 인도네시아 정부로부터 큰 비난을 받고 있다. 2014년 12월 말레이시아 정부가 자국에 불법체류 중인 인도네시아인 7만명을 추방시켜, 인도네시아 측의 비난을 받았다.[14] 최근 조코위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말레이시아 나집 라작 총리를 방문했으며, 조코위는 자국 여성들의 해외 가정부 취업을 즉각 중단시킬 방침이라고 밝혔다.[15]

대 러시아 관계[편집]

러시아는 말레이시아의 주요 무역상대국이며 러시아제 무기를 구입하는 나라이지만, 피격사건의 영향으로 반러감정이 심각해지고 있다.[16]

국방[편집]

  • 말레이시아 공군 : SU-30MKM,F/A-18D,Hawk 208,MIG-29,F-5E,RF-5E,King Air 200 MPA,KC-130H,A400M,C-130H,CN235,EC725,S-61,Hawk 108,MB-339,PC-7/MK2

경제[편집]

주로 주석, 팜유, 석유를 생산.수출하며, 제조업관광업을 주요 산업기반으로 삼고 있다. 이 나라는 1997년 외환위기를 겪었으나 자체적으로 극복하였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1998년 9월 초 환율을 고정시키는 조처와 함께 자본통제에 들어갔다. 자기나라 통화인 링깃화의 달러화 환전을 못하게 하고, 나라 밖에 있는 링깃화는 2달 안에 모두 국내로 갖고 들어오도록 하여, 외국에 그냥 놔 둔 링깃화는 그 가치를 인정하지 않기로 했다. 또 국내 증권을 산 외국인이 그 증권을 다시 팔려면 1년을 기다리도록 했다. 자본통제는 국내경제를 해외 금융·외환시장과 차단한 뒤 경기부양 정책을 펴기 위한 사전조처였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이런 조처 뒤 통화량 확대공급, 금리인하, 공공지출 확대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경기부양 정책들을 단계적으로 취해 나갔다.[17]

IMF의 통계에 의하면, 말레이시아의 2008년 국내총생산(GDP)은 2216.06억 달러이다. 영국의 식민지 시대부터 고무의 플렌테이션과 주석의 채굴, 천연가스의 채굴 등 특정한 농작물과 광물의 생산이 번성하였으나, 마하티르 빈 모하마드 전 총리가 내세웠던 "와와산 (말레이어로 비젼의 뜻) 2020"(비젼 2020, Vision 2020) 정책에 따라, 종래의 농작물과 광산물의 수출, 관광업에 의존하였던 체질로부터 탈피하여 2020년까지 말레이시아의 정치.경제.문화 각 방면을 선진국 대열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2010년 6월, 경제발전과 현대화를 위해인프라 프로젝트에 700억달러 규모의 자금 투입과 연 경제성장률 6% 달성 등을 핵심으로 하는 향후 5년간의 제10차 말레이시아 개발 계획을 발표했다. 나지브 총리는 “말레이시아는 해외 투자자들을 더 많이 유치할 수 있도록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면서 “재능있는 말레이시아인들이 싱가포르나 홍콩으로 빠져나가지 않고 현지에서 일할 수 있도록 장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18]

통화[편집]

말레이시아의 통화 단위는 말레이시아 링깃(RM)으로, 1링깃은 약 325원 정도이다. 보조통화는 센(SEN)이라고 하며, 1링깃은 100센에 해당한다. 지폐는 100링깃, 50링깃, 20링깃, 10링깃, 5링깃, 1링깃의 6종류가 있고, 동전은 50센, 20센, 10센, 5센, 1센의 5종류가 있다. 말레이시아에서는 공항이나 시중 은행, 호텔에서 환전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생수 500ml의 경우 약 1링깃(400원 정도), 택시의 기본 요금은 3링깃(1200원 정도)이다.[19]

산업[편집]

