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의 역사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우크라이나의 역사는 중세의 동슬라브 국가에서 기원한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지역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최소 BC 5000년 경부터였다.

내용[편집]

현재 우크라이나 영토는 동슬라브인들의 초기 국가인 키예프 공국의 남쪽 지방이었다. 이 중세 국가의 수도는 현 우크라이나의 수도인 키예프였다. 키예프 공국은 현재의 스웨덴 영토에서 온 바이킹들이 세웠으며 이들은 현지의 슬라브인들인 루시에 흡수되었다. 이들은 강력한 류리크 왕조를 세웠다. 그리하여 10세기와 11세기에는 우크라이나가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국가의 중심부가 되어 후의 우크라이나 국가 정체성 형성의 바탕이 되었다.

키예프 공국은 내부 분열과 몽골의 침략으로 멸망했다. 우크라이나 땅에는 갈리치아(Galicia, Halych)와 볼히니아(Volhynia, Volodymyr-Volynskii) 두 공국이 그 뒤를 이었다. 갈리치아볼히니아는 합쳐졌다 분열되고 결국은 전체 영토가 폴란드에 의해 정복되었다.

이 당시에 17세기 중반에는 우크라이나 중부에 코자크 헤티만국(Cossack Hetmanate)이 세워져 백년 이상 모스크바 공국(Muscovy)의 압력을 견뎌냈으나 결국 우크라이나폴란드러시아에 의해 분할되었다. 그 후 18세기 후반의 폴란드 분할을 통해 우크라이나의 중부와 동부는 러시아 제국에 합병되고 서부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합병되었다.

우크라이나의 역사
Історія України
Lesser Coat of Arms of Ukraine.svg
선사시대
초기 역사
근세 역사
현대
v  d  e  h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오스트리아 지배 하의 서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지배 하의 동부 우크라이나가 각각 독립을 선언하여, 이 두 형태가 우크라이나 인민 공화국이라는 이름으로 1920년에 동서 통일을 선언했으나 외부 군대의 침략으로 신생독립국 우크라이나는 오래 가지 못하였고, 결국 1922년에 서쪽은 폴란드, 동쪽은 소비에트 연방의 영토가 되었다. 소비에트 연방에 합병된 우크라이나1921년-1922년 간, 1932년-1933년 간 두 차례에 걸쳐 큰 기근을 겪었다. 특히 1930년대에 일어난 둘째 기근은 스탈린이 집단 농장 체제에 저항이 심했던 우크라이나에 대해 인위적으로 부른 기근으로 홀로도모르(Holodomor)라 불린다. 이로 인한 사망자 수는 적게는 8백만여 명에서 많게는 1천만여 명 이상으로 추산되고 있다.

1991년 우크라이나는 소련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였다.

2010년에 치러진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가 실시 되었을때, 빅토르 야누코비치율리아 티모셴코를 꺾고,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