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주크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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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셀주크 제국
دولت سلجوقیان‎

 

 

 

1037년 ~ 1194년
국기
국기
셀주크의 위치
수도 니샤푸르(1037년 ~ 1043년)
레이(1043년 ~ 1051년)
이스파한(1051년 ~ 1118년)
하마단/메르브(1118년 ~ 1194년)
공용어 페르시아어(공식어이자 궁정어, 문어)[1][2][3]

아랍어(식자층, 과학 및 신학)[1][3]
오구즈어[3][4](군 세력 및 지배층 일상언어)

정부 형태
술탄
1037년 ~ 1063년
1174년 ~ 1194년
군주제

투으룰 1세(초대)
투으룰 3세(말대)[5][6]
국교 이슬람교
약사
 • 토그릴이 국가 체계를 형성하다

 • 화레즘 샤 왕조가 대신하다[7]


1037년


1194년
면적
 • 1080년
 
3,900,000 km²
이전 국가
다음 국가
가즈나 왕조
부와이 왕조
살라르 왕조
비잔티움 제국
고르 왕조
화레즘 샤 왕조
룸 술탄국
아이유브 왕조
일데니즈 왕조
부리 왕조
장기 왕조
다니슈멘드
아르투크 왕조
살투클루 벨리키

셀주크 제국(터키어: Selçuklular 셀추크룰라르, 페르시아어: سلجوقيان 살주키얀; 아랍어 سلجوق 살주크, 또는 السلاجقة 알살라지카) 또는 셀주크 튀르크11세기경부터 14세기까지 중앙 아시아중동 일대를 다스린 수니파 무슬림 왕조를 말한다. 셀주크 왕조라고 하기도 한다. 셀주크 튀르크는 중앙아시아의 부족연합체로 발흥하여 중동에서 튀르크 세력의 시조를 이루었고 제1차 십자군의 공격대상이 되었다.

오늘날 아제르바이잔, 터키, 투르크메니스탄의 튀르크인들의 문화적 조상으로 여겨지며 이슬람 문화의 보호자였다.

초기역사[편집]

10세기셀주크라는 수장이 지휘하는 유목민의 일단이 볼가강을 넘어 흑해연안의 스텝 지역으로 건너왔다. 셀주크 가문은 오구즈 튀르크멘 부족이 그 기원으로 알려져있다. 이들은 곧 남하하여 이란 북부에서 이슬람 수니파로 개종하였다. 이후 페르시아의 언어와 문화를 받아들여 페르시아에 동화되었으며 처음에는 페르시아 왕조의 용병으로 있었으나 점차 세력을 확대하였다.

셀주크인들은 처음에 사만 왕조와 동맹을 맺고 카라한 왕조, 가즈나 왕조와 맞서 싸웠으나 사만 왕조가 권력투쟁에서 패하자 스스로 독립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투쟁을 벌였다.

셀주크 제국의 발전[편집]

셀주크의 손자인 차그리 베그투으룰 1세는 가즈나 왕조의 마흐무드의 지원을 받았으나 1037년 가즈니를 공격하여 자신들만의 왕국을 세웠다. 1055년 토그릴은 시아파 부와이 왕조에게서 승리하여 바그다드를 정복했기 때문에 셀주크는 수니파 칼리프 주도하에 이슬람의 통일을 회복시킨 존재로 여겨졌다. 1063년 투으룰은 이란 서부와 메소포타미아를 포괄하는 제국의 수장이 되었다.

투으룰은 자식이 없었기 때문에 형제 차그리 베이의 아들 알프 아르슬란이 그의 직위를 계승했다. 이때에 이르러 셀주크의 세력을 더욱 강대해져 메소포타미아,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시리아 지역까지 세력권을 확대했으며 1064년, 아르메니아그루지야를 복속하였고 1068년에는 비잔티움 제국의 아나톨리아를 침공하였다. 1071년 알프 아르슬란은 만지케르트 전투에서 비잔티움 제국의 대군을 섬멸하고 비잔티움 황제 로마누스 4세 디오게네스를 포로로 붙잡았다. 이로써 셀주크인들은 소아시아로 진출하여 정착하게 되었다.

알프 아르슬란의 뒤를 이은 말리크샤 1세에는 제국의 영토가 더욱 확장 되었다. 이슬람의 침입이전 이란의 영토이었던 지역의 대부분을 복속하였는데 동쪽으로는 중국과 서쪽으로는 비잔티움 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었다. 그는 제국의 수도를 라이에서 이스파한으로 옮기고 바그다드에 학교를 세우고 군대제도를 개선하였다. 그의 치세에 셀주크 제국은 전성기를 이루어 1087년 아바스 왕조의 칼리프로 부터 "동방과 서방의 술탄"의 칭호를 얻었다.

당시 대재상 니잠 알물크는 제국내 행정조직을 개편하여 이슬람 문화에 크나큰 유산을 남겼다. 그는 또한 가즈나 왕조 시절 후라산에 생긴 마드라사를 서아시아로 옮겼다. 마드라사 조직이 형성되자 행정관료들과 신학자들에게 통일된 교육훈련을 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니잠 알물크는 당시 세력을 키워가던 아사신에 의해 살해당했다.

