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루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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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ública Oriental del Uruguay
우루과이의 국기 우루과이의 국장
(국기) (국장)
표어: Libertad o Muerte
(스페인어: 자유냐 죽음이냐)
국가: 우루과이 국가
우루과이의 위치
수도 몬테비데오
34°53′S, 56°10′W
공용어 에스파냐어
정부 형태 공화제
타바레 바스케스
로돌포 닌 노보아
독립
 • 독립 선언
 • 승인
브라질로부터 독립
1825년 8월 25일
1828년 8월 28일
면적
 • 전체
 • 내수면 비율
 
176,215km² (90위)
1.5%
인구
 • 2005년 어림
 • 2002년 조사
 • 인구 밀도
 
3,477,778명 (134위)
3,399,236명
19명/km² (156위)
GDP (PPP)
 • 전체
 • 일인당
2005년 어림값
$545.8억 (74위)
$1,600 (46위)
HDI
 • 2006년 조사

0.859 (47위)
통화 페소 (ISO 4217:UYU)
시간대
 • 여름 시간
UYT (UTC-3)
UYST (UTC-2) 
ISO 3166-1  858
ISO 3166-1 alpha-2  UY
ISO 3166-1 alpha-3  URY
인터넷 도메인 .uy
국제 전화 +598
우루과이 지도

우루과이(스페인어: República Oriental del Uruguay 우루과이 동방공화국)는 남아메리카 남동부에 위치한 공화국이다. 346만명의 인구가 살고 있으며 이 중 170만여명은 수도 몬테비데오에 살고 있다.

서쪽에는 우루과이 강이 있으며 남서쪽에는 라 플라타 강의 하류와 맞닿아 있어 강 사이로 아르헨티나와 만나며, 남동쪽 해안에는 대서양이 있다. 우루과이는 남아메리카에서 수리남 다음으로 가장 작은 나라이다.

몬테비데오는 18세기 초 에스파냐인들이 군사 요새로 세운 도시였다.

우루과이는 1825~1828년 사이 3년간 브라질과 싸워 독립을 얻었다. 이 나라는 자유 민주주의 국가이며, 대통령국가 원수이자 정부 수반이다.

우루과이 경제는 주로 농업(GDP의 10%이며, 주요 수출품)과 정부 부문 기반을 두고 있다. 국제 투명성 기구에 따르면 우루과이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칠레와 더불어) 가장 부패가 적은 나라이며, 정치적/노동 조건도 이 대륙에서 가장 자유롭다.

인구의 94.6%가 주로 유럽인 출신이다.

목차

[편집] 자연 환경

[편집] 지리

말도나도 만

이 나라는 브라질아르헨티나 사이에 있는 나라이다. 국토는 팜파스 지대의 延長으로 대부분의 면적이 초원이며, 높은 산이 없고 숲이 거의 없다.

우루과이는 남아메리카에서 두 번째로 작은 독립국이다. 우루과이의 지리적 특징 때문에 낮은 평원과 언덕이 이어지면서 장관을 이룬다. 바닷가에는 비옥한 평야지대가 분포한다. 강을 비롯해 지류가 발달하여 전 국토에 수륙이 발달되어 있고 분지와 삼각지도 많은 편이다. 라플라타 강(Río de la Plata), 우루과이 강(Uruguay River), 리오네그로 강 등이 있다. 여러 석호가 대서양 해안을 따라 발달하였는데 라플라타 강이 남서쪽에 있고 우루과이 강이 서쪽 국경을 이룬다.

우루과이의 대척점 근처에는 한반도가 위치하고 있다.

[편집] 기후

우루과이 지형도

우루과이의 기후는 온화한 편이여서 여름에는 따뜻하고 겨울에는 춥다. 남극에서 불어오는 대기 흐름의 영향을 받기도 한다. 산악 지대가 아닌 곳은 공기 흐름이 막히지 않아 날씨 변화가 자주 있는 편이다.

