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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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 사고
여객선 침몰 지점 (대한민국)
여객선 침몰 지점
출항지 인천  
도착예정지 제주  
날짜 2014년 4월 16일
시간 오전 8시 48분경 추정 (KST)[1]
위치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인근 해상[2]
좌표 북위 34° 13′ 05″ 동경 125° 57′ 00″ / 북위 34.2181° 동경 125.95° / 34.2181; 125.95좌표: 북위 34° 13′ 05″ 동경 125° 57′ 00″ / 북위 34.2181° 동경 125.95° / 34.2181; 125.95
최초 보고자 제주해양경찰서
결과 침몰
탑승자 476명
사망자 294명
실종자 10명
생존자 172명

세월호 침몰 사고(世越號沈沒事故)는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48분경 대한민국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부근 해상에서 청해진 해운 소속의 인천발 제주행 연안 여객선 세월호가 전복, 침몰한 사고이다.[3]이 사고로 탑승인원 476명 중 294명이 사망하고 10명이 실종되었다.[4]

배경

청해진 해운

인천시 중구에 본사를 둔 청해진해운은 1999년 2월에 창립한 연안여객선사로, 4척의 여객선으로 인천-제주, 인천-백령, 여수-거문도의 3개 항로를 운항하였다. 2003년에는 일본에서 대형 카페리 오하마나호를 들여와 운용하였고, 2013년 3월에는 세월호를 들여왔다.[5]

2009년 대한민국 해운법 시행규칙이 개정되었다. 이때 여객선 운용 시한이 진수일로부터 20년에서 30년으로 늘어났고, 청해진해운은 일본에서는 운용시한 상 폐선에 가까운 18년된 세월호(1994년 건조)를 사들여 선령 20년의 오하마나호(1989년 건조)와 함께 운항할 수 있었다. 당시 국토해양부는 "여객선의 선령(船齡) 제한을 완화하면 기업 비용이 연간 200억원 절감될 것"이라며 규제완화에 대하여 논평했다.[6]

이후, 청해진해운은 2012년 10월 세월호를 담보로 산업은행에서 개보수 자금 30억원 등 100억원의 차임급을 받았다. 이중 상당한 돈이 세월호 증축에 사용되었고, 이후 톤수 239톤·탑승 가능정원 116명이 늘어났다. 선박 설비 안전 검사 기관인 한국선급은 세월호의 증축 등에 대하여, 2차례에 걸쳐 문제가 없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구명정이 접근하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기울어지며 침몰하는 원인 중 하나가 무리한 증축 때문이라는 전문가들의 견해가 있다.[7]

청해진해운은 여객선을 임의대로 노선에 추가 투입해 출항시킨 뒤, 관계 당국에 통보하여 과징금 30만원을 물기도 했다.[7]

청해진해운은 세월호의 출항 전 운항관리자에게 차량 150대, 화물 675톤을 실었다고 보고했으나, 사고 이후에 차량 180대, 화물 1157톤이 실린 것으로 밝혀졌다.[7]

인천-제주 항로를 독점해 온 청해진해운은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한 세월호 사고의 책임을 물어 2014년 5월 면허가 취소되었다.[8]

선원

대한민국의 내항선 선박직(선장·항해사·조타수·기관사 등) 대부분은 1년 이하 계약직으로 일하는 것이 대부분이며, 사고 당시 세월호 선장도 월 270만원의 1년 계약직이었다. 이에 직업적 안전성이 떨어지니 소속감이나 사명감을 기대하기가 애초에 어렵다는 지적을 받았고, 실제 선원에 대한 교육 관리도 열악했다. 청해진 해운은 2013년 선원 교육비용으로 54만 1천원을 썼다.[9][7]

세월호

1994년 6월 일본 나가사키의 하야시카네 선거(林兼船渠)[내용주 1] 에서 건조한 여객·화물 겸용선(RoPax, RORO passenger)[10] 으로 일본 마루에이 페리 사에서 '페리 나미노우에'(フェリーなみのうえ)라는 이름으로[11][내용주 2] 18년 이상 가고시마~오키나와 나하 간을 운항하다가 2012년 9월 퇴역하였으며 청해진해운이 2012년 10월에 중고로 도입하여 선미쪽에 증축·개조 작업을 거친 후 2013년 3월부터 인천-제주 항로에 투입하였다.[12][13][14] 세월호의 이름은 "세상(世)을 초월(越)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15]

세월호는 총 배수량 6,835톤에 전장 145m, 선폭 22m이고, 21노트의 속도로 최대 264 마일을 운항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객 정원 921명에 차량 220대를 실을 수 있으며, 적재 한도는 3,794톤으로 되어 있다.[16][17]

세월호의 내부는 5층으로, 갑판 아래에 위치한 1층과 2층에는 화물칸, 갑판 위의 3층과 4층에는 승객을 위한 객실이 마련되어 있고, 5층에는 조타실과 승무원실, VIP실이 있는 것으로 보도되었다.[12]

인천-제주 항로

인천-제주 항로는 1995년 5월에 처음으로 개설되었다. 인천-제주 항로를 처음으로 운항한 것은 청해진해운의 전신격인 ㈜세모의 '세모고속페리'호였다. 세모고속페리호는 최대 5백 명의 승객과 차량 100여 대를 싣고 편도 16시간으로 인천항과 제주항 사이를 주 3회 왕복하였다.[18][19] 2001년에는 청해진 해운이 춘양호를 추가로 투입하여 청해진고속페리1호와 함께 최대 600여 명의 승객을 싣고 편도 13시간으로 1일 1회 운행하였다.[20] 2003년 3월에는 6,322톤급의 대형 카페리 오하마나호가, 2013년 2월에는 6,852톤급의 세월호가 두 선박을 대체하였다.[5][21]

인천-제주 항로는 세월호 침몰 사고 직후 휴항되었으며, 2014년 5월 청해진 해운의 면허 취소로 운행이 중단되었다.[22][23]

사고 해역

사고가 발생한 해역은 맹골수도가 위치한 곳으로,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맹골도거차도 사이이다. 이 곳은 이순신 장군이 명량대첩을 승리로 이끈 울돌목 다음으로 조류가 세다(최대 6노트). 섬 주변에는 암초가 많지만 항로로 이용되는 수로 자체는 깊이 30m 이상으로 암초 등 항해 장애물이 없다.[24]

사고 및 구조

사고는 2014년 4월 16일 오전에 전라남도 진도군 병풍도 부근에서 발생하였다. 이 사고로 탑승자 476명(잠정) 중 172명이 구조되고 304명이 사망·실종되었다.

  • 사고 발생 전날 (2014년 4월 15일)
안개 때문에 출발이 2시간 30분 지연된 세월호는 오후 9시에 476명(잠정)의 인원과 짐을 싣고 인천항을 출발하였다.[5] 세월호에는 단원고등학교 2학년 학생 325명, 교사 14명, 일반인 104명, 선원 33명이 탑승하였다고 알려졌다.[25][26] 세월호에는 차량 180대, 화물 1157톤이 실렸음이 사고 후에 밝혀졌는데,[7] 이로부터 인천항을 출발할 당시의 차량과 화물, 승객의 체중을 모두 더하면 적재 한도를 초과하는 것으로 계산되기도 한다.[17]
  • 사고 발생일 (4월 16일)
선박자동식별장치의 항적 자료와 생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세월호는 오전 8시 30분경 맹골도와 서거차도 사이를 최고 속도로 진입하였고, 항로를 바꾼 후 지그재그로 운행하다가 8시 49분경에 병풍도 부근에서 다시 급격히 항로를 바꾸어 급선회했다. 항로는 'J'자를 그리며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27][28]
오전 8시 52분 32초 (KST), 전남소방본부 119상황실에 최초로 신고 전화가 걸려왔다. 최초 신고자인 학생이 던진 첫마디는 "살려주세요"였고, 이후 그는 배가 침몰하고 있음을 알렸다. 당시 신고전화를 받은 전남소방본부 관계자는 내용을 듣고 목포해경을 연결했다 (54분 07초). 그런데 목표 해경은 최초 신고자에게 제일 먼저 경도와 위도를 말하라며, 배의 위치를 물었다. 당황한 최초 신고자가 '네?'를 연발하자 119관계자는 그가 탑승객임을 알렸다. 하지만 해경은 반복해서 GPS를 거론하는 등, 위치를 물었다. 그로부터 1분 30초 뒤 해경 측은 선박 이름이 무엇인지 물었고, 최초 신고자는 "세월호"라고 답했다(이러한 시간 지연에 대하여, 후일 박진수 한국해양대 항해학부 교수는 선박 이름부터 묻는 것은 기본임을 지적하고 "구조를 하려면 순서를 누가, 어디서, 무슨 사고를 당했는지…우리는 육하원칙이 있지 않습니까"라고 비판했다). 세월호는 최초 신고보다 3분 후, 사고 해역과 가까운 진도관제센터(VTS)가 아닌 제주관제센터(VTS)에 교신해 배가 침몰 중임을 알렸다(8시 55분). 그리고 다시 이 제주관제센터(VTS)는 목포해경이 아닌 제주해경에 연락했고(8시 56분), 8시 58분에 비로소 목포해경이 사고를 접수했다(이 사고접수도 세월호 승무원들이 아닌 학생의 신고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에 추후 상황을 파악한 진도관제센터(VTS)가 9시 6분에 세월호와 교신하여, 세월호를 호출하여 직접관제를 시작하였다.[29][30][31] 9시 17분의 진도관제센터와의 교신에서 세월호 선원은 배가 50도 이상 기울어져 있다고 보고하였다.[32]
항해 경로 Position on chart
진도관제센터와 교신 내용에 따르면, 9시 7분에 2,755톤급의 유조선 둘라에이스호가 진도관제센터와 교신 후 세월호를 육안으로 확인하였다. 둘라에이스호는 세월호의 구조를 위해 접근하였고, 9시 29분에는 세월호에서 구조를 위해 대기하고 있는 둘라에이스를 확인하였다. 세월호는 좌현에 대기할 것을 요구하였으나 두라에이스호는 밀물때여서 계속 밀리고 있었다고 응답하였다.[32]
사고 접수 후, 해양경찰은 출동 및 구조에 나섰다. 해경은 헬기 1대와 경비정 20척을 현장에 투입해 헬기로 승객 6명을 구조했고, 100 여명은 경비정에 옮겨 태워 인근의 진도목포시 등지로 이송했다.[33] 대한민국 해군도 구조작업을 위해 사고 해역으로 유도탄고속함 1척과 고속정 6척, 해상초계가 가능한 링스헬기 1대 등을 투입했다.[34][35] 민간 어선 선장 박영섭(56)은 16일 새벽 조업을 마치고 귀항준비를 하고 있었다. 박 선장은 오전 9시 3분경 수협목포어업통신국이 송신한 긴급 구조 요청 신호를 받고, 병풍도 북쪽 1.5마일 해상에서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 중이라는 사실을 확인. 바로 뱃머리를 병풍도 쪽으로 돌렸다. 오전 10시 30분경 사고 현장에 도착한 박 선장은 해경과 구조작업에 참여해 승객 27명을 구조하였다.[36] 조도면 청년회원 김형오(47) 역시, 이장단장으로부터 메시지를 받고 자신의 1.1t급 소형어선을 몰고 구조작업에 동참하여, 총 25명을 구조하였다. 그 외에도 메시지를 받고 10여분 만에 출항준비를 마친 조도면의 어선이 60여척, 어민은 150여명에 달했으며 전속력으로 도착까지 20여분이 소요되었다고 전해져 초동구조에 민간 어선들이 큰 역할을 하였음이 밝혀졌다.[37] 오전 9시 19분부터 YTN 을 시작으로 각 언론에서 세월호의 침몰 소식을 긴급 타진하기 시작했고, 오전 10시부터 정부는 여객선 침몰 사고에 대응하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를 구성하여 가동에 들어갔다.[38]

수색 및 인양

수색 및 인양 작업은 사고 발생 이후로 130여일이 지난 현재(8월 25일)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바다 밑 수색은 거센 조류와 탁한 시야, 낮은 수온으로 작업에 큰 어려움을 겪었으며, 작업 일정이 길어지면서 피로의 누적과 그에 따른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 사고 발생일 (4월 16일)

해양경찰특공대, 해군 SSU, 해군 UDT, 육군 특전사의 잠수요원들이 수색, 구조 작업에 투입되었다.[39] 그러나 조류가 거세어 작업이 어려웠으므로, 정조 시간대에 맞춰 오후 6시 30분부터 잠수부 4명을 투입하여 1차 수색 작업을 시작했다.[40] 20시가 되면서 실종자 수색 작업이 중지되었다.[41]

  • 사고 발생 2일(4월 17일)

해경은 정조 시간대인 17일 1시 즈음부터 조명탄을 쏘아 수색을 재개할 예정이라고 발표하였다.[41]

