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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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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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교(아랍어: الإسلام al-islām 듣기 )는 무함마드를 예언자로 하는 단일신 종교로, 기독교 · 불교와 함께 세계 3대 종교의 하나이다. "이슬람"이란 뜻은 "복종 · 순종"이란 뜻이다. 이슬람을 믿는 신자남자일 경우 무슬림이라고 하고 여자일 경우 무슬리마라고 한다. 입교는 두 개의 신앙증언(샤하다타인)('아슈하두 안라 일라하 일랄라' : 하나님 이외에 경배받을 존재가 없음을 증언합니다. '아슈하두 안나 무함마단 라수룰라' : 무함마드는 하나님의 사도임을 증언합니다. ) 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슬람교의 경전은 쿠란(코란)이며, 이는 예언자 무함마드가 천사 지브릴(아랍어: جبريل)로부터 받은 알라의 말을 기록한 것이라고 한다.[1] 이슬람의 대표적인 종파로는 사우디아라비아가 대표하는 수니파이란이 대표하는 시아파가 있다. 수니파는 전체 무슬림 인구의 80-90%를 차지하며 시아파는 10-20%를 차지한다.[2][3][4][5] 발칸 반도,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의 무슬림들은 수피 무슬림들이 많다. 수니파 내에서 무슬림 모두는 동질 의식을 가지나, 타종파 간에는 보이지 않는 불신이 있다.[6]

이슬람의 휴일[편집]

  • 이슬람 신도나 국가는 금요일이 휴일이다. 이슬람 국가에서는 금요일 (금요성일)을 일요일로 보아 모든 병원, 약국, 가게 등이 문을 닫고 쉰다.

용어의 정의[편집]

이슬람교는 다른 종교와 다른 점이 있다

  • 이슬람: 흔히 “이슬람교”라고 불리는 종교의 이름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이슬람을 회교(回敎)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중국에서 이슬람을 회회교라고 부른 것에서 유래하며 이는 적절치 못한 표현이다.[7] 이슬람은 복종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간혹 이슬람을 마호메트교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으나, 이슬람은 무함마드를 믿는 종교가 아니기 때문에, 그러한 표기는 인정되지 않는다. 알라를 유일신으로 하는 종교다.
  • 무슬림: 이슬람에 복종한 자, 곧 이슬람을 믿는 이슬람 신자를 가리킨다. 여자는 무슬리마이다.
사우디 아라비아 리야드의 국립박물관에 전시된 쿠란
  • 쿠란: 이슬람의 경전 이름이다. “읽다”(아랍어: 카라아)의 동명사로서 그 뜻은 “읽기”이다. 이는 무함마드가 받은 첫 계시가 “읽어라! 창조주이신 너의 주님의 이름으로.”라고 시작하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기존에는“코란”이란 표기가 많이 쓰였다. "꾸란"은 틀린 표기법이다. (쿠란 항목 참조)
  • 라술룰라(rasūlu-llāh): “성사(聖使)”라는 뜻으로 이슬람에서는 주로 무함마드(영어로는 마호메트)를 가리킨다. 성사는 “알라가 보낸 사람”을 뜻하며, 이는 예언자보다 격이 높다. 예를 들면; 이브라힘, 무사, 이싸 그리고 무함마드이다.
  • 이만: '믿음"이라는 말인데 이슬람의 믿음은 행위와 직접 관련된다. 대개는 “여섯 가지 믿음”을 가리킨다.
  • 이슬람의 다섯 기둥: 대개는 “다섯 가지 의무”를 가리킨다. “다섯 기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역사[편집]

무함마드 이야기[편집]

무함마드의 유년시절[편집]

메카의 위치

이슬람의 성지(聖地) 메카아라비아 반도 중부, 홍해 연안에서 약 80 km 지점의 불모지 골짜기에 위치하는 도시로, 인도양에서 지중해안에 이르는 대상로(隊商路)의 요지였다. 옛날부터 흩어진 유대인들이 살았으며 에비온파, 마르얌파, 네스토리우스교(경교) 등 마이너리티 기독교 신자들이 로마교회의 탄압을 피해 아라비아에 거주하였다. 메카는 카바 신전을 중심으로 아라비아 반도의 종교적 중심지였기에 매년 많은 대상과 순례자들이 찾아들었다. 메카의 지배계급은 5세기 말경, 부근 황야에서 온 꾸라이쉬족이었으며 무함마드는 그 중의 하심가(Hashim 家) 출신이다. 하심가에는 압둘 무딸립이란 사람이 살았는데 그에게는 열명의 아들이 있었고 막내의 이름이 압둘라였다. 압둘라는 아미나와 결혼을 했는데 그 사이에서 무함마드가 태어난다. 무함마드가 태어나기 전 아버지는 죽었고 어머니 아미나도 메디나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중 병에 걸려 죽게 된다. 무함마드는 하녀의 손을 잡고 메카로 돌아와 할아버지 압둘 무딸립에 의해 자라다 할아버지가 죽자 삼촌 아부 딸립에 의해 양육된다. 삼촌 아부 딸립은 가난했는데다 딸린 식구들이 많아 무함마드는 어린 나이부터 삼촌 아부 딸립을 따라 시리아 지방으로 무역 대상을 떠나게 된다.

