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아일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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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아일랜드
Tuaisceart Éireann
Norlin Airlann
국가 런던데리의 노래
Northern Ireland in the UK and Europe.svg
수도 벨파스트 북위 54° 35′ 49″ 서경 5° 55′ 48″ / 북위 54.59694° 서경 5.93000° / 54.59694; -5.93000
정치
공용어 영어, 아일랜드어,
얼스터 스코트어
정부 형태 입헌군주제 위임 정부
총리 피터 로빈슨
역사
최초 설립  
 • 아일랜드 정부법 (1920년) 1921년
지리
면적 13,843km² (영국 내 4)
시간대 GMT (UTC+0)
DST (UTC+1)
인구
2011년 조사 1,810,863명
인구 밀도 131명/km²
경제
GDP(PPP) 2002년 어림값
 • 전체 £332억
 • 일인당 £19,603
통화 £ (GBP)
기타
도메인 .uk
국제 전화 +44

¹지역번호 033으로도 전화가 가능하다.

북아일랜드(영어: Northern Ireland, 아일랜드어: Tuaisceart Éireann, 얼스터 스코트어: Norlin Airlann)는 영국을 구성하는 4개의 홈 네이션스 중 하나로 아일랜드 섬 북동부에 위치하며, 독립국인 아일랜드와 구분하는 공식 용어이다. 이 지역은 전통적으로 얼스터(Ulster)라고 불리던 지역의 일부만 해당하지만, 영국에서는 북아일랜드를 '얼스터'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최대 도시이자 수도는 항구 도시인 벨파스트이다.

기후[편집]

연중 바람이 많이 불고 대체로 흐리고 비가 많이 온다. 특히 가을 겨울철에는 맑은 날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자주 비가 오며 추운 겨울에는 우박성 눈이 내리기도 한다. 여름철에도 온도가 20도 이상 올라가지 않는 대체로 싸늘한 날씨를 보인다.

영국 북서쪽에 위치하며, 추운 북쪽 지방이라서 곡식들이 잘 나지 않는다.

위도상 북부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여름철과 겨울철의 밤낮 길이가 많은 차이를 보이며 한여름에는 해뜨는 시간이 새벽3시에 불과하고 한 겨울에는 오후 3시면 해가 진다.

역사[편집]

얼스터 인구의 대부분이 개신교 신자라는 점을 감안한 영국아일랜드 정부법으로 1920년에 아일랜드가 독립할 때에 영국에 잔류하게 되었다. 그러나 IRA는 무장 투쟁을 계속 전개함에 따라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했다. 1972년까지는 북아일랜드 자치 정부가 있었으나 IRA와 영국 정부군의 무력 충돌로 해산되었고, 이후 북아일랜드는 엄청난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1980년대 후반에 들어서서 무장 투쟁은 소강 상태에 이르렀지만 국지적 충돌이 지속되었다. 포 그린 필즈더 윈즈 아 싱잉 프리덤은 이와 관련된 노래이다. 그러나 1999년에 국민 투표가 실시되었으며 투표 결과에 따라 북아일랜드 자치 정부가 다시 생겨났다. 그러나 아직도 국기는 유니언 잭을 그대로 사용한다. 2005년 IRA는 무장 투쟁 중단을 선언하면서, 현재는 무력 충돌이 중단된 상태이다.

북아일랜드 교회의 에큐메니컬 운동[편집]

북아일랜드 종교분쟁의 배경[편집]

북아일랜드의 종교 갈등은 18세기 스코틀랜드 장로교인들이 17세기 올리버 크롬웰의 침공으로 영국의 식민지가 된 아일랜드에 이주하면서 시작되었다. 현재 북아일랜드의 얼스터에 이주 온 장로교인들은 가톨릭 신자들을 밀어내고,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했으며, 이들의 후손들은 지금도 정치, 사회, 문화 모든 영역에서 기득권을 갖고 있다. 따라서 아일랜드 사람들은 수백 년이나 영국에서 온 개신교인들에게 차별억압을 받았고, 이들의 불만은 부활절 봉기(1916년), 아일랜드 공화국군결성 등의 무장투쟁으로 폭발했다. 아일랜드 사람들이 가톨릭을 신봉함으로써 아일랜드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한 것도 개신교 교인들의 아일랜드 지배에 기인한다.

