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르 야누코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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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야누코비치
Віктор Федорович Янукович
빅토르 야누코비치
빅토르 야누코비치
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제5대 대통령
임기 2010년 2월 25일 ~ 2014년 2월 22일
총리 율리야 티모셴코
올렉산드르 투르치노프 (권한 대행)
미콜라 아자로프
전임: 빅토르 유셴코(제4대)

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의의 제17대 총리
임기 2006년 8월 4일 ~ 2007년 12월 18일
대통령 빅토르 유셴코
전임: 유리 예하누로우(제16대)
후임: 율리야 티모셴코(제18대)

출생일 1950년 7월 9일(1950-07-09) (64세)
출생지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우크라이나 SSR 예나키예베
정당 소비에트 연방 공산당 (1980년 ~ 1991년)
우크라이나 지역당 (2003년 ~ 2010년)
학력 도네츠크 공과대학교
종교 우크라이나 정교회
배우자 류드밀라 올렉산드리우나
자녀 올렉산드르
빅토르
서명 Viktor Yanukovych signature.svg
웹사이트 http://www.president.gov.ua/

빅토르 페도로비치 야누코비치(우크라이나어: Віктор Федорович Янукович, 러시아어: Виктор Фёдорович Янукович 빅토르 표도로비치 야누코비치[*], 문화어: 윅또르 야누꼬비치, 1950년 7월 9일 ~ )는 우크라이나의 정치인이다.

2002년 ~ 2005년2006년 ~ 2007년 총리로 재직했으며, 2004년 총리 재직 중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여 공식적인 당선자로 발표되었으나, 부정선거 논란으로 인한 국민들의 반대로 재선거가 실시되어 재선거에서 당선되지 못했다.

이후 2010년 대통령 선거에 다시 출마하여 당선되어 5년 임기의 대통령으로 재직 중, 2013년 말부터 EU와의 경제협력 추진 백지화 정책 실시에 대한 반정부 시위의 영향으로 국민들의 반대의 목소리가 커지던 중, 인권침해와 직무유기 등의 혐의로 2014년 2월 22일 탄핵되어 대통령직을 상실하였다.

초기 생애[편집]

야누코비치는 1950년 7월 9일 소비에트 연방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예나키예베에서 태어났다. 그는 2살 때 간호사였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 할머니의 손에서 자라게 되었다. 청소년 시절에 절도와 폭력으로 17살이 되던 1967년에 3년간 소년원에서 수감 생활을 하였다. 1972년 버스 회사에서 전기공으로 일하기 시작했고, 그 후 도네츠크 기술학교에서 학업을 마쳤다. 1980년 졸업 직후에 예나키예베에서 운송 회사의 최고 관리자로 임명되었고, 소련 공산당에 가입했다.

정치 활동[편집]

1990년대 초반 정치에 입문하였고, 소련이 붕괴되었다. 이후 동부 공업지대인 도네츠크 주 주지사를 지냈다. 친러시아 성향의 지역당에서 활동하며 도네츠크 주지사로 영향력을 행사했고, 2002년 총선에서 지역당이 포함된 연정이 중앙 정권을 잡아 그도 입지를 굳혔다. 2002년 11월, 총리로 임명되어 중앙 정계에 진출했고, 2003년부터 지역당 당수를 지냈다. 2004년 10월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여, 빅토르 유셴코 후보와 격돌했으며, 1차 투표에서는 근소한 차로 유셴코가 앞섰으나, 유셴코와 야누코비치 모두 다수표는 얻지 못하여 11월, 결선 투표가 치러졌다. 개표 결과 야누코비치가 49.46%의 득표로 대통령 당선인으로 발표되었으나, 선거 부정이 개입되었다는 이유로 유셴코 후보 지지자들은 강력히 반발하였다. 오렌지 혁명으로 알려진 시위가 광범위하게 확산되는 등 큰 논란 끝에 12월 26일 재선거가 실시되어 결국 유셴코가 다수표를 얻어 대통령 당선인으로 발표되자, 이번에는 야누코비치 후보 지지자들이 반발하였다. 그러나 선거 결과를 뒤집지 못하고 유셴코가 대통령으로 취임하고 야누코비치는 2005년 1월 총리직에서도 축출되었다.