12세에 무함마드는 삼촌을 따라 시리아로 간다. 그곳에서 네스토리아(경교) 수도사를 만나게 된다. 바히라라는 캬라반을 타고 가는 무함마드에게 예언자의 징표가 있다고 말하였다.

카디자와의 결혼[편집]

당시 아라비아 각지에는 유대인들과 마이너리티 기독교인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사비교인들도 아라비아에 거주하였는데 이들은 서로에게 종교적인 영감을 주었다. 신성한 달이라 불리던 9월에 금식을 행하던 것은 사비교의 종교적 영향이다. 유대인들과 마이너리티 기독교 신자들의 영향으로 일신론 사상이 아라비아 반도에 전해지긴 했으나 대부분은 여전히 다신교 신앙을 가지고 살고 있었다. 카바 신전에는 360개의 우상들이 존재했는데 그 우상들은 '알라'로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중재자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 '알라'라는 호칭은 이슬람에서 매우 중요한데 아랍어로서 '하느님'을 뜻한다. 즉, 이 세상의 절대적인 존재 "신"을 의미한다. '알라'는 이슬람에서 유일한 숭배의 대상이다.

무함마드는 가난했던 삼촌 아부 딸립을 생각하며 수익성이 좋은 직업을 구했고 삼촌 아부 딸립의 소개로 부자였던 과부 카디자의 고용인으로 들어가 그녀를 대신해 시리아 지방으로 대상 무역을 떠나게 된다. 무함마드의 이 무역은 큰 성공을 거두고 현재의 시리아 지방의 특산품을 구해 메카로 돌아왔다. 카디자는 무함마드의 정직성과 신실함에 깊은 감명을 받고 15살이나 어린 무함마드에게 청혼을 하였다. 무함마드 25세 카디자 40세에 둘은 결혼을 하였다. 부자였던 카디자와의 결혼은 무함마드에게 부와 명예를 주었고 무함마드는 삼촌의 재정적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알리를 입양하였다.

무함마드의 결혼생활은 행복했으나 무함마드에게 불행이 닥치기 시작했다. 네 명의 딸은 잘 성장하였으나 그의 아들들이 유아 때 계속 사망한 것이다. 당시 아라비아 사회는 건장한(몸이 크고 굳센) 남자가 대상무역을 떠나 성공하는 것이 영웅시 되던 때였기에 건장한 사내아이를 선호하였다. 무함마드의 부와 명예로 인해 사람들은 그와 좋은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경제적인 부는 그에게 여유를 주었고 무함마드는 금식하며 사색하며 진리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무함마드는 히라산 동굴에서 첫 계시가 임하게 된다. 무함마드는 겁에 질려 집으로 돌아와 죽은 듯 했는데 부인이었던 카디자가 무함드를 진정시키고 자신의 삼촌이자 에비온파 기독교인이었던 와라까 븐 나우팔에게 가 사정을 설명하였다. 와라까는 무함마드가 만난 것이 천사 지브릴(가브리엘)이었다며 무함마드가 하느님의 예언자라고 말하였다. 카디자는 집으로 돌아와 무함마드에게 삼촌이 말한 것을 모두 알려주었고 그의 예언자직을 인정하였다. 그리고 그(무함마드)는 이슬람에서의 최초의 무슬림이 된다.

첫 계시를 받은 후 점차 무함마드의 양자들과 노예 그리고 친한 친구들이 무슬림으로 개종하였고 3년째 되던 해 무함마드는 자신의 친구와 친족을 모아놓고 단일신 알라(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선포하게 된다. 하지만 친구와 친족들은 그를 비난하고 모욕하여 무함마드를 무시했다. 그러자 무함마드는 메카로 오는 순례객들에게 단일신 사상을 전하기 시작했고 메카카바 신전을 지키며 순례객들로 수입을 얻었던 부족원들이 무함마드를 박해하기 시작했다.

