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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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金正恩
출생 1984년 1월 8일(1984-01-08) (30세)[1]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안북도 창성군 혹은 강원도 원산시
거주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양직할시
국적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별칭 김정운, 새별 대장, 은하(별칭)[2], 박운(가명)
학력 스위스 베른 공립중학교 9학년 중퇴
김일성종합대학 학사
직업 군인, 정치인
종교 무교
배우자 리설주
자녀 김주애
부모 부: 김정일, 모: 고영희
친척 김경희 (고모), 장성택 (고모부),
김혜경, 김설송, 김춘송 (이복 누나),
김정남 (이복 형),
김정철 (형), 김여정 (여동생)
서명
KimJongUnSign.png
김정은
1984년 1월 8일~
태어난 곳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안북도 창성군 혹은 강원도 원산시
별명 김정운, 샛별대장, 박운(가명)
복무 조선인민군
복무 기간 2010년 9월~
최종 계급 공화국 원수
지휘 조선 최고사령관

김정은(金正恩[3], 1984년 1월 8일[1] ~ )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제3대 원수 및 조선로동당 제1비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다. 김정일고영희 사이의 둘째 아들이다. 별칭은 '샛별 대장', '은하'이고, 가명은 '박운'이다. 김정일 사후, "당과 국가, 군대의 최고 령도자"로 칭해지고 있다. 2012년 4월 11일에 3대째 세습으로 아버지 김정일을 이어서 조선로동당 제1비서가 되었으며, 4월 12일에는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되었다. 2012년 7월 18일 공화국 원수로 진급했다.[4]

생애[편집]

생애 초기[편집]

아버지 김정일

김정은은 1984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방위원장 겸 수반 김정일과 무용수 출신 두 번째 부인인 고영희 가 동침한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5] 친형 김정철이 있었고, 여동생으로 1987년에 태어난 김여정이 있다. 그밖에 이복 누나 김혜경, 이복 형 김정남, 이복 누이 김설송, 김춘송이 있다.

당초 그의 출생 정보에 관해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아 출생연도에 대해서 김일성 (1912년생), 김정일 (1942년생)의 출생연도와 끝자리를 맞춰 1982년이라는 주장이 있었으며, 김정일의 요리사를 지낸 후지모토 겐지1983년생이라고 밝혔다.[6] 후에 대한민국 통일부국가정보원에서는 김정은의 유학시절 여권 등을 근거로 1984년생이라고 결론을 내렸다.[7][1] 출생지에 대해선 평안북도 창성군이라고 알려졌으나,[8][9] 실제로는 강원도 원산시에 위치한 김정일의 별장 602호 초대소에서[10] 태어났다는 설이 있다.[11][12]

김정은의 어린 시절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백인 여자를 상당히 좋아하고, 프랑스를 거쳐 16세 때 스위스로 유학하여 김나지움(Gymnasium, 고등학교) 과정을 마쳤다 한다. 스위스 베른의 공립 중학교에 유학[13][14], 유학 당시에는 '박운(박은)'이라는 가명으로 활동했다. 학교 기록 등에 따르면 베른 공립 중학교 인근의 한 초등학교에서 독일어 보충학습을 받은 뒤 1998년 8월에 7학년(한국의 중학교 1학년 해당)으로 편입되었다. 그는 9학년이던 2000년말 학교를 그만뒀다. 당시 담임이었던 시모네 쿤은 마이니치(每日; 매일)신문에 “그가 점심시간에 교무실로 와서 ‘내일 귀국한다’고 말한 뒤, 다음날부터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14] 귀국 뒤, 2000년대 중반부터 활동적이고 적극적인 성격이 아버지 김정일 및 조선노동당과 주변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15]

2004년에는 아버지인 김정일의 권유로 조선 인민군에서 하전사로 입대하였으며 하전사로서 1년 6개월동안 군복무를 한 이후 하전사에서 곧바로 중장으로 진급했다.[16]

김정일의 권력 승계[편집]

김정일이 김정은을 후계자로 지명한 시점은 2009년으로, 대북 소식지가 이를 최초로 보도한 바 있다.[17] 하지만 대한민국 정부는 사실 파악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확인을 거부했으며, 장성민 세계와 동북아 평화포럼 대표와 같은 국내 대북 전문가와 미국을 비롯한 국제 사회도 김정은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 등을 들며 후계자 지명설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 바 있다.[18][19]

