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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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군
창립일 1939. 3. 1.(한국독립당 당군)
1940. 9. 17.(한국 광복군)
1948. 8. 15.(대한민국 국군)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편제 상비군(현역), 예비군(현역 출신과 보충역)과 제2국민역으로 구성
육군, 해군, 공군, 예비군, 이외 행정안전부 예하 대한민국 민방위대 별도 편성
충원방식 징병제
상비군 63만 9,000명 (2014년)
예비군 290만 명
지휘체계
본부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통수권자 박근혜
국방장관 김관진
군사비
예산 34조 3,453억 (2013년 기준)
GDP 대비 2.7% (2014)
정부재정 대비 14.3% (2014)
기타 대한민국의 주한미군 분담금: 8,361억 (2012년. 전액 원화 부담)
방위산업
함께 읽기
웹사이트 http://www.mnd.go.kr/

대한민국 국군(大韓民國 國軍, 영어: Republic of Korea Armed Forces, ROK Armed Forces)은 대한민국군대이다. 1948년에 창설되었으며, 육군·해군·공군으로 구성되어 있다.

창설 후 한국 전쟁을 거쳐 1964년에는 베트남 전쟁에 파병, 1973년 철수 때까지 20만 명이 참전하였다. 그 외에도 1991년 걸프전, 1993년 소말리아, 1999년 동티모르에 세계평화유지를 위해 파병되었다. 창설 당시 국군의 모든 지휘권은 대한민국 정부에 있었으나 한국 전쟁당시에 이승만 대통령이 유엔군 사령관 더글라스 맥아더에게 국군의 모든 작전지휘권을 이양하고, 1978년 7월 한미연합사가 창설되면서 유엔군 사령부에 있었던 국군의 모든 작전지휘권(작전통제권)이 한미연합사로 이양되었다. 1992년에 지상군 사령부에 대한 지휘권이, 1994년에 평시작전통제권이 한국군에게 환수되었고, 2015년 12월 전시작전통제권이 한국군에 환수될 예정이다.

병력[편집]

대한민국 육군은 병력 약 520,000 명, 전차 약 2,300 대, 장갑차 약 2,500 대, 견인포/다연장 로켓 약 5,200 문, 유도무기 약 30 기, 헬기 약 60 기를 보유하고 있다.[1]

대한민국 해군(예하 해병대 포함)은 병력 약 68,000명, 잠수함 약 20 척, 전투함정 약 140 척, 지원함정 20 척, 헬기/해상초계기 약 50 대를 보유하고 있다.[2]

대한민국 공군은 병력 약 65,000명, 전술기 460 대, 감시통제기 약 40 대, 공중기동기 약 40 대, 훈련기 180 대, 헬기 약 40 대를 보유하고 있다.[3]

2012년 1월 육군에는 현재 39개 사단(전방 기계화보병사단 6개[4], 그 외 상비사단 16개, 향토 방위 12개, 동원 예비군 5개)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외 해군 예하 해병대 2개 사단이 있다. 2020년까지 1군사령부3군사령부지상작전사령부로 통합하며, 5개의 지역군단(수도방위사령부도 지역군단으로 함)과 2개의 기동군단으로 개편하고, 향토사단 자체는 존치하며, 동원사단은 4개로 줄이는 중이다.

지휘권[편집]

지휘, 통수권[편집]

지휘 권한[편집]

  • 대한민국대통령헌법과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대한민국 국군을 통수한다.
  • 국방부장관은 대통령의 명을 받아 군사에 관한 사항을 장리하고 합동참모의장과 각군의 참모총장을 지휘·감독한다.
  • 합동참모의장은 군령에 관하여 국방부장관을 보좌하며, 국방부장관의 명을 받아 전투를 주임무로 하는 각군의 작전부대를 작전지휘·감독하고, 합동작전의 수행을 위하여 설치된 합동부대를 지휘·감독한다.
  • 육군에 육군참모총장, 해군에 해군참모총장, 공군에 공군참모총장을 두며, 각군 참모총장은 국방부장관의 명을 받아 각 군을 지휘·감독하나, 전투를 주임무로 하는 작전부대에 대한 작전지휘·감독은 제외된다.
  • 해병대에 해병대사령관을 두며, 해병대사령관은 해군참모총장의 명을 받아 해병대를 지휘·감독한다.

