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리아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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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아역사
고대 불가리아
제1차 불가리아 제국
제2차 불가리아 제국
불가리아와 오스만 제국
불가리아의 독립 운동
불가리아 공국
불가리아 왕국
불가리아 인민 공화국
불가리아 공화국

불가리아의 역사는 4세기경 훈족과 함께 볼가 강에서 등장한 불가르족에서 기원한다. 불가르족은 튀르크계로 추정되는데, 이들은 6세기 경 크림 반도에 정착하였다.

목차

중세 불가리아 [편집]

대불가리아(605~642년) [편집]

불가르족은 족장이었던 쿠브라트 아래에서 하나로 통합되었다. 이들은 비잔티움 제국의 부를 탐내어 지속적으로 도나우 강 유역을 공격하였고 605년경에 대(大)불가리아로 알려진 한국(汗國)을 세웠다. 쿠브라트 사후 쿠브라트의 다섯아들이 각자 갈라졌는데, 장남은 하자르족에 흡수되었고, 사남는 아바르족에, 오남는 랑고바르드족에 흡수 되었다. 그러나 차남인 바트바얀은 하자르족을 피해 볼가강유역에 정착하여 볼가 불가리아로 알려진 국가를 세워 1200년대 몽골의 침입때까지 번성하였다. 그러나 볼가 불가리아는 국가의 개념이 희박했고 유목부족연합체쪽에 가까웠다. 삼남인 아스파루흐는 트라키아 평원으로 이주하여 오늘날 불가리아의 모체가 되는 국가를 건설한다.

불가리아 한국(680~913년)과 제1차 불가리아 제국(913~1018년) [편집]

불가리아 한국은 보리스 1세의 크리스트 교 개종과 함께 슬라브화 정책이 시행되었고, 913년 시메온 1세가 황제로 대관하면서 불가리아 제국을 세웠다. 이 후 불가리아의 역사는 슬라브 족의 역사로 분류된다.

아스파루흐가 이끌던 불가르족은 트라키아 평원에서 선주민인 트라키아 족과 이전에 이주해온 슬라브 인들과 동화되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다수였던 슬라브인의 영향력을 피할 수 없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불가리아 한국은 크룸(재위:803~814)과 프레지안 치기에 지속적인 영토 확장 정책을 펼쳐 비잔티움 제국을 위협하는 강자로 성장하였고, 보리스 1세 시기에 크리스트 교 국가로 개종하여 유럽 사회로 편입되었다.

이 후 시메온 대제의 치세에 전성기를 맞아 트란실바니아트라키아에 이르는 광대한 제국을 건설하였다. 그러나 북방의 튀르크계 민족과 러시아, 그리고 비잔티움 제국과의 계속된 전쟁으로 불가리아 한국은 쇠퇴하기 시작하였고, 971년 키예프 공국스뱌토슬라프의 내습으로 차르인 보리스 2세로만이 포로로 잡히고 혼란기를 맞았다.

이때 코미토풀리 4형제(다비드, 모세, 아론, 사무엘)가 등장하여 서부 불가리아(마케도니아)를 회복하였다. 976년에 보리스 2세가 암살당하고, 비잔티움 제국과의 전투에서 다비드와 모세가 전사하고, 불가리아의 바실레이오스 2세와 내통하였던 아론이 사무엘과의 싸움에서 살해당하는 등의 일련의 과정을 거쳐 사무엘이 차르로 즉위하였다.

사무엘의 치세에 불가리아는 재흥기를 맞았다. 사무엘은 오흐리다로 천도해 불가리아 총대주교구를 부활하였고, 비잔티움 제국의 바실레이오스 2세와의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시메온 대제 시절의 강역을 어느정도 회복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1014년 벨라시차 전투의 참패는 결정적이었고, 바실레이오스 2세가 보낸 포로들의 처참한 행렬을 본 사무엘은 쇼크사하고 말았다. 사무엘의 아들 가브릴 라도미르와 아론의 아들인 이반 블라디슬라프가 항전하였으나 결국 1018년 멸망하였다.

비잔틴 제국 지배기(1018~1185년) [편집]

비잔틴 제국의 지배기 동안에 불가리아에서는 독립을 위한 투쟁이 계속되었다. 그중 가장 큰것이 1040년의 페터르 델리얀의 봉기와 1072년의 콘스탄틴 보딘의 봉기였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진압되고 비잔티움 제국의 지배는 계속되었다.

