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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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스카 공화국
Rzeczpospolita Polska
Flag of Poland.svg Herb Polski.svg
국기 국장
표어 Bóg, Honor, Ojczyzna
(하느님, 명예, 조국)
(비공식 표어)
국가 폴란드는 아직 죽지 않았다
Poland on the globe (Europe centered).svg
수도 바르샤바 북위 52° 13′ 56″ 동경 21° 00′ 30″ / 북위 52.2323° 동경 21.008433° / 52.2323; 21.008433
정치
공용어 폴란드어
정부 형태 의원 내각제 공화국
대통령
총리
브로니스와프 코모로프스키
도날트 투스크
역사
성립 과정  
 • 천주교 개종 966년 4월 14일
 • 공화국 독립 1918년 11월 11일
 • 민주화 1990년
지리
면적 312,679km² (69 위)
내수면 비율 3.07%
시간대 CET (UTC+1)
DST CEST (UTC+2)
인구
2007년 어림 38,518,241명
2002년 조사 38,230,080명 (33위)
인구 밀도 122명/km² (83위)
경제
GDP(PPP) 2012년 어림값
 • 전체 $8,209억 (20위)
 • 일인당 $21,000 (48위)
HDI 0.821 (39위, 2012년 조사)
통화 즈워티 (PLN)
기타
ISO 3166-1 616, PL, POL
도메인 .pl
국제 전화 +48

폴란드 공화국(폴란드어: Rzeczpospolita Polska 제치포스폴리타 폴스카[*]), 약칭 폴란드(폴란드어: Polska 폴스카[*], 문화어: 뽈스까)는 중앙유럽에 있는 공화국이다.

북위 49°~54˚, 동경 14°~24°에 걸쳐 중앙유럽의 대평원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국토의 75%가 해발 200M 이하) 동쪽으로는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리투아니아러시아(월경지 칼리닌그라드 주), 남쪽으로는 체코슬로바키아, 서쪽으로는 독일 등 7개국과 접하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발트 해에 접한다. 수도인 바르샤바는 폴란드의 중앙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민족 구성으로는 서슬라브족에 속하는 폴란드인으로 공용어는 폴란드어다. 이 나라는 서슬라브족 국가들 중에서 인구가 가장 많기도 하다. 중앙유럽 국가 중에서는 드물게 그리스 정교 대신 천주교 신자들이 많은 나라다.

역사[편집]

10세기 경의 폴란드

왕국시대[편집]

원래 지금의 폴란드 땅에는 게르만족들이 살고 있었다. 10세기 경, 폴라니에족을 중심으로 나라가 형성되어 민족과 국토의 명칭이 생겨났다. 966년 가톨릭을 받아들이며 피아스트 왕조가 성립되었고 크라쿠프가 정치적 중심지로 발전했다. 200여년의 공국 분할 시대를 거쳐 중앙 집권 국가를 이루었다. 1385년, 피아스트 왕조에 이어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연합 왕조인 야기에오 왕조가 탄생하였다. 1410년 그룬발트 전투에서 독일군을 격파, 발트해로 통하는 길이 열리며 16세기에는 유럽의 곡창 지대로 최대 전성기를 맞았다.

귀족 공화정[편집]

1573년 야기에오 왕조가 끝나고, Luban귀족들이 국왕을 선출하는 일종의 귀족 공화정이 등장하였고 1596년에 수도를 크라쿠프에서 바르샤바로 이전했다.

외세의 지배[편집]

투르크, 스웨덴과 전쟁 등으로 국력이 쇠퇴, 프로이센, 제정 러시아, 오스트리아 3국이 점진적으로 폴란드를 침입해 1795년 폴란드를 분할하여, 나폴레옹에 의한 바르샤바 공국 시대(1807~1815) 외에는 1795년부터 1918년까지 3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그의 맞서 1830년 독립을 위한 혁명 정부를 조직하여 혁명으로 이어졌으나 제정 러시아의 탄압과 사상적 내분으로 독립투쟁은 실패했다.

독립[편집]

제1차 세계 대전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이 제창한 민족자결주의 원칙에 따라 1918년 독립하였다.

1919년, 우크라이나벨라루스를 지배하던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시절을 답습하고자 폴란드군커즌 선을 넘고 소련에 대한 전쟁을 개시했다.

이후 우크라이나 키예프까지 밀고 들어가던 폴란드군은 키예프 전투에서 큰 패배를 당하게 되고 금새 바르샤바(Warszawa)까지 밀린다.

하지만 바르샤바 전투에서 승리한 폴란드군은 다시 소련에 대한 공세를 재개하였다.

결국 리가 조약으로 폴란드-소련 전쟁이 끝나고 폴란드는 서우크라이나, 서벨라루스, 리투아니아 동부를 얻게 되었다.