경제는 전적으로 농업, 광업 등 1·2차 산업에 의존하고 있다.[20] 말레이시아는 세계최대 주석, 천연 고무, 팜유 생산국으로 1960년대 만 해도 주요수출품이 주석과 팜유였다. 이후 정부의 강력한 경제정책으로 말레이시아는 동남아국가 중 3번째로 국민소득이 높은 나라가 되었으며, 주요 산업도 관광업제조업으로 전환되었다. 농업에 있어서는 주산물이 쌀, 고무, 코프라 등이다. 쌀은 국민의 주식이지만, 쌀 자급률이 30%에 불과해, 자급자족하지 않고 매년 다량의 쌀을 수입한다. 따라서 정부는 관개사업 실시, 벼의 품종 개량 등을 통해 생산량을 증가시키는 데에 주력하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세계최대의 고무 생산국으로, 수출품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합성고무의 발달, 고무 농원 노동자 등의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21] 그 외에도 열대과일 재배, 도시근교 채소, 원예농업이 발달되어 있다. 광업에서는 주석광(錫鑛)과 철광이 압도적으로 중요하다. 말레이시아는 세계 최대 주석 생산국으로 주석광은 서해안 몬타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충적토를 준설(浚渫)하여 채굴하며 주석을 가공하는 산업이 발달되어있다. 철광은 동해안에 있으며 그 대부분이 일본으로 수출된다.[22] 그리고 석유산업도 사라와크주에서 소량 산출되었으나, 그 후 사바주·사라와크주에서 대규모 해양유전이 개발되면서 석유채취, 가공산업도 주요산업이 되었다. 제조업은 1970년대 말부터 개발하기 시작해 지금은 동남아시아에서 제조업이 발달한 국가 중 하나가 되었으며 주로 전기·통신기계와 수송기계 생산을 하고 수출을 하고 있다. 그리고 관광업도 이 나라의 주 수입원이다. 고무, 주석광, 철광석은 수출하며 식량과 공업제품을 수입한다. 따라서 경제는 고무, 주석, 철의 국제가격의 변동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약간의 1차 산품만을 생산하는 산업구조는 식민지 경제의 유산이다.[23]

교통[편집]

육상교통은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들보다 잘 발달해 있다. 모노레일도 운행 하고 있으며 특히 서해안을 따라 포장도로와 철도가 잘 정비되어 있다.[24] 말레이시아의 도로망은 98,721㎞에 달한다. 그 중 1,821㎞는 고속도로이다.[25] 차량은 좌측통행을 한다.

철도[편집]

말레이 반도 지역에는 말레이 철도의 노선망이 있다. 일반 철도(고속 철도 포함), 경전철(LRT), 모노레일 그리고 케이블 카가 있다. 일반 철도는 대부분 도시간 승객 수송과 화물 운송, 그리고 일부 시내 대중교통으로 사용된다. 긴 반도의 서해안 끝의 조호바르(Johor Bahru)에서 타이 접경의 파당 베사르(Padang Besar)까지 서해안 950km를 연결하고 있으며 동해안선은 쿠알라룸푸르와 싱가포르의 중간지점에 자리잡은 게마스에서 타이 동해안쪼 접경 툰팟까지 528km를 잇고 있다. 서해안선과 동해안선은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그 사이의 고산지대와 열대우림지대를 버스가 연결시켜 주고 있다.[26] :54경전철은 시내 대중교통이나 공항 내 청사 간의 승객 수송과 같은 특별한 용도로 사용된다.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쿠알라룸푸르 시내를 잇는 고속철도 노선도 있다. 이 노선에는 2가지 열차편이 운행 중이다. 말레이시아에서 유일한 모노레일 노선은 쿠알라룸푸르의 대중교통으로 이용되는 것이고, 유일한 케이블 카는 페낭에 있다. 쿠알라룸푸르 주변에는 모노레일을 위시한 각종 통근 철도가 발달해 있다. 자동차는 약 900만대이며 인구 3명당 1대이다.

도로[편집]

영국의 식민 통치 시기부터 도로가 정비되어 왔다.

항공[편집]

말레이시아 항공에어아시아 등에서 국내외 항로에 취항하고 있다. 특히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은 유럽과 오스트레일리아를 잇는 항로의 주요 경유지로 사용되고 있다. 최근 파이어플라이가 합세하였다.

사회[편집]

온건주의 이슬람 국가인 말레이시아는 말레이인, 중국인, 인도인 등 다양한 민족이 어우러 사는 다민족 국가이다.[2] 최근 저렴한 물가 등으로 외국인들의 대표적인 유학 장소로 꼽히고 있으며,[27] 임금 및 근로환경이 양호해 해외 노동자들, 특히 인도네시아 노동자들의 진출이 매우 크다.[14] 그러나 이러한 장점 뒤에는 심각한 분열과 인권 탄압이 숨어져 있다.