제2차 불가리아 제국(1185~1422년) [편집]

비잔티움 제국의 오랜 지배를 끝낸 것은 1185년 아센페터르 형제의 봉기였다. 이반 아센 1세와 페타르 2세는 국가의 기초를 닦았고, 그들의 막내동생 칼로얀의 통치기에 영토를 크게 넓혀 발칸 반도 내의 새로운 강호로 떠올랐다. 이반 아센 2세의 치세에 2차 불가리아 제국은 전성기를 맞아 독립된 수좌주교구를 얻었고 루마니아 방면까지 영토를 넓혔고 분열된 비잔티움 제국의 왕위 계승에 간섭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몽골 제국의 진출과 어린 차르들을 둘러싼 왕위 계승 다툼으로 국내 정세는 점차 혼란해졌다. 여러 황제의 난립을 수습한 콘스탄틴 티흐 시절에는 봉건 귀족들의 힘이 강력해져서 사회 기강은 문란해지고 경제는 궁핍해졌다. 결국 1280년에 이바일로의 농민반란으로 아센 왕조(1185~1280)는 단절되었고, 이 상황에서 킵차크 한국의 섭정 노가이가 불가리아를 장악하면서 쿠만족 계통인 게오르기 테르테르가 왕위에 올랐다. 불가리아는 20여년간 몽골의 보호국이 되어 몽골의 간섭을 받는 처지로 전락했다.

그러던 중 게오르기 테르테르의 아들인 토도르 스베토슬라프가 등장하여 몽골군을 격퇴하고, 분열된 국가를 재통일하여 새로운 중흥기를 이끌었다. 스베토슬라프 사후 이반 아센 2세의 외손녀의 남편인 비딘의 전제 군주 시스만의 아들인 미하일 시스만이 왕위를 계승하였다.(그리하여 시스만 가문을 아센 가문과 합쳐 아센-시스만 왕가라 부르기도 한다.) 미하일 시스만은 불가리아 제국의 미하일 3세로 즉위하였지만, 세르비아의 스테판 데챤스키와의 벨부즈드 전투에서 패하여 전사하였다. 이후 불가리아는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약화되었다.

차르 이반 알렉산더르(재위:1331~1371)는 세르비아의 스테판 두샨과 비잔티움 제국이 격렬하게 싸우는 동안 국가 재건에 노력을 기울였고 일시적으로 경제적.문화적 중흥을 맞기도 하였다. 하지만 오스만 제국이라는 강력한 적에 맞부딪혔다. 이반 알렉산다르는 이 난국을 헤쳐나가기 위해 두 아들에게 제국을 분할 상속하여 둘째 아들 이반 시스만에게는 터르노보 왕국을, 첫째 아들 이반 스트라치미르에게는 비딘 왕국을 분리하여 상속하였다. 그러나 오스만 제국의 공격으로 터르노보 왕국은 1393년에, 비딘 왕국은 1396년에 멸망하여 제2제국은 실질적으로 멸망하였다. 하지만 이반 알렉산다르의 손자 콘스탄틴은 1422년 죽을때까지 항전하였다.

오스만 제국 지배기(1396~1878년) [편집]

흔히 오스만 제국의 지배기에는 발칸 반도 전반에 침체되고 발전이 없었던 시기로 치부된다 이 시기에 발칸 유럽은 자유주의산업혁명의 영향을 전혀 받지 못하였고 제한적으로 발전이 있었다. 19세기 민족주의 시대때 세르비아와 그리스는 이미 독립을 이루었지만 오스만 제국과 가까웠던 불가리아는 독립이 늦었다.

근대 불가리아 [편집]

불가리아 자치 공국(1878~1908년) [편집]

불가리아의 독립의 불을 당긴것은 1876년에 일어난 대봉기였다. 오스만 제국의 과잉 진압으로 불가리아 참사가 일어나고 그로 인해 러시아-튀르크 전쟁이 일어났다. 전근대적이고 낙후적인 군사 시스템을 가지고 있던 오스만 제국은 대패하였다. 이 전쟁 이후 맺어진 산스테파노 조약에서 루마니아, 몬테네그로, 세르비아가 완전히 독립했고 불가리아에는 동루멜리아마케도니아를 합친 대불가리아 자치 공국이 건립되었다. 하지만 러시아의 세력확장을 견제한 열강은 베를린 회의에서 불가리아의 영토를 북부지방에만 한정시켰다.

그러나 1885년 동루멜리아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2세의 조카였던 알렉산더르 대공은 불가리아의 영토를 늘리지 않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동루멜리아를 합병하였다. 이로 인해 세르비아와의 전쟁이 일어났지만(세르비아-불가리아 전쟁), 그는 승리로 이끌었다. 그렇지만 친러시아파 장교들의 쿠데타로 알렉산더르 대공은 퇴위하고, 뒤를 이어 도이치계인 작센코부르크고타 가문의 페르디난드 1세가 즉위하였다. 페르디난드 1세는 1894년 '불가리아의 비스마르크'라 불리던 수상 스테판 스탐볼로프를 축출하고 권력을 장악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의 통치기에 불가리아는 1908년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완전 독립하였다.

