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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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연방 민주 공화국
सँघिय लोकतान्त्रीक गणतन्त्र नेपाल
Flag of Nepal.svg Coat of arms of Nepal.svg
국기 국장
표어 जननी जन्मभूमिष्च स्वर्गादपि गरियसि
(어머니와 조국의 대지는 천국보다 좋다.)
국가 백송이의 꽃
Nepal on the globe (Asia centered).svg
수도 카트만두 북위 27° 42′ 00″ 동경 85° 19′ 00″ / 북위 27.7° 동경 85.316667° / 27.7; 85.316667
정치
공용어 네팔어
정부 형태 공화제
대통령 람 바란 야다브
총리 바부람 바라타이
역사
독립  
 • 왕정 수립 1768년 12월 21일
 • 과도정부 수립 2007년 1월 15일
 • 공화정 수립 2008년 5월 28일
지리
면적 147,181km² (93 위)
내수면 비율 2.8%
시간대 (UTC+5:45)
DST 없음
인구
2008년 어림 29,519,114명
2003년 조사 23,151,423명 (40위)
인구 밀도 184명/km² (56위)
경제
GDP(PPP) 2012년 어림값
 • 전체 $412.2억 (96위)
 • 일인당 $1,315 (177위)
HDI 0.463 (157위, 2012년 조사)
통화 루피 (NPR)
기타
ISO 3166-1 524, NP, NPL
도메인 .np
국제 전화 +977

네팔(네팔어: नेपाल, 영어: Nepal)은 남아시아에 있는 나라로, 북쪽으로는 중화인민공화국, 동쪽, 서쪽, 남쪽으로는 인도에 둘러싸여 있으며 동쪽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부탄이 있다.

2006년까지는 이 나라의 공식 국명이 네팔 왕국(네팔어: नेपाल अधिराज्य 네팔 아디라쟈)이었다. 2007년 1월 15일에 왕정이 사실상 종식되고 과도정부로 정치체제가 변경되었으며, 2008년 5월 28일네팔 연방 민주 공화국(네팔어: सँघिय लोकतान्त्रीक गणतन्त्र नेपाल Saṃghiya Loktāntrīk Gaṇatantra Nepāl)이 되었다. 2010년 현재 세계에서 가장 최근에 민주 공화국이 된 나라이다. 147.181㎢의 영역과 약 3천만 명의 인구를 가진 네팔은 세계에서 93번째로 넓은 나라이고, 41번째로 인구가 많은 나라이다. 네팔의 수도인 카트만두는 네팔에서 가장 큰 대도시이다.

네팔은 다양하고 풍부한 지리적, 종교적,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북부 산악지대는 에베레스트 산을 포함하여 세계에서 가장 큰 10대 산 중 8개가 분포해있다. 비옥하고 습한 남부는 매우 도시화되어 있다.

네팔 국민의 대부분은 힌두교를 믿는다. 비록 불교는 소수 종교이기는 하지만, 역사적으로 네팔이 석가모니의 탄생지라는 점에서 연결되어 있다.

국명과 역사[편집]

국명[편집]

네팔이라는 국명의 기원은 네팔의 수호신인 'ने'(Ne)와 보호라는 의미의 'पाल'(pal)을 사용하여 직역하면 '신의 보호'라는 뜻을 가진다.

역사[편집]