정계의 화해노력[편집]

하지만 북아일랜드의 종교분쟁은 정계와 교회평화운동으로 극복되고 있다. 1999년 주민투표로 1972년에 해산되었던 북아일랜드 자치 정부가 부활함에 따라 무장투쟁은 거의 사라졌다. IRA는 무장해제위원회(Decommissioning Commission)에 의해 2005년 10월 무장투쟁을 포기했음을 확인받았으며, 극우 연합주의정당(DUP)을 제외한 정당들도 이를 인정했다. 단, DUP에서는 증거가 없다며 무장투쟁포기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는데, 이는 DUPIRA를 통해서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실례로 북아일랜드의 수도 벨파스트에서 발행하는 일간지에선 IRA 지도자 오닐이 무장투쟁을 포기하자, DUP지도자 이언 페이즐리(Ian Paisley)가 "가지 마! 난 네가 필요해!"라고 말하는 내용의 풍자만화를 실었다. 이언 페이즐리는 로마 가톨릭에 적대적인 연합주의자(Unionist) 목사이며 정치인으로서, 더 클랜시 브라더스의 북아일랜드 공연 때 멤버들에게 비난을 가한 바 있다.

아일랜드 교회의 화해노력[편집]

2001년 개신교 신자들이 가톨릭 여학교(성 십자가 가톨릭 여학교) 학생들의 등교를 방해한 사건은 폭력투쟁으로 번졌는데, 이 사건은 북아일랜드 사회의 종교갈등이 얼마나 뿌리 깊은지 말해준다. 따라서 아일랜드 교회에선 에큐메니컬 운동을 통해 같은 기독교인들끼리 분쟁하는 문제를 극복하고자 노력하고 있는데, 그 실례로 북아일랜드 교회에선 장로교와 가톨릭이 서로 강단교류 즉, 타 교파 지도자들이 상대방 교회에 가서 그 교회의 전례(典禮: Liturgy)에 따라 예배를 집전하고, 설교하는 일을 할 정도로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있다. 또한 아일랜드 기독교인들은 아일랜드 종교분쟁의 원인을 종파주의 즉, 타 종파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하나가 된 형제교회로 존중하지 않는 독선과 편협성 때문으로 보고, 이를 극복하려고 한다. 하지만 2004년 장로교회 총회장 켄 뉴웰 목사가톨릭 대주교를 초대하려고 하자, 이언 페이즐리와 같은 장로교복음주의자를 자처하는, 가톨릭에 적대적인 세력이 이를 강하게 반대했다. 따라서 북아일랜드교회의 에큐메니컬 운동가들은 복음주의자들에게 복음주의가 정말 성서의 권위를 강조하는 믿음이라면, 형제교회를 배척하는 종교적 독선을 버려야 한다는 충고를 하고 있다. [1]

최근 상황[편집]

2009년 북아일랜드는 IRA 강경파로 의심되는 괴한이 영국군에 총을 난사하면서 사상자가 생겨났다.[2] 그리고 아일랜드와 통합을 주장하는 리얼 IRA는 북아일랜드에 있는 영국군 기지 공격은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3] 북아일랜드에서는 평화노선에 반대하는 무장세력들이 새로운 IRA을 조직했다.[4]

사람과 언어[편집]

영어와 게일어를 사용하나 영어를 대부분 사용한다. 아일랜드 침략을 위해 이주해온 잉글랜드사람과 스코틀랜드사람들이 대부분 거주하고 있으며 이들은 대부분 아일랜드 성공회장로교신도들이다. 가톨릭교도인 아일랜드 사람들은 그들에 비해 적은 수가 거주하고 있다.

독립문제[편집]

2012년 한때 2016년 아일랜드로 합병 투표를 하겠다는 주장이 제기되었으나, 관련된 움직임은 이후 나타나지 않고 있다.

각주[편집]

  1. 북아일랜드의 종교분쟁과 화해노력에 대한 글은 평화신학 전공자 정지석 박사의 글 <북아일랜드 평화정착을 위한 교회의 역할>을 참고하여 작성하였습니다.
  2. 북아일랜드에 다시 울린 ‘피의 총성’
  3. 리얼 IRA, 북아일랜드 영국군 기지 공격 주장
  4. 북아일랜드 IRA 부활 "英 상징에 테러"

같이 보기[편집]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