오전 10시 45분까지 집계된 총 사망자는 9명이었다. 오후에는 민간 잠수부가 실종자들을 수색하다가 파도와 바람에 휩쓸려 실종되었다가 20분 만에 낚싯배에 발견되어 구조되는 등 조류의 영향이 매우 심했다.[42][43][44] 오후 8시 30분, 시신 1구를 추가 수습하였다(사망 10명).[45] 10분 뒤, 서해지방해양경찰청은 굵어진 빗방울과 조류 때문에 중단했던 수중 수색을 재개한다고 밝혔다. 이때 선내진입을 위해 무인 로봇을 동원하였다.[46] 오후 11시 29분까지, 시신 8구를 추가 수습하였다(사망 18명).[47][48][49]
  • 사고 발생 3일(4월 18일)
오전 1시까지 시신 6구를 추가 수습하였다(사망 24명).[50][51] 또한 이 시간부터 세월호를 인양할 크레인 3대가 속속 도착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선체인양 작업을 시작한다면 선체가 흔들려 에어포켓에 해수가 밀려들 위험성이 있다. 또한, 선체인양 작업 돌입은 사실상 구조작업의 포기를 의미한다. 따라서 선체인양 시작 시기에 대해서는 이 시간 기준으로 정해진 바가 없었다.[52] 오전 1시 14분, 시신 1구를 추가 수습하였다(사망 25명).[53] 오전 8시 경, 썰물로 완전히 잠기지 않고 남아 있던 뱃머리 부분의 높이가 1m로 줄었다. 17일에는 2~3m 높이, 20~30m 정도의 길이였다. 이때부터 수면 위에 남아 있던 선체 일부가 점점 보이지 않기 시작하였다.[54] 오전 10시 56분, 시신 1구를 추가 수습하였다(사망 26명). 이 시신은 사고 선박 450m 인근 해역에서 발견되어, 시신이 멀리 떠내려 갈 우려가 대두되었다.[55] 오후 12시 50분에는 시신 2구를 추가 수습하였다(사망 28명).[56] 오후 3시 38분, 서해지방해양경찰청은 구조대 잠수요원들이 선내 2층 화물칸의 문을 여는데 성공하였고 객실 진입은 시도 중이라고 밝혔다.[57] 그러나 곧 잠수요원들은 화물 때문에 진입로를 개척할 수 없었다. 오후 3시 56분, 가이드라인마저 끊어져 수색을 더 전개할 수 없게 된 잠수요원들은 일단 철수하였다.[58] 이후 잠수요원들은 다시 3층 입구에 도착해, 다시 진입을 시도하기 시작하였으나 결국은 진입할 수 없었다.[59] 오후 11시 45분, 시신 1구를 추가 수습하였다(사망 29명).[60]
  • 사고 발생 4일(4월 19일)
오전 5시 50분경에 잠수 요원들이 3층에서 4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확보하는 도중 4층 객실 유리창으로 구명조끼를 입고 있는 시신 3구를 발견하였다. 그들은 유리창을 깨려 하였으나 실패하였다.[61] 오후 11시 48분까지 시신 4구를 추가 수습하였다(사망 33명).[62][63][64][65]
  • 사고 발생 5일(4월 20일)
오후 5시까지 시신 25구를 추가 수습하였다(사망 58명).[66][67][68][69][70] 이후 대한민국 정부는 세월호 침몰 사고와 관련, 경기도 안산시와 전남 진도군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였다.[71]
  • 사고 발생 6일(4월 21일)
오전 7시 20분까지 시신 5구를 추가 수습하였다(사망 64명).[72] 다이빙벨에 대한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낙관론)와 황대식 해양구조협회 본부장(비관론)이 대립한 가운데. 오후 12시 40분경,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가 바지선에 다이빙벨을 싣고 진도 팽목항에서 세월호 침몰 현장으로 출발하였다.[73][74] 그러나 다이빙벨 사용은 곧 불허되었다. 정부는 "다이빙벨은 시야확보가 매우 제한적"이라면서 "격실구조가 복잡한 선체내부 수색의 경우 공기공급 호스가 꺾여 공기 공급이 중단될 가능성과 오랫동안 수중체류로 인한 잠수병에 노출될 위험성이 있다"고 이유를 밝혔다.[75] 오후 9시 15분까지, 시신 13구를 추가 수습했다(사망 87명).[76][77][78][79]
  • 사고 발생 7일(4월 22일)
오후 7시까지 시신 26구를 추가 수습했다(사망 113명).[80][81] 또한, 22일부터 사흘 간 조류가 가장 느린 소조기였다. 이 잠수요원들은 24시간 집중수색에 돌입했다.[81] 잠수요원들은 식당과 노래방 등 편의시설이 있는 3층과 객실이 몰려 있는 4층 수색에 집중했다. 특히 승객이 많이 모여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3층 식당 칸 진입이 그들의 목표였다. 잠수요원은 21일에 오전 식당 칸으로 가는 진입로를 이미 개척했기 때문에 식당 출입문 개방에 주력하였지만 식당 옆 라운지에서 사망자를 발견했을 뿐 진입이 여의치 않았다. 해경 측에서는 "라운지와 식당 칸 사이에는 격벽이 있는데, 그것을 부수는 게 쉽지 않았다"고 말하였다. 격벽을 뚫더라도 뒤엉켜 있는 부유물은 수색 시간을 더디게 하는 2차 장애요인이며, 일부 구명조끼를 입지 않았던 탑승자들의 유실 가능성도 컸다. 수색이 집중되더라도 조류가 다시 빨라지기 전인 24일까지 구조를 완료하는 것도 불투명했다. 설치된 가이드라인 5개로는 1회 수색 시 2인 1조로 잠수부 10명만 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황에 따라 가이드라인 5개를 추가로 설치할 수 있지만, 이를 위해서는 하루 이틀의 시간이 또 필요했다. 이미 일부 시신의 훼손이 시작되고 있어서 얼굴만으로 신원을 알아보기 어려워질 것이 우려되었다.[82] 오후 3시 40분, 우여곡절 끝에 식당 진입에 성공하였다.[83] 오후 9시까지 시신 8구를 추가 수습하였다(사망 121명).[84]
  • 사고 발생 8일(4월 23일)
오전 10시 10분까지 시신 20구를 추가 수습하였다(사망 141명). 시신은 주로 4층 전체 격실에서 다수 발견되었다.[85] 익일 진입하였던 3층 식당에는 한 명의 실종자도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날은 3~4층 다인실을 중심으로 수색작업이 이루어졌다. 예상과 달리 식당보다 다인실 등 객실에서 실종자들이 다수 발견된 것은 침몰 사고로 선체가 기우는 등 이상 징후가 보이자 학생들이 급히 객실로 이동했고, 이후 '움직이지 말고 제자리를 지키라'는 선내방송을 듣고 객실에 머물다 빠져나오지 못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대책본부는 현재 3~4층 객실의 창문을 깨고 객실 사이 격벽을 뚫어가며 수색작업을 진행 중이다. 정부는 "3층과 4층 객실 중 아직 들어가지 못한 곳을 동시다발적으로 수색하고 있다"며 "배가 우현 90도로 누워있는 상황에서 선체의 위쪽, 즉 우현의 3~4층 방들은 거의 탐색이 끝난 상태이며, 현재 중간에 위치한 방들을 탐색하기 위해 잠수사를 투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해상에서는 해경, 해군 함정외에도 저인망 어선들을 외곽에 배치해 실종자 유실 가능성에 대비하는 중이었다. 수색에 도움이 되는 다관절 해저로봇과 영상음파탐지기도 투입하기로 하였다. 오전 11시까지 시신 9구를 추가 수습하였다(사망 150명).[86] 수색상황은 호전되었지만, 선내 깊숙한 곳의 수색은 장비의 한계로 딜레마에 빠졌다. 가이드라인 설치가 일정부분 충족됐지만, 선내 깊숙한 곳을 수색하는 데는 장비와 잠수요원들의 물 속 작업시간 한계를 극복해야 했다. 산소통이 아닌 외부 공기 공급장치(에어컴프레셔)를 통해 몸에 연결된 공기호스로 물 속에서 호흡하는 머구리들은 입수 지점부터 수색대상 지점까지 도달할 수 있는 거리가 짧아 수색에 어려움을 겪었다(공기 공급장치 호스의 최대 도달거리는 100m이며 공기공급장치에서 선체까지가 55~70m이므로 선체 안에서는 약 30~40m 밖에 움직이지 못한다). 또, 조류로 공기호스가 늘어질 경우엔 도달거리는 더욱 짧아질 수 밖에 없었다. 반면에, 공기통을 등에 메고 잠수하는 스쿠버 다이빙 방식은 짧은 작업시간이 한계였다. 이들의 작업 제한 시간은 약 20분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었다.[87] 오후 11시까지 시신 9구를 추가 수습했다(사망 159명).[88]
  • 사고 발생 9일(4월 24일)
오후 7시까지 시신 16구를 추가 수습하였다(사망 175명).[89] 이날은 수색에 가장 적합한 소조기의 마지막 날로, 오후부터 유속이 빨라지기 시작하기에 수색 작업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했다. 해군은 24일 여명 이후 조명탄 900발을 동원한 합동구조팀이 조명탄 900여 발을 준비, 야간에도 구조 및 수색작업을 이어갈 계획이라 밝혔다.[90] 사람들은 잔잔한 물살 때문에 혹시 성과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기대했지만, 생존자 소식은 여전히 없었다. 해군은 다관절 탐사 로봇인 크랩스터를 투입, 사고 후 최초로 선체 전체에 대한 초음파 영상을 촬영하였다. 그러나 이 영상을 수색에 활용하려면 분석 등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었다.
  • 사고 발생 10일(4월 25일)
수색은 3층 앞쪽 객실과 4층 객실이 중심이었다. 4층 뒷부분 단체객실에는 사고 당시 학생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3층 뒤쪽 객실은 탈출한 선원들이 사용하던 곳이어서 수색에서 제외되었다. 세월호는 이미 왼쪽으로 90도 기운 채 가라앉은 상태였고, 선박 왼쪽은 해저면에 닿아 있고 오른쪽이 수면을 향한 상태였다. 수색팀은 세월호 위에 떠 있는 바지선에서 세월호의 오른쪽 창문 등 주요 진입지점으로 연결된 가이드라인을 이용, 한 번에 잠수부 6~8명을 투입시키는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했다. 익일에 이어 오전까지 3, 4층 우현 객실 수색을 모두 마치고 복도로 수색 범위를 넓혔다. 복도로 향한 우현 객실문을 열거나 창문을 깨고 진입했다. 일부 중앙 객실 진입에도 성공해 수색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시신 10구를 수습했다(사망 185명).[91] 그러나 일부 중앙 객실에는 들어갈 수 없었다. 선체가 기울어져 발 아래쪽에 있는 중앙 객실문을 당겨서 열어야 했고, 캐비닛 등 이물질이 문을 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부유물과 시계 역시 문제가 되었다. 사고 당시 배 왼편부터 물에 잠겨 좌현 객실에 시신이 다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설상가상 유속이 느린 소조기가 끝나 다시 매일 초속 0.1~0.2m씩 유속이 빨라지기 시작할 것으로 전망되었으나, 이를 극복할 별다른 대책이 없는 상태였다.[92]
  • 사고 발생 11일(4월 26일)
0시 50분경 3층 중앙식당에서 시신 2구를 추가로 발견해 수습하였다(사망 187명).[93] 기상 상황이 전날보다 좋지 않아 조류와 파고, 풍속이 전날보다 많이 강해졌고 밤부터는 비까지 오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새벽에 다이빙벨을 투입하려고 했으나 설치하는데 실패했고, 끝내 팽목항으로 철수했다. 조류가 강해지는 중이라 다이빙벨을 사용하려면 4월 28일 이후에나 가능할 거 같다고 하였다. 또, 선내에 있는 물건들 때문에 수색 작업 자체에 난항을 겪고 있다고 하였다.[94] 미국 해군 구조함인 세이프가드 함이 새벽이 도착해 구조 활동을 도울 예정이었으나 물품 수급 문제 때문에 중간기지에 들리게 되어 몇 시간 지난 뒤에 도착하였다.[95]
  • 사고 발생 12일(4월 27일)
14시경 선내에서 시신 1구를 수습하는데 그쳤다(사망 188명).[96] 팽목항뿐 아니라 사고 해역도 바람이 거세게 불면서 다시 유속이 빨라지고 있었고, 잠수사들은 조류, 시야를 다 뚫고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객실 안으로 들어가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먼저 용접을 통해서 벽면이나 문을 뜯어내고 들어가는 방법, 또 하나는 소량의 폭약을 사용해서 뚫고 들어가는 방법 두 가지 대안이 제시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자칫 폭약이나 용접 방법을 쓸 경우 가까이 붙어 있던 시신이나 혹시나 생존해 있던 사람이 다칠 위험이 있으므로 해군은 이런 방법은 가족들의 동의가 선결된 다음에 쓰겠다는 방침을 정하였다. 풍랑예비특보가 오전에 내려졌고, 오후에는 풍랑주의보로 격상되었는데, 이 해역에 풍랑주의보가 내려진 건 이 날이 처음이었다.[97]
  • 사고 발생 13일(4월 28일)
14시 10분경 단원고 남학생으로 추정되는 시신 1구를 수습했다(사망 189명).[12] 해경이 침몰당시 최초 구조상황 영상을 공개했으며, 기관직의 8명은 뒤쪽으로, 항해직 7명은 조타실로 탈출한 모습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중앙수사본부가 카카오톡의 압수수색을 통해 확인한 결과, 세월호에서 나온 마지막 카카오톡 메시지는 10시 17분에 학생이 보낸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 시각은 세월호가 90도로 기울어져 침몰하던 순간이었다.[98]
  • 사고 발생 14일(4월 29일)
민관군 합동구조팀은 이날 세월호 5층 로비와 4층 선수 좌현 방 등을 수색했고, 그 결과 오후 4시까지 사망자 16명의 시신을 추가로 수습했다(사망자 205명).[99] 박근혜 대통령은 이 날 8시 55분경 안산 화랑유원지를 방문해 조문하였다. 박 대통령은 조용하고 차분한 가운데 추모의 뜻을 전하고 유족을 위로하기 위해 일반인의 조문이 시작되기 전에 일찍 분향소를 찾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이번 사고에 대한 사과 없이 떠나자 일부 유족들은 분향소 한 가운데 큼지막하게 놓여있는 박 대통령 등 고위 공무원과 정치인들의 조화를 치울 것을 요구했다. 결국, 박 대통령, 강창희 국회의장, 정홍원 총리,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최고위원, 강병규 안전행정부 장관,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 등의 조화는 모두 밖으로 치워졌다.[100] 또한 방송에 공개된 분향소 방문 장면에서 박 대통령이 위로한 할머니가 유가족이 아닌 정부 측이 동원한 인물로 해당 장면이 연출되었음이 밝혀졌다.[101]
  • 사고 발생 15일(4월 30일)
15시 44분경까지 7명의 시신을 추가로 수습했다(사망자 212명).[102] 사리 기간이지만 기상 상황은 좋은 편이라서 파도가 전날보다 약하다는 전망이 나왔다. 한편, 이종인 대표의 다이빙 벨은 정조시간인 새벽 2시 39분을 전후해 투입을 시도,[103] 2시 55분께 버팀줄 선체 이음매 조이기에 성공했으나, 버팀줄에서 선내 진입구까지 단거리 유도선 설치에 실패했다. 높은 파고로 알파 바지선의 가로·세로 움직임이 컸기 때문이라고 한다.[104] 오후 3시 45분에 다이빙벨을 선미 쪽에 투입했지만 투입 과정에서 잠수부 1명의 공기호스가 다이빙벨 운용 와이어에 씹혀 터지는 바람에 다이빙벨은 투입된지 28분만에 밖으로 건져졌다.[105]
  • 사고 발생 16일(5월 1일)
전날과 마찬가지로 4층 뱃머리 좌측과 5층 로비를 집중 수색을 했고, 그 결과 희생자 9명이 추가로 발견되었다(사망자 221명). 물살의 흐름이 빠른 사리 기간이여서 구조 작업이 여의치 않고, 선체로 진입해도 여러 부유물로 가로막혀 문을 열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구조팀은 일단 주요수색 대상 객실 64개 가운데 44개 객실에 대한 수색을 끝마쳤다.[106] 그날 새벽, 사고 해역에 다이빙벨을 투입한 뒤 잠수부 두 명이 세월호 선내에 진입해 각각 20여 분씩 수색작업을 벌였지만 실종자들을 찾지는 못했다. 선내 진입에 성공했지만 기존에 설치된 가이드라인들이 많아 작업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이후 이 대표는 오전 11시쯤 사고 해역에서 바지선과 다이빙벨을 철수시켰으며, 이 대표는 실종자 가족들에게 죄송하다고 말했다.[107]
  • 사고 발생 17일(5월 2일)
16시 15분경까지 7명의 시신을 추가로 수습하였다(사망자 228명).[108] 당일 서울에선 지하철 추돌사고까지 겹쳤고, 생사를 알지 못하는 실종자 수는 74명이 남아 있었다. 실종자 가족들이 가이드라인이 6개인데 왜 4개팀씩 밖에 잠수를 못 하느냐고 묻자, 해경은 잠수 요원의 통신기가 고장났다고 밝혀 가족들이 실망하기도 했다. 도면과 실제 배 구조가 달라서 수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하며, 검경합동수사본부도 도면과 실제 구조가 다르다는 관련자의 진술도 확보하고 불법 구조 변경에 대해서 수사하였다. 또, 수색 기간이 길어지면서 잠수 요원들의 피로도 많이 쌓이는 상황인데, 대책으로 민간 잠수요원들을 모집하고 있다고 하였다.[109]
  • 사고 발생 18일(5월 3일)
16시 50분경까지 8명의 시신을 추가로 수습하였다(사망자 236명).[110] 조류가 센 사리기간이 끝남과 동시에 1차 수색이 끝나는 날이다. 민관군 합동구조팀은 새벽 정조 시간에 맞춰 잠수 수색을 위해 대기했지만 사리 기간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드센 조류에 잠수를 하지 못했으며,[111] 12시 10분경에 2명의 희생자를 수습하면서 수색을 재개하였다. 구조팀은 세월호 선체 111개 격실 중 실종자가 남아 있을 것으로 보이는 64개를 우선 수색 대상으로 삼고 있다. 야간에는 구조팀 99명이 투입돼 4층 선수 중앙 격실을 계속 수색하는 한편, 1차 수색을 마친 3층 중앙부와 4층 선미 다인실을 재수색할 계획이었다. 해상에서는 조명탄과 어선의 조명을 지원받아 함정 139척, 민간선박 759척이 그물망식 수색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대책본부는 쌍끌이 어선, 닻자망, 낭장망, 안강망 등을 이용해 시실 유실 방지를 위한 3중 저지망을 설치하였다. 하지만 가방과 슬리퍼, 잠옷 등이 사고해역으로부터 최대 30㎞ 밖에서 잇따라 발견됨에 따라 시신 유실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수색작업이 장기화되면서 시신 훼손 우려도 커지고 있었다. 이에 따라 대책본부는 시신 훼손 최소화를 위해 냉매제 500개를 긴급 확보했으며 희망 가족을 대상으로 시신 외모를 복원하는 서비스도 지원하였다.[112]
  • 사고 발생 19일(5월 4일)
18시 11분경까지 12명의 시신을 추가로 수습하였다(사망자 248명).[113] 객실 수가 많은 4층 중앙 뱃머리쪽을 수색하면서 한 차례 수색을 마친 3층 중앙과 4층 뱃머리쪽을 다시 한 번 수색할 계획이라 밝혔지만,[114] 오후 들어 바람이 세지고 파고가 높게 일었다.[113]
  • 사고 발생 20일(5월 5일)
오후 7시 26분경까지 14명의 시신을 추가로 수습하였다(사망자 262명).[115]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실종자의 시신 유실에 대비해 쌍끌이 저인망 어선과 안강망을 추가로 투입하고 침몰지점 인근까지 그물을 설치했다. 구조팀은 총 111개 공간 중 64곳에 실종자가 있을 것으로 보고 이 가운데 61곳의 수색을 완료한 구조팀은 로비, 계단, 매점, 오락실, 화장실 등 공용구역을 수색할 계획이다. 또 이미 수색한 공간 중에서도 다인실 등을 다시 수색하고, 15일까지 실종자를 모두 찾지 못하면 1·2층 화물칸도 살펴볼 계획이다.[116]
  • 사고 발생 21일(5월 6일)
저녁 8시 47분경까지 6명의 시신을 추가로 수습했다(사망자 268명).[117] 유속이 느린 소조기를 맞아 곧바로 수색을 재개, 세월호 객실 64개를 모두 개방했다. 사고 현장에서 수색작업 중이던 이모씨(잠수사)가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발생 후 3주가 지나고 있지만 구조현장 최일선에서 탈진과 잠수병에 시달리는 민간잠수사들에 대한 지원은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118]
  • 사고 발생 22일(5월 7일)
9시 27분경 4층 선미 부분에서 여성으로 추정되는 시신 1구를 수습하는데 그쳤다(사망자 269명).[119] 정부는 세월호 탑승객 현황을 또 다시 정정했다. 구조자수를 174명에서 172명으로 조정한 것인데, 이 시점에서 사망자는 269명, 실종자는 35명으로 집계되었다.[120] 물살이 느려지는 소조기 첫날로 정조 시간 외에도 수색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으며 10일까지 1차 수색을 마무리한 64개 격실 가운데 일부를 다시 수색하고 화장실, 매점 등 공용공간 47곳도 수색하기로 했으며 화물칸으로 수색 범위를 넓히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 유실방지 전담반(TF)은 진도군 내 양식장 2천172㏊를 대상으로 어민들에게 자율수색을 요청했다.[121] 한편, 인명피해가 전 날에 이어 또 다시 발생했는데, 침몰 해역에서 대기 중인 목포해양경찰서 3009함에서 해양경찰청 인천 항공대 소속 정모 경사가 쓰러져 의식 불명에 빠졌다.[122]
  • 사고 발생 23일(5월 8일)
21시 27분경까지 4명의 시신을 추가로 수습했다(사망자 273명).[123] 전 날 수색작업에 투입됐다가 뇌출혈로 쓰러진 인천해경 항공대 소속 정모 경사가 다행히 의식을 되찾았다.[124] 새정치민주연합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는 오전 7시 20분께 진도 실내체육관을 찾아 실종자 가족들을 위로하고 자원봉사자들을 격려했다.[125]
  • 사고 발생 24일(5월 9일)
오후 9시 42분쯤 4층 선수 좌현 격실에서 남학생으로 보이는 시신 1구를 추가로 수습하는데 그쳤다(사망자 274명).[126] 1노트 가량 유속이 지속된 데다 세월호 일부 공간에는 내부 구조물까지 무너져 수색을 더 어렵게 하고 있다. 석면 위에 목재, 섬유 소재, 합판 등을 덧댄 객실 벽과 천장 중 물에 불고 진입과정에서 문을 여닫는 충격을 받은 부분이 붕괴 위험이 있다고 범정부 사고대책본부는 전했다. 특히 진입로가 막혀 화장실 등을 통해 우회 통로 개척에 힘쓰고 있는 4층 선수 중앙 좌현 쪽 객실의 붕괴 상황이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다.[127]
  • 사고 발생 25일(5월 10일)
오전 0시 53분경 시신 1구를 추가로 수습하는데 그쳤다(사망자 275명). 바지선 위로 물결이 넘어올 정도로 파도와 바람이 강해 재입수가 불가능한 상황이 됐다.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오전 진도군청에서 열린 정례 브리핑에서 "이날 오전 4시에 사고 해역에, 오는 11일 오전 기준 풍랑 특보 발령을 위한 예비특보가 내려짐에 따라 현재 수색 작업이 잠정 중단된 상태"라고 밝혔다.[128] 세월호 선체의 붕괴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으며, 범정부사고대책본부에 따르면 붕괴 위험이 확인된 곳은 5층 선수 승무원 객실 통로와 중앙 특실 통로, 4층 선수 좌현 8인실 통로와 선미 30인실 통로 등 4곳이다.[129]
  • 사고 발생 26일(5월 11일)
민·관·군 합동구조팀은 전날 오전 3시 49분께부터 빠른 유속과 높은 파도로 수색작업을 잠정 중단한 데 이어 이날도 기상악화로 잠수사들의 수중 수색은 물론 항공 수색과 해상 방제작업도 잠정 중단됐다. 수중 수색이 중단되자 실종자 가족들은 이날 범정부사고대책본부에 '붕괴 위험이 있는 객실에 대한 진입 방안과 안전 대책을 조속히 수립해달라'고 호소했다. 대책본부는 기상이 좋아지는 대로 수색활동을 재개할 방침이며 칸막이 약화로 붕괴 위험이 있는 4층 선미 좌측은 4층 중앙부 진입로를 통해 벽을 뚫고 진입하기로 잠정 결정했다. 사고해역에는 풍랑주의보가 내려진 한편, 수사본부는 승무원 15명을 모두 일괄 기소하였다. 범정부사고대책본부가 혹시 모를 시신 유실에 대비해 투하한 표류(漂流)부이(buoy)가 추자도 동측 35km 지점에서 확인됐다.[130]
  • 사고 발생 27일(5월 12일)
이날 오전 10시 범정부대책사고본부는 "10일 오전부터 중단됐던 수중 수색 작업을 이날 정오께 재개할 전망"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기상악화로 언딘리베로호가 정위치에서 약 50m가량 밀려났으며 이를 제자리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앵커 체인에 연결된 와이어가 끊어진 것이 발견됐다. 이에 따라 이날 오후 5시까지 와이어 연결 작업을 하는 바람에 수색이 재개되지 못했다. 이춘재 해경 경비안전국장은 이날 오후 5시 30분 진도군청에서 열린 범정부사고대책본부 정례 브리핑에서 "언딘리베로-미래호 바지선 두 척 모두 정위치에 있다"며 "(정조시간인) 오후 6시 48분을 전후해 잠수사를 투입하려고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131] 사고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 대책위원회 유족 대표단 20여명은 실종자 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경기도 안산에서 전남 진도로 내려갔다. 이번 방문은 구조작업에 지친 실종자 가족들을 위로하고, 진도 인근 일부 섬 주민들이 요구하는 팽목항 개방 문제에 대해 협의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졌다. 진도 인근 일부 섬주민들은 팽목항에 구조작업을 위한 대책본부 등이 설치되면서 인근에 개방된 임시항이 낮은 수심으로 여객선 운항 횟수가 줄자 생업에 어려움이 있다고 호소해 왔다.[132]
  • 사고 발생 28일(5월 13일)
합동구조팀은 기상 악화와 선내 일부 구역의 칸막이 약화 현상때문에 지난 10일 새벽부터 수중 수색을 중단했다가 3일만인 이날 오전 0시 50분께 수색을 재개했으며, 잠수사 16명을 투입해 2시간여 동안 유도줄을 점검하고 3층 선미 통로, 4층 선수 좌측 통로, 4층 선미 다인실, 5층 중앙 통로 등을 수색한 뒤 낮 정조시간에 다시 잠수사들을 투입했다. 그 결과 사흘만에 시신 1구를 추가로 수습했다(사망자 276명).[133]
  • 사고 발생 29일(5월 14일)
합동구조팀은 이날 오전 7시 40분을 전후한 정조 시간대에는 거센 조류 때문에 수중 수색을 하지 못했으나 오후 1시 24분께부터 수색을 재개, 오후 2시 49분까지 1시간 30여분간 작업했으며, 이날 오후 1시 33분께 선체 선미 쪽에서 구명조끼를 착용한 채 떠오른 시신 1구를 수습한 뒤 4층 선수 좌측 객실에서 2구, 4층 선미 중앙 다인실 1구, 4층 선미 좌측 다인실 통로 1구 등 총 5구를 수습했다(사망자 281명). 합동구조팀은 이날 수색에서 4층 선미 다인실로 들어가는 우측 통로 입구와 4층 선수 좌측 통로에서도 선체 약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추가로 파악했다. 이에 앞서 선체 칸막이 약화로 붕괴 위험이 지적된 5층 선수 승무원 객실 통로와 중앙 특실 통로, 4층 선수 좌현 8인실 통로와 선미 다인실 통로 등 4곳을 합하면 위험 구역은 총 6곳으로 늘었다.[134]
  • 사고 발생 30일(5월 15일)
민관군 합동구조팀은 시신 3구를 추가 수습했다고 밝혔다(사망자 284명).[135] 물살이 빨라지는 대조기의 첫날이다. 다행히 오전에는 구름은 조금 끼어있지만, 비는 내리지 않고 있고 파도는 1m가 넘지 않아 비교적 잔잔하다. 바람과 파도는 수색하기에 나쁘지 않은 상태인데, 유속이 오늘 수색에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136] 스승의 날인 이 날, 안산 합동분향소에는 사망한 교사들의 많은 제자들이 찾아와 카네이션과 편지 등을 영정 앞에 두고 조문해 안타까움을 안겨주었다. 또한 많은 수의 제자를 잃은 단원고등학교를 비롯한 인근 중, 고등학교 교사들의 사연이 기사를 통해 소개되어 슬픈 스승의 날이 되었다.[137]
  • 사고 발생 31일(5월 16일)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 45분께 청와대에서 세월호 사고 가족 대책위원회 대표단과 면담한 자리에서 "마음고생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크실 텐데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정부의 부족했던 부분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이어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회의 안전 시스템을 근본부터 다시 바로잡고 국가대개조라는 수준으로 생각하면서 사회에 기초부터 다시 세우는 것이 안타까운 희생을 헛되게 하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138]
  • 사고 발생 32일(5월 17일)
민·관·군 합동구조팀은 이날 오전 3시 25분부터 4시 48분까지 1시간 20여 분 동안 잠수수색을 벌여 4시께 남성 시신 1구를 4층 선수 좌현 부분에서 수습했다(사망자 285명).[139] 기존에 수색작업을 하던 일부 민간 잠수사의 철수에 따라 범정부대책본부가 새로 확보한 8명의 잠수사를 수색 현장에 투입했다.[140] 민주노총참여연대 등 노동·시민단체들로 구성된 '세월호 참사 대응 각계 원탁회의'는 이날 오후 6시 청계광장에서 3만여명(경찰 추산 1만 1천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촛불 집회를 열고 진상 규명과 이를 위한 특별법 제정, 책임자 처벌 등을 촉구했다.[141] 한편,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한 달이 지나면서 민간잠수사들이 구조활동 중 잠수병으로 입원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142]
  • 사고 발생 33일(5월 18일)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이날 오전 4시 53분께 3층 선원식당에서 여성으로 보이는 시신 1구를 인양했다고 밝혔다(사망자 286명). 민관군 합동구조팀은 이날 새로 모집한 민간 잠수사 1명을 포함해 모두 13명의 잠수사를 투입해 선체 수색에 나섰다. 주로 남은 실종자의 잔류 가능성이 큰 3층 식당과 주방, 선수 다인실, 4층 중앙 좌측 통로 등을 중심으로 수색을 벌였다. 구조팀은 이날 정조시간이 지나면서 조류 흐름의 속도가 1.6노트 이상으로 강해짐에 따라 수색을 중단하고 상황을 살피고 있다.[143]
  • 사고 발생 34일(5월 19일)
범정부 사고대책본부는 "19일 오후 6시 1분쯤 3층 주방과 식당 사이에서 구명조끼를 착용하지 않은 여성 희생자 1명을 수습했다"고 밝혔다. 희생자는 청색 긴팔 후드에 카키색 추리닝 차림으로 알려졌으며, 가족 확인 결과 전 모 교사로 밝혀졌다(사망자 287명).[144] 민관군 합동구조팀은 전날 오후 10시께 수색을 벌일 계획이었지만 조류 흐름이 빨라 수색을 벌이지 못하다 이날부터 중조기가 시작됨에 따라 잠수사 10여명을 투입해 수색을 벌이고 있다. 구조팀은 물살이 빠른 대조기가 전날 끝나면서 수색 작업이 상대적으로 원활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나 선체 내부가 일부 붕괴되는 등 어려움도 예상되고 있다.[145]
  • 사고 발생 35일(5월 20일)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이날이 중조기 이틀째로 조류 흐름 속도가 느려질 것으로 보여 수색 성과를 기대하고 있지만 조류 속도가 2노트 이상으로 나타나 유속을 살펴 작업 재개 여부를 판단할 방침이다. 또 새로 투입한 바지선 고정을 위해 내려놓은 닻줄의 방향 조정과 재고정 등 조류에 휩쓸리지 않도록 와이어를 추가로 설치하는 작업을 벌일 계획이다. 민간잠수사를 포함한 민관군 합동구조팀 123명이 대기한 상태에서 주로 3층 식당 주방, 4층 선수 중앙, 중앙 좌측 통로, 5층 선수 우현 등을 확인 수색할 계획이다. 특히 대책본부는 선내 약화 현상과 붕괴 등으로 일부 진입이 어려운 곳을 수중 절단기를 이용해 부수고 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146] 정홍원 국무총리는 "정부 입장에서는 (청해진해운 실소유주의) 모든 재산을 압류하는 등 조치를 취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될 것"이라고 말했다.[147]