그러나 머지 않아 김정일이 자신의 후계자로 김정은을 지명한 것을 중국에 알리는 등[20] 후계자 지명이 구체화 됨에 따라 후계자 지명은 기정 사실화 되었으며, 김정일 유고시 김정은의 군부 장악 가능성에 대한 예측 보도가 뒤를 잇기 시작했다.[21]

2010년 9월 27일 조선인민군 대장 임명[22], 28일 3차 노동당대표회의에서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 및 당중앙위원 임명 절차를 거치며 김정은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가통수권 후계자로 공식 확정되었다.[23]

그동안 유년기, 청소년기의 사진으로만 알려져왔던 김정은의 얼굴은 후계자로 확정된 9월 28일 노동당대표회의 기념사진을 통해 언론에 공개된다.[24] 10월 6일엔 김정은이 후계자로 지명된 것을 경축하는 행사를 벌인다.[25]

김정은의 3대 세습체제 구축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외에 불만을 가중시켰다. 북한 내부에선 3대 세습에 대한 반발 조짐이 일면서 김씨 부자를 비방하는 전단이 돌거나 폭약이 밀반입 되는 사건이 발생[26]했으며, 일본의 친북단체인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내부 조직원들도 세습에 대해 반발을 보인다.[27]

2011년 12월 17일, 아버지 김정일이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김정은이 후계자로서의 업무를 맡게 되었고, 12월 29일에는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추대되어 핵무기 통제권을 장악했다.[28]

2012년 4월 11일, 김정은은 4차 노동당대표회의에서 노동당 1비서로 추대[29]되었고, 이틀 후인 13일에 열린 북한 최고인민회의에선 국방위원회 1위원장에 추대되어 김정일의 직책을 모두 세습하는데 성공한다.[30] 또한 2012년 7월 18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당 중앙군사위원회, 국방위원회,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에 의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공화국 원수 칭호를 수여받아 명실상부 최고 권력자로 부상하였다.

우상화 및 장남 김정남과의 마찰[편집]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진행 중인 우상화 작업에 대한 하태경 열린북한 대표는 10월 10일 일본 도쿄 메이지대학에서 열린 ‘북한의 천국과 지옥’이란 주제의 강연회에서 “지난 9월 말이나 이달 초 북한 조선노동당 중앙당 간부 및 당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것으로 보이는 교육자료를 최근 입수했다”고 말했다. 일본의 도쿄신문마이니치신문이 내용 일부를 보도한 적은 있지만, 자료 전문이 공개된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그 내용에는 김정은이 “경애하는 장군님에 대한 충실성을 최고의 높이에서 재현하신 충실성의 귀감”이라며 “비상한 탐구심과 명철한 통찰력, 심오한 분석판단력으로 혁명사상을 완벽하게 체득하시고 발전 풍부화해나가고 계신다”고 쓰고 있다. 이어 지난해 4월5일 광명성 2호 발사에 대해 미국에서 요격론이 나왔을 때 김정은이 반타격전을 지휘했다며, “우리 비행대들의 드세찬 공격 앞에 질겁한 적들은 뺑소니치고 말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자료는 “(김정은이) 세 살 때부터 총을 잡고 명중사격을 했다”며 “군수공장 방문 때 인민군 지휘성원들이 비를 맞고 있는데 나 혼자 우산을 쓰면 안 된다면서 같이 비를 맞으며 시찰했다”는 일화도 싣고 있다. 한편 이날 강연회에 강연자로 참가한 후지모토 겐지는 일본에서 새로 출간한 "북의 후계자 김정은"이란 책을 소개하면서, 일각에서 세습을 보다 용이하게 하기 위해 김정은의 얼굴을 김일성의 생전 얼굴과 동일하게 성형수술했다는 의혹이 있다는 주장에 대해 후지모토는 "최근 사진을 보니 김정은이 10대 때보다 살이 쪘다"며, "그러나 성형수술설 등은 말도 안 된다"고 말했다.[31]

