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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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국군 | |
| 창립일 | 1940. 9. 17.(한국 광복군) 1948. 8. 15.(대한민국 국군) |
|---|---|
| 국적 | |
| 편제 | 상비군(현역), 예비군(현역 출신과 보충역)과 제2국민역으로 구성 육군, 해군, 공군, 예비군, 이외 행정안전부 예하 대한민국 민방위대 별도 편성 |
| 충원방식 | 징병제 |
| 상비군 | 67만 명 (2010년 11월 기준)[1] |
| 예비군 | 320만 명[2] |
| 지휘체계 | |
| 본부 |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
| 통수권자 | 박근혜 |
| 국방장관 | 김관진 |
| 군사비 | |
| 예산 | 31조 4,031억 원(2011년 기준) |
| GDP 대비 | 2.62% |
| 정부재정 대비 | 14.7% |
| 기타 | 대한민국의 주한미군 분담금: 7,904억 원(2010년. 전액 원화 부담) |
| 방위산업 | |
| 함께 읽기 | |
| 웹사이트 | http://www.mnd.go.kr/ |
대한민국 국군(大韓民國 國軍, 영어: Republic of Korea Armed Forces, ROK Armed Forces)은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이념과 체제를 수호하고 외부로부터 직접 및 간접 침략을 억제하며 국토방위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조국의 평화적인 통일을 뒷받침하며 나아가 한반도의 항구적인 독립과 안전, 그리고 국제평화의 유지에 이바지함을 그 사명으로 하는 국민의 군대이다[3]. 1948년에 창설되었으며, 육군·해군·공군으로 구성되어 있다.
창설 후 한국 전쟁을 거쳐 1964년에는 베트남 전쟁에 파병, 1973년 철수 때까지 20만 명이 참전하였다. 그 외에도 1991년 걸프전, 1993년 소말리아, 1999년 동티모르에 세계평화유지를 위해 파병되었다. 창설 당시 국군의 모든 지휘권은 대한민국 정부에 있었으나 한국 전쟁당시에 이승만 대통령이 유엔군 사령관 더글라스 맥아더에게 국군의 모든 작전지휘권을 이양하고, 1978년 7월 한미연합사가 창설되면서 유엔군 사령부에 있었던 국군의 모든 작전지휘권(작전통제권)이 한미연합사로 이양되었다. 1992년에 지상군 사령부에 대한 지휘권이, 1994년에 평시작전통제권이 한국군에게 환수되었고, 2015년 12월 전시작전통제권이 한국군에 환수될 예정이다.
목차 |
병력 [편집]
대한민국 육군은 병력 약 520,000 명, 전차 약 2,300 대, 장갑차 약 2,500 대, 견인포/다연장 로켓 약 5,200 문, 유도무기 약 30 기, 헬기 약 60 기를 보유하고 있다.[4]
대한민국 해군(예하 해병대 포함)은 병력 약 68,000명, 잠수함 약 20 척, 전투함정 약 140 척, 지원함정 20 척, 헬기/해상초계기 약 50 대를 보유하고 있다.[5]
대한민국 공군은 병력 약 65,000명, 전술기 460 대, 감시통제기 약 40 대, 공중기동기 약 40 대, 훈련기 180 대, 헬기 약 40 대를 보유하고 있다.[6]
2012년 1월 육군에는 현재 39개 사단(전방 기계화보병사단 6개[7], 그 외 상비사단 16개, 향토 방위 12개, 동원 예비군 5개)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외 해군 예하 해병대 2개 사단이 있다. 2020년까지 1군사령부와 3군사령부를 지상작전사령부로 통합하며, 5개의 지역군단(수도방위사령부도 지역군단으로 함)과 2개의 기동군단으로 개편하고, 향토사단 자체는 존치하며, 동원사단은 4개로 줄이는 중이다.
지휘권 [편집]
지휘, 통수권 [편집]
- 1950년 7월, 국군의 모든 지휘권은 유엔군 사령관에게 이양에 되었으나 1992년에 평시작전통제권 중 지상군 사령부에 대한 지휘권이, 1994년에는 나머지 평시작전통제권 전부가 국군에 이양되었다.
- 2012년 4월 12일에는 전시 작전통제권도 국군에 이양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2010년 6월 27일, 이명박 대통령과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2015년 12월로 연기하기로 합의하였다. 그 이유는 2010년 3월 26일 대한민국 해군 함정 천안함 이 서해 백령도 부근에서 북한군 반잠수정에 의해 침몰된 사건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재연기는 없는 것으로 하였다.[8] 또한 전작권 전환 시기 조정에 맞춰 필요한 실무 작업을 진행하도록 양국 국방장관에게 지시하기로 하였다.[9]
- 이것으로 광복 이래 유엔군사령관 또는 한미연합사령관이 가졌던 대한민국 국군 일부에 대한의 전시 작전통제권은 완전히 국군으로 넘어올 것으로 보인다.
- 한미연합사령부가 해체되면 국군 합동참모본부(합참) 으로 전시 작전통제권이 전환되며 미국 한국전사령부(KORCOM)와 같이 2개의 전투사령부가 전시 작전을 수행하게 된다. 그러나 해군과 공군의 전시 작전통제권은 계속해서 미군이 갖게 된다.
지휘 권한 [편집]
- 합동참모의장은 군령에 관하여 국방부장관을 보좌하며, 국방부장관의 명을 받아 전투를 주임무로 하는 각군의 작전부대를 작전지휘·감독하고, 합동작전의 수행을 위하여 설치된 합동부대를 지휘·감독한다.
- 육군에 육군참모총장, 해군에 해군참모총장, 공군에 공군참모총장을 두며, 각군 참모총장은 국방부장관의 명을 받아 각 군을 지휘·감독하나, 전투를 주임무로 하는 작전부대에 대한 작전지휘·감독은 제외된다.
- 해병대에 해병대사령관을 두며, 해병대사령관은 해군참모총장의 명을 받아 해병대를 지휘·감독한다.
한·일 연합군 [편집]
- 2011년 1월 북한의 테러에 대응하고 한반도 안보를 지키기 위해 국군과 일본 자위대의 연합을 강화 하기로 했으며 양국간에 포괄적인 협력을 담은 '뉴 공동선언'을 올해 봄에 발표로 전해 졌다. 한일 병합 100년에 맞추어 이명박 대통령이 일본 방문시 이때 양국 정상의 서명을 통해 발표할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국민정서, 독도 문제로 인한 한'일 연합군의 체결은 사실상 무산될 것으로 보인다.[10]
한·일 군사협정 [편집]
2012년 6월 29일 한·일 군사 협정문에 양측의 서명위한 계획하에 협의중 이며 서명은 일본 도쿄에서 겐바 고이치로(玄葉光一郞) 일본 외상과 신각수 주일 대사가 하게 될 것이라 성명을 발표 하였다. 이후 국내 관보 게재 등을 거쳐 양국이 각자 법적 요건을 충족했음을 서면 통보하면 협정이 발효된다. 서명 예정 하루 전에 일부 단체의 여론 악화 문제로 내부회의를 거쳐 국무회의에서 협정안을 비공개 처리하기로 하였다.