인구[편집]

Percentage distribution of Malaysian population by ethnic group, 2010
2010년 조사에 따른 민족별 비율

2010년 조사에 따르민 인구는 28,334,135명이며,[28] 말레이시아는 세계에서 42번째로 인구가 많은 나라이다. 이 안에는 다양한 인종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27] 2010년 기준으로 인구의 91.8%가 말레이시아 시민권자이며 이 중 67.4%가 부미푸트라이다.[29] 헌법상 말레이인은 무슬림들이며 말레이 문화와 관습을 따른다고 명시되어 있다. 대게 인도네시아에서 건너온 이들의 후손이며 경제적으로는 가난하지만 정치적으로는 지배적인 역할을 한다.[30] 부미푸트라는 꼭 말레이인이 아니더라도, 타이인, 크메르인, 시암인 및 사라왁, 사바인도 포함한다. 비말레이계 부미푸트라는 사라왁 인구의 반 이상을 차지하며 사바 인구의 ⅔ 이상을 차지한다.[25] 말라야 지역에는 어보리진 계열의 오랑아슬리들이 소수 거주한다.[31] 주마다 부미푸트라가 갖는 법적인 지위는 다르다.[32]

부미푸트라의 지위를 사실상 잃게 하는 타 민족들도 인구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24.6% 가량은 중국인이며 7.3% 가량은 인도인들이다.[29] 중국인들은 역사적으로부터 사업과 경제 등에서 우위를 점하며, 풀라우피낭 주에서는 다수 민족이다. 인도인들은 대부분이 남부 인도 계열인 타밀인이며 19세기 초반 말레이시아에 유입되었다.[33][34] 말레이시아에서는 단순히 말레이시아에서 태어났다고 하여 시민권이 주어지지 않으나, 해외에서 말레이시아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시민권이 주어진다. 이중국적은 허용되지 아니한다.[35] 이민자의 시민권 취득은 보르네오 지역(사라왁, 사바)과 말라야 지역과 뚜렷하게 구분된다. 모든 시민들은 12세에 마이카드(MyKad)라고 불리는 신분증을 발급받는데 생물학적 스마트 칩이 내장되어 있어 논란이 되고 있으며, 어딜 가든 무조건 갖고 다녀야 한다.[36]

A map of Malaysia depicting the expected 2010 estimated population density.
2010년 조사에 따른 1제곱미터당 인구 밀도

유아 교육(어린이집, 유치원)은 의무가 아니지만, 초등 교육은 모든 말레이시아인들이 의무적으로 받아야 한다. 초등 교육은 총 6년이며 그 다음에는 중등 교육을 받는데 이 이상은 의무가 아니다. 고등학교가 없는 대신 중학교가 5학년까지 있다.[37] 초등학교는 두 종류로 나뉘는데 말레이어를 쓰는 공립학교와 중국어나 타밀어를 쓰는 문화 학교가 있다.[38] 중등 교육은 총 5년이며, 중학교 5학년 학생들은 SPM(Sijil Pelajaran Malaysia)이라고 불리는 대학 입시 시험을 보게 된다.[39] 1999년부터 대학 입시 프로그램이 시행됨에 따라 12개월의 대학 입시 프로그램을 거친 학생들은 공립 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다. 하지만 비부미푸트라에게는 10%만 열려있어, 실제로 비부미푸트라의 공립 대학교의 입학이 어렵다.[40]

2009년 유아 사망률은 1000명당 6명이었으며 기대 수명은 75세였다.[41] 말레이시아를 의료관광목적지로 발전시키려는 목표에 따라, 5%의 사회개발영역 정부예산이 보건에 사용된다.[42] 인구의 대부분은 말라야 지역에 집중돼 있으며[43] 약 2800만 명 중 2000만 명 가량이 말라야 지역에 살고 있다.[44] 인구의 70%가 도심 지역에 살고 있다.[25] 쿠알라룸푸르는 수도[25]이자 말레이시아의 최대 도시이며,[45] 통상과 재무의 중심지이다.[46] 1999년 계획되어 현재 건설 중인 푸트라자야는 정부의 중심지이며,[47] 쿠알라룸푸르의 혼잡을 최소화하기 위해 특별히 만들어졌는데 행정부와 사법부의 상당 부분이 존재한다.[48] 노동 집약적 산업의 발달로[49] 인구의 10%에 해당되는 3백만 명의 이주 노동자가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50] 사바에 중심을 두고 있는 비정부기구들은 사바 인구 3백만 명 중 2백만 명이 불법이민자로 추정하고 있다.[51] 말레이시아는 171,500명의 난민과 망명인들을 받아들이고 있는데 79,000명은 미얀마, 72,400명은 필리핀, 17,700명은 인도네시아인이다. 말레이시아는 2007년 공식적으로 인신매매범들을 강제 추방키로 했으며, 논란의 역사를 갖고 있는 자원군 RELA를 고용하여 해당 이민법을 실시했다.[52]

