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직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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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직할시
Pyongyang montage.png
NK-pyongyang3.png
행정
나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행정구역 18구 2군
시장 량만길
지역어 서북
인구
인구 2,514,692명
인구밀도 2,275명/km²
지리
면적 1,100㎢
해발 27m
기타
시간대 UTC+9

평양직할시(平壤直轄市)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도이며, 최대의 도시이다. 도시의 중심으로 대동강이 흐르며, 넓은 충적평야가 발달하였다. 역사적으로 고구려의 수도였고, 고려시대에는 고려 3경(京)의 하나인 서경(西京)이었으며, 조선시대에는 평안도 감영 소재지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별칭으로 혁명의 수도라고 부르며, 옛 소비에트 연방 양식과 유사한 건물들이 지어졌다. 한국 전쟁 때는 잠시 대한민국이 점령한 적이 있다. 1967년부터는 인구 증가로 인해 신도시 건설을 추진, 다양한 건축물이 세워졌다. 평양의 면적은 1,100㎢ 정도[1]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0.9%를 차지한다. 2008년 행정구역 인구는 약 325만 5388명이었으나,[2] 2010년 행정 구역 축소에 따라 현재는 약 251만 명이다.[1]

현재 인민위원장은 량만길, 당 책임비서는 문경덕이다.

개요[편집]

평양의 창광(蒼光)거리. 왼쪽은 고려호텔.

평양 준평원(平壤準平原)에 위치해 있다. 북쪽과 동쪽과 서쪽은 평안남도에, 남쪽은 황해북도에 접한다.

평양에는 대동강이 흐르는데, 강 좌측에 형성된 중심부를 본평양(本平壤), 서쪽을 서평양(西平壤) 그리고 강을 건너 동쪽에 형성된 시가지를 동평양(東平壤)으로 나누기도 한다. 평양시의 중심은 중구역이며, 1950년대 이래 내각청사, 인민대학습당, 조선미술박물관, 평양학생소년궁전을 비롯한 특색있는 건축물들이 건설되었다. 평양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는 창광거리와 영광거리, 그리고 광복거리와 통일거리이다. 인민대학습당 앞에는 김일성광장이, 부근에는 주체사상탑이 있는데 평양의 상징이 되고 있다.

공민등록법의 규정으로 '17세 이상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인민'은 공민증을 발급받지만, 평양시민은 1997년부터 특별히 '평양 시민증'을 발급받아 다른 지역 주민과 차이를 두고 있다.

지형[편집]

평양직할시의 위성 사진

평양직할시는 낮은 구릉과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평야가 많아 농업이 발달했다. 주요 산은 만경대구역에 있는 룡악산(龍岳山), 중구역에 있는 창광산(蒼光山), 대동강구역의 문수봉(紋繡峰)이 있다. 대부분 산은 휴양지나 유원지로 만들어졌다.

평양은 여름이 되면 홍수가 발생하여 농업이 어려웠으나, 김일성(金日成)이 직접 지시하여 보통강(普通江)의 관개공사를 실시함으로써, 홍수 피해가 적어지고, 농업이 발달하게 되었다고 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김일성이 보통강을 옥토, 살기 좋은 땅으로 만들게 하였다고 선전(宣傳:propaganda)하며, 보통강구역에 기념탑이 건설되었다. 보통강 근처에는 보통강유원지가 있어서 시민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역사[편집]

고대 및 삼국시대[편집]

평양의 영명사(永明寺)는 고구려 시대에 세워진 유서 깊은 절이다. 사진은 일제 강점기때의 것
동명왕릉 근처에 있는 정릉사1
동명왕릉 근처에 있는 정릉사2

평양은 고조선의 수도인 왕검성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기원전 108년한나라는 고조선의 옛 영토에 한사군을 세웠는데 현재의 평양 지역에는 낙랑군을 세웠다.

313년 고구려(高句麗)는 낙랑군을 축출시켜 자국의 영토로 편입시켰고, 427년 장수왕(長壽王)이 이 곳으로 천도(遷都)해 평양은 고구려의 수도가 되었다. 668년 신라(新羅)와 당나라(唐) 연합군에 의해 고구려가 멸망되자, 당나라는 이 곳에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를 두어 전체 한반도에 대한 지배를 획책했으나, 신라의 저항으로 안동도호부는 얼마 되지 않아 요동(遼東)으로 철수했다. 그러나 남북국 시대의 평양은 신라와 발해(勃海) 양국의 변경(邊境)으로 남겨졌다.

