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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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게 왕국
보크몰: Kongeriket Norge
뉘노르스크: Kongeriket Noreg
Flag of Norway.svg Coat of arms of Norway.svg
국기 국장
표어 Alt for Norge
(모두 노르웨이를 위하여)
국가 그렇도다, 우리는 이 조국을 사랑하리
Norway on the globe (Europe centered).svg
수도 오슬로 북위 59° 56′ 58″ 동경 10° 45′ 23″ / 북위 59.949444° 동경 10.756389° / 59.949444; 10.756389
정치
공용어 노르웨이어
정부 형태 단일 국가 의원 내각제 입헌군주제 공화국
국왕
총리
하랄 5세
에르나 솔베르그
역사
독립 스웨덴에서 독립
 • 독립 1905년 10월 26일
지리
면적 324,220km² (68 위)
내수면 비율 6.0%
시간대 UTC+1 (UTC1)
DST UTC+2
인구
2006년 어림 4,641,500명
2001년 조사 4,520,947명 (114위)
인구 밀도 14명/km² (166위)
경제
GDP(PPP) 2012년 어림값
 • 전체 $2,817억 (44위)
 • 일인당 $55,009 (4위)
HDI 0.955 (1위, 2012년 조사)
통화 크로네 (NOK)
기타
ISO 3166-1 578, NO, NOR
도메인 .no
국제 전화 +47

노르웨이 왕국(보크몰: Kongeriket Norge 콩에리케 노르게[*], 뉘노르스크: Kongeriket Noreg 콩에리케 노레그[*])은 북유럽에 위치한 나라이다. 수도는 오슬로이며, 공용어는 노르웨이어이다. 어업이 주요 산업이다.

개요[편집]

노르웨이는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서쪽 부분, 얀마옌 섬, 스발바르 제도, 그리고 부베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면적은 385,170km²이며 인구는 약 490만명 정도이다. 유럽에서 두 번째로 인구밀도가 작은 나라이다. 나라의 대부분이 동쪽의 스웨덴과 국경을 맞대고 있고, 노르웨이의 북쪽지역은 남쪽은 핀란드, 동쪽은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남쪽의 스카게라크 해협의 건너편에는 덴마크가 있다. 수도오슬로이다. 북극해바렌츠 해와 접하고 있는 해안선은 피오르로 유명하다. 특히 이 나라는 인구가 200명인 도시가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노르웨이는 석유, 천연 가스, 석탄, 목재, 해산물 등이 풍부하며, 지형을 이용한 대량의 수력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다. 자원 매장량은 엄청나 2011년 기준으로 세계 3위의 천연가스, 5위의 석유 수출국이기도 하며, 관련 산업이 GDP의 25%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자원에 힘입은 노르웨이 국부펀드는 세계에서 제일 크며, 규모는 현재 한화 650조에 달한다. 세계 주식시장의 1%를 보유하고 있다.[1] 무역은 항상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하고 있으며 2011년 기준으로 흑자 규모는 한국의 2배에 달한다.[2] 석유가 발견되기 전인 1970년에는 스웨덴의 총 경제규모의 1/3밖에 되지 않았으나 결국 자원에 힘입어 2009년 역사상 처음으로 인구가 2배에 달하는 옛 종주국 스웨덴을 총 경제력마저 추월하였다.[3] 정치적으로 노르웨이는 의원 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는 입헌 군주국이며, 국가 원수하랄 5세, 총리는 옌스 스톨텐베르그이다. 노르웨이는 유럽 연합의 회원국은 아니나 가까운 관계를 맺고 있고, 또한 미국의 대표적 우방국 중 하나이다. 노르웨이는 국제 연합에 경제적으로 가장 크게 공헌하고 있는 나라 중 하나이며, UN군에도 참여하여, 특히 아프가니스탄, 코소보, 수단, 리비아 등에 파견되어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노르웨이는 국제 연합, NATO, 유럽 평의회, 북유럽 이사회의 창립국 중 하나이며, 유럽 경제 지역, WTO, OECD의 멤버이자 솅겐 조약에 서명한 국가 중 하나이다.

