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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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韓國
Korea (orthographic projection).svg
한반도
국가 대한민국 대한민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도 대한민국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양직할시
지도자 대한민국 대통령 박근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김정은
면적 223,348 km²[1]
화폐 원 (₩, /)
시간대 UTC+9 (KST)

한국(韓國, 영어: Korea, 문화어: 조선)은 한민족의 나라 또는 한반도에 있는 나라를 이르는 말이다. 한국의 강역은 현재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를 포함한다. 역사적으로 10세기 이전에는 한반도 인근 요동, 만주, 연해주 등의 지역도 한민족의 활동영역에 포함되기도 하였다.

1948년 이후로 2014년 현재까지 한국에는 대한민국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두 개의 분단국가로 존재하고 있다. 한반도의 면적은 22만3,348㎦이며, 인구는 대한민국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통틀어 약 7천560여만 명이다.

국명[편집]

동아시아한자 문화권 국가들(중국, 일본, 베트남)에서는 한국을 기원전의 고조선 왕조와 1392년에 창건된 조선 왕조에서 유래한 조선(朝鮮)이라 부르며, 한반도조선반도(朝鮮半島)라고 한다. 이들 나라에서 '한국'은 대부분 대한민국을 지칭할 때에만 쓰인다.

한자 문화권 외의 국가들은 한국을 코리아(Korea), 코레아(Corea) 등으로 부른다. 이러한 명칭은 한국의 고대 왕조인 고구려장수왕이 정한 국호인 고려(高麗)에서 유래된 것으로, 이미 기원전 1세기 이전부터 '고려'라는 말이 사용되었다. 10세기(918년)에 왕건이 국호를 '고려'로 정하여 나라를 창건하고 그 나라의 이름이 아랍 상인들과 원나라를 통해 전파된 이후 한자 문화권 외의 국가들은 한국을 '고려'로 칭하게 되었다. 현재도 소비에트 연방(현 독립국가연합)에 사는 한민족고려인이라고 부른다.

이밖에 한민족을 이르는 말로 중국의 입장에서 '동쪽에 있다'고 하여 쓰인 동국(東國), 해동(海東), 동이(東夷), 청구(靑丘)[2] 등이 있다.

몽골에서는 한국을 솔롱고스(Solongos : 무지개의 나라)라고 부른다.

한국어 이름[편집]

현재 쓰이는 이름
옛 이름
  • 동국성원 (東國)
  • 해동 (海東)
  • 청구 (靑邱) 등

다른 언어 이름[편집]

한자 문화권
게르만어파
이탈리아어파
켈트어파
슬라브어파
우랄어족
알타이어족
서남아시아
힌두스탄어
동남아시아 (베트남어 제외)
아프리카
인공어

기타[편집]

  • 일부 비주류 역사학을 주장하는 이들은 한(韓)이라는 글자에 민족적·종교적인 어원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3]

역사[편집]

한반도 일대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구석기 시대이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인의 형성은 신석기시대로 보고 있다. 이때 빗살무늬 토기로 대표되는 독특한 농경 문화가 보하이 만(渤海灣) 연안에서 발달했다. 기원전 8000년 경부터 한반도 및 만주 일원에 거주했던 신석기 시대의 사람들과 기원전 10세기에 한반도 및 만주 지역에 거주했던 청동기 시대의 사람들이 오늘날 한국인의 직계 조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국인의 기원을 이루는 종족은 (韓), (濊), (貊)이다. 이들에 의해 고조선, 북부여(扶餘), 진국(辰國, 삼한 성립 이전)과 같은 초기 국가들이 형성되었다. 기원전 15세기 - 기원전 11세기경에는 청동기 문화가 유입되었으며 이와 함께 초대 고대 국가들이 형성되었는데 이 중 고조선(古朝鮮)이 가장 세력이 컸다.

