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제국
위키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 존속 기간 : 1721년 - 1917년 | |||||
|
|||||
| 표어: Съ нами Богъ! (하느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시노라!) |
|||||
| 국가: Боже, Царя храни! | |||||
| 수도 | 페트로그라드(Петрогра́дъ) |
||||
| 공용어 | 러시아어 | ||||
| 정부 형태 | 입헌군주제1 표트르 1세 (1721~1725) 니콜라이 2세 (1894~1917) |
||||
| 정부수립 • 성립 • 해체 |
1721년 10월 22일 1917년 3월 15일 |
||||
| 면적 • 전체 • 내수면 비율 |
22,400,000 km² 13% |
||||
| 인구 • 1916년 어림 • 인구 밀도 |
181,537,800명 8.1명/km² |
||||
| 통화 | 루블 | ||||
| 11906년 이전에는 전제군주제 | |||||
| 러시아의 역사 |
|---|
| 초기 동슬라브족 |
| 하자르족 |
| 키예프 루시 |
| 블라디미르-수즈달 공국 |
| 노브고로드 공국 |
| 볼가불가르족 |
| 몽골 침략 |
| 황금 군단 |
| 모스크바 대공국 |
| 카잔 한국 |
| 러시아 제국 |
| 1905년의 혁명 |
| 1917년의 혁명 |
| 내전 |
| 소비에트 연방 |
| 러시아 |
러시아 제국(러시아어: Pоссiйская Имперiя, 문화어: 짜리 로씨야, 통용 : '제정 러시아')은 표트르 대제가 세운 이후부터 제1차 세계대전 도중 러시아 혁명(1917년 3월)에 의해서 타도될 때까지 존재하였다. 현대 러시아어로는 'Российская империя'라고 표기된다.
케렌스키 주도의 임시 정부는 1917년 10월 혁명 이전까지 존속하였고, 그 이후로는 1991년까지 소비에트 연방이 러시아의 국토를 통치했다.
목차 |
[편집] 역사
[편집] 러시아 제국의 성립
러시아 제국의 시초는 루스의 각 지역에 존재했던 군소국가 가운데 하나였던 모스크바 대공국이다. 모스크바 대공국은 14세기에서 15세기에 걸쳐 타타르족이나 주변의 루스 국가들과 싸우면서 세력을 확대, 이반 3세 때 처음으로 스스로를 짜르라고 자처하였다.
짜르는 러시아어로, 루스 사회에서는 원래 동로마 제국의 황제에 한해서만 사용되었던 칭호이다. 1453년에 동로마 제국이 오스만 제국에 의해 멸망한 후, 모스크바 대공 이반 3세는 동로마제국의 마지막 황녀를 아내로 맞이하여, 짜르라는 칭호를 사용할 수 있는 명분을 얻었다. 또한 모스크바에 있던 동방정교회의 주교좌가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로부터 독립을 선언하면서, 모스크바는 로마 제국과 동로마 제국의 뒤를 잇는 제3의 로마라는 인식이 생겨나는 등 모스크바 대공국 내에서는 제국을 자부하는 의식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1547년에는 이반 3세의 손자 이반 4세가 자신을 전 러시아의 짜르라고 하면서, 모스크바 대공국의 군주는 곧 전 러시아의 군주이며 로마 황제의 계승자임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이 칭호는 단지 국내용에만 머물렀으며, 다른 유럽 국가들에서는 오랫동안 러시아의 군주를 황제도 왕도 아닌, 단순히 모스크바 대공으로 부르고 있었다.
이반 4세가 죽은 후, 국내가 혼란스러워지면서 내전 상태에 빠져들었다(대동란 시대). 1606년 이후에는 폴란드 왕국, 코사크, 스웨덴 등이 러시아를 유린하기 시작하면서 대동란은 정점에 다다랐다. 1610년에는 당시 강대국이었던 폴란드에 의해 수도 모스크바가 점령되기에 이른다. 그러나 러시아인들은 로마노프 가 등을 중심으로 국민군을 결성하여 외세에 대해 맹렬히 저항하였다. 1612년, 10만에 이른 국민군 병사들은 폴란드군을 물리치고 모스크바를 해방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오랫동안 혼란 상태였던 러시아는 그동안 유럽으로의 진출이 정체되었기 때문에 다른 나라들로부터 국제적인 지위는 높지 않았다. 1613년, 류리크 왕조의 외척인 미하일 로마노프가 원로원에 의해 황제로 즉위하였으나, 아직 서구는 로마노프 가를 러시아의 황제로 인정하지 않았다. 17세기 중반에는 폴란드를 침공, 대홍수 시대(Potop)로 불리는 내전에 개임하여 동구권에서의 국제적 지위를 높였지만, 그럼에도 대외적으로는 모스크바 대공국으로밖에 취급을 받지 못하였다.
17세기 말, 짜르로 즉위한 표트르 대제가 서구화 정책을 실시하면서, 러시아는 간신히 유럽의 일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된다. 표트르 대제가 로마 황제의 정식 칭호는 임페라토르를 러시아 황제의 칭호로 채용하고, 정식으로 러시아 제국이라는 국호를 제정한 것도 이 때이다.
[편집] 표트르 이후
표트르 대제 시절에 서유럽화가 진행되었다. 표트르 대제는 "수염을 깎지 않으면 수염세를 매길 각오가 되어 있겠지?"라고 주장하는등 국가주도의 개혁을 강요했다. 하지만, 정작 근대화가 필요한 농촌에는 개혁의 바람이 불지 않아 농노제는 폐지되지 않았고, 예카테리나 대제 시기에는 확장되기까지 하였다. 농민들은 톨스토이(일명 '대문호')의 단편소설에 언급될 정도로 비참한 삶을 살았다.
