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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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야 아랍 공화국
ة العربية السورية
Flag of Syria.svg Coat of arms of Syria.svg
국기 국장
표어 (없음)
국가 수호신의 조국
Syria on the globe (Afro-Eurasia centered).svg
수도 다마스쿠스 북위 33° 30′ 47″ 동경 36° 17′ 31″ / 북위 33.513056° 동경 36.291944° / 33.513056; 36.291944
최대도시 알레포 북위 36° 13′ 00″ 동경 37° 10′ 00″ / 북위 36.216667° 동경 37.166667° / 36.216667; 37.166667
정치
공용어 아랍어
정부 형태 이원집정부제 공화국
대통령 바샤르 알아사드
총리 와엘 나데르 알할키
역사
독립 프랑스로부터 독립
 • 독립 선언 1936년 9월
지리
면적 185,180km² (88 위)
내수면 비율 0.06%
시간대 (UTC+2)
DST (없음)
인구
2005년 어림 19,405,000명 (55위)
인구 밀도 103명/km² (96위)
경제
GDP(PPP) 2005년 어림값
 • 전체 $717.4억 (65위)
 • 일인당 $5,348 (101위)
HDI 0.648 (116위, 2012년 조사)
통화 파운드 (SYP)
기타
ISO 3166-1 760, SY, SYR
도메인 .sy
국제 전화 +963

시리아 아랍 공화국(아랍어: الجمهورية العربية السورية 알줌후리야 알아라비야 앗수리야[*]), 약칭 시리아(아랍어: السورية 수리야[*], 문화어: 수리아)는 중동에 있는 공화국이다. 수도는 다마스쿠스이다.

역사[편집]

고대 시리아[편집]

메소포타미아 등 고대 문명들의 지배를 차례로 받았으며 페르시아 멸망이후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정복되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죽은 뒤에 그의 부하인 셀레우코스 1세에 의해 안티오키아를 수도로 하는 셀레우코스(셀루키드) 왕조가 건설되었다. 이후에 왕조는 번영하였으나 파르티아, 이집트 등과의 계속된 전쟁으로 몰락해 버렸고 기원전 64년 로마 제국의 장군 폼페이우스가 안티오키아를 점령함에 따라 로마 제국에 귀속되었다. 그 후에도 시리아는 동방 속주의 중심지로 크게 번영하였으며 그 수도인 안티오키아는 속주시리아의 수도로서 외항 셀레우키아를 통한 외부와의 교역으로 크게 번영하였다. 로마의 동방 군단이 주둔하고 있었으며 가상의 적국인 파르티아를 견제하는 기지였다.

기독교와 이슬람의 지배[편집]

이후 기독교가 크게 전파되었으며, 안티오키아터키(한글성서에는 아시아로 번역)교회 대주교의 소재지가 되었다. 이후 시리아는 4세기말 로마의 동서분열로 동로마제국의 영토가 되었고, 제국이 쇠퇴하면서 이슬람제국의 수중에 들어갔다. 시리아의 중심지인 다마스쿠스는 우마위야 왕조시대 왕국의 수도로서 크게 번영하였다.

몽골 제국, 맘루크 왕조, 오스만 제국의 지배[편집]

1260년 몽골 제국 군대에 점령되었으나 맘루크의 영웅 바이바르스가 나타나 이들을 몰아내고 맘루크 왕조의 지배를 받았다. 16세기에서 20세기까지는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편집]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1920년 시리아 아랍왕국을 선언하였으나 불과 몇개월 뒤 마이살룬 전투의 패배 이후 프랑스의 지배하에 들어간다. 프랑스는 시리아를 위임통치령으로 삼고 지배를 공고히 하였다. 최초의 시리아 국기1932년에 만들어졌으며(지금과는 전혀 다른 국기), 현재의 시리아는 1944년프랑스로부터 실질적으로 독립하였고, 1946년 프랑스는 군대를 철수한다.[1] 1958년 이집트와 통합하여 아랍 연합 공화국을 결성한 적이 있었지만 시리아측과 이집트측의 견해차가 계속 커져 1961년 인민당의 군사 구테타를 계기로 탈퇴 하였다. 1970년 알라위파(시아파의 분파) 출신의 하피즈 알아사드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하였다. 2008년 8월 21일에 시리아와 러시아는 회담을 가졌고, 이 회담에서 시리아에 러시아 미사일 기지를 설치할 용의가 있다고 말하면서 중동에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시리아 내전[편집]