왕검성(王儉, 고조선 수도)에서 건국된 단군조선은 청동기 문화를 지녔고 명도전(明刀錢)이라는 화폐를 주조하는 등 수준 높은 문화를 자랑하였다. 그러나 기원전 4세기 후반과 기원전 3세기 전반에 과의 전쟁에서 패하여 서쪽의 거점들을 뺴앗긴 뒤 중심지를 오늘날의 평양(平壤) 지역으로 옮겨갔다.

백두산한민족만주족의 영산으로 자주 언급된다.
한국의 역사
韓國史
Geunjeongjeon.jpg
선사 시대
고조선 시대
  • 단군조선 (기원전 2333년? ~ 기원전 194년)
  • 위만조선 (기원전 194년 ~ 기원전 108년)
  • 진국 (기원전 4세기 ~ 기원전 2세기)
원삼국 시대
삼국 시대
남북국 시대
후삼국 시대
통일 왕조기
식민지 시대
분단 한국
v  d  e  h

고조선은 기원전 108년한나라에게 멸망당한 뒤, 한나라는 한사군을 설치하였으나 이는 고조선의 영토를 직접 지배하는 형태가 아니라 단지 상업적인 역할만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조선 내 세력들 중 일부는 경주(慶州) 인근 진한 땅으로 이동하여 6개 촌을 이루며 살다가 기원전 57년 사로국을 성립시켜 신라로 발전하였다. 또한 일부는 김해 지역의 변한(弁韓) 땅에 9개의 촌을 형성하여 살다가 1세기경에 구야국에서 가야로 발전하고, 일부세력은 경기도와 전라도 지역의 마한 땅에 정착하였다. 한편 만주 지역에서는 기원전 1세기 무렵에 부여가 형성되었으며, 부여에서 주몽 일파가 졸본 지역으로 남하하여 토착 맥족과 연합 또는 병합하여 고구려를 건국하였다. 주몽 일파와 유리 일파가 졸본 지역으로 이동해 오자 온조비류 일파는 남쪽의 마한 지역으로 이동하여 마한 북부 지역의 한강 유역 일대를 중심으로 백제를 건국하게 된다. 또한 북부여에서 고씨 세력에 밀린 해씨 세력 일부가 가섭원 지역으로 이주하여 물길족, 예족, 맥족 등을 병합하여 동부여를 건국하였다.

고조선 멸망 이후 1세기-3세기 북쪽에는 고구려와 동부여, 남쪽에는 가야 등이 먼저 발전하여 전기 삼국시대를 형성하였고, 4세기-6세기 고구려, 백제, 신라로 대표되는 세 나라는 중앙 집권 체제를 확립시켜 수세기 동안 서로 경쟁하기도 하고 교류하기도 하면서 발전했는데, 이 시기를 전기 삼국 시대라고 부른다. 고구려는 광개토왕장수왕때 크게 발전하여 만주와 한반도를 호령하였고, 대흥안령 산맥에도 진출하였으며, ,과 맞서 싸우며 민족의 방파제 구실을 하였다. 백제는 3세기에 가장 먼저 전성기를 이루어 근초고왕때에는 요서, 산둥, 일본에도 진출하였다. 또한 백제는 높은 수준의 문화를 가지고 있었고, 비옥한 땅이 신라와 고구려보다 많이 있었으며, 일본에 갖가지 문화를 전파했다. 신라는 삼국 중 가장 늦게 발전하였으나, 고구려와 동맹하여 가야를 복속시키고 중앙 집권 체제를 정비하며 강성해졌다. 이후 신라는 당나라와 연합하여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한반도 및 그 북부에서 당나라의 세력을 몰아냈다.

한편, 고구려의 유장인 대조영고구려인말갈족을 거느리고 만주와 연해주 일대에 고구려 계승을 주장하며 발해를 건국하여 대동강과 원산만을 경계로 하여 신라와 공존하였다. 이 시기를 남북국시대라고 한다.