  • 사고 발생 36일(5월 21일)
민관군 합동구조팀은 전날 두 차례의 수색에서 추가 실종자를 발견하지 못했으나 이날 오전 6시 24분께부터 수색을 시작, 구명조끼를 착용하지 않은 채 발견된 여성 시신 한 구를 수습했다(사망자 288명). 이날 수색에서는 민간 잠수사를 포함한 민관군 합동구조팀 123명이 대기한 상태에서 주로 3층 주방, 4층 선수부, 선미 중앙 다인실과 5층 선수부 위주로 확인 수색을 벌였다. 그러나 5층 선수에 있는 승무원 객실 통로와 중앙 특실 통로는 이달 초 일부 칸막이가 붕괴하기 시작한 이후 선체 약화가 심각해져 객실 진입에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책본부는 선내 장애물을 옆으로 치우면서 진입할 계획이며 선체 외판 일부를 절단해 수상 크레인 등 장비로 장애물을 치우고 진입하는 방식은 모든 방법을 동원해보고 나서 최후에 검토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또 대책본부는 지난 19일 손상된 언딘 바지선의 이음줄 수리를 마치고 수중 수색활동에 투입한 데 이어 20일에는 민간 바지선의 닻 끌림 현상 방지를 위해 닻과 바지선을 연결하는 이음줄을 더 긴 것으로 교체하는 작업을 완료했다.[148] 한편, 해경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 50분께 전남 진도 사고 해역에서 수색 작업 중이던 이모 경장이 허리에 부상을 입어 병원으로 옮겨졌다.[149]
  • 사고 발생 37일(5월 22일)
민관군 합동구조팀은 조류가 느려지는 소조기를 하루 앞두고 그동안 선체 약화 현상이 심해 진입이 어려웠던 부분을 집중 수색할 계획이다. 이날 오전 1시 36분 첫 정조시간에 조류가 2노트 이상으로 빨라 수색작업을 벌이지 못했지만 3차례의 정조시간에 맞춰 수색을 계속할 계획이다. 또 23일부터 조류 흐름이 가장 느려지는 소조기가 시작됨에 따라 구조팀은 이날부터 수색에 박차를 가할 방침이다. 선체 약화 현상이 심한 4층 선미 다인실과 5층 선수 객실에서는 많은 장애물과 붕괴 우려 때문에 잠수사의 안전을 고려해 장애물을 치우는 방식으로 조심스럽게 수색을 진행하고 있다. 대책본부 관계자는 잠수사들이 이들 객실의 수색을 어렵다고 판단하면 최후에는 수중 절단기로 잘라 크레인을 이용해 들어내는 방안도 강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150]
  • 사고 발생 38일(5월 23일)
유속이 느려지는 소조기 첫날이었지만 기대만큼 유속이 떨어지지 않았고, 이 때문에 오후 정조 시간대에도 수색은 이뤄지지 못했다.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남은 실종자가 선체 3~5층에 나뉘어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붕괴가 확인된 곳이 포함돼 있어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 진입 대책이 검토만 될 뿐 구체적으로 실행되지 않으면서 실종자 가족이 직접 머리를 맞대고 있다. 일단, 범대본이 검토하고 있는 선체 절단과 크레인 동원 방식이 과연 적절한지 논의가 이뤄지고 있으며, 적지 않은 실종자 가족이 선체 절단 방식에 동의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또한, 안산의 세월호 유가족 대책위원회 10여 명이 아침 6시 버스를 타고 진도로 향했다.[151]
  • 사고 발생 39일(5월 24일)
민관군 합동구조팀이 130여 명의 잠수사를 동원해 구조작업에 나섰으나 지난 21일 4층 중앙에서 구명조끼를 착용하지 않은 여성의 시신을 수습한 이후 사흘째 수색에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이는 선체 약화 현상과 벽면 붕괴 등으로 잠수사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등 수색 환경이 갈수록 어려워지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날 오전 4시 22분 첫 정조시간에 조류 속도가 2노트 이상으로 강해 수색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남은 3차례의 정조시간에 맞춰 실종자들이 많이 남아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3층 중앙과 4층 중앙 선미에 대해 집중적인 수색에 나선다.[152]
한편, 침몰해역에서 활동해온 민간잠수사 작업바지선(DS-1)이 기상 악화로 오후 4시 40분께 인근 서거차도로 이동했다. 또, 대책본부는 이날 오후 1∼4시 현장 바지선 위에서 희생자와 실종자 가족대표, 민간 자문위원과 민관군 합동구조팀 관계자 등이 참여한 가운데 수색구조 상황 개선방안에 대한 회의를 가졌다.[153] 실종자 수색·구조 작업이 장기화하면서 세월호 내부로 어류가 들어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됨에 따라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세월호 내부로 어류가 들어가는 것을 방지하고자 섬광등을 설치하고 있다고 밝혔다.[154]
실종자 가족들은 이날 오후 진도항(팽목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진도군 조도면 섬 주민들이 팽목항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항구 한쪽 출입로를 개방하고 가족들의 텐트 위치도 조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155]
  • 사고 발생 40일(5월 25일)
세월호 사고 수습을 위한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실종자 가족 측 변호인의 회의 참석을 허용하기로 했다.[156]
  • 사고 발생 41일(5월 26일)
범정부 사고대책본부는 이날 오전 전남 진도군청 2층 회의실에서 정례 브리핑을 갖고 "풍랑주의보가 해제되자 오전 5시30분께 피항했던 함정에 복귀명령을 내렸으며 현재 모든 함정이 복귀해 해상수색에 임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날 오전 팽목항으로 철수했던 민간 잠수사들도 사고 현장으로 복귀하고 있으며 인근에서 대기 중이던 군경 잠수사들과 함께 이날 오후 정조 시간에 맞춰 수중 수색을 재개한다. 서거차도로 피항했던 민간바지선(DS-1)도 현장 복귀 후 바지고정 작업 등의 준비를 거쳐 수색을 재개한다. 다만, 민간바지선의 경우 고정 작업이 완료되기까지 12시간 이상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157]
민·관·군 합동구조팀은 이날 오전 11시 40분부터 낮 12시 52분까지 수중수색을 했으나 소득 없이 종료했다. 또 다음 정조시간인 오후 6시 14분께는 유속이 2노트, 시속 3.5km가 넘어 수색을 하지 못하고 있다. 합동구조팀은 승객 예약 현황 등을 토대로 남은 실종자들이 3층에 6명, 4층에 9명, 5층에 1명 있을 것으로 추정했으나 4, 5층의 경우 선내 약화로 칸막이 붕괴가 진행 중인 곳이 많아 수색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이날 오후 진도군청에서 '수색구조지원 장비기술 연구 전담반'(TF) 회의를 열고 구체적인 선체 절단 방식과 잠수사들의 수색을 중단하지 않고 절단을 진행할 수 있는 방안 등을 논의했다. 대책본부는 폭약은 사용하지 않기로 했으며 수중 절단·용접기로 4층 선미쪽 일부를 절단하면서 선수쪽에는 잠수사들이 수색 작업을 병행할 수 있는 것으로 보고 안전 대책 등을 보완해 오는 27일 오후 실종자 가족들에게 최종안을 제시, 협의하기로 했다.[158]
  • 사고 발생 42일(5월 27일)
민·관·군 합동구조팀은 전날 오전 풍랑특보 해제 후 한 차례 수중 수색을 한 이후 이날 0시 53분부터 오전 2시 12분까지 수색을 했으나 추가로 실종자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이날 새벽에는 3층 선수 좌현·중앙 주방·선미 우현 객실, 4층 선미 우현, 5층 선수 우현을 수색했다. 합동구조팀은 이날 4층 선수 좌현과 5층 선수 우현을 중심으로 수색을 이어갈 방침이다. 한편,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선내 붕괴와 대형 장애물로 잠수사들의 수색이 불가능한 4층 선미 쪽의 선체 외판 일부를 절단해 크레인으로 장애물을 빼내는 작업에 대한 기술적 논의를 하고 이날 오후 실종자 가족들에게 구체적인 최종안을 제시, 협의할 예정이다.[159] 절단은 4층 선미 우현부터 우선 추진하며, 절단 방법은 1차적으로 산소 아크 절단법을 사용하고 2차 대안으로 초고온 절단봉이 제시됐다.[160]
  • 사고 발생 43일(5월 28일)
선내 붕괴와 대형 장애물로 인해 잠수 수색이 불가능한 4층 선미 우현쪽 창문 일부를 절단하고 장애물을 수거하기 위한 준비 작업이 시작된다. 그러나 이날 오전 5시 30분 현재 유속 측정이 불가능할 정도로 사고 해역의 유속이 빠른 데다 강풍이 불고 있어 차질이 우려된다. 합동구조팀은 이날 정조 시간인 오전 7시 42분, 오후 1시 41분, 오후 7시 19분 전후로 3층 주방, 4층 선수 좌현 객실, 4층 선미 좌현 객실, 5층 선수 우현을 수색할 계획이나 강풍과 거센 조류로 인해 지장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따라 이날 오후 민간 바지선 DS-1과 교체 투입하기로 한 88수중개발 바지의 현장 투입도 불투명해졌다.[161] 세월호 사고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 대책위원회(대책위)는 여야에 세월호 사고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를 즉각적으로 가동해 철저한 진상 규명에 나서라고 촉구했다.[162]
  • 사고 발생 44일(5월 29일)
민·관·군 합동구조팀은 이날 오전 2시 19분부터 3시 27분까지 1시간여 동안 수색작업을 벌였으나 실종자를 수습하지는 못했다. 선체 절단 작업에 투입될 새 바지(barge 화물운반선)는 예정보다 뒤늦게 사고해역에 도착했다.[163] 여야는 이날 밤 국회 본회의를 열어 세월호 침몰사고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계획서를 재석의원 226명 가운데 찬성 224명, 기권 2명으로 통과시켰다.[164]
  • 사고 발생 45일(5월 30일)
선체 외관 일부 절단에 투입된 바지선은 4층 선미 창문 아래 위치에서 가로 4.8m 절개를 완료했으며 절개 구역 양 끝단 세로 방향 두 곳과 창문간 외판 두 곳도 추가로 절단할 계획이다. 미국 ROV는 오후에 현장에 투입되고 소나 장비는 현장상황을 감안해 활용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민관군 합동구조팀은 124명이 3층 식당 주방과 선미 중앙 격실, 4층 선수격실과 중앙계단 및 선미 다인실, 5층 선수 격실을 수색할 계획이다.[165] 범정부 사고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후 3시 35분께 전남 진도군 관매도 인근 사고해역 수중에서 선체 외판 절개작업을 하던 이모씨가 부상을 입어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사망했다.[166] 한편, 사고 수습을 위해 일반에 폐쇄됐던 팽목항이 45일만에 섬주민에게 개방됐다.[167]
  • 사고 발생 46일(5월 31일)
서울을 비롯한 안산과 부산 등 주요 도시에서 세월호 사고 희생자를 추모하고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집회와 행진이 열렸다.[168]
  • 사고 발생 47일(6월 1일)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1일 오전 진도군청에서 열린 정례 브리핑에서 "오는 2일부터 4일까지 기상 악화가 예상돼 현장 바지 2척 모두 피항 중"이라고 밝혔다. 대책본부는 이날 오후부터 3∼4일간 수색이 중단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기상 여건에 따라 중·소형 선박은 물론 대형 함정 피항도 검토할 방침이라 밝혔으며, 4층 선미 절단 지점을 확인한 결과 현재 창문 세 칸 크기의 작업 면적 중 창문과 창문 사이를 잇는 창틀 2곳 90cm 가량만 더 절단하면 되는 상태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유실 방지를 위해 이날 오전 3시 50분께 자석이 부착된 그물망으로 절단 부위를 씌우는 작업을 진행했다. 대책본부는 기상 여건이 나아지는 대로 기존의 산소 아크 절단법이 아닌 유압 그라인더나 쇠톱을 이용한 방법으로 절단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다.[169]
  • 사고 발생 48일(6월 2일)
침몰사고의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가 가동을 시작했다. 첫 일정으로 예정됐던 진도 팽목항 방문이 여, 야, 가족대책위 간 소통 혼선으로 어긋나면서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심재철 세월호 국조특위 위원장은 2일 진도행 일정 번복 논란이 불거지자 국회 정론관을 찾아 "어제(1일) 오후 5시경만 해도 가족대책위 쪽에서 방문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는데 오늘(2일) 새벽 12시 30분경 최종적으로 다음에 내려오라는 통보를 받았다"며 관련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나 진도 방문을 위해 용산역에 모인 오전 8시 이후에야 관련 사실을 전해 들은 야당 측 위원들은 이에 반발한 뒤 자체적으로 진도 방문길에 오른 상황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측은 "야당 측 특위 위원들은 어제 오후 9시부터 비공식 회의를 열고 국조특위에 임하는 각오와 자세에 대해 논의하고 오늘 진도일정을 준비했다"며 여야 위원들의 공동 진도 방문이 무산된 사실에 안타까움을 토로했다.[170]
  • 사고 발생 49일(6월 3일)
인천지방검찰청 특별수사팀은 "최근 익명의 인사가 우리나라 주재 모 대사관에 유병언 전 회장의 정치적 망명 가능성을 타진했지만 해당 대사관에서 단순 형사범이라는 이유로 망명 신청을 거절했다"고 말했다. 검찰은 해당 국가가 어디인지는 밝히지 않았으며 "복수의 국가는 아니다"라고 전했다.[171] 한편, 침몰사고가 일어난지 49일째를 맞아 각지에서 희생자를 추모하는 49재가 열렸지만 진도에 있는 실종자 가족들은 이런 추모 분위기 때문에 아직 남은 16명의 실종자들이 잊혀질까 걱정하고 있다고 전해졌다. 이 때문에 진도항(팽목항)에서 49재가 열리는 것에 반대했는데 당초 예상과 달리 진행되면서 실종자 가족들은 직접 장소를 변경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172]
  • 사고 발생 50일(6월 4일)
범정부 사고대책본부는 세월호 참사 50일째인 4일 오전 진도군청 정례 브리핑에서 "민관군 합동 구조팀 123명은 3층 선수격실과 식당주방, 4층 선수 격실과 선미 다인실, 5층 중앙부를 수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구조팀은 이날 4층 선미 다인실의 6번과 8번 창문 사이를 수중절단기를 활용해 절개작업을 마무리한다. 선수 중간 부분의 외판은 절개작업 없이 장애물을 선체 밖으로 치우고 수중 카메라 및 사이드 스캔 소나(Side Scan Sonar)를 활용해 격실별 수색 상태를 확인한다. 지난 주 사고해역에 도착한 미국 원격수중탐색장비(ROV·Remotely Operated Vehicle)는 현장에서 투입장소를 결정해 잠수사 수색작업 시간과 겹치지 않게 투입할 예정이다.[173] 5월 30일 발생했던 인명피해의 대책으로 기존의 산소 아크 절단방식 사용은 중단하고 유압 그라인더로 절단작업을 하기로 했다. 대책본부는 창문 세 칸 크기의 작업 면적 중 창문과 창문 사이를 잇는 창틀 2곳 90cm 가량의 추가 절단을 남겨두고 있으며 이 부분에 자석이 부착된 대형 그물망을 씌워 시신 유실에 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174]
  • 사고 발생 51일(6월 5일)
범정부사고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6시 40분께 세월호 침몰 지점 북서쪽 40.7km가량 떨어진 전남 신안군 흑산면 매물도 인근 해상에서 발견된 남성 시신은 일반인 탑승객 조모(44)씨인 것으로 확인됐다(사망자 289명). 실종자 추가 발견은 지난달 21일 오전 4층 중앙 통로에서 단원고 여학생의 시신을 수습한 뒤 보름 만이다.[175]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이날 오전 진도군청에서 열린 정례 브리핑에서 "오늘 4층 선미 창문의 절단 작업을 끝내고 장애물 수거를 시작할 것"이라며 "대형 장애물을 바지 위로 끌어올릴 때에는 크레인을 사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미국 업체의 원격수중탐색장비(ROV·Remotely-Operated Vehicle)는 강한 유속에서도 효과가 있는지 검증하기 위해 목포 연안에서 시험 가동을 했으며 조만간 로비나 다인실 등 넓은 공간에 사용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대책본부는 이날 민관군 합동 구조팀 123명을 투입시켜 3층 선수 객실과 중앙부, 4층 선수 객실과 선미 다인실을 수색할 계획이다. 한편 국회 '세월호 침몰사고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들은 이날 오후 진도 팽목항을 방문하였다.[176] 또 다른 한편, 서울중앙지검 형사5부는 희생자들을 인터넷 게시판에서 성적으로 모욕한 혐의(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로 정모씨를 구속기소했다고 5일 밝혔다.[177]
  • 사고 발생 52일(6월 6일)
민·관·군 합동구조팀은 오전 8시 3분께 3층 선미 좌측 선원 침실에서 구명조끼를 착용하지 않은 남성의 시신을 수습했다(사망자 290명). 합동구조팀은 오전 6시 33분부터 9시 5분까지 수중 수색과 4층 선미 창문 절단 작업을 병행했으며, 마무리 단계인 창문 절단은 아직 완료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178]
  • 사고 발생 53일(6월 7일)
민·관·군 합동구조팀은 선체 작업작업을 완료해 4층 선미 다인실 장애물 제거 및 3층 선수 격실과 식당 주방, 4층 선수 격실과 로비 수색에 나선다. 범정부 사고대책본부는 이날 "구조팀은 6일 밤 10시께 세월호 4층 선미 외판절단을 완료해 7일부터 장애물 수거 및 희생자 수색작업에 돌입할 예정"이라며, 선체 외판은 크레인을 이용해 바지선으로 수거했으며, 절단 부위에는 희생자 유실 방지를 위한 자석부착 그물망(가로 5.2m, 세로 1.9m)이 설치됐다고 밝혔다.[179]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은 전국 곳곳에서 세월호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였다.[180]
  • 사고 발생 54일(6월 8일)
오후 11시 30분경까지 2명의 시신을 추가로 수습했다(사망자 292명).[181] 대책본부는 이달 말까지 실종자 전원을 수습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20일까지 잠수사와 장비를 총동원해 수색에 나서기로 했다.[182]
  • 사고 발생 55일(6월 9일)
범정부 사고대책본부는 이날 오전 10시 진도군청에서 정례브리핑을 갖고 "민관군 합동구조팀 127명은 3층 식당, 4층 선수 좌측 격실과 중앙 좌측 격실, 5층 선수 우측 격실을 수색하고, 4층 선미 다인실 장애물 제거 작업을 하겠다"고 밝혔다. 구조팀은 현재까지 수색대상 111개 격실 가운데 3·4층 일부 41개 격실에 대한 재수색을 완료했다. 41개 격실에는 3층 선수 다인실, 3층 로비, 3층 중앙부, 3층 선미 선원 침실, 4층 선수 다인실, 4층 선수 일부 격실, 4층 중앙부 일부 격실 등이 포함된다.[183] 보름여 동안 실종자 수습을 하지 못하다가 지난 5일 사고현장에서 40㎞ 떨어진 곳에서 시신이 발견된 이후 수색작업을 바꾸면서 선내 추가 수습이 이뤄지고 있다. 고명석 대책본부 대변인은 "격실 내에 있던 이불과 매트리스를 빼내면서 장애물 사이에 있던 희생자들이 발견되고 있다"며 "당분간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 수색작업을 진행할 계획이다"고 설명했다. 또 지난 5일 실종자가 발견된 매물도 해역까지 조류흐름을 따라 수중 수색을 실시하고 연안어선 20척을 추가로 동원해 매물도 주변 해역을 집중 수색한다. 해양조사선 2척도 투입해 매물도 해역까지 해저영상 탐사를 추가로 실시한다.[184] 6·4 지방선거 이후 공동선언문까지 내며 속도를 낼 듯했던 국회 ‘세월호 침몰 사고 국정조사 특별위원회’가 이번엔 기관 보고 일정을 놓고 여야가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특위의 새누리당 간사인 조원진 의원과 새정치민주연합 간사인 김현미 의원은 이날 국정조사 대상 기관 보고 등 일정을 논의했으나, 10여분 만에 회동이 결렬됐다. 월드컵이 끝난 다음달 중순부터 기관 보고를 받자는 새정치연합과 7·30 재보선 선거운동이 시작되기 이전인 6월 안에 기관 보고를 마치자는 새누리당의 주장이 부딪쳤기 때문이다.[185]
  • 사고 발생 56일(6월 10일)
광주지법 형사 11부는 오후 2시 광주지법 201호 법정에서 살인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 선장 등 4명, 업무상 과실 선박매몰 또는 유기치사상 등 혐의로 기소된 11명 등 피고인 15명에 대한 첫 재판을 열었다. 재판에서는 피해자 대표 의견·검사의 기소 취지·피고인별 변호인들의 공소사실 인정 여부에 대한 진술, 검찰의 증거신청이 이어졌다. 피고인들은 대체로 구호조치가 미흡했고 먼저 구조된 데 대한 비난은 감수하겠다면서도 자신들도 큰 정신적 충격을 받은 상황에서 퇴선 당시 배가 상당히 기울어 더는 구호조치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살인이나 도주 의사는 없었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재판부는 당분간 매주 화요일 재판을 열기로 했다.[186]
  • 사고 발생 57일(6월 11일)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이날 오전 10시 진도군청에서 정례브리핑을 갖고 "합동구조팀 126명은 3층 식당, 4층 선수 좌측 격실과 중앙 좌측 격실, 5층 선수 우측 격실을 수색하고, 4층 선미 다인실 장애물 제거 작업을 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6일부터 진행중인 수중 수색 1단계는 현재 격실별 장애물 제거 및 정밀 수색과 함께 수중카메라 촬영이 진행 중이다.[187]
  • 사고 발생 58일(6월 12일)
구조팀은 16차례 32명의 잠수사를 투입해 3층 식당과 선미 우측, 4층 선수 좌측과 선미 중앙, 5층 로비와 선수 우측 격실을 정밀 수색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사고해역 현장에서는 '언딘'과 '88' 두 민간 업체의 잠수사와 해경·해군 소속 잠수대원들이 수색작업에 나서고 있으며, 일부 실종자 가족이 민간잠수사의 작업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고 장비 착용도 문제가 되면서 일부 잠수사의 수색이 한때 이뤄지지 않았다. 또 원격수중탐색장비인 ROV(Remotely-Operated Vehicle) 투입 여부와 시기를 놓고도 유족, 해수부, 장비 업체간 이견으로 불협화음이 나오기도 했다.[188]
  • 사고 발생 59일(6월 13일)
구조팀은 이날 실종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3층 선미 우측과 4층 선수 좌측 격실, 5층 선수 우측과 중앙 좌측 격실을 수색하고 4층 선미 장애물도 함께 제거한다. 실종자 가족이 요구한 실시간 수중촬영은 좁은 격실에서는 촬영이 어려우므로 4층 선미, 다인실, 로비 등 넓은 구역에 한해 시행하기로 했다.[189] 세월호 침몰로 아들을 잃은 어머니가 대한민국과 청해진해운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이번 참사의 희생자 유족이 제기한 첫 국가 상대 손배소송이다. 하지만 이 어머니는 남편과 이혼 후 수년 동안 가족과 연락없이 지내다가 돌연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족들을 돕고 있는 대한변호사협회 세월호 법률지원 및 진상조사 특별위원회 측은 "아직 실종자 12명을 구조하지 못했고 진상 규명도 이뤄지지 않았다"며 "정부의 책임이 인정된 상황에서 섣부른 소송 제기는 다른 피해자들에게 큰 상처가 된다"고 강조했다.[190]
  • 사고 발생 60일(6월 14일)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는 이재정 경기도교육감 당선인에게 "관내 학교의 부정부패를 감시할 수 있는 기구나 체제를 만들어달라"고 요구했다. 이 당선인은 "가족대책위의 뜻을 잘 알겠다"며 "이 자리에서 나온 내용에 대해 검토를 거친 뒤 결과를 말씀드리겠다"고 답했다. 가족대책위는 간담회에 참석한 단원고 교장에게는 학교 정상화 과정에서 가족대책위의 뜻을 충분히 반영해 줄 것과 희생 학생들을 애도하기 위해 학교 정문에 놓인 조화와 사진 등에 대한 관리를 요구했다.[191]
  • 사고 발생 61일(6월 15일)
민관군 합동구조팀은 4층 선수 좌측, 중앙 우측, 선미 중앙 및 5층 선수 우측, 중앙 좌측 격실의 장애물을 제거하고 정밀 수색을 했으나 추가 실종자는 발견하지 못했다. 합동구조팀은 4층 선미 다인실의 천장 패널 10개를 처음으로 크레인을 이용해 바지선 위로 인양했다.[192]
  • 사고 발생 62일(6월 16일)
실종자 12명의 가족 20여명은 이날 오후 전남 진도군 진도읍 진도군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세월호 참사가 2달이 지나고 있지만 현재 12명의 실종자가 남아있다"며 국회 국정조사 기관보고를 6월 이후로 연기해 줄 것을 요구했다.[193]
  • 사고 발생 63일(6월 17일)
민관군 합동구조팀은 조류가 약해진 중조기를 맞아 어제(16일) 오후 3시 40분과 이날 오전 4시 50분께 수색을 했지만 남은 실종자(12명)를 찾아내지 못했다. 합동구조팀은 4층 선수 좌측과 중앙 우측 및 선미 중앙, 5층 로비 계단과 선수 우측 및 중앙 좌측 격실의 장애물 제거와 수색을 병행할 계획이다.[194]
광주지법 형사 11부(임정엽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승무원 15명에 대한 두 번째 재판에서 변호인은 승무원들이 과적과 고박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며 '업무상 과실'에 대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변호인은 승무원들이 권한이 없어 배 침몰의 원인을 제공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아 '업무상 과실'은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했으며, 사고 이후 승객들을 구조하지 않은 점(살인죄)만을 따져야 하고 배 침몰은 승무원이 아닌 선사의 책임이라고 주장했다. 승무원들은 승객에 대한 구호 조치는 해경의 의무라며 살인죄 적용에 대해서도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이에 대해 선사 측은 침몰의 원인을 제공한 점을 일부 인정하면서도 관리 책임이 승무원들에게도 있다고 주장할 것으로 보여 책임 공방이 일 것으로 보인다.[195]
해경은 낮 12시 40분께 사고해역 인근에서 수색지원 중이던 해경대원 진모씨가 3000톤급 해경 3011함에서 1512함 소속 단정으로 이동 중, 사다리에서 떨어지며 단정 의자에 옆구리를 부딪혔다고 밝혔다. 진씨는 목포 한국병원으로 이송돼 '갈비뼈 3개 골절'이라는 진단을 받고 치료 중에 있다.[196]
경기도안산시는 지난달 27일 세월호 참사 관련 지원 정책으로 201억원을 들여 단원고를 외고로 바꿔 육성하는 등 총 901억원 규모의 7개 국비지원사업을 추진하겠다며 정부에 특별교부세를 신청했다. 단원고등학교를 외고로 전환하는 이유로는 ‘사고 이미지로 학생 지원 급감이 예상되고 고교 평준화 등에 의해 임의 배정되더라도 전학 등의 반발이 예상되며 현재와 같이 일반교로 운영 시 학생들의 자긍심이 저하될 우려가 있다’는 점을 꼽았다. 또 ‘현재 재학 중인 학생들도 대학입시에서 성적 부진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경기도와 안산시는 이에 따라 단원고를 새로 개교하는 수준으로 이미지를 쇄신하기 위해 공립 외고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자사고와 외고 등 특목고 교육정책은 학벌주의와 교육 불평등을 조장하는 폐해가 지적되어온 만큼 세월호 참사에 따른 적절한 대책인지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197]
  • 사고 발생 64일(6월 18일)
경기도교육청은 '세월호 사고'의 책임을 물어 단원고 김모 교장을 17일자로 직위해제했다고 밝혔다. 단원고 교장의 직위해제에 이어 윤모 행정실장은 다른 학교로 전보 조치됐다. 도교육청은 단원고 교장을 직위해제한 이유에 대해 "사고가 나기까지 수학여행 진행 절차상 하자가 전혀 없었다고 볼 수 없다"고 전했고, 이어 "직위해제는 교장으로서의 권한 행사를 하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공무원 신분은 유지하되 직을 박탈하는 것이다. 감사나 조사결과에 따른 징계와는 다르다"고 부연했다. 도교육청은 이들에 대한 징계 여부를 추후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198] 세월호 침몰사고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장인 새누리당 심재철 의원이 국조 기관보고를 오는 23일부터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오는 30일부터 기관보고를 받겠다는 새정치민주연합의 방침과 어긋난 것으로, 야당이 참여하지 않더라도 단독으로 국조 기관보고 청취를 강행하겠다는 의미이다. 이에 대해 특위 새정치연합 간사인 김현미 의원은 "야당과 전혀 합의한 바 없는 내용"이라며 "이는 만행이고 폭거"라고 반발했다.[199]
  • 사고 발생 65일(6월 19일)
빠른 물살 때문에 수색 작업이 두 번 밖에 이뤄지지 못했으며, 그나마 추가로 실종자를 수습하진 못하고 수색에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한 부유물을 치우는데 그쳤다. 4층 선미 부분에서 물품 보관대 같은 큰 장애물을 세월호 밖으로 치우고, 5층 선수에선 이불과 옷가지 등 작은 부유물을 정리했다. 11일째 희생자 발견 소식이 없는 상황이며, 이에 따라 가족들은 수색 결과에 대한 중간 설명회를 개최하자고 당국에 요청하기도 했다. 그동안은 먼저 세월호에 떠다니는 장애물을 치우고 수색 작업을 진행한 뒤 이후 가족들이 확인할 수 있도록 수중 카메라로 격실을 촬영했었다. 하지만 최근 수색이 계속 차질을 빚으면서 당분간은 수색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수중 촬영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는데, 일단 모레(21일)부터 찾아오는 소조기 동안 실종자 수색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방침이다. 그리고 현재까지 촬영된 영상에 대해선 수색에 참여한 잠수사와 관련 전문가, 그리고 가족들이 함께 검증팀을 구성해 제대로 수색이 이뤄지고 있는지 등을 논의하기로 했다. 이날 범정부 사고대책본부는 굵은 비와 태풍에 대비해 진도항(팽목항)과 체육관에 설치된 천막 등을 다시 포박하고 배수 시설을 확인하는 등의 활동으로 분주했다.[200]
  • 사고 발생 66일(6월 20일)
