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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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리크(러시아어·우크라이나어: Рюрик, 고대 노르드어: Rørik 로리크; 830년경 – 879년경)는 862년라도가 호 지역을 장악하고 노브고로드 터에 노브고로드의 효시라 할 수 있는 홀름가르드(고대 노르드어: Holmgarðr) 정착촌을 건설한 바랑기아인(흔히 동유럽에 진출한 바이킹으로 간주됨)이다. 보통 초대 노브고로드 대공이자 류리크 왕조의 시조로 본다.

이름의 유래[편집]

‘류리크’는 원래 현대 영어의 ‘로더릭(Roderick)’, 에스파냐어의 ‘로드리고(Rodrigo)’, 포르투갈어의 ‘호드리구(Rodrigo)’와 같은 계통의 게르만어 이름을 슬라브어로 표기한 것이다. 고대 게르만어를 살펴보면 고대 고지독일어에서 ‘Hrodric’, 고대 영어에서는 ‘Hroðricus’라는 이름으로 나타난다. 고대 노르드어에서는 ‘Hrœrekr’(노르웨이, 아이슬란드), ‘Hrørīkr’ 또는 ‘Rørik’(덴마크, 스웨덴) 등의 형태가 나타나는데 ‘류리크’는 ‘Rørik’에서 유래한다. 이 이름은 《베오울프》에도 ‘Hrēðrīk’의 형태로 나타난다[1].

생애[편집]

류리크가 어떻게 라도가 호노브고로드를 지배하게 되었는지는 의견이 엇갈린다. 그에 대해 전해지는 정보는 12세기의 루시 역사서 《원초 연대기》에 기록된 것이 전부이다. 《원초 연대기》에 의하면 추드인, 슬라브인, 메레인, 벱스인, 크리비치인들이 “바랑기아인들을 바다 넘어로 다시 내몰고 조공을 거부하고 스스로 통치하려 하였다.” 그러나 부족들은 서로 싸우기 시작하였기 때문에 질서를 잡기 위해 류리크를 불러들였다고 《원초 연대기》는 전하고 있다.

류리크는 879년 죽을 때까지 정권에 머물렀다. 그렇지만 그의 후계자 올레크는 키예프수도를 옮겨 키예프 루시(1240년몽골 제국에 의해 멸망함)을 건국했다. 지금도 명맥을 유지하는 대공 가문 몇몇이 류리크의 부계 자손들이지만 루시·러시아를 마지막으로 지배한 류리크 가문 인물은 1612년에 죽은 러시아의 바실리 4세이다.

라도가 호 근처에 고대 스웨덴의 윙링 왕가 무덤들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9세기 무덤이 있다. 이 무덤은 도굴을 대비한 복잡한 보호 장치가 마련되어 있고 아직 발굴되지 않았는데 현지 주민은 그것을 ‘류리크의 무덤’이라고 부르고 있다.

관련 항목[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