한·일 군사 협정을 체결하기가 더욱 힘들어진다는 판단에 따라 결국 강행 방침을 정했었다.
나는꼼수다 봉주 16회에 출연한 정청래 제19대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위원에 따르면 이 법안은 여타 국가와 채결한 군사협정과는 달리 국회가 어떠한 정보를 제공하였는지 확인할수없으며, 일본에 대한 정보공개요청 가능한 대상자가 명확하지 않아 체결시 그 대상자에대한 해석이 달라져 혼란을 빚을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정보공개 요청자가 요구한 어떠한 종류의 정보도 공개해야하며, 공개후의 2차적인 정보유포에 대하여 우리나라에서 통제할 수단이 없다고 말한다. 이명박대통령이 독도 방문이후 한·일관계가 경색된 이후에도 한· 일 군사협정만은 계속 추진하고있다. 그러한 상황속에서 이명박대통령이 일본 우익과의 거래관계가 있는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11]
현재, 반대 여론을 대승적 차원에 수용하며 이번 한·일 군사 협정문 서명을 일단 보류 하기로 결정 하였다. 그러나 언제 다시 강행할지모르므로 주시해야할 것이다. [12]
국방 조직 [편집]
- 국군의 통수권은 국가원수인 대통령에게 있으며, 대통령의 최고 정책자문기관으로 국무회의가 있다. 그러나 국방정책에 관하여는 국무회의에 앞서 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심의하기로 되어 있다. 대통령의 명을 받아 국방장관이 군사에 관한 사항을 장리하고 각군 참모총장을 지휘감독하며 합동참모본부와 국무회의가 국방장관을 보좌하도록 되어 있다.
- 합동참모본부는 국방부장관의 명에 의하여 군령(軍令)면에 있어서 각 군에 대한 지시·조정 및 감독을 하며 각군의 참모총장은 국방장관의 명을 받아 각군을 지휘감독토록 되어 있다. 한편 1992년 한미연합사령부 예하 지상 구성군에 대한 지휘권이 미군인 한미연합사령관으로부터 국군에 정식 이양되었다.
- 국군조직법 제 2조 제 1항은 대한민국 국군의 조직을 "육군·해군.공군으로 조직하며, 해군에 해병대를 둔다." 라고 정의한다.
- 육군은 지상작전, 해군은 해상작전 및 상륙작전, 공군은 항공작전을 주임무로 하며, 각군은 이를 위하여 편성·장비되며 필요한 교육·훈련을 한다.
- 대한민국 육군(大韓民國 陸軍, Republic of Korea Army, ROKA)
- 대한민국 해군(大韓民國 海軍, Republic of Korea Navy, ROKN)
- 대한민국 해병대(大韓民國 海兵隊, Republic of Korea Marine Corps, ROKMC)
- 대한민국 해양경찰청(大韓民國 海洋警察廳, Korea Coast Guard, KCG) - 전시상황시
- 대한민국 공군(大韓民國 空軍, Republic of Korea Air Force, ROKAF)
- 국군의 조직과 별도로 향토를 방위하기 위하여 예비역의 장교·준사관·부사관·병과 보충역 병으로 조직된 대한민국 예비군이 있으며, 예비군은 크게 동원예비군과 향토예비군으로 나뉘어 있다. 국토해양부 산하 경찰 행정기관인 해양경찰청(KCG)은 전시(戰時) 상황시 해군의 지휘 운용을 받게 된다.
역사 [편집]
국군의 기원 [편집]
- 대한민국 국군의 기원은 1945년 10월 편성된 미군정의 통위부 소속 국방경비대에 기원을 둔다. 그러나 다른 한 축으로는 일제 강점기의 의병과 1940년 9월 17일 중국 쓰촨성 충칭에서 창설된 한국 광복군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한국 광복군에 뿌리를 둘 경우 1939년 3월 1일에 결성된 한국독립당의 당군이 사실상 대한민국 국군의 기원이 된다.
- 그러나 사실상 광복군은 중화민국 국민당 군의 지휘를 받는 수준이었으며, 1942년부터 귀순공작을 펴서 일본군과 만주군 출신을 받아들였으며, 미군과의 OSS합동훈련을 기획했고, 귀국 후에는 구 일본군 인맥과 만주군 인맥들이 주축이 되어 국방경비대를 결성, 현대 국군의 모태가 되었다.
- 일제강점기 시대의 독립군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산하의 광복군을 기원으로 삼기도 하지만, 실질적인 대한민국 육군의 시작은 남조선국방경비대와 미군정이 설립한 군사영어학교가 모태이다. 국방부는 1948년 12월 15일, 8명의 중령(백선엽, 이용무, 양국진, 최덕신, 김백일, 유재흥, 신학진, 박동균)을 대령으로 특진발령하였다.[13]
탄생 [편집]
- 국군 창건의 새싹은 1945년 8월 15일 해방과 더불어 움트기 시작했다. 과거 일본군·만주국군·중국군 등에 소속하였던 군사 경험자들은 조국의 광복과 때를 같이하여 군사단체를 조직했다.
- 해병대(1945년 8월 23일)·국군준비대·육해공군 동지회·학병동맹·해방병단(海防兵團)(1945년 11월 11일) 등이 결성되었으나, 1945년 11월 13일 미 군정 법령 28호로 아놀드 군정장관 지휘하에 국방사령부가 설치되자 앞서 발족한 여러 군사단체들이 서서히 하나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 이 국방사령부의 설치는 국군 창설의 최초의 시도로서 이때부터 비로소 대한민국의 국방을 위한 조직·편성·훈련이 착수되었다. 최초로 국군의 기간장교가 육성되기 시작한 것은 1945년 12월 5일에 미군정청(美軍政廳)이 군사영어학교를 설치하여 11명의 요원을 배출하는 때부터였다.
- 1946년 1월 15일에는 불과 1개 대대의 병력으로 남조선 경비대(초대 대장 마셜 미 육군중령)가 창설되었으며, 1946년 3월 29일 공포된 미 군정법령 제64호에 따라 국방사령부가 국방부로, 1946년 6월 15일에는 군정법령 86호에 따라 국방부는 다시 통위부(統衛部)로 개칭되었다(초대 통위부 부장 유동열, 초대총사령관 송호성).
- 이 때부터 통위부 밑에 국방경비대와 해안경비대가 창설되었으니, 1946년 1월 15일자로 발족했던 남조선 경비대는 국방경비대로, 그리고 1945년 11월 11일 발족했던 해방병단은 해안경비대로 각각 발전하였다. 그해 12월 1일에는 현행 계급제도가 채택되었으며, 1948년 4월 1일에는 국방경비대 안에 항공부대가 창설되었다.