군사 조직[편집]

역사[편집]

국군의 기원[편집]

대한민국 국군의 기원은 1945년 10월 편성된 미군정의 통위부 소속 국방경비대에 기원을 둔다. 그러나 다른 한 축으로는 일제 강점기의 의병과 1940년 9월 17일 중국 쓰촨성 충칭에서 창설된 한국 광복군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한국 광복군에 뿌리를 둘 경우 1939년 3월 1일에 결성된 한국독립당의 당군이 사실상 대한민국 국군의 기원이 된다.

그러나 사실상 광복군은 중화민국 국민당 군의 지휘를 받는 수준이었으며, 1942년부터 귀순공작을 펴서 일본군만주군 출신을 받아들였으며, 미군과의 OSS합동훈련을 기획했고, 귀국 후에는 구 일본군 인맥과 만주군 인맥들이 주축이 되어 국방경비대를 결성, 현대 국군의 모태가 되었다.

일제강점기 시대의 독립군대한민국 임시정부 산하의 광복군을 기원으로 삼기도 하지만, 실질적인 대한민국 육군의 시작은 남조선국방경비대미군정이 설립한 군사영어학교가 모태이다. 국방부는 1948년 12월 15일, 8명의 중령(백선엽, 이용무, 양국진, 최덕신, 김백일, 유재흥, 신학진, 박동균)을 대령으로 특진발령하였다.[7]

탄생[편집]

1945년 8월 15일 해방과 더불어 움트기 시작했다. 과거 일본군·만주국군·중국군 등에 소속하였던 군사 경험자들은 조국의 광복과 때를 같이하여 군사단체를 조직했다.

해병대(1945년 8월 23일)·국군준비대·육해공군 동지회·학병동맹·해방병단(海防兵團)(1945년 11월 11일) 등이 결성되었으나, 1945년 11월 13일 미 군정 법령 28호로 아놀드 군정장관 지휘하에 국방사령부가 설치되자 앞서 발족한 여러 군사단체들이 서서히 하나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이 국방사령부의 설치는 국군 창설의 최초의 시도로서 이때부터 비로소 대한민국의 국방을 위한 조직·편성·훈련이 착수되었다. 최초로 국군의 기간장교가 육성되기 시작한 것은 1945년 12월 5일미군정청(美軍政廳)이 군사영어학교를 설치하여 11명의 요원을 배출하는 때부터였다.

1946년 1월 15일에는 불과 1개 대대의 병력으로 남조선 경비대(초대 대장 마셜 미 육군중령)가 창설되었으며, 1946년 3월 29일 공포된 미 군정법령 제64호에 따라 국방사령부가 국방부로, 1946년 6월 15일에는 군정법령 86호에 따라 국방부는 다시 통위부(統衛部)로 개칭되었다(초대 통위부 부장 유동열, 초대총사령관 송호성).

이 때부터 통위부 밑에 국방경비대와 해안경비대가 창설되었으니, 1946년 1월 15일자로 발족했던 남조선 경비대는 국방경비대로, 그리고 1945년 11월 11일 발족했던 해방병단은 해안경비대로 각각 발전하였다. 그해 12월 1일에는 현행 계급제도가 채택되었으며, 1948년 4월 1일에는 국방경비대 안에 항공부대가 창설되었다.

1948년 7월 17일에 대한민국 헌법과 정부조직법이 공포됨에 따라 초대 국방장관에 이범석 장군이 임명되었고, 8월 29일 국방경비대와 해안경비대는 국군으로 편입되어 9월 5일 마침내 육군(초대 참모총장 이응준) 및 해군(초대 참모총장 손원일)이 정식으로 발족하게 되었다. 이후 육군에서 공군과 해군이 나뉘고, 해군에서 해병대가 창설 되면서 현재의 구조를 갖추게 되었다.

한편 1948년 4월 1일 국방경비대 안에 창설되었던 항공부대는 9월 13일 육군 항공사령부로 승격하고 1949년 10월 1일 육군으로부터 분리되어 공군(초대 참모총장 김정렬)으로 정식 발족함으로써 비로소 3군 체제의 발전적 기반을 마련하였다.

이보다 앞서 1949년 4월 15일 진해에서 해병대(초대 사령관 신현준)가 창설되었다.