2001년부터 2006년, 그리고 2009년부터 가장 최근의 통계까지 노르웨이는 인간 개발 지수에서 세계 정상을 기록한 대표적 선진국이다. 2010년 기준으로 연간 근로시간은 약 1,400시간으로 주당 27시간 정도이며 세계에서 가장 적게 일하는 국민 중 하나다. 최저임금은 산업마다 다르나 연간 310,000크로네(약 6,100만원)정도이며, 2010년 기준으로 대졸자 초봉 평균은 420,000크로네이다.[4][5]

자연 환경[편집]

노르웨이의 호수.

지리[편집]

노르웨이는 북유럽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서쪽 지방이다. 남북으로는 약 1,700㎞로 길게 뻗쳐 있으나 동서는 가늘며, 가장 좁은 곳이 몇 킬로미터밖에 안 되는 특이한 모양이다. 국토의 72%는 빙하의 침식을 받은 평탄한 꼭대기를 지닌 산지이다. 삼림이 24%를 차지하며 경지는 매우 적다. 해발 2,000m 이상에는 만년설이나 빙하가 지금도 남아 있다. 스칸디나비아 산맥은 북부·중부에서는 스웨덴과의 국경으로 되어 있으나, 남부는 노르웨이 안에 펼쳐져 있으며, 이곳이 가장 높고 폭도 가장 넓다. 곧 요텐헤임(2,452m), 요스테달스브렌(2,083m) 및 도브레페르(2,286m) 등의 산이 있고 빙모(氷帽)와 빙하가 있다. 서해안은 거대한 피오르드 지형이 나타나는데 인근에 5만 개 이상의 섬이 있고 2,500km 이상이 이에 해당한다. 노르웨이는 스웨덴과 2,542km의 국경을 접하며 동쪽으로는 핀란드러시아가 있다. 남서쪽으로는 노르웨이 해, 북해가 있다. 남쪽 덴마크와의 사이는 스카게라크 해협이라고 부른다. 북쪽에는 로포텐 제도, 베스텔롤렌 제도 등이 있어서 좋은 어장으로 되어 있다. [6]노르웨이는 대부분이 상당히 높은 지대여서 자연 경관이 수려하고 선사 시대 이후의 빙하 지형이 남아 있기도 하다. 베르겐의 북쪽에 있는 송네 피오르는 안쪽까지의 길이가 200㎞나 되며, 100㎞까지도 나비가 몇 킬로미터나 된다. 이 피오르는 양쪽 육지가 가파른 절벽이며, 물 깊이는 깊을 뿐만 아니라 경치가 좋다.[7]

기후[편집]

기후는 한대성 기후이다. 한대성 기후이기 때문에 12월에는 오후 3시만 되어도 일몰하고 기온은 -15℃ 이하이다. 하지만 내륙으로 들어가면 겨울 기온이 떨어지고 강우량이 적다. 눈이 자주 오는 편이며, 북극처럼 백야 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난류인 멕시코 만류(灣流)가 서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흐르므로, 높은 위도에 비하면 온도가 낮지 않고 강우량이 많다. 예를 들면 남부 서해안의 베르겐은 겨울의 월평균 기온이 1.3∼1.5℃ 이며, 여름에는 약 15℃ , 위도에 비하여 비가 많이 오는 편이다. 1년 강우량은 1,900㎜에 이른다. 북쪽일수록 강우량은 적어져 북부에서는 연강우량이 400㎜ 이하이다.[8]

역사[편집]

선사 시대[편집]

현재의 노르웨이 땅에 사람이 거주한 흔적은 스칸디나비아에서 내륙빙하가 녹기 시작한 선사시대이다. 1만년 전 오늘날 노르웨이인들의 조상은 순록을 비롯한 동물들을 사냥하며 북쪽으로 전진했다. 인류 활동의 가장 오래된 증거는 외스트폴주의 남동쪽에 위치한 언덕에서 발견되었다.