- 1948년 7월 17일에 대한민국 헌법과 정부조직법이 공포됨에 따라 초대 국방장관에 이범석 장군이 임명되었고, 8월 29일 국방경비대와 해안경비대는 국군으로 편입되어 9월 5일 마침내 육군(초대 참모총장 이응준) 및 해군(초대 참모총장 손원일)이 정식으로 발족하게 되었다. 이후 육군에서 공군과 해군이 나뉘고, 해군에서 해병대가 창설 되면서 현재의 구조를 갖추게 되었다.
- 한편 1948년 4월 1일 국방경비대 안에 창설되었던 항공부대는 9월 13일 육군 항공사령부로 승격하고 1949년 10월 1일 육군으로부터 분리되어 공군(초대 참모총장 김정렬)으로 정식 발족함으로써 비로소 3군 체제의 발전적 기반을 마련하였다.
성장기 [편집]
- 국군은 창건 초기부터 많은 시련을 겪었다.
- 한국 전쟁 초기의 국군은 비록 북한군보다 적은 병력이기는 했으나, 육군 97,000명(북한군 154,000명), 해군 6,956명(북한군 13,700명), 공군 1,897명(북한군 2,000명)으로 자랐고 휴전 후에도 계속 성장하였고, 지금은 최첨단 시설과 장비를 갖추고 있다.
한국 전쟁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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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초기 대한민국 육군은 동부전선의 이성가, 김종오 대령이 지휘하는 대한민국 8보병사단, 대한민국 6보병사단이 선전을 했으나, 서부전선의 경우 고전을 치뤄야 했다. 옹진반도를 방어하던 대한민국 육군참모본부 직할 17연대(백인엽 지휘)는 개전 직후 철수했으며, 청단-개성-문산을 방어하던 1사단(백선엽 지휘)은 동년 동월 27일까지 효과적으로 방어를 하였으나, 우측의 7사단이 괴멸하여, 서울이 점령됨에 따라 한강 이남으로 철수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1사단도 전투력의 60%이상을 상실하였으나 건제를 유지하였다. 의정부-포천축선을 방어하던 7사단의 경우 의정부지구 1연대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포천축선의 9연대가 괴멸되고 이에 축차투입된 수도경비사령부(현재 육군 3군사령부 예하수도사단) 3연대, 2사단, 5사단도 붕괴됨으로써 절체절명의 위기를 맡게 된다.
이에 중국 국부군 2성 장군 출신의 김홍일 장군이 시흥지구 전투사령부를 조직하여 혼성 사단을 조직 한강선을 7일간 방어함으로써 미군이 전개할 시간을 얻었다. 50년 7월 5일과 7월 24일에 단행된 사단 재편성을 거쳐 해체되지 않고 유지되는 사단은 1사단, 6사단, 8사단 이상 3개 사단이며 3사단은 7월 5일부로 해체되었으나, 예하 22, 23연대의 건제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고 7월 24일부 다시 사단이 구성된다. 상기 4개사단 (1, 3, 6, 8사단)을 제외한 나머지 사단 (2, 5, 7사단)은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다가 후에 재창설된다. 수도경비사령부의 경우 7월 5일부 수도사단으로 개칭되었다. 초기 창군 과정에서 장교들이 고속 승진을 거듭한 끝에 장군이라고 해도 김홍일, 김석원, 이응준 장군을 제외한 나머지 장군들이 20대 후반 ~ 30대 중반이었던 관계로 지휘 경험과 대규모 군대 운영 및 행정 경험이 부족하여 전쟁 기간 내내 지휘력, 전투력 부족 문제로 시달려야 했다. 그나마 위의 3 장군도 50년 9월 이후는 전쟁 일선에서 물러났다.
사단급 제대가 다시 10개로 늘어난 후에도 군단 편성이 늦어진 점이나 편성된 군단도 다른 나라 "군단" 급 부대에 비하면 보병사단 3개를 모아둔 것에 불과할 뿐, 군단으로서 전투력을 가지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실제로 이들 제1, 2군단은 모두 해체되는 아픔을 겪었고, 현재의 제1군단은 1952년에 지리산 공비 토벌전을 위해 임시 편성인 기동 부대 성향의 백야전사령부를 모태로 새로 창설한 것이다) 대체적으로 국군은 투지는 강했으나, 훈련의 양과 질, 장교의 지휘 능력, 보유 장비 등에서 부족함이 많았다. 백선엽은 회고록에서 "1개 보병사단 전체를 105mm 1개 포병대대가 지원하고, 연대는 4.2인치 박격포 중대가 지원하는" 상황이었다고 술회했다. 당시 미군 보병사단은 1개 155mm 대대와 3개 105mm 대대로 사단 포병을 구성하고 있었다.
현재 국군의 1개 사단을 지원하는 포병전력은 155mm 자주포 내지는 견인포로 1개 연대 정도다. 물론 편제에 따라서 다소 차이가 있으며 105mm포는 향토사단 등에서만 사용할뿐 현역 사단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1951년 이후 미국이나 대한민국 모두 국군의 군사력 증강을 위하여 노력을 기울였다. 미국도 NATO의 창설과 냉전 분위기 등으로 인해 대한민국에서 병력을 빼야 하는 상황이었다. 백선엽의 회고록에 따르면 1951년까지 미국과 이승만 대통령은 증강에는 동의했지만, 그 방식에서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이승만대통령은 기존 10개 사단 외에 10개 사단 추가 증설을 위한 지원을 요구했고, 미국은 기존 사단들도 전투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데 무슨 10개 사단 증설이냐면서 기존 사단들의 전투력 배양이 먼저라고 맞받아쳤다. 즉, 양이냐, 질이냐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전자를, 미국은 후자를 주장한 것이다.
이 와중에 현리 전투에서 대한민국 3군단이 맥없이 패배하여 수 십 Km를 후퇴했고, 이웃한 미군 사단들이 급히 수습에 나서야 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전투에서 국군이 보여준 무기력한 모습은 결국 미국 8 군 사령부와 유엔군 사령부의 중대 결단을 낳게 했다. 당시 대한민국 육군참모본부는 최전방에 전방지휘소를 두고 국군 군단에 대해 어느 정도의 작전지휘를 하고 있었다. 1950년 7월 협정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미국에 국군의 전체 지휘권을 넘겨주었지만, 미군은 적당히 융통성을 발휘해 육본의 독자 지휘를 어느 정도 인정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전방지휘소 뿐만 아니라 제3군단마저 폐지하고 모든 국군 사단을 미군 군단에 배속시키게 된다. 군단급 이상 상급 부대가 모두 폐지된 것은 국군에게는 치욕이었으나, 이승만도 미군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전쟁 중 국군의 1차 증강은 미군의 주장에 따라 기존 사단들의 전투력 배양과 장교에 대한 교육 과정 강화를 우선 사업으로 시작하게 된다.
휴전 후 병력증강과 M4 셔먼, M47 패튼 전차 도입 등 장비증강이 진행되었고, 1954년까지 제1, 2군 사령부와 군수기지사령부·군관구사령부, 10개 예비사단이 창설되었다.