불가리아 왕국(1908~1945년) [편집]

페르디난드 1세가 왕국을 선포한뒤 1912년 제1차 발칸 전쟁이 일어났다. 1차 발칸 전쟁에서 승리한 불가리아는 남부 트라키아 지방과 마케도니아 지방의 일부를 얻었으나 마케도니아를 얻으려는 욕심에 1913년 세르비아와 그리스에 선전포고를 하여 제2차 발칸 전쟁을 일으켰다. 그러나 루마니아와 오스만 제국까지 가세하여 불가리아는 패배하였고, 서부 마케도니아는 그리스와 세르비아에게, 동트라키아는 오스만에게 할양해야 했다. 결국 이 전쟁은 당시 국제 정세와 맞물려 제 1차 세계대전의 원인이 되었고, 1차 대전에서 도이치 제국 편에 붙었던 불가리아는 패배하여 페르디난드 1세는 퇴위하고 아들인 보리스 3세가 뒤를 이었다.

보리스 3세는 1923년 민주정을 대표하던 농민당의 알렉산다르 스탐볼리스키 총리를 암살하고 청년장교들과 경찰들의 도움을 얻어서 독재정치를 선포하였다. 그리고 그는 히틀러의 나치와 동맹을 하여 제2차 세계대전에서 추축국편에 섰다. 그러나 1943년, 히틀러와 격렬한 논쟁 끝에 불가리아로 돌아가던 그는 나치주의자에게 암살당하고 어린 아들 시메온 2세가 즉위했으나 그는 소련군에게 쫓겨나고 게오르기 디미트로프를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 정부가 수립되었다. 1944년 소련군이 침입하고 공산당의 파르티잔 투쟁이 본격화되어 동년 10월 양측간의 휴전협정이 체결되었다.[1]

현대 [편집]

공산주의 시대(1945~1989년) [편집]

1946년 수립된 게오르기 디미트로프 좌익정부는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국을 수립했으며, 1947년 인민공화국 헌법이 제정되었다.[1] 게오르기 디미트로프는 1949년에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사망했고, 그뒤에 체르벤코프가 후임에 올랐으나 1952년 실권자는 토도르 지프코프가 되었다. 1954년 정권을 이양받은 지프코프 이후 불가리아는 동구권의 대표적인 친소노선을 나타냈다.[1] 그는 1962년 총리직에 올라 정권을 장악한뒤 1965년 군부의 쿠데타를 진압하고 친소노선을 펼쳤다. 그리고 산업화를 서서히 추진하여 불가리아의 경제력을 향상시켰고, 실제로 불가리아는 발칸 반도의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등한 경제력을 가지게 되었다. 이것의 원인은 비교적 온건했던 지프코프의 노선과 소련의 강력한 지원이 밑바탕되었던 것이었다. 소련 및 동구제국과의 우호협력관계 유지가 외교 기조인 불가리아는 경제계획 추진을 위해 1970년부터 대서방 접근을 보였으나 친소노선 기조에는 변함이 없었다. 1971년 헌법개정으로 최고권력기관인 국가평의회가 신설되어 지프코프가 의장(국가원수)에 취임하였다.[1] 그러나 1980년대 개혁, 개방의 물결이 불가리아를 덮쳤고, 결국 1989년 지프코프가 퇴임하고 불가리아는 발칸 반도에서 유일하게 평화로운 공산주의 붕괴를 맞았다.

민주주의 시대 [편집]

1990년 1월에 공산당은 다당제 정치체제를 승인했다. 그해 8월에 불가리아의회는 민주세력연합의 젤류 젤레프를 대통령으로 선출하였다.[1] 지프코프 퇴임후 불가리아 공산당(BCP)은 불가리아 사회당(BSP)로 개명하고 1990~1991년의 기간 동안 안드레이 루카노프가 취임했으나 곧 그가 사임하고 디미타르 포포프가 과도 내각을 이끌었다. 그러나 대선에서 젤류 젤레프가 중심이 된 민주세력연합(UDP)가 승리하여 필리프 디미트로프가 총리에, 젤류 젤레프가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필리프 디미트로프는 의회에서 불신임을 당해 1992년 결국 무당파의 루벤 베로프가 집권하였으며, 1995년에 BSP가 승리하여 잔 비데노프가 총리에 취임하였다. 비데노프 내각은 대통령선거에서 UDP의 페타르 스토야노프에게 패배하고 사임하였다. 그 뒤 총리직에는 이반 코스토프가 1997~2001의 기간 동안 집권하고 이어 전(前)국왕 시메온 2세가 2001년 시메온 2세 국민운동당(MNSII)로 승리하여 2005년까지 집권하였고, 2005년 총선에서 사회당이 승리하여 세르게이 스타니셰프가 취임했다. 2009년 7월 총선에서 유럽발전시민당(GERB)가 승리하여 보이코 보리소프가 총리로 취임하였다. 대통령직은 2001년 이후 게오르기 파르바노프가 집권하여 2012년까지 재임하였다.

주석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