바이킹 시대[편집]

9세기에서 11세기까지 노르웨이의 바이킹은 대대적인 해상원정을 벌였다. 노르웨이인의 후손이 아이슬란드에 뿌리를 내렸고 한때는 지금의 캐나다의 일부까지 이르렀다. 1000년 무렵 바이킹은 그린란드와 미국을 발견하였고, 기독교가 노르웨이에 들어갔다. 노르웨이 농민의 작은 집단이 차차 큰 정치적·군사적 지역으로 모였다. 1164년 최초의 국왕을 맞이했고, 10세기하랄 1세가 등장하여 국가 통일의 기반을 조성하였다. 1015년 울라프 2세 성왕이 노르웨이 전체를 완전히 통일하고 기독교로 개종시켰다.

근세[편집]

2세기에 걸친 바이킹의 습격은, 994년 왕이었던 울라프 트뤼그바손기독교를 승인한 이후로 점차 줄어들었다. 13세기, 내전이 끝나고, 노르웨이의 영향력은 브리튼 제도아이슬란드, 그린란드까지 뻗어져 나갔다. 12세기에 접어들자 왕위를 둘러싼 내부항쟁이 벌어졌다. 1217∼1263년에는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를 지배하여 노르웨이의 국력은 그 절정에 이르렀다. 문화적으로도 개화를 한 시대였다. 그 뒤 스웨덴과 동맹, 한자(Hansa) 상인(商人)의 활약에 의한 노르웨이의 경제의 쇠퇴, 덴마크와의 400년 이상에 걸친 동맹 등의 시대가 있었다. 더구나 18세기에서 19세기에 걸친 전란의 시대를 걸쳐서 새로운 시대에 들어갔다. 1217년 호콘 4세가 즉위하여 내란을 점차 평정하고 절대 왕정의 기반을 닦았다. 1380년, 노르웨이는 덴마크-노르웨이에 흡수되었고, 이는 4세기 이상 지속되었다. 1397년 포메른의 에리크 3세가 노르웨이 왕으로 즉위함과 동시에 덴마크스웨덴의 왕도 겸하였다. 그는 1442년 폐위되었으나 이후로도 오래도록 덴마크 왕의 지배가 계속되었고, 종교개혁운동으로 1539년 크리스티안 3세는 노르웨이를 루터교로 개종시켰는데, 현재도 노르웨이 기독교인들의 거의 대부분이 루터교 신자들이다.

이민시대[편집]

1814년, 노르웨이인들은 노르웨이가 스웨덴에 할양되는것에 반대했고, 새로운 헌법을 채택했다. 스웨덴은 노르웨이와 전쟁을 했고, 결국 노르웨이가 스웨덴-노르웨이연합에 들어와 스웨덴의 왕이었던 카를 14세를 섬기는 대신, 노르웨이의 독자적인 헌법을 유지시켜 주기로 합의했다. 19세기 내내 일어난 노르웨이의 독립에 대한 움직임은, 결국 1905년 노르웨이의 독립을 일구어 내고, 스웨덴-노르웨이연합의 종결을 이끌어냈다. 1866년에서 1873년에 이르기까지는 제1기의 대규모 이민시대로서 미국에 약 10만 명, 그리고 1900∼1910년 제2기의 대규모 이민시대로서 20만 명이 바다를 건너갔다. 비록 제 1차 세계대전 중에 노르웨이는 중립국으로 남았지만, 전쟁중에 많은 선박들이 파괴되었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노르웨이는 중립을 선언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치 독일에 의해 5년동안 점령당했다. 이때 독일에 협조했던 나치비드쿤 크비슬링은 전후에 반역죄로 총살당했다.[9] 1949년, 노르웨이는 중립을 끝내고 NATO의 창립멤버가 되었다. 1960년대 후반 인근 바다에서 석유와 천연가스가 발견된 뒤로, 노르웨이의 경제 발전이 가속화되었다. 1972년과 1994년, 유럽 연합 가입 총선거가 치러졌지만, 두 번 모두 가입이 무산되었다.

