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클랜드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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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 포클랜드 제도의 국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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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 | 스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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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용어 | 영어 | ||||
| 정부 형태 | 하워드 피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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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면적 • 전체 • 내수면 비율 |
12,173km² (--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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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구 • 년 어림 • 2003년 조사 • 인구 밀도 |
명 (--위) 2,967명 0.24명/km² (--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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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DP (PPP) • 전체 • 일인당 |
년 어림값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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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화 | 파운드 (ISO 4217:FK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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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대 • 여름 시간 |
(UTC-4) 없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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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O 3166-1 | 238 | ||||
| ISO 3166-1 alpha-2 | FK | ||||
| ISO 3166-1 alpha-3 | FLK | ||||
| 인터넷 도메인 | .fk | ||||
| 국제 전화 | +5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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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클랜드 제도(Falkland Islands) 혹은 말비나스 제도는(스페인어: Islas Malvinas) 남대서양에 있는 군도이다.
아르헨티나와 영국, 칠레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영토 분쟁 지역이다. 현재 영국에서 군대를 동원해 점거한 상태이다. 아르헨티나와 칠레에서는 말비나스 제도(스페인어: Islas Malvinas 이슬라스 말비나스[*])라 부른다.
영토 분쟁은 1982년 포클랜드 전쟁의 불씨가 되어 아르헨티나 군이 침공해 몇 달 동안 섬을 점유하기도 했다. 말비나스라고 하는 것은 이 곳에 처음으로 도착한 이들이 프랑스의 생말로 주민이었기에, 프랑스어로 '생말로'의 혹은 '생말로 주민'을 뜻하는 말루인 섬(프랑스어: Ile Malouines 일 말륀[*])이라고 부른 것을 에스파냐어로 번역한 것이다. 이 제도에는 포클랜드 늑대가 서식하였으나 멸종되었다.
목차 |
[편집] 역사
이 섬의 최초의 발견자가 누군인지는 논란이 분분하다.
[편집] 최초의 발견
이 기본적인 것부터 양쪽 주장은 엇갈린다. 아르헨티나에서는 16세기 초 포르투칼과 스페인 사람으로 구성된 마젤란 탐험대가 최초로 발견했다고 주장한다. 아르헨티나가 스페인의 식민지였으니 그 연장선 상에서 역사를 풀어보려는 의도다.
영국에서는 또 자기들 나름대로 16세기 말 영국의 항해사 John Davis가 최초라고 주장한다. 영국에서 만든 백과사전 브리태니카에는 그래서 John Davis를 최초 발견자로 올려놓고 있다. 그러나, 사실 둘 다 문서로 확인된 기록은 없다.
[편집] 최초의 상륙
반면, 섬에 발을 디딘 최초의 상륙자는 17세기 말 영국 탐험대다. 이건 논란이 없는데, 이 탐험대는 'Falkland' 자작이라는 당시 해군관료 이름을 따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섬의 이름을 짓기도 했다. 영국이 먼저 이 섬에 발자국을 남긴 '기록'이 있다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1]
[편집] 최초의 정착
처음으로 이 섬에 정착한 것은 1704년 프랑스인들이다. 그러나 1766년, 프랑스 정착민들은 보상을 받고 이 섬에 대한 권리를 스페인에게 양도 한다. 그 후 50년간 이 섬은 스페인의 관할에 있었다. 그러나 이와는 상관 없이, 1766년부터 영국인들이 이 섬에 들어와 정착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1774년 경제적인 문제로 퇴거한다.
[편집] 분쟁의 시작
1816년 아르헨티나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다. 독립 당시에는 이 섬에는 사람이 살고 있지 않았다. 이 때 영국이 이 섬을 바다표범과 고래잡이 산업의 기지로 만들고자 했고, 영국계 정착민들이 유입되기 시작한다. 1826년 아르헨티나는 이 섬의 영유권이 아르헨티나에 귀속된다고 공식 선언한다. 1828년에 아르헨티나는 주둔군을 파견해서 관리한다. 1833년 영국은 전함을 보내서 이 섬을 군사력으로 점유하고, 이 섬에 거주하던 아르헨티나계 주민들과 관료들을 모두 강제로 퇴거시킨 후, 천명 이상의 영국인들을 이주시킨다. 당시 갓 독립한 약소국에 불과했던 19세기의 아르헨티나는 당시 전세계 인구의 25%를 지배하며 대영제국 빅토리아 여왕시대를 구가하던 최강국 영국에 정면으로 맞선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홍콩이 영국에 넘어간 것도 바로 이 즈음이었다.
[편집] 분쟁 해결을 위한 노력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아르헨티나는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면서 이 섬에 대한 권리도 같이 승계했다고 주장한다. 영국으로써는 자신들이 최초로 상륙하고 자국민들이 거주하고 있는 영토를 되찾았다는 입장이었다. 영국에 접수된 이후, 이 섬은 100여년간 영국에 의해 평화적으로 점유된다. 영국에 의한 점령기간중, 약소국 아르헨티나는 최강국 대영제국을 상대할 수 없었으나, 2차 세계대전후 전세계적인 탈식민지화 추세에 따라 1946년 아르헨티나가 다시 이 섬의 영유권을 주장한다. 1965년 유엔총회는 식민지의 독립을 추구하는 결의(결의 2065/XX)를 채택했다. 영국계 주민들이 대다수였던 이 섬의 주민들은 아르헨티나에 의한 지배를 반대했다. 1973년 아르헨티나 정부는 이 섬의 영유권을 다시 주장한다. 유엔총회는 양국이 분쟁해결을 위한 평화적인 방법을 추구할 것을 결의했고, 이에 따라 영국과 아르헨티나는 회담을 시작하였다. 이후 1982년 2월까지 꾸준히 협상이 지속됬으나, 영국으로써는 이 협상에 적극적일 이유가 없었고, 1982년 3월, 아르헨티나 외무부는 협상이 진행되고 있지 않고 있다며, 협상이 신속히 진행되지 않으면 더 이상 협상할 수 없고 '다른 방법'을 강구할 것이라고 공식 선언한다. 이후 양국간에 긴장감이 높아지게 된다.