1768년 12월 21일에 왕조가 세워졌고, 1814년 영국 육군과의 전투에서 패배하여 영토를 상당수 잃었다. 그러나 영국의 식민지 상태로 놓이지는 않았다. 1990년전제군주제에서 입헌군주제로 변경되고 1994년 총선에서 네팔 통일 사회주의 당이 정권을 잡았다. 1996년 마오쩌둥공산주의 이론을 따르는 마오이스트(Maoist)들이 네팔 인구의 37.8%를 차지하는 네팔 원주민(자나자티스)을 인적자원으로 한 무장투쟁을 시작하여 수많은 인명 피해를 냈다. 당시 무장투쟁 지도자는 현 네팔공산당 (마오이스트) 프란찬다 당수이다.[1]국민의 폭넓은 지지를 받던 비렌드라 전 국왕은 2001년 네팔 왕실 대학살 사건으로 사망하였다. 같은 해에 즉위한 마지막 왕 갸넨드라 시대에는 총리가 없었다. 그리고 전제 정치와 다름 없는 행각으로 국민들의 비판을 받았다. 이 때문에 내전은 더욱 격화되었다. 결국, 2007년 12월 23일 네팔은 국민 투표를 따라 군주제 폐지를 결정했다.[2] 2008년 5월 28일에 네팔 제헌의회가 첫 회의를 열고 압도적인 찬성 속에 왕정 폐지와 공화정 도입을 골자로 한 결의안을 채택하면서 239년 동안 이어졌던 왕정체제가 끝나고 공화제로 변경되었다.[3] 궁을 비우라는 의회의 통첩을 받았던 네팔의 왕과 왕비는 2008년 6월 11일 카트만두의 궁을 떠났다. 군과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궁전을 떠났으며 일부 왕의 지지자들이 앞길을 막는 시도도 있었다. 왕이 거주하던 궁은 박물관으로 변경될 예정이다. 네팔의 마지막 왕으로 기록될 갸넨드라는 국민들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밝히며 네팔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2008년 4월 제헌의회 총선에서는 네팔공산당 (마오이스트)이 전체 의석의 1/3 이상을 차지하며 제1당으로 올랐으나, 2008년 7월에 열린 선거에서 제헌의회는 국민회의당의 람 바란 야다브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2008년 8월 15일, 제헌의회 투표에서는 네팔공산당 (마오이스트)의 프라찬다가 총리로 선출되었다.

지리[편집]

네팔은 길이 650km, 너비는 200 km 정도의 직사각형 형태이며, 전체 면적은 147,181 km²로 세계적으로는 94번째로 넓은 영토를 가지고 있다. 북쪽으로는 중화인민공화국티베트 자치구, 서쪽으로는 인도우타라칸드 주, 남쪽으로는 우타르프라데시 주비하르 주, 동쪽으로는 시킴 주웨스트벵골 주에 접하는 내륙국이다. 국경 길이는 총 2926km, 그중 중화인민공화국 국경은 1236km, 인도와의 국경 1690km에 달한다.

네팔은 비교적 작은 국가이나 인도와의 국경지대에 펼쳐져 있는 습지와 중화인민공화국과의 경계에 있는 히말라야 등 고산지대에는 세계적으로도 아름다운 경관을 지닌 곳이 많다. 네팔은 자연, 지리학적으로 동쪽에서부터 서쪽으로 산악 지대, 언덕지대, 그리고 습지대로 나뉘는데, 이러한 구분은 정부의 지역 개발 계획에서도 그대로 사용된다.

중화인민공화국 국경 지대에는 에베레스트를 비롯한 8000m 급의 높은 봉우리를 포함한 히말라야가 존재한다. 따라서 고산 기후를 가지고 있다. 한편, 인도와의 국경 지역은 "타라이" "테라이" 또는 "마데스"라고 하는 고온다습한 평원 지대가 있고, 비옥한 땅이다. 그 중간에는 언덕이 펼쳐진다. 가장 높은 곳은 에베레스트로 해발 8850m. 가장 낮은 곳은 해발 70m이다.

에베레스트

히말라야[편집]

중화인민공화국 국경에 접하는 네팔 북부는 세계의 지붕이라고 불리는 8000m급의 산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고산 지대이며, 많은 등산객을 매료시키고 있다. 고산의 산간에는 빙하가 많이 형성되어 있다. 최근에는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고산의 눈이 녹아, 빙하 호수의 종괴가 문제가 되고 있다. 빙하 호수가 무너지면서 대량의 토사에 의한 토석류가 발생하여 큰 피해가 발생한다. 특히 에베레스트 기슭에 있는 임쟈호수는 매우 위험한 상태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네팔의 주요 봉들은 다음과 같다.