2011년 노르웨이 테러[편집]

정치[편집]

1814년 헌법에 의해서 노르웨이 왕국의 기초가 섰으며, 입헌군주국으로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1949년에 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맹하였고, 충실한 사회보장제도는 세계 최고의 수준이다.[10]

대외 관계[편집]

대한민국 대한민국

1959년 대한민국과 수교하였으며 한국전쟁때는 UN군으로 참전하여 야전병원 등의 의료지원을 하였다. 노르웨이는 1988년 하계 올림픽에 참가하였고, 한국은 1994년 동계 올림픽릴레함메르로 선수단을 파견하였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평화상 수상을 위해 노르웨이를 방문하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1973년에 수교하였다.

스웨덴 스웨덴

노르웨이는 스웨덴과 이웃국으로서 관계가 깊으며, 역사적으로 스웨덴이 노르웨이를 점령해서 반감정이 있기도 하나, 지금은 같은 서방 일원으로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행정구역[편집]

노르웨이의 행정 구역은 세 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노르웨이의 주
번호 주 이름 청사 소재지 면적 (km²) 인구 (명)
1 외스트폴 주 사릅스보르그 4,182 262,523
2 아케르스후스 주 오슬로 4,918 509,177
3 오슬로 - 454 548,617
4 헤드마르크 주 하마르 27,397 188,692
5 오플란 주 릴레함메르 25,192 183,037
6 부스케르 주 드람멘 14,910 247,655
7 베스트폴 주 퇸스베르그 2,224 223,804
8 텔레마르크 주 시엔 15,299 166,170
9 에우스트아그데르 주 아렌달 9,157 104,759
10 베스트아그데르 주 크리스티안산 7,276 163,702
11 로갈란 주 스타방에르 9,378 404,566
12 호르달란 주 베르겐 15,460 456,711
14 송노피오라네 주 레이캉에르 18,623 106,194
15 뫼레오그롬스달 주 몰데 15,121 245,385
16 쇠르트뢰넬라그 주 트론헤임 18,848 278,836
17 노르트뢰넬라그 주 스테인셰르 22,412 129,069
18 노를란 주 보되 38,456 235,436
19 트롬스 주 트롬쇠 25,877 154,136
20 핀마르크 주 바드쇠 48,618 72,665
21 스발바르 제도 롱위에아르뷔엔 61,020 2,800

경제[편집]

전 국토의 겨우 3% 정도가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이며 산업인구의 11.9%가 제1차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따라서 식량은 자급자족이 어려운 실정이다. 그러나 어업은 활발하여 대구·청어·정어리 등의 어획고는 세계 수위를 다툰다. 이 나라에서 발달한 원양 포경업은 최근에는 쇠퇴해 버렸지만, 북부 르흐딘에 포경기지가 있다. 1971년부터 북해 유전이 개발되어 1975년 산유국 대열에 진입하였으며 수력발전과 어류 및 산림·광물자원이 풍부하다. 이 나라의 생활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외국 무역을 높이는 방법 이외에는 없으며, 현재 세계에서 제7위의 무역액을 보여주고 있다. 노르웨이의 상선보유는 세계 제4위로서 세계 제9위의 해운 수입을 올리고 있어 이 나라의 수입 초과에 대한 큰 뒷받침이 되고 있다. [11]

국민소득[편집]

노르웨이는 석유가 발견되기 전인 1970년 이전엔 그다지 부유한 나라가 아니었다. 스웨덴이 1960-70년대에는 노르웨이보다 월등히 부유했으나 이제는 역전되어 스웨덴 크로나노르웨이 크로네의 환율에 비해 약 85% 수준이고, 많은 스웨덴 젊은이를 포함한 스웨덴 인들이 노르웨이에 일자리를 찾아 들어오고 있는 실정이다. 구매력평가 기준 국민소득은 2010년 기준으로 52,012달러이다.

자원[편집]

노르웨이의 주 수출품의 45%가 원유와 가스이고, 이것들이 20% 이상의 GDP를 차지한다. 세계 4번째 원유 수출국이자, 세계 3번째 가스 수출국이다. 또한, 노르웨이는 중국에 이어 세계 어획량 2위를 기록하고 있다.

수산업[편집]

노르웨이는 세계에서 가장 큰 어획량을 가진 나라들 중의 하나이다. 연어청어가 가장 많이 잡히는 수산물이다.

