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비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찾기
다른 뜻에 대해서는 세르비아 (동음이의)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Република Србија
Republika Srbija
세르비아의 국기 세르비아의 국장
국기 국장
표어: Само слога Србина спасава
Samo sloga Srbina Spasava
국가: 하느님의 정의
세르비아의 위치
수도 베오그라드
44°49′14″N 20°27′44″E / 44.820556°N 20.462222°E / 44.820556; 20.462222
공용어 세르비아어
정부 형태 공화제
대통령
총리
보리스 타디치
미르코 츠베트코비치
독립
• 날짜
세르비아 몬테네그로로부터
2006년 6월 5일
면적 88,361 ㎢ (113위)
 • 내수면 비율 0.13 %
인구
 • 2008년 어림 8,023,557명
 • 2002년 조사 7,498,000명
 • 인구 밀도 115명/㎢ (94위)
GDP (PPP) 2008년 어림값
 • 전체 $819.8억 (72위)
 • 일인당 $10,985 (93위)
HDI 0.821 (65위, 2006년 조사)
통화 디나르 (ISO 4217: CSD)
시간대 CET (UTC+1)
 • 일광 절약 시간제 CEST (UTC+2)
ISO 3166-1
alpha-3
SRB
인터넷 도메인 .rs (.yu도 보유)
국제 전화 +381

세르비아 공화국(Република Србија/Republika Srbija 레푸블리카 스르비야, 문화어: 쎄르비야)은 유럽 동남부의 발칸 반도 중앙과 카르파티아 분지의 남부 저지에 자리잡은 내륙국이다. 세르비아의 수도인 베오그라드는 오랜 역사를 지녔으며, 남동부 유럽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이다.

목차

[편집] 개요

세르비아인은 발칸 반도에 정착하여 세르비아 왕국을 건설했으며, 이 나라는 세르비아 제국으로 발전하여 14세기에 전성기를 이루었다. 16세기에 세르비아 땅은 오스만 제국에 정복당하였으며, 합스부르크의 침략을 받기도 했다. 19세기 초에 세르비아 혁명이 일어나면서 남동부 유럽 최초로 입헌 군주 체제를 세웠으며, 뒤이어 영토를 늘리고 이 지역에서 봉건주의농노제를 폐지하는 데 앞장 섰다.[1][2] 옛 합스부르크 제국의 땅이었던 보이보디나 주는 1918년에 세르비아 땅이 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으로 황폐해진 세르비아는 여타 남슬라브 민족과 함께 유고슬라비아로 통합하여 존속하다가 1991년에 해체되었다. 유고슬라비아 연방 해체 이후 세르비아는 몬테네그로와 함께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연방을 구성하는 공화국이었으나, 2006년 6월 5일, 두 나라가 분리 독립하여 연방은 다시 해체되었다. 2008년 2월에 알바니아계가 다수를 이루는 세르비아 남부의 코소보의 의회가 독립을 선언했다. 코소보의 지위를 둘러싼 국제 사회의 반응은 엇갈렸다. 그러나 세르비아는 코소보를 국제 연합 내무 행정단(UNMIK)이 통치하는 자치주로만 인정하고 있다.

세르비아는 국제 연합, 유럽 평의회, 흑해 경제 협력 기구의 회원국이며, 2010년에는 중부 유럽 자유 무역 협정 의장국을 맡는다. 국제 통화 기금에서는 세르비아를 신흥 개발도상국으로 분류하며, 세계 은행에서는 이 나라의 소득 수준을 중상류로 본다.[3] 세르비아는 2010년에 세계 무역 기구에 가입할 전망이다.[4] 세르비아는 인간 개발 지수가 높은 수준이며,[5] 프리덤 하우스에서는 2008년에 세르비아를 발칸 국가 가운데 몇 안되는 '자유 국가'로 등재했다.[6] 이 나라는 유럽 연합 가입을 신청한 상태이며, 국제적으로 중립국이다.[7][8]