1926년, 유제프 피우수트스키(Józef Piłsudski) 원수쿠데타를 일으켜서 폴란드의 민주 정치는 끝나고 군사 정권이 시작되었다.

나치 독일[편집]

1939년 나치 독일소련의 침략(제2차 세계 대전)을 받고 서부지역은 나치 독일에, 동부는 소련에 분할 점령되었다가 1945년 해방되었다.

공산당 정부[편집]

전쟁이 끝난 뒤에는 서쪽의 옛 독일 영토를 새로 획득하였지만 그보다 더 넓은 동쪽 영토를 소련에게 빼앗겼다. 그러나 옛 독일 영토인 오데르-나이세 선 문제는 미해결로 남겨 놓아서 유럽 정치가 풀어야 할 숙제가 되고 있다. 대전이 끝난 직후 1945년 6월 노동자당 즉 공산당과 사회당이 중심이 되어 통일 정부를 세웠지만,[1] 1947년 총선 결과 노동자당의 압승으로 공산당 정부가 수립되었다. 1948년에는 노동자당과 사회당이 합병해서 통일노동당이 되고, 1952년에는 인민공화국 헌법이 채택되었다.[1] 냉전을 거치며 소비에트 연방의 강한 영향력 하에 있었다. 1956년의 정변으로 당제1서기에 복귀한 브와디스와프 고무우카는 민족공산주의자로 친소파(親蘇派)를 몰아내고 정치범을 석방했으나 1970년의 노동자·학생 폭동으로 기에레크가 서기장으로 취임하여 친소 노선으로 바뀌었다. 1976년 6월 24일 물가폭동 등으로 다시 노동자·학생이 봉기했으나 정치 권력의 변동은 없었다.[1] 그러나, 경제 실정과 지도층의 부패로 노동자 파업 투쟁이 일어났고, 1981년 레흐 바웬사가 이끄는 자유 노조는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이후 민주화를 이루며 1990년 레흐 바웬사가 첫 민선 대통령이 되었다. 1999년NATO, 2004년유럽 연합에 각각 가입하였다. 폴란드와 러시아는 MD 문제로 인해 최악의 사태를 맞았으나, 11월 20일에 폴란드 총리는 러시아와의 관계 복원이 최우선 과제라고 발표했다.[2]

자연 환경[편집]

지형[편집]

폴란드의 지형도

국토는 동서로 689km, 남북으로 649km 뻗어 있는데 북쪽은 발트 해와 접한다. 거의 90%에 가까운 국토는 300m 이하의 평탄하고 완만한 지형으로서 국토 대부분이 유럽 대평원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남쪽 국경에 있는 수데티카르파티아 산맥을 제외하고는 100m 이상인 곳이 드물며, 중남부의 타트라 산맥에는 해발 2,499m의 폴란드 최고봉 리시 산이 있다. 중부 및 남부의 일부 지역은 토질이 비옥하고, 북부와 서부에는 황지와 이탄지가 많다.

수데티카르파티아 산맥은 비스와 강, 오드라 강의 분수령을 이룬다. 폴란드에서 가장 긴 강인 비스와 강(전장 1,068㎞)은 국토 중앙을 가로질러 흘러 광대한 유역평야를 이루고 호소(湖沼)가 산재하는 하류 지역에 운하를 발달시키고, 발트해 여러 항구와 내륙 여러 시를 연결하는 교통상의 동맥을 이루고 있다. [3]오드라 강은 서쪽 국경을 따라 흐른다. 폴란드와 독일의 국경을 흐르는 내륙 수상교통의 동맥으로 주요 수송물자는 슐례지엔의 석탄·철광석 등과 공업제품이다. [4]

기후[편집]

기후는 온대에 속하여 서유럽의 해양성 기후와 동유럽의 대륙성 기후 사이의 점이 지대에 위치해 있으며, 강수량은 가장 많은 남부 국경 산악지대가 1,000∼1,100mm, 가장 적은 중부가 평균 600mm이다. 초춘(初春), 초동(初冬)을 합쳐 연간 6계절로 구분하며, 기온은 초봄과 가을에 0∼5℃, 봄·가을에 5∼15℃, 여름에 20-25℃ 이상, 겨울에 0℃ 이하로, 연평균 기온은 7∼10℃이다. 최저기온인 2월은 평균 약 영하 3℃ , 최고의 7월은 약 19℃ 이다. 지역적 격차는 적으나, 북동부와 남부산지는 평균보다 기온이 낮다. 또한 겨울철 2∼3개월간은 하천이 언다. 삼림도 서유럽의 활엽수림으로부터 동유럽의 침엽수림 사이의 점이 지대로, 침엽수림이 발달하고 서·남부에는 활엽수림도 섞이며, 진귀한 바이슨(들소)이나 각종 조수류를 볼 수 있다. 삼림 면적은 국토의 약 1/3을 차지한다. [5]