메디나로의 피신[편집]

메디나의 위치

무함마드는 AD 619년에 큰 슬픔을 얻게 된다. 첫 무슬림 신자이자 자신의 큰 후원자였던 부인 카디자가 죽은 것이다. 또한 자신의 방패가 되어주던 삼촌 아부 딸립도 그 해에 세상을 떠난다. 무함마드는 고통속에서도 줄어들지 않는 박해와 핍박에 대항하기 위해 무슬림 공동체를 더욱 강하게 만들기로 결정, 자신의 친구였던 아부 바크르의 딸 아이샤와 결혼을 추진한다. 이때 무함마드의 나이가 50이었고 아이샤의 나이가 9살이었다.

핍박은 더욱 심해졌고 이를 피하여 622년 메카 북방 약 400km 떨어져 있는 메디나로 갔다. 신도들도 이때를 전후하여 메디나로 피난, 그곳 협력자들(안사르)의 집에 수용되었다. 이 메디나 행을 이슬람에서는 ‘히즈라("이주")’라고 하는데, 이 해를 이슬람력의 기원으로 삼고 있다.

메디나에 도착한 무함마드는 자신의 말이 멈춘 수하일의 과수원 땅을 사서 최초의 사원과 자신의 집을 지었다. 그리고 메카를 향해 하루에 다섯 번씩 알라(하나님)는 위대하다고 암송하며 절했다. 무함마드는 메디나에서 선지자의 권위를 확립하고 아라비아 부족의 통일을 꿈꾸기 위해 종교적인 일과 세속적인 일을 구별하지 않는 형태의 이슬람교 조직 체계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즉 제정일치의 사회를 무함마드는 추구했다.

메카정복[편집]

AD 628년 무함마드는 메카카바 신전을 순례하러 가기로 결정한다. 그해 3월은 아랍에는 신성한 달로 전쟁을 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었지만 메카의 사람들은 무함마드가 전쟁을 하지 않을까 염려하여 그에게 2년에서 10년까지의 평화조약을 요구하고 무함마드는 요구에 응한다. 그리고 2년 후 AD 630년 1만명의 무슬림은 무기를 지니지 않은 채 메카로 향하였고 결국 메카로의 무혈 입성을 이루어낸다. 메카로 입성한 무함마드는 "알라후 아크바르(하나님은 가장 위대하시다)"를 외쳤고 무슬림들이 따라 외쳤다.

무함마드는 카바 신전의 우상들을 다 부숴버렸고 유일신 알라 외에 다른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공포를 했다. 그때 메카의 모든 집에 있던 우상들이 다 부숴졌다.

무함마드는 메카에서 보름을 지내고 메디나로 돌아와 이듬해 아라비아 북서쪽 타북 지방으로 원정을 떠났다. AD 632년 무함마드는 메카카바 신전을 참배하고 메디나로 돌아오던 중 심각한 열병에 걸려 죽게 된다.

무함마드 사후[편집]

정복전쟁[편집]

아랍 제국("칼리파 시대")의 영토
      622-632: 무함마드 시대의 영토
      632-661: 정통 칼리파 시대에서 확장된 영토
      661-750: 우마이야 칼리파조에서 확장된 영토

무함마드 사후, 이슬람은 신도의 장로 중에서 교통(敎統)의 후계자인 칼리파를 선출하였다. 그 후 아라비아 반도 밖으로 진출하기 시작하여 633~664년 시리아 · 이라크 · 북부 메소포타미아 · 아르메니아 · 이란 · 이집트 등을 정복하고 여러 곳에 기지도시(基地都市)를 건설하였다.

그 후에도 정복사업은 계속되어 우마이야 왕조 시대에는 서쪽은 북아프리카의 대서양 연안까지, 다시 711년부터는 이베리아 반도에 침입하였고, 동쪽은 중앙아시아인도 북서부까지 그 지배력이 미쳤다. 피레네 산맥을 넘어 프랑스의 중부까지 진출한 군은 732년 푸아티에(Poitiers) 북방의 싸움에서 패퇴하였으나, 동방에서는 751년 여름 탈라스 강의 싸움에서 고구려 출신의 고선지가 이끈 당군(唐軍)을 대파하고 중앙아시아의 지배권을 확보하였다.