김정은의 친형인 김정남은 2011년 1월, '3대 세습에 반대한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였다. 김정남은 '중화인민공화국의 마오쩌둥도 정권 세습을 하진 않는다'라며 세습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32] 이와 관련해서, 일본 산케이 신문은 김일성은 김정은을 손자로 인정하지 않았으며, 장남 김정남을 후계자로 보았고, 김정은 등은 정식 손자로 인정하지 않았다고 보도하였다.[33]

이후[편집]

  • 2009년 6월 10일: 일본 TV 아사히는 김정은의 최근 모습이라는 사진을 공개했다. TV 아사히 측은 대한민국의 군당국에서 제공받은 사진이라고 밝혔으나, 대한민국 정부의 항의를 받고 한국의 신뢰할 수 있는 출처라고 정정하였다. 그러나 사진의 주인공은 김정은이 아니라 김정일과 외모가 비슷할 뿐 대한민국의 일반인으로 밝혀져 TV 아사히의 보도는 오보로 드러났다. 사진은 공개된 인터넷 카페에서 유출되어 대한민국의 군 부사관이 TV 아사히 측에 넘겼는데, 이것이 김정은의 사진으로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34]. 사진의 주인공은 아사히TV, 사진을 제공한 군 관계자,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 중이다.[35]
  • 2009년 6월 14일: 마이니치 신문에서 김정운의 16세 때 사진을 공개했다.[36] 이 사진은 그가 스위스의 공립학교에 가명으로 재학할 당시 급우들과 찍은 사진에서 나온 것이다.
  • 2009년 9월 11일: 연합뉴스 속보에 의하면, 김정일 3남의 이름은 김정운이 아닌 김정은으로 판단이 된다고 발표했다.[37]
  • 2010년 4월 20일: 일본 마이니치 신문은 김정은의 최근 모습이라는 사진을 공개했다. 그러나 한국정부는 사진의 주인공은 김정은이 아니고 김책제철소의 김광남 기사장이라고 밝혔다.[38]
  • 2010년 인민군 대장 공식화[39]
  • 2010년 9월 29일 조선 인민군 군사위원회 부위원장에 임명[40] 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이나 내각에 입각이 어려운 점을 감안하여 군사위원회 부위원장에 임명됐다.
  • 2010년 9월 30일 로동신문 등에 조선로동당 대표자회 기념사진 속 김정은의 모습 공개[41] 공개된 기념사진.
  • 2010년 10월 6일 김정은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김정일의 후계자로 확정되었으며 이를 축하하기 위한 파티에 많은 주민들이 동원되었다.
  • 2011년 1월 9일 김정은 전 국경지역에서 허가 없이 강을 건너는 자들은 사살해도 좋다는 명령을 내렸다.[42]
  • 2011년 1월 13일 김정은 체제를 정착시키기 위해 '공포 정치'를 시작한 정황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지난해 공개 처형된 주민이 전년(前年)의 3배인 60명이 넘고, '탈북자 무조건 사살' 명령으로 압록강·두만강을 건너다 숨지는 주민들도 늘어나고 있다. 조선인민군 내부에 '숙청 바람'도 불고 있다[43]
  • 2011년 12월 19일 김정일의 죽음으로 김정일의 철권통치가 끝나면서 김정은 체제가 시작되었다.[44]
  • 2011년 12월 29일 김정일 추도대회에서 김정은이 령도자임을 선포했다.[45]
  • 2012년 4월 11일 조선로동당 대표자회의에서 로동당 1비서로 추대되었다.[46]
  • 2012년 4월 13일 최고인민회의에서 국방위원회 1위원장으로 추대되어 김정일의 직책을 모두 세습하였다.[47]
  • 2012년 7월 18일 조선중앙통신이 중대 보도를 통해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당 중앙군사위원회, 국방위원회,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가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김정은에게 공화국 원수 칭호를 수여한다고 보도하였다.[48]

논란과 비판[편집]

이름 논란[편집]