[편집] 역사

9세기에 최초의 세르비아 왕국이 세워졌고, 9세기 말에 라슈카에서 흥성했다.[9]:200~201 14세기 중엽에는 스테판 두샨(재위:1331~1355)이 발칸 반도의 대부분을 석권하는 등 세력을 떨쳤으나 1389년 코소보 전투에서 오스만 제국에게 패배하고[9]:201, 오스만 제국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결국 당시 이들의 중심지였던 보스니아는 동서양의 상반되는 세력에 오랫동안 굴복해야 했으며 12세기의 보고밀파와 같은 이단종파가 널리 전파되었다.[9]:201 19세기, 세르비아인들은 집요한 독립 전쟁 끝에 1881년에 독립을 달성하였다(세르비아 왕국).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 사건 당시 이 나라 출신의 가브릴로 프린치프오스트리아-헝가리의 황태자를 암살함에 따라 한 달 후에 오스트리아-헝가리가 세르비아에 선전 포고를 하였다. 그 당시 작은 나라였던 몬테네그로 왕국은 세르비아를 도와주는 동생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의 집요한 침략에도 불구하고 세르비아는 계속 승리하였다. 그러나 1916년 2월엔 세르비아 또한 점령되었다(몬테네그로는 항복). 1918년이 되어서야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는 오스트리아-헝가리에 빼앗긴 땅을 수복하게 되었으며 1920년에는 유고슬라비아 왕국으로 통합되었다.

그러나 유고슬라비아 왕국은 1941년, 나치 독일에 의해 점령당했으며 나치에 협력한 크로아티아인에 의해 세르비아인에 대한 학살이 이루어졌다. 소련군의 지원 아래에 1943년에 영토를 수복, 이 땅에 인민 공화국이 세워졌다(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티토사후 동구권의 민주혁명 및 민족주의의 대두에 따라 1992년, 슬로베니아 / 크로아티아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 마케도니아 공화국이 차례로 유고슬라비아에서 분리 독립을 선언하였으며, 연방의 중추적 국가였던 세르비아가 이에 반발하여, 특히 인접한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인이 많이 살고 있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의 전쟁은 2차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의 전쟁이었다. 이 과정에서 민족 정화 등 많은 반인륜적 잔인행위가 저질러졌고, 나토와 미국의 군사개입이 있었다. 2003년 2월에는 신 유고 연방마저 해체하여 세르비아 몬테네그로가 되었으나, 2006년 5월 몬테네그로가 분리 독립 투표에서 독립 찬성률이 55.4%로 독립이 가결되었다. 같은 해 6월 4일에는 몬테네그로 의회가 독립을 공식 선언함으로써 '세르비아 몬테네그로'가 해체, 세르비아 공화국과 몬테네그로 공화국으로 분리되었다. 한편, 세르비아는 2006년부터 프랑코포니의 참관국이 되었다. 2007년 1월 21일에는 코소보의 운명을 결정할 총선이 시작되었다. 이 총선에서 세르비아 급진당이 승리하였으나 과반수를 달성하지는 못했다. 2008년 2월 17일 코소보는 세르비아에서 분리 독립을 선언하였다.

[편집] 지리

세르비아는 북쪽으로 헝가리, 동쪽으로 루마니아불가리아, 서쪽으로 몬테네그로,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남쪽으로 마케도니아 공화국알바니아와 국경을 접하며, 알바니아와 국경 문제 문제를 안고 있다.

세르비아는 발칸 반도와 파노니안 평원에 있다. 남동부 유럽에 있으며 다뉴브 강이 북쪽 지방을 흘러간다.

동쪽 국경에는 카르파티아 산맥이 있고 벨리카 모리카라고 하는 500km 길이의 강이 흐른다. 남동부 지방에는 발칸 산맥이 로도프 산맥과 맞닿아 있고 그리스와 마주한다. 세르비아의 영토 4분의 1 이상이 숲으로 돼 있다.

[편집] 행정 구역

이 부분의 본문은 세르비아의 구입니다.

세르비아는 29개 구(세르비아어: Округ, okrug)와 1개 특별시(베오그라드 시)로 구성되어 있다.

세르비아는 코소보 독립선언 전까지 헝가리인이 많이 사는 보이보디나 자치주와 알바니아인이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코소보 자치주를 포함했었다. 코소보는 코소보 전쟁 이후 현재 국제연합 관할하에 있어, 사실상 세르비아의 주권이 미치지 못했다. 그래서 코소보미국영국 등 서방국가들의 지원 하에 2008년 2월 17일 독립을 선언 하게 되어 세르비아의 통치 지역에서 분리되었다.