세월호 국조특위 여당 간사인 조원진 새누리당 의원과 야당 간사인 김현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1시간 가량 회동을 갖고 오는 26일부터 다음달 7일까지 기관보고를 받기로 합의했다.[201]
참여연대는 지난 4월 20일 세월호 참사 실종자 가족들이 정부의 더딘 구조에 항의하기 위해 진도에서 청와대로 향하던 중 경찰이 이를 제지하고 채증한 행위, 피해 가족들에 대한 사복 정보경찰의 염탐과 사찰, 노란 리본을 단 시민 등의 자발적인 추모 행동에 대한 단속 등을 조사해달라고 경찰청 인권위에 의뢰했다. 경찰청 인권위는 지난달 22일 첫 회의를 열었지만 제대로 된 조사도 하지 않은 채 “다음달 회의에서 조사를 해보자”고 미뤘다. 당시 회의에는 13명의 위원 중 절반도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열린 두 번째 회의도 결론 없이 끝났다. 회의는 경찰청 관계자들의 해명을 듣고 질의응답을 하는 수준에서 갈음됐다. 경찰은 모든 의혹들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일부 위원들이 비판적인 견해를 제시했지만 대부분 경찰의 해명만 듣고 회의를 끝냈다. 이 때문에 경찰을 견제해야 할 경찰청 인권위가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202]
  • 사고 발생 67일(6월 21일)
범정부사고대책본부에 따르면 민관군 합동구조팀은 지난 20일 오전 7시 8분부터 오전 9시 9분까지 3층 선미 객실과 중앙부 선원 식당, 4층 선수 객실·중앙·선미 다인실, 5층 선수 선원실 등의 장애물을 제거하면서 정밀 수색을 했으나 실종자를 찾지는 못했다. 4층 선수 객실에서 여행용 캐리어와 배낭 등을 수거했으며 5층 선수의 일부 장애물을 제거했다. 김석균 해양경찰청장은 지난 5일부터 20일까지 객실별로 정밀수색을 마친 후 25일까지 미진한 부분에 대해 추가 수색을 펼치는 계획을 시행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대조기에 작업 시간이 줄어들었고, 각 객실 내 장애물을 제거하고 촬영까지 하면서 작업에 속도를 내기 어려워 1단계 정밀 수색 기간이 끝났음에도 13일째 추가 실종자 수습은 없는 상황이다. 합동구조팀은 추가 수색 기간 첫날인 이날 3층 로비와 4층 선수 좌측·중앙부 우측 및 선미, 5층 선수 좌현 객실에 대한 장애물 제거와 수색을 병행할 예정이다.[203]
  • 사고 발생 68일(6월 22일)
민관군합동구조팀은 21일 저녁과 22일 새벽, 오전 등 3차례에 걸쳐 수중수색을 진행했으나 추가로 희생자를 수습하지는 못했다. 구조팀은 총 24회 48명의 잠수사를 투입, 3층 로비, 4층 중앙 격실·선미 다인실, 5층 선수 선원실 등을 장애물을 제거하면서 정밀 수색했다.[204]
참여연대는 이날 이슈리포트 '해외의 재난 후 진상규명위원회의 사례'[205] 에서 독립된 세월호 진상조사 기구를 만들어 충분한 조사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참여연대는 미국 9·11 국가위원회와 카트리나 초당파적 하원위원회,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진상조사위원회, 호주 빅토리아 산불위원회 사례를 분석했다. 재난 진상 규명을 위해 가장 중요한 점으로 피해자와 국민 참여를 보장하는 독립적 위원회의 신속한 설치, 성역없는 조사 권한 보장, 조사과정의 투명성 확보, 충분한 조사기간과 예산, 공익제보자 보호 등을 꼽았다.[206]
  • 사고 발생 69일(6월 23일)
세월호 선체 안에서 선원들이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디지털영상저장장치(DVR)와 노트북컴퓨터 1대가 발견되었는데, 세월호 내부 영상을 담고 있다면 침몰 전후 상황을 소상하게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발견된 장치는 당초 합동수사본부가 있는 서해지방해양경찰청으로 옮긴 뒤 과학수사 기법인 디지털 포렌식 작업을 거쳐 데이터를 복구할 예정이었으나 실종자 가족 측의 반발로 중단됐다. 실종자 가족 측은 DVR가 발견된 뒤 개봉됐을 수도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으며, 대한변호사협회 디지털 포렌식팀과 함께 DVR를 발견한 해군 해난구조대(SSU) 대원 2명과 해경 관계자 등을 24일 만나 발견 당시 상황을 자세히 들은 뒤 복구작업 진행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발견된 DVR와 노트북은 일단 목포해양경찰서 인근 보관소에 봉인된 채 보관 조치됐다. 한편 세월호 참사 유가족 대표단은 23일 인천에 있는 해양경찰청을 찾아 침몰 당시 헬기에서 찍은 화면 등을 포함한 구조작업 영상을 확인한 뒤 복사본을 확보했다.[207]
  • 사고 발생 70일(6월 24일)
범정부사고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1시3분께 세월호 4층 중앙통로에서 여성 시신 1구가 발견됐다(사망자 293명). 민관군 합동구조팀은 시신을 수습, 신원확인을 위해 DNA를 분석하고 있다. 이번에 발견된 희생자는 구명조끼를 입지 않은 상태였다. 세월호 희생자가 수습된 것은 지난 8일 밤 11시 30분께 4층 선수에서 실종자를 발견한 이후 16일만이다. 남은 실종자는 11명이다. 합동구조팀은 이날 3층 로비, 선수 격실과 4층 중앙통로 및 선미 다인실, 5층 선수 격실에서 장애물을 제거하고 추가로 실종자 수습에 나선다.[208]
  • 사고 발생 71일(6월 25일)
민관군 합동구조팀 121명은 3층 선수 격실과 편의점, 4층 중앙 격실 및 선미 다인실, 5층 선수를 수색한다. 3층 선수 격실에서는 여행용 캐리어와 가방 등을 인양했으며 4층 선미 다인실에서는 판넬 등 장애물을 선체 밖으로 내보면서 수색을 실시했다.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실종자 수색이 장기화됨에 따라 28일부터 29일까지 실내체육관에서 실종자 가족 종합건강검진을 실시할 계획이다. 또 지난 22일 밤 선내 3층 로비 안내 데스크에서 발견된 디지털 영상 저장 장치(DVR)와 관련, 손상방지를 위해 부식방지 조치를 완료했으며 전문 복구 업체에 영상 복원을 의뢰했다. 한편, 세월호 국정조사특별위원회의 야당은 25일 목포와 진도를 방문해 목포해양경찰서, 해군 3함대, 진도해상교통관제센터(VTS) 등에 대한 현장조사를 실시한다.[209]
  • 사고 발생 72일(6월 26일)
실종자 가족들이 정홍원 총리의 유임 결정과 관련 "총리 유임으로 국민의 열망이 좌절됐다"고 평가하면서도 "실종자를 마지막 한 사람까지 수습하겠다는 약속을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실종자 가족들은 정 총리 유임의 첫 일정으로 27일 진도 현지를 방문, 실종자 가족들과 면담해 달라고 요구했다. 또 30일 예정된 세월호 국조특위 기관보고를 수색 차질을 우려해 여의도 국회가 아닌 진도 현지에서 진행해 달라고 여야 국조특위 측에 촉구했다. 한편 희생자, 피해자 가족 등이 포함된 '세월호 가족대책위'는 오는 27일께 안산시에서 정 총리 유임과 관련 공식 입장을 발표할 예정이다.[210]
  • 사고 발생 73일(6월 27일)
민관군 합동구조팀 119명은 3층 선수 및 선미 격실, 4층 선미 다인실, 5층 선수 및 중앙 격실 등에 대한 장애물 제거와 수색작업을 병행한다. 구조팀은 오후에는 태스크포스(TF) 회의를 개최해 다음달 수색·구조 종합계획, 잠수사 안전대책 등을 논의한다.[211] 한편, 정홍원 국무총리는 (박근혜 대통령의 사의 반려로 유임이 결정된 다음날인) 참사 현장을 찾았으며,[212] 사고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위 소속 새누리당 의원들이 진도와 제주항에서 현장조사를 벌였다.[213]
  • 사고 발생 74일(6월 28일)
민·관·군 합동구조팀은 27일 오후 1시 10분부터 2시 20분까지, 28일 오전 2시 2분부터 3시 37분까지 두 차례 수중 수색을 실시했으나 추가로 희생자를 수습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총 18차례에 걸쳐 잠수사 36명을 투입, 3층 선수 다인실과 선미 격실, 4층 선미 다인실, 5층 선수와 중앙 격실 등에서 장애물 제거와 함께 정밀 수색을 진행했다. 또 진도항(팽목항)에 설치된 몽골텐트 52채에 차광막을 설치하고 진도실내체육관에서 실종자 가족과 자원봉사자를 대상으로 건강 검진을 실시한다.[214] 정홍원 국무총리는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한 경기도 안산 화랑유원지의 정부 공식 합동분향소를 찾았으며,[215] 정의화 국회의장은 전남 진도체육관을 찾아 실종자 가족을 위로했다.[216]
  • 사고 발생 75일(6월 29일)
합동구조팀은 이날 115명을 투입해 세월호 3층 선미 격실, 4층 선미 다인실, 5층 선수 및 중앙 격실 등에 대한 장애물 제거와 수색을 계속한다.[217] 민·관·군 합동구조팀이 다음달부터는 세월호 수색 잠수사와 해군함정 등 인력과 장비를 대폭 축소해 운영하겠다는 내부 방침을 세운 것으로 드러났다.[218]
  • 사고 발생 76일(6월 30일)
민·관·군 합동구조팀은 3층 선수 일부 객실과 선미 쪽 일부 객실 및 통로, 4층 선수 소형 객실, 선미 좌현 다인실, 5층 선수와 중앙부 객실을 중심으로 수색하고 있다. 실종자 가족의 법률 대리인인 배의철 변호사는 진도군청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이날 오전 실종자 가족들을 대상으로 정밀 수색 및 7월 수색 계획 설명회가 예정됐으나 계획이 미흡하고 구체적인 방안이 제시되지 않아 취소됐다"고 밝혔다.[219] 침몰 지점에서 약 100km 떨어진 전남 무안군의 해안가에서 시신 1구가 발견되었는데, 관련 당국은 이 시신의 상태로 봤을 때 일단 세월호 사고 이전에 숨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220] 한편, 참사 국정조사 특위가 이날 첫 기관보고를 받았다.
  • 사고 발생 77일(7월 1일)
구조팀은 현재까지 세월호 내부 111개 격실 중 잠수사 진입이 가능한 107개 격실에 대해 수색을 완료했다. 수색하지 못한 4개의 격실은 4층 선미 부분에 몰려 있다. 구조팀 관계자는 "선미 다인실 부근 복도가 무너져 있어 진입이 어렵다"며 "해당 부분 선체 외판을 절단하는 방식으로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고 했다. 아직 찾지 못한 실종자 11명 중 7명은 선체 4층에, 4명이 3층에 있을 것이라는 게 구조팀의 추정이다. 진교중 전 해군 해난구조대(SSU)장은 "잠수사 진입이 불가능한 화장실 칸이나 통풍관, 옷장 등 생각지도 못한 곳에 실종자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221] JTBC가 확인한 범대본의 수색 관련 자료에는, 세월호가 지난 5월에 비해 3m 정도 더 가라앉은 것으로 나와 있다. 사고 초기, 바닥에 닿기 전에는 수심이 약 37m 정도였는데, 배가 바닥에 닿았던 지난 5월에는 45m로 낮아진 것이다. 이후 선미 쪽에서 생긴 조류의 소용돌이 때문에 바닥이 3m 정도 더 파였고, 현재는 최대 수심이 48m가 됐다는 것이다. 또, 강한 조류 탓에 4층 선수쪽, 7개 격실의 외판은 안으로 1m 정도, 4층 선미는 2~3m 정도 안으로 찌그러져서 내부 격벽의 붕괴가 더욱 심한 상태인 것으로 밝혀졌다.[222]
  • 사고 발생 78일(7월 2일)
해양경찰청은 세월호 참사의 실종자 수색에서 장마를 포함해 기상 악화 상황에도 현 수색체계를 최대한 유지키로 했다.[223] 참사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는 이날부터 버스로 전국을 돌며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시작했다.[224]
  • 사고 발생 79일(7월 3일)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이날 새벽 파도가 바지 위까지 넘어오는 월파 현상이 일어나 수색 바지 위의 잠수 장비를 실내로 철수시키고 점검한 뒤 이날 오후 4시 37분부터 수중 수색을 재개했다. 대책본부는 3층 중앙 식당과 4층 중앙 객실 및 선미 다인실, 5층 중앙 객실을 중심으로 수색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대책본부는 수색 완료 구역에 대해서도 추가 특이사항 점검을 위해 촬영을 계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2일에는 4층 선수 객실을 촬영했으며 앞으로 3층 선수 다인실, 4층 선수, 5층 선수 객실도 촬영할 계획이다. 대책본부는 내일(4일) 오후 수색구조 장비기술연구 전담반(TF) 회의에서 구체적인 7월 수색 계획과 장마 대비책 등을 재논의할 방침이다.[225] 세월호의 이상징후를 파악하지 못해 인명피해를 키운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 소속 해양경찰관 2명이 구속됐다.[226]
  • 사고 발생 80일(7월 4일)
실종자 수색에 좀처럼 진전이 없자 대책본부는 잠수사들의 촉각에 의존하는 기존 수색방법을 보완하기 위해 해수의 냄새를 분석하는 전자코를 도입해 지난달 23일 실종자 잔류 가능성이 있는 공간의 해수와 실종자가 없는 것으로 판명된 공간의 해수 등 샘플 22개를 채취, 분석 중이다. 민관군 합동구조팀은 이날 오전 5시 21분부터 7시 20분까지 2차례에 걸쳐 수중 수색을 했으나 추가로 실종자를 찾지는 못했다. 합동구조팀은 3층 선수, 4층 중앙 객실 및 선미 다인실, 5층 중앙 객실 등을 수색했으며 4층 중앙 객실에서 슬리퍼, 옷, 휴대전화, 손거울 등을, 4층 선미 다인실에서 백팩을 수거했다. 또, 이날 3층 중앙 식당, 4층 중앙 객실 및 선미 다인실을 수색하고 전날에 이어 3·4·5층 선수 객실에 대한 촬영을 계속할 예정이다. 침몰 지점으로부터 서북서쪽 14.9km 떨어진 해상에서는 세월호 구명조끼 1점이 발견됐다. 한편 대책본부는 이날 오후 수색구조 장비기술연구 전담반(TF) 회의에서 구체적인 7월 수색 계획과 장마 대비책 등을 재논의할 방침이다.[227]
  • 사고 발생 81일(7월 5일)
합동 구조팀은 이날 오전 5시 41분부터 8시 15분까지 수중 수색을 했으나 실종자를 찾지 못했으며, 지난달 24일 단원고 여학생의 시신을 수습한 뒤 수색 작업이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실종자 수는 11명에 멈춰 있다. 합동 구조팀은 3층 중앙, 4층 중앙 격실과 선미 다인실, 5층 선수 격실 등을 수색했으며 3층 선수 격실, 5층 중앙 화장실, 샤워실, 격실 등을 촬영했다. 4층 선미 다인실에서는 검은색 캐리어와 배낭이 1개씩 발견됐다. 이후 바다의 기상이 나빠져 수색이 중단됐었으며, 잠수사들이 작업하는 88 바지와 언딘 바지는 모두 피항했고, 기상이 좋아지는 대로 수색을 재개할 것이라고 범정부 사고대책본부는 전했다.[228] 정홍원 국무총리제8호 태풍 '너구리'가 발생해 다음 주 중 한국에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이날 세월호 사고 범정부사고대책본부(이하 범대본)에 철저한 대비태세를 지시했다.[229]
  • 사고 발생 82일(7월 6일)
대책본부는 장마전선의 영향으로 기상이 크게 악화돼 수색을 중단하고 피항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전날 밤(5일) 사고 해역에서 수색 작업을 지원하는 바지선과 소형·중형 함정을 모두 목포 내항으로 이동시켰다. 잠수 작업을 지원한 바지선 2척도 이날 새벽 영암 대불항으로 피항했다. 1천t 이상의 대형 함정 5척은 사고 해역에 남아 해상 수색 작업을 계속하고 항공 수색도 한층 강화할 계획이다. 장마전선에 동반된 저기압이 북상하면서 기상은 더 나빠질 것이라고 기상청은 예보했다. 태풍의 직·간접적인 영향권에서 벗어나면 수색을 재개할 방침이지만 최소 5일 가량 수색 중단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대책본부는 태풍과 장마에 대비, 새로운 수색 방법을 적용할 방침이다. 대책본부는 2인 1조의 잠수팀이 교대로 펼치는 현재의 수색 작업이 한계를 드러내 수중재호흡기 장비 도입을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수색이 재개되면 검증 작업을 거쳐 장비 도입을 최종 결정할 계획이다. 대책본부는 교차 수색 작업을 진행하고 '전자코' 시스템을 활용해 실종자 잔류 가능성이 있는 곳을 집중 수색할 방침이다. 합동 구조팀은 전날부터 선박 411척, 항공기 14대, 인력 1천여명을 투입해 해상 수색을 실시했으나 유실물을 발견하지 못했다.[230]
  • 사고 발생 83일(7월 7일)
제8호 태풍 '너구리' 북상으로 피해가 우려되는 가운데, 범정부 사고대책본부에 따르면 진도 실내체육관과 진도항에 설치된 천막과 몽골텐트 100여개가 모두 철거될 예정이다. 철거된 시설물은 대부분 인근 전남대학교 자연학습장으로 옮겨진다. 식사와 의료 지원 시설물은 일부 남겨놓을 계획이다. 철거 작업은 태풍의 영향권에 들어가는 8일까지 모두 완료될 예정이다. 시설물은 자연학습장에 임시로 옮겨진 뒤 태풍이 지나가고 나서 10일께 다시 체육관과 팽목항(진도항)에 설치된다. 당초 가족들이 머무르고 있는 조립식 주택도 철거를 검토했으나 이동이 어려워 고박(결박)을 강화하기로 했다. 대책본부는 팽목항 조립식 주택에 머무르고 있는 일부 가족들은 체육관으로 이동시킬 방침이다.[231] 범정부사고대책본부가 사고 이후 80일 넘게 투입된 수중업체 언딘을 수색에서 배제하기로 잠정 결론 내렸는데, 잠수 방식 등을 문제 삼은 것으로 파악되었다. 언딘의 '표면 공기 공급' 방식으로는 잠수 시간이 30분 밖에 되지 않아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것이고, 여기에 해경과의 유착 의혹도 제기된 상황이다. 현재 새로운 업체 선정을 놓고는 해경과 해수부 간의 의견이 엇갈리는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는데, 해경은 새로운 업체를 공모하자는 입장인 반면, 해수부는 현재 선미 쪽을 맡고 있는 88수중이라는 업체에게 맡기자고 주장하고 있다.[232]
  • 사고 발생 84일(7월 8일)
제8호 태풍 '너구리'의 영향으로 세월호 선체의 시신 유실 우려가 커지고 있다. 범정부 사고대책본부는 태풍의 영향으로 유속이 빨라지면서 시신이 유실될 것에 대비, 선체의 창문과 입구 등에 자석차단봉과 그물망을 설치했다. 조류가 빨라지고 물이 도는 와류가 발생할 경우 시신이 선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선체 인근 5∼10㎞ 지점에 그물망을 설치해 이중으로 유실을 방지할 방침이다. 가족들과 논의해 자망 어구를 추가로 설치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해상·항공 수색이 어려워지는 점을 감안, 해안과 도서 지역에 대한 수색 인력도 늘릴 방침이다. 그러나 사고 현장을 지키고 있는 실종자 가족들은 수차례 유실 방지책을 내놨는데도 유실을 근본적으로 방지하지 못한 구조 당국에 철저한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233] 광주지검 해경 전담 수사팀은 센터장과 팀장 2명 등 진도 VTS 소속 해경 3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들은 2인 1조로 구역을 절반씩 관제하도록 한 규정을 어긴 채 한 사람이 도맡고(직무유기), 이를 감추려고 혼자서 작성한 교신일지를 두 명이 작성한 것처럼 꾸민 혐의(허위 공문서 작성·행사) 등 혐의를 받고 있다.[234] 한편, 이번 참사로 아들을 잃은 두 사람의 아버지가 노란 리본을 묶은 십자가를 등에 지고 800㎞를 걷는 긴 여정을 시작했다. 이들은 8월 15일 교황의 방한에 맞춰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미사에 참석하면서 여정을 마칠 예정이다.[235]
  • 사고 발생 85일(7월 9일)
범정부 사고대책본부에 따르면 제8호 태풍 '너구리' 북상의 영향으로 지난 5일 중단된 선체 수색을 9일 현재까지 재개하지 못하고 있다. 사고 해역에서 수색 작업을 지원한 바지선과 소형·중형 함정은 모두 영암과 목포로 피항한 상태다. 1천t 이상 대형 함정 5척은 사고 해역에 남아 해상 수색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236] '세월호 침몰사고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는 법무부·감사원·경찰청 기관보고에서 감사원의 부실감사 논란과 검·경의 유병언세모그룹 회장 검거 실패를 질타했다.[237]
  • 사고 발생 86일(7월 10일)
범정부 사고대책본부는 지난 5일 중단된 세월호 선체 수색을 이날 오후 재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전남 목포와 영암으로 피항한 바지와 소형·중형 함정은 기상 여건이 호전되는 이날 오후 사고 해역으로 이동할 계획이다. 바지선이 이동하고 잠수 준비 작업을 거치면 수중 수색은 11일 오후부터 재개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책본부는 기존 언딘과 88수중개발이 함께 잠수 작업을 벌이는 방식에서 88수중개발이 독자적으로 전개하는 방식으로 변경할 방침이다. 민간 잠수업체인 언딘은 사고 직후 수중 수색 작업을 전담했으며 지난 5월 선체 절단 작업 등을 위해 88수중개발이 함께 투입됐다. 잠수 방식도 언딘의 '표면공기공급' 방식을 대신해 88수중개발의 '나이트록스' 방식으로 바뀐다. 잠수사들이 공기줄을 매달고 수중에 들어가는 방식에서 공기통을 장착하고 수중 수색을 벌이게 된다. '표면공기공급' 방식으로는 1회 잠수시 30분 가량 수색할 수 있지만 변경된 방식으로는 1시간까지 수색 시간이 늘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대책본부는 설명했다. 언딘의 바지도 사고 해역에서 철수하고 88수중개발의 바지 2척이 현장에 투입된다. 해군은 선수 구역을, 88수중개발은 해경과 함께 선체 중앙, 선미 수색을 진행한다. 대책본부는 잠수사가 내쉰 공기를 배출하지 않고 정화해 재활용하는 장비인 수중재호흡기를 도입해 잠수 시간을 현재 10∼15분에서 최장 6시간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화학적 혼합물의 냄새를 시각적 패턴(그래프)으로 변환해 냄새의 종류와 강도를 분석하는 전자코 시스템도 적극적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이 같은 수색 계획에 대해 실종자 가족 측은 잠수사 안전 대책과 격실 수색 방안 마련을 요구했다.[238]
  • 사고 발생 87일(7월 11일)
현장에서 준비가 되지 않아 수중 수색이 재개되지 않았다. 대피했던 바지선 1대는 이날 오전에 도착했지만, 고정 작업에 시간이 걸렸고 나머지 1대는 오후 5시 쯤에야 현장에 도착했다. 대책본부가 잠수요원이 뱉어낸 이산화탄소를 정화해 다시 호흡할 수 있게 하는 수중재호흡방식(재호흡기)도 적극 사용한다는 방침을 세웠으나 이뤄지지 못했다. 재호흡기는 수중작업 가능 시간이 길어 투입되면 2시간 이상 수색이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가 모아졌지만, 현장 상황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도입이 늦춰졌었는데 이날 미국의 재호흡기 전문팀이 실제 사고현장에서 시험 잠수에 나서면서 활용 가능성을 확인해 검증되면 적극 활용하기로 했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검증 잠수조차 못 했고 미국 잠수팀은 목포로 철수했다. 이유는 잠수팀의 요구 조건과 현장 상황이 맞지 않아서다. 현재 재호흡기 잠수팀은 미국 전문가 5명으로 구성돼 있는데, JTBC 취재 결과 미국 잠수팀은 현장에 있는 바지선을 100m 정도 빼달라는 요청을 했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다른 잠수요원들은 사실상 수색을 중단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현장에서는 장비도 제대로 준비가 안 됐는데, 누가 준비해야 하는지를 두고 관계자들이 옥신각신했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16일에 재호흡기 전문팀이 시험 잠수에 나설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실종자 가족들은 "물에 발조차 안 담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그 전에 합의하지 않고, 이제와서 현장 조건과 맞지 않는다고 하는 게 납득이 안 된다"면서 분노하고 크게 실망했다. 대책본부는 14일까지 가족 지원 시설을 다시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일부 천막을 대신해서는 컨테이너 15개가 들어와 그 안에 가족 지원 시설이 마련될 예정이다. 항구로 가는 길에는 더 이상 천막을 설치하지 않기로 해 천막으로 가득 메워진 팽목항의 모습은 볼 수 없게 됐다.[239]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는 종합 정책질의를 끝으로 기관보고를 마쳤다.[240]
  • 사고 발생 88일(7월 12일)
태풍 북상으로 7월 5일부터 중단된 세월호 수색작업 재개가 짙은 안개로 지연되고 있다.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태풍의 영향으로 피항 후 복귀하거나 신규 투입해 세월호 수색작업에 동원된 두 대의 바지(barge·화물 운반선, 선체가 넓고 바닥이 평평함) 중 현대 보령호는 오전 6시에 앵커 고정작업을 마쳤으나, 88 수중개발의 바지는 짙은 안개로 고정작업이 중단됐다"고 밝혔다. 민·관·군 합동구조팀은 안개가 걷히면 88 바지의 고정작업을 재개, 작업이 마무리되는 대로 수색을 재개할 방침이다. 수색이 재개되면 구조팀은 기존 민·관·군이 각각 맡고 있던 세월호 수중 선체 수색 구역을 서로 바꿔 교차수색할 예정이다.[241]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전날(11일) 예정된 미국 수중재호흡기 잠수팀의 검증잠수가 작업현장 조건에 대한 이견으로 실시하지 못하고 미국 잠수팀이 철수하기로 했다고 이날 밝혔다.[242]
  • 사고 발생 89일(7월 13일)
태풍 '너구리'로 중단됐던 세월호 수중 수색 작업이 이날 새벽부터 다시 시작됐으나 성과는 없었다. 사고대책본부에 따르면 민·관·군 합동구조팀은 정조 시간에 맞춰 이날 오전 2시 55분부터 4시 10분까지 4회에 걸쳐 수중 수색작업을 벌였으나, 실종자를 발견하지 못했다. 수중 수색과 함께 실종자 유실을 막기 위해 해경과 해군, 어선 등 110척을 투입해 주변 해역을 수색했다.[243]
  • 사고 발생 90일(7월 14일)
태풍 북상 이후 중단됐던 세월호 선체 수색작업이 재개됐으나 사고해역의 유속이 거세 난항을 겪고 있다.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이날 오전 8시 56분 정조 시간에 맞춰 민·관·군 합동 구조팀이 수중 수색작업을 시도했으나 유속이 거세 중단된 상태라고 밝혔다. 민·관·군 합동구조팀은 이날 새벽 3시 27분부터 4시 47분까지 7회에 걸쳐 14명의 잠수사가 선체 수색을 했지만, 성과가 없었다.[244]
  • 사고 발생 91일(7월 15일)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이날 새벽 3시 53분부터 5시 5분까지 정조 시간에 맞춰 민·관·군 합동구조팀이 수중 수색작업을 벌였으나 실종자를 발견하지 못했다. 사고 해역의 유속은 1.5~3노트를 보이고 있다. 보통 1노트 이하여야 수중 작업이 가능하다. 사고대책본부는 함정 94척, 항공기 21대, 민간 선박 39척, 잠수사 69명을 투입해 수색작업을 할 계획이다.[245] 장비기술 TF에서 제시했던 수중재호흡기 도입도 미국 구조팀과 의견 조율이 안돼 무산되었고, 아직 4층 배꼬리 부분 격실 한 곳은 잠수요원들이 진입조차 못한 상태이다. 대책본부는 수색방식을 변경하기로 했는데, 태풍이 지나간 뒤 수색을 재개하면서 잠수시간을 30분 더 늘릴 수 있는 '나이트 록스' 방식을 도입한 것이다. 이를 위해 새 바지선을 두 대 추가했다.[246] 여야가 합의한 세월호 특별법 처리 시한이 내일(16일)로 다가왔지만 여야는 여전히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단식 농성 중인 피해 가족들은 국회에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서명지를 전달했다.[247]
  • 사고 발생 92일(7월 16일)
수색팀은 마지막 남은 격실에 집중했지만 결국 들어가지 못했다. 이곳은 지금까지 한 번도 수색하지 못한 곳인데 최소한 1명 이상의 실종자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28인실이다. 합동 구조팀은 총 4번의 정조기 가운데 새벽 5시 안팎과 오후 5시 안팎 이렇게 두 차례, 89명의 잠수사가 2시간 30분 동안 수색작업을 벌였지만, 실종자를 찾아내지 못했다. 28인실에 들어가 11명의 실종자가 모두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다시 원점에서 재수색을 한다. 격실 하나하나 마다 다시 살펴본 뒤 재수색 확정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건데, 이를 위해 구조 당국은 다각도 촬영이 가능한 특수 카메라를 투입하기로 했다. 이 카메라가 촬영해온 영상을 검증위원회가 정밀 분석한 후 최종적으로 재수색 여부를 결정한다. 긴 잠수시간이 장점인 재호흡기 방식은 미국팀이 투입도 못하고 철수한 데 이어서 이날 예정돼 있던 국내 업체의 시험 잠수도 무산됐다. 해당 국내 업체는 "현재 구조 당국이 쓰는 나이트록스 방식이 더 적절한 것으로 판단했다"며 시험 잠수를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렇게 되자 가족들은 당초 재호흡기 방식을 강하게 추진하고 홍보해왔던 해양수산부 관계자들에게 잔뜩 기대만 부풀려놓은 채 실망만 안겨줬다며 항의하기도 했다.[248]
  • 사고 발생 93일(7월 17일)
민·관·군 합동구조팀은 이날 오전 5시 14분부터 6시 18분까지 정조 시간에 맞춰 수중 수색작업을 벌였다. 구조팀은 실종자들이 모여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4층 좌현 선미 부분에 있는 28인실 격실을 집중적으로 수색했다. 최근 진입로 확보를 위해 외판 절단 작업을 마쳤으며, 부유물을 제거하고 수색할 계획이다.[249] 수색 현장 지원을 마치고 복귀하던 소방헬기가 광주 도심에서 추락해 탑승자 5명 전원이 숨졌다.[250]
  • 사고 발생 94일(7월 18일)
세월호 선체 수색작업에 나선 민·관·군 합동구조팀이 잠수방식을 바꾼 지 1주일 만에 실종자를 발견했다(사망자 294명). 사고대책본부는 민간 잠수업체를 교체하고 새로운 잠수기법을 채택하면서 수색구역을 서로 맞바꿔 재점검한 것이 효과를 낸 것으로 보고 있다. 이날 실종자가 발견된 곳은 선체 중앙 3층에 있는 식당으로 이미 2번 이상 수색을 마친 곳이다. 3층 식당은 주방과 선원식당이 함께 연결돼 수색구역이 넓고 장애물이 많아 추가로 수색을 벌인 곳이다. 추가로 실종자가 발견됨에 따라 사고대책본부는 실종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9곳에 대해 집중적으로 수색할 방침이다.[251]
  • 사고 발생 95일(7월 19일)
유속이 빨라 수색작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합동구조팀은 이날 오전 6시쯤부터 2시간 가량 수색작업을 벌인 이후 수색작업은 중단된 상태이다. 당초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수색구역을 점차 좁혀가는 방안을 논의했는데, 선체 내부의 격실이 111개에 달하는 만큼 철저한 수색을 통해 수색 완료 구역을 넓혀 보다 효율적으로 작업을 벌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수색을 마친 구역에서 실종자가 발견되자 111개 모든 격실에 대한 전방위적인 수색이 필요한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철저한 수색과 또 수색을 마친 구역에 대한 검증 없이는 수색작업의 장기화가 불가피해 보이는 상황이다.[252]