김정일 3남의 이름은 김정일의 요리사로 일했던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가 "키무종운"(일본어로는 キム・ジョンウン)이라 부르면서 김정운으로 알려졌다.[49] 하지만 이름이 김정운이 아니라 김정은이라는 설이 퍼졌고, 9월 중순 원산 인근에서 청년대장 김정은으로 표기된 선전벽보가 발견되었다.[50] 일본어는 김정은이나 김정운이나 똑같이 "키무종운"(キム・ジョンウン)으로 발음, 표기하기 때문에 처음에 일본인 요리사가 그렇게 말했던 것으로부터 혼선이 빚어졌던 것으로 보인다[49] 이에 대해 원세훈 대한민국 국가정보원장은 "오래전부터 김정은 이라는 첩보를 갖고 있었지만 북한이 확인해줄 사항도 아니고 이름이 중요한 사항도 아니라 발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51] 중화인민공화국 및 일본에서는 한동안 김정운의 한자표기인 '金正雲'으로 쓰는 경우가 많았으나, 그 후 한글 이름이 '김정은'이라는 것이 명확히 밝혀지면서 한자로 金正銀 또는 金正恩이라 쓰기도 했다. 10월 초, 조선중앙통신에서 김정은의 한자 표기는 金正恩이라고 밝히면서 일본 언론들과 중국 언론들은 金正恩으로 표기하는 것으로 확정하였다.[52][53] 한편, 서방 언론권에서 쓰는 Kim Jong-un이라는 표기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여전히 사용하는 매큔-라이샤워 표기법으로는 김정운과 김정은에 동일하게 적용된다.

성형수술 논란[편집]

중국 선전 위성TV는 2013년 1월 19일 김정은 제1위원장이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과 닮아 보이도록 성형수술을 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중국 언론인 관야오(管姚)는 이 방송에서 북한을 방문했던 중국 외교관을 언급하며 "우리 외교관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 사적인 대화에서 북한 외교관에게 `김정은이 조부 김일성과 똑 닮았다`고 하자 `성형수술을 했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신화통신은 서울 주재 특파원과 평양 주재 특파원을 모두 연결해 보도 경위와 근거를 추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평양 주재 특파원은 "북한에선 김정은 성형과 관련된 보도가 한 번도 없었다"며 "근거 없는 소문"이라고 말했다고 신화통신이 전했다.[54]

어머니 논란[편집]

일반적으로 김정은의 어머니는 고영희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이복형 김정남은 김정은의 어머니는 고영희가 아닌 김옥이라고 증언했다.[55]

김정은의 호화사치 생활[편집]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의 2011년 1월 1일자 보도에 따르면 대한민국 정보기관 분석결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총 1억 파운드(약 1734억 원) 이상을 들여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3남 김정은을 위한 호화주택을 잇달아 건설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 건물에는 요트 선착장과 사설 기차역 등이 설치될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 밖에도 함경북도에서 김정은을 위한 것으로 보이는 주택이 건설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56]

천안함·연평도 관련[편집]

연평도 포격[편집]

2010년 11월 23일, 대한민국 연평도가 포격을 당했다. 이 포격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철저한 계획 아래 실시되었다는 분석이 대체적이다. 일본 《아사히 신문》은 12월 1일 북측 내 소식통을 인용해 “김정은의 이름으로 지난달 초 ‘적의 도발 행위에 언제라도 반격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추라’는 지령이 북한군 간부들에게 하달됐다”고 보도하였다.[57] 이것이 김정은 후계 구도를 더욱 확립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되었는데, 특히, 김정은은 북측에서 포병 전문가로 미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업적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58]

한편, 대한민국의 시민단체 모임인 반인도범죄조사위원회는 이번 연평도 포격이 "계획적인 한국 영토 조준 공격, 민간인 거주 지역 공격, 대량 살상용 방사 포탄 사용 등의 공격 유형으로 보아 연평도 포격 도발은 유엔헌장 제2조 4항, 로마규약 제8조에 저촉되는 전쟁 범죄"라고 강조하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김정일과 그의 후계자 김정은을 '전쟁범죄' 등의 혐의로 국제형사재판소(ICC)에 고발하였다.[59]

이와 관련해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측은 도발에 대한 책임을 남측에 떠넘기며, 정당한 군사적 대응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2010년 12월 28일 김정은은 연평도 포격당시 전사한 조선인민군 5명에 공화국영웅 칭호를 수여한 것으로 알려졌다.[60]

일화[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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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순한 성격의 친형 김정철과 대조적이었다.
  • 2009년 여름 일본에 여행 중인 배석범이 그와 비슷한 외모 때문에, 김정은으로 몰려 일본 방송국에 오보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사진은 곧 대한민국의 각 포털 사이트에 김정은의 공식 인물사진으로 올려지기도 했다. 당시 배석범은 대한민국의 포털 사이트 다음에서 무속카페를 운영하고 있던 것으로 밝혀졌다.
  • 그는 은하수관현악단의 애호가이다.[61]

