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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Україна
우크라이나의 국기 우크라이나의 국장
(국기) (국장)
표어: Воля, злагода, добро
(볼랴, 즐라호다, 도브로)
자유, 조화, 선행
국가: 영원한 명예를 가지고 태어난 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의 위치
수도 키예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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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용어 우크라이나어
정부 형태 공화정
빅토르 유셴코
빅토르 야누코비치
독립
 • 독립
소련으로부터 독립
1991년 12월 1일
면적
 • 전체
 
603,700 km² (45위)
인구
 • 2005년 어림
 • 2001년 조사
 • 인구 밀도
 
47,425,336명 (25위)
46,212,455명
78명/km² (92위)
GDP (PPP)
 • 전체
 • 일인당
2004년 어림값
$3, 121억 (29위)
$6,554 (91위)
HDI
 • 2003년 조사

0.766 (78위)
통화 그리브냐 (ISO 4217:UAH)
(화폐단위:-)
시간대
 • 여름 시간
EET (UTC+2)
EEST (UTC+3) 
ISO 3166-1
ISO 3166-1 alpha-2
ISO 3166-1 alpha-3
인터넷 도메인 .ua
국제 전화 +380

우크라이나(우크라이나어: Україна)는 동유럽의 국가이다. 남쪽으로는 흑해, 동쪽으로는 러시아, 북쪽으로는 벨라루스, 서쪽으로는 폴란드, 슬로바키아, 헝가리, 루마니아, 몰도바와 닿아 있다. 키예프(Kyiv)가 그 수도이다.

목차

[편집] 역사

우크라이나의 역사
초기 동슬라브족
키예프 루시
몽골 침략
할리치-볼히니아 공국
리투아니아 대공국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Cossack era
러시아 제국
오스트리아령 갈리치야
우크라이나 인민 공화국
서우크라이나 공화국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 각 지역의 판이한 역사와 민족주의 발달에 대해서는 우크라이나의 좌안과 우안을 참조하라.

현재 우크라이나 영토는 슬라브인들의 첫 국가인 키예프 공국의 남쪽 지방이었다. 이 중세 국가의 수도는 현 우크라이나의 수도인 키예프였다. 키예프 공국은 현재의 스웨덴 영토에서 온 바이킹들이 세웠으며 이들은 현지의 슬라브인들인 루시에 흡수되었다. 이들은 강력한 류리크 왕조를 세웠다. 그리하여 10세기와 11세기에는 우크라이나가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국가의 중심부가 되어 후의 우크라이나 국가 정체성 형성의 바탕이 되었다.

키예프 공국은 내부 분열과 몽골의 침략으로 약해졌다. 우크라이나 땅에는 갈리치아(Galicia, Halych)와 볼히니아(Volhynia, Volodymyr-Volynskii) 두 공국이 그 뒤를 이었다. 갈리치아와 볼히니아는 합쳐졌다 분열되고 결국은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에 의해 정복되었다.

17세기 중반에는 우크라이나 중부에 코자크 헤티만국(Cossack Hetmanate)이 세워져 백년 이상 모스크바 공국(Muscovy)의 압력을 견뎌냈으나 결국 우크라이나는 폴란드러시아에 의해 분할되었다. 그후 18세기 후반의 폴란드 분할을 통해 우크라이나의 중부와 동부는 러시아 제국에 합병되고 서부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합병되었다.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오스트리아 지배 하의 서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지배 하의 동부 우크라이나가 각각 독립을 선언, 1920년에는 동서 통일을 선언했으나 외부 군대의 침략으로 신생독립국 우크라이나는 오래 가지 못하였다. 결국 1922년에 서쪽은 폴란드, 동쪽은 소비에트 연방의 영토가 되었다. 소비에트 연방령 우크라이나는 1921년-1922년 간, 1932년-1933년 간 두 차례에 걸쳐 큰 기근을 겪었다. 둘째 기근은 스탈린이 집단 농장 체제에 저항이 심했던 우크라이나에 대해 인위적으로 부른 기근으로 홀로도모르(Holodomor)라 불린다. 이로 인한 사망자 수는 적게는 4백만 명에서 많게는 1천만 명까지로 추산되고 있다.

