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예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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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예프
국기 문장
(깃발) (문장)
Map of Ukraine political simple city Kiew.png
국가 우크라이나
키예프 주
면적 800 ㎦
인구 2,642,486
시장 레오니트 체르노베츠키

좌표: 북위 50° 27′ 00″ 동경 30° 31′ 24″ / 북위 50.4500° 동경 30.523333° / 50.4500; 30.523333

키예프(러시아어: Киев) 또는 키이우(우크라이나어: Київ)는 우크라이나의 최대 도시이자 수도이다. 드네프르 강의 북쪽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데, 드네프르 강이 흑해(黑海)로 흘러드는 어귀로부터는 952㎞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다. 인구는 2001년 현재 261만 1300명이다.

키예프는 행정구역상 특별시(misto)로 분류되며, 우크라이나의 정치, 경제, 문화, 산업, 과학 및 교육의 중심지이다. 이 도시는 많은 역사 유적을 가지고 있으며, 키예프 지하철을 포함하여 대중교통 수단 및 인프라 시설이 잘 발달되어 있다.

키예프라는 이름은 이 도시를 창건한 네 명의 전설적인 인물 가운데 하나인 Kyi에서 왔다고 한다. 키예프는 동부 유럽에서 가장 오래 된 도시의 하나로, '러시아 도시의 어머니'라고도 불린다. 한 때, 나치 독일의 침략으로 도시나 마을이 불타거나, 민간인들이 죽기도 하였다. 기계제조(공작기·발전기·선박·차량), 경공업(비단·나사·메리야스), 식료품공업이 성하다. 학술문화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시역(市域)의 60%가 녹지이며, 세계유산 목록에 등록되어 있다. [1]

기후[편집]

키예프는 대륙성 습윤 기후이다. 가장 따뜻한 달은 6월부터 8월 사이로, 기온은 평균적으로 13.8도에서 24.8도 사이이다. 가장 추운 달은 12월부터 2월까지로, 평균적으로 −4.6도에서 -1.1도 사이의 기온을 나타낸다. 가장 더웠던 때는 1936년 7월 31일에 기록된 39.4도이고, 가장 추웠던 때는 1929년 2월 7일2월 9일에 기록된 -32.2도이다.

눈은 보통 11월 중순부터 3월말까지 쌓여 있으며, 무상일수(無霜日數)는 연평균 180일이나, 최근에는 200일을 넘는다.

역사[편집]

19세기의 키예프 중심가

키예프는 동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의 하나로 5세기경 동슬라브인들의 무역기지로 역사를 시작했다. 10세기에서 12세기까지 키예프 공국의 수도로 동슬라브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도시는 1240년 몽골의 침입으로 완전히 파괴되었다.

그 후 리투아니아 대공국, 폴란드를 거쳐 러시아 제국의 영토가 되었으며, 19세기말 러시아 산업혁명의 한 중심지가 되었다. 소비에트 정권이 수립되자 키예프는 우크라이나 공화국 내에서 중요한 도시가 되었으며, 1934년에 우크라이나공화국의 수도가 하리코프에서 이 곳으로 옮겨왔다. 이 기간 중에 인구는 급속도로 팽창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도시는 크게 파괴되었으나, 전후(戰後) 급속한 복구를 이룩했으며, 소연방 내에서 제3위의 대도시가 되었다. 1986년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터졌을 때, 사고 현장은 키예프에서 불과 100km 북쪽으로 떨어진 곳이었으나, 마침 북쪽으로 바람이 부는 덕분에 키예프는 다량의 방사능 오염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대신 인접국인 벨라루스가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1991년 소연방의 해체로 우크라이나가 독립하자 그 수도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행정[편집]

키예프는 우크라이나의 특별시이며, 우크라이나의 정부 소재지이다. 10개 구(區)로 나뉘어 있다.

역대 시장[편집]

1992년 이후.

자매결연도시[편집]

교통[편집]

키예프의 지하철. Ploshcha Lva Tolstoho역

키예프의 관문은 우크라이나 국제공항보리스필 국제공항이다. 키예프 지하철소비에트 연방 시대에 만들어졌다.

사회[편집]

인구[편집]

2001년의 인구조사에서 키예프 인구는 261만 1300명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에서 121만 9000명이 남자(46.7%), 139만 3000명이 여자(53.3%)였다. 우크라이나 전체의 인구는 1992년 이래 계속 줄어들고 있지만, 키예프 시의 인구는 조금씩 증가하고 있다.