가계도[편집]

전체 가계도
김형직
金亨稷
1894 - 1926
강반석
康盤石
1892 - 1932
김정숙
金正淑
1917 - 1949
김일성
金日成
1912 - 1994
김성애
金聖愛
1928 - ?
김영주
金英柱
1920 -
성혜림
成蕙琳
1937 - 2002
김정일
金正日
1941 - 2011
고영희
高英姬
1952 - 2004
김경희
金敬姬
1946 -
장성택
張成澤
1946 - 2013
김평일
金平日
1954 -
김정남
金正男
1971 -
김정철
金正哲
1981 -
김정은
金正恩
1984 -
리설주
李雪主
1989 -
김여정
金汝貞
1987 -
김한솔
金-
1994 -
김주애
金?
2013 -
김정은 중심의 가계도
성혜림
成蕙琳
1937 - 2002
김정일
金正日
1941 - 2011
고영희
高英姬
1952 - 2004
김정남
金正男
1971 -
김정철
金正哲
1981 -
김정은
金正恩
1984 -
리설주
李雪主
1989 -
김여정
金與正
1987 -
김주애
金?
2013 -

주석[편집]

  1. 정부 최종결론 “김정은 실제로는 84년 생
  2. 광명성은 김정일 함축, 은하는 김정은과 밀접…최고지도자 우상화용
  3. 北 막오른 김정은 시대 조선중앙통신 보도, 金正銀(X) 金正恩(O)
  4. 北 김정은 '원수' 진급 아시아 경제 2012년 7월 18일
  5. 김정일에게는 셋째 아들이다.
  6. 유기림, 김정은 실제 생년월일은 1983년 1월 8일生, 뉴스1, 2012년 12월 7일
  7. 오달란, 김정은 ‘고무줄’ 나이 논란…통일부·국정원 “27세”, 서울신문, 2011년 12월 22일
  8. 윤일건, 북한 김정은이 평북 산골 창성군을 찾은 이유, 연합뉴스, 2013년 6월 14일
  9. 김용훈, 김정은 生母 '재일교포' 고영희 우상화로 골머리, 데일리NK, 2011년 12월 23일
  10. 김명성, 김정은, 자기 고향 강원도 출신 우대?, 조선일보, 2014년 2월 5일
  11. 조수영, 원산 재개발은 김정은 우상화사업?, 세계일보, 2011년 5월 10일
  12. 매경닷컴 속보부, 北, 8일 김정은 생일 조용한 이유…출생의 비밀이, 매일경제, 2014년 1월 8일
  13. 일 마이니치가 전한 김정운 스위스 유학생활 : 국방·북한 : 정치 : 뉴스 : 한겨레
  14. “김정운, ‘박운’이란 가명으로 스위스 유학” 경향신문 2009년 6월 14일자
  15. 유순한 성격의 김정철 및 김정남의 방탕함과 대조적이었다.
  16. 김정은, 21세 입대…1년 반 병사 복무 뒤 중장 계급
  17. 대북 소식지들 "김정운후계설 확산" 일치
  18. "北 3남 김정운 후계자 지명설은 역정보"
  19. 미 전문가, 김정일 셋째 아들 권력 승계 기정 사실로 받아들여
  20. "北, 김정일 3남 후계자 지명 중국에 알려"
  21. 김정운, 군 장악 못한 듯 … 김정일 유고 땐 권력투쟁 가능성
  22. 北, 김정은에 `대장 칭호'‥후계 공식화
  23. 김정은,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으로 선임
  24. [모습 드러낸 김정은] 北 새 지도부 단체사진에 담긴 '권력 지도'
  25. "北, 김정은 후계 경축행사 진행.. 주민 총동원"
  26. 北 주민, 김정은 후계세습에 반발 확산…폭약 밀반입도
  27. 日 산케이 “조총련, 北 김정은 세습 후 동요”
  28. "北, 김정은 최고사령관 추대"
  29. 北, 김정은 당1비서 추대…당대표자회 결정
  30.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으로… 김정일 직책 모두 물려받아
  31. 도쿄/정남구 특파원 “3살때 총잡고 명중사격…” 김정은 우상화 한창 한겨레 2010년 10월 10일 작성
  32. 김정남 "아버지 김정일은 3대 세습 반대" mbn 2011년 1월 30일
  33. 北 김일성, 김정은 손자로 인정안했다” 경향신문 2012년 2월 15일
  34. "`김정운 가짜 사진` 제보자는 한국부사관…軍, 징계", 《한국경제》, 2009년 7월 23일 작성.