고려시대[편집]

고려시대(高麗)에는 서경(西京)으로 불려 중요시되어, 황폐해진 평양을 부흥시켰다. 947년 고려 정종(定宗)은 도참설에 따라 서경성(西京城)을 쌓고 천도하려 하였으나 귀족들의 불만과 백성들의 반발로 실현되지 못했고, 1136년에는 고려 인종(仁宗)에게 묘청(妙淸), 정지상(鄭知常), 백수한(白壽翰) 등이 서경천도론을 건의하여 추진되었으나, 김부식(金富軾)을 중심으로 한 문벌 귀족들의 반발과 민심의 이탈로 인종이 중지를 명함으로써 좌절되었다.

고려 말기 신돈(辛旽)은 공민왕(恭愍王)에게 평양으로 수도를 옮길 것을 건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조선시대 및 근대[편집]

조선시대(朝鮮時代)에도 평양은 조선의 주요 도시 중 하나이자, 평안도(平安道) 감영 소재지로서 관서지방의 행정 중심지였다.

1871년 제너럴 셔먼 호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으며, 1894년 청일전쟁(淸日戰爭) 때는 청군(淸軍)과 일본군 사이의 격전지가 되어 큰 피해를 입었다. 1896(건양 1)년 평안도가 남북으로 분할되자 평안남도에 소속되었다.

구한말기에는 기독교가 크게 확산되었는데, 1901년부터 평양에서는 평양신학교라는 장로교 신학교가 문을 열었고, 최초의 장로교 목사들을 배출하였다. 평양을 비롯한 평안도는 오랜기간동안 지역차별에 영향을 받은 것들이 적지않게 있어서 지역 향반(향리)와 일반 평민의 삶은 차이가 크게 없었다. 이 때문에 평양을 비롯한 평안도에서는 신분보다 능력을 중시하는 평민문화 및 상업문화가 일찍이 발달하였고, 기독교 신자가 상당히 많이 거주했었다.[3]

일제 강점기[편집]

일제 강점기의 평양

1913년 조선총독부는 평양을 부(府)로 지정했으며[4], 1914년 평양부의 영역을 시가지 일대로 축소시키고, 교외 지역을 대동군으로 분리하였다. 1929년 대동군 대동강면, 서천면, 추을미면을 편입하여 영역이 확장되었다.

만보산 사건(萬寶山事件)의 여파로 평양에서 1931년 7월 5일6일에 일어난 반중(反中)·반화교(反華僑) 폭동은 극심해, 중국인 수백 명이 사망, 부상 및 실종되었다[5].

현대의 평양[편집]

선전포스터

광복 후 38선 이북은 소련군정(蘇聯軍政)이 들어섰다. 1946년 9월에는 북부 지역의 실질적인 정부인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평양시는 평안남도에서 분리되어 중구역, 동구역, 서구역, 남구역, 북구역의 5개 구역을 포함하는 특별시로 승격되었다.

한국전쟁 당시인 1950년 10월 9일, 김일성의 주요 부대정부, 기관 등이 평양에서 모두 철수하였고, 10월 12일 김일성도 덕천군으로 도망하였다. 10월 19일 오전 대한민국 국군은 평양을 탈환하였고, 10월 30일이승만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였다. 한편, 김일성은 덕천에서 철수하여 희천을 거쳐 임시 수도인 강계 근처로 도망쳤으나, 11월 26일중공군의 개입으로 12월 2일 UN군이, 12월 4일에 국군이 철수하자 12월 6일에 평양은 공산세력의 수중에 다시 들어가게 되었다.

1952년 행정 구역 체계를 기존의 4단계에서 3단계로 개편하면서 직할시로 변경되었고, 1956년에 만경대구역과 서성구역을 신설하였으며, 1967년부터[출처 필요] 본평양(本平壤), 서평양(西平壤), 동평양(東平壤)으로 나누고, 1972년에는 임시수도가 아닌 공식 수도가 되었다. 2006년 19개 구역 4개 군으로 나뉘어 있었다.

한편 평양은 한국 전쟁미국의 폭격으로 공공건물과 공장건물들이 많이 파괴되었다. 소비에트 연방으로부터 도입된 조립식건축기법과 시멘트가공공업의 발달로 동평양과 중구엔 5층 내지 15층짜리 고층 아파트가 건설되었으며, 천리마(千里馬)거리와 창광거리, 역전(驛前)거리를 비롯한 큰 도로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2010년 2월 말 들어 평양의 행정 구역 면적이 3분의 2 이하로 축소되었으며, 평양에 속했던 강남군, 중화군, 상원군승호구역황해북도로 편입되었으며 대신 천리마군이 평양으로 편입되었다는 설이 있었는데,[6] 2011년 2월, 조선중앙연감(朝鮮中央年鑑) 2010년판을 참고한 통일부의 《2011년판 북한 권력기구도 및 주요인물, 인명집》 발간에 의해 최종 확인되었다.[1] 그러나 강남군의 경우 2012년 다시 평양직할시에 편입된 것으로 확인되었다.[7]

행정 구역[편집]

평양직할시는 2011년 현재 18개 구역과 1개 군으로 이루어져 있다.