수습방법

해상 및 공중

16일 사고 발생 초기에는 침몰된 세월호 부근에서 선박을 통한 해상구조와 헬기를 통한 공중 수색구조가 주를 이루었다. 특히 초동구조에 민간 어선들이 큰 역할을 하였다.[35][253]

잠수요원

잠수요원들은 우선 수면에서 선체까지 가이드라인(유도선)을 연결한다. 이 선은 빠른 유속과 가시거리가 10~20cm에 불과한 사고 현장에서 잠수요원들이 안전하게 선체까지 내려갈 수 있도록 해주는 일종의 길이다. 물속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선을 연결하기 위해서는 손으로 짚어가며 움직여야 한다. 또한, 빠른 유속 때문에 유도선을 연결하더라도 선끼리 꼬일 수 있고(꼬이면 다시 설치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잠수요원의 마스크까지 벗겨질 수 있다. 꼬인 선을 정리해가며 선체로 진입이 가능한 선실과 화물칸 입구, 조타실 등에 도달한다. 그리고 선을 그곳에 매어 놓으면, 그때부터 선체진입을 본격적으로 시도한다. 진입 입구를 확보하고, 다시 자신의 몸의 생명줄을 이은 뒤, 선체 내부로 진입을 시도한다. 선체 안은 칠흑 같은 어둠 속이므로 방향을 잃게 되면 선체 내에 고립되어 생명이 위험하기 때문이다. 선체로 진입 후에는 휴대 조명 장비로 매우 혼란스러운 선체 내부를 일일이 눈으로 수색해야 한다. 그러나 수심에서의 작업시간은 최대 30분에 불과하여, 잠수요원에게 주어진 시간은 짧다. 따라서 고도로 훈련된 일부 잠수요원만이 작업에 참여할 수 있는 한계가 있다.[254]

또, 잠수요원들이 산소를 공급받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산소통을 통해 산소를 공급받는 스쿠버 다이빙 방식이며, 둘은 공기호스가 연결된 다이빙 헬멧을 통해 산소를 공급받는 머구리 방식이다. 세월호 침몰 사고에서, 16일 대한민국 정부는 머구리 방식은 탁 트인 수중에서 수중 작업을 위한 용도이며, 세월호의 선체를 굽이굽이 들어가서 작업하려면 생명선이 꼬이거나 절단될 위험이 있다며 스쿠버 다이빙 방식을 고수하려 했다. 스쿠버 다이빙 방식은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만 작업할 수 있다. 수심 30 미터에서 수면으로 올라오는데, 잠수병의 문제로 천천히 부상해야 하기 때문에 소요되는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급부상을 브라보라고 하는데, 이 경우 잠수병으로 사망할 수 있다. 실종자 가족들은 지속해서 머구리 방식을 주장했다. 머구리 방식은 그만큼 잠수병 확률도 높지만, 머구리들이 다이빙 헬멧을 쓰고 서해 40미터 해저 바닥을 3시간 동안이나 걸어다니면서 키조개를 캘 수 있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작업 한계는 20~30분이 아닌 3시간이다. 결국, 정부는 투입에 반대하다가 투입을 허가했는데, 머구리들이 투입후 선체 내부 진입에 최초 성공하는 등 상당한 성과를 내기 시작해 22일부터 세월호 침몰 사고의 구조방식이 머구리 방식으로 전환되었다.[255][256]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7월 11일 예정된 미국 수중재호흡기 잠수팀의 검증잠수가 작업현장 조건에 대한 이견으로 실시하지 못하고 미국 잠수팀이 철수하기로 했다고 다음날인 12일에 밝혔다. 수중재호흡기(Rebreather) 잠수는 잠수사가 내쉰 공기를 배출하지 않고 정화해 재활용, 잠수시간을 최대 6시간까지 늘리는 잠수방식으로 대책본부는 검증작업을 거친 후 세월호 수색에 투입할 계획이었다. 사고해역 검증 잠수현장에서 미국 잠수팀이 갑자기 "침몰지점 해상에 정박한 바지 탓에 잠수사 안전확보에 어려움이 있다"며 "바지가 없는 상태에서만 잠수할 수 있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이에 사고대책본부는 "'나이트록스' 잠수방식을 주력 잠수수단으로 활용하고 수중재호흡기 잠수를 보조 수단으로 병행할 예정인 현 상황에서 바지를 철수해 달라는 미국 잠수팀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수중재호흡기 투입이 무산됐다"고 밝혔다.[242]

공기주입 및 리프트백 설치

공기주입은 선체 내에 공기호스를 주입하여, 혹시 모를 선내 생존자들의 생존시간을 늘리는 역할과 부력을 유지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물체가 물 위에 뜨기 위해서는 중력에 상응하는 부력이 작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공기는 부력을 증가시켜줄 수 있다. 따라서 일종의 부력주머니인 리프트백과 공기주입을 정부는 추진했다.[257] 그러나 이러한 조치에 대하여, 알파잠수기술공사 이종인 대표는 이해가 잘 안된다고 논평했다. 공기주입은 사람이 있을 만한 곳에 해야 함에도, 제일 상갑판인 조타실에 공기주입을 했다는 주장이다. 또한, 조타실의 구조적 특성을 근거로 공기가 주입되어 다른 쪽으로 공기가 퍼져 에어포켓을 형성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부정했다. 그는 오히려 공기주입은 일단 조사 후, 식당 등 사람이 살아 있을 확률이 있는 곳에 해야한다고 지적했다. 또, 18일 진행된 정부의 리프트백 설치 양상이 단지 배가 거기 있다고 표시하는 어떤 풍선처럼 돼 있을 뿐, 어떤 부력을 작용하는 효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258]

선체 절단

5월 10일 범정부사고대책본부에 따르면 붕괴 위험이 확인된 곳은 5층 선수 승무원 객실 통로와 중앙 특실 통로, 4층 선수 좌현 8인실 통로와 선미 30인실 통로 등 4곳이다.[129] 이런 상황으로 잠수 수색이 불가능한 구역이 생기자 선체 외판 일부를 절단하는 방안에 최종 합의했다.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의 법률대리인인 배의철 변호사는 27일 오후 진도군청에서 브리핑을 열고 "가족들은 애초 실종자 유실 위험 때문에 주저했으나 정부가 선체 부근과 외곽에 3차에 걸쳐 유실 방지를 위한 에어백과 그물, 안강망 등을 설치하겠다고 약속해 한 명의 유실도 없이 시행될 것임을 믿는다"고 말했다. 절단은 4층 선미 우현부터 우선 추진하며, 절단 방법은 1차적으로 산소 아크 절단법을 사용하고 2차 대안으로 초고온 절단봉이 제시됐다.[160]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30일 오전 진도군청에서 열린 정례 브리핑에서 "전날 오후 2시 10분께 4층 선미 창문 3곳의 절단 작업을 시작, 현재 창문 하단 가로 4.8m를 절개했다"고 밝혔다. 또한 이날 오후 2시께 예정된 '수색구조지원 장비기술 연구 전담반(TF)'회의에서는 4층 선미 절단 진행 상황 점검과 전날 오후 가족들이 건의한 4층 선수 구역 절단 여부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259]

선박인양

세월호 인양 작업은 규모와 기술 면에서도, 해양사고 수습의 최고 난제다. 세월호는 한국에서 운항 중인 여객선 가운데 최대인 6천825t급이다. 2010년 침몰한 천안함(1천200t급)과 비교하면 5배 이상 무겁다. 작업에는 대형 해상 크레인 4대와 플로팅 독 1대 등 세계 최고의 선박 건조능력을 갖춘 국내 조선소의 장비와 구난업체 등 전문 인력이 대거 투입된다. 선박 전문가들은 시야가 20㎝ 정도에 불과한 수중에서 다이버가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조류를 이겨내는 것을 인양 성공의 관건으로 꼽는다.