아바스 왕조(750-1258) 초기 100년간은 칼리파 정권의 전성기였는데, 그 후 이베리아는 우마이야가(家) 일파에 의하여 독립하고, 이어서 모로코 · 튀니스 · 중앙아시아 · 이란 동부 · 이집트 등에도 독립정권이 출현하여 칼리파의 직할지는 점차 축소되었다.

820년의 아바스 왕조(750-1258)와 세계의 제국들: 아바스 왕조이슬람의 황금 시대(9-11세기)를 열었다.

투르크의 이슬람화[편집]

가즈나 왕조(963-1187)의 최대 판도
1300-1683년 동안의 오스만 제국(1299-1922)의 판도

10세기에 들어서자 921년 이후 볼가강 중류의 불가르족(族)이, 이어서 960년 이래 톈산 산맥 남북로의 투르크족이 다같이 대량으로 이슬람교를 받아들였다. 그때까지 아랍족, 이어서 이란인이 중심이었던 이슬람 세계는 이 무렵부터 투르크의 패권 밑으로 옮겨지는 경향이 생겨, 10세기 말부터는 투르크가즈나 왕조의 마호무드왕은 자주 인도에 침입하여 이 지방의 이슬람화가 확고한 기반에 놓였다.

한편 동아프리카에는 740년 무렵부터 이슬람교가 퍼지기 시작하여 1010년경에는 사하라 사막을 넘어 나이저 강변의 서 수단 지방에 있는 흑인 왕국에까지 이슬람의 세력이 미쳤다. 1071년 아르메니아의 만지케르트 싸움에서 셀주크 투르크군은 비잔틴군을 격파하였다. 이 때부터 서아시아의 이슬람화 ·투르크화가 시작되었고, 그에 대한 반동으로 일어난 것이 11세기 말~13세기 말의 거의 2세기에 걸친 십자군 전쟁이다. 한편 이베리아 반도에서는 기독교도의 역정복이 진행되어 1492년에는 무어인의 최후 거점인 그라나다가 함락되고 마침내 이슬람은 북아프리카로 후퇴하였다.

비잔틴 정복[편집]

이와는 달리 셀주크 제국과 교체된 오스만 제국발칸 반도로 진출하여 1453년에는 콘스탄티노플을 공략, 비잔틴 제국(330-1453)을 멸망시켰다. 또 인도에 세력을 부식한 이슬람 교도는 이곳을 기지로 하여 말레이시아 · 인도네시아 · 필리핀 방면에 선교를 하여 동남아시아의 이슬람화는 15~16세기에 광범한 지역을 차지하게 되었다.

아랍색[편집]

소말리아, 코모로, 지부티 같은 일부 이슬람국가를 빼고는 국기에 빨강, 흰색, 초록, 검정만 넣는다. 빨간색은 국경을 넘어 아랍 세계를 이어주는 '혈연'을 상징한다. 흰색은 '정통 할리파(칼리파) 시대'를 상징한다. 초록색은 사막지대에서 번영을 상징하던 색으로써, 최초의 시아파 국가인 파티마 왕조의 상징으로 쓰였다. 검은색은 아바스 왕조를 상징한다.[8]

교리[편집]

이슬람은 알라 이외에 다른 신은 없다고 믿는 유일신 종교이다.

이슬람 교리는 매우 단순하게 여겨질 만큼 명료하게 정립되어 있다. 이슬람 교리는 이만(6가지 종교적 신앙)과 이바다(5가지 종교적 의무)를 기본으로 하며, 6신(信) 5행(行)이라 부르기도 한다. 또한 5행을 무슬림의 신앙생활을 지탱하는 다섯 기둥으로 보아 아르칸(기둥들)이라 부르기도 한다.또한 개종을 하려면 일정량의 재화를 지불해야 한다.

사우디 아라비아 제다 중심가 모스크에서의 쌀라 풍경

이만 (6신)[편집]

이만(6신)이란 알라 · 천사들 · 경전들 · 예언자들 · 마지막 심판 · 운명론에 대한 여섯 믿음이다.

다섯 기둥 (5행)[편집]

수니파 무슬림에게 다섯 기둥(Arkan-al-Islam)은 샤리아(이슬람법)에 근거하며 무슬림에게 가장 중요한 의무이다. 시아파에는 ‘종교의 뿌리’(Usul-ad-Deen)로 알려진 다섯 가지 믿음과 ‘종교의 가지’(Furoo-ad-Deen)로 알려진 열 가지 의례가 있는데, 이 열 가지는 수파이슬람의 기둥과 유사한 것이다.