베트남 전쟁 참전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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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부터 미국은 베트남 전쟁에 파견, 지원할 군사적 협력을 세계 각국에 요청하였고 대한민국 역시 미국의 파월 지원 요청에 응하여 비둘기부대를 비롯한 건설공병대대 파견을 시작으로 1972년까지 약 32만명의 국군을 파견하게 된다. 32만명 파견 중 전사 5천명, 부상 1만 9천의 사상자가 나오기도 했다.
- 국군 발전사 상 베트남 전쟁 파병은 특기할 만한 일이다. 1964년 9월 11일 1300명으로 구성된 제101 이동외과 병원과 10명으로 구성된 태권도 교관단의 파견, 1965년 3월 16일 비둘기 부대(1개 공병대대, 해병 공병중대, 경비대대, 수송중대)가 파견된 이후 계속 증파되어 10월 9일에는 청룡부대를, 10월 22일엔 맹호부대를, 1966년 4월 그리고 8월 30일에 백마부대가 파병됨으로써 무려 약 5만명(군단 규모)을 헤아리게 되었다.
- 국군의 베트남 파병에 대해서는 그 때마다 남베트남 정부의 요청과 대한민국 국회의 승인이 있었으나 그 심의과정에서는 야당인사인 윤보선, 장준하 등의 반대를 시작으로, 파병 찬·반 양론이 엇갈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파월 국군은 극복할 수 있는 문제점을 극복했을 뿐만 아니라 다대한 전공과 업적을 쌓았으며, 베트남 땅에 국군에 대한 많은 신화를 남겨 놓게 되었다. 베트남 파병의 댓가로 미국으로부터 받은 자금과 회수한 무기로 군사무기 개량과 경부고속도로 건설, 경제 개발 사업 자금 등으로 활용되었다. 베트남전이 서서히 막을 내리던 1973년 3월 파월국군은 완전히 철수하였다.
계획 [편집]
율곡계획은 미군의 원조에 벗어나 차체 국방력과 무기생산을 목표로 시작된 계획으로 성과로 1970년대에는 당시 주력소총인 M16 소총을 국내 라이언스 생산과 수류탄과 방독면의 국산화에 성공하였다. 또 1980년대 이후 경제성장으로 국방비가 크게 증가해 1984년에는 현재 기계화 전력의 대부분을 이루고있는 K-200장갑차를 차체생산하고 M48 패튼 전차를 자체 생산및 계량하고 1987년에는 최초 국산3세대 전차인 K1 전차를 도입하였다. 또한 이시기에 F-5 제공호 전투기를 국산화및 자체생산하였고 4세대 전투기인 F-16 전투기를 도입하였다. 또한 해군의 주력이자 최초 1000t급 이상 자체 건조함인 포항급 초계함과 울산급 호위함 도입이 이루어졌다. 이 계획으로 1980년대 말에는 국군은 비교적 현대적 무장과 양적과 질적 성장을 이루어내었으며 무기/장비의 미군의존도를 크게줄였다. 국방비리가 매우 심각하여 국방예산을 크게 증가시킬수가 없어서 사업들을 진행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이다.
비대칭 전력은 북한이 우위를 가지고 있고 2013년 2월 북한과 대한민국의 군사력 균형이 무너졌다. 3차 핵실험에서 북한은 고농축 우라늄을 이용한 핵무기를 실험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북한이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기술을 보유했느냐 또는 핵무기를 소형화 했느냐 하는 것은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느냐에 관한 문제이지 북한은 핵탄두를 미사일에 탑재할 정도로 소형화하지 않더라도 한국을 공격할 수 있는 다양한 수단과 방법을 가지고 있다. 이 경우 북한은 지속적인 핵무기 생산이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한 것으로 평가된다.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는 이유는 경제지원을 획득하기 위한 목적 또는 대미 수교협상용이 아니고 미국을 위협하여 한미동맹을 폐기하고 만들고 주한미군을 철수시킴으로써 한반도 적화통일을 달성하기 위해서이다.
대한민국은 사정거리 800Km , 탄두 중량 500Kg 제한과 핵탄두를 탑재 할 수가 없어 군사력 균형을 이룰 수 없다.
KN-08 대륙간 탄도 미사일의 엔진 성능개량 시험을 실시하였다. 몇 기를 개발했는지는 확인 할 수 없다. TEL에 탑재되어 있는데 TEL은 정찰 위성이나 레이더 탐지 사각지역에 숨어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장점 때문에 위협적인 무기체계다. 150~250여 기가 실전배치된 사정거리 1300Km의 노동 탄도 미사일의 TEL도 27~40대로 파악되고 있다. 괌을 사정권에 둔 무수단 탄도 미사일 운용부대는 14대의 TEL을 보유한 것으로 분석된다.
그 외 해외 파병 [편집]
국방비 [편집]
부대별 운영비용 [편집]
- 평균 경상운영비에는 인건비, 급식 및 피복, 국방정보화, 장병보건 및 복지향상, 군수지원 및 협력, 교육훈련, 군사시설운영, 예비전력관리, 기타 행정 경비 등이 포함되어 있다.
- 육군과 해병대의 경상운영비에서 소속부대 인원으로 나누어보면 해병대의 장병 1명의 경상운영비가 더 높으나, 이러한 산출법으로 장병 1인의 경상운영비를 나타 낼 수는 없다. 다만 해병대원 1명의 양성비용이 육군대원 1명의 양성비용보다 더 많으며, 그에 따른 종합적인 교육훈련비가 차이가 나는 것이다.
- 육군 6개[16] 기계화보병사단 2009년 기준 평균 경상운영비 : 1,606억
- 육군 16개 기타 상비사단 2009년 기준 평균 경상운영비 : 1,424억
- 육군 11개 향토사단 2009년 기준 평균 경상운영비 : 1,115억
- 해병대 2개 사단 2009년 기준 평균 경상운영비 : 893억
- 육군 4개 동원사단 2009년 기준 평균 경상운영비 : 277억
대한민국이 분담하는 주한미군 방위비 [편집]
- 한미 양국은 2008년 12월 2009년 이후 방위비 분담금 결정에 적용할 새로운 협정에 합의하였고, 이 협정은 2009년 3월 국회 비준 동의를 받아 발효되었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5년을 유효기간으로 하는 이 협정은 연도별 방위비 분담금을 전전년도 소비자 물가지수를 반영하여 인상하되 최대 4%를 넘지 않기로 하였다. 이에 따라 2009년 7,600억 원(2007년 물가 상승률 2.5% 적용), 2010년 7,904억 원(2008년 물가 상승률이 4.7%이나 상한선인 4% 적용)을 부담하게 되었다.
- 2000년도 기준 18억 9,500만 달러로, 42%이다. 독일의 경우 57억 6,700만 달러 (21%), 일본의 경우 63억 3,200만 달러 (79%)이다.[19]
- 매년 대한민국의 분담 비율이 증가되고 있다. 1987년 제 19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의(SCM)이후 1990년 3,000만 달러, 1991년 4,000만 달러, 1992년 5,000만 달러였다. 이에 따라 대한민국의 군사비를 GNP의 6%로 책정하였다.