말레이시아의 대도시 (2010년 기준)[53]

Kuala lumpur skyscrapers.jpg
쿠알라룸푸르
Johor Bahru City.jpg
조호르바루

Rank 도시 주(또는 연방직할시) 인구 (명) 보기  토론  편집  역사

Ipoh, Perak.jpg
이포
Shah Alam Lake Gardens, Selangor.jpg
샤알람

1 쿠알라룸푸르 연방직할시 연방직할시 1,475,337
2 조호르바루 조호르 주 조호르 주 1,334,188
3 이포 페락 주 페락 주 704,572
4 샤알람 슬랑오르 주 슬랑오르 주 671,282
5 프탈링자야 슬랑오르 주 슬랑오르 주 638,516
6 쿠칭 사라왁 주 사라왁 주 617,887
7 코타키나발루 사바 주 사바 주 462,963
8 쿠알라트렝가누 트렝가누 주 트렝가누 주 343,284
9 믈라카 믈라카 주 믈라카 주 331,790
10 알로르스타르 크다 주 크다 주 295,624
11 미리 사라왁 주 사라왁 주 280,518
12 조지타운 풀라우피낭 주 풀라우피낭 주 227,972

종교[편집]

Percentage distribution of Malaysian population by religion, 2010.
2010년 조사에 따른 인구 내 종교의 비율
코타키나발루의 이슬람 사원

말레이시아 헌법에는 이슬람교를 국교로 하지만,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54] 2010년 인구 주택 총 조사에 따르면, 민족과 종교가 꽤나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보여준다. 인구의 61.3%가 이슬람교를 믿으며, 19.8%가 불교, 9.2%가 기독교, 6.3%가 힌두교, 1.3%가 유교, 도교 등의 전통 중국 종교를 믿는다. 0.7%가 무교이며, 1.4%가 다른 종교를 믿거나 자신의 종교에 대해 밝히지 않았다.[28] 수니파와 샤피파가 말레이시아 이슬람의 지배적인 세력이다.[55][56]

말레이시아 헌법은 "말레이인"을 엄격하게 정의하고 있는데, 주로 무슬림이나, 말레이어를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사람이나, 말레이 문화를 따르거나, 브루나이, 말레이시아, 싱가포르에 살거나 그쪽의 후손인 사람들을 말레이인으로 보고 있다.[57] 2010년 통계에 따르면 중국인의 83.6%가 불교도이고, 3.4%가 도교도, 11.1%가 기독교도이며, 풀라우피낭 주에는 휘무슬림(Hui-Muslim)이라고 불리는 중국계 이슬람교도가 소수 존재한다. 인도인의 86.2%가 힌두교도이며 6.0%는 기독교도, 4.1%는 무슬림이다. 비말레이계 부미푸트라 사이에서는 기독교도가 46.5%로 매우 두드러졌으며, 40.4%는 이슬람교를 믿는다.[28]

무슬림들은 종교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의무적으로 샤리아 법원에 문제를 맡겨야 한다. 이슬람 판사들은 말레이시아의 주요 마다브인 샤피이슬람법학교의 규율을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55] 샤리아 법원의 사법권은 무슬림들의 결혼, 상속, 이혼, 배교, 개종, 양육권 등의 문제에 제한되어 있다. 기타 범죄 또는 민사위반죄 등의 사법권은 없으며, 이는 시민재판소에도 없다. 대법원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시민 법원은 종교적 문제에 대해 다루지 않는다.[58]