복장을 갖추고 메카로 순례 여행을 떠나는 무슬림
  • 신앙고백 (샤하다) - 이슬람교의 신앙 고백으로, "알라 외에 신은 없으며 무함마드는 알라의 예언자이다"라고 하는 일정 구절아랍어)로 된 고백이다.
  • 기도 (살라트) - 매일 5회의 기도
  • 단식 (사움) - 이슬람력 9월(라마단) 한달 동안 일출부터 일몰까지의 음식 및 음료의 섭취와 성행위를 금한다.
  • 자선 (자카트) - 일반적으로 상공업에 종사하는 부자들의 재산의 2.5%나 농민들의 연 생산의 10-20%정도이며, 이 돈이나 생산물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분배된다.
  • 메카 순례(하즈) - 이슬람력 12월(둘 힛자)에 이루어지며 경제적 신체적으로 능력이 있는 모든 무슬림이 일생에 한 번 행해야 한다.

그 외에 여섯번째 기둥으로 간주되는 지하드 역시 교리로 인정된다. 지하드는 고투 · 노력이라는 뜻의 아랍어로 신체 건장한 무슬림이라면 누구나 수행해야 하는 의무이다. 이는 이슬람 공동체를 비이슬람 공동체로부터 지키기 위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의미한다.

분포[편집]

국가별 신자 분포

대륙별 분포[편집]

주로 중동터키, 중앙아시아, 중국 서부(신장 위구르 자치구), 북아프리카, 러시아(주로 남부지역), 카프카스, 인도,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브루나이에 이슬람교가 존재한다. 여기서 동남아시아의 무슬림은 과거 이슬람 상인들의 활발한 무역 활동으로 이슬람 신앙을 갖게 된 이들이다.

유럽에서는 알바니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주로 코소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 이슬람교가 존재한다. 일부는 이슬람 국가에서 이민들이 많은 영국, 독일, 프랑스, 벨기에, 스웨덴, 네덜란드 등에도 존재한며, 특히 프랑스에스파냐에서는 이슬람교가 제2의 종교 세력으로 취급받는다. 하지만 유럽의 무슬림들은 이슬람에 대한 편견, 무슬림에 대한 차별(취업, 교육) 등의 어려운 숙제를 풀어야 한다.

아메리카에서는 미국, 브라질에 이슬람교가 극소수로 존재하며, 오세아니아에서는 파푸아뉴기니에 극소수가 존재한다. 실례로 유명한 흑인운동가인 말콤 X개신교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후에 개종한 무슬림이다. 또한 다른 미국의 흑인들도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이 생기면서, 이들은 "블랙모즐렘"이란 단체를 만들어 종교 활동을 하고 있다. 이 중에는 무하마드 알리(개종 전 이름은 카시우스 클레이)와 마이크 타이슨 같은 권투 선수들도 포함되어있다. 대한민국에는 약 20만 명의 이슬람교도가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는 한국전쟁당시 터키군의 선교 활동과 다수의 인도네시아와 소수의 말레이시아 지역 동남아시아 출신의 외국인 노동자의 유입에 의한 것이다. 한국인 출신의 이슬람교 신도는 약 10만 명 정도이다.

신자수 분포[편집]

현재의 이슬람 교도수는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세계 인구의 약 25%인 12억 내외로 알려져 있다. 지역적으로는 북아프리카 · 아라비아 반도 · 이란에 이르는 이른바 중동지역과, 동부 러시아, 투르크  · 아프가니스탄 · 파키스탄 서부 · 중국 · 인도 · 인도네시아에 이르는 지역에서 분포되어 있다.

종파[편집]

이슬람에는 교리가 상반되는 200여 개의 종파가 있다. 그 중 주류는 수니파이다. 전 세계 무슬림의 83% 이상이 수니파에 속한다. 그 외에는 16%의 시아파와 시아파와 수니파에 섞여 있는 수피파 그리고 여러가지 종파들이 존재한다.

이슬람교의 종파
이슬람교의 종파별 분포

수니파[편집]

수니파(Sunni)는 이슬람교의 최대 종파로 전체 이슬람교 신자의 80-90%가 속해 있다.[2][3][4] 수니파는 무슬림 공동체 즉 움마의 "순나"(sunnah 관행)를 추종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순나(관행)"는 쿠란 · 하디스 · 예언자정통 칼리파의 선례에 바탕을 두고 있다. 4대 법학파(하나피 · 말리키 · 샤피이 · 한발리)로 나뉜다.