1939년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소비에트 연방은 폴란드를 침공, 우크라이나 서부를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일부로 만들었다. 1941년에는 독일군과 추축군이 소비에트 연방의 적군을 쳐부수었다. 소비에트 연방이 '영웅 도시'라 칭한 키예프 전투에서는 66만 명이 넘는 소비에트 연방군이 포로로 잡혔다. 처음에는 우크라이나인들이 독일군을 '해방군'으로 환영했다. 그러나 나치 독일은 곧 대량 학살을 시작하여 유대인들과 우크라이나인 민간인들을 죽이거나 강제 추방하였다. 마을 전체를 태워 없애기도 하였다. 결국 우크라이나인들은 독일의 지배가 소비에트 연방의 지배보다도 악랄하다고 판단하게 되었다. 전쟁 중과 독일 치하의 민간인 사망자 수는 50만 명이 넘는 유대인들을 포함, 7백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갈리치아 지방에서는 폴란드인들과 우크라이나인들끼리 서로 집단 학살을 저지르기도 한 끔찍한 시기였다. 독일과의 전투로 소련군은 약 1천 100만 명의 사망자를 냈는데 그 중 4분의 일(270만 명)이 우크라이나계였다. 우크라이나 민족은 추축국을 상대로 전투를 벌인 첫 민족이 되었고(카르파티아-우크라이나에서) 전쟁으로 인한 피해도 엄청났다.

제2차 세계 대전 종결 후 소비에트 연방령 우크라이나는 서쪽으로 확장되어 우크라이나인들이 사는 땅을 거의 모두 포함하게 되었다. 1954년에는 우크라이나에 의해 러시아 본토와 단절되어 있던 크림 반도가 러시아에서 우크라이나령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니키타 흐루쇼프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우애를 과시하기 위해 페레야슬라우 조약(코자크 헤티만국이 모스크바 차르의 보호를 요청)의 300주년을 맞아 우크라이나에 크림 반도를 선물한 것이다. 이는 우크라이나 독립 후 양국 간의 분쟁 소지가 된다.

1991년 우크라이나는 모스크바에서 소비에트 연방 공산당의 쿠데타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후의 혼란 속에서 독립을 선언하고, 이는 결국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를 촉진시켰다. 우크라이나는 독립국가연합의 창립 회원국이다.

현재 우크라이나의 국기는 스텝 지방의 금빛 밀밭 위 푸른 하늘의 모습을 상징한다고 한다. 청색과 황색은 우크라이나인들이 전통적으로 깃발에 많이 쓰던 색이다.

[편집] 정치

이 부분의 본문은 우크라이나의 정치입니다.

우크라이나는 입법 사법 행정 등 3권이 분리된 의회민주주의 국가이다. 대통령은 직접선거를 통해 뽑히며 임기는 5년이다. 대통령이 총리와 내각을 지명하여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우크라이나 의회는 단원제 최고회의(Verkhovna Rada)이며 450석이 있는데 그중 225석은 전국 유권자의 4% 이상 지지를 얻는 정당에게 비례대로 돌아간다. 나머지 225석은 선거구에서 직접선거로 결정된다. 모든 의원들의 임기는 4년이다. 의회는 법률을 발의하고 국제 협정을 비준하며 예산안을 승인한다. 2007년 6월 현재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정렬은 2006년 3월 26일의 국회의원 총선거 결과 순).

급격한 정치변동으로 인해, 여-야 합의에 의하여 2007년 9월 30일에 국회의원 총선거를 치를 예정이다.

[편집] 국회(최고회의)구성

[편집] 2004년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

이 부분의 본문은 2004년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입니다.

2004년쿠치마 대통령의 임기 만료와 함께 대통령 선거가 치뤄졌다.

쿠치마의 지지를 받은 여당 후보 야누코비치와 야당 지도자인 유셴코 전 총리의 일대일 대결이라고 하는 형태가 되었다. 10월 31일의 제1회 투표에서는 유셴코가 선두였지만, 불과 15만표 차이였다.