무슬림들은 사회적으로 우대받으며, 같은 부미푸트라라도 무슬림 부미푸트라가 비무슬림 부미푸트라보다 더 많은 혜택을 받는다. 예를 들어, 공립 대학교에 입학할 때 무슬림들은 가산점을 받아, 성적이 비록 낮게 나오더라도 입학하거나, 시험에서 쉽게 합격할 수 있다. 문제는 이들보다 성적이 높게 나온 비무슬림들이 시험이나 입학 과정에서 탈락하여, 무슬림 혜택은 종종 종교차별이라고 비판받는다. 또한 비무슬림이 무슬림들의 비위에 거슬리는 행동을 했다고 판단되거나, 무슬림처럼 행동하는 행위(예: 꾸란이나 샤하다가 적힌 옷을 입는 것, 무슬림들에게 무슬림식 인사를 하는 것, 무슬림들에게만 허락된 행위를 하는 것)는 무슬림들의 감정을 상하게 했다고 판단하여 처벌을 받을 수 있으며, 실제로 대한민국의 가수 그룹 B1A4는 무슬림들의 허락을 받고 그들과 같이 퍼포먼스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해를 받아 처벌을 받을 뻔한 적도 있었다. 또한 무슬림들을 상대로 한 선교활동은 금물이다. 그러나 아랍 국가들에 비하면 훨씬 온건한 편이며, 오히려 이슬람 과격주의, 원리주의, 테러주의 따위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2]

이슬람을 위한 모스크, 불교 신도를 위한 사찰, 힌두교의 힌두 사원, 그리고 교회와 성당까지 쉽게 찾아볼 수 있음은 물론 각 종교의 축제마다 타종교인들은 물론 관광객들도 함께 초대하여 즐기는 ‘오픈 하우스(Open House)’라는 행사를 개최한다. 종교 관련 축제 시기에 말레이시아를 방문하는 여행객들은 말레이시아 특유의 성숙된 관용의 문화를 실제로 관찰할 수 있다.

언어[편집]

색에 따른 지역별 언어 어군:
(크게 보시려면 클릭하세요)      말라위어      보르네오어      아슬리어      랜드다약어      사마바자우어      필리핀어      크리올어      복수 언어 사용 지역

말레이시아의 공용어는 말레이시아어(Bahasa Malaysia)이며,[25] a standardised form of the Malay language.[59] 이는 말레이어가 표준화된 형태이다. 정부 정책에 따른 전문용어는 말레이시아어이나,[60] 법률적으로는 공용어를 말레이어라고 한다.[61] 말레이시아어는 말레이시아의 공용어로, 현재 말레이시아에서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말레이시아 내의 논부미푸트라(Non-Bumiputera)들도 이를 구사하는 사람들이 많으나, 일부는 이를 구사하지 못한다. 말레이어의 또 다른 표준인 인도네시아어와 매우 흡사하여 의사소통에도 큰 지장을 주지는 않는다(다만, kantor, mampir, apotek, karcis, akuntabel 등 말레이시아에서 사용되는 단어와 비슷도 하지 않은 단어들을 사용할 경우 큰 지장이 생길 수 있다). 본래 말레이어의 철자법은 영국이 정한 걸 개정한 자아바(Za'aba)였으나, 네덜란드식 철자법을 개정한 수완디(Soewandi)를 사용하는 인도네시아와 마찰을 일으키자 합의하여 완전한 철자법(EYD; Ejaan Yang Disempurnakan)을 제정했다. 표준 말레이어는 구 조호르리아우어와 고급 말레이어의 중간 위치를 점한 것이 오늘날에 이르른 것으로 추정된다. 1967년 공용어법에 따르면 "말레이어의 문자는 루미(로마 문자)로 한다"고 하지만, 이는 말레이 문자라고 하는 자위(아랍 문자)의 사용을 금하는 것이 아니다.[62] 다만 일상적으로 루미를 훨씬 더 선호하며, 자위는 대게 이슬람교에 관련된 부분에서만 제한적으로 사용된다. 말레이시아인들은 일상적으로 변칙어(broken language) 형태의 말레이어를 사용하며, 이것은 어디나 일상화돼 있다. 예를 들어, 상대방에게 어디 가냐고 물을 때 주로 'Kau pigi mana?'를 사용하지만, 제대로 된 형태는 'Di manakah (yang) engkau pergi?'이다. 심지어 'yg(원래는 yang)', 'utk(원래는 untuk)', 'm'cri(원래는 mencari)' 등 축약형들까지 널리 사용된다. 정부는 변칙 말레이어의 사용을 배제하고 있지만, 생활에 깊숙히 배어있는 건 물론 광고에서조차 널리 사용되어, 실질적으로 배제할 순 없는 실정이다.[63][64]