[편집] 정치

현재 세르비아의 정치 제도는 공화제이며 정부의 실권 수반은 총리이다.

[편집] 주민

남 슬라브인의 분파인 세르비아인이 다수를 차지한다. 세르비아인 외에도 여러 소수 민족들이 거주하며 헝가리인, 터키인, 크로아티아인, 보스니아인, 불가리아인, 알바니아인, 마케도니아인, 아랍인, 기타 소수 민족도 거주하고 있다. 몬테네그로인은 구 유고슬라비아의 구성민족 중 세르비아인과 가장 가까웠으나, 독립과 더불어 독자적인 민족정체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편집] 언어

세르비아어가 공용어이다. 키릴문자로마자 모두 사용되나, 키릴문자의 사용이 보다 보편적이다. 크로아티아어나 보스니아어와는 유고 연방 시절에는 방언적 차이에 불과했으나, 현재 정치적인 대립을 배경으로 급속히 분화하는 중이다. 2006년 10월 28일과 29일에 실시한 국민투표로 확정한 헌법 10조 1항에 "세르비아공화국에서는 세르비아어와 키릴문자가 공식적으로 사용된다."라고 규정했다. 알바니아계 주민이 90%를 넘는 코소보에서는 알바니아어의 북부 방언인 게그 방언이 주로 사용된다. 보이보디나 자치주에서는 헝가리어도 사용된다.

세르비아는 2006년 9월 부쿠레슈티에서 열린 프랑코포니 정상회담 결과 참관국 자격을 획득하였으나, 프랑스어의 사용은 제한적이다. 영어나 소수 민족어도 사용된다.

[편집] 종교

세르비아 정교회가 다수이며, 크로아티아계는 로마 가톨릭, 알바니아계는 이슬람교를 믿는다.

[편집] 경제

공산주의 붕괴에 따라 1992년 통제경제에서 시장경제로 전환하여 자본주의적인 경제 발전을 시작했으나, 유고 내전과 UN의 경제제재로 인해 제동이 걸렸다. 2003년에는 국유재산의 사유화와 외자유치를 했지만, 2004년에는 외국인 투자가 절반 수준으로 떨어지고 무역적자가 커 그를 메워줄 원조와 산업이 필요하다. 광공업이 발달했지만 아직 헝가리나 폴란드보다 경제가 뒤떨어져있다.

[편집] 문화

[편집] 국경일

세르비아의 국경일
날짜 한국어 표기 세르비아어 표기 비고
1월 1일, 1월 2일
1월 7일 크리스마스 정교회의 크리스마스
1월 14일 정교회 새해 Српска нова година/Srpska nova godina 세르비아의 새해
1월 27일 조국 영웅의 날 성 사바의 날
2월 15일 세르비아의 국경일 Сретeње/Sretenje
3월 6일 정교회 금요일
3월 8일 정교회 부활절
3월 9일 정교회 부활 월요일
5월 1일/5월 2일 노동절
5월 9일 승전일
6월 28일 비보브단(마르티르의 날, 성 비투스의 날) 코소보 전투에서 전사한 군인들을 기념하기 위한 날

[편집] 대외 관계

대(對) 한국 관계

유고슬라비아시절에는 북한 단독수교국으로 1950년 한국전쟁 때는 친소(親蘇) 노선 국가로 UN의 대한(對韓)지원에 UN 비상임이사국으로서 기권의사를 밝힌 적이 있다. 1971년 북조선과 단독수교하였으나 1989년에는 대한민국과 공식수교하였다. 그러나 1993년 유고사태 악화로 관계가 소원해져 주유고 한국대사관이 철수 및 폐쇄하여 주루마니아 한국대사관이 겸임하였다가 2002년 주세르비아-몬테네그로 한국대사관을 재설치하였다. 세르비아도 한국에서 주한대사관을 철수 및 폐쇄하고 주일본대사관이 겸임하였다가 2004년 주한국대사관을 재설치하였다.