카와리즈파[편집]

무함마드 사망 25년 뒤, 칼리파 우스만 이븐 아판이 살해를 당하자 무함마드의 사촌이자 사위인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이하 "알리")가 그 뒤를 이었다. 우스만의 6촌인 다마스쿠스 총독 무아위야 1세알리가 우스만의 복수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다면서 반란을 일으켰다. 이 내란 속에서 알리 지지자들은 주전파와 협상파로 갈라졌다. 그중 주전파는 절대신 알라만이 중재를 할 수 있고 인간은 현 상황에서 계속 싸워야 한다면서 알리 진영을 떠난다. 이들이 이슬람 역사상 최초의 종파 카와리즈파(Khawārij: "탈퇴자")이다.

카와리즈파는 전투적인 행동주의자여서, 지하드(jihad 주로 ‘성전’으로 번역한다)를 여섯 번째 ‘신앙의 기둥’으로 삼았다. 661년 이들은 알리를 살해했다. 카와리즈파는 메카의 부족 꾸라이쉬의 자손만이 칼리파가 될 수 있다는 수니파의 전통적 견해를 비난하고, 독실한 무슬림이면 누구나 칼리파가 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만민 평등주의적 입장과 아랍 귀족층에 대한 적개심 때문에 베드윈과 비아랍계 무슬림 추종자를 얻을 수 있었지만 내분으로 뒷날 저절로 약화됐다. 현재는 알제리튀니지베르베르 지역, 동아프리카 탄자니아아라비아 반도의 오만에 조금 남아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들의 청교도적인 정신은 18세기 사우디아라비아 건국의 기반이 된 와하브(Wahhab) 운동의 바탕이 되기도 했다.

시아파[편집]

시아파(Shia|)는 이슬람교에서 수니파 다음으로 두 번째로 큰 종파로 전체 이슬람교 신자의 10-20%가 속해 있다.[4][5]

시아파는 빼앗긴 칼리파 자리를 살해당한 알리 가문에 되돌려주려는 운동으로 시작되었다. "시아(Shia)"는 '시아 알리(Shia Ali)' 즉 '알리를 따르는 사람들'에서 나온 명칭이다. 초기 칼리파들의 뒤를 이은 우마위야 왕조(661-750)와 압바스 왕조(750-1258)는 무함마드의 '혈통'을 중시한 시아파를 억압하는 정책을 펼쳤다.

시아파는 우마위야 왕조의 창시자 무아위야 1세알리와 파띠마의 장남인 하싼(Hasan)을 살해했다고 주장한다. 하싼의 동생 후세인 이븐 알리(Husayn ibn Ali, 이하 "후세인")는 680년 지금의 이라크의 카르발라(Karbala)에서 반란을 일으켰으나 참혹하게 살해됐다. 카르발라와 인접한 나자프에는 이맘 알리, 이맘 후세인 사원이 지금도 남아 있어 시아파의 최대 순례지가 되고 있다.

후세인의 제삿날인 이슬람력 정월(Muharram) 10일, '모하라 아슈람'은 시아파의 최대 추모제 날이자 명절이기도 하다. 신자들은 이날 길거리에 나와 행렬을 지어 후세인의 고통을 체험한다. 시아파는 초기의 희생자들을 순교자로 떠받드는 것에서 시작했으나 훗날 나스티시즘(영지주의)의 영향을 받아 이슬람교의 주류를 이룬 수니파와 신학적으로도 갈라섰다.

시아파수니파의 큰 차이 중 하나는 "지도자 · 인도자"를 뜻하는 "이맘"에 대한 견해이다. 수니파에서 이맘쿠란을 독경하고 예배를 인도하는 정도의 사람을 가리킨다(전통적으로 이슬람은 신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 즉 "성직자"를 인정치 않으며 모든 신도가 직접 신앙의 힘으로 신과 소통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시아파에서 이맘알리후세인의 후계자, 쿠란의 신비를 밝혀주어 신도들을 빛과 은총으로 이끄는 사람으로 격상됐다. 이란호메이니와 그 뒤를 이은 최고 종교 지도자 하메네이 같은 이들이 가장 최고위급의 이맘들이다.

희생과 순교를 중시하는 시아파는 이 지점에서 구세주 신앙과 만난다. 특히 알리 이후 열두 이맘의 시기가 지나고 마지막 12대 이맘873년에 사라졌다고 믿는 '열두 이맘파'에서는 메시아 사상의 전형이 나타난다. 이들은 사라진 12대 이맘이 오랜 은둔에서 벗어나 언젠가 지상에 구세주(마흐디)로서 나타날 것이라 믿고 있다. 훗날 많은 이들이 '마흐디'를 자처하면서 등장하기도 했다.