한국 전쟁[편집]

한국전쟁 초기 대한민국 육군은 동부전선의 이성가, 김종오 대령이 지휘하는 대한민국 8보병사단, 대한민국 6보병사단이 선전을 했으나, 서부전선의 경우 고전을 치러야 했다. 옹진반도를 방어하던 대한민국 육군참모본부 직할 17연대(백인엽 지휘)는 개전 직후 철수했으며, 청단-개성-문산을 방어하던 1사단(백선엽 지휘)은 동년 동월 27일까지 효과적으로 방어를 하였으나, 우측의 7사단이 괴멸하여, 서울이 점령됨에 따라 한강 이남으로 철수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1사단도 전투력의 60%이상을 상실하였으나 건제를 유지하였다. 의정부-포천축선을 방어하던 7사단의 경우 의정부지구 1연대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포천축선의 9연대가 괴멸되고 이에 축차투입된 수도경비사령부(현재 육군 3군사령부 예하수도사단) 3연대, 2사단, 5사단도 붕괴됨으로써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게 된다.

이에 중국 국부군 2성 장군 출신의 김홍일 장군이 시흥지구 전투사령부를 조직하여 혼성 사단을 조직 한강선을 7일간 방어함으로써 미군이 전개할 시간을 얻었다. 50년 7월 5일과 7월 24일에 단행된 사단 재편성을 거쳐 해체되지 않고 유지되는 사단은 1사단, 6사단, 8사단 이상 3개 사단이며 3사단은 7월 5일부로 해체되었으나, 예하 22, 23연대의 건제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고 7월 24일부 다시 사단이 구성된다. 상기 4개사단 (1, 3, 6, 8사단)을 제외한 나머지 사단 (2, 5, 7사단)은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다가 후에 재창설된다. 수도경비사령부의 경우 7월 5일부 수도사단으로 개칭되었다. 초기 창군 과정에서 장교들이 고속 승진을 거듭한 끝에 장군이라고 해도 김홍일, 김석원, 이응준 장군을 제외한 나머지 장군들이 20대 후반 ~ 30대 중반이었던 관계로 지휘 경험과 대규모 군대 운영 및 행정 경험이 부족하여 전쟁 기간 내내 지휘력, 전투력 부족 문제로 시달려야 했다. 그나마 위의 3 장군도 50년 9월 이후는 전쟁 일선에서 물러났다.

사단급 제대가 다시 10개로 늘어난 후에도 군단 편성이 늦어진 점이나 편성된 군단도 다른 나라 "군단" 급 부대에 비하면 보병사단 3개를 모아둔 것에 불과할 뿐, 군단으로서 전투력을 가지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실제로 이들 제1, 2군단은 모두 해체되는 아픔을 겪었고, 현재의 제1군단은 1952년에 지리산 공비 토벌전을 위해 임시 편성인 기동 부대 성향의 백야전사령부를 모태로 새로 창설한 것이다) 대체적으로 국군은 투지는 강했으나, 훈련의 양과 질, 장교의 지휘 능력, 보유 장비 등에서 부족함이 많았다. 백선엽은 회고록에서 "1개 보병사단 전체를 105mm 1개 포병대대가 지원하고, 연대는 4.2인치 박격포 중대가 지원하는" 상황이었다고 술회했다. 당시 미군 보병사단은 1개 155mm 대대와 3개 105mm 대대로 사단 포병을 구성하고 있었다.

1951년 이후 미국이나 대한민국 모두 국군의 군사력 증강을 위하여 노력을 기울였다. 미국도 NATO의 창설과 냉전 분위기 등으로 인해 대한민국에서 병력을 빼야 하는 상황이었다. 백선엽의 회고록에 따르면 1951년까지 미국과 이승만 대통령은 증강에는 동의했지만, 그 방식에서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이승만대통령은 기존 10개 사단 외에 10개 사단 추가 증설을 위한 지원을 요구했고, 미국은 기존 사단들도 전투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데 무슨 10개 사단 증설이냐면서 기존 사단들의 전투력 배양이 먼저라고 맞받아쳤다. 즉, 양이냐, 질이냐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전자를, 미국은 후자를 주장한 것이다.

