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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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Malaysia
Flag of Malaysia.svg
국기
표어 Bersekutu Bertambah Mutu
(단결은 힘)
국가 나의 땅
Malaysia on the globe (Southeast Asia centered).svg
수도 쿠알라룸푸르 (공식)
푸트라자야 (행정) 북위 3° 08′ 09″ 동경 101° 41′ 17″ / 북위 3.135833° 동경 101.688056° / 3.135833; 101.688056
북위 2° 55′ 00″ 동경 101° 40′ 00″ / 북위 2.916667° 동경 101.666667° / 2.916667; 101.666667
정치
공용어 말레이어
정부 형태 입헌 군주제, 연방제
아공 압둘 할림
총리 나집 툰 라작
역사
독립 영국으로부터 독립
 • 독립 1957년 8월 31일
 • 확장 1963년 9월 16일
지리
면적 329,847km² (67 위)
내수면 비율 0.3%
시간대 MST (UTCUTC+8)
DST UTC+8
인구
2005년 어림 25,347,000명
2000년 조사 23,953,136명 (45위)
인구 밀도 77명/km² (115위)
경제
GDP(PPP) 2012년 어림값
 • 전체 5,067억$ (29위)
 • 일인당 16,922$ (56위)
HDI 0.769 (64위, 2012년 조사)
통화 링깃 (MYR)
기타
ISO 3166-1 458, MY, MYS
도메인 .my
국제 전화 +60¹

¹ 020은 싱가포르에서 전화를 걸 때 사용된다.

말레이시아(말레이어: Malaysia), 마래서아(馬來西亞) 또는 말련(-聯)은 동남아시아에 있는 연방제 입헌 군주국이다. 말레이시아는 13개의 주와 3개의 연방 직할구로 구성되어 있고, 남중국해로 나뉜 말레이 반도 지역과 보르네오 섬 지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타이, 인도네시아, 브루나이와 국경을 맞대고 있고, 해상국경은 싱가포르베트남, 필리핀과 맞대고 있다. 연방정부는 푸트라자야에 있지만, 수도는 쿠알라룸푸르이다.

말레이시아의 역사는 18세기부터 대영 제국의 식민지가 된 말레이 왕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 영국의 식민지가 된 곳은 해협식민지로 불리었고, 다른 곳들은 보호령이 되었다. 1946년, 말레이 반도의 주들이 연합하여 말라야 연방을 세웠다. 1948년, 연방은 재편성되어 말라야 연방이 설립되었고, 1957년 8월 31일 독립을 하게 되었다. 1963년 9월 16일, 말라야 연방사바 주, 사라왁 주, 싱가포르와 연합하면서 Malaya란 이름에 si를 추가해 Malaysia가 되었다. 그러나 2년도 채 지나지 않은 1965년, 싱가포르는 연방에서 탈퇴하게 되었다. 말레이시아는 독립 이후 아시아에서 최고의 경제적인 기록을 가지고 있는데, 거의 50년동안의 GDP 성장률이 평균 6.5%라는 것이다. 말레이시아의 경제는 전통적으로 천연 자원에 거의 의존하고 있었으나, 최근에 과학, 관광, 무역, 의료관광등의 산업이 성장하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입헌군주국이며, 국가 원수는 군주로, 9개 주가 5년에 한 번씩(단, 궐위가 있을 경우에는 예외)술탄이 임명한다. 군주의 칭호는 양디-페르투안 아공이며, 지금 군주는 압둘 할림이다. 정부의 장은 수상이다. 정부체제는 웨스트민스터 체제에 가깝고, 법체계는 영국의 법에 기초한다. 말레이시아는 민족과 문화가 다양하고 그 다양성이 정치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국교이슬람교이지만, 헌법상 종교의 자유는 인정되고 있다.

말레이시아에는 유라시아의 최남단 지역인 탄중피아이가 있고, 적도근처에 위치하고 있어 열대 기후의 국가이다. 다양한 동식물군이 있어 생물 다양성이 큰 국가이다. ASEAN, 이슬람 회의 기구의 창립멤버이며, APEC, 영국연방, 비동맹 운동의 회원국이다.