열두 이맘파와 자이디야파[편집]

시아파의 85%를 이루고 있는 열두 이맘파(Twelver)는 이란이라크 인구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 아라비아 반도에는 드물게 분포하고 있고, 레바논 · 파키스탄 · 인도 등지에 소수파로 존재한다. 북아프리카모로코의 경우 왕가는 알리의 자손임을 주장하고 있지만 국민들은 수니 말리키파다.

자이디야파(Zaidiyyah)는 후세인의 손자 자이드(Zayd)에서 유래했다. 이들은 열두 이맘후세인의 아들인 4대 이맘까지만 인정하는데, 여기에 자이드를 포함시켜 다섯 이맘파라 부르는 이들도 있다. 자이디야파는 알리 이후의 수니파 칼리파들을 인정치 않는다는 점을 빼면 교리상 수니파와 동일하다. 예멘 지역에 많이 남아 있다.

이스마일파와 암살단파[편집]

시아파 중 가장 논쟁의 여지가 많고 매력적인 것, 그런 이유로 옛 문헌이나 소설에 가장 자주 소재로 다뤄졌던 것이 이스마일파(Ismailism) 즉 일곱 이맘파다. 그들은 열두 이맘파의 7대 이맘 무사 알카딤(Musa al-Kadhim|, 745-799) 대신 6대 이맘 자아르 알사디크(Ja'far al-Sadiq: 702-765)의 장남 이스마일(Isma'il ibn Jafar: c.721-755)을 추종하기 때문에 이스마일파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들은 빈민들의 지원을 바탕으로 압바스 왕조칼리파에 맞서 인기를 모았다. 10세기 한때 메카를 점령하기도 했다.

이스마일파의 또 다른 분파는 북아프리카에서 아랍족과 베르베르족 사이의 긴장을 이용해 권력을 잡고 파티마 왕조(909-1171)를 세운 우바이둘라 알마흐디(909-934) 세력이다. 이들은 969년 이집트를 정복하고 옛 수도 푸스타트 근처에 까히라(al-Qahirah 승리자; 오늘날의 카이로)라는 도시를 세웠다. 칼리파조는 까히라에 거대한 도서관을 짓고 이슬람 교리의 본산이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라는 알아즈하르(al-Azhar) 성원(聖院)을 만들었다. 이 칼리파조는 11세기 초 국력을 키워 팔레스타인과 시리아 등지를 세력권에 넣었으며, 바그다드의 칼리파도 한때는 카이로의 세력에 맥을 못추었다. 그러나 1171년 아이유브 왕조살라흐 앗 딘(1138-1193; 살라딘)에 의해 멸망했으며 이집트시리아는 다시 수니파의 손으로 들어갔다.

암살단파(Hashshashin)는 '산상의 노인'이라 불렸던 이란계 지도자가 11세기 말 파티마조와 결별하고 이란과 시리아를 잇는 산악지대에 요새를 만들면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마약의 일종인 해시시에 중독돼 암살을 저지른다는 점에서 아사신이라는 이름을 얻었으며, 이는 영어 assassination의 어원이 되기도 했다. 중세 십자군 전쟁을 다룬 기록들이나 마르코 폴로의 '세계의 서술(동방견문록)' 등 옛 문헌들에는 '산상의 노인'에 대한 전설이 많이 나와 있다. 암살단파는 자객을 이용, 주로 수니파 칼리파들을 살해했다. 현대의 학자들은 암살단파가 예루살렘을 놓고 전쟁을 벌였던 기독교 세력보다는 오히려 수니파 기득권층에 더 큰 위협이 됐던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에 살해된 최초의 희생자는 셀주크 투르크술탄 말리크샤 1세(1072-1092)의 재상으로 유명한 니잠 알물크(1091년 사망)였다.

암살단파는 수니파 지도층을 살해, '숨은 이맘'의 통치체제를 전 이슬람권에 확립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으나 13세기 내분이 일어나면서 약화됐고, 이란을 점령한 몽고군에 의해 섬멸됐다. 시리아의 분파도 이집트, 시리아에서 득세한 맘루크조에 의해 제거됐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추종자는 소수에 불과하며, 암살이 아닌 사업에 종사해 현대사회에서는 오히려 무슬림 부유층을 형성하고 있다.