이 와중에 현리 전투에서 대한민국 3군단이 맥없이 패배하여 수십Km를 후퇴했고, 이웃한 미군 사단들이 급히 수습에 나서야 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전투에서 국군이 보여준 무기력한 모습은 결국 미국 8 군 사령부와 유엔군 사령부의 중대 결단을 낳게 했다. 당시 대한민국 육군참모본부는 최전방에 전방지휘소를 두고 국군 군단에 대해 어느 정도의 작전지휘를 하고 있었다. 1950년 7월 협정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미국에 국군의 전체 지휘권을 넘겨주었지만, 미군은 적당히 융통성을 발휘해 육본의 독자 지휘를 어느 정도 인정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전방지휘소 뿐만 아니라 제3군단마저 폐지하고 모든 국군 사단을 미군 군단에 배속시키게 된다. 군단급 이상 상급 부대가 모두 폐지된 것은 국군에게는 치욕이었으나, 이승만도 미군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전쟁 중 국군의 1차 증강은 미군의 주장에 따라 기존 사단들의 전투력 배양과 장교에 대한 교육 과정 강화를 우선 사업으로 시작하게 된다.

휴전 후 병력증강과 M4 셔먼, M47 패튼 전차 도입 등 장비증강이 진행되었고, 1954년까지 제1, 2군 사령부와 군수기지사령부·군관구사령부, 10개 예비사단이 창설되었다.

베트남 전쟁 참전[편집]

1963년부터 미국베트남 전쟁에 파견, 지원할 군사적 협력을 세계 각국에 요청하였고 대한민국 역시 미국의 파월 지원 요청에 응하여 비둘기부대를 비롯한 건설공병대대 파견을 시작으로 1972년까지 약 32만명의 국군을 파견하게 된다. 32만명 파견 중 전사 5천명, 부상 1만 9천의 사상자가 나오기도 했다.

국군 발전사상 베트남 전쟁 파병은 특기할 만한 일이다. 1964년 9월 11일 1300명으로 구성된 제101 이동외과 병원과 10명으로 구성된 태권도 교관단의 파견, 1965년 3월 16일 비둘기 부대(1개 공병대대, 해병 공병중대, 경비대대, 수송중대)가 파견된 이후 계속 증파되어 10월 9일에는 청룡부대를, 10월 22일엔 맹호부대를, 1966년 4월 그리고 8월 30일에 백마부대가 파병됨으로써 무려 약 5만명(군단 규모)을 헤아리게 되었다.

국군의 베트남 파병에 대해서는 그 때마다 남베트남 정부의 요청과 대한민국 국회의 승인이 있었으나 그 심의과정에서는 야당인사인 윤보선, 장준하 등의 반대를 시작으로, 파병 찬·반 양론이 엇갈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파월 국군은 극복할 수 있는 문제점을 극복했을 뿐만 아니라 다대한 전공과 업적을 쌓았으며, 베트남 땅에 국군에 대한 많은 신화를 남겨 놓게 되었다. 베트남 파병의 댓가로 미국으로부터 받은 자금과 회수한 무기로 군사무기 개량과 경부고속도로 건설, 경제 개발 사업 자금 등으로 활용되었다. 베트남전이 서서히 막을 내리던 1973년 3월 파월국군은 완전히 철수하였다.

그 외 해외 파병[편집]

국방비[편집]

  • 국방비는 2014년 기준 31조 5,627억 원이다. GDP 대비 2.62%, 정부재정대비 14.7%이다. 군사 강국들에 비해 국방비가 매우 적다는 여론이 커지고 있다.[8]

부대별 운영비용[편집]

[9] 평균 경상운영비에는 인건비, 급식 및 피복, 국방정보화, 장병보건복지향상, 군수지원 및 협력, 교육훈련, 군사시설운영, 예비전력관리, 기타 행정 경비 등이 포함되어 있다.