그 후 야누코비치가 이끄는 지역당은 2006년 3월 총선에서 최다 의석을 확보했으며, 이에 따라 우크라이나 정국은 다시 여당과 야당의 대립으로 불안이 계속되었다. 지역당은 친러시아 성향의 다른 당들과 연정을 구성, 2006년 8월에 야누코비치는 다시 총리 자리에 올랐고, 야누코비치의 정적이었던 유셴코 대통령은 정국 안정을 위해 야누코비치를 총리로 인정할 수 밖에 없게 됐다. 이후로도 정국 불안은 계속되어 유셴코 대통령은 2007년 4월 국회 해산을 결정했으며, 이에 따라 조기 총선이 치러졌다. 조기 총선에서 그의 지역당은 제1당의 자리는 유지했으나, 율리야 티모셴코가 중심이 된 다른 당들이 연정을 구성하여 그는 총리 자리에서 물러났고, 티모셴코가 총리 자리에 올랐다.

2010년 대통령 선거에서 그는 다시 지역당 후보로 선출되어 선거에 출마했다. 야누코비치는 1차 투표에서 1위에 올랐으나, 다수표는 얻지 못하여, 율리야 티모셴코 총리와 결선 투표를 치렀다. 이 선거에서도 극심한 정파, 지역, 민족간 대립으로 매우 심한 혼란이 있었으며, 결선 투표 결과 48.95%의 득표율로 최종적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대통령 선거에 당선된 야누코비치는 2010년 2월 25일, 제4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야누코비치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율리야 티모셴코 내각은 해산되었으며, 야누코비치의 측근인 미콜라 아자로프가 지역당 내각을 구성하였다. 이후 티모셴코 전총리는 직권 남용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아 수감되었고, 친러시아와 친EU를 사이에 놓고 정국 불안은 계속되었다. 야누코비치 대통령과 아자로프 총리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서부와 키예프 일대를 중심으로 계속되었으며, 2013년 하반기부터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확산되었다. 그는 유화책으로 아자로프 총리를 해임하고, 야권 인사들의 사면을 발표하고 EU와의 관계를 강화하겠다고 하였고, 최종적으로 야권 대표와 휴전의 합의했으나, 2월 18일 ~ 2월 21일 사이에 시위대에 발포를 허용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 발포로 대규모 유혈사태가 일어났으며, 야권은 더욱 강하게 반발하여 키예프와 의회를 점거하자, 야누코비치는 키예프를 떠나 도주하였다. 이 일로 여당도 그에게 등을 돌렸으며, 2월 22일, 국회는 그를 인권침해와 직무유기 등의 혐의로 탄핵을 가결하여 그는 대통령직을 상실하였다.

이후 그는 러시아로 잠입하였다가 2월 28일, 로스토프나도누에서 모습을 드러내어, 자신이 여전히 우크라이나의 합법적인 대통령이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사태에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기타 사항[편집]

빅토르 야누코비치는 우크라이나 혈통이지만, 소련 시절 우크라이나 동부에 거주하던 대다수의 주민들과 사실상 마찬가지로 우크라이나어보다는 러시아어를 주로 사용하며 지내왔다. 친러시아 성향에 우크라이나어에도 서툰 그의 모습은 서부 지방 주민들에게 반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으며, 그는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우크라이나어 사용을 장려했다. [1]

그는 우크라이나의 열악한 경제 사정에도 호화 생활을 해왔다는 사실이 공개되어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2]

주석[편집]

  1. 우크라이나 총리 "국어 회화 '열공' 중"
  2. 공개된 우크라이나 야누코비치 호화 별장 ‘입이 쩍’

바깥 고리[편집]

전 임
아나톨리 키나흐
우크라이나의 총리
2002년 11월 21일 ~ 2004년 12월 7일
후 임
미콜라 아자로프
(권한대행)
전 임
미콜라 아자로프
(권한대행)
우크라이나의 총리
2004년 12월 28일 ~ 2005년 1월 5일
후 임
미콜라 아자로프
(권한대행)
전 임
유리 예하누로우
우크라이나의 총리
2006년 8월 4일 ~ 2007년 12월 18일
후 임
율리야 티모셴코
전 임
빅토르 유셴코
우크라이나의 대통령
2010년 2월 25일 ~ 2014년 2월 22일
후 임
올렉산드르 투르치노프 (대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