중동의 민주화 시위의 영향으로 시리아에서도 민주화시위가 일어났고, 아사드를 지지하는 방송국이 피습당하는 등 내전이 점점 진행되기 시작했다.[2] 내전이 일어난 시리아에서는 학살극이 일어났다.[3] 하지만 시리아를 제재하는 데에 러시아는 반대하고 있다.[4] 내전과 학살이 일어나면서 시리아에서 1000여명이상이 터키로 집단망명을 하는 일도 일어났다.[5]그리고 내전이 일어나면서 다마스쿠스에서는 시가전도 벌어지기도 했다.[6] 그리고 다마스쿠스에서 시가전이 벌어지면서 군부의 이탈도 시작되었다.[7] 그리고 7월 19일에 310명이 사망하기도 했다.[8] 7월 20일에는 시리아군이 수도에서 총공세를 펼치기도 했다.[9] 그리고 시리아 정부가 화학무기를 사용할 우려를 낳고 있다.[10] 그리고 아사드이후에 떠오르는 인물로 틀라스가 부상하고 있다. [11] 러시아는 EU의 시리아 제재에 반대하면서 제재조치에도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12] 내전으로 시리아는 경제도 파탄으로 변했다.[13] 그리고 내전으로 인해 시리아에 이슬람무장단체도 유입되기 시작했다.[14] 내전으로 시리아에 거주하던 폴란드인들과 우크라이나인 200명은 시리아를 떠났다.[15] 시리아군은 다마스쿠스를 완전히 장악했다고 밝혔다.[16] 최근 시리아 총리가 요르단으로 망명했다.[17] 시리아는 내전으로 인해 유적지도 파괴되고 있다.[18] 아사드는 2주만에 모습을 드러냈고, 테러를 분쇄하겠다고 밝혔다.[19] 시리아 내전으로 인해 보고된 사망자는 2013년 6월 현재 92,900여 명이며 실제 피해는 이보다 훨씬 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0] 또한, 난민은 2013년 4월 현재 680만 여명으로 알려져 있으며, 연말까지 1,000만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21]

자연 환경[편집]

아시아 대륙의 서쪽 끝에 위치한 시리아는 유럽과 아시아 두 대륙의 중간지대로서 지리적 요지이다. 역사상 레바논과 함께 단일 국가를 이룬적이 있다. 해발고도 90m 가량의 서쪽 산지에서 동쪽으로 완만하게 경사가 낮아지는 대지 상의 시리아 사막이 국토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나, 서단이 지중해 동안(東岸)에 임해 있고, 남서부는 높은 산맥으로 레바논과 접한다. 북서부에도 해안선과 평행인 산맥과 계곡이 있으며, 그 동쪽 일부가 사막의 서쪽 끝이 된다. 북쪽으로 토로스(타우루스)산맥, 남쪽에는 타이비리어스호(湖)가 있으며, 터키 및 요르단·이스라엘과 이웃하고 있다. 사막의 북동부에는 유프라테스강(江)의 상류가 남동방향으로 이라크에 흘러 들어간다.

해안평야 지역은 지중해성 기후를 이루어 강수량이 많고, 산악지대에서는 기온이 낮아져 눈도 내리나 동쪽으로 갈수록 지중해와 멀어지므로 내륙성 기후가 된다. 또 북쪽에서 남쪽으로 가면 차츰 고온·건조한 사막기후로 옮아간다. 다양한 지세와 기후가 시리아의 자연적 특징이다. 수도 다마스쿠스는 전형적인 오아시스 도시이다. 경작지는 전국토의 24.8%, 농경지는 4.47%, 기타 70.73%(2005년)이다. 전체 면적 185,180㎢ 중에서 관개면적은 13,330㎢ (2003년)이다. 서아시아의 여러 다른 아랍 국가들처럼 먼지·모래폭풍 등과 같은 자연재해가 나타난다. 남쪽 이스라엘과 접경한 골란고원은 이스라엘에게 점령당하여 이스라엘 마을이 42개가 산재한다. (인터넷 두산백과)

지리[편집]

시리아의 대부분은 메마른 평원이지만, 지중해와 맞대고 있는 일부 지역은 녹지이다. 북동부의 "알자지라", "호란" 지방이 주요 농경지대이다. 시리아의 가장 중요한 수원인 유프라테스 강은 시리아 동부를 가로지른다. 이곳은 문명의 요람으로 불리는 지역의 일부이기도 하다.