대한민국이 분담하는 주한미군 방위비[편집]

  • 한편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은 2010년 7,904억 원이었다.
  • 한미 양국은 2008년 12월 2009년 이후 방위비 분담금 결정에 적용할 새로운 협정에 합의하였고, 이 협정은 2009년 3월 국회 비준 동의를 받아 발효되었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5년을 유효기간으로 하는 이 협정은 연도별 방위비 분담금을 전전년도 소비자 물가지수를 반영하여 인상하되 최대 4%를 넘지 않기로 하였다. 이에 따라 2009년 7,600억 원(2007년 물가 상승률 2.5% 적용), 2010년 7,904억 원(2008년 물가 상승률이 4.7%이나 상한선인 4% 적용)을 부담하게 되었다.
  • 2000년도 기준 18억 9,500만 달러로, 42%이다. 독일의 경우 57억 6,700만 달러 (21%), 일본의 경우 63억 3,200만 달러 (79%)이다.[13]
  • 매년 대한민국의 분담 비율이 증가되고 있다. 1987년 제 19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의(SCM)이후 1990년 3,000만 달러, 1991년 4,000만 달러, 1992년 5,000만 달러였다. 이에 따라 대한민국의 군사비를 GNP의 6%로 책정하였다.
  • 방위비 분담금 지원 항목 (2013년 기준)
  1. 인건비 : 주한미군이 고용한 한국인 고용원에 대한 인건비
  2. 군사건설 : 주한미군 용 시설 건설
  3. 군수지원 : 주한미군 탄약저장, 항공기 정비 등 용역 및 물자 지원

미국이 분담하는 주한미군 방위비[편집]

해외 파병[편집]

국제 연합 평화유지군으로 참가중인 인원은 2010년 11월 기준 군인 83,118명, 경찰 14,037명, 그 외 관련 직종 전문가 2,353명. 총 99,508명이다.[15][16]

대한민국 국군은 2014년 3월 기준으로 17개 지역에 1,195명을 파병하고 있는데, 이중 국제 연합 평화유지군으로는 640명, 다국적군으로는 555명을 파병하고 있다. 그리고 국제 안보 지원군에 참가중인 인원은 총 130,930명이고, 그중에 대한민국은 총 246명을 파견하고 있다.

현재[편집]

부대 명칭 기간 참가 전쟁 또는 임무
국제 평화 지원단 "온누리" 2010년 7월 1일 ~ 현재 아직 없음
동명 부대 2007년 2월 ~ 현재 국제 연합 레바논 임시군 (UNIFIL)
오쉬노 부대 2010년 7월 ~ 현재 아프가니스탄 파병
청해 부대 2009년 3월 13일 ~ 현재 아프리카의 뿔
아크 부대 2011년 1월 ~ 현재 아랍에미리트 군사 훈련 협력
한빛 부대 2013년 3월 1일 ~ 현재 국제 연합 남수단 임무단 (UNMISS)
아라우 부대 2013년 12월 27일 ~ 2014년 12월 31일 필리핀 태풍피해 재건

이전[편집]

부대 명칭 기간 참가 전쟁 또는 임무
주월 한국군 사령부 1965년 9월 25일 ~ 1973년 7월 1일 베트남 전쟁
상록수 부대 1993년 6월 29일 ~ 1994년 1월 15일 UNSOM II
1995년 10월 ~ 1997년 2월 UNAVEM III
1999년 10월 ~ 2003년 10월 UNAMET
100 건설 공병단 "다산" 2003년 2월 6일 ~ 2007년 12월 아프가니스탄 파병
924 의료 지원단 "동의" 2001년 12월 18일 ~ 2007년 12월 23일
58 항공 수송단 "다이만" 2004년 8월 31일 ~ 2008년 12월 19일
해군 수송지원단"해성" 2001년 12월 18일 ~ 2003년 9월 1일
공군 수송지원단"청마" 2001년 12월 18일 ~ 2003년 12월 31일
자이툰 부대 2004년 2월 23일 ~ 2008년 12월 20일 이라크 파병
320 의료지원단 "제마"
1100 건설공병단 "서희"
단비 부대 2010년 2월 17일 ~ 2012년 12월 24일 국제 연합 아이티 안정화 임무(MINUSTAH)

조직[편집]

국방부[편집]

육군[편집]

대한민국 육군은 병력 약 520,000 명, 전차 약 2,300 대, 장갑차 약 2,500 대, 견인포/자주포/다연장 로켓 약 5,200 문, 유도무기 30 기, 헬기 60 여 기를 보유하고 있다.

해군[편집]

림팩 2006 훈련에 참가중인 DDH-976 문무대왕
항공모함 등 30여 척 함정의 계류가 가능한 부산해군작전사령부

대한민국 해군(예하 해병대 포함)은 병력 약 68,000명, 잠수함 약 10 척, 이지스함 3척을 포함한 전투함정 약 140 척, 지원함정 20 척, 헬기/해상초계기 약 60 대를 보유하고 있다.