정치[편집]

폴란드의 정치 체제는 기본적으로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삼권분립에 기초한다.(헌법 제10조 1항) 폴란드의 행정부는 대통령각료회의로 구성된다.(헌법 제10조 2항)

대통령은 직선제로 선출하며, 임기는 5년, 2회 연임이 가능하다. 대통령은 국가 원수로서 최고 대표자일 뿐 아니라 국정운영의 지속성을 보장한다.(헌법 제126조 1항) 총리는 각료회의의 수장으로서 정부의 대내외 정책을 수행한다.(헌법 제146조 및 148조). 총리는 대통령이 지명하며 임명 후 하원의 승인이 필요하다.

의회의 형태는 양원제상원 100명, 하원 460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임기는 4년이다. 하원은 중선거구 비례대표제를, 상원은 중선거구 다수대표제를 채택하고 있다. 의회 내각제의 정부형태를 취하고 있는 폴란드 하원은 국정 운영기관인 정부 구성에 직접 참여하며, 상원은 국정 운영 참여권 없이 하원의 견제기능을 주로 담당한다.

1947년 공산당 정부가 수립된 후 1989년 7월 초대 대통령에 야루젤루스키가 선출됨과 동시에 마조비에츠키가 이끄는 전후 최초의 비공산연립정부가 수립됐다. 폴란드 노동자당은 1990년 1월 스스로 공산주의 이념을 포기하고 사회민주당으로 전환, 41년에 걸친 공산당 일당통치를 종식했다. 동 11월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자유노조의 레흐 바웬사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6]

행정 구역[편집]

폴란드의 행정구역

폴란드의 행정 구역은 16개 (폴란드어: województwo)로 구성되어 있다. 바르샤바를 포함한 5대 도시와 17현으로 되어 있고, 도시 인구는 전 국민의 약 50%를 차지한다. 마조비아(Mazowia) 지방의 중심인 수도 바르샤바와 ‘폴란드의 맨체스터’라는 별칭이 있는 공업 도시 우치가 국토의 중앙부에 있으며, 남부의 갈리시아(Galicia) 지방에는 노바후타(Nowa Huta) 제철소가 있는 고도(古都) 크라코프의 중세적인 옛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서부 대(大) 폴란드 지방에는 상공업도시 포즈나니가 있고, 슐레지아 지방에는 옛 독일 공업도시인 브로츠와프(Wrocław)가 있다. 그 외에 광공업도시 카토비체(Katowice)와 비스와 강 하구에 위치한 그다니스크(Gdańsk) 등도 중요한 도시이다.[7]

군사[편집]

폴란드군 총사령부 예하 지상군, 공군, 해군, 특수군으로 이루어져 있다.

폴란드군은 1918년 10월 12일 창설되었다.

대외 관계[편집]

경제[편집]

2007년 GDP(PPP)는 $6,320억, GDP 성장률 7%, 1인당 GDP는 $16,600이다. 전전(戰前)은 농업국이었으나 전후(戰後)의 공업화 정책에 의해, 농업인구는 7할에서 계속 감소하고 농·공업국으로 변해가고 있다. 2007년 현재 폴란드의 산업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농업 3%, 공업 32%, 서비스업 66%이다. 주요 농축산물로는 라이보리·밀·보리·귀리·감자 및 소·돼지·말 등이다. 수차례의 경제계획을 기초로 특히 중화학공업이 현저히 성장하여 기계공업이 가장 선도적인 공업부문이 되었다. 주요공업으로는 철강공업·조선업·자동차공업·농기계공업 및 건설기계·공작기계 등이다. 또 유럽 제일의 실롱스크 탄전이 있어 폴란드의 산업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납·아연의 산출이 많다. 석유·천연가스가 발견되어 채굴되고 있는데 산유량이 충분하지 않은 탓에 러시아 연방으로부터의 수입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폴란드는 중앙유럽국가 중 가장 급진적인 시장경제체제를 도입, 적극적인 민영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1990년 말에는 경제가 침체국면에 빠졌으나 1991년 이후 연평균 제조업 성장률 9%를 기록하고 있으며 실업률도 구 공산권국가 중 드문 수준인 15%선이다. [8] 2001년의 무역 규모도 수출이 360억 9,200만 달러, 수입이 502억 7,500만 달러였다. 2006년 기준 수출액은 1124억 달러, 수입액은 1162억 달러이며, 최대 교역국은 독일이다.