무역[편집]

국민 1인당의 수출입액은 베네룩스 다음가는 세계의 정상급에 속하고 있다. [10]

교통[편집]

국내 교통은 육상 ·해상 양면에 있어서 이 나라 지형이 남북으로 길 뿐 아니라 산과 피오르드의 장애 때문에 운송에 많은 비용이 들게 된다. 철도(태반이 국영임)의 건설은 의욕적으로 진행되고 있으나 역시 수상 교통의 역할이 크며, 이 나라의 대도시는 항구를 중심으로 발달해 있다. 또 서해안을 따라 북부까지 도시가 있는데, 함메르페스트는 세계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도시로서 무역의 중심이며, 특히 어획물의 거래가 성하다. 스웨덴의 키루나 등지에서 나는 철광석은 나르비크항을 통해 수출된다. 나르비크는 1880년대에 철도가 시설된 당시에는 인구가 겨우 50명이었으나, 100여년 동안에 약 1만 9,000명의 도시가 되었다.[12]

사회[편집]

인구[편집]

노르웨이 주민은 금발과 파란눈을 지니며 키가 큰 사람이 많다. 또한 장수(長壽)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평균 수명은 남자는 73.6세이며, 여자는 80.3세이다. 그리고 랩(Lapp)족은 북부 노르웨이에만 살며 용모, 언어, 문화가 모두 이색적이다. 노르웨이 언어는 다른 스칸디나비아 국가의 언어와 관련이 있다. 지방어에 의해 1850년 새로운 말이 하나 만들어졌는데, 그 이전의 한 공용어와 둘이 현재 쓰이고 있다. 노르웨이 사람의 생활수준은 매우 높으며 주민의 대다수는 루터교회 신자들이다.[9] 노르웨이 인구수는 2010년 410만명인데 이보다 많은 수가 미국에 살고 있는데, 미국 내 노르웨이 이민자 인구는 2010년에 470만명이었다.

언어[편집]

노르웨이어는 단일한 노르웨이어가 아니라 북크몰(Bokmål)과 뉘노스크(Nynorsk)라는 저마다의 문어체계를 갖춘 표준어가 둘 있다.(노르웨이어 분쟁) 오슬로 중심의 동부와 남부는 보크몰(85%)을, 베르겐 중심 서부와 북쪽지방은 뉘노스크(15%)를 사용한다.

문화[편집]

인형의 집》을 쓴 극작가 헨리크 입센이 유명하며 에드바르 그리그는 그의 작품 페르귄트를 위한 음악을 작곡하였다. 우리에게 호호 아줌마의 작자로 알려진 동화작가 알프 프뢰위센도 있다. 또한 "절규"로 유명한 에드바르 뭉크라는 후기 인상파 화파에 속하는 화가 역시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다.

탐험가 프리티오프 난센로알 아문센도 노르웨이인이다.

1980년대 전 세계적인 영향력을 가졌던 음악성을 인정받는 팝그룹 a-ha도 노르웨이 출신이다.

종교[편집]

노르웨이는 종교개혁 전통에 따라 루터교 국가이다. 그러므로 노르웨이의 국교는 루터교이다. 루터교 의식(Ritual)에 따라 교회에서 왕의 즉위식부터 세례, 결혼, 장례 등이 다 행해진다. 개신교 국가이지만 이슬람, 불교, 로마 가톨릭 등의 종교가 다 보장된다. 부활절, 성령강림주일, 성탄절처럼 기독교 교회력에 나오는 절기들은 공휴일로 인정된다.

2011년 기준으로 종교 분포는 다음과 같다.[13]

  • 전체: 4,920,305명 (100%)
    • 기독교: 4,115,675명 (83.6%)
      • 루터교:3,911,622명 (79.4%)
    • 비기독교: 133,219명 (2.7%)
      • 이슬람교: 106,735명 (2.1%)
    • 그 밖의 종교: 1,188명 (0.02%)
    • 무교이거나 잘 알 수 없음: 671,411명 (13.6%)
    • 인문주의: 84,481명 (1.7%)

참고[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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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