2013년을 기점으로 말레이시아의 구매력 평가는 1인당 $17,674로 평가되었다.[1]

역사[편집]

인도양과 남중국해 사이의 말레이 반도는 예부터 동서양 무역상 및 여행객들의 장소였다. 5-6세기 유입된 힌두 문화와 불교 문화는 말레이시아 북서 지역에 빠르게 보급되었고, 14세기 무렵 아랍 상인들이 이슬람교를 소개하였다.[2] 말라카 해협(Straits of Malacca)을 중심으로 13세기까지 상업과 무역의 중심지로 번성한 말레이시아는 식민 열강들이 향료가 풍부한 말라카에 침범하기 시작하면서 외세의 지배를 받기 시작했다. 16세기 포르투갈의 침공 이후 네덜란드의 말라카 점령을 거쳐, 18세기 영국이 페낭(Penang)을 점령하면서 말레이시아 지역은 20세기 초까지 외세의 지배를 받았다. 바다 건너 보루네오 섬에 있는 사라왁주는 1841년 이후 영국 모험가인 제임스 브룩(James Brooke)과 후손들에 의해 통치되었으며, 1888년 사라왁주와 북 보루네오(추후 사바로 개칭됨)는 영국의 보호령이 되었다.[2]

1957년 8월 31일 말라야 연방(Malayan Union)이 대영제국에서 독립하였다. 이후 툰쿠 압둘 라만(Tunku Abdul Rahman)이 초대 총리가 되었으며, 투앙쿠 압둘 라만(Tuanku Abdul Rahman)이 초대 국왕이 되었다. 사바 주, 사라왁 주싱가포르,브루나이와 함께 1961년 9월 16일에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여 현재의 말레이시아 연방을 성립하였다.[3] 1962년에 브루나이가 독립하였다. 1965년에 싱가포르가 독립하였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지배계층이며, 말레이시아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말레이인들을 우대했다. 인민행동당을 이끌었던 중국계 정치가 리콴유는 이를 비판하였다. 그는 "중국계도 말레이 원주민과 같은, 엄연한 말레이인이다"라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민족 간의 불화로 인한 폭동은 종종 일어났고, 말레이시아 정부는 싱가포르가 이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다며 자국에서 추방하였다(싱가포르 입장에서 보면, 원치 않은 독립이다).

라만의 정책에도 불구하고, 1969년에 민족 간에 일어난 불화로 폭동이 일어나자(일명 5·13 사건), 인기를 잃게 된다. 라만은 사건이 터진 그 이듬해에 사임하였고, 대신에 부총리 압둘 라작이 신임 총리로 임명되었다. 라작은 민족 간의 불화를 막고 빈곤을 뿌리뽑고자 했으나 재임 중 급사하고 만다. 후임 총리 후세인 온은 단결을 강조하였으며, 민족 간의 불화를 막고자 했다.

후세인 온도 건강이 악화되었고, 5년만에 중도 사임했다. 이후 마하티르 빈 모하마드가 후임 총리로 임명되었는데, 그는 경제 발전을 위해 한국과 일본으로부터 본받고자 했다. 그는 여러 차례의 총선에서 승리하여 장기 집권에 성공한다.

2003년 압둘라 아마드 바다위가 신임 총리로 임명되었다. 2009년 압둘 라작의 아들인 나집 라작이 신임 총리로 임명되었다.

2011년 현재 말레이시아는 싱가포르, 브루나이, 인도네시아, 필리핀, 미얀마,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으로 구성된 동남아시아 국가 연합(ASEAN) 10개 회원국 중 하나로 활동하고 있다.

자연 환경[편집]

지리[편집]

말레이시아는 남중국해를 사이에 두고 크게 말레이 반도의 서말레이시아, 보르네오 섬 북부의 동말레이시아 두 부분으로 나뉜다. 국토는 329,758km2로, 3/4가 밀림 및 습지대로 구성된다.

      • 주: 말레이 발음은 격음이 없어 실제는 ㅋ ㅌ ㅍ 는 각각 ㄲ ㄸ ㅃ 로 발음 됩니다. (커다가 아니라 꺼다로 발음.)