대(對) 일본 관계

세르비아-일본 관계는 18세기 말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세르비아는 19세기 초에 일본과 관계는 중립 상태였고, 제1차 세계대전때는 같은 연합국으로서 동맹국과 맞서 싸웠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때 일본추축국으로 들어서자 적대적 사이가 되었다. 공산주의 정권이 끝난뒤에야 일본과의 관계를 개선하려고 세르비아는 노력하였다. 오늘날, 일본과 세르비아는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으나 일본코소보의 독립을 인정하자 세르비아는 이로 인한 갈등을 겪었다.

대(對) 터키 관계

1389년 코소보 전투에서 오스만 제국세르비아 제국을 물리쳐[9]:201, 세르비아 제국은 오스만 제국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대(對) 러시아 관계

제1차 세계대전때는 두 나라 사이는 좋았던 사이였다. 소련군의 지원 아래에 1943년에 영토를 수복, 유고슬라비아 왕국이 지배하던 땅에 인민 공화국이 세워졌다(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두 나라의 관계가 러시아와 세르비아는 공산주의 시절에는 러시아와 사이가 대립되어 있던 상태였다. 현재에서의 관계는 조금씩 풀려가고 있다.

대(對) 오스트리아 관계

19세기 말에서의 관계는 나쁜 외교 상태였고,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 사건 당시 세르비아인 가브릴로 프린치프오스트리아-헝가리의 황태자를 암살함에 따라 한 달 후에 오스트리아-헝가리가 세르비아에 선전 포고를 하였다. 그러나 1916년 2월에 세르비아는 오스트리아-헝가리에게 점령되었다. 현재 오스트리아와의 관계는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

대(對) 크로아티아 관계

1920년에 세르비아를 포함하여 건국된 유고슬라비아 왕국은 1941년, 나치 독일에 의해 점령당했으며 나치에 협력한 크로아티아인에 의해 세르비아인에 대한 학살이 이루어졌다.

대(對) 몬테네그로 관계

몬테네그로는 세르비아와 연방을 이루었던 국가로, 2006년 이후에는 조금씩 긴장 관계에서 서있기도 하였으나, 몬테네그로코소보의 독립을 인정하자 두나라의 사이는 관계가 악화되었다.

대(對) 헝가리 관계

헝가리와 세르비아는 특별히 국제적인 감정같은 것은 없다. 국제 사회에서도 헝가리와 세르비아의 관계는 그나마 좋은 사이다. 헝가리는 제1차 세계 대전의 패전국이었고, 전쟁의 책임을 마무리하는 교섭이 진행되어, 연합국과 헝가리간의 트리아농 조약(1920년 6월 4일)에 따라 유고슬라비아에 영토를 할양하였다. 헝가리는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잃은 땅을 회복하기 위해 또한 나치 독일의 압박을 받아, 추축국에 가담하여 유고슬라비아 왕국을 공격해 현재의 슬로베니아 일부 지역과 세르비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전역을 합병, 대국이 되었다. 헝가리는 파리 조약(1947년)에 따라, 전쟁으로 얻은 영토를 모두 잃고 1938년 1월 1일 당시의 국경으로 돌아갔다.[9]:200

[편집] 바깥 고리

Commons
위키미디어 공용에 관련 미디어 자료가 있습니다.

[편집] 주석

  1. The Serbian Revolution and the Serbian State. Staff.lib.msu.edu (2009년 6월 11일). 2010년 4월 28일에 확인.
  2. Parliament of the Republic of Serbia. Parlament.gov.rs. 2010년 4월 28일에 확인.
  3. http://siteresources.worldbank.org/DATASTATISTICS/Resources/CLASS.XLS
  4. Retailing - ANNOUNCEMENTS: Serbia in WTO by early 2010. SEEbiz.eu. 2010년 4월 28일에 확인.
  5. Human development index trends, Human development indices by the United Nations. Retrieved on October 5, 2009
  6. Map of Freedom in the World. freedomhouse.org (2004년 5월 10일). 2010년 4월 28일에 확인.
  7. http://www.becei.org/evropski%20forumi%20u%20pdf-u/Evropski_forum_No._4,_2008.pdf
  8. Serbia submits EU membership bid”, 23 December 2009 작성. 6 April 2010 확인.
  9. 조르주 뒤비 지음, 채인택 옮김, 《지도로 보는 세계사》, 생각의 나무 (2006)

개인 도구
이름공간

변수
행위
둘러보기
인쇄/내보내기
도구모음
다른 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