해군은 제2연평해전에서 북한 해군의 기습적인 공격으로 인해 참수리급 고속정이 피격, 심각한 타격을 입은 뒤 기존의 참수리급을 대체하는 미사일 고속함인 윤영하급 고속함을 진수했다. 이는 2002년 서해교전 당시 침몰된 참수리 357정의 정장인 윤영하 소령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현재 12척이 건조되었다. 또한, 214급 잠수함(손원일급)을 도입, 자체적으로 건조하고 있으며 독도급 강습상륙함을 보유중이다.

차기 군함들을 비롯해 모든 군함들은 선체 전체에 광범위하게 스텔스 설계를 적용하고 레이더 반사율을 줄이기 위해 경사설계를 적용한다.

해병대[편집]

한 대한민국 해병대원이 강습 훈련을 하고 있다.

대한민국 해병대1949년 4월 15일 경상남도 진해시에서 초대 지휘관에 신현준 중령이 임명되고, 해군 장교 26명, 부사관 54명, 300명으로 창설되었다. 해군 예하의 국가 전략기동군으로서 상륙 작전을 주임무로 하며, 그 외 김포, 강화, 포항, 경주, 진해, 제주, 도서지역 등을 방어하고, 예비군 교육 및 훈련 등의 임무도 수행한다. 한국전쟁에서의 전과를 통해 "귀신 잡는 해병대"라는 별명을 얻었다. 2011년 12월 현재 2개 사단과 1개 여단을 보유하고 있고, 이외에도 연평도진해, 제주도 및 기타 여러 도서 지역들에도 해병 부대들을 주둔시키고 있다.

국방개혁 307계획에 의해 신속대응과 공중, 지상 기동작전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로 개편하기 위해 제주부대, 해병대 사령부 직할 항공단를 신설하고, 사령부 예하로 정보단과 통신단을 정식으로 편제하였다.[17]

공군[편집]

대한민국 공군의 주력기체 중 하나인 F-15K

대한민국 공군의 장비는 KF-16 (Block 52+) 134대와 F-16C/D (Block 52+) (PB형) 35여대, F-15K 60대, KF-5E/F (제공호)와 F-5E (타이거 II) 195대, F-4E 80대 (퇴역 중), T-103 러시아제 훈련기 IL-103 72대, KT-1 기본 훈련기 105대, KA-1 전선항공통제기/경공격기 20대, T-50 고등 훈련기 60대+98대 생산 확정, T-50B (블랙 이글스) 10대를 보유 중이며, TA-50 전술입문기 (LIFT) 22대를 운용 중이고 KF-16에 버금가는 다목적 공격기인 FA-50 60~120대를 도입 중에 있다.

수송기는 BAe-748 2대, 보잉 737 1대, C-130H 12대, CN-235M 20대, C-118 1대의 수송기와 기타 정찰기로 RF-4C 18대, RF-5A 5대를 보유, 운용하고 있으며, 공중 조기 경보 통제기 보잉 E-737 피스아이 4대, F-15K 60대를 운용 중이며 F-4E, KF-5E/F (제공호)와 F-5E (타이거 II)등은 지속적으로 도태되고 있어서 F-5E (타이거 II), KF-5E/F (제공호)는 FA-50 60대로 대체되고, F-4E는 F-35A로 대체된다.

현대화[편집]

  • 분대당 대전차 화기 1정씩 배치(M-72 LAW 66mm 대전차 로켓, M-3 칼 구스타프 84㎜ 무반동포, RPG-29 대전차 로켓, RPG-32 대전차 로켓)
  • 사제장비 착용 허용
  • 저격수, 정찰 저격수 양성 (저격수 학교 창설)
  • 방독면 등 화학 제독장비 최신 장비로 교체
  • 공병 장비 확충, 노후화된 공병 장비 교체
  • 트럭·지프 등 각종 차량의 80%가 수명연한(12년) 넘음, 최신 차량으로 교체
  • 자주포 증강(105mm 곡사포 전부 퇴역)
  • 무인 항공기 증강
  • 레이더 시설 확충, 노후화된 레이더 교체

논란과 비판[편집]

예비군[편집]

보수 문화[편집]

계급 체계[편집]

군인사법 제 3조는 "장군은 장성으로 장교는 영관 및 위관으로 구분하고 장성은 원수, 대장, 중장, 소장준장으로 한다. 영관은 대령, 중령소령으로, 위관은 대위, 중위소위로 한다. 준사관은 준위로 한다. 부사관원사, 상사, 중사하사로 한다. 병은 병장, 상등병, 일등병이등병으로 한다." 라고 대한민국 국군의 계급을 정의 한다.