이 조사에 의하면 키예프에는 130개 이상의 민족이 거주하고 있다. 키예프에서 가장 큰 민족은 우크라이나인이다. 키예프의 우크라이나인은 211만 0800명으로 키예프 인구의 82.2%를 차지한다. 러시아인이 그 다음으로 33만 7300명 (13.1%), 유대인 1만 7900명 (0.7%), 벨라루스인 1만 6500명 (0.6%), 폴란드인 6,900명 (0.3%), 아르메니아인 4,900명 (0.2%), 아제르바이잔인 2,600명 (0.1%), 타타르족 2,500명 (0.1%), 조지아인 2,400명 (0.1%), 몰도바인 1,900명 (0.1%) 순으로 차지하고 있다.

언어는 우크라이나어러시아어가 키예프에서 주로 쓰이고 있으나, 러시아어가 주민의 생활에서 더 일상적으로 쓰인다.

출신 유명인[편집]

교육기관[편집]

9세기 이후 끼예프는 동유럽에서 지적 발달의 중요한 중심지였다. 17세기 이후, 끼예프-Mohyla아카데미는 많은 유명한 학자들을 준비했다. 그리고 오늘날 끼예프-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큰 과학교육센터가 하나 있다. 끼예프에는 많은 수의 학교, 체육관, 학회, 약 70개의 대학교가 있는데 그 가운데에는 국가항공대학을 포함한 국가교육대학, Dragomanov, 끼예프 국립 대학인 따라스 셰우첸코라는 이름의 대학, 끼예프 국립 음악학교, 끼예프 국립 경제대학, 끼예프-Mohyla 아카데미, 우크라이나의 국가기술 대학, 우크라이나 국립 과학 아카데미, 건축/건설 아카데미, 농업 정부과학 아카데미, 끼예프 내부업무 국립대학, 끼예프 예술 아카데미, 그리고 국립 의과 대학의 이름을 따서 Acad. Bogomolets, 국제 솔로몬 대학 등이 있다.

문화[편집]

스포츠[편집]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는 축구이며, 그 뒤를 농구아이스하키가 잇고 있다. 축구팀 디나모 키예프의 연고지이다.

1980년 하계 올림픽소비에트 연방에서 열리자, 키예프의 올림픽 경기장에서 축구 종목의 예선전 및 8강전 경기가 열렸다.

UEFA 유로 2012를 2012년 6월 9일부터 7월 2일까지 폴란드와 공동으로 개최하였다.

건축물[편집]

파일:Maidan Nezalezhnosti (Kiev).jpg
독립(마이단)광장. 소련시대에는 소비에트 광장으로 불렸다

1991년 우크라이나의 독립 이후 키예프는 독립국의 수도로서 새단장을 시작하였다. 시내 중심가, 특히 흐레샤티크 거리와 독립 광장 (Maidan Nezalezhnosti) 주변은 잘 정돈되고 개·보수되었으며 옛 건물들이 복원되었다. 독립 광장은 2004년말 오렌지혁명 때 시위 현장으로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 성 소피아 성당 (세계문화유산) : 성 소피아 수도원은 키예프를 대표하는 사원으로 11세기에 원형이 만들어졌으나 17세기에 이르러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내부는 5개의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모자이크와 야로슬라프 공의 아내와 딸의 일상생활을 그린 프레스코화로 장식되어 있다. 또한 공의 대리석관도 그대로 안치되어 있다. 여러 성상들도 내부장식이 한몫을 하고 있다. [2]
  • 키예프 페체르스크 수도원 (세계문화유산)
  • 마린스키 궁전

중앙공원에서는 형제애 아치(Arch of Brotherhood) 부근에서 드네프로 강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이 공원에는 ‘용감한 축구선수 기념비’라는 다소 색다른 기념비가 있는데 이 것은 나찌 점령군이 이 지역의 축구팀에게 독일팀을 상대로 ‘죽음의 시합’을 벌일 것을 강요했으나 향토애에 자극받은 선수들은 온 힘을 다하여 뛰었고 그 결과 3:0으로 이겼으나 결국 처형되었다는 이야기를 지닌다. [3] 성 안드레이 교회는 외부장식이 뛰어난 교회이며, 중앙의 큰 돔은 높이가 60m 정도 되고 이곳을 중심으로 네 귀퉁이에 녹색의 둥근 지붕이 각각 금으로 장식되어 있다. 또한 벽면은 밝은 파란색을 기조로 하고 있어서 하얀 기둥과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교회는 바로크 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내부의 벽화 색깔 등이 선명하여 신선함이 느껴진다.[4] 오페라 발레 극장은 1984∼1987년에 걸쳐 빈의 건축가 페르너와 게르너가 설계하여 건설된 극장으로 내부구조는 5층으로 되어 있으며 빈의 바로크 양식과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양식을 함께 감상할 수 있는 건물이다. 정면에는 음악과 무용, 희극과 비극의 신을 나타내는 조각상이 서 있으며, 고골리와 푸슈킨의 흉상도 있다.[5]

각주[편집]

  1.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키예프
  2.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성 소피아 수도원
  3.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중앙공원
  4.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성 안드레이 교회
  5.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오페라 발레 극장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