정치[편집]

카트만두 민주의 벽

정치는 민주공화정이며 국가원수는 람 바란 야다브(Ram Baran Yadav) 대통령(2008.7 취임)이다. 의회는 상. 하 양원제로 알려져 있다. 네팔이 주요정당은 네팔의회당, 네팔공산당이 있다.

네팔은 2009년 현재 임시 헌법에 따라 임시 정부가 마련되어 있는 상황이다. 2008년 5월 제헌 의회가 설치되어 본격적인 헌법의 제정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06년 민주화 운동(록탄트라 앤도란)의 결과, 기존의 사실상 절대군주국에서 잠정적으로 입헌군주제로 전환했다. 국왕은 국가 원수로서의 지위를 잃고 총리가 그 직무를 대행했다. 국호는 "네팔 왕국"에서 "네팔"로 변경하고 재외 공관의 표기도 "왕국"이 삭제되었다. 왕실을 찬양하는 국가를 폐지하고, 왕실과 결합된 힌두교는 국교로서의 지위를 잃었다. 국왕은 국군통수권을 상실하고 정부도 "국왕 폐하의 정부"에서 "네팔 정부"로 변경되었다.

이에 따라 당시 여당인 네팔의회당과 다른 여러 당에서 제안되었던 왕제 폐지에 찬성하는 것을 표명했다. 또한 임시 헌법에 네팔에서 가장 큰 정치 세력이던 네팔공산당 모택동 주의자(Maoists)가 임시 정부 복귀 조건으로 했던 "왕제 폐지"와 "연방 민주공화제"가 포함되는 것이 정해져, 네팔의 국가 형태 이 왕제에서 공화제로 전환하는 것이 사실상 굳어졌다.

2008년 4월 10일 치러진 제헌 의회 선거(지역구 240, 비례 대표 335, 의회 임명 26)에서 프라찬다 의장이 이끄는 네팔공산당 모택동주의파가 229석(지역구 120, 비례 대표 100, 의회 임명 9)을 획득하여 제 1당이 되어, 네팔의회당이 115석(지역구 37, 비례 대표 73, 의회 임명 5), 통일공산당이 108석(지역구 33, 비례 대표 70, 의회 지명 5)을 차지하여 왕정 폐지파의 정당이 대다수를 차지했고, 왕정지지파 정당은 유일한 국가 민주당 네팔이 4석에 머물렀다. 같은 해 5월 28일 소집된 제헌 의회 첫 회의에서 찬성 560표, 반대 4표로 정식으로 왕제를 폐지하고 연방 민주공화제로의 전환을 선언했다.

행정 구역[편집]

네팔의 행정 구역은 14개 지역 75개 군(district)이 존재하며, 5개 개발 지구로 나뉘어 있다. 수도카트만두이다. 포카라 등의 주요 도시도 존재한다.

주요 도시[편집]

No 도시명 인구(1991년) 인구(2001년) 2005년 추계 지방
1 카트만두 421.258 671.846 790.612 카트만두
2 포카라 95.288 156.312 186.410 카스키
3 랄릿푸르 115.865 162.991 183.316 라릿푸르
4 비랏나가르 129.388 166.674 168.331 모란
5 빌간지 69.005 112.484 133.244 파르사
6 다란 66.457 95.332 128.605 슨사
7 바랏푸르 54.670 89.323 117.162 치트완
8 마헨드라나가르 62.050 80.839 99.124 칸찬푸르
9 부터왈 44.272 75.384 91.737 루판데히
10 헤타우다 53.836 68.482 84.800 마칸푸르

교통[편집]

네팔은 세계적인 주요 육로, 항로, 해로 교통으로부터는 고립되어 있으나 국내에서는 항공 교통의 사정이 비교적 나은 편이다. 48개의 공항이 있으며 그 중 10개는 포장된 활주로가 있다. 항공편이 자주 있으며 어느 정도 규모의 교통량을 보이고 있다. 이 나라의 3분의2를 차지하며, 언덕과 산이 많은 북부 지역에서는 도로나 다른 기반시설을 만드는 것이 까다롭고 비용이 많이 든다. 2003년 기준, 포장도로는 8500km이었고, 철도는 남부에 있는 59km짜리 한 개가 유일하였다. 이로써 철도 밀도는 4.00km/10,000㎢(세계 143위)에 불과하다. 인도에서 카트만두 계곡으로 가는 믿을 만한 도로는 단지 1개뿐이다. 카트만두 행 화물을 취급할 수 있는 유일하게 실질적인 항구는 인도의 캘커타이다.