세월호가 침몰한 지점의 수심은 37m다. 설상가상으로 해당 지점 조류는 이순신 장군이 대승을 이뤘다는 울돌목 다음으로 조류가 센 곳이다. 이번 인양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1차 작업은 세월호의 위치를 바로잡는 것이다. 세월호는 왼쪽으로 기울다가 180도 가까이 뒤집힌 채 침몰했다. 해상 크레인 4대가 완벽하게 호흡을 맞춰 선체를 인양하려면 선체의 바닥 부분이 안정돼야 한다. 인양팀은 수중에서 선박에 구멍을 뚫어 무게중심을 바꾸는 방식으로 위치를 바로잡는 등 선체를 안정화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작업이 마무리되면 선체의 어느 지점에 체인을 연결할지 정하고, 다이버들이 해당 지점을 받쳐 줄 체인을 연결한다. 세월호의 길이는 145.6m이므로, 최소 10개 정도 지점에 체인이 설치돼야 선체를 지탱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체인의 무게만 수백t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사고 발생 사흘째 오전이 지나도록 선체에 진입을 못 할 정도로 조류가 강하다.

안정화와 체인연결이 되더라도 해상 크레인들은 한 몸처럼 움직여야 한다. 서로 호흡이 맞지 않으면 애써 들어 올린 선체가 다시 침몰할 수 있고 해상 크레인이 붕괴될 위험도 있다. 체인을 와이어로 연결한 해상 크레인은 세월호를 수직으로 인양하게 되는데 이때 선체는 수면 위로 12m 이상, 수중에 잠긴 부분은 10m를 넘지 않아야 한다. 이런 수준을 유지해야 하는 이유는 바다 위에서 선박을 건조할 수 있는 장비인 플로팅 독(Floating Dock) 위에 세월호를 얹어 이동하기 위해서다. 플로팅 독 속에 물을 채우면 가라앉고 물을 빼면 떠오른다. 육상에서 만든 선박 블록을 이곳으로 가져와서 조립하고 나서 플로팅 독을 가라앉히면 선박을 물에 띄울 수 있다. 세월호는 선박 블록처럼 플로팅 독으로 옮겨지게 된다. 2010년 천안함 인양 때도 이 방식이 사용됐다.그러나 이 과정 역시 만만치 않다. 해상 크레인이 세월호를 인양, 플로팅 독으로 옮기는 동안 닻이 플로팅 독의 모서리를 고정하는 역할을 하는데 조류와 바람 등 기상 조건이 변수다. 플로팅 독의 이동 오차는 5m 이내여야 한다.

침몰한 선박을 인양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수중에 있는 구조물은 선박 운항의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이기 때문에 제거해야 한다. 둘째, 선박 침몰의 결정적인 원인이 무엇인지를 규명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고 선박을 인양한다는 것은 결정적인 의미를 가진다. 통상적으로 인양을 결정했다는 것은 인명구조를 마쳤거나 이를 포기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인양 과정에서 선체가 크게 흔들릴 수 있다. 이 경우 선체 내부에 공기가 남은 공간 이른바 '에어포켓'으로 해수가 밀려들어 생존자들이 위험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국은 이날 실종자 가족 동의 없이는 세월호를 인양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천안함 사건 때 함미 부분은 사건 발생 21일 만에, 함수 부분은 30일 만에 각각 인양했다. 세월호 인양에는 최소 한 달 이상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260]

수습변수

조류 및 가시거리

선박을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승객들을 구조하기 위한 방법은 잠수요원 투입이다. 잠수요원은 선박인근 및 선박내부를 수색한다. 그러나 맹골수도의 특성상 조류가 빠르고, 가시거리가 10~20cm밖에 되지 않는다. 따라서 잠수요원들도 안전을 담보할 수 없어 구조에 어려움을 겪었다.[261]

기상

기상 역시 사고 수습을 더디게했다. 심지어 17일 오후에는 기상상황이 나빠져 구조가 중단되기도 하였다.[262]

저체온증

박준범 순천향대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10도~15도 사이의 물에 사람이 한두 시간 정도 있게 되면 이미 의식을 잃어요. 체온이 떨어지면서. 한두 시간이 지난다면 굉장히 위험한 상태에 빠진다고 할 수 있고요"라고 언급하였다. 위급한 상황에는 심장기능에 이상이 생기면서 맥박이 느려지는 서맥과 심방 및 심실세동, 심하면 심장정지까지 올 수 있다. 체온이 떨어지면 인체는 근육을 통해 열을 내 온도를 유지하려고 하기 때문에, 근육양이 낮은 고령자나 만성질환이 있는 사람은 특히 위험할 수 있다. 저체온증상태가 되면 구조과정에서도 작은 충격으로 심한 부정맥이 오거나 출혈이 생기기 쉬워 주의를 요한다.[263]

에어포켓

그나마 일부 전문가들이 희망을 걸어볼 수 있는 것으로 지적하는 것은 에어포켓이다. 정창두 서울대 조선해양공학 명예교수는 배가 완전히 수면 아래로 가라앉지 않고, 떠있는 이유를 "컵을 물속에 엎어놓는 것과 마찬가지로 공기가 빠져나가지 않았고, 다행히 선수 부분은 손상이 없기 때문에 공기가 갇혀 있는 거죠. 소위 에어포켓이 형성되어있습니다"라고 설명하였다. 이 에어포켓에 공기가 8㎥가량 있다고 가정하면, 마지노선은 최대 72시간으로 계산된다[264]. 한편, 가라앉지 않은 부분에 의해 추산되는 선내 공기량은 500~1000 세제곱미터 였다. 다만, 이 에어포켓이 승객이 있는 3~5층에서 얼나마 형성되어 있을지는 추산된 바가 없다. 대서양에서는 선박전복 사고 후, 선원이 에어포켓에서 60시간을 버티다가 구조된 사례가 있다.[265]

격실

격실이란 사고의 파급을 방지하기 위해 격리시켜 만든 공간으로 대부분의 선박은 이 격실들을 갖추고 있다. 한국해양대학교 공길영 교수는 “지금 상황은 천안함 상황과 매우 비슷하다”며 “실종자들이 생존해 있으려면 수밀격실이 돼야 하는데 배에 전원 공급이 중단되고 급격히 뒤집히는 대 혼돈 속에서 문을 닫는 조치가 취해져있을지 비관적이다"고 말했다. 격실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문을 닫는 조치가 취해져야 하며, 격실에 에어포켓이 있다면 이론적으로 48시간을 버틸 수 있다.[266]

1·2차 수색 관련

사고 발생 3개월이 다돼가도록 정부가 주먹구구식 수색 계획을 내놓고 있어 실종자 가족들의 불신을 사고 있다.

실종자 가족의 법률 대리인인 배의철 변호사는 6월 30일 오후 진도군청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이날 오전 실종자 가족들을 대상으로 정밀 수색 및 7월 수색 계획 설명회가 예정됐으나 계획이 미흡하고 구체적인 방안이 제시되지 않아 취소됐다"고 밝혔다. 이어 세부 수색 계획이나 잠수 시간을 늘리기 위한 방안이 전혀 없는 부실한 발표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설명회를 중단하고 수색 계획 재수립을 요구했으며, "실종자가 남아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객실이 어디인지, 무슨 근거로 추정하는지도 없고 2층 화물칸 진입 통로 수색 여부, 잠수시간을 늘리기 위한 방안 등도 전혀 없다"고 말했다. 또한 잠수사 교대 투입, 휴식 보장을 위한 인력 확충이 필요한 상황인데도 현재 이에 대한 논의조차 진행하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가족들은 리브리더(수중재호흡기) 등 시속 1.8노트 이상의 유속에서도 장시간 잠수가 가능한 새로운 잠수기법과 30m 수심에서 25분, 40m 수심에서 10분 정도인 현행 잠수시간을 늘릴 수 있는 방안 도입이나 장마 등 기상 여건 대비책 등 가족 및 수색구조 TF 전문가들이 검토를 요청한 사안들이 빠져 있었다며 보완을 요구했다.

한편 대책본부 측은 이에 대해 "실종자 잔류 추정 구역은 예약 현황, 목격자 진술 등을 토대로 선정한 것"이라며 "해당 구역을 수색했음에도 찾지 못한 실종자의 경우 정확한 위치 추정이 어렵다"고 해명, 당장 개선안을 내놓기는 어렵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이어 "2층 화물칸은 실종자 잔류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보고 있지만 가능성이 있다고 해도 차량과 화물로 인해 잠수사 투입을 통한 수색은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가족들은 이날 김석균 해양경찰청장으로부터 수색평가자문위원회 구성을 위한 전문가 명단을 전달받았으며 이 중 5명 내외를 선정해 자문 활동을 요청할 계획이다.[219]

구조팀은 지난 6월 6일부터 1차 정밀 수색을 진행했다. 세월호 3~5층 격실을 중심으로 반복 수색을 실시했고, 격실 내 영상을 촬영해 분석했다. 구조팀은 지난 6월 20일을 1차 수색 종료 시점으로 발표했으나 수색이 완료되지 않아 두 차례 연기했고, 6월 30일 1차 수색 완료 사항과 7월부터 시작되는 2차 수색 계획을 설명하기로 했다. 그러나 실종자 가족들의 반대로 설명회는 취소됐다. 수색 상황 또한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잠수가 어려운 장마철이 다가오고 있고, 침몰한 세월호 내부에 뻘 등의 퇴적물이 들어차고 있는 상태다. 구조팀 관계자는 "조류가 강하고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상황에 최근에는 뻘까지 찼다"며 "잠수사들이 선체에 진입하면 뻘이 뿌옇게 가루처럼 올라와 시계를 가로막는다"고 했다.

황대식 한국해양구조협회 상임이사는 "기상에 관계없이 수색을 진행할 수 있는 소형 ROV(원격수중탐색장비) 활용을 늘리거나 소형 카메라를 막대기에 묶어서 잠수사가 못 들어가는 틈새를 촬영하고 분석하는 방법 등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했다.[221]

광주광역시 헬기 추락 사고

세월호 참사 현장 지원활동을 마치고 복귀하던 소방헬기가 광주 도심 인도에 추락해 탑승자 전원이 숨졌다. 강원소방본부 소속 소방헬기와 탑승자들은 2014년 7월 14일부터 세월호 사고 해역에서 실종자 수색 작업을 지원하고 복귀하던 중 이 같은 사고를 당하였다. 2014년 7월 17일 오전 10시 53분께 광주 광산구 장덕동 부영아파트 옆 인도에 헬기가 추락했다는 신고가 119에 접수되었다. 이 사고로 탑승자 5명이 모두 숨졌다. [267] 문기식 광주 광산소방서장은 광주 헬기 추락 사고 지점에서 브리핑을 갖고 "헬기는 주택 지역 아파트를 피해 도로변 인도에 추락했다"며 "사고 정황상 헬기 조종사가 마지막 혼신의 힘을 다해 도로변으로 추락을 시도해 추가 피해가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268] 2014년 7월22일 강원도청 별관 광장에서 정종섭 안전행정부 장관, 최문순 강원도지사, 남상호 소방방재청장, 시도 소방본부장, 동료 소방관, 시민 등 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강원도장으로 합동영결식이 엄수됐다. 순직 대원들에게 1계급 특진 임용장과 공로장, 추서된 훈장이 전달되었다. 순직자들은 합동 영결식을 마친 뒤 춘천안식원을 거쳐 대전현충원 소방관 묘역에 안장됐다.[269]

사고 원인

사고현장을 상공에서 촬영한 사진

대한민국 정부 공식 조사

사고 원인에 대하여는 현재 해양경찰청(이하 해경) 에서 조사가 진행 중인 부분이다. 해경은 17일 긴급 브리핑에서 세월호 선장 이준석(69) 등 선박직 승무원들을 조사한 결과, 침몰 원인을 무리한 변침으로 잠정 결론 내린 상태임을 알렸다.[270] 이후 19일 검경합동수사본부에서도 무리한 변침을 침몰 원인으로 잠정 결론 내렸다. 그러나 다른 여러 원인에 대해서도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를 진행 중이다. 이는 조타기의 결함, 과적 화물의 느슨한 고정, 암초 충돌이다.[271]

가설들

다음은 침몰에 대한 가설들이다.

암초충돌설

사고 발생 초기에는 언론이 안개에 의한 암초 미발견으로 인한, 충돌가능성을 집중 조명했다. 생존자 중 일부가 들었다는 '쿵' 소리와 당시 기상상황이 안개가 있었다는 점을 고려한 주장이었다. 백점기 부산대 선박해양플랜트기술연구원장은 배의 좌초로 인한 사고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하였다.[272][273] 하지만 이 주장은 해당 해역에 암초가 없으며, '쿵' 소리의 원인이 다른 데 있을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지적에 따라, 유력한 사고 원인에서 후순위로 밀려나게 되었다.[274][275][276]

구조결함설

세월호와 같은 로로선은 구조적 결함으로 인한 사고의 위험성이 국제적으로 자주 지적되던 선박이다(로로선 사고 목록 참조).[277] 2009년 11월 일본에서 미쓰비시 중공업에서 건조하여, 마루에이 페리사가 운행하던 아리아케호가 침몰했다.[278] 이 선박은 과거 세월호가 나미노우에호로 활약하던 시절 운행한 해운사가 동일했고 선박 디자인과 배수량이 유사한 로로선이다.[279] 2009년 아리아케호 사고 직후, 마루에이 페리는 동일 선박인 나미노우에호를 2012년 퇴역시켰다. 그것을 청해진해운에서 싸게 수입하여 1년간 개조하였으며, 2013년 3월 이름을 세월호로 개명하고 운행을 시작하였는데 1년 1개월 만에 좌초된 것이다.[280] 한 해상전문가는 "선체가 그렇게 빨리 기운다는 것은 선박 복원력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데, 이는 선박의 구조적 결함이 원인일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다.[281]

구조변경설

한국해양대 해사수송과학부 김길수 교수는 사고의 원인이 구조변경에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세월호는 2012년 10월 일본에서 수입된 뒤, 이듬해 3월까지 전남 목포에서 객실을 증설하였다. 3~5층에 객실이 증설되었고 승선정원은 181명 추가된 921명으로 많아졌으며, 선박 무게도 239t 증가했다. 이에 따라 무게중심이 원래보다 높아졌다는 것이다. 김교수는 "배를 급격히 돌린다고 전복이 되지는 않는다" 며 "구조 변경 과정에서 무게중심이 위로 올라갔다면 내ㆍ외부에서 충격이 가해졌을 때 배가 뒤집힌다" 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세월호 등록 검사를 맡았던 한국선급 관계자는 "객실 증설은 합법적인 공사, 점검 결과 운항에 문제가 없다는 결론이 나와 등록 검사를 정상 통과했다" 고 밝혔다.[282] 한편, 객실만 증축한 게 아니라, 배 앞쪽 램프웨이도 철거한 것으로 드러났다. 출입구를 줄이면 화물을 더 실을 수 있고, 배 전체 무게가 가벼워져 그만큼 객실 증축에 유리하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쪽에만 있던 램프웨이를 없애면서 오른쪽이 너무 가벼워진 게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283]

변침설(항로변경설)

변침(變針) 이란 여객선이나 항공기 운항 등에서 주로 사용하는 전문 용어로, 항로를 변경한다는 뜻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세월호가 급격한 변침으로 무게중심을 잃고 한쪽으로 쏠렸을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침몰한 세월호가 좌로 기울었다는 점도 이같은 분석에 무게를 실어주고 있다. 임긍수 목포해양대 해양운송시스템학부 교수는 "세월호 여객선 참사 원인이 암초가 아닌 급선회에 따른 외방경사로 추정 된다" 고 밝혔다. 그는 유속이 빠른 해역에서 선박이 회전하게 되면 선체가 5~ 10도 가량 기울게 되고 그 영향으로 선체에 실려 있던 컨테이너나 화물이 한쪽방향으로 쏠려 선박과 충돌했을 것으로 추정 했다. 이설을 지지하는 전문가들은 사고 당시 발생한 '꽝' 소리는 결박된 화물들이 풀리면서 선박에 부딪혀 발생한 소리로 보고 있다.[274][275] 이 설은 17일 해경이 긴급 브리핑에서 잠정 결론으로 발표한 견해이기도 하다.[284]

내부폭발설

공길영 한국해양대 교수와 임교수는 이견을 보였다. 그는 "변침은 침몰의 1차적 사고 원인이 아니다. 배가 이미 기운 상태에서 변침을 시도했다면 문제가 된다" 며 "가능성이 낮다" 고 했다. 그는 "조타 장치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이미 기울어진 상황에서 조타 장치를 작동해 봐야 무용지물이다" 면서 "내부에서 폭발했을 가능성이 크다. 컨테이너에도 무엇이 실렸는지 봐야 한다" 라고 말했다. 그는 암초설에 대해서는 해양 조사원들이 해도에 항로에 있는 암초들을 기입해둘 뿐 아니라 승무원들도 그 항로에 익숙할 수밖에 없다며 암초에 의한 좌초가능성을 일축했다.[285]

복합원인설(단계설)

이상윤 부경대학교 환경해양 과학기술원 공간정보 연구소 교수는 좀 더 복합적인 가설을 내세웠다. 그는 세월호 사고원인에 대해 준비 안 된 인재, 배 자체의 문제, 빠른 유속의 맹골수도를 지나간 외부악재 등이 겹치면서 총체적인 화를 불러온 것이라 하고, 사고발생의 시작점에 주목하여 6단계에 걸쳐 사고가 진행되면서 여러 원인들이 겹치면서 사고가 발생했다고 했다.[286] 또한 배의 복원력에 주목하여 그는 배가 요동치면서 배내외부의 화물들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이로 인해 배의 복원력이 상실되어 배가 한쪽으로 기우는 외방경사가 발생하였을 것이라 추정했다.[287]

그는 "내부 폭발보다는 배는 6단계에 걸쳐 침몰이 진행되었다" 며 복합원인설 혹은 단계설을 주장했다. 1단계, 배는 선박하중 조정실패에 기인한 급격한 무게중심 상실의 한 원인일 수 있는 선박밸러스트 평형수 조정, 선체결함, 과적 등의 여러 이유[288] 로 동적 안정성이 크게 떨어진 상태가 된다. 2단계, 배는 빠른 유속의 영향과 배 자체의 속도로 인해 배 유동이 급격해진다. 3단계, 이때 배 내부에 실린 화물이 한쪽으로 뒤집어지면서 배 자체가 균형을 잃는다. 4단계, 그 순간 배는 급격히 한쪽으로 기울며 복원력을 상실한다. 5단계, 배가 병진운동과 회전운동이 병행되면서 선체가 뒤집어지면서 본격적으로 침수된다. 6단계, 뒤집어진 배는 위쪽에 집중된 창문 등의 여러 통로로 통해 물이 쏟아지면서 슬래밍(slamming) 이 일어나면서 배가 급속히 침몰한다.[286]

그는 3-4단계 과정에서 급속한 선회기동을 하는 변침(변침) 이 발생했다고 한다. 3단계에서 배 내부의 화물들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배 내부에 타공이 생겼을 가능성도 있고, 선적화물 등이 배갑판 등을 때릴 때 이를 승객들은 꽝하는 굉음(내부충격) 으로 들었을 수도 있다고 추정했다. 배 주변의 빠른 유속과 배 속도가 배가되면서 배 내외부의 구조변경이 있었을 경우(구조변경), 이러한 1-6단계가 급속도로 진행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도 추정했다.[289][290][291][292][293][294][295][296][297]

또 세월호 관련 해운조합의 운항관리 부실이 지적되었으며, 해수부는 "운항관리자 독립성 강화와 운항관리를 개선할 것"이라 했다. 이교수는 세월호의 사고원인에 대해 능력부족의 인재, 과적 및 밸러스터 평형수 조정 및 조타 등의 문제와 같은 선체 자체의 문제, 맹골수도라는 급격한 유속이 지나는 위험항로 등의 문제가 함께 복합된 것이 이번 사고원인의 중요한 요소라 하고, 총체적인 문제들이 6단계로 진행되면서 이번 사고의 발생 원인이 되었다고 했다.[298] 세월호의 사고항로인 맹골수도 항로 자체가 사고발생 개연성이 원래부터 높았다. 과거 한해에만 해난사고가 이 지역에서 네, 다섯 건 씩 발생했다. 이 맹골수도 항로는 과거 2002년부터 이곳에서 발생한 사고만 무려 58건, 한해에 4~5번꼴로 사고가 나는 사고다발 지역이며, 서해안의 평균 시속 5㎞보다 2배 넘게 빠른 곳으로 1등 항해사도 쉽지 않은 위험수로다. 이교수는 이 항로가 조류가 센 점에서 언제든지 사고가 일어날 개연성이 있기에, 항로에 대해서 재검토를 해봐야 될 시점임을 지적했다.[299]

또한 그는 사고의 중요한 원인 중에 하나로 과적부분을 지적하고, 배내외부에 화물이 과적되고 이때 결박까지 느슨한 상태에서, 화물이 좌우로 요동되면 관성력 작용으로 배의 요동이 더욱 심해지면서 2-3단계에서 배의 외방경사가 더욱 심해질 수 있다고 하였다. 그는 세월호 선원들이 6시간에 한번 씩 배화물의 결박여부를 점검했는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고도 지적하였다.[286]

과적 및 선체결함설

이 견해는 2014년 4월 19일자 오전 10시경 부산일보와 그날 오후에 종편 방송사 JTBC에서 제기한 것이다. 부산일보 4월 19일자 보도 상, 한국해운조합에 따르면 세월호는 4월 15일 출항 전 화물 657t, 차량 150대를 실었다고 조합에 보고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실제 확인 결과 세월호는 화물 1천157t, 차량 180대를 싣고 있었기에 이는 화물은 무려 500t, 차량은 30대를 초과 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곧 화물 500t 차량 30대 초과한 상태에서 밧줄로 제대로 묶지도 않았기에 선박 하중조절 실패도 한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견해이다.[300]

한편 세월호에 얼마 전까지 근무했던, 기관사는 먼저 선박이 회전을 할 때 균형을 잡아주는 선박 양 측면의 스태빌라이저가 결함이 있었다고 증언했다. 스태빌라이저는 선박 측면에 날개 모양의 형태로, 선체의 안과 밖을 반복적으로 왕복한다. 급회전 시 이 스태빌라이저가 작동하지 않으면 배가 기울어버린다. 그런데 여기에는 전제조건이 있는데, 화물의 과적재이다. 이에 대해 청해진해운 측은 과적재가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JTBC는 이를 다음과 같이 반박한다. 세월호의 전체 중량은 6,825톤인데, 이것은 선박 자체, 화물, 승객, 연료 등의 무게를 모두 더한 수치다(만재배수톤수). 이 무게를 넘어서게 되면 과적이 돼 출항을 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다. 세월호 배 자체의 무게는 3,031톤, 선사 측이 밝힌 화물과 승객 무게는 3,638톤이다. 모두 더하면 6,825톤을 넘지 않아 문제가 되지 않는 것으로 보이지만, 배의 연료와 평형수 등의 무게가 누락돼 있다는 것이다. 세월호 연료로 쓰인 벙커C유와 내부 발전용인 경유를 환산한 무게는 약 160톤으로 이를 더하면, 6,825톤을 넘어선다는 것이다. 윤종희 한국해양대 교수는 "모든 것을 실은 상태에서 거기 화물도 있고, 연료·물·선용품 음식 등 이런 거 다 있지 않습니까. 그런 종류도 다 포함돼요."라고 밝혔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청해진해운 측은 답변을 하지 않았다.

