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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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 | 하느님께 소명을 받은 에티오피아에게 만세 | ||||
| 공용어 | 암하라어 | ||||
| 수도 | 아디스 아바바 | ||||
| 체제 | 1270-1931 : 절대군주제 1931-1974 : 입헌군주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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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제 | 예쿠노 아믈라크 (1270~1285) 하일레 셀라시에 1세 (1930~19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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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면적 | |||||
| 인구 | |||||
| 통화 | 비르 (1894년부터) | ||||
| 국교 | 에티오피아 정교회 | ||||
에티오피아 제국(Ethiopian Empire)은 1974년까지 존재했던 나라이다. 멩기스투에 의한 공산 쿠데타로 인하여 군주제가 폐지되었다. 1931년 이전에는 공식 명칭이 '아비시니아 제국'이었으며,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가 헌법을 제정한 이후부터 '에티오피아 제국'이라 부르게 되었다.
[편집] 역사
- 이 부분의 본문은 에티오피아의 역사입니다.
19세기는 에티오피아가 혼란했던 시기로써, 마호메트 알리 치하의 이집트와 이탈리아의 침략을 받았다. 하지만 에티오피아는 연전연승했다. 흑인이 백인을 이긴 몇 안 되는 나라인 이 나라는, 1895년 3월 1일에 일어난 아도와 전투에서 이탈리아군을 전멸케 하였다. 승리 비결은 메넬리크 2세의 치밀한 작전 계획도 훌륭했지만, 당시 이탈리아와 적대적이었던 프랑스가 화약류 무기들을 무상원조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후 메넬리크 2세는 수도를 아디스 아바바로 정하고, 도시 개발을 명함으로써 철도가 세워졌다. 1930년에 황제가 된 하일레 셀라시에 1세는 최초로 근대적인 헌법을 실시하여 입헌 군주제 국가로 만들었다.
그러나 1935년에 이어 1936년에 이탈리아군이 2차 침공을 함으로써, 에티오피아는 이탈리아의 불법 점령을 당하는 수치스러움을 겪게 된다. 에티오피아 국민들은 이 때문에 지금도 이탈리아에 대한 좋지 못한 감정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파시즘 정권은 에티오피아 국민들을 무참히 살해했고,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는 영국으로 정치적인 망명을 해야 했다.
당시 에티오피아 육군은 탱크를 제외한 나머지 무기들은 제1차 세계대전 시절의 것을 사용하였고, 항공대는 1929년에 창설될 정도로 이탈리아와 18년 정도 차이가 있었다(1946년에 공군으로 승격된다). 반면, 이탈리아는 자국에서 무기를 생산하였고, 에티오피아의 군사력보다 수준이 높았다(항공대는 1911년에 창설되었고, 1923년에 공군으로 승격된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1년, 에티오피아군은 영국 육군과 협조하여 파시즘 정권을 에티오피아 국토에서 완전히 몰아낸다(베니토 무솔리니는 1943년에 이르면 이탈리아 내각의 직위도 버리게 된다). 1942년에는 연합군으로 참전하였고, 이후 국제 연합의 창설회원국이 되었다. 한국 전쟁기에는 대한민국에 군인을 6,000명 정도 파견하였다(이들 중에는 황제의 친위대도 섞여 있었다). 1960년 당시 국민 소득은 3천 달러였으며, 로마 올림픽에서 아베베 비킬라는 맨발로 마라톤에 참가하여 금메달을 획득한 바 있었다.
그러나 1970년대는 에티오피아로써는 비극의 시기였다. 기근과 질병으로 농촌의 어린이들이 죽어 가던 중, 1974년 9월 12일, 멩기스투 하일레 마리암에 의한 공산 쿠데타로 제국은 폐지되었다.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는 1975년에 암살당하였고, 1992년이 되어서야 시신이 발견되었다.
[편집] 역대 황제
- 이 부분의 본문은 에티오피아의 군주입니다.
이 문서에는 1889년 이후에 즉위한 황제를 기준으로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