기후[편집]

말레이시아는 적도와 가까워서 4계절이 없고 우기건기가 있는 고온다습열대성 기후에 속한다. 열대지역에 속하는 말레이시아의 기후는 연중 고온 다습한 편이다. 연평균 기온이 21~32℃로 연평균 강우량 2,000~2,500mm, 평균 습도는 63~80%이다. 최저 기온과 최고 기온의 기온 차는 9~12℃ 전후로 낮에는 30℃를 웃돌다가도 저녁과 밤에는 매우 선선한 기후를 유지한다. 건기와 우기는 지역마다 차이가 있으며, 우기라도 일시적인 열대성 소나기의 횟수가 증가하는 것이므로 여행에는 불편함이 없다.[4]

정치[편집]

말레이시아의 의회

말레이시아는 연방제 국가이며, 선거군주제를 기반으로 한 내각 책임제 체제이다. 현재 말레이시아의 정치 체제는 웨스트민스터 체제와 유사한데, 이는 영국 식민지의 유산이다. 국가 원수는 양디퍼르투안 아공인데, 흔히 왕으로 부른다. 왕의 임기는 5년이며, 프낭, 말라카, 사바, 사라왁을 제외한 9개 각 술탄(Sultan) 중에서 교대로 선출된다. 현재의 왕은 2011년에 선출된 압둘 할림이다. 왕은 총리와 내각을 임명할 권리와 군대 최고 사령관으로서의 통솔권 등을 갖는다. 1994년 헌법 개정 이후 왕은 대개 의례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의회는 연방의회와 주의회로 나뉜다. 양원제로 상원과 하원이 존재한다. 현재 국회의원은 총 222명이고, 최대 5년 임기를 갖는다. 상원의원 70명은 3년 임기를 갖으며, 그 중 26명은 13개의 주의회에서 선출되고, 나머지 44명은 총리의 제안에 따라 국왕이 임명한다. 국회는 다당제를 기초로 하며, 소선거구제 형태로 선출한다. 말레이시아는 1957년 독립한 직후 여러 개의 정당이 연합해 만든 국민전선(Barisan Nasional, BN)이 현재까지 집권하고 있다.

입법[편집]

말레이시아는 상.하원 양원제이다. 국회는 하원(대의원)과 상원(원로원)으로 나뉘어있다. 말레이시아의 정당으로는 민중운동의 성과인 말레이시아 사회주의당(PSM), 50년 이상 장기집권 중인 통일말레이국민조직(UMNO), 그리고 중국계들이 이끄는 말레이시아화교협회, 인민동맹 등이 있다. 통일말레이국민조직국민전선(Barisan Nasional)과 동맹당의 두 갈래로 나뉜다.

현재 집권여당은 UMNO이다. 예전에는 말레이시아공산당(PKM)도 있었다.

행정 구역[편집]

말레이시아는 13개 주와 3개의 연방지구(혹은 연방직할령)로 구성되어 있다. 1959년 14개 주로 독립한 후, 1965년 싱가포르가 탈퇴하여 13개로 줄어들었다. 연방지구로는 쿠알라룸푸르, 푸트라자야, 라부안이 있다.

대외 관계[편집]

말레이시아와 필리핀사바 주 일부 지역에 관한 분쟁을 외교문제화하지 않기로 합의하였다. 또한, 브루나이와는 분쟁 중인 대륙붕 지역에서 가스 및 석유채굴 작업을 중단하기로 2003년에 합의하였다.[5]

대한 관계[편집]

대한민국과 말레이시아는 1960년에 수교하였다. 1960년 2월 23일, 양국은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1962년 5월 콸라룸푸르에 주말레이시아 대한민국 대사관이, 1964년 4월에는 서울에 주한 말레이시아 대사관이 개설되었다.[6] 대한민국의 대(對)말레이시아 수출은 62억7513만USD, 말레이시아의 대(對)대한민국 수출은 104억6781만USD(각 2011년)에 달하여, 말레이시아는 대한민국에 있어서 제21위의 수출국이자 제14위의 수입국이다.[7] 모두 14,409 명(재외국민 14,403 명, 시민권자 6 명)의 한민족들이 말레이시아에 거주(2010년 12월 기준)하고 있다.[8] 말레이시아의 전 총리 마하티르 빈 모하마드는 "국가 경제의 발전을 위하여 일본과 대한민국으로부터 배우자"는 소위, 향동학습정책(向東學習政策, Look East Policy)을 펼쳤다.[9] 이 정책의 일환으로 말레이시아 정부는 장학생을 대한민국에 있는 대학으로 보내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도 수교하였다.

한편 대한민국의 최규하 전 대통령(1979-1980 재직)이 말레이시아 대사를 지내기도 했다.

대 타이 관계[편집]

라마 1세(재위 1782년 - 1809년)는 타이 세력을 크게 확장해 말레이반도의 클란탄까지 지배하였다.