가장 추운 달은 6월로 1월이 가장 따뜻하다. 강수량은 연중 내내 고루 내리는 편인데 가을에 더 빈번한 편이다. 여름에는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비바람이 몰아치는데 눈은 흔치 않다. 1913, 1918, 1963, 1989, 1992, 2007년에 눈이 왔다.


[편집] 행정구역

우루과이는 19개의 주(departamento)로 이루어져 있다. 1816년 최초의 주가 생겼고, 가장 신생주인 플로레스는 1885년에 설치되었다. 주의 행정관은 인텐덴테 무니시팔intendente municipal로 임기는 5년이다. 주 의회(Junta Departamental)가 주 단위의 입법 활동을 한다.

우루과이 행정구역도.
파이산두.
면적 (square kilometres) 인구* 주도
- 아르티가스 11,928 79,317 아르티가스
- 카넬로네스 4,536 509,095 카넬로네스
- 세로 라르고 13,648 89,383 멜로
- 콜로니아 6,106 120,855 콜로니아 델 사크라멘토  
- 두라스노 11,643 60,926 두라스노
- 플로레스 5,144 25,609 트리니다드
- 플로리다 10,417 69,968 플로리다
- 라바예아 10,016 61,883 미나스
- 말도나도 4,793 147,391 말도나도
- 몬테비데오 530 1,342,474 몬테비데오
- 파이산두 13,922 115,623 파이산두
- 리오 네그로 9,282 55,657 프라이 벤토스
- 리베라 9,370 109,267 리베라
- 로차 10,551 70,614 로차
- 살토 14,163 126,745 살토
- 산 호세 4,992 107,644 산 호세 데 마요
- 소리아노 9,008 87,073 메르세데스
- 타콰렘보 15,438 94,613 타콰렘보
- 트레인타 이 트레스   9,676 49,769 트레인타 이 트레스
* 2007

[편집] 역사

[편집] 콜럼버스 이전 시대와 식민 시대

우루과이의 원주민 그림. 헨드릭 오트센 저널. 1603년.

유럽 식민화 이전 우루과이에 기록상 남아있는 거주민은 차루아족으로, 파라과이과라니족에 의해 남쪽으로 밀려난 작은 부족이었다. 이들은 이 곳에는 차망가 등지에 고대 암각화가 있다.

1516년 현 우루과이 땅에 에스파냐인들이 들어왔다. 그러나 이 지역 사람들은 격렬하게 저항했고, 게다가 이 곳에는 금이나 은도 나지 않았기 때문에 16세기와 17세기에 이곳에 식민 정착은 더디게 진행되었다. 그러다가 우루과이는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의 싸움터가 되었다. 1603년 에스파냐는 우루과이에 가축을 들여와서 이 지역 부의 원천이 되었다. 우루과이 땅에 첫 영구 식민 정착지는 1624년 에스파냐인들이 리오 네그로소리아노에 세웠다. 1669~71년에 포르투갈인들은 사크라멘토 식민지 요새를 건설했다. 에스파냐가 포르투갈의 브라질 경계 밖 진출을 막고자 하면서 에스파냐 식민화도 강화되었다.

18세기 초 에스파냐인들은 군사 요새 목적으로 몬테비데오를 건설했다. 이 자연 항구는 곧 부에노스 아이레스와 경쟁하는 상업 중심지로 성장했다. 19세기 초 우루과이는 영국, 에스파냐, 포르투갈과 계속 전쟁을 치뤘으며, 아르헨티나, 브라질, 우루과이 지역의 식민 지배 세력과 싸웠다. 1806년과 1807년에 영국군이 에스파냐와 전쟁을 하면서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점령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1807년 초 몬테비데오는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공격하던 10,000 병력의 영국군에 그해 중반까지 점령되었다.