10세기에 들어서면서 신라는 세 나라로 분열되는데, 이를 후삼국 시대라고 한다. 그중 궁예의 후고구려(태봉)가 가장 강력하였으나, 폭정으로 인심을 잃게 되었다. 918년에 왕건이 왕위에 올라 국호를 고려로 바꾸고 수도를 개경으로 옮겼다. 935년에 고려에 의하여 혼란기를 거쳐 명맥이 끊긴 신라가 통치하였고, 다음 해에 후백제 또한 멸망하여, 한국 통일 왕조가 성립된다. 발해는 발해-요 전쟁의 패배로 인해 926년에 의해 멸망되었다. 이 혼란기에 건국된 고려왕조는 경쟁 세력들을 물리치고 옛 신라 강역을 확보하며 발해의 태자 대광현을 포함한 발해의 유민들도 흡수해 한반도에 최초로 단일 국가를 형성하여 거의 천년 동안 한국에 단일 국가가 유지하면서 고조선과 삼국 등의 다양한 전통을 계승하여 동질화된 독특한 민족 문화가 이루어졌다. 발해는 부흥운동을 전개하여 정안국(954년~986년), 후발해(929년~1114년), 흥요국(1029년~1030년), 대원국(1116년) 등의 나라를 건국하며 190년이나 저항하였다.

13세기에는 이 침입하여 고려 말까지 원나라로부터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다. 한국는 백성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반항하면서 수도를 개경에서 강화도로 옮겨 싸웠으나, 결국 원나라의 간섭을 받게 되었다. 이후 공민왕은 반원 친명 정책을 펴며 원나라의 간섭을 물리치고 실지(失地)를 수복하였다. 1392년 고려의 뒤를 이어 이성계에 의해 조선이 창건되었으며 수도한양으로 삼았다. 조선왕조은 성리학을 나라의 근본 이념으로 삼았다. 그리하여 15세기에는 중앙 집권 체제가 강화되었으며, 민족 문화도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 비록 임진왜란과 두 차례의 호란을 겪었지만, 조선 왕조는 1910년까지 존속하였다.

한편, 한국은 19세기 말 열강에게 문호를 개방하게 되었다. 1897년 아관파천으로 러시아 제국 공사관으로 옮겨갔던 고종은 덕수궁으로 환궁하고 대한 제국을 선포하였다. 그러나 러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 제국제2차 한일 협약을 강제 체결하여 통감부를 설치하였다. 그 후 이완용, 송병준 등의 친일본 제국 성향의 내각과 지식인층, 고위층들은 대한 제국 안의 일본 제국의 군사력을 바탕으로 일본 제국과 불법적인 한일 병합 조약을 체결하여 1910년에 대한 제국을 일본 제국에 불법적으로 편입시켰다. 하지만 1919년 3.1운동으로 대한제국을 계승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고, 일본과 계속 투쟁했다. 일제 강점기 동안 일본 제국은 자국에 편입된 대한 제국의 효율적인 식민지 지배를 위해 교육,의료,에너지,교통 등 사회의 소프트웨어적·하드웨어적 인프라를 구축시켰다. 그리고 일본 제국은 자국에 편입된 대한 제국에 대한 식민지정책으로 사회·경제적 수탈뿐만 아니라 한민족을 말살, 소멸시켜서 일본 제국내의 공식·비공식적으로 차별받는 종속 천민신분층으로 만들 것을 목적으로 하는 한민족 말살정책을 집행하였다. 각종의 간악한 제국주의 식민지정책 중에서도 일본제국의 한반도에 대한 식민지정책은 전례 없이 폭압적이고 악랄하였다. 한반도일본제국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하면서 1945년 8월 15일 광복되었다.

광복 직후 미국소련은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구실로 38선을 경계로 남한과 북한에 각각 진주하여 1948년까지 3년간 군정을 실시하였고, 남쪽에는 미국의 영향을 받은 대한민국 정부가, 북쪽에는 소련의 영향을 받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가 수립되어 분단되었다.