구역[편집]

[편집]

기후[편집]

평양은 냉대 동계 소우 기후(쾨펜의 기후 구분 Dwa)에 속하며, 겨울에는 날씨가 매우 춥다. 연강수량 939.8mm로 한반도에서는 소우지역에 속하지만, 강수의 70% 이상이 여름철에 집중되어 내린다.

평양의 기후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출전: 세계 기상 기구 [8]

산업[편집]

평양 일대는 일제 강점기 무렵부터 이른바 서선공업지대(西鮮工業地帶)의 중심지 역할을 해 왔다. 평양직할시는 정권 수립 후 3.26전선공장대동강맥주공장을 비롯해, 선교구역편직물공장, 평양방직공장, 평양기계공업공장 등의 여러 공장들과 평양주택사업소백두산건설사업소 등의 주택, 건축기업소가 세워졌다. 이 곳은 지금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공업중심지로 사리원시송림시를 합쳐 「평양공업지구」라고 부른다.

발전소평양화력발전소동평양발전소가 있다. 이 발전소에서 나오는 폐열과 온수로 평양전역 가정의 난방을공급한다. 제철소송림제철소가 있다[출처 필요]. 송림제철소는 김책시김책제철소 다음가는 대규모 제철소이다. 이 제철소에서 평안도지역의 철강제를 공급한다.

3.26전선공장은 평양시 평천구역에 자리잡고 있으며, 현대적인 설비와 제품의 질이 좋은 것으로 유명하다. 3.26전선공장은 김정일의 현지지도를 받았다.

기타 평양의 공장으로는 평양룡성담배공장, 대동강 맥주, 대동강텔레비전수상기공장, 평양화장품공장, 평양선교방직공장, 평양아동식료품공장, 교육도서인쇄공장, 평양종합인쇄공장, 평양자전거공장, 평양기계공업공장 등이 있다.

유적지[편집]

평양은 고구려의 도읍지였으며, 단군왕검이 도읍한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평양 주변에는 수천 년간 성을 쌓은 흔적을 비롯하여 낙랑, 고구려의 고분군과 선사시대의 고인돌군(群) 등 큰 규모의 무덤이 분포한다.

12.4 평양 철수[편집]

1950년 9월 28일에 대한민국이 서울을 수복(收復)하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수뇌부와 주요 기관, 단체, 부대 등을 평양에서 후퇴시킬 준비를 시작하였다. 10월 1일대한민국 국군38선을 넘자 10월 9일부터 본격적인 평양 후퇴작전이 전개되었고, 10월 19일 대한민국 국군UN군이 평양을 수복하였다.[9] 평양에서 후퇴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는 강계를 임시 수도로 정하였다. 1950년 10월 25일 1차 공세를 시작한 중공군11월 26일부터 본격적 공격을 개시하였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12월 6일평양으로 재입성하였다.

공공시설[편집]

교양기관, 공산주의 사상교육 기관[편집]

김일성 광장과 주체사상탑이 보인다.

극장 및 예술시설[편집]

  • 평양대극장 : 영광거리와 승리거리의 교차점에 있다. 혁명가극 공연이 주로 이루어진다.
  • 만수대예술극장 : 외벽이 벽화와 부조로 장식되어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가장 크고 현대적인 극장이다.
  • 동평양대극장 : 문서거리 대동강변에 있는 극장으로 음악공연이 주로 열린다. 세계적인 실내장식과 시설을 갖추고 있다.
  • 모란봉극장 : 일제강점기에 지어졌다. 1948년 남북련석회의가 열렸다.
  • 봉화예술극장
  • 평양교예극장 : 광복거리에 있다. 평양 교예단의 전용극장으로 공중교예, 동물교예등 다양한 교예공연이 이루어진다.
  • 인민군교예극장
  • 청년공원 야외극장
  • 조선예술영화촬영소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영화 중 거의 대부분이 제작되는 곳이다. 형제산구역에 있다. 백두산밀영, 중국거리, 일본거리, 서울거리 등 다양한 세트장이 있다.
  • 만수대창작사 : 평천구역에 있다. 공훈예술가들이 독자적 창작실에서 작업하는 곳이다. 이 창작물들을 구입할 수도 있다. 신용카드 결제가 가능한 곳이다.
  • 평양국제영화회관 : 국제영화제가 개최되는 곳이다.
  • 락원영화관
  • 개선영화관