또한, 평형수 문제 역시 선박의 동적안정성을 저해할 수 있는 요인으로 거론 한다. 승객들의 증언에 따르면, 세월호는 침몰되기 한 시간 전인 7시 40분경부터 이미 기울어져 가고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된 데는 이른바 평형수 탱크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 아니냐는 주장이다. 평형수 탱크는 선박 가장 아래 부분에 위치하는데, 좌우 3개씩 모두 6개의 물탱크로 이루어져 있다. 평형수는 해수를 담아 배의 좌우 균형을 맞춰준다. 그런데, 최근까지 세월호에서 일했던 전직 선원의 진술은 다음과 같다. "물이 한쪽으로 실리는 경향이 있어요. 한 번 물을 딱 맞춰 놓으면 그대로 있어야 하는데…" 즉, 좌우 균형이 맞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편 JTBC는 평형수 시설이 2월에 수리를 하고, 안전점검까지 받아 통과했지만 그 이후에도 선원들은 전혀 고쳐진 바가 없다고 했다고 언급했다. 또한, 스태빌라이저 역시 부품이 없어 수리를 받지 못했고. 적재된 컨테이너 역시 쇠줄이 아닌 밧줄로 묶여 있었다는 점도 지적했다.[301][302]

느슨한 결박설

세월호 전 항해사 김모씨는 4월 21일자 JTBC 뉴스 9 손석희 앵커와의 대화에서 스태빌라이저나 평형수, 변침 등의 문제는 결정적인 문제가 아니라며, "침몰한 세월호는 결박을 제대로 안했을 것"이라 했다.[303] 또, 인천항 선박의 화물 결박을 현장에서 직접 담당하는 인천항운노조는 컨테이너 결박에 꼭 필요한 라싱바와 브릿지피팅 같은 전문 장비가 세월호에는 처음부터 없었다고 밝혔다.[304]

그 외에도 잠수함 충돌설 등이 있다.

책임론

승객들을 선박에 두고, 1차 탈출한 선박직 승무원들에 대하여 사회윤리적 책임이 거론되고 있다. 이러한 비판은 세월호 사고의 공학적·물리적 분석에 따른 직접원인 보다 근본원인을 지적한다. 선박이라는 한 집단의 범위 내에서는, 선장 등 선박직 승무원들이 항해와 승객 구조임무 책임을 지닌 리더인데, 그들의 리더십 부재가 세월호라는 한 집단의 침몰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몇 가지 근거로, 충분한 탈출 가능시간이 있었음에도(약 2시간) 승객들에게 "움직이면, 위험하니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과 해경에 구조요청을 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시기적절한 유효 조치가 없었다는 점. 오히려 방송 지시의 합리성에 의문을 품고 구명조끼를 착용한 뒤, 탈출을 시도했던 승객들이 생존율이 높았다는 점. 선장 이준석 등 선박직 승무원들이 승객들을 뒤로하고 1차 탈출했다는 점을 든다. 따라서 이 분석은 인명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던 문제가 리더들의 판단착오와 책임감 부재로 인재(人災)가 되었음을 지적한다. 구원파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청해진 해운 직원 대부분이 구원파 신도들이다.[305][306][307] 한편, 세월호 선원들이 침몰사고 직전 자신들만 아는 통로를 이용해 배에서 탈출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308]

2014년 4월 17일 오후 9시에 인천항에서 청해진해운 대표 김한식 대표가 나와 대국민 사과를 하였다.[309]

대한민국 사회

세월호와 대한민국 사회를 유비추론한 사회 전반의 책임론이 대두된다. 조선일보 이종현 기자는 "침몰하는 세월호는 한국 사회의 축소판"이라며, 세월호의 핵심승무원들이 승객들을 남겨두고 먼저 탈출하는 모습을 위기에 처하면 몰래 빠져나가는 재벌 회장, 국회의원 같은 한국 사회지도층의 모습과 닮은꼴이라고 지적했다. 실종자 가족들이 해경과 해군을 믿지 못하고 민간 잠수부 투입을 강하게 요구했다는 점, 해경이 민간 잠수부 투입을 막고 조롱했다는 근거 없는 이야기가 정부의 공식 발표보다 더 힘을 얻는 상황이 반복된다는 점에서 이는 정부 스스로 권위와 신뢰를 잃은 결과라 지적했다.[310]

반응 및 여파

국내외의 반응

여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구조된 생존자들 대부분은 병원들로 이송되었다. 고대 안산 병원의 한창수 정신과 전문의는 "이송된 환자들이 심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한동안 멍한 상태가 이어졌다"면서 "정신 검진과 스트레스 정도를 파악해 치료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PTSD는 생명을 위협하는 충격을 당하거나 목격한 이후 나타나는 불안함 악몽 등 정서적인 증상이다. 2010년 천안함 사건 생존자 한 명이 PTSD 증세로 의가사 전역하는 등 당시 천안함 생존자 58명 가운데 5명가량이 PTSD를 앓았다. 특히 이번 참사는 생존자 대다수가 고등학생인 만큼 정신적 충격이 더 클 것이라는 지적이 있다.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에 따르면, PTSD의 흔한 증상은 사고 관련 기억이 자주 떠오르고 다시 사고를 겪는 느낌, 악몽, 깜짝 놀라는 반응 등이다. 생존자는 물론 주변 친구, 가족이나 구조인력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 사고 현장인 진도 팽목항의 사고본부에서 피해자 가족들이 최근 정홍원 총리를 비롯한 정치권 인사들에게 과격하게 대하는 것도 스트레스의 일부분이라는 지적이다. 사고 후 충격을 조기에 치료하지 않으면 PTSD로 증상이 만성화될 수 있다. 청소년의 경우 인격 발달에도 영향을 받는다. 보건복지부는 사고 당일 5명으로 구성된 심리치료팀을 생존자들이 입원한 안산 구로병원에 보내 심리 지원을 시작했다. 17일에는 여성가족부와 교육부, 소방방재청, 경기도 등과 함께 '중앙재해 심리지원단'을 꾸려 진도 사고 현장에 내려 보냈다. 법률에 따라 재난사고가 발생하면 심리 상담치료를 해야 한다. 하지만 사고 직후인 만큼 유가족들이 상담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고 복지부는 전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상담치료에 대한 정보를 알리고 안정이 되면 심리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311]

피해자 가족의 건강이상

실종자 가족이 뇌경색으로 쓰러지는 사건이 발생했다.[312]

자살

4월 18일 오후 4시 5분 경, 수학여행 인솔자로 갔다가 사고를 당하고 구조된 안산 단원고등학교 강민규 교감이 전남 진도체육관 뒤편 야산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되었다.[313] 교감의 지갑에서는 유서가 발견되었다. 유서에는 "200명의 생사를 알 수 없는데 혼자 살기에는 힘이 벅차다. 나에게 모든 책임을 지워 달라. 내가 수학여행을 추진했다"며 시신은 화장한 뒤 사고 해역에 뿌려달라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어 "시신을 찾지 못하는 녀석들과 함께 저승에서도 선생을 할까"라는 내용도 적혀있었다.[314] 자살 원인 중 하나로 추정되는 것이 있다. 그는 학생들을 남겨두고 구조된 것에 대해 주위에 “나만 혼자 빠져나온 것 같아 괴롭다”고 호소했으며, 그런 가운데 여객선 침몰로 사망하거나 실종된 단원고 학생 학부모들로부터 “왜 당신만 살아 돌아왔느냐”는 등 강한 질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315] 강민규 교감은 공주대학교 사범대학을 졸업 후 1987년 중등학교 교사로 임용되어 윤리 과목을 가르쳤다. 2012년 3월 교감으로 승진하였으며, 2014년 3월 1일자로 단원고등학교에 부임하였다.[출처 필요]

5월 30일 오전 4시 57분께 화랑유원지 내 주차장에서 A씨가 나무에 목을 매 숨져 있는 것을 행인이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 A씨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족은 아닌 것으로 확인됐으며 숨진 A씨의 바지 뒷주머니에서 편지지 1장 분량의 유서가 발견됐다. 경찰은 A씨가 남긴 유서에 ‘세월호로 숨진 학생들을 추모한다. 어른이어서 미안하다. 지갑에 든 돈(70여만원)을 유족들을 위한 성금으로 써달라. 시신은 기증하겠다’는 등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고 전했다.[316]

6월 25일 오전 11시30분 부산의 한 아파트에서 전모씨(31·여)가 목을 매 숨진 것을 남편 이모씨(37)가 발견했다. 숨진 전씨는 세월호 조기장 전모씨(61)의 딸이다. 조기장 전씨는 딸이 숨지자 26일 검찰에 구속집행정지를 신청했고 법원은 이날 허가했다. 구속집행 정지기간은 이날부터 28일 오후 6시까지다. 경찰은 공무원 시험 성적이 좋지 않은 것을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인을 조사 중이다. 그러나 전 씨는 아버지 문제로 괴로워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월호 참사의 피해자 및 유가족과 마찬가지로 구속된 피의자의 가족들도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기장 전씨는 세월호 침몰 하루 전 청해진해운에 입사했으며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유기치사 및 유기치상, 수난구호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317]

7월 5일 전남 진도경찰서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 58분께 진도군 군내면 신기리 무조리선착장 앞 해상에서 진도경찰서 소속 김모 경위의 시신이 물에 떠 있는 것을 수색에 나선 어민이 발견에 경찰에 신고했다. 그는 지난 달인 6월 26일 오후 9시 26분께 진도군 진도읍 진도대교에서 투신했다. 김모 경위는 참사 이후 투신 전까지 팽목항과 진도실내체육관에서 지원업무를 해 왔으며 업무 피로와 승진 등의 문제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318]

자살 기도

4월 21일 오전 11시 40분경, 참고인 신분이었던 세월호 기관사 손모(58)가 자살을 기도했으나 동료와 모텔 직원의 신고로 구조되어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319]

5월 9일 오후 5시 50분쯤 경기 안산 단원고 학생의 어머니가 집에서 쓰러진 채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다. 고대 안산병원 관계자는 "A씨는 약물을 과다복용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다행히 환자가 신속히 병원으로 옮겨져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320] 11일 안산 단원경찰서에 따르면 이날 새벽 1시 40분께 정부 합동분향소 유가족 대기실 인근에서 서모씨가 자살을 시도하려다 출동한 경찰이 발견해 무사히 가족에게 인계됐다. 경찰은 서씨가 연락이 안 된다는 신고를 받고 수색을 벌이던 중 유가족 대기실 뒤편에서 허리띠를 풀어 목을 메 자살을 시도하려는 서씨를 발견했다. 서씨는 가족과 함께 귀가 조치됐으며,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321]

구조인력 인명피해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4월 27일 오전 진도군청에서 정례 브리핑을 열고 수색 지점의 수심이 깊어지면서 잠수병 증상을 호소하는 대원들도 늘고 있어 잠수사 1명당 1일 투입횟수를 최소화하고 휴식을 안배하며 작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322]

5월 1일, 오전 1시 15분께 민간 잠수사 김모(40)씨가 경상남도 사천시의 삼천포서울병원 고압산소치료센터로 긴급 후송돼 치료를 받고 있다. 김씨는 전날 오후 전남 진도 해역에서 세월호 수중 수색작업을 마치고 나서 바지선 위 감압챔버에서 의식을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응급조치를 받고 의식은 회복했지만 극심한 두통 등 잠수병 증세가 심각해 삼천포서울병원으로 옮겨졌다. 병원 측은 곧바로 고압산소치료센터에서 수심 40~50m 정도의 환경인 6대기압으로 김씨를 4시간 50분 동안 치료했다. 치료를 받은 김씨는 두통이 완화되는 등 상태가 호전됐으나 골반 통증 등을 호소해 잠수병 관련 정밀검사를 받을 예정이다.[323] 이 같은 일은 2일, 14일, 17일에도 여러번 발생했다.[142]

5월 6일, 사고 현장에서 수색작업 중이던 이모씨(잠수사)는 새벽 6시께 유속이 약해지는 정조시간에 맞춰 사고 해역에서 선체 수색작업을 벌이던 중, 5분만에 교신이 끊겨 다른 잠수부들에 의해 구조됐으나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헬기로 목포 한국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끝내 숨졌다. 병원 측은 7시10분께 환자가 이송돼 왔는데 상태가 워낙 좋지 않아 심폐소생술을 실시했으나 결국 숨을 거뒀다고 전했다. 범정부사고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날 사망한 민간잠수사 이모씨는 마린 인더스트리 측이 임시로 고용한 잠수사로, 희생자 수습작업에는 이날 처음으로 투입됐으며, 호흡곤란 증세를 보였다고 한다.[118][324]

5월 7일 오후 8시 20분께 세월호 침몰 해역에서 대기 중인 목포해양경찰서 3009함에서 해양경찰청 인천 항공대 소속 정모 경사가 쓰러져 의식 불명에 빠졌다. 정 경사는 지난 6일 오전부터 인천에서 24시간 근무를 한 뒤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곧바로 세월호 사고 현장에 투입, 수색 작업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정 경사는 이날 오후 8시 20분 교대 근무를 마친 뒤 어지럼증을 호소했으며 혈압 수치도 높게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122] 그는 뇌출혈 진단을 받고 4시간 동안 응급수술을 받았으며, 수술 후 의식을 회복했지만 2주일 정도 진행 경과를 지켜봐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124]

이처럼 잠수사들의 인명피해가 빈발하자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5월 19일 "바지선에 기존 물리치료사 3명 외에 7명을 추가로 배치할 계획"이라며 "의료지원 강화를 위해 침술치료를 할 수 있도록 한의사를 추가 배치하는 방안도 검토할 계획"이라고 19일 밝혔다.[325]

5월 21일 해경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 50분께 전남 진도 사고 해역에서 수색 작업 중이던 이모 경장이 허리에 부상을 입어 병원으로 옮겨졌다.[149]

5월 30일 선체 절단작업에 투입된 민간잠수사 1명이 숨졌다. 잠수사 이씨는 4층 선미 외판 절개를 하기 위해 이날 오후 1시 50분께 입수했다. 이어 2시 20분께 이씨가 작업을 하던 부근에서 충격음이 들렸고 이씨는 얼굴 등에 피를 흘린 채 다른 잠수사에 의해 20여 분만이 2시 40분께 구조됐다. 현장에서 응급치료를 받은 이씨는 인근에 있던 헬기에 의해 목포의 한 병원으로 옮겨져 심폐소생술 등을 받았지만 숨졌다.[166]

해경은 6월 17일 낮 12시 40분께 사고해역 인근에서 수색지원 중이던 해경대원 진모씨가 3000톤급 해경 3011함에서 1512함 소속 단정으로 이동 중, 사다리에서 떨어지며 단정 의자에 옆구리를 부딪혔다고 밝혔다. 진씨는 목포 한국병원으로 이송돼 '갈비뼈 3개 골절'이라는 진단을 받고 치료 중에 있다.[196]

경남 사천시에 있는 삼천포서울병원은 세월호 구조 수색작업에 나섰던 민간 잠수사 13명이 잠수병 증상으로 입원해 치료를 받고 있다고 7월 13일 밝혔다. 지난 7월 10일과 11일 언딘 소속 김모(31)씨 등 11명과 해경 소속 백모(39)씨 등 3명이 피로 누적과 두통, 전신 통증을 호소해 이 중 13명이 입원했다. 특히 김씨는 급성 경추 디스크 증상으로 수술했다.[326]

수색 지원 헬기 추락 사고

7월 17일 오전 10시 54분께 광주광역시 광산구 장덕동 수완지구 한 아파트 인근 도로변 인도에 강원 소방1항공대 소속 소방헬기가 추락했다. 이 사고로 헬기에 타고 있던 기장 정모(52) 소방경, 부기장 박모(50) 소방위, 정비사 안모(38) 소방장, 구조대원 신모(42) 소방교, 이모(31) 소방사 등 5명이 전원 사망했다. 또 사고 당시 버스 승강장에 있던 고등학교 3학년 박모(18)양이 헬기 폭발로 인한 화염 때문에 다리에 2도 화상을 입어 인근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헬기 탑승자들은 지난 14일부터 이날까지 진도군 진도항(팽목항) 등 세월호 참사 현장에서 수색 지원 임무 중이었다. 이날도 오전 8시 47분께 세월호 사고 해역에서 수색 지원 활동을 할 계획이었으나 기상 악화로 투입되지 못했으며 오전 10시 25분께 강원도 소방본부울산광역시 소방본부 소방헬기와 교대하고 복귀하겠다고 연락한 것으로 확인됐다. 복귀 도중 광주 비행장(광주공항))에서 주유를 하고 이날 오전 10시 49분께 다시 이륙한 소방헬기는 5분 뒤 광주 광산구 장덕동 수완지구 한 아파트 인근 도로변 인도로 추락했다. 119와 경찰은 사고 당시 헬기에 기름이 가득 차 있었으며 이로 인해 큰 폭발이 일어나고 화염이 치솟아 탑승자들이 미처 탈출하지 못하고 숨진 것으로 보고 있다.

사고 목격자들은 "헬기가 추락 직전까지 낮게 비행하다 사람이 없는 큰 도로변 옆으로 떨어졌다" "추락할 때 헬기가 낮게 비행하다 '팍팍팍팍'하는 소리와 함께 인적이 없는 곳으로 떨어져 폭발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우선 사고 당시 광주지역에 장맛비가 내리고 있던 점으로 미뤄 기상악화로 인해 헬기가 추락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소방헬기가 광주공항에서 이륙한 지 5분만에 사고가 발생한 점을 놓고 저고도 비행 도중 장애물에 걸렸을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추락 전부터 헬기에서 불이 났다면 기계 결함 또는 엔진에 새가 들어가면서 화재가 발생하는 일명 '버드 스트라이크'의 가능성도 사고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소방당국은 헬기에 설치된 블랙박스를 수거해 정확한 사고 원인과 경위를 파악할 예정이다.

사고 현장은 아파트와 10m 거리도 떨어지지 않았으며 인근에는 학교가 몰려있고 상가와 공원까지 있었다. 특히 학교에서는 학생 수백 명이 수업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으며 차량 통행량이 많은 도로와 인접해 있어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뻔한 아찔한 상황이었다. 추락 사건을 눈으로 직접 목격한 시민들은 이구동성으로 "조종사가 참사를 막기 위해 끝까지 조정간(스틱)을 놓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250]

구조인력·장비 조정

민·관·군 합동구조팀이 다음달부터는 세월호 수색 잠수사와 해군함정 등 인력과 장비를 대폭 축소해 운영하겠다는 내부 방침을 세운 것으로 드러났다. 6월 29일 범정부사고대책본부 관계자에 따르면 해경·해군 관계자 등이 지난 21일 수중탐색 협조회의에서 오는 7월 15일까지를 목표로 수중탐색 기간을 연장하고 추가연장 여부는 유가족 반응과 탐색결과를 고려해 결정하기로 했다. 또한 장기 수색에 지친 해군 잠수사들의 피로도를 줄이기 위해 투입 잠수사 수를 7월 1일부터 현재의 3분의 2 수준으로 줄이고, 15일 이후에는 현재 기준 2분의 1 수준으로 대폭 줄인다는 내부 방안이 제시됐다. 이 계획대로라면 다음달 1일부터 해군 SSU 잠수사가 현재 109명에서 70여 명으로, UDT 잠수사가 현재 89명에서 60여명으로, 총 198명에서 160여명으로 줄어든다. 7월 15일부터는 현재의 절반가량인 100여명의 잠수사가 현장을 지킬 것으로 예상된다. 내부 계획에는 또 물살이 거센 대조기, 중조기에는 잠수사들을 전원 철수시켜 휴식을 취하게 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현재는 대조기, 중조기에도 조류의 흐름을 지켜보며 현장 바지에서 대기하도록 하고 있다. 장비지원도 줄어들 전망인데, 우선 독도함은 정비와 훈련 참가를 이유로 다음달 15일께에는 진도 해역을 떠나 진해 지역으로 복귀할 예정이다. 또 실종자 감소로 현장구조지휘본부 역할이 감소했다며 지휘본부 인원도 현재 28명에서 18명으로 줄여 해군 3함대 사령부로 이관할 계획이다. 당초 합동구조팀은 1차 정밀수색이 끝나는 이달 30일 이후에는 해군, 해경, 민간이 각각 맡았던 수색 구역을 교대해 다시 정밀수색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327]

스미싱

세월호 침몰 사고 뉴스를 전하는 내용으로 위장한 스미싱이 발생하였다. 미래창조과학부한국인터넷진흥원은 18일 세월호 사고를 사칭한 스미싱 문자가 추가로 발송되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스미싱 문자와 연결된 악성 애플리케이션 유포지를 차단 조치했다고 밝혔다.[328]

각 교육청 조치

경기도교육청은 2014학년도 1학기에 예정된 소재 각 학교의 현장 체험학습을 보류하였다고 밝혔다.[329] 서울특별시교육청은 시내 모든 초, 중고등학교에 현재 계획 중인 수학여행 등 현장 체험학습의 안전상황을 재점검하고 안전에 우려가 있으면 즉각 취소하라고 지시했다.[330] 그리고 18일, 공식 보도 자료로 '수학여행 수련활동 및 청소년 단체 활동 학생 안전사고 예방안내’(2014.4.16.) 공문에 4월 21일 실시 예정인 관내 학교 6개교(초 5, 고 1) 의 제주행 수학여행을 취소 및 보류하였다고 하였다.[331] 대전광역시교육청은 안전이 답보되지 않은 행사는 학교 구성원의 사전협의에 따라 일정을 조정할 것을 권고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5월 중 수학여행이 예정되어 있던 서대전고등학교서일여자고등학교 가 일정을 전면 취소했다.[332]

기름 유출

19일 해양경찰청에 따르면 세월호는 벙커C유 120㎘, 경유 50㎘가 적재된 상태로 침몰하였다. 이에 대한 여파로 기름이 유출된 것으로 보인다. 18일 오전까지는 세월호 주변 100m 반경에 엷은 유막이 형성됐지만 하루 만에 훨씬 짙은 기름띠로 변했다.[333]