남북의 정부는 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7일까지 한국 전쟁을 벌였고, 정전 협정 체결 후 군사분계선을 경계로 분단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1990년대 초 전세계적으로 냉전이 종식되었으나, 한반도는 여전히 무력 대치와 이념 대결이 계속되고 있다.

지리[편집]

한국은 동아시아한반도에 위치하고 있다. 북서쪽으로는 압록강을 경계로 중국과 경계를 이루고, 북동쪽으로는 두만강을 경계로 중국러시아와 마주하고 있다. 3면이 바다인 한국에는 서쪽으로 황해, 동쪽으로 동해, 남쪽으로 남해에 의해 둘러싸여 있다. 북쪽끝은 평안북도의 온성, 서쪽끝은 평안북도의 실미도, 동쪽끝은 경상북도 울릉군에 속한 섬 독도, 남쪽끝은 이어도이다.

한국의 남부 및 서부는 대체로 평야이며, 동부 및 북부는 산지이다. 한국에서 가장 높은 산은 백두산(2,744m)이며, 관모봉(冠帽峰, 2,541m), 북수백산(北水白山, 2,522m)의 순이다. 한국 북부의 개마고원은 '한국의 지붕'이라고 불리며, 반도의 동해안을 따라 달리는 산맥인 태백산맥은 백두대간이라고도 불린다.

한국의 유명한 섬으로는 제주도, 거제도, 진도, 울릉도 등이 있는데, 제주도와 울릉도는 화산 활동에 의해 형성되었다. 한국의 황해안과 남해안은 리아스식 해안이 발달되어 있으며, 조수 간만의 차가 크다.

극지역[편집]

관련 지명들의 위치

한국 전체의 극지역은 다음과 같다.

대한민국의 극지역은 다음과 같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극지역은 다음과 같다.

문화[편집]

한국은 반도에 있는 지리적 조건으로 대륙 문화와 해양 문화의 영향을 모두 받았다. 한국 문화는 시베리아, 중앙아시아의 북방계와 남아시아, 동남아시아의 남방계가 혼합된 바탕에 중국 등 이웃들과의 교류로 영향을 받았으나 독자적으로 발전했다.

인구[편집]

조선시대의 인구 조사에 따르면 조선의 인구는 대체로 700만 명을 넘지 못했다. 조세와 부역 등을 피하려고 호구조사를 기피하는 등 여러 가지 요인으로 40% 이상이 누락되었을 것으로 추측되고 [5] 실제 인구는 조선 시대 중기에 와서 1천만 명 내외, 후기에는 약 1,300만 명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1910년 일제의 조사에 따르면 조선의 인구는 약 1,312여만 명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1910년 무렵에는 1,742만 명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한다.[6] 국권 피탈 후 현대적 인구 조사를 한 1925년에는 1,900만여 명, 1935년에는 2,289만9천여 명 1944년에는 2,590만여 명으로 증가하였다.

1911년의 성비(여자 100명 당 남자의 수)는 110.9로 심한 남초 현상을 보였으나, 1944년에는 99.4로 여초로 바뀌었다. 대한민국에서는 1949년 102.1로 남초 현상을 보이다가 1955년에는 100.1로 균형이 이루어졌다.

2013년 1월 31일 기준으로 외국인을 제외한 대한민국의 총인구는 5,096만 5,180명[7] 이고, 2012년 7월 기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인구는 2,458만 9,122명(출처:CIA The World Factbook)으로 추산되며, 약 700만명인 해외 거주 한인(韓人)을 포함한 전체 한국인 수는 약 8천250만 명이다.

S ratio1925to2000.jpg

언어와 문자[편집]

훈민정음.