체육시설[편집]

  • 만경대 종합 체육 시설
태권도전당
바드민톤경기관
수영경기관
력기경기관
롱구경기관
배구경기관
빙상관
메아리 사격관
중경기관
경경기관
탁구경기관
송구경기관
평양골프연습장
서산축구경기장

스포츠[편집]

4.25체육단, 평양시체육단 (두 팀 모두 최상급축구련맹전 소속)을 비롯한 여러 체육단이 평양을 본거지로 하고 있으며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는 축구이다.

언론기관[편집]

교통[편집]

평양시는 철도교통과 수송전선의 중심지로서, 평의선, 평부선(둘 다 본래의 경의선[京義線]), 평원선(平元線)이 지나며, 평양-개성고속도로, 청년영웅도로, 평양-순안고속도로, 평양-원산고속도로가 지난다. 청년영웅도로는 평양시와 남포시를 연결하는 고속도로로서, 10차선으로 매우 넓다.

항공 교통[편집]

평양 순안 국제공항(順安國際公港 : 평양비행장)과 미림비행장이 있다. 국제선은 순안공항에서만 이용할 수 있는데, 순안공항은 고려항공의 허브공항이다.

도로 교통[편집]

간선 도로[편집]

고속도로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평양-남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이 고속도로를 "청년영웅도로"라고 부르고 있다. 1998년에 완공되었다.
  • 평양-원산
  • 개성-평양-묘향산 고속도로
평양-개성고속도로를 시작하는 곳에 조국통일3대헌장기념탑이 세워져 있고, 평양-묘향산고속도로는 김정일의 지시로 1994년 10월 10일에 완공되었다.

주요 도로[편집]

  • 창광거리
  • 천리마거리
  • 청년거리
  • 통일거리
  • 해방산거리(구 서기로)

.

시내버스[편집]

철도 교통[편집]

간선 철도[편집]

철도 시설로는 경의선, 평남선, 평원선(平元線)이 있다. 평양의 철도역으로는 평양역, 서평양역, 대동강역, 보통강역 등이 있다.

지하철[편집]

평양의 지하철은 서울특별시보다 1년 이른 1973년에 개통되었으며, 2개 노선이다. 평양의 지하철은 전시(戰時)에는 방공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땅 속 깊이 건설되었다.

노면 전차[편집]

묘역 및 사적지[편집]

묘역[편집]

평양의 묘역은 항일 유격대원과 조선민주주의공화국 수립에 이바지한 사람들 위주로 조성되어 있다.

  • 혁명렬사릉 : 대성산(大聖山)에 있다. 1920~30년대 김일성과 함께 만주지역에서 이른바 항일유격대 활동을 했다는 지휘관급 132명의 묘역이 있다. 반신상과 분묘, 비석이 하나씩 놓여있다.
  • 애국렬사릉 : 형제산구역 산미동에 있다. '조선의 공산주의 사회 건설에 기여했다'고 평가받는 인사 650여명이 있으며, 계속 늘어나고 있다. 돌사진과 분묘, 비석이 하나씩 놓여있다.
  • 월북 및 납북인사들의 묘 : 룡성구역 룡흥 1동에 있다.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에서 활동했거나 6 .25 전쟁때 서울에서 후퇴하면서 강제 납치하여 북송한 대한민국 인사 62명의 묘역이 있다. 고려대학교 초대 총장 현상윤, 국방경비대 총사령관 송호성, 초대 국회의원 조헌영, 정인보 등 명망있는 인사들의 묘역이 있다. 돌사진과 분묘, 비석이 하나씩 놓여있다.

사적지[편집]

평양의 사적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어느 사적지와 마찬가지로 김일성과 관계깊은 장소이다. 이러한 장소는 김일성 우상화 및 김일성주의의 목적으로 이용되며, 정권에 의해 성역화되어 철저한 관리가 이루어지고 있다.

  • 만경대고향집 : 김일성의 생가이다. 초가집과 당시 농기구가 복원ㆍ보존되어 있다.
  • 칠골사적지 : 김일성의 어머니인 강반석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 창덕학교 : 김일성이 다닌 학교이다. 1925년 봄부터 1925년 1월 까지 이 학교에 다녔다.
  • 당창건사적관 : 김일성이 해방 직후 집무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의 건물이었다.
  • 전승혁명사적관
  • 쑥섬사적지 : 1948년 5월 2일, 남북연석회의때 김구 선생과 김일성이 회담한 장소이다.

