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르 넵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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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르 야로슬라비치 넵스키(러시아어: Александр Ярославич Невский, 1220년 5월 30일? ~ 1263년 11월 14일)는 킵차크 한국 시절의 대공으로 러시아의 국민적 영웅이다.

생애[편집]

1220년 블라디미르에서 블라디미르 공국야로슬라프 1세의 아들로 태어났다. 1263년에 북동부에서 농민과 세리의 분쟁이 일어났을 때, 한국(汗國)으로 가던 도중에 죽었다.

정치적 업적[편집]

유능한 정치가였고 1252년에 블라디미르 대공으로 취임했다. 킵차크 한국과의 충돌을 조정했고, 반몽골반란(1259년)때에는 농민 반란을 진압했다. 러시아 북서부를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보호했다. 특히 1240년 네바 강 전투에서 적은 병력으로 스웨덴군을 격파했다. 점령된 영토를 재탈환했고, 1242년 페이푸스 호 전투에서 튜튼기사단에게 승리했다. 그는 침체기 러시아의 국민적인 영웅으로 숭배받았고 킵차크 한국에게서 공식적으로 노브고로드공의 지위를 받았고 훗날 전 러시아의 대공이라는 칭호로 불리게 된다

유리 브세볼로도비치가 바테이의 유럽 침략군(Horde of Batey)의 일원으로 원정을 떠난 동안, 그의 동생 야로슬라브 브세볼로도비치가 블라디미르 공국의 수장 자리를 맡았다. 야로슬라브는 8 살 된 큰 아들 알렉산데르 야로슬라비치를 칸한테 인질로 보냈다. 알렉산데르(이후 이름은 네브스키)는 ​1238년부터 1252년까지 바테이 침략자들과 함께 살면서 킵차크 칸국(the Golden Horde)의 관습과 조직적인 사고방식을 모두 받아 들였다. 그는 칸의 아들인 사르탁(Sartak)과 의형제를 맺었고, 칸의 딸과 결혼했고, 결국에는 킴차크 칸국의 성골이 되어 1252년에서 1263까지 블라디미르의 군주 노릇을 했다. 그는 중요한 전투에 참전한 적이 전혀 없었다. 알렌산데르 네브스키(Alexander Nevsky)의 모든 '승리'는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거짓말이다. 알렉산데르 군주는 1240년에 네바(Neva)에서 있었던 전투와 1242년 슈드(Chud) 전투 혹은 (영화감독 아이젠스타인이 영화에서 환상적으로 연출했던) 페이푸스 호수(Peipus Lake) 전투라고도 하는 전투에서 그저 부분적으로 참전할 수 있었을 뿐이다.[1]

사후의 평가[편집]

러시아의 국민적 영웅이다. 그가 죽은 뒤에도 그가 남긴 업적은 높이 평가받는다. 특히 국토를 잘 지켰다는 높은 공적때문에 러시아 민요에는 그를 찬양하는 내용을 담고있는 것이 많다. 또, 러시아 정교회에서는 그를 성인으로 받아들었다.

표트르 1세는 네바 강의 옛 전쟁터 부근에 수도원을 세우고 그의 유골을 안장했다. 러시아 제국 정부는 넵스키 훈장을 제정하였다. 1942년 소련 정부도 러시아 제국 정부의 전례에 따랐다.

매체[편집]

  1. Yaroslav Dashkevych, PhD. in “Learn to Speak the Truth with Non-Lying Lips” – K:Tempora,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