현재는 전 지역에서 말레이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지역에 다라 조금씩, 때로는 큰 차이를 보인다. 보르네오 지역(사바, 사라왁, 라부안) 주민들이 사용하는 말레이어와 말라야 지역(쿠알라룸푸르, 슬랑오르 등 말레이 반도 지역)에서 사용하는 말레이어는 적지 않은 차이를 보이는데, 예를 들어 'a'로 끝나는 단어들은 보르네오 지역에서는 '아' 그대로 발음하지만, 말라야 지역에서는 '으'와 '어'의 중간정도로 발음한다. 또한 '망가진, 훼손된'을 뜻하는 단어인 'rosak'도 보르네오 지역, 특히 사바와 라부안에서는 인도네시아어인 'rusak'에 가깝게 발음한다. 또한 보르네오 지역에서는 말라야 지역에서 사용되지 않는 'anu'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그 밖에 클란탄 주에서는 태국어의 영향이 큰 클란탄팟타니어, 또는 클란탄 말레이어를 사용하는데 말레이시아인들이 잘 알아듣지 못하는 단어들이 있다. 특히 '먹다'를 뜻하는 'makan'을 'make', '안된다'를 뜻하는 'jangan'을 'jange'라고 하는 등 'an', 'am' 등으로 끝나는 단어를 'e'로 끝낸다.[65]

말레이어 외에도 영어 역시 상업과 공업에서 널리 쓰이며, 말레이시아 학생들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영어 교육을 받는다. 영어는 역사적으로 공용어였지만, 1969년 5·13 사건 이후 말레이어가 두드러졌다.[66] 1967년 공용어법에 따라 영어는 일부 공식적 자리에서 공용어로서의 역할을 하나, 꼭 공용어라 하긴 어렵다.[62] 영어는 대부분의 국민이 제2언어로 사용하며, 사업분야에서 널리 사용되는 것은 물론 대학에서도 대게 이 언어 위주로 사용한다. 말레이시아에서 규정하는 표준 영어는 '말레이시아 표준 영어'로 영국식 영어의 영향을 크게 받았으며, 학교 교육 역시 영국식 영어로 가르친다(다만, 일상 또는 온라인 상에서는 미국식 영어를 섞어 쓰는 경우도 종종 있다). 말레이시아인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영어는 싱글리시와 유사한 소위 '맹글리시(Manglish)'나 '망글리시'로 불리는 독특한 영어를 사용하는데 이는 영어권 화자들이 전혀 알아듯지 못하는 상당한 부분을 포함하며,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변칙영어(broken english)가 만연하다. 예를 들어 맹글리시 단어 중에는 'where got'이 있는데, 이는 말레이어 'mana ada'를 그대로 직역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정확한 영어로는 'What are you talking about'이다. 맹글리시는 싱가포르의 싱글리시처럼 문장 끝에 'lah'를 붙이는 경향이 있다.[67] 또한 말레이어 단어나 중국어 단어를 넣는 경향이 있는데, 예를 들어 'disturb'대신 'kacau'를, 'very' 대신 'sibeh'를 사용한다. 말레이시아는 한 문장에 4개국어 이상의 언어를 사용하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로 평가받지만, 한편으로는 심각한 변칙영어 때문에 외국인들 앞에서 자칫 망신을 당할 수 있다고 비난을 받는다.[67] 말레이시아인의 상당수가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하지 못하며, 특히 말레이시아의 영어 교육도 신뢰도가 떨어지는 편이다. 주민들은 물론 정부 내에서도 영어교육을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일각에서는 싱가포르가 싱글리시를 배제하듯이 말레이시아도 맹글리시를 배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말레이시아 내 중국계들은 중국어를 사용하는데, 모두가 같은 중국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표준 중국어인 만다린 외에도 방언인 객가어, 광둥어 등 종류가 다양한데 말레이시아 중국어는 이들이 전반적으로 섞인 편이다. 하지만 각 고유의 중국어를 쓰기도 하며, 풀라우피낭 주에서는 '피낭 호키엔(피낭 객카어)'이라 불리는 독특한 방언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종류를 떠나서 말레이시아 중국어에는 성조가 덜 발달했으며, 실제로 회화에서도 성조를 지키는 경우가 매우 적다. 중국어 방언간의 차이가 커, 같은 중국인끼리 소통이 안 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말레이어에 반감이 있는 중국인들은 아무리 중국어로 통하지 않더라도 말레이어로 소통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대부분은 중국식 영어인 '칭글리시'로 분류되는 영어를 사용한다. 무엇보다도 중국인들은 중국어뿐 아니라 공용어인 말레이어와 통용어인 영어까지 총 3개국어(때로는 그 이상) 이상을 할 수 있다는 점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며, 외국에서 말레이시아 중국인들의 이런 점을 부러워하기도 한다.