교육[편집]

대학[편집]

  • 광복 이전
김책공업종합대학 자리에는 합성숭실대학교(현 숭실대학교)가 있었으며, 현 김일성종합대학 및 평양의학대학 자리에는 평양의학전문학교가 있었다.
  • 현재
평양에는 다른 지역보다 대학이 밀집되어 있다. 특수목적중학교로서의 '학원'도 다양하게 설치되어 있다. 학원졸업생은 같은 계열의 대학으로 진학할 때에 우선선발 특권이 주어진다.
  • 김일성종합대학 : 이른바 '주체교육의 최고전당'이다. 줄여서 '김대'라고 부른다.
  • 김책공업종합대학 : 이른바 '과학기술교육의 최고전당'이다. 줄여서 '종합대학'이라고 부른다.
  • 김형직사범대학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사범교육의 최고위를 점하고 있는 사범대학이다. 대학의 교원을 양성하는 중추기능을 담당하고 있기도 하다.
  • 김철주사범대학 : 평양지역의 중등교원을 양성하는 대학이다.
  • 국제관계대학 : 외교 관료를 위한 외교관 양성교육기관이다.
  • 인민경제대학 : 경제관리 핵심간부들을 양성 및 재교육시키는 노동당 산하의 최고 교육기관이다.
  • 금성정치대학 : 근로단체간부를 양성하는 대학이다. 제대군인과 산업현장의 우수노동자 출신이 입학대상이다.

주요 유치원 및 초ㆍ중등학교[편집]

광복 전 평양의 중등 교육기관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었다.

  • 공립 남학교 : 평양제일공립중학교, 평양제2공립중학교, 평양제3공립중학교
  • 사립 남학교 : 광성(光成)중학교
  • 공립 여학교 : 평양공립고등여학교, 평양서문(西門)공립고등여학교(西門高女), 남산고등여학교
  • 실업(實業)학교 : 평양공립상업학교, 평양제일공립공업학교, 평양제2공립공업학교, 평양공립농업학교

현재의 주요 유치원 및 초, 중등학교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능라소학교
  • 창광유치원
  • 강반석탁아소
  • 김정숙탁아소

상업시설[편집]

숙박시설[편집]

  • 보통강호텔
  • 봉화산호텔
  • 서평양호텔
  • 과학자호텔

유명식당[편집]

옥류관(玉流館)
  • 옥류관
  • 평남면옥
  • 평양면옥
  • 청류관
  • 칠성각
  • 선교각
  • 모란각
  • 평천각
  • 향만루식당
  • 만경대천석식당
  • 민족식당
  • 평양단고기집
  • 평양오리고기전문식당
  • 안산관
  • 목란식당

백화점[편집]

  • 락원백화점
  • 평양백화점
  • 동평양백화점
  • 아동백화점

자매결연도시[편집]

이북5도위원회의 평양시[편집]

평양시(平壤市)는 평안남도의 도청 소재지이다. 면적은 270.3㎢이며, 시청 소재지는 산수동이다. 91개 법정동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북5도위원회는 명예동장 13명을 임명하고 있다.[11]

주석[편집]

  1. 외화난에 北비자금 조직 재분리…평양시 축소, 조선일보, 2011년 2월 14일자. 통일부의 《2011년판 북한 권력기구도 및 주요인물, 인명집》을 재인용
  2. 만물상 - 북한 인구 센서스, 조선일보, 2009년 2월 15일.
  3. 한국사 시민강좌: 47집(2010년) - 특집,대표적 독립운동가 12인》 장규식 저. p135~148
  4. 이이화 (2004). 《한국사이야기22. 빼앗긴 들에 부는 근대화바람》. 한길사, 27쪽
  5. 전봉관의 옛날 잡지를 보러가다 32 - 평양 중국인 배척 폭동 사건(신동아 2008년 2월호)
  6. 감당 못할 경제난에 ‘혁명의 수도’가 반토막? (자유북한방송)
  7. 박영석. "<그래픽> 北 평양시 행정구역 일부 개편", 《연합뉴스》, 2012년 2월 29일 작성.
  8. World Weather Information Service - Pyongyang.
  9. 다시보는6·25 <39> 평양진격과 김일성 생포작전
  10. (영어) First China-DPRK sister cities meeting held in Pyongyang
  11. 이북5도위원회 - 평안남도 평양시 기구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