자원[편집]

폴란드는 상당한 양의 광물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구리, , 아연, , , 마그네슘, 암염 등의 광물이 많이 나고, 무연탄갈탄은 세계 5위 보유국이다. 또한 상업적으로 유용한 석회석, 고령토, 점토, 석유천연가스 등의 자원도 보유하고 있는데 이런 천연자원은 폴란드의 수출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공업[편집]

주요 공업으로는 크라쿠프철강 공업, 그단스크·그디니아조선업, 스타라호비체·루블린자동차 공업, 바르샤바농기계 공업 등이 유명하며, 건설 기계·공작 기계·오토메이션 기계의 생산도 늘고 있다. 비교적 새로이 일어난 화학 공업실롱스크 지방·비스와 강 유역이 중심이고 오시비엥침·노바후타에는 현대적인 공장이 있다. 로지는 전통적인 섬유 공업 도시이며, 식품 공업은 전통이 길어 그 분포가 전국적이다.

농업[편집]

폴란드의 농지 면적은 15만㎢로 전체 국토 면적의 48%를 차지하며, 동부 유럽에서는 러시아 연방 다음의 주요 농업국이다. , 호밀, 보리, 감자가 주요 생산물이고, , , 돼지 등의 사육이 활발하다.

교통[편집]

철도의 수송 효율은 구미 수준에 가까우며, 장거리 버스나 트럭망도 발달하고 있다. 해상교통도 역사가 얕음에도 불구하고 발트해 연안의 여러 항구를 기지로 하는 상선대가 동양에까지 뻗치는 항로를 개설하고 있다.또한 약 7,000㎞에 이르는 내륙 가항수로(內陸可航水路)의 의의도 크다. 항공로도 바르샤바를 중심으로 국내외 항공회사의 영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9]

사회[편집]

폴란드는 오랫동안 다민족국가였으나 제2차 세계대전 후 영토이동과 주민교환이 이루어짐에 따라 폴란드인이 인구의 98%를 차지하게 되어 사실상 단일 민족국가가 되었다. 인구는 유럽에서는 예외적으로 높은 신장세를 보이고 있다. 주택문제가 매우 심각하여 바르샤바 등지에서는 주택을 소유하는데 평균 20년 이상의 긴 세월이 걸린다. 여성의 사회진출은 보편화되어 있고 이혼율은 다른 나라보다 낮다. 복지제도는 무상의료, 연금제도, 신체장애인에 대한 보장, 모성보호 등이 철저히 이루어지고 있으나 복지의 질적 수준이 낮기 때문에 국민의 3분의 1정도가 정부에서 정하는 사회적 최저선이하에서 생활하고 있다. 9년제의 의무교육, 다양한 중등교육, 바르샤바나 크라쿠프대학 등의 고등교육기관도 충실하여 전통적인 지적 수준이 유지되고 있다. [10]

주민[편집]

인구는 약 3,816만명으로, 그 중 약 98.7%가 폴란드인이다. 이전에는 다민족국가였으나, 제2차 세계 대전의 결과 현재와 같은 거의 단일 민족 국가가 되었다. 그 외 소수파로 독일인, 벨라루스인, 우크라이나인, 유태인 등이 있다.

인구[편집]

폴란드의 인구는 3,800만명이 넘어, 동유럽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다음으로 많다. 폴란드 여성 1인당 합계출산율은 2004년 현재 (Eurostat 추정) 1.23명으로 유럽 최하위이다. 폴란드의 합계 출산율은 1990년대 초반 이래로 계속 줄어들기만 하다가 최근에 미세하나마 반등하였다.

언어[편집]

공용어슬라브어파서슬라브어군에 속하는 폴란드어로 문자는 로마자를 사용한다. 현재에도 많은 40대 이상의 폴란드인은 러시아어를 알고 지만, 젊은 세대는 대부분 영어를 배우고 있다. 하지만 주요 외국어는 영어, 러시아어, 독일어 순으로 배우고 있으며 제2외국어로 독일어프랑스어를 배우는 학생도 많다. 일부는 체코어, 슬로바키아어를 아는 폴란드인이 1% 정도 있다, 우크라이나어, 벨라루스어, 리투아니아어, 루신어 등을 사용하는 소수 민족들도 존재하고 있다.

문화[편집]

교육[편집]

야기엘론 대학

모든 교육기관은 국립으로 교육비가 무료이며, 의무교육은 유아원 3년, 초등학교 6년이다. 크라쿠프에는 오랜 역사와 전통의 야기엘론 대학이 있다.

인물[편집]

코페르니쿠스, 프레데리크 쇼팽, 마리 퀴리, 요한 바오로 2세 등이 폴란드 출신이다. 폴란드는 마리 퀴리, 헨리크 시엔키에비치, 비스와바 심보르스카, 브와디스와프 레이몬트체스와프 미워시, 레흐 바웬사 등 다수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였다.

주석[편집]

바깥 고리[편집]

폴란드 정부[편집]

대한민국 정부[편집]

여행 정보[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