국방[편집]

  • 말레이시아 공군 : SU-30MKM,F/A-18D,Hawk 208,MIG-29,F-5E,RF-5E,King Air 200 MPA,KC-130H,A400M,C-130H,CN235,EC725,S-61,Hawk 108,MB-339,PC-7/MK2

경제[편집]

주로 주석, 팜유, 석유를 생산.수출하며, 제조업관광업을 주요 산업기반으로 삼고 있다. 이 나라는 1997년 외환위기를 겪었으나 자체적으로 극복하였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1998년 9월 초 환율을 고정시키는 조처와 함께 자본통제에 들어갔다. 자기나라 통화인 링깃화의 달러화 환전을 못하게 하고, 나라 밖에 있는 링깃화는 2달 안에 모두 국내로 갖고 들어오도록 하여, 외국에 그냥 놔 둔 링깃화는 그 가치를 인정하지 않기로 했다. 또 국내 증권을 산 외국인이 그 증권을 다시 팔려면 1년을 기다리도록 했다. 자본통제는 국내경제를 해외 금융·외환시장과 차단한 뒤 경기부양 정책을 펴기 위한 사전조처였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이런 조처 뒤 통화량 확대공급, 금리인하, 공공지출 확대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경기부양 정책들을 단계적으로 취해 나갔다.[10]

IMF의 통계에 의하면, 말레이시아의 2008년 국내총생산(GDP)은 2216.06억 달러이다. 영국의 식민지 시대부터 고무의 플렌테이션과 주석의 채굴, 천연가스의 채굴 등 특정한 농작물과 광물의 생산이 번성하였으나, 마하티르 빈 모하마드 전 총리가 내세웠던 "와와산 (말레이어로 비젼의 뜻) 2020"(비젼 2020, Vision 2020) 정책에 따라, 종래의 농작물과 광산물의 수출, 관광업에 의존하였던 체질로부터 탈피하여 2020년까지 말레이시아의 정치.경제.문화 각 방면을 선진국 대열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2010년 6월, 경제발전과 현대화를 위해인프라 프로젝트에 700억달러 규모의 자금 투입과 연 경제성장률 6% 달성 등을 핵심으로 하는 향후 5년간의 제10차 말레이시아 개발 계획을 발표했다. 나지브 총리는 “말레이시아는 해외 투자자들을 더 많이 유치할 수 있도록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면서 “재능있는 말레이시아인들이 싱가포르나 홍콩으로 빠져나가지 않고 현지에서 일할 수 있도록 장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11]

통화[편집]

말레이시아의 통화 단위는 말레이시아 링깃(RM)으로, 1링깃은 약 325원 정도이다. 보조통화는 센(SEN)이라고 하며, 1링깃은 100센에 해당한다. 지폐는 100링깃, 50링깃, 20링깃, 10링깃, 5링깃, 1링깃의 6종류가 있고, 동전은 50센, 20센, 10센, 5센, 1센의 5종류가 있다. 말레이시아에서는 공항이나 시중 은행, 호텔에서 환전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생수 500ml의 경우 약 1링깃(400원 정도), 택시의 기본 요금은 3링깃(1200원 정도)이다.[12]

산업[편집]

경제는 전적으로 농업, 광업 등 1·2차 산업에 의존하고 있다.[13] 말레이시아는 세계최대 주석, 천연 고무, 팜유 생산국으로 1960년대 만 해도 주요수출품이 주석과 팜유였다. 이후 정부의 강력한 경제정책으로 말레이시아는 동남아국가 중 3번째로 국민소득이 높은 나라가 되었으며, 주요 산업도 관광업제조업으로 전환되었다. 농업에 있어서는 주산물이 쌀, 고무, 코프라 등이다. 쌀은 국민의 주식이지만, 쌀 자급률이 30%에 불과해, 자급자족하지 않고 매년 다량의 쌀을 수입한다. 따라서 정부는 관개사업 실시, 벼의 품종 개량 등을 통해 생산량을 증가시키는 데에 주력하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세계최대의 고무 생산국으로, 수출품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합성고무의 발달, 고무 농원 노동자 등의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14] 그 외에도 열대과일 재배, 도시근교 채소, 원예농업이 발달되어 있다. 광업에서는 주석광(錫鑛)과 철광이 압도적으로 중요하다. 말레이시아는 세계 최대 주석 생산국으로 주석광은 서해안 몬타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충적토를 준설(浚渫)하여 채굴하며 주석을 가공하는 산업이 발달되어있다. 철광은 동해안에 있으며 그 대부분이 일본으로 수출된다.[15] 그리고 석유산업도 사라와크주에서 소량 산출되었으나, 그 후 사바주·사라와크주에서 대규모 해양유전이 개발되면서 석유채취, 가공산업도 주요산업이 되었다. 제조업은 1970년대 말부터 개발하기 시작해 지금은 동남아시아에서 제조업이 발달한 국가 중 하나가 되었으며 주로 전기·통신기계와 수송기계 생산을 하고 수출을 하고 있다. 그리고 관광업도 이 나라의 주 수입원이다. 고무, 주석광, 철광석은 수출하며 식량과 공업제품을 수입한다. 따라서 경제는 고무, 주석, 철의 국제가격의 변동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약간의 1차 산품만을 생산하는 산업구조는 식민지 경제의 유산이다.[16]