알렉산드르 2세 황제가 즉위하고부터 (진정하다고 할 수 있는) 근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크림 전쟁 당시 영국과 프랑스의 지원을 받은 오스만 제국에 패하였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은 '농노 해방령'인데, 이는 마름을 통해 착취당하던 농노에게는 오래 전부터 소원이었다. 하지만 정작 농노들이 살 토지를 마련해주지 않아, 도시에서는 농민출신의 빈곤 노동자들이 등장했다.
농노 해방 이외에도 군비 증강에도 힘을 기울였다. 귀족과 부르주아, 시민(市民)의 자제들에게도 병역의 의무를 부과하기 시작하였고(우리는 그 것을 '국민 개병제'라고 한다), 병역 기간을 25년에서 6년으로 줄였다. 그러나 알렉산드르 황제는 1881년에 암살당하었고, 알렉산드르 3세에 이르면 부황이 행했던 대학자치제 등의 자유주의가 제한되었고, 전제정치는 더더욱 강해졌다. 실례로 알렉산드르 3세는 빈민들의 기본 교육조차 인정하지 않으려고 잔머리를 굴리기까지 했다.
니콜라이 2세도 못난 애비 맛 들이긴 마찬가지. 러일 전쟁 패배와 개혁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이 기병대에 의해서 살해당한 사건인 피의 일요일 사건 등을 맛본 뒤에야 비로소 개혁을 실시하게 된다. 1906년 4월 24일에 헌법(한마디로 황제의 강권은 여전하다고 볼 수 있다)이 제정되었으니, 이 것은 1889년에 헌법을 시행한 일본보다도 늦은 것이었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러시아는 100만 대군을 자랑한다는 힘쎈 정규군을 가지고 있었고, 국민들 중에서도 1200만 명이 전쟁터에 내몰렸다. 하지만, 정규군이나 징집군이나 3분의 2는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다. 게다가 계속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동맹군한테 패배만 하게 되고, 계속된 동원령(개나 소나 돼지나 총알받이가 된 셈이다), 식량 부족(지리적인 이유로 식량 수입이 어려웠기 때문)과 민생고는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1917년 어느 날, 군인들과 시민들은 황제를 타도 대상으로 삼기 시작했다. 며칠 지나고서는 황제를 호위하던 기병대까지도 시민들 편을 들기 시작했다. 황제는 아직도 어린아이 같은 생각만 하고 다녔다. 하지만, 상황은 시민 편을 들어주었다. 이리하여 로마노프 왕조는 물러났고, 최초의 공화 정부가 성립되었다고 한다. 러시아인들은 이 것을 2월 혁명이라 부른다.
[편집] 임시 정부
임시정부가 내놓은 정책은 아주 파격적이었다. 제정 러시아 시절에는 언론이 자유롭지 못하였고, 의회는 예산심의권만 행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케렌스키 내각은 법무장관에 재직할 당시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였다. 이 것은 아주 선진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임시정부는 이 때문에 오래 가지 못했다. 왜냐하면 게오르기 르보프 공(公)과 7월에 총리로 취임한 케렌스키는 연합국과의 약속을 깨지 말자는 이유로 휴전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상황은 정 반대였다. 러시아군은 여전히 동맹군들에게 한 대 얻어터지고 있었고, 식량은 여전히 부족했기 때문이다. 전쟁 결과 사망자 170만, 부상자 665만은 아주 끔찍한 수치였다.
볼셰비키들이 무혈 점거한 10월 혁명 때, 케렌스키는 퇴임을 선언하고 적백 내전 때 백군을 편들게 된다. 자신을 상대로 쿠데타를 일으킨 코르닐로프 장군과 손을 잡았다. 하지만, 코르닐로프 장군은 1918년 어느 날 전사했고 그가 전사한 날에는 케렌스키는 프랑스로 망명을 해버린 뒤였다.
1918년, 볼셰비키와 동맹국 간에 맺어진 (백군에게는 '매우 굴욕적인') 브레스트-리토프스크(Брест-Литовский мирный договор) 조약을 맺음으로써 볼셰비키가 러시아를 지배하게 된다.
[편집] 군사
- 이 부분의 본문은 러시아 제국의 군사입니다.
군대의 최고 사령관은 차르였으며, 임시 정부 시기에는 총리인 알렉산드르 케렌스키가 전군을 지휘하였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100만대군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대략 1200만 명이 군대에 징집되었다.
- 육군
- 해군 (러시아어: Военно-морской флот Российской империи)
- 해상 항공대 (러시아어: Императорскiй военно-воздушный флотъ) - 1912년 창설
Императорскiй военно-воздушный флотъ는 1918년에 문자가 개혁되기 이전의 명칭으로써 현재는 'Императорский военно-воздушный флот'로 표기된다.
[편집] 역대 황제
- 표트르 1세 (대제), (1682-1725)
- 예카테리나 1세, (1725-1727)
- 표트르 2세, (1727-1730)
- 안나, (1730-1740)
- 이반 6세, (1740-1741)
- 옐리자베타, (1741-1762)
- 표트르 3세, (1762)
- 예카테리나 2세 (대제), (1762-1796)
- 파벨 1세, (1796-1801)
- 알렉산드르 1세, (1801-1825)
- 니콜라이 1세, (1825-1855)
- 알렉산드르 2세, (1855-1881)
- 알렉산드르 3세, (1881-1894)
- 니콜라이 2세, (1894-1917)
[편집] 행정 구역
- 이 부분의 본문은 러시아 제국의 크라이입니다.
크라이가 4개로 구분되어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