11월 21일의 결선투표의 결과에서는 야누코비치의 당선이 발표되었다. 그러나 유셴코 진영은 11월 22일 밤, 결선투표에 대해 전국에서 1만 1000건의 부정을 하면서 제1회 투표의 5배로 부풀어 올랐다고, 정권측의 선거 위반을 규탄했다. 이것에 의해 수도 키예프를 중심으로, 파업 등의 대규모 정치 운동이 일어났다(오렌지 혁명).

미국유럽 연합의 압력도 있고 재선거를 하게 되어 12월 26일에 실시된 재결선투표로 유셴코 전 수상의 당선이 확실히 되었다. 야누코비치 진영은 유셴코 진영에 부정이 있었다고 해서 최고재판소에 제소했지만 야당에 의한 정부 시설의 봉쇄가 일어나 30일에는 제소가 부결 되었다. 2005년 1월 23일에 유셴코 전 수상은 정식으로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편집] 행정구역

우크라이나는 24개 주(오블라스티 oblast'), 크림 반도에 있는 1개의 자치 공화국(avtomna respublika)과 주와 같은 지위를 갖는 2개의 도시(미스토, misto; 아래에는 '*'로 표시)로 이루어져 있다.

[편집] 지리

이 부분의 본문은 우크라이나의 지리입니다.
우크라이나 지도
우크라이나 지도

국토 면적 603,700 km²에 해안선 길이는 2,782 km로, 우크라이나는 세계에서 44번째로 큰 나라(중앙아프리카공화국보다는 작고, 마다가스카르보다는 크다.)이다. 또한, 유럽에서는 두번째로 큰 나라이다.

어떤 사람들은 유럽의 중심이 우크라이나 서쪽의 라키브 마을 인근이라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유럽의 지리적 중심을 보는 관점에 대해 논쟁이 있다.

우크라이나는 광활한 평원이 있으며, 그 들을 지나가는 강이 흑해로 흘러들어간다. 거의 남쪽 만으로 강이 빠져나가고 남동부 지방에는 다뉴브 삼각지가 루마니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대표적인 산은 카르파티아 산으로서 서부에 있으며 가장 높은 봉우리는 오라 오벨라로서 2,061 m이다. 크림반도를 따라서 넓은 해안선이 펼쳐진다.

[편집] 기후

대개 온화한 대륙성 기후를 보이는데 남쪽의 크림 반도 인근에서는 지중해성 기후가 나타나기도 한다. 비는 북서부 지방에 가장 많이 내리고 동부와 남동부 지역은 덜 오는 편이다. 겨울은 흑해 인근 지방이라면 따뜻하지만 내륙으로 들어갈수록 대체로 추워진다. 여름에는 전반적으로 따뜻하지만 남쪽 지방은 무덥다.

[편집] 경제

이 부분의 본문은 우크라이나의 경제입니다.

[편집] 주민

이 부분의 본문은 우크라이나의 주민입니다.

2001년 국세조사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인이 77.8%, 러시아인이 17.3%이다. 약 12,000명의 고려인이 거주한다. 종교는 대부분 우크라이나 정교회를 믿는 그리스도인이며 가톨릭교회이지만, 동방정교회 전례 즉,예배방식을 따르는 동방전례가톨릭과 선교사들에 의해 들어온 개신교가 있다.

2001년 국제조사에 따른 모어분포를 보면 67.5%가 '법적' 공용어인 우크라이나어를, 29.6%가 '실제적' 공식어인 러시아어를 쓴다. 루마니아어·폴란드어·헝가리어등 소수민족어도 쓰인다. 러시아어는 하르키우도네치크, 루한시크 등의 동부, 오데사 등의 남부, 크림 반도 전역에서 주로 쓰인다. 리비우 등 서부는 우크라이나어만 쓰인다. 수도 키예프는 러시아어와 우크라이나어가 모두 쓰인다. 대부분의 우크라이나인들이 우크라이나어와 러시아어를 모두 이해한다. 우크라이나어, 러시아어는 둘 다 동슬라브어군에 속하지만 우크라이나어는 폴란드어나 체코어 등 서슬라브어와도 가까운 면이 있다.

한편, 우크라이나는 2006년부터 프랑코포니의 참관국이 되었다.

[편집] 문화

이 부분의 본문은 우크라이나의 문화입니다.

[편집] 기타

[편집] 바깥 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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