교통[편집]

육상교통은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들보다 잘 발달해 있다. 모노레일도 운행 하고 있으며 특히 서해안을 따라 포장도로와 철도가 잘 정비되어 있다.[17] 말레이시아의 도로망은 98,721㎞에 달한다. 그 중 1,821㎞는 고속도로이다.[18] 차량은 좌측통행을 한다.

철도[편집]

말레이 반도 지역에는 말레이 철도의 노선망이 있다. 일반 철도(고속 철도 포함), 경전철(LRT), 모노레일 그리고 케이블 카가 있다. 일반 철도는 대부분 도시간 승객 수송과 화물 운송, 그리고 일부 시내 대중교통으로 사용된다. 긴 반도의 서해안 끝의 조호바르(Johor Bahru)에서 타이 접경의 파당 베사르(Padang Besar)까지 서해안 950km를 연결하고 있으며 동해안선은 쿠알라룸푸르와 싱가포르의 중간지점에 자리잡은 게마스에서 타이 동해안쪼 접경 툰팟까지 528km를 잇고 있다. 서해안선과 동해안선은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그 사이의 고산지대와 열대우림지대를 버스가 연결시켜 주고 있다.[19] :54경전철은 시내 대중교통이나 공항 내 청사 간의 승객 수송과 같은 특별한 용도로 사용된다.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쿠알라룸푸르 시내를 잇는 고속철도 노선도 있다. 이 노선에는 2가지 열차편이 운행 중이다. 말레이시아에서 유일한 모노레일 노선은 쿠알라룸푸르의 대중교통으로 이용되는 것이고, 유일한 케이블 카는 페낭에 있다. 쿠알라룸푸르 주변에는 모노레일을 위시한 각종 통근 철도가 발달해 있다. 자동차는 약 900만대이며 인구 3명당 1대이다.

도로[편집]

영국의 식민 통치 시기부터 도로가 정비되어 왔다.

항공[편집]

말레이시아 항공에어아시아 등에서 국내외 항로에 취항하고 있다. 특히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은 유럽과 오스트레일리아를 잇는 항로의 주요 경유지로 사용되고 있다. 최근 파이어플라이가 합세하였다.

사회[편집]

인구[편집]

말레이시아의 인구는 약 2,500만 명으로 인구의 60% 이상이 말레이 반도에 살고 있다. 다민족 국가인 말레이시아는 여러 종교를 축으로 각각의 국민성을 지니고 있다. 말레이시아 인구의 약 50%는 말레이인인데 이들은 인도네시아에서 건너온 이들의 후손이다. 자국민임을 강조하여 부미푸트라(Bumiputera)라고도 하며 이들의 대부분은 이슬람교에 기반을 둔 계율을 따른다.

인구의 약 25%는 말레이시아 화교, 중국계 말레이인 등으로 불리는 화교들이다. 이들은 수적으로는 말레이인들에 비해 적으며 정치적으로도 약하지만 경제적 영향력은 상당히 높다. 대부분은 불교에 기반을 둔 계율을 따르며 광동어 등의 중국어 방언을 쓴다.

또다른 집단은 인구의 약 8%를 차지하는 인도계로, 대부분이 타밀계이며 영어타밀어를 사용한다. 대부분은 힌두교에 기반을 둔 계율을 따른다.