사회[편집]

주민[편집]

네팔인이 주로 거주하며 인도인이나 부탄인도 거주한다.

네팔의 인구는 2005년 기준으로 27,676,547명이며, 인구증가율은 약 2.2%정도이다. 연령분포를 보면 14세 이하가 39%, 15세부터 64세까지가 57.3%이고, 65세 이상 인구는 3.7%에 불과하여 평균연령은 20.07세(남성은 19.91세, 여성은 20.24세)로 낮은 수준이다. 여자 1,000명당 남자 수는 1,060 명으로 남자의 수가 더 많다.

언어[편집]

네팔어공용어로 인구의 약 90%가 네팔어를 구사하며, 힌디어, 종카어도 사용된다. 영어는 700만 명 정도가 2언어로 사용한다.[출처 필요]

문화[편집]

과거 힌두교를 국교로 지정했던 나라로써 이 나라 국민들은 지금도 힌두교의 영향을 받고 있다.

신문[편집]

  • 영어 일간지
    • 카트만두 포스트
    • 리싱네팔
  • 네팔어 일간지
    • Gorkhapatra
    • Kantipur

방송[편집]

  • TV 방송국 3 개
  • 라디오 방송국 3 개

종교[편집]

네팔은 힌두교를 국교로 인정하고 있던 유일한 국가로서 인도와 함께 대표적인 힌두교 국가이다. 신헌법이 2008년 6월 15일부터 발효되어 국교를 폐지했다. 현재 전 국민의 80% 이상이 힌두교를 믿고 있으며 그 밖의 소수종교로는 불교가 있다.

교육[편집]

기본 학제는 '10+2 시스템'으로 초등학교 7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2년 과정으로 되어 있다.

유명 대학은 카트만두에 국립 Tribhuvan 대학(전국 각지에 100여개 캠퍼스 운영)이 있으며 총 학생 수는 약 20만 명 정도이다.

외교[편집]

네팔과 버마 양국 수상은 1960년 3월 9일 밤, 양국 간의 외교관계수립을 발표하였다. [4]

대한 관계[편집]

대한민국과 네팔의 공식적인 교류는 1969년 5월 영사관계 수립에 합의하고 1969년 7월 영사협정을 체결하면서 시작되었다. 1972년 6월 대한민국이 먼저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 주카트만두 총영사관을 설치하였고, 1974년 5월에는 정식으로 외교관계를 수립하여 총영사관이 대사관으로 승격되었다. 네팔에서는 2007년 3월 7일 주한 네팔 대사관을 설치하였다. 모두 574 명(재외국민 574 명, 시민권자 0명)의 한민족들이 네팔에 거주(2010년 12월 기준)하고 있다. [5]

1974년 6월 2일, 네팔과 북한은 외교관계를 대사급으로 승격하였다고 발표하였다. [6]

출처[편집]

  1. 한겨레 21 2008년 4월17일자
  2. 네팔 왕조 240년 마감 - 국민일보 2007년 12월 24일 기사.
  3. "네팔 239년 왕정체제 막 내린다", 《매일경제》, 2008년 5월 29일 작성.
  4. "토막뉴스", 《동아일보》, 1960년 3월 11일 작성.
  5. 국가별 재외동포현황(2011).xls (엑셀). 대한민국 외교통상부.
  6. "北傀네팔 大使級修交", 《동아일보》, 1974년 6월 3일 작성, p. 1.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