말레이시아 내 인도인들은 주로 남부 인도인들로, 힌디어를 사용하는 집단이 아니다. 그들의 언어는 타밀어인데 말레이어를 주로 사용하는 말레이인, 중국어를 주로 사용하는 중국인과는 달리 타밀인들은 주로 영어를 사용한다. 타밀어를 할 줄 모르는 인도인도 적지 않다. 인도인의 한 갈래로 전반적인 상류식 교육을 받은 인도인들은 대부분 영어를 구사할 줄 알며, 이들의 영어는 말레이인이나 중국인들이 사용하는 영어보다 수준이 높다.

말레이시아는 적어도 70여 개의 다른 어족(語族)에서 생성된 다양한 언어들을 사용하고 있다. 이 모든 언어들은 사업, 여행, 산업, 라디오, TV 뿐만 아니라 교육기관 등에서 쓰이고 있으며, 최근 말레이시아를 자녀들의 유학 목적지로 선택하는 부모들이 늘고 있다.[27]

인권[편집]

말레이시아의 야당 지도자 안와르 이브라힘.

말레이시아는 오랫동안 반대파 억압, 불법 투옥, 심문, 고문, 강제처형 등 극단적인 인권 유린으로 비판을 받아왔다. 1957년 독립 이후 현재까지 50년 이상 장기 집권 중인 통일말레이국민조직(UMNO)은 야권 탄압 등 권위주의 통치로 비판을 받고 있으며, 특히 시위자들에 대한 불법적인 처벌이 가능한 '국가보안법' 및 부미푸트라들을 전적으로 우대하는 식의 인종차별 정책[68]은 종종 비판의 대상이 되곤 한다.

UMNO는 지난 60여년간 장기집권하면서 야권 탄압 등으로 비판을 받아 왔으며, 이 과정에서 구금되거나 살해, 추방당한 반체제 인사들이 적지 않다. 대표적인 반체제 인사들로는 안와르 이브라힘, 티엔 추아, 림관엥, 닉 아지즈 빈 닉 맛, 압둘 하디 빈 아왕 등이 있으며, 특히 정부의 눈엣가시로 간주되는 이는 종종 감시의 대상이 된다. 당초 이 부분은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1998년 11월 APEC 정상회의를 개최하면서 세계 정상들이 말레이시아에 입국했을 때 하나둘 씩 드러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당시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은 도착하자마자 그를 만나지 않고 당시 구속된 안와르의 부인 완 아지자부터 만나는 가 하면[69] 각국의 사회운동가 600여명도 몰려들어 내정을 문제삼았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시위가 터졌는데, 곧바로 유혈사태 직전까지 가더니, 시위자 색출을 위한 노란색 물대포까지 등장했다. 당시 총리였던 마하티르 빈 모하마드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나홀로'를 고집해 비판을 받았다.

2012년 12월 한 대학생이 정부의 대학 학자금 융자 규정 개정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다가 경찰이 동료 학생운동가를 체포하려 하자 이를 가로막은 혐의로 기소돼는 사건이 일어났다.[70] 당시 경찰이 선거법 개혁 요구 시위를 최루탄과 물대포를 쏘며 강경 진압해 큰 논란을 빚기도 했다. 이에 사회단체들과 야권은 이번 판결에 대해 총선을 앞두고 잇따라 개혁 입법 조처를 한 나집 라작 총리의 진정성을 의심케 한다며 반발하였다.

3개월 뒤인 2013년 3월에는 말레이시아에 체류하고 있는 필리핀들이 시위를 벌였는데, 필리핀 내 무슬림들에 대한 인권 유린을 중단하라는 내용의 시위였다.[8] 말레이시아는 1970년대 중후반부터 본격적인 이민자 제한 및 외국인 탄압 정책을 실시하고 있으며, 일반인들은 단지 비자문제가 까다로운 정도로 끝나지만(그것도 종종 불만을 품는 경우가 많다), 노동자들은 아예 인권을 심각하게 유린당하는 등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불법체류자들은 발각 시 강제 추방되거나,[8] 고문, 심문, 심하면 강제처형의 대상이 되고 있다. 미국 등 서방에서는 말레이시아에서 이루어지는 광범위한 인권 침해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말레이시아는 헌법상 다당제(또는 복수정당제)를 택하고 있으며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UMNO에 의한 일당독재체제이며 표현의 자유는 크게 제한되어 있다. 야당의 경우, 정부가 자신들의 눈엣가시처럼 보일 경우, 죄를 거짓으로 꾸며 야당 정치인들을 투옥하거나 고문, 심문하며, 최근 야당 지지율의 상승에도 불구하고 야당의 집권을 막기 위해 게리맨더링, 선거 결과 조작 등 광범위한 부정선거가 이루어지고 있다. 야권의 승리가 짐작되던 2013년 총선에서 UMNO를 포함한 BN 연합이 과반의석을 차지했으며, 이는 부정선거라는 비판을 받는다.[68] 20년 가까이 반체제 활동을 하고 있는 안와르 이브라힘은 정부로부터 '동성애' 혐의를 받아 수차례 투옥됐으며,[71] 최근 그 혐의가 인정돼 다시 투옥되었다.[71] 그러나 이는 정부가 '정권의 정적을 숙청하려는 의도'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71]