- 방위비 분담금 지원 항목 (2013년 기준)
미국이 분담하는 주한미군 방위비 [편집]
- Cato Institute의 Doug Bandow씨의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정부가 주한미군에 쓰는 비용은 1998년 기준 한 해 약 150억 달러(당해 환율 기준 약 21조 원)라고 한다.[20] 그와 비교해 대한민국 국방부의 당해 국방예산은 약 14조 원이었다.
해외 파견 [편집]
국제 연합 평화유지군으로 참가중인 인원은 2010년 11월 기준 군인 83,118명, 경찰 14,037명, 그 외 관련 직종 전문가 2,353명. 총 99,508명이다.[21][22]
현재 대한민국 국군은 2010년 11월 기준으로 17개 지역에 1,195명을 파병하고 있는데, 이중 국제 연합 평화유지군으로는 640명, 다국적군으로는 555명을 파병하고 있다. 그리고 국제 안보 지원군에 참가중인 인원은 총 130,930명이고, 그 중에 대한민국은 총 246명을 파견하고 있다.
현재 [편집]
| 부대 명칭 | 기간 | 참가 전쟁 또는 임무 |
|---|---|---|
| 국제 평화 지원단 "온누리" | ? ~ 현재 | 아직 없음 |
| 동명 부대 | ? ~ 현재 | 국제 연합 레바논 임시군 (UNIFIL) |
| 단비 부대 | 2010년 2월 17일 ~ 현재 | MINUSTAH |
| 오쉬노 부대 | ? ~ 현재 | 아프가니스탄 파병 |
| 청해 부대 | 2009년 3월 13일 ~ 현재 | 아프리카의 뿔 |
| 아크 부대 | ? ~ 현재 | 아랍에미리트 군사 훈련 협력 |
이전 [편집]
| 부대 명칭 | 기간 | 참가 전쟁 또는 임무 |
|---|---|---|
| 주월 한국군 사령부 | 1965년 9월 25일 ~ 1973년 7월 1일 | 베트남 전쟁 |
| 상록수 부대 | 1993년 6월 29일 ~ 1994년 1월 15일 | UNSOM II |
| 1995년 10월 ~ 1997년 2월 | UNAVEM III | |
| 1999년 10월 ~ 2003년 10월 | UNAMET | |
| 100 건설 공병단 "다산" | 2003년 2월 6일 ~ 2007년 12월 | 아프가니스탄 파병 |
| 924 의료 지원단 "동의" | 2001년 12월 18일 ~ 2007년 12월 23일 | |
| 58 항공 수송단 "다이만" | 2004년 8월 31일 ~ 2008년 12월 19일 | |
| 자이툰 부대 | 2004년 2월 23일 ~ 2008년 12월 20일 | 이라크 파병 |
| 320 의료지원단 "제마" | ||
| 1100 건설공병단 "서희" |
국군의 명령 체계 [편집]
- 군의 명령 체계는 크게 군정과 군령으로 나뉜다.
- 군정은 행정적인 명령이고, 군령은 작전 명령이다.
- 군정은 인사 관리(보직, 진급, 근무), 보급 관리 등이 해당된다.
- 반면 군령은 훈련, 경계, 국지도발, 대간첩 작전 등이다.
군정 명령 체계 [편집]
군령 명령 체계 [편집]
구성 [편집]
국방부 [편집]
- 합동참모본부 (평시)
- 한미연합사령부 (전시. 2015년 12월 이후 해체)
- 육군본부 (충남 계룡시)
- 해군본부 (충남 계룡시)
- 공군본부 (충남 계룡시)
- 국군의무사령부
- 국군군의학교 (대전 유성구)
- 국군간호사관학교 (대전 유성구)
- 국군서울지구병원 (서울 종로구)
- 국군부산병원 (부산 해운대구)
- 국군함평병원 (전남 함평군)
- 국군수도병원 (경기도 성남시)
- 국군대구병원 (경북 경산시)
- 국군강릉병원 (강원도 강릉시)
- 국군양주병원 (경기도 양주시)
- 국군벽제병원 (경기도 고양시)
- 국군일동병원 (경기도 포천시)
- 국군춘천병원 (강원도 춘천시)
- 국군홍천병원 (강원도 홍천군)
- 국군청평병원 (경기도 가평군)
- 국군원주병원 (강원도 원주시)
- 국군논산병원 (충남 논산시)
- 국군대전병원 (대전 유성구)
- 국군계룡대지구병원 (충남 계룡시)
- 고등군사법원
- 국군수송사령부
- 국군정보사령부
- 국군기무사령부
- 국군화생방방호사령부
- 국군지휘통신사령부
- 국군체육부대
- 국군복지단
- 국립서울현충원
- 국방대학교
- 국방부 검찰단
- 국방부 여군발전단
- 국방부 합동조사단
- 국방홍보원
- 군사편찬연구소
- 국방부 호국장학재단
육군 [편집]
대한민국 육군은 병력 약 560,000 명, 전차 약 2,300 대, 장갑차 약 2,600 대, 야포/다연장 로켓 약 5,500 문, 유도무기 30 기, 헬기 600기를 보유하고 있다.[23]
전차 기술에 있어서는 세계적인 기술을 보유하고 있고 세계적 수준의 기화폭탄의 보유량은 세계 7위이다.[출처 필요]
2012년 1월 육군에는 현재 39개 사단(전방 기계화보병사단 6개, 그 외 상비 사단 16개, 향토 방위 12개, 동원 예비군 5개)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외 해군 예하 해병대 2개 사단이 있다. 2020년까지 1군사령부와 3군사령부를 지상작전사령부로 통합하며, 5개의 지역군단(수도방위사령부도 지역군단으로 함)과 2개의 기동군단으로 개편하고, 향토사단 자체는 존치하며, 동원사단은 4개로 줄인다. 대형 공격헬기와 고정익 항공기를 증강중이다. 견인포를 자주포로 전량 교체계획이다. 육군 연구개발국을 창설한다. 사병들의 개인화기에 전투력 향상을 위해 사격장,1인당 교탄증가와 사병들의 개인장비(레일마운트,광학장비,레일,도트사이트,방탄복,파우치,레이저 지시기,오픈도트 광학조준경,스코프)도 개선시키는 중이다.
해군 [편집]
- 대한민국 해군(예하 해병대 포함)은 병력 약 68,000명, 잠수함 약 10 척, 이지스함 3척을 포함한 전투함정 약 140 척, 지원함정 20 척, 헬기/해상초계기 약 60 대를 보유하고 있다.[23]
- 대한민국 해군은 앞으로 많은 함정의 건조와 잠수함 개발 등을 계획 중이다.
- 해군은 제2연평해전에서 북한 해군의 기습적인 공격으로 인해 참수리급 고속정이 피격, 심각한 타격을 입은 뒤 기존의 참수리급을 대체하는 미사일 고속함인 윤영하급 고속함을 진수했다. 이는 2002년 서해교전 당시 침몰된 참수리 357정의 정장인 윤영하 소령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현재 12척이 건조되었다.