알라위파와 드루즈파[편집]

이스마일파(Ismailism)의 영향을 받아 생겨난 종파들로, 오늘날 레바논시리아 등지에 분포한다. 그러나 이들은 이슬람 주요 교리에서 워낙 벗어나 있어, 시아파 무슬림이라기보다는 수니파 · 시아파 이외의 제3의 종파로 분류되곤 하며 심지어 이슬람이 아닌 다른 종교로까지 분류되기도 한다.

알라위파(Alawis)는 시아파알리 숭배를 극단화시켜 신격화했는데, 창시자인 무함마드 이븐 누사이르(Muhammad ibn Nusayr)의 이름을 따 "누사이리파"라 불리기도 한다. 레바논시리아에 많은 성스런 나무숲을 숭배할 뿐 아니라 기독교 의례까지 받아들여 부활절까지 축하하곤 한다. 시리아에서도 인구의 1%만이 알라위파이지만 장기 집권했던 하페즈 알아사드 전대통령과 그 아들로 세습정권을 이어가고 있는 바샤르 알아사드 현대통령이 이 종파인 덕에 권력층이 되어 있다.

드루즈파(Druze)는 11세기 이스마일파에서 나온 다라지(Darazi|)라는 인물이 숨은 이맘 '마흐디'를 자처하면서 창시했다. 비밀주의가 강하며, 레바논에 주로 분포하고 있다. 신의 예언자 무함마드를 따르는 이슬람과 달리 하킴이라는 칼리파가 신의 현신이라 주장하며 일신론을 믿는다. 일부다처제는 금지돼 있고 여성들의 지위는 남성과 동등하며 영혼은 윤회한다고 믿는다. 이슬람의 하즈(순례) 기간 축제를 열긴 하지만 순례 자체는 하지 않으며 라마단 금식도 하지 않는다. 공동체를 만들어 생활하는 경우가 많으며 금욕적인 생활을 찬양한다. 교리와 관행으로 보아, 이슬람교의 종파라기보다는 별도의 종교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바비파와 바하이파[편집]

19세기 중반 이란에서 나타난 바비파(Bábism)는 아랍어로 '문'을 뜻하는 '밥'이라는 말에서 나왔다. 이는 진리의 문을 뜻한다. 바비파구약성경 · 조로아스터교 · 중국에서 전해져온 유교 사상 · 불교 등의 예언자들을 모두 인정했다. 이들은 이란의 부패한 왕정에 반대하다가 잔혹한 탄압을 당했다.

대량학살에서 살아남은 추종자들은 바하올라라는 예언자를 추종하는 바하이파로 계승됐다. 바하이파의 가장 큰 특징은 관용과 사회의식이다. 이들은 이맘 알리가 남긴 메시지는 사회를 개혁하고 살기 좋게 만드는 것이라 믿는다. 여기에는 여성 평등 · 교육 · 국제평화 등을 모두 포함한다. 바하이파는 대부분 평화주의자로서 양심적 병역거부와 금주 · 금연 · 채식 등을 선호한다. 이들도 이란 정부의 박해를 받았으며, 왕정이 끝나고 1979년 이슬람혁명 세력이 정권을 잡은 뒤에도 계속 탄압을 받고 있다.

수피즘[편집]

이슬람 시아파에서 유래한 신비주의수피즘(Sufism)은 종교라기보다는 철학 · 사상에 가깝다. 현대 서구문명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 수피즘은 금욕적인 자기수양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주석[편집]

  1. "코란 (Koran)", 《두산세계대백과》. 2010년 12월 17일에 확인.
  2. (영어) Islām. Encyclopædia Britannica Online. 2010년 8월 25일에 확인.
  3. (영어) Mapping the Global Muslim Population: A Report on the Size and Distribution of the World’s Muslim Population. 《Pew Research Center》 (2009년 10월 7일). 2010년 8월 24일에 확인.
  4. (영어) Religions. 《Central Intelligence Agency》. The World Factbook (2010). 2010년 8월 25일에 확인.
  5. (영어) Miller, Tracy, Ed. (2009년 10월). 《Mapping the Global Muslim Population: A Report on the Size and Distribution of the World’s Muslim Population》 (PDF), Pew Research Center. 2009년 10월 8일에 확인.
  6. 네이버 책 :: 네이버는 책을 사랑합니다
  7. 《세계종교사입문》/서울대학교 종교학연구회/청년사
  8. 강응천, <청소년을 위한 라이벌 세계사>, 그린비 출판사, 초판(2006)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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