[편집] 포클랜드 전쟁
포클랜드 전쟁은 1982년 4월 2일에 발발하였다. 아르헨티나는 영국이 불법점거하고 있다며, 말비나스 제도를 '회복'하겠다고 선언하며 침공하였다. 침공의 배경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영유권 협상을 진행해봤자 이익이 없는, 더 이상 진행하고 싶지 않았던, 영국의 소극적인 협상태도라는 설도 있고, 아르헨티나 갈티에리의 군사독재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는 설도 있다. 또한, 아르헨티나 군은 당시 추락하던 경제 상황을 타개하고 국제적 주목을 받고자 전쟁에 뛰어들었다는 설도 있다. 한편 영국군의 말비나스 제도 상주군이 줄어들었던 요인도 아르헨티나의 침공을 일으키게 한 요인이 되었다.
국제연합 상임이사회는 502결의안을 발표하고 아르헨티나가 제도 전체에서 군병력을 철수할 것과 외교적 대안을 양국이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역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칠레[2]를 제외한 전 국가가 아르헨티나를 지원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한편 프랑스[3]와 스페인을 뺀 유럽국가에서는 영국 정부를 지원하고 나섰다. 결국 미국까지 가세하게 되고 영국은 구원병을 말비나스 제도에 파병하기로 결정하여 말비나스 전쟁이 본격적인 양상을 보이게 된다.
영국 해공군의 맹렬한 공격으로 영국군은 5월 21일 산 카를로스 해안에 이르렀고 6월 14일 아르헨티나 군은 항복하였다. 아르헨티나 군의 패배의 원인은 전투기의 성능상의 문제였는데 아르헨티나 공군 주력기 미라쥬는 영국 공군 주력기인 해리어보다 성능상에서는 훨씬 뛰어났지만 문제는 미라쥬를 띄우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길고 넓은 활주로가 필요한 반면 해리어는 수직 이착륙이 가능한 일명 '새우 비행기'[4]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해군전에서는 아르헨티나군이 영국군을 압도했으나[5] 아르헨티나는 공군전에서 영국에 밀려[6] 항복하고 말았다. 전쟁이 끝나자 영국군은 즉각 말비나스에 병력을 증강하였다. 아르헨티나는 이 전쟁에서 패배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 갈티에리 정부가 실각하게 된다. 아르헨티나와 영국 당국은 1989년 외교적 협상을 게시하였지만 지금까지 별다른 진전도 없고 협상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당시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레이건 대통령은 입에 게거품을 물고 아르헨티나를 마치 테러집단인양 욕설을 퍼부으며 비난을 했는데 이 때문에 미국은 미국을 제외한 미대륙 전지역(캐나다~아르헨티나까지의 모든 국가들)의 국가들로부터 맹렬한 비난을 받았다.[7]
영국은 이 섬에 사는 주민들의 '자결권'에 따라, 주민들의 의사에 의해 이 섬의 귀속을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이고, 아르헨티나는 이 섬의 역사적 승계성을 주장하며, 스페인 식민지에서 벗어나면서 당시 스페인의 영토였던 이 섬도 같이 승계했다고 주장한다. 영국은 섬의 귀속여부는 거주민의 의사에 의해서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1833년 대영제국이 군사력을 써서 이 섬의 아르헨티나계 주민들을 축출하고 영국계 주민들로 채웠기 때문에, 자결권 주장의 정당성에 대한 의문은 남아있다. 현재 이 섬은 거의 영국계 주민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대부분은 아르헨티나에 의한 지배를 반대하고 있다.
미주기구 (OAS)에서는 이 섬의 아르헨티나 영유권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유럽연합과 미국은 영국의 주장을 인정하는 쪽이다.
[편집] 관련항목
[편집] 바깥 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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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주석
- ↑ 이보다 더 고대에 남미인이 상륙했을 수도 있으나, 기록상 최초의 상륙은 영국인이다
- ↑ 칠레 역시 말비나스를 자기네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었는데 영국 정부는 이 점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칠레를 설득했고 그 결과 칠레는 자신의 영공을 영국 공군에게 개방했다. 칠레의 입장에서는 말비나스를 아르헨티나가 갖고 있는게 못마땅해서 아르헨티나도 차지하지 못하게 하려고 이렇게 했던 것이다.
- ↑ 프랑스는 오히려 아르헨티나에게 엑조세 미사일을 지원하였는데 아르헨티나 공군은 슈퍼 에텐다드에 이 엑조세 미사일을 장착하여 영국 해군의 주력 항공모함 셰필드호를 단 1방에 격침시켰다.
- ↑ 몸체가 절반으로 접혀 수직으로 이착륙이 가능한 비행기의 애칭
- ↑ 실제로 이 전쟁으로 양국의 침몰한 전함의 숫자를 비교해본다면 영국쪽이 훨씬 많았고 주력 항공모함 셰필드호의 침몰은 영국 해군으로서는 매우 치명적이었다.
- ↑ 이 공중전은 바로 이착륙이 가능한 해리어기가 넓은 활주로를 필요로 하는 미라쥬III기를 격납고에서 나오는 순간 폭격한 것이다. 실제 미라쥬의 활강속도는 음속 마하2의 속도였으나 해리어는 음속 미만이었다.
- ↑ 이 때문에 레이건과 대처가 부부지간이라는 루머까지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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