주요 도시로는 남서부의 다마스쿠스, 북부의 알레포홈스가 있다. 대부분의 큰 도시들은 지중해 근처에 위치하고 있다. (시리아의 도시 목록 참고)

시리아의 기후는 덥고 건조하며, 겨울은 온화하다. 고지대에서는 겨울에 눈이 때때로 내리기도 한다. 상업적 가치가 있는 석유 유전은 1956년 시리아 북동부에서 발견되었다. 주요 유전지대로는 수웨이디야, 콰라취, 루매얀, 태옘, 다이르 앗 자우르가 있다. 이 유전지대는 이라크의 모술과 키르쿠크 유전지대와 이어져있기도 하다. 석유는 1974년 이래 시리아의 주요 자연자원 수출품목이다. 천연가스는 1940년 제베사에서 첫 발견되었다.

시리아의 위성 사진.

기후[편집]

시리아 중심부는 건조한 대륙성 기후로 밤낮의 온도차가 크고 지중해 연안은 여름에 맑은 날씨가 계속된다. 겨울에는 강수량이 많은 온난한 지중해성 기후를 보인다. 강우량은 사막지대를 제외하고는 연평균 250 mm 이하이며 서부지역의 경우 750mm에서 최고 1,000mm다.

정치[편집]

1973년 3월 13일 제정된 헌법에 따르면 시리아는 대통령 중심의 민주공화국이다. 무제한 재선이 가능한 7년 임기의 대통령은 국민에 의하여 선출되며 2명의 부통령과 수상, 각료 등을 임명한다. 2007년 5월 27일 바샤르 알 아사드 (Bashar al-ASAD)가 대통령으로 재선되었다. 의회는 단원제로서 정원은 250명, 임기는 4년이다. 2003년 9월 10일 무하마드 나지 알 우트리가 수상으로 임명되었다. 2007년 4월 총선에서 국민진보전선(NPF)은 172석을, 독립당은 78석을 얻었다.

법률 체계는 프랑스와 오스만 법체계가 가미되었으며 민법은 이슬람율법에 의거한다. 사법부는 대통령이 장인 대법원, 대통령에 의하여 임명되는 4년 임기의 법관으로 구성되는 헌법재판소, 폐기법정, 탄원법정, 지방법정, 이혼 보안 경제 등의 특별법정이 있다.

재선된 아사드 대통령은 바트당 인사가 아닌 전문 관료를 내각으로 기용하여 개혁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시리아는 미국의 경제제재, 유엔안보리에서의 결의안 1559호 채택에 따라 사회주의 노선을 완화, 서방 세계에 대한 우호증진을 강화하고 있다. (인터넷 두산백과)

군대[편집]

시리아 헌법에서는 건강한 남자라면 군대에 가야하는 징병제를 실시하며, 복무 기간은 과거 36개월이었으나 현재는 30개월이다. 다만 군대에 가고 싶지 않으면 30만 시리아 파운드(한화로 약 6000만원)를 내고 면제를 받는것도 가능하다.

외교[편집]

시리아의 외교 정책은 국가 핵심 관심사안을 지탱하는 데에 그다지 능숙하지는 않다.[22]

대한 관계[편집]

시리아는 현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단독 수교국이다. 대한민국은 시리아와 외교 관계를 수립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으나, 시리아 정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의 관계 및 한국 정부와 이스라엘의 관계를 고려하여 수교에 미온적인 태도를 나타내고 있다[23]. 이에 따라 시리아는 아직까지 대한민국의 미수교국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과 시리아는 경제·문화 분야에서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교역량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다마스쿠스에는 무역관이 개설되어 있으며 대한민국 기업과 교민 (이민)도 진출해 있다. 시리아에서는 1988년 하계 올림픽2002년 아시안 게임 등에 선수 및 임원단을 대한민국으로 파견하는 등 체육분야 교류도 이루어지고 있다.