징집병의 경우, 모병제를 시행하는 국가의 계급보다 통상 2계급이 낮다. 예컨대 국군의 하사미군상등병과 연합체계로 볼때, 유사하다. 그러나 이는 부사관의 경우이며 장교의 경우는 어떠한 국가이든 계급이 동일하다. 즉 국군의 대위는 미군대위와 동일하다.

계급 계급장
장교 (將校) 원수 (元帥)[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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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 (大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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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장 (中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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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 (少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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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장 (准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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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령 (大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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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령 (中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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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령 (少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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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위 (大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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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위 (中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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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少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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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사관 (准士官) 준위 (准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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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사관 (副士官) 원사 (元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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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 (上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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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사 (中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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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사 (下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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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 (兵)
육군
해군
공군
해병대
병장 (兵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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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병장.JPG
공군 병장.JPG
해병대 병장.JPG
상등병 (上等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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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상병.JPG
공군 상병.JPG
해병대 상병.JPG
일등병 (一等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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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일병.JPG
공군 일병.JPG
해병대 일병.JPG
이등병 (二等兵)
이병.JPG
해군 이병.JPG
공군 이병.JPG
해병대 이병.JPG

같이 보기[편집]

주석[편집]

  1. 2010년판 국방백서 <도표 3-2> "육군의 주요 조직과 보유 전력" 41쪽
  2. 2010년판 국방백서 <도표 3-3> "해군의 주요 조직과 보유 전력" 42쪽
  3. 2010년판 국방백서 <도표 3-4> "공군의 주요 조직과 보유 전력" 43쪽
  4. 수도, 8, 11, 20, 26, 30
  5. Daum 미디어다음 - 뉴스
  6. Kbs News
  7. "陸軍八中領昇進", 《동아일보》, 1948년 12월 31일 작성.
  8. http://mnd.go.kr/mndInfo/publication/policyDataBook/policyDataBook_1/index.jsp 국방부 국방정보공개 간행물 정책자료집 중 '2010 국방백서 국문판 부록'
  9. http://bemil.chosun.com/nbrd/bbs/view.html?b_bbs_id=10040&pn=1&num=65560 유용원의 군사세계 2012년 2월 1일 국방부 질의 자료
  10. 수도, 8, 11, 20, 26, 30
  11. http://kostat.go.kr/wnsearch/search.jsp통계청 통합검색 통계DB '방위비분담금현황 : 방위비 분담금 지원현황'
  12. http://mnd.go.kr/mndInfo/publication/policyDataBook/policyDataBook_1/2010year/index.jsp 국방부 국방정보공개 간행물 정책자료집 중 '2010 국방백서 국문판 전체'-제3절 주한미군의 안정적인 주둔여건 보장 71쪽'
  13. http://mnd.go.kr/mndInfo/publication/policyDataBook/policyDataBook_4/index.jsp 국방부 국방정보공개 간행물 정책자료집 중 '한미동맹과 주한미군'
  14. https://www.cato.org/pubs/pas/pa-308.pdf
  15. 2010년 국방백서 부록 296페이지
  16. www.un.org/en/peacekeeping/contributors
  17. 박영민(글) 박흥배(사진). "육군 군단, 기동 2·지역 5개로 재편 (한국어)", 《국방일보》, 2008년 11월 25일 작성. 2008년 2월 28일 확인.
  18. 원수는 국가에 대한 공적이 현저한 대장 중에서 임명하며, 국방부장관의 추천에 의하여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행한다. (군인사법 제 27조), 현재까지 대한민국 국군에는 원수로 임명된 군인은 없다.
  19. http://news.kbs.co.kr/news/NewsView.do?SEARCH_NEWS_CODE=2588466& 내년 병 월급 15% 인상…상병 10만 원 돌파. KBS 단신뉴스. 2012.12.27

바깥 고리[편집]

공식 웹사이트[편집]

관련 웹사이트[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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