- 또한, 214급 잠수함(손원일급)을 도입, 자체적으로 건조하고 있으며 독도급 강습상륙함을 보유중이다.
- 차기 군함들을 비롯해 모든 군함들은 선체 전체에 광범위하게 스텔스 설계를 적용하고 레이더 반사율을 줄이기 위해 경사설계를 적용한다.
- 2010년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초계함 PCC-772 천안함을 상실했다.
해병대 [편집]
대한민국 해병대는 1949년 4월 15일 경상남도 진해시에서 초대 지휘관에 신현준 중령이 임명되고, 해군 장교 26명, 부사관 54명, 병 300명으로 창설되었다. 해군 예하의 국가 전략기동군으로서 상륙 작전을 주임무로 하며, 그 외 해군 예하부대의 구성원으로 들어가 도서지역 방어 및 예비군 교육 및 훈련 등의 임무를 수행한다. 한국전쟁에서 놀라온 전과를 올리면서 "귀신 잡는 해병대"라는 별명을 얻었다. 2011년 12월 현재 2개 사단과 1개 여단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연평도에 대대 규모의 연평부대를 두고 있다.
국방개혁 307계획에 의해 신속대응과 공중, 지상 기동작전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로 개편하기 위해 제주부대, 해병대 사령부 직할 항공단를 신설하고, 사령부 예하로 정보단과 통신단을 정식으로 편제하였다.[24]
공군 [편집]
- 대한민국 공군은 F-15K 60대, F-16 180여대, F-4E 165여대, F-5 110여대를 보유하고 있고 FA-50으로 전환 시킬 수 있는 초음속 고등훈련기 T-50을 자체 개발했다.
- 또한 대한민국 차세대 전투기 사업(KFX)을 진행할 예정이며, 2010년 7월 15일 약 1년 4개월의 조율을 거쳐 대한민국 국방부 대회의실에서 김태영 국방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인도네시아 국방부와 차세대 전투기 개발비의 20%를 공동부담하고 차세대전투기 양산시 50대를 구입한다는 전투기 공동개발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였다.
- 공군은 노후한 F-4D 전폭기를 교체하기 위해 F-X사업 등을 통해 F-15K전투기를 도입, 60기가 실전 배치되었으며 이로써 작전반경이 독도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2008년에는 21기가 추가 발주되어 총 60기의 F-15K가 운용중이다.
- 현재 공군은 136대의 KF-16 Block52, 60여대의 F-15K, 30여대의 F-16C/D Block32, 약 80여대의 F-4E, 약 200여대의 F-5E/F 등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 중 F-4E, F-5E/F는 2020년까지 운용하고 퇴역한다.
- AEW&C 737 공중 조기경보통제기 4대를 운용중이다.
- 현재 FX 3차 사업을 진행중이다.
예비군 [편집]
주한미군의 규모 [편집]
- 병력 : 약 28,500 명
- 전투기 : 약 90 대
- 공격헬기 : 약 20 대
- 전차 : 약 50 대
- 장갑차 : 약 110 대
- 다연장 로켓
- ATACMS : 약 40 기
- MIM-104F Patriot PAC-3 지대공미사일 (Erint) : 약 60 기
계급 체계 [편집]
군인사법 제 3조는 "장군은 장성으로 장교는 영관 및 위관으로 구분하고 장성은 원수, 대장, 중장, 소장 및 준장으로 한다. 영관은 대령, 중령 및 소령으로, 위관은 대위, 중위 및 소위로 한다. 준사관은 준위로 한다. 부사관은 원사, 상사, 중사 및 하사로 한다. 병은 병장, 상등병, 일등병 및 이등병으로 한다." 라고 대한민국 국군의 계급을 정의 한다.
징집병의 경우, 모병제를 시행하는 국가의 계급보다 통상 2계급이 낮다. 예컨대 국군의 하사는 미군의 상등병과 연합체계로 볼때, 유사하다. 그러나 이는 병과 부사관의 경우이며 장교의 경우는 어떠한 국가이든 계급이 동일하다. 즉 국군의 대위는 미군의 대위와 동일하다.
장교 [편집]
| 계급장 | |||||||||||
|---|---|---|---|---|---|---|---|---|---|---|---|
| 계급 명칭 | 원수 (元帥) |
대장 (大將) |
중장 (中將) |
소장 (少將) |
준장 (准將) |
대령 (大領) |
중령 (中領) |
소령 (少領) |
대위 (大尉) |
중위 (中尉) |
소위 (少尉) |
| NATO 부호 | OF-10 | OF-9 | OF-8 | OF-7 | OF-6 | OF-5 | OF-4 | OF-3 | OF-2 | OF-1 | |
원수는 국가에 대한 공적이 현저한 대장 중에서 임명하며, 국방부장관의 추천에 의하여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행한다. (군인사법 제 27조), 현재까지 대한민국 국군에는 원수로 임명된 군인은 없다.
준사관 [편집]
| 계급장 | |
|---|---|
| 계급 명칭 | 준위 (准尉) |
| NATO 부호 | WO-3 |
부사관 [편집]
| 계급장 | ||||
|---|---|---|---|---|
| 계급 명칭 | 원사 (元士) |
상사 (上士) |
중사 (中士) |
하사 (下士) |
| NATO 부호 | OR-9 | OR-8 | OR-7 | OR-6,OR-5,OR-4 |
병 [편집]
| 계급장 | ||||
|---|---|---|---|---|
| 계급 명칭 | 병장(兵長) | 상등병(上等兵) | 일등병(一等兵) | 이등병(二等兵) (기초군사교육 포함. 입대 당일부터 이등병) |
| NATO 부호 | OR-5 | OR-4 | OR-3 | OR-2, OR-1 |
그 외 인사 사항 [편집]
군사특기 [편집]
대한민국 국군의 경우 여군은 기갑, 포병, 잠수함 병과에는 진출할 수 없다.[29]
일반직 공무원과의 비교 [편집]
군무원과의 비교 [편집]
연령 정년 [편집]
근속 정년 [편집]
계급 정년 [편집]
초임계급에 따른 임용연령 제한 [편집]
전역과 퇴역 이후 [편집]
- 한편 하사 이상 간부의 예비군 복무 기간은 계급 정년에 따라 최소 하사는 40세까지이나, 전역 이후 6년 간 동원훈련만 받으면 끝이다.[35] 예비군에 소속되어 있는 동안은 민방위대에 편성되어 있지 않아 민방위대 훈련은 없다. 민방위대 편성 기간은 평시의 경우 40세, 전시의 경우 45세이므로, 전역 이후 오직 6년 간 동원훈련만 받으면 되는 것이다.
- 또한 현역에 20년 이상 근무한 경우 본인 지원에 의하여 예비역으로의 전역 없이 바로 퇴역하여 민방위대로 편입할 수 있다. 반대로 연령정년에 도달한 경우나 여군의 경우에는 본인 지원에 의하여만 예비역으로 편입된다. 여군은 기본적으로는 바로 퇴역됨은 물론 민방위대로도 편성되지 않는다.[36]
- 본인의 지원에 의함은 오직 장교와 준사관(준위), 부사관에 한한다. 병으로는 병역법에 의하여만 징집되는 것이다.