전통 가옥에 살면서 각 부족들의 삶의 방식을 고수하며 독특한 전통 문화를 지키고 보존하는 원주민들인 오랑아슬리(Orang Asli), 사라왁의 원주민 이반(Iban), 사바의 원주민 카다잔(Kadazan)을 비롯한 기타가 약 10% 정도이다. 이들도 말레이인들과 함께 일종의 부미푸트라로 간주된다.

나아가 중국인과 말레이인의 혼혈 인종인 프라나칸(Peranakan)인, 그리고 유럽계의 다양한 인종들이 살고 있다. 유럽계는 주로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인들의 후손들이며 대부분 믈라카에 있는 주거 지역 내에 살고 있다. 다민족 국가인 말레이시아에서는 각각의 지역 사회를 형성하고 있으면서도 말레이시아 만의 조화로운 공존을 도모한다.[20]

언어[편집]

말레이시아의 공용어는 말레이어(Bahasa Melayu, Bahasa Malaysia)이며 영어가 널리 통용된다. 중국어, 타밀어, 아랍어, 이반어(사라왁의 원주민인 이반족의 언어)도 사용된다.

말레이시아는 적어도 70여 개의 다른 어족(語族)에서 생성된 다양한 언어들을 사용하고 있다. 말레이시아의 국어인 ‘말레이어(Bahasa Malaysia)' 외에도, 영어 역시 상업과 공업에서 널리 쓰이며 말레이시아 학생들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영어 교육을 받는다. 말레이어와 영어 이외에도 만다린(중국어), 타밀어(인도어)가 사업, 여행, 산업, 라디오, TV 뿐만 아니라 교육기관 등에서 쓰이고 있어 최근 말레이시아를 자녀들의 유학 목적지로 선택하는 부모들이 늘고 있다.[20]

말레이어[편집]

말레이시아의 공용어로, 현재 말레이시아에서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말레이시아 내의 논부미푸트라(Non-Bumiputera)들도 이를 구사하는 사람들이 많으나, 일부는 이를 구사하지 못한다. 인도네시아어와 매우 흡사하여 의사소통에도 지장을 주지는 않는다. 본래 말레이어의 철자법은 영국이 정했으나, 네덜란드식 철자법을 사용하는 인도네시아와 마찰을 일으키자 합의하여 철자법을 수정했다.

인권[편집]

말레이시아는 오랫동안 인권 유린으로 비판을 받아왔다. 1957년 독립 이후 현재까지 50년 이상 장기 집권 중인 국민전선(Barisan Nasional)은 반대파 억압 등의 권위주의 통치로 비판을 받아왔다. 특히 시위자들에 대한 불법적인 처벌이 가능한 '국가보안법'과, 부미푸트라들을 전적으로 우대하는 식의 인종차별 정책이 비판을 받아왔다.

1998년 11월 APEC 정상회의를 개최하면서 세계 정상들이 말레이시아에 입국했는데, 이 때 인권 문제가 하나둘 씩 노출되면서 비판을 받았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은 도착하자마자 그를 만나지 않고 당시 구속된 안와르의 부인 완 아지자부터 만났다.[21] 또한 각국의 사회운동가 600여명도 몰려들어 내정을 문제삼았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시위가 터졌다. 곧바로 유혈사태 직전까지 가더니, 시위자 색출을 위한 노란색 물대포까지 등장했다. 그러나 마하티르 총리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나홀로'를 고집해 비판을 받았다.

2012년 12월 한 대학생이 정부의 대학 학자금 융자 규정 개정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다가 경찰이 동료 학생운동가를 체포하려 하자 이를 가로막은 혐의로 기소돼는 사건이 일어났다.[22] 당시 경찰이 선거법 개혁 요구 시위를 최루탄과 물대포를 쏘며 강경 진압해 큰 논란을 빚기도 했다. 이에 사회단체들과 야권은 이번 판결에 대해 총선을 앞두고 잇따라 개혁 입법 조처를 한 나집 라작 총리의 진정성을 의심케 한다며 반발하였다.

3개월 뒤인 2013년 3월에는 또다른 시위가 일어났다. 말레이시아 내 필리핀인들이 벌인 시위였는데, 필리핀 내 무슬림들에 대한 인권 유린을 중단하라는 내용의 시위였다.[23]

5월 5일에 열린 총선에서 여당인 BN과 대결한 PR은 권위주의 청산을 공약으로 내걸었으나 패하였다. 야권 지도자 안와르는 이 선거가 부정선거라고 규정했다.