공용어는 한국어[8] 이다. 한국어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진 고립어로 분류되기도 하며, 또 우랄알타이어족에 속한다는 주장도 제기되어 왔다. 표준어는 대한민국에서는 서울 표준어이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평양 문화어이다.

한국어를 표기하는 글자로는 한글을 사용한다. 한글은 소리를 표현하는 음소 문자인 동시에 자질 문자이다. 한국어 표기에 쓰이는 문자인 한글조선세종대왕이 백성들을 위해 직접 만든 문자 체계이다. 세종대왕은 한글 창제후 정인지·신숙주·성삼문·박팽년집현전 학사들과 함께 해설서인 《훈민정음 해례》를 만들어 훈민정음(訓民正音)이란 이름으로 1446년에 반포하였다. 한글은 각 자음과 모음이 하나의 기호로 모여 한 글자를 만들고 그 글자들이 단어를 만드는 표음 문자이다. 한글 창제 이전에는 한자(漢字)로 문서가 작성되었으나, 표의 문자인 한자로 한국어를 표기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어서 향찰, 구결, 이두차자 표기가 사용되기도 하였다. 훈민정음 창제 이후에도 지배층인 양반(兩班)층과 관공서에서는 한자를 계속 사용하였으며, 한글은 19세기까지 주로 편지글·시조·가사·한글소설 등에 사용되었다. 1894년 갑오개혁 이후에야 비로소 공문서에 한글이 쓰이기 시작했으며 일제 강점기에는 한글의 사용이 억압 받았으나 1945년 해방 후 본격적으로 널리 쓰여져 한국문화 발달의 기틀이 되었다.

최근에는 동음이의어(同音異意語)나 약어(略語)의 구별 등을 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한자의 사용이 점점 줄어드는 추세이다.

자연[편집]

행정 구역[편집]

한국은 현재 대한민국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분단되어 있으므로 해당 지역이 관할하고 있는 행정구역의 체계와 형식적으로 통치를 주장하는 지역의 행정구역 체계가 다를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의 행정구역[편집]

대한민국은 현재 1특별시, 6광역시, 1특별자치시, 8도, 1특별자치도로 편제되어 있다. 3단계 행정체계로 도/특별시/광역시 > 시/군/구 > 읍/면/동으로 구분된다. 다만, 서울특별시와 광역시를 제외한 인구 50만 이상 대도시[9]에는 시 아래에 행정구를 둘 수 있다.

이들 중 도와 동급의 행정구역은 광역시이며, 특별시, 특별자치시, 특별자치도도 존재한다. 그 목록은 다음과 같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지역 구분[편집]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현재 1직할시, 3특급시, 3지구, 9도로 편제되어 있다. 또한 3단계 행정체계로 도 > 시/군 > 동/리로 구분된다. 이는 광복 직후와는 다른 것으로 면은 통합하여 군으로 승격하고, 읍은 군의 중심지역을 이르는 명칭으로 변경하였다. 이 외에 로동자구와 직할시에 소속된 구역 등이 있다.

이들 중 도와 동급의 행정구역은 직할시이며 특급시는 도에 소속되고, 지구와 함께 행정상의 특혜를 받게 되어 있다. 그 목록은 다음과 같다.

다만, 대한민국에서는 이 같은 행정구역 구분을 인정하지 않고, 광복 당시의 행정구역만을 인정한다(자세한 내용은 이북5도위원회 참조).

행정구역의 변천[편집]