- "제대군인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제대군인"이란 "병역법" 또는 "군인사법"에 따라 군 복무를 마치고 전역·퇴역·면역·상근예비역 소집해제한 사람을 말한다.[37]
- 장교·준사관(준위) 또는 부사관으로 전역한 사람에 한하여, "장기복무"는 10년 이상 현역으로 복무한 경우를 말하며, "중기복무"란 5년 이상 10년 미만 복무한 경우를 말한다. 그 이하로는 의무복무기간을 포함한 단기복무로 본다.
3군 표준 영내장병 일과시간 [편집]
- 해군 훈련병들의 일과는 예외.
하절기 (3월 ~ 10월) [편집]
- 06:00 기상 및 아침점호 (UTC 21:00)
- 08:00 오전일과 시작 (UTC 23:00)
- 12:00 오전일과 끝 (UTC 03:00)
- 13:00 오후일과 시작 (UTC 04:00)
- 17:00 오후일과 끝 (UTC 08:00)
- 21:30 저녁점호 (UTC 12:30)
- 22:00 취침 (UTC 13:00) 이후 연등이 허용되기도 한다.
- 06:00 기상 및 아침점호 (UTC 21:00)
- 08:00 오전일과 시작 (UTC 23:00)
- 11:50 오전일과 끝 (UTC 02:50)
- 13:00 오후일과 시작 (UTC 04:00)
- 17:00 오후일과 끝 (UTC 08:00)
- 21:30 저녁점호 (UTC 12:30)
- 22:00 취침 (UTC 13:00) 이후 연등이 허용되기도 한다.
- 06:30 기상 및 아침점호 (UTC 21:30)
- 08:00 오전일과 시작 (UTC 23:00)
- 11:50 오전일과 끝 (UTC 02:50)
- 13:00 오후일과 시작 (UTC 04:00)
- 17:00 오후일과 끝 (UTC 08:00)
- 21:30 저녁점호 (UTC 12:30)
- 22:00 취침 (UTC 13:00) 이후 연등이 허용되기도 한다.
동절기 (11월 ~ 2월) [편집]
- 06:30 기상 및 아침점호 (UTC 21:30)
- 08:30 오전일과 시작 (UTC 23:30)
- 12:00 오전일과 끝 (UTC 03:00)
- 13:00 오후일과 시작 (UTC 04:00)
- 17:30 오후일과 끝 (UTC 08:30)
- 21:30 저녁점호 (UTC 12:30)
- 22:00 취침 (UTC 13:00) 이후 연등이 허용되기도 한다.
- 06:30 기상 및 아침점호 (UTC 21:30)
- 08:30 오전일과 시작 (UTC 23:30)
- 12:00 오전일과 끝 (UTC 03:00)
- 13:10 오후일과 시작 (UTC 03:10)
- 17:30 오후일과 끝 (UTC 08:30)
- 21:30 저녁점호 (UTC 12:30)
- 22:00 취침 (UTC 13:00) 이후 연등이 허용되기도 한다.
- 07:00 기상 및 일조점호 (UTC 22:00)
- 09:00 오전일과 시작 (UTC 00:00)
- 12:00 오전일과 끝 (UTC 03:00)
- 13:10 오후일과 시작 (UTC 03:10)
- 17:30 오후일과 끝 (UTC 08:30)
- 21:30 저녁점호 (UTC 12:30)
- 22:00 취침 (UTC 13:00) 이후 연등이 허용되기도 한다.
지휘제대별 지휘통제의 폭과 참모부서별 관리통제의 폭 [편집]
- 지휘통제의 폭
- 군 급 : 3~5개 군단급 지휘
- 군단 급 : 3~5개 사단급 지휘
- 사단 급 : 3~5개 여단/연대급 지휘
- 여단 급: 3~8개 대대급 지휘
- 연대 급: 3~5개 대대급 지휘
- 관리통제의 폭
- 지휘관 : 3~8명의 참모
- 참모부/참모실(감) : 3~6명의 처장/과장
- 참모처 : 2~6명의 과장
- 과 : 5~25명의 과원
지휘관(자)의 계급에 따른 단위제대 규모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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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명칭의 부여기준과 제정권자 [편집]
- 고유명칭 : 제○○(부대번호) 보병(부대성격) 사단(부대규모)
- 편제표상의 명칭으로서 부대번호와 부대성격 및 부대의 규모를 포함하여 제정
- 편제표상의 모든 부대를 대상으로 하며 부대의 성격과 규모에 부합되는 표현과 연번을 부여 하되, 각 군별 표준 부대명칭 체계를 적용하여 제정
- 국방부장관 : 각군 대대급 이상 부대와 국방부 직할부대/기관
- 각군참모총장 : 각군 중대급 이하 부대
- 통상명칭 : 제 0000부대
- 군 외부로부터 호칭시 부대의 규모와 기능등의 노출을 방지하기 위한 보안상의 목적으로 제정
- 보안상 필요에 의거 4자리의 아라비아 숫자로 제정 사용하되, 해군 함정의 경우는 함정명칭을 통상명칭으로 본다. 다만, 장기간 사용으로 보안유지의 가치를 상실한 때에는 이를 변경할 수 있으며 학교기관, 행정지원부대, 복지근무지원 부대(기관) 및 의무부대 등은 쓰지 않을 수 있다.
- 각군참모총장 및 국방부 직할부대/기관장이 정하되, 타 부대명칭과 중복을 피하기 위하여 국방부장관의 조정ㆍ승인 필요
- 상징명칭 (특별명칭) : 자이툰, 다이만, 동의, 백골 등
- 부대의 특성, 단결, 사기진작 등을 목적으로 제정
- 해당 부대의 특성ㆍ단결 등을 표현할 수 있는 "명사형"으로 부여
- 각군참모총장 및 국방부 직할부대장이 정하되, 임무 및 기능이 특수하거나 중요할 경우, 2개 군 이상의 합동부대, 해외파병 부대 등은 국방부장관의 조정ㆍ승인 필요
정년 체계 [편집]
국군의 정치적 중립성 [편집]
- 국군은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토방위의 신성한 의무를 수행함을 사명으로 하며 그 정치적 중립성은 보장된다(헌법 제5조 2항). 영토·국민·주권을 구성요소로 하는 국가는 대내외적으로 그 영역과 권리의 유지·보장을 위하여 국가무장력, 즉 군대를 보유하는데 통상 상설의 일정한 정규군 사조직 형태로 운영된다.
- 국제법 상 국가는 자위권을 보유하며 침략적 목적이 아닌 범위 내에서는 그 권리의 유지와 보장을 위한 개별국가의 독자성이 인정된다. 대한민국 헌법은 그 기본원리로서 국제평화주의를 채택하여 모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하며 국제법 질서의 존중과 이행을 선언하고 있다. '∼그 정치적 중립성은 보장된다'는 규정은 제9차 개정헌법에서 신설된 것으로 헌정사의 어두운 경험을 재연치 않기 위함이다. 그러나 군 개인의 정치적 신념이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가 하는 이견도 제기되고 있다.