문화[편집]

말레이시아는 다민족국가이다. 주류 민족인 말레이족 뿐만 아니라, 중국계 말레이시아인, 인도계 말레이시아인도 거주한다.

종교[편집]

코타키나발루의 이슬람 사원.JPG

말레이시아의 국교이슬람교이지만, 실제로는 여러 종교가 혼재하는 다종교 국가이다. 일반적인 종교는 이슬람교, 불교, 도교, 힌두교, 그리고 기독교 등이 있다. 2000년의 정부 인구조사 통계에 따르면 전체의 60.4%가 무슬림 (수니파, 시아파 전부)이며, 불교 신자가 19.2%, 힌두교 신자가 6.3%, 기독교인이 9.1%(이 가운데 대부분은 동 말레이시아에 거주)를 차지한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이슬람교가 국교이며, 종교의 자유는 허용되지만, 국민, 특히 이슬람 교도에 대한 선교활동은 할 수 없다.

이슬람을 위한 모스크, 불교 신도를 위한 사찰, 힌두교의 힌두 사원, 그리고 교회와 성당까지 쉽게 찾아볼 수 있음은 물론 각 종교의 축제마다 타종교인들은 물론 관광객들도 함께 초대하여 즐기는 ‘오픈 하우스(Open House)’라는 행사를 개최한다. 종교 관련 축제 시기에 말레이시아를 방문하는 여행객들은 말레이시아 특유의 성숙된 관용의 문화를 실제로 관찰할 수 있다.

주석[편집]

  1. Malaysia. International Monetary Fund.
  2. http://www.mtpb.co.kr/About/history.asp
  3. http://www.mtpb.co.kr/About/Introduction.asp
  4. 문정인 외, 《동아시아의 전쟁과 평화》, 연세대학교출판부(2006) 505쪽
  5. 우리나라와의 관계. 주말레이시아 대한민국 대사관. “가. 기본일지... ㅇ 1960.2. 외교관계 수립 ㅇ 1962.5. 주말 우리 상주대사관 개설 ㅇ 1964.4. 주한 말레이시아 대사관 개설”
  6. 국가별 수출입. 한국무역협회.
  7. 국가별 재외동포현황(2011).xls (엑셀). 대한민국 외교통상부.
  8. (영어) Kit G. Machado (1987년 6월). Malaysian Cultural Relations with Japan and South Korea in the 1980s: Looking East. 《Asian Survey》 27 (6): 638. doi:10.1525/as.1987.27.6.01p00645. “The prime minister, Datuk Seri Mahathir bin Mohamad, urges Malaysians to look to both Japan and South Korea "for inspiration, methods, and skills" and "to emulate and learn ... [their] work ethics and attitudes" in order to further the country's economic progress.1 ... 1. Address at the 5th ASEAN-Japan Symposium in Kuala Lumpur, August 24, 1982, in Foreign Affairs Malaysia (hereinafter FAM), 15:3 (September 1982), p. 228.”
  9. 이주명 기자. "대단한 말레이시아!", 《한겨레신문사》, 1999년 7월 22일 작성. 2010년 5월 5일 확인.
  10. "말레이시아, 경제발전 박차 가한다", 《이투데이》, 2010년 6월 11일 작성.
  11. http://www.mtpb.co.kr/Travel/Money.asp
  12.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말레이시아의 산업·무역
  13.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농업
  14.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광업
  15.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무역
  16.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말레이시아의 교통·도시
  17. Malaysia. Cia.gov. 2010년 10월 26일에 확인.
  18. 김성기 (2000년). 《코스따라 세계여행 동남아시아》. 민서출판사. ISBN 978-89-422-0046-7
  19. http://www.mtpb.co.kr/About/culture.asp
  20. MBC뉴스데스크 (1998년 11월 16일). 말레이시아 인권, 경제, 언론 문제점 모두 노출[최창영]. 2013년 5월 1일에 확인.
  21. 이주영 (2012년 12월 22일). 반정부 시위 말레이시아 대학생 징역형 논란. 2013년 5월 1일에 확인.
  22. 연합뉴스 (2013년 3월 13일). "말레이시아는 인권유린 중단하라". 2013년 5월 1일에 확인.

바깥 고리[편집]

말레이시아[편집]

대한민국[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