이스라엘과의 관계[편집]

이스라엘과 시리아 양국 정부는 2008년 5월 이후, 터키의 중재로, 간접 평화교섭을 재개하였다. 그러나 같은 해 여름 에후드 올메르트 총리가 사의를 표명하여 교섭도 중단되었고 게다가 같은 해 말, 이스라엘의 가자 공격을 이유로 시리아는 교섭동결을 표명하였다. 최대의 초점은 골란고원의 귀속문제인데, 시리아와 이란 간의 관계, 시리아가 지원하는 레바논의 시아파 조직 헤즈볼라의 무장문제 등도 교섭 과제이다. 미국의 오바마 정권은 시리아와의 관계 수복을 도모하여, 평화교섭재개의 환경을 조성하는데 열의를 보이고 있다. 또한 2009년 3월에 발존한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정권도 교섭재개의 원칙을 향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 정권은 골란고원 반환에 소극적이고, 시리아도 또한 이 정권에 강한 불신감을 표명하고 있는 등, 교섭재개를 향한 구체적인 움직임은 아직 없다. [24]

러시아와의 관계[편집]

러시아와의 관계는 1971년에 전략적 동맹관계를 맺었으며, 밀접하게 활발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25]

사회[편집]

주민[편집]

주민은 아랍인이 90%로, 그 외에도 쿠르드족, 아르메니아인, 기타 등이 있다. 시리아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아랍인도 있어서 민족성도 다양하다. 소수민족으로서 아시리아인, 북카프카스계 민족, 남투르크계 민족도 있다.

언어[편집]

언어는 아랍어가 공용어이다. 그 외에도 쿠르드어, 아르메니아어가 사용된다. 영어가 2언어로 많이 쓰인다. 프랑스어는 극소수가 쓴다.

종교[편집]

종교는 이슬람교(수니파)가 74%, 이슬람교 시아파의 분파 중의 하나인 알라위파와 드루즈파가 16%, 기독교가 10%이다.(기독교도들은 시리아의 기독교도 지역인 밥투마지역에 많이 살고 있다.) 헌법상으로 국교를 지정하고 있지는 않으나 대통령은 이슬람교도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시리아 기독교[편집]

시리아 기독교는 칼케돈 안티오키아 정교회(Chalcedonia Antiochian Orthodox 45%), 가톨릭(멜카이트, 아르메니아 가톨릭 교회, 시리아 가톨릭, 마론파 교회, 칼케돈 가톨릭, 라틴 가톨릭,16%), 시리아 정교회 27%, 아르메니아 사도교회가 있다.

주 및 출처[편집]

  1. Report of the Commission Entrusted by the Council with the Study of the Frontier between Syria and Iraq (1932년). 2013년 7월 9일에 확인.
  2. 시리아 친정부 방송국 피습… 내전 격화
  3. 시리아 또 `학살극'…"200명 이상 숨져"(종합2보)
  4. 러시아 외무부 "대 시리아 제재 허용 않을 것"
  5. 시리아인 1000여명 터키로 집단 망명
  6. 다마스쿠스 시가전, 시리아 ‘최후의 결전’?
  7. 시리아 알아사드정권 붕괴 서막..군부이탈 가속화
  8. 시리아 전역에서 19일 하루 310명 사망…사상 최악의 하루
  9. 시리아군, 수도서 총공세...대규모 탈출
  10. 궁지 몰린 시리아정부 “화학무기 쓰겠다”
  11. 시리아 `포스트 아사드'는 누구?…틀라스 부상
  12. "러시아, EU 대시리아 제재조치에 참여않을 것"
  13. 알레포 ‘생지옥’ 으로 … 시리아 경제도 ‘파탄’
  14. “시리아 반군에 이슬람 무장단체 유입”… 로이터 “해외활동 지하드 요원 200∼300명 합류”
  15. 시리아 거주 우크라이나 및 폴란드인 200명 탈출…우크라이나 공군기로
  16. "시리아군, 수도 다마스쿠스 완전 장악했다"
  17. 시리아 총리도 망명 “혁명 합류”
  18. 십자군전쟁 때도 버텼는데… 시리아 내전, 유적파괴 심각
  19. 시리아 대통령 2주 만에 모습 드러내 “테러 분쇄하겠다” 강경 입장 밝혀
  20. "시리아 사망자 9만 3천 명 육박"
  21. 시리아 내전으로 난민 1000만 명 발생 예상
  22. "Syria after Egypt", 《The Frontier First》.
  23. 다만, 시리아와 대한민국은 상호 승인했다.
  24. <cite class="citation book" style="font-style:normal" id="CITEREF다테야마 료오지 (立山良司) 외 1">다테야마 료오지 (立山良司) 외 1. 〈中東〉, 《현대용어의 기초지식(現代用語の基礎知識)》 (일본어). 지유고쿠민샤(自有国民社), 555쪽. ISBN 978-4-426-10128-2
  25. 시리아, 러시아의 유일한 ‘중동 교두보’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