  35. "김정일의 3남 ‘김정은’으로 몰려 고초 겪은 배석범씨의 기막힌 사연", 《레이디경향》, 2009년 10월 19일 작성.
  36.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6/15/2009061500024.html 10년 전 김정은… 친구에 "내가 김(金)위원장 아들"} - 조선일보
  37. "김정일 3남 이름 `정은'으로 판단"(종합)
  38. 일본 언론, 북한 김정은 사진 또 오보
  39. 김정은 대장 칭호…김경희 '후계체제 안정화' 포석 SBS 뉴스2010-09-28 작성
  40. 북한 김정은, 당 군사위 부위원장·중앙위원 선임 YTN 2010-09-29 작성
  41. 김정은 사진공개 남북반응 일치 "김일성 판박이" 머니투데이 2010-09-30 작성
  42. 김정은은 "탈북자 사살해도 좋다" 명령에… 北, 중국땅 밟은 5명 추격해 사살 조선일보 2011-01-11
  43. 김정은의 공포정치 시작됐다 조선일보 2011-01-13
  44. 조선일보 2011-01-20
  45. 북한 김정일 추도대회...'김정은 시대' 선언
  46. 北, 김정은 당1비서 추대…당대표자회 결정
  47.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으로… 김정일 직책 모두 물려받아
  48. 이준삼. "北 김정은에 `원수' 칭호 수여…중대보도(2보)", 《연합뉴스》, 2012년 7월 18일 작성. 2012년 7월 18일 확인.
  49. "'김정운'이 아니라 '김정은'?", 《동아일보》, 2009년 9월 9일 작성.
  50. "北 후계자는 셋째아들 '김정은'‥선전벽보 확인", 《MBC 뉴스데스크》, 2009년 9월 24일 작성.
  51. "“청년대장 김정은”… 북 후계자 시사 벽보 찍혔다", 《경향신문》, 2009년 9월 25일 작성.
  52. 조선중앙통신 보도, 金正銀(X) 金正恩(O) 동아일보 2010년 10월 2일
  53. 中언론도 김정은(正恩)으로 표기 변경 2010년 10월 9일
  54. 북한 `김정은 성형 의혹`에 발끈…첫마디가 매일경제 2013년 1월 24일
  55. 장재혁 기자. ""김정은 母,고영희 아닌 김옥"김정남 폭탄발언", 《매일경제》, 2010년 10월 13일 작성. 2010년 10월 20일 확인.
  56. 北 주민 32% 2010년 식량배급 못받았다는데… 김정은, 1700억 들여 호화판 집짓기 몰두 2011-01-02 국민일보
  57. 김정은 북한군에 "공격태세 갖춰라" 지령 쿠키뉴스 2010년 12월 1일
  58. 포병장군' 김정은‥연평도 포격, 업적 만들기용? mbc 2010년 11월 25일
  59. 反인도위 "김정일 부자 국제형사재판소 고발", 연합뉴스, 2010-11-29 13:56
  60. 연평도포격 北5명 사망, 김정은 영웅칭호 수여 2010-12-28 머니투데이
  61. 윤일건. "북한 金씨 일가의 대 이은 '음악단' 사랑", 《연합뉴스》, 2011년 3월 11일 작성. 2012년 4월 29일 확인.

바깥 고리[편집]

Flag of North Korea.svg 제3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지도자 Emblem of North Korea.svg
전 임
김정일
2011년 12월 17일 ~ 후 임
(현직)
김일성 · 김정일 · 김정은
전 임
김정일
(총비서)
제1대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중앙위원회 제1비서
2012년 4월 8일 ~
후 임
(현직)
전 임
(김정일)
(위원장)
제1·2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2012년 4월 13일 ~
후 임
(현직)
전 임
김정일
제3대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2011년 12월 30일 ~
후 임
(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