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7보병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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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보병사단
7사단.jpg
활동 기간 1949. 1. 7.
국가 대한민국 대한민국
소속 대한민국 대한민국 육군
병과 보병
역할 수색 · 경계 등
규모 사단
명령 체계 2 군단
본부 강원도 화천군
별명 칠성부대
청색, 백색
군가 7사단가
참전 한국전쟁
훈장 대통령 부대표창 13회 등
지휘관
주요 지휘관 박정희[후에 대통령], 육군 참모총장 2명 배출

제7보병사단(한자第七步兵師團, The 7th Infantry Division, 별명: 칠성부대)은 대한민국 육군 보병 사단으로 1949년 6월 10일에 창설되었다.

한국 전쟁 당시 총 28회의 전투에 참전했으며, 특히 낙동강방어전을 수행할 당시 영천지구 전투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2개 사단을 격멸해 대통령부대표창을 수상하였다. 1950년 10월 18일에는 연합작전 부대 중 최초로 대동강을 단독으로 넘어 평양에 최선두로 입성,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남침 지휘사령부로 사용하던 김일성대학 옥상에 태극기를 게양해 대한민국 전쟁사에 길이 빛날 쾌거를 남겼다. 부대의 별칭인 칠성고조선 치우장군 이래 장수의 칼과 깃발에 등장 했던 북두칠성처럼 모든 것의 중심이 되어 항상 승리하겠다는 의미로 사단 창설시 제정되었다. 대한민국 전군에서 유일하게 창군과 동시에 창설된 한자리수 연대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휴전선 중동부 지역에 주둔하며, 예하에 GOP연대(5, 8연대)와 예비연대(3연대), 포병연대 및 직할대가 있다.

부대 연혁[편집]

최초의 칠성 부대는 1946년 4월 1일 춘천에서 창설된 제 7여단(초대 부대장 대령 이준식)이 모체이며 이때 배속 부대는 제 1연대, 제 9연대, 제 17연대, 제 19연대였다. 1949년 2월 1일 수도여단으로 개칭된다. 1949년 5월 12일 수도사단으로 승격되면서 포병사령부를 포병연대로 바꾸어 사단에 예속시켰다. 계속 용산에서 주둔하고 있던 수도사단은 육일명 제 17호에 의거하여 보병 제 7사단으로 재개칭하였고 제 17연대를 예속 해제하여 수도경비사령부로 보냈다.

이로써 제 7보병사단은 제 1, 9, 19연대 및 포병연대를 예하부대로 하여 1949년 6월 10일에 창설되었다. 1949년 9월 14일 지리산 공비토벌 작전에 투입되었으며 한국 전쟁 직전에는 의정부 정면을 방어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한국 전쟁 초반 의정부 전투서울 방어 전투를 거치며 1950년 7월 5일 사실상 해편되었다가 8월 대구에서 3, 5, 8연대 외 당시 제 6보병 사단 소속 이었던 16포병대대로 재편되었다.

이후 영천지구전투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2개 사단을 섬멸하여 연합군의 반격작전을 위한 일대 전기를 마련하였고 이후 북진을 거듭, 1950년 10월 18일에는 평양에 최선두로 입성하여 조선인민군 사령부로 사용하던 김일성대학 옥상에 태극기를 게양하였다. 28차례의 주요전투에서 적 사살 2만3000명, 포로 6400여 명, 장비노획 2만9000여 점의 전과를 올렸다. 한국 전쟁 이후 1960년 4월부터 1976년 6월까지 45회에 걸친 대침투작전에 참가해 무장공비 31명을 사살하고, 3명을 생포하는 등 사단 창설 이래 대통령 부대표창 13회를 수상하기도 했다. 1963년 9월6일 현위치인 화천군 상서면 신대리에 주둔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부대 편제[편집]

  • 제3보병연대 (연승)
  • 제5보병연대 (독수리)
  • 제8보병연대 (상승)
  • 포병연대 (박살)
    • 제16포병대대 (충무. 최초 창설 포병 6개 대대 중 하나였으며, 6.25전쟁 당시 제6보병사단이었으며, 춘쳔-홍천전투 승전부대였다.)
    • 제56포병대대 (을지)
    • 제57포병대대 (해산)
    • 제637포병대대 (왕자)
  • 직할대
    • 본부대
      • 군악대
    • 헌병대
    • 통신대대
    • 정비대대
    • 수색대대
    • 공병대대
    • 의무근무대대
    • 전차대대
    • 방공대대
    • 화학대
    • 보급수송대대
    • 보충중대

참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