제국의 분할과 십자군[편집]

1092년, 말리크샤 1세가 죽자 제국은 그의 아들들과 친척들 사이에서 분할되었다. 시리아는 말리크 샤의 동생 투투쉬의 자식들이 차지했다. 쿠탈미쉬의 손자 킬리지 아르슬란 1세는 소아시아를 차지했다. 말리크 샤의 아들들은 제국의 중심인 이란을 두고 서로 싸웠다. 이러한 셀주크의 분열을 틈타 1095년 군중 십자군1차 십자군이 침공해 왔다. 킬리지 아르슬란은 군중 십자군을 이겼으나 1차 십자군을 얕잡아보아 니케아에서 패배, 십자군은 니케아, 안티오키아, 예루살렘을 차례로 정복하고 예루살렘 왕국을 비록한 기독교 국가를 세웠다.

1105년, 말리크샤의 장남 바르키야루크가 죽자 그의 이복동생 무함마드 타파르가 이란 전체에서 셀주크 가문의 수장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1118년, 무함마드 타파르가 죽자 그의 동복동생 아흐마드 산자르가 가문의 최연장자로서 조카들을 제압하고 제국을 계승했다. 그러나 이란 서부와 이라크 등지에서는 무함마드 타파르의 자식들이 그에 종속된 술탄으로서 통치했다. 아흐메드 산자르는 각지에서 일어난 카라한과 반란에 대처하여야 했고 제2차 십자군의 침입에도 맞서야 했다.

1153년, 오구즈인들이 반란을 일으켰고, 산자르는 이들에게 생포되었다. 오구즈인들은 산자르의 영지인 후라산을 마구 약탈했다. 1156년, 산자르는 이들에게서 탈출하여 영지로 돌아왔으나, 질서는 회복하지 못 했다. 그는 1157년 5월 8일에 죽었다. 제국의 분열을 더욱 가속되었고 아타베그들은 독립했다.

제국의 몰락[편집]

1194년 이란의 마지막 셀주크 술탄이 전사하고 1200년경 셀주크족의 권력은 아나톨리아를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끝났다. 이후 이집트와 시리아의 위대한 술탄 살라딘의 지도 아래 시리아가 셀주크의 세력하에서 떨어져 나갔다. 그루지아아르메니아와 함께 셀주크의 영향력을 벗어났다. 바그다드의 압바스 칼리프도 점차 힘을 키워서 독립해 버렸고 결국 예전 셀주크 제국에서 남아있는 곳은 소아시아의 룸 술탄국과 주변뿐이었다.

13세기에 이르러 셀주크는 더욱 몰락하여 결국 몽골 제국아나톨리아를 침입했을때 완전히 세력을 상실하고, 몇몇 에미레이트로 분할되었다. 그중에 하나인 오스만 튀르크가 나중에 다시 대 제국을 세우게 된다.

역대 군주[편집]

  1. 투으룰 1세 (1038년 - 1063년)
  2. 알프 아르슬란 (1063년 - 1072년)
  3. 말리크샤 1세 (1072년 - 1092년)
  4. 마흐무드 1세 (1092년 - 1094년)
  5. 바르키야루크 (1094년 - 1105년)
  6. 말리크샤 2세 (1105년)
  7. 무함마드 타파르 (1105년 - 1118년)
  8. 아흐메드 산자르 (1118년 - 1157년)

함께 보기[편집]

참고 문헌[편집]

  • 고마츠 히사오 외 씀, 이평래 옮김, 《중앙 유라시아의 역사》, 소나무, 2005.
  • 프랜시스 로빈슨 외 씀, 손주영 외 옮김,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케임브리지 이슬람사》, 시공사, 2002.
  • Boyle, J.A., (Editor). The Cambridge History of Iran: Volume 5, The Saljuq and Mongol Periods . Cambridge University Press; Reissue edition (January 1, 1968).

주석[편집]

  1. Savory, R. M. and Roger Savory, Introduction to Islamic civilisation,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76 ), 82.
  2. Black, Edwin, Banking on Baghdad: inside Iraq's 7,000-year history of war, profit and conflict, (John Wiley and sons, 2004), 38.
  3. C.E. Bosworth, "Turkish Expansion towards the west" in UNESCO HISTORY OF HUMANITY, Volume IV, titled "From the Seventh to the Sixteenth Century", UNESCO Publishing / Routledge, p. 391: "While the Arabic language retained its primacy in such spheres as law, theology and science, the culture of the Seljuk court and secular literature within the sultanate became largely Persianized; this is seen in the early adoption of Persian epic names by the Seljuk rulers (Qubād, Kay Khusraw and so on) and in the use of Persian as a literary language (Turkish must have been essentially a vehicle for everyday speech at this time)
  4. Concise encyclopedia of languages of the world, Ed. Keith Brown, Sarah Ogilvie, (Elsevier Ltd., 2009), 1110;Oghuz Turkic is first represented by Old Anatolian Turkish which was a subordinate written medium until the end of the Seljuk rule.".
  5. A New General Biographical Dictionary, Vol.2, Ed. Hugh James Rose, (London, 1853), 214.
  6. Grousset, Rene, The Empire of the Steppes, (New Brunswick:Rutgers University Press, 1988), 167.
  7. Grousset, Rene, The Empire of the Steppes, (New Brunswick:Rutgers University Press, 1988),159,161; "In 1194, Togrul III would succumb to the onslaught of the Khwarizmian Turks, who were destined at last to succeed the Seljuks to the empire of the Middle Ea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