함경북도, 함경남도, 평안북도, 평안남도, 황해도, 경기도, 강원도, 전라북도, 전라남도, 충청북도, 충청남도, 경상북도, 경상남도
경기도 연천군함경남도 원산시, 문천군, 안변군을 분리해 기존 강원도에 합쳐 신설하였다.
제주도(道)는 전라남도 제주도(島)를 남제주군과 북제주군으로 분리하여 묶은 것이다.
서울특별자유시 : 종로구, 중구, 마포구, 성동구, 서대문구, 동대문구, 용산구, 영등포구
서울특별자유시는 그 직능과 권한이 도(道)와 같았다. 따라서 한국은 14도 1특별자유시가 되었다.
평안북도 강계군, 자성군, 후창군, 위원군, 초산군, 희천군과 함경남도의 장진군 일부를 합쳐 신설
부(府)를 시(市)로, 정목(丁目)은 가(街)로, 통(通)은 로(路)로, 정(町)은 동(洞)으로 바꾸었다.
개성지구는 중앙의 직속으로 두었다.
이 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4단계 행정구역을 3단계로 축소[10] 하였다.
량강도는 함경북도의 혜산시와 10개 군을 합쳐 신설하였다.
황해북도는 사리원시와 송림시 등 16개 군을 합친 영역이며, 황해남도는 해주시와 16개 군을 합친 영역이다.
1967년 10월에 다시 함경북도 소속의 일반시로 환원하였다.
부산직할시 : 경상남도 부산시 일원인 중구, 서구, 동구, 영도구, 부산진구, 동래구 지역
부산직할시는 정부 직할시로 그 직능과 권한이 도(道)와 같다. 따라서 한국은 1특별시 1직할시 14도가 되었다.
1985년 8월 2일에 청진시, 무산군, 경성군으로 분리해 함경북도로 환원하였다.
  • 1981년 7월 1일대한민국은 인천시를 인천직할시로 승격하고, 대구시와 주변을 합해 대구직할시를 설치하였다.
인천직할시 : 경기도 인천시 일원인 중구, 남구, 동구, 북구 지역
대구직할시 : 경상북도 대구시와 달성군의 월배읍·성서읍·공산면 및 칠곡군의 칠곡읍, 경산군의 안심읍·고산면 일원을 통합
당시 통합한 지역은 충청남도 대전시 지역과 대덕군 일원이며 대덕군은 폐지되었다. 단 대덕군 진잠면 남선리는 논산군 두마면에 편입되었다.
개성직할시 개성시는 개성특급시로 개편하여 황해북도에 편입하고, 개풍군과 장풍군도 각각 황해북도에 편입하였다.
남포직할시 남포시는 남포특급시로 개편하여 대안군, 강서군, 천리마군, 용강군과 함께 황해북도에 편입하였다.
라선직할시는 라선특급시로 개편하고 모두 함경북도에 편입하였다.
제주특별자치도로 개편하면서 제주시북제주군을 합쳐 제주시를, 서귀포시남제주군을 합쳐 서귀포시를 두었다.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남과 북의 면적 총합
  2. 청(靑)색은 동아시아 철학에서 '동쪽'을 뜻하는 색상으로, 이 단어에서는 '동쪽'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3. 역사연구가 김종호, "한민족의 뿌리정신 첫 번째 이야기 (한국어)", 《문화저널21》, 2009년 11월 2일 작성. 2013년 2월 3일 확인.
  4. 독도는 대한민국이 실효 지배하고 있으나, 일본이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독도 분쟁 문서를 참고
  5. 1918년 ~: 이이화, 《한국사이야기22. 빼앗긴 들에 부는 근대화 바람》(한길사, 2004) 23~24쪽.
  6. 1910년 ~: 이이화, 《한국사이야기22. 빼앗긴 들에 부는 근대화 바람》(한길사, 2004) 24쪽.
  7.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통계
  8. 지역에 따라 '조선말', '조선어', '고려말' 등으로도 불린다.
  9. 대한민국 지방자치법 제161조의2(대도시에 대한 특례인정) 서울특별시와 광역시를 제외한 인구 50만 이상 대도시의 행정, 재정운영 및 국가의 지도·감독에 있어서는 그 특성을 고려하여 관계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특례를 둘 수 있다.
  10. 도 > 시/군 > 읍/면 > 동/리를 도 > 시/군 > 동/리로 축소

바깥 고리[편집]

대한민국[편집]

기타[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