[편집] 독립 투쟁

호세 헤르바시오 아르티가스

1811년 우루과이의 국민 영웅 호세 헤르바시오 아르티가스는 에스파냐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켜 라스 피에드라스 전투에서 그해 5월 18일에 식민지배자를 격퇴했다. 1814년 그는 연방 연합을 조직했으며, 여기서 그는 보호자로 선포되었다.

공화주의적인 연방 연합의 영향력과 명성이 계속 커지면서 포르투갈은 이에 우려했고, 호세 아르티가스와 그의 혁명을 분쇄하기 위해 1816년 8월 그들은 (아르헨티나와는 암묵적으로 공모하여) 동부 주를 침략했다. 포르투갈군은 수적, 물질적 우위로 1817년 1월 20일 몬테비데오를 점령했으며, 3년간 지방에서 전쟁을 계속해 결국 타쿠아렘보 전투에서 아르티가스를 패배시켰다. 1821년 리오 데 라 플라타의 동부 주(Provincia Oriental del Río de la Plata, 오늘날의 우루과이)는 브라질에 병합되어 시스플라티나 주가 되었다. 이에 후안 안토니오 라바예하가 이끄는 33인의 동부인들이 리오 데 라 플라타 합주국(현 아르헨티나)의 지원을 받아 1825년 8월 25일 독립을 선언했다.

그리하여 500일간의 아르헨티나-브라질 전쟁이 일어났다. 어느쪽도 우세를 보이지 못하다가 1828년 영국이 중재해 몬테비데오 조약을 맺고 우루과이를 독립시켜, 우루과이 동방공화국(República Oriental del Uruguay)이 건국되었다. 이 때문에 우루과이의 깃발에는 아르헨티나의 깃발에 새겨져 있는 동일한 5월의 태양이 그려져 있다. 우루과이의 첫 헌법은 1830년 7월 18일에 제정되었다. 이후 19세기에 우루과이는 이웃 국가의 개입과 갈등, 정치 경제적 동요, 대규모 유럽인들의 이주를 겪는다.

[편집] 사람과 언어

이웃 나라인 아르헨티나처럼 전 인구 중 백인이 88%로 대다수를 차지한다. 그 외 메스티소가 8%, 흑인이 4%이며 소수의 인디오들도 있다. 언어는 에스파냐어를 사용한다.

[편집] 스포츠

우루과이는 축구 강국으로, 1924년1928년에 연속으로 올림픽 축구에서 우승하였으며, 1930년 초대 월드컵1950년 제 4회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브라질을 누르고 우승하였다. 1970년 월드컵에서는 4위를 기록한 바 있다. 또한 코파 아메리카에서도 14차례나 우승하여 아르헨티나와 함께 대회 역사상 가장 성공한 나라로 꼽힌다.

[편집] 외교

대한관계

대한민국과는 1964년 10월 7일에 수교하였다. 양국은 정치, 경제, 문화 및 국제무대에서 전통적으로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여 오고 있다. 2008년 9월, 우루과이의 대통령 타바레 바스케스가 한국을 방문하였다. 양국간 문화[1], 어업, 무역, 경제과학기술, 사증면제협정 등이 체결되었다. 한국은 몬테비데오에 상주 대사관을 두고 있으나, 우루과이는 2002년 11월 30일, 우루과이의 경제위기로 주한 대사관을 잠정폐쇄하였다. 2007년 양국간 교역규모가 1억 1200만 미국달러이고 50여척의 한국 어선이 우루과이의 수도 몬테비데오항을 전진기지로 하여 남대서양에서 조업하고 있으며, 현재 50여가구 150여명의 한국 교민이 거주하고 있다.[2]

[편집] 바깥 고리

[편집] 주석

  1. 대한민국 정부와 우루과이 정부간의 문화협정(Cultural Agreement between the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and the Government of the Oriental Republic of Uruguay) 1971년 5월 14일 서명, 1974년 9월 13일 발효 (대한민국의 조약 513호)
  2. 공관장 인사. 주 우루과이 대사관. 2009년 7월 10일에 확인.

다른 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