지방색[편집]

말레이시아는 정치적, 문화적 부분에서 매우 민감한 나라이기도 하다. 말레이시아인들은 자신이 말레이시아인들이라는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며, 말레이시아를 모욕하는 외국인들에 대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기도 한다. 이웃나라인 인도네시아나 유럽의 스페인처럼 지역마다 독특한 감정이 매우 심한 편이며, 아직까지 무장 게릴라 따위는 없으나 언제 이런 일이 일어날 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말레이시아인들은 민족별로 자신의 민족을 가장 최고로 여기는 경향이 세며, 특히 말레이시아의 실질적인 본토이자 구 말라야 연방의 영토였던 말라야 반도 주민들은 아예 자신의 민족이 아니면 아예 벽을 쌓는 경우가 매우 크다. 특히 중국인들은 경제권을 장악하고 있으며 스스로 이를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지만, 정치적으로는 말레이인보다 낮은 지위에 있어 말레이인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이슬람 주(술탄이 존재하며, 주로 Darul... 하는 주)에서는 더욱 심하며, 특히 클란탄 주가 가장 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대로 전반적으로 경제적 수준이 낮은 말레이인들은 경제적 수준이 높은 중국인들을 좋아하지 않는데, 일각에서는 말레이인들을 중국인들의 '종'으로 보기도 한다.

이러한 민족주의는 사라왁, 사바 등 보르네오 지역에서는 덜 심한 편이지만, 반대로 특유의 지역주의가 심한 편이다. 특히 적지 않은 사라왁, 사바인들은 스스로를 '말레이시아인'이라 생각하지 않으며, 사라왁과 사바가 말레이시아와는 전혀 다른 독립국가임을 주장하고 있다. 아직까지 바스크나 아체처럼 무장투쟁은 일어나지 않고 있으나, 최근들어 독립운동이 세지면서 서서히 문제가 되고 있다. 일부는 '말레이시아가 우리 지역을 불법 점령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최근 '사바 사라왁이 말레이시아를 떠나다(SSKM)' 등 독립운동 단체들이 결성되면서 추후 어떤 일들이 일어날 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문화[편집]

음악[편집]

말레이, 중국, 인도, 유럽, 그리고 다양한 원주민들의 문화가 섞인 말레이시아의 음악은 다양하기도 하다. 말레이시아의 전통 음악은 이라마(Irama)라고 하는데 오래 전부터 대중적인 장르로 손꼽히고 있다. 하지만 영국의 영향을 받은 팝이 더 주목을 받는 편이다. 말레이시아 팝은 말레이, 이슬람, 중국, 인도 가락 등이 섞인 로컬 팝과 서구적, 현대적 스타일이 강한 모던 팝 등으로 나뉜다. 대표적인 팝 아티스트로는 시티 누르할리자, 지아나 제인, 닝 바이주라, 나즈와 라티프, 샤리파 아이니 등이 있는데, 이 중에서 시티는 데뷔 이후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락이나 힙합도 대중적인 장르로 자리잡은 지 오래인데, 대표적인 락 아티스트로는 파이잘 타히르 등이 있다. 이 중 시티 누르할리자, 수디르만 아르샤드, P. 람리는 국민가수로 꼽히고 있다.

말레이시아 내에서 외국 노래들도 자국 노래 못지 않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데, 주로 한국, 미국, 영국, 인도네시아 등이다. 인도네시아 가수 크리스다얀티는 시티와 함께 듀엣 앨범을 내놓기도 했으며, 최근에는 시티 못지 않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각주[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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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 고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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