2010년 이후 병무 사항 변화 [편집]
비판 [편집]
각 국군의 전력 증강 사업에서 2000년대 들어서면서 대규모의 전력 구축을 하면서 여러 문제점이 부각되었다. 대표적으로 윤영하급 미사일 고속함과 214급 재래식 잠수함에서 발생한 결함, 신규 장비는 도입하면서 그에 따르는 군수 및 지원역량에 대한 관심 소홀과 불량부품 비리, 예산 비리, 로비 등이 있다. 비대칭 전력을 크게 증강시키자는 의견과 핵무장을 하자는 의견이 제기되었다. 군사력 균형이 깨지고 2013년 국방예산 삭감으로 인해 필요한 사업들의 예산들이 삭감되어 군사력 증강에 차질이 빚어져 논란이 계속 되고 있다.
같이 보기 [편집]
주석 [편집]
- ↑ http://www.mnd.go.kr/mndInfo/publication/policyDataBook/policyDataBook_1/index.jsp 국방부 2010년판 국방백서
- ↑ 2010년판 국방백서 부록3 "남북 군사력 비교" 271쪽. 2010년 11월 기준
- ↑ Encyclopaedia Britannica: 국군, 한국브리태니커회사
- ↑ 2010년판 국방백서 <도표 3-2> "육군의 주요 조직과 보유 전력" 41쪽
- ↑ 2010년판 국방백서 <도표 3-3> "해군의 주요 조직과 보유 전력" 42쪽
- ↑ 2010년판 국방백서 <도표 3-4> "공군의 주요 조직과 보유 전력" 43쪽
- ↑ 수도, 8, 11, 20, 26, 30
- ↑ Daum 미디어다음 - 뉴스
- ↑ Kbs News
- ↑ 정성일. “"한·일 신공동선언 준비…군사협력 추진"”, 《매일경제》, 2011년 1월 작성.
- ↑ 안홍기. “강경발언 뒤로하고... 청와대 "한일군사정보협정 추진"”, 《오마이뉴스》, 2012년 8월 16일 작성.
- ↑ 이정은. “靑 “군사협정 비공개 처리는 日요청 때문”… 여야 “취소해야””, 《동아일보》, 2012년 6월 29일 작성.
- ↑ “陸軍八中領昇進”, 《동아일보》, 1948년 12월 31일 작성.
- ↑ http://mnd.go.kr/mndInfo/publication/policyDataBook/policyDataBook_1/index.jsp 국방부 국방정보공개 간행물 정책자료집 중 '2010 국방백서 국문판 부록'
- ↑ http://bemil.chosun.com/nbrd/bbs/view.html?b_bbs_id=10040&pn=1&num=65560 유용원의 군사세계 2012년 2월 1일 국방부 질의 자료
- ↑ 수도, 8, 11, 20, 26, 30
- ↑ http://kostat.go.kr/wnsearch/search.jsp통계청 통합검색 통계DB '방위비분담금현황 : 방위비 분담금 지원현황'
- ↑ http://mnd.go.kr/mndInfo/publication/policyDataBook/policyDataBook_1/2010year/index.jsp 국방부 국방정보공개 간행물 정책자료집 중 '2010 국방백서 국문판 전체'-제3절 주한미군의 안정적인 주둔여건 보장 71쪽'
- ↑ http://mnd.go.kr/mndInfo/publication/policyDataBook/policyDataBook_4/index.jsp 국방부 국방정보공개 간행물 정책자료집 중 '한미동맹과 주한미군'
- ↑ https://www.cato.org/pubs/pas/pa-308.pdf
- ↑ 2010년 국방백서 부록 296페이지
- ↑ www.un.org/en/peacekeeping/contributors
- ↑ 가 나 다 2012 국방백서. 대한민국 국방부. 2013년 1월 9일에 확인.
- ↑ 박영민(글) 박흥배(사진). “육군 군단, 기동 2·지역 5개로 재편 (한국어)”, 《국방일보》, 2008년 11월 25일 작성. 2008년 2월 28일 확인.
- ↑ <한반도 전역 공중감시 E-X..26년 만에 종결>, 연합뉴스 김귀근 이귀원, 2006-11-08
- ↑ 대한민국 국방부 2010년 판 국방백서 44페이지 <도표 3-5> 주한미군의 주요 조직과 보유 전력
- ↑ http://news.kbs.co.kr/news/NewsView.do?SEARCH_NEWS_CODE=2588466& 내년 병 월급 15% 인상…상병 10만 원 돌파. KBS 단신뉴스. 2012.12.27
- ↑ http://www.yebigun1.mil.kr/homepage/ext/html/2012.hwp 2012년도 예비군 실무편람 549~624쪽 '군사특기 및 유사특기 범위'
- ↑ http://media.daum.net/society/newsview?newsid=20121113110214725 육군 3사관학교 여생도 뽑는다-내년까지 여군 활용 직위 재검토. 연합뉴스. 2012.11.13 11:02
- ↑ 의전상 장관급으로 분류되는 대장에게는 에쿠우스가, 중장(차관급)에겐 체어맨이나 그랜저 3.0 이상이 각각 지급되어 조선일보, 유용원 기자 2008-03-07
- ↑ 이들 가운데도 별 네 개를 단 대장들은 장관급에 준하는 대우를 받으며 세계일보, 조병욱 기자 2012-08-17
- ↑ 오재록·유인영. 2009.「노무현·이명박 정부의 중앙행정기관 인적자원 비교분석」.『한국인사행정학회보』, 8(1): 100-101.
- ↑ http://www.law.go.kr/lsInfoP.do?lsiSeq=123624#0000 대통령령 제23644호 군무원인사법 시행령[별표 3]군무원의 대우기준표(제4조 관련)
- ↑ ‘軍장관급→장군급’ 김근태 의원, 軍인사법 개정안 발의《충청투데이》2012년 8월 7일 이진우 기자
- ↑ 현행 2박 3일, 2016년부터 3박 4일, 2020년부터 4박 5일
- ↑ www.law.go.kr 군인사법 제41조
- ↑ 제대군인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 2012.1.17. 시행일 2012.4.18
참조 자료, 법령 [편집]
- 법에는 각기 그에 따른 시행령과 시행규칙이 있다. 앞으로 시행될 예정인 법안도 통과 절차별로 확인할 수 있다. 국방과 관련된 법에는 병역법, 군인사법, 향토예비군 설치법 등이 있다.
-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부칙과 별도 서식까지 확인 가능.
- 병무청 '행정정보 공개'-신체검사 등위 판정 기준이나 병역처분 기준을 볼 수 있다.
- 군사력 비교평가 방법론 소개 국방정책연구 1999년 여름호에 게재
기타 [편집]
- 한국의 무기 이야기, 세계일보
바깥 고리 [편집]
공식 웹사이트 [편집]
관련 웹사이트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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