논란

세월호의 의인들

세월호 승무원 박○○(23)은 학생들에게 구명조끼를 양보하며 탈출을 도우며, 배에 끝까지 남아 있다가 결국 사망하였다. 생존자인 학생의 인터뷰에 따르면 “배가 기울면서 3층에서 난간을 붙잡고 있었는데, 승무원 누나가 뛰어내리라고 해 바다로 뛰어 내려 목숨을 구했다. 당시 10명이 함께 있었는데 구명조끼가 모자라 승무원 누나가 학생들에게 조끼를 양보했다.”고 전했다. 또 그는 “누나는 왜 조끼를 입지 않느냐.”고 묻자 “너희들 다 구하고 나도 따라 가겠다.”라고 답하였다고 전했다. 덕분에 그와 함께 있었던 학생들은 모두 구조되었다고 전해진다.[334] 그 외에도 선원으로서 의무를 다 하다가 실종된 선원은 더 있었다. 세월호 사무장 양○○(46)은 아내와 나눈 전화 통화에서 “배가 많이 기울어져 있어. 수협 통장에 돈이 있으니까 아이 등록금으로 써.”라고 말했다. “아내가 지금 상황이 어떠냐.”고 묻자, 양 사무장은 ‘지금 아이들 구하러 가야 해. 길게 통화 못 해. 끊어.’라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고 한다.[335] 또, 결혼을 앞둔 사이였던 세월호 아르바이트생 김○○(28)씨와 사무직 승무원 정○○(28)씨도 사고 당시 학생들의 구조를 돕고 선내에 남아 있는 승객들을 구하러 들어갔다가 숨졌다.[336][337]

단원고등학교 2학년 6반 담임교사 남○○(36)은 16일 오전 10시쯤, 선실 비상구 근처에 있어 탈출이 가능한 위치에 있었음에도 학생들을 찾아다니며 구명조끼를 나누어주는 등 대피를 돕다 사망하였다.[338] 2학년 5반 담임교사 이○○(33)은 난간에 매달려 있는 제자들의 탈출을 돕다가 실종되었고, 체육교사 고○○(43)도 제자에게 구명조끼를 양보하고 탈출을 돕다가 본인은 나오지 못했다.[339] 최○○ 교사도 사고 상황 속에서 SNS메시지를 통해 학생들에게 "걱정하지 마, 너희부터 나가고 선생님 나갈게"라고 말하며 학생들을 구출하였다. 이후 그녀는 탈출하지 못하고 사망하였다. 교사 김○○ 역시 탈출하지 못하고 사망하였다.[340] 구조된 후 자살한 교감 강○○(52)은 앞장서 출입구를 열고 올라가 "너희 거기 있으면 다 죽는다. 힘이 들더라도 여기로 올라와야 한다."고 소리를 지르며 대학생 일행의 탈출을 도왔고, 먼저 구조될 수 있었음에도 "빨리 나와라. 이쪽으로 와라."고 외치며 끝까지 학생들을 구하다 나중에야 배에서 빠져나왔다.[341]

단원고등학교 학생 정○○(18)은 아수라장이 된 선실에서 구명조끼를 친구에게 건네주고, 물이찬 선실에 갇힌 친구들을 구하며 물속으로 뛰어들었고 끝내 사망하였다.[342] 단원고등학교 학생 양○○ 역시 침몰 직후 갑판으로 나와 구조될 수 있었으나 선실에 남아있는 친구들을 구하기 위해 구명조끼를 입지 않은 채 다시 물이 차오르는 선실로 들어갔고 끝내 나오지 못한 채 사망하였다.[343] 단원고등학교 학생 조○○은 배가 기울자 여학생 방을 찾아 구명조끼를 나줘주며 대피하라고 알리고 여학생을 직접 끌고 올라오는 등 20여명을 구해냈다.[344] 단원고등학교 학생 박○○ 역시 울고 있던 어린 아이를 급히 업고 구명보트에 뛰어올라 둘 다 생환할 수 있었다. 박군은 "나도 네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며 "부모를 찾으며 울고 있는 아이를 두고 먼저 나올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345][338]

배관 설비사 김○○(59)은 제주도에 있는 건축회사에 첫 출근을 하던 중 사고를 겪었다. 그는 배가 기울어지던 30여분 동안 주변 사람들과 함께 소방호스와 커튼을 묶어 선박 1층에 있던 학생 20여 명을 6~7m가량의 위층 난간으로 올려주었고 그 자신을 포함하여 이들은 모두 생환하였다. 그는, 그 사이에 1층에는 물이 가득 차는 바람에 더 많은 학생들을 구하지 못해 안타깝다고 밝혔다.[346] 화물 운전기사 김○○(50)은 사고 당시 여객선 3층 화물운송 기사 전용 객실에서 동료 기사들과 함께 있었다. 그는 배가 기울자 일반 객실이 몰린 4층으로 이동해 호스와 밧줄을 던져 10여 명의 사람들을 구하고 생환하였다. 특히, 그가 구한 이들 가운데는 가족들과 함께 제주도로 이사를 가다가 사고를 당한 어린이 권지연(6, 여)도 포함되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347]

의사자 지정

보건복지부5월 12일 '2014년도 제3차 의사상자심사위원회'를 열어 세월호 사고로 숨진 승무원 박지영(22·여), 김기웅(28), 정현선(28·여)씨 등 3명을 의사자로 인정했다.[336]

인천광역시5월 23일 세월호 사무장 양대홍씨를 의사자로 지정해달라며, 유족의 동의를 얻은 뒤 목격자 진술, 필요 서류 등을 갖춰 이날 오후 보건복지부에 신청서를 제출했다. 시의 한 관계자는 "신청을 위해 필요한 자료를 모두 갖췄다"며 "복지부에서 결정할 사안이지만 국민적 여론이나 언론 보도 내용 등을 고려할 때 의사자 인정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양 사무장은 세월호 고위 승무원 가운데 유일하게 탈출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승객 구조를 위해 배를 지키다가 끝내 숨져 안타까움을 더했다.[348]

사고 초기부터 이들 '살신성인' 교사들을 의사자로 지정해달라는 누리꾼들의 청원이 이어지고 있지만 '의사자' 신청은 유보된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교사 유가족들은 '순직' 처리를 통해 국가 유공자로 등록되는 것을 우선적으로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타인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애쓰다 숨졌다'는 점을 입증해 의사자로 등록하기 보다는 국가공무원으로서 공무수행 중 희생당했다는 점을 인정받는 것이 용이해 이 같은 방향으로 추진 중으로 전해졌다. 모든 교사가 공무상 사망을 인정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러나 이번 사고로 희생되거나 실종된 교원 12명 중 기간제 교사인 2명은 공무원이 아니며, 이들은 공무원연금관리공단의 '공무상 사망'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못 된다. 한편 유가족 대책위는 '세월호 특별법'에 단원고 교사와 학생들을 전원 의사자로 지정하는 방안을 추진했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 또한 의견이 나뉘어 아직 확정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349]

주석

내용주

  1. 하야시카네 선거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군수 공장으로 다수의 조선인이 강제동원되었던 카와나미 공업(川南工業) 후카호리 조선소(深堀造船所)를 전신으로 1965년 설립된 일본의 조선회사이다. 일본 조선업계의 불황에 따른 경영 악화로 1992년 타이완에버그린 그룹(長榮集團)에 인수되어 초에이 조선(長栄造船)으로 개칭되었다가 2004년 다시 후쿠오카 조선(福岡造船)에 인수되어 현재는 후쿠오카 조선 나가사키 공장이 되었다.
  2. 대한민국 언론들이나 일본 자료에서 이 선박을 미쓰비시 중공업 나가사키 조선소에서 건조한 것으로 잘못 서술한 경우가 있다. 마루에페리 사에서는 1994년 하야시카네 선거에서 건조한 4대 나미노우에 호를 청해진해운에 세월호로 매각한 이후, 2012년 미쓰비시 중공업에 5대 나미노우에 호를 발주하였다. 5대 나미노우에 호는 현재 세월호가 된 4대 나미노우에 호와는 다른 선박으로, 이전 나미노우에 호와 같은 설계에 몇몇 부분만 다르게 새로 설계했다고 한다.(외형이 구형과 흡사한 이유는 이 때문이다) 2014년 5월 현재 인터넷에서 フェリー波之上 또는 Ferry Naminoue 라고 검색했을 때 미쓰비시 중공업 홈페이지에서 나미노우에 호가 개재되어 있는 이유는 현재 마루에페리에서 운용중인 5대 나미노우에 호의 건조사가 미쓰비시 중공업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하야시카네 선거는 미쓰비시 중공업과 관계가 없다고 한다. 세월호가 된 4대 나미노우에마루 2012년 9월에 취항한 5대 나미노우에마루

참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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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0. 소조기 끝나는 24일 수색 총력 투입…야간에도 이어간다 - 아주경제, 2014년 4월 25일 작성
  91. 시신 2구 추가 수습…사망자 185명 - 노컷뉴스, 2014년 4월 25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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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3. 선내 3층 식당서 시신 2구 수습, 사망자 187명 - 뉴시스, 2014년 4월 26일 작성
  94. 시신 2구 수습…잠수사들, 조류-시야-장애물 '삼중고' - JTBC 뉴스 9, 2014년 4월 26일 방영
  95. 美세이프가드함, 내주초 세월호 현장 투입 - 노컷뉴스, 2014년 4월 27일 작성
  96. '풍랑특보' 선내 4층서 시신 1구 수습 - 노컷뉴스, 2014년 4월 27일 작성
  97. 구조 상황 더 악화…용접 등 객실 진입 방법 논의 - JTBC 뉴스 9, 2014년 4월 27일 방영
  98. 승무원 탈출 30분 뒤 마지막 카톡…"안내방송 나오지 않는다" - JTBC 뉴스 9, 2014년 4월 28일 방영
  99. 시신 12구 추가 수습···세월호 사망자 205명으로 - 경향신문 속보, 2014년 4월 29일 작성
  100. 박 대통령 세월호 분향소 조문…유족들 “대통령 자식이잖아요” 절규 - 경향신문 정치-청와대 카테고리, 2014년 4월 29일 작성
  101. '조문 연출' 논란 할머니, 청와대가 섭외 - 노컷뉴스-정치, 2014년 4월 30일 작성
  102. 세월호 시신 2구 추가 수습…사망자 212명 - 노컷뉴스, 2014년 4월 30일
  103. '다이빙벨' 투입 임박…30일 새벽 2시 전후 예정 - 뉴스1, 2014년 4월 29일
  104. 다이빙벨 버팀줄 설치 완료…투입은 '아직' - 뉴스1, 2014년 4월 30일
  105. <세월호참사> '다이빙벨' 내일 새벽 2~3시 재투입(종합 2보) - 연합뉴스, 2014년 4월 30일
  106. 주요 64개 객실 중 44개 수색 마쳐…희생자 9명 발견 - JTBC 뉴스 9, 2014년 5월 1일 방영
  107. 다이빙벨, 성과 없이 현장서 철수…"실종자 가족에 죄송" - JTBC 뉴스 9, 2014년 5월 1일 방영
  108. 2일 오후 시신 2구 추가 수습…사망 228명 - 뉴시스, 2014년 5월 2일
  109. 실종자 74명…설계도면과 실제구조 달라 수색 난항 - JTBC 뉴스 9, 2014년 5월 2일 방영
  110. 3일 오후 시신 2구 추가 수습…희생자 236명 - 뉴시스, 2014년 5월 3일
  111. <세월호참사>수색 18일째…사리 끝났지만 여전히 강한 조류 - 연합뉴스, 2014년 5월 3일
  112. 4층 뱃머리서 시신 다수 수습…유실·훼손방지 '총력' - 뉴스1, 2014년 5월 3일
  113. '내일이 생일인데…' 4일 오후 4구 수습…희생자 248명 - 뉴시스, 2014년 5월 4일
  114. 오늘 새벽 시신 6구 수습…사망 242명 - SBS 뉴스 사이트, 2014년 5월 4일
  115. 5일 오후 시신 2구 추가 수습…희생자 262명 - 뉴시스, 2014년 5월 5일
  116. “돌아와다오. 가족품으로”…실종자 40명 - 서울신문, 2014년 5월 5일
  117. 희생자 추가 발견...사망 268명 - YTN, 2014년 5월 6일
  118. 바지선에 의사 없고 건강체크 안해…민간잠수사 목숨건 수색 - 국제신문, 2014년 5월 6일
  119. 7일 오전 여성 추정 시신 1구 발견… 사망 269명
  120. 구조자 2명 줄고, 실종자 2명 늘어…벌써 7차례 번복 - JTBC 뉴스 9, 2014년 5월 7일
  121. "다시 찾아온 소조기"…세월호 실종자 22일째 수색 - 연합뉴스, 2014년 5월 7일
  122. <세월호참사> 구조지원 나선 해경 항공대원 쓰러져 의식불명(종합) - 연합뉴스, 2014년 5월 7일
  123. 세월호 참사 24일째, 시신 4구 추가 수습…사망자 273명·실종자 31명
  124. 24시간 근무 뒤 잠도 못자고 8시간 헬기 수색하더니… - 동아일보, 2014년 5월 9일
  125. <세월호참사> 김한길·안철수 진도 방문…실종자 가족 위로(종합) - 연합뉴스, 2014년 5월 8일
  126. 9일 오후 10시 현재...사망 274명, 실종 30명 - 경향신문, 2014년 5월 9일
  127. 세월호 참사 24일째 유속·객실 붕괴로 수색장애(종합 2보) - 연합뉴스, 2014년 5월 9일
  128. <세월호참사> 사고 해역 풍랑예비특보…수색 잠정 중단 - 연합뉴스, 2014년 5월 10일
  129. <세월호참사> 선체, 붕괴진행…모두 증축 부분 - 연합뉴스, 2014년 5월 10일
  130. <세월호참사> "언제까지 기다려야…" 애끊는 수색 중단 - 연합뉴스, 2014년 5월 11일
  131. 대책본부 "수색 준비 완료…7시쯤 재개"(종합) - 뉴스1, 2014년 5월 12일
  132. <세월호참사> 유족 대책위 전남 진도방문…"실종자 가족 위로" - 연합뉴스, 2014년 5월 12일
  133. <세월호참사> 수색 사흘만에 시신 1구 수습…사망 276명, 실종 28명 - 연합뉴스, 2014년 5월 13일
  134. <세월호참사> 14일 시신 5구 수습…사망 281·실종 23명(종합2보) - 연합뉴스, 2014년 5월 14일
  135. <세월호참사> 승객 10명 중 9명 가까이 탈출 준비 완료 - 연합뉴스, 2014년 5월 15일
  136. 오늘부터 물살 빨라지는 대조기…선체 내 곳곳 붕괴 - JTBC 뉴스 9, 2014년 5월 15일
  137. 영정에 카네이션…스승도 제자도 없는 슬픈 스승의 날 - JTBC 뉴스 9, 2014년 5월 15일
  138. 朴대통령, 세월호 유가족에 사과…"유가족 의견이 무엇보다 중요" - 뉴시스, 2014년 5월 16일
  139. <세월호참사> 새벽시간 시신 1구 수습…실종자 19명 - 연합뉴스, 2014년 5월 17일
  140. <세월호참사> 신규 선발 민간잠수사 9명 현장 추가 투입 - 연합뉴스, 2014년 5월 17일
  141. "세월호 진상규명하라" 서울 도심 대규모 촛불 집회(종합) - 연합뉴스, 2014년 5월 17일
  142. 세월호 민간잠수사 삼천포서울병원 긴급 후송…‘의식불명’ - 동아일보, 2014년 5월 17일
  143. <세월호참사> 여성 시신 1구 인양…실종자 18명 - 연합뉴스, 2014년 5월 18일
  144. "아이들 구명조끼 입혀야돼" 어머니 전화 끊은 교사, 끝내… - 머니투데이, 2014년 5월 20일
  145. <세월호참사> 사고 34일째 중조기 시작… 수색 재개 - 연합뉴스, 2014년 5월 19일
  146. <세월호참사> 사고 35일째…중조기 이틀째 성과 기대 - 연합뉴스, 2014년 5월 20일
  147. 정총리 "모든재산 압류 노력…사고내면 패가망신" - 연합뉴스, 2014년 5월 20일
  148. <세월호참사> 사고 36일째…1명 발견, 실종자 16명(종합) - 연합뉴스, 2014년 5월 21일
  149. <세월호참사> 쌓이는 피로감…수색 작업 중 해경 부상 - 연합뉴스, 2014년 5월 21일
  150. <세월호참사> 사고 37일째…진입 어려운 곳 집중 수색 - 연합뉴스, 2014년 5월 22일
  151. 범대본, 선체 진입 대책 검토만…실종자 가족들 대책 회의 - JTBC 뉴스 9, 2014년 5월 23일
  152. <세월호참사> 사고 39일째…수색 성과 사흘째 '감감' - 연합뉴스, 2014년 5월 24일
  153. '기상 악화' 민간 DS 바지선 안전지대 이동 - 뉴시스, 2014년 5월 24일
  154. <세월호참사> "어류 출입 막아라"…세월호에 섬광등 설치 - 연합뉴스, 2014년 5월 24일
  155. <세월호참사>실종자 가족 "섬주민에 팽목항 개방 협조" - 연합뉴스, 2014년 5월 24일
  156. <세월호참사> 대책본부, 가족측 변호인 회의참석 허용키로(종합) - 연합뉴스, 2014년 5월 25일
  157. 오후부터 수색 재개…선체 절단 등 논의 - 뉴시스, 2014년 5월 26일
  158. <세월호참사> 닷새째 수습 '0'…선체 일부 절단 심층 논의 - 연합뉴스, 2014년 5월 26일
  159. <세월호참사> 침몰 42일째…실종자 16명서 제자리 - 연합뉴스, 2014년 5월 27일
  160. <세월호참사> 실종자 가족 "4층 선체 일부 절단 합의" - 연합뉴스, 2014년 5월 27일
  161. <세월호참사> 4층 창문 절단 준비…강풍·유속으로 차질 우려 - 연합뉴스, 2014년 5월 28일
  162. 세월호 가족 "성역없이 투명한 국정조사해야"(종합) - 연합뉴스, 2014년 5월 28일
  163. <세월호참사> '8일째 무소식'…선체절단용 바지 현장도착 - 연합뉴스, 2014년 5월 29일
  164. <연합뉴스 이 시각 헤드라인> - 08:00 - 연합뉴스, 2014년 5월 29일
  165. 선체 일부 절단…ROV 수색 실패 - 뉴시스, 2014년 5월 30일
  166. 선체 절단작업 민간잠수사 숨져…충격음 들려 - 뉴시스, 2014년 5월 30일
  167. <세월호참사> 45일만에 팽목항 일반 개방…섬주민 뱃길 열려 - 연합뉴스, 2014년 5월 30일
  168. 전국에서 '세월호 진상규명' 촛불집회 열려(종합3보) - 연합뉴스, 2014년 5월 31일
  169. <세월호참사> 사망사고에 기상악화까지…4일까지 중단 예상 - 연합뉴스, 2014년 6월 1일
  170. 세월호 국조특위 첫 일정부터 제각각..野 위원들만 진도행 - 뉴스토마토, 2014년 6월 2일
  171. 檢 "유병언, 외국에 망명 시도…거절당해"(종합2보) - 뉴스1, 2014년 6월 3일
  172. "남은 실종자들 잊혀질까 두려워"…수색 재개 움직임 - JTBC 뉴스 9, 2014년 6월 3일 방영
  173. 세월호 선체 절개작업 마무리…3·4층 재수색 - 뉴스1, 2014년 6월 4일
  174. <세월호참사> 함정 사고해역 복귀중…4일 작업재개 예상 - 연합뉴스,2014년 6월 3일
  175. <세월호참사> 40㎞ 떨어진 해역서 일반 승객 시신 발견(종합3보) - 연합뉴스, 2014년 6월 5일
  176. <세월호참사> 창문 절단 후 크레인으로 장애물 제거 - 연합뉴스, 2014년 6월 5일
  177. 세월호 희생자 성적모욕 '일베' 회원 구속기소 - 연합뉴스, 2014년 6월 5일
  178. <세월호참사> 3층서 남성 1명 추가 수습…실종자 14명 - 연합뉴스, 2014년 6월 6일
  179. 세월호 4층 선미외판 절단 완료…희생자 수색 '박차' - 뉴스1, 2014년 6월 7일
  180. '세월호 특별법 제정' 유가족 서명운동(종합2보) - 연합뉴스, 2014년 6월 7일
  181. <세월호참사> 4층서 남성 추정 시신 추가 수습…실종자 12명 - 연합뉴스, 2014년 6월 8일
  182. 제자들 구하러 갔던 ‘담임쌤’ 54일 만에… - 한겨레신문, 2014년 6월 8일
  183. 중조기 첫날…3층 식당, 4·5층 선수격실 수색 - 뉴스1, 2014년 6월 9일
  184. <세월호참사> 선내 장애물 제거로 실종자 수색 '속도' - 연합뉴스, 2014년 6월 9일
  185. 새누리, 세월호 국정조사 기관 보고 월드컵 때 하자? - 한겨레신문, 2014년 6월 9일
  186. 세월호 승무원 15명 첫 재판…살인 등 혐의 부인(종합2보) - 연합뉴스, 2014년 6월 10일
  187. 세월호 참사 57일째…수중수색·장애물제거 '박차' - 뉴스1, 2014년 6월 11일
  188. <세월호참사> 나흘째 추가 발견 소식 없어 - 연합뉴스, 2014년 6월 12일
  189. <세월호참사> 또 '대조기'…추가 수습 없어 - 연합뉴스, 2014년 6월 13일
  190. 세월호 유족, 첫 국가상대 손배소송 제기(종합) - 연합뉴스, 2014년 6월 13일
  191. <세월호참사> 가족대책위 "학교비리 감시기구 만들어달라" - 연합뉴스, 2014년 6월 14일
  192. <세월호참사> 1주일째 추가 실종자 발견 못해(종합) - 연합뉴스, 2014년 6월 15일
  193. "실종자 구조가 우선, 국조 보고 6월 이후로…" - 뉴시스, 2014년 6월 16일
  194. <세월호 실종자 수색 성과 없어…곧 장마 시작> - 연합뉴스, 2014년 6월 17일
  195. <세월호 침몰책임 누구에게…승무원·선사 공방 예고> - 연합뉴스, 2014년 6월 17일
  196. 세월호 수색지원 50대 해경대원 부상 - 뉴스1, 2014년 6월 17일
  197. ‘단원고 외고 전환’이 세월호 참사 대책?…‘졸속’ 비판 - 한겨레신문, 2014년 6월 17일
  198. ‘세월호 사고’ 책임 단원고 교장 직위해제…행정실장 전보 조치 - 동아일보(동아닷컴), 2014년 6월 18일
  199. 與 세월호국조 기관보고 23일 강행…野 "만행·폭거" - 연합뉴스, 2014년 6월 18일
  200. 주말부터 장마 시작인데…11일째 실종자 소식 없어 - JTBC 뉴스 9, 2014년 6월 19일 방영
  201. 세월호특위, 6월 26일부터 7월 7일까지 기관보고 합의(상보) - 뉴스1, 2014년 6월 20일
  202. ‘경찰의 세월호 유족 미행·채증 행위’ 조사한다더니… 경찰청 인권위원회, 한 달 넘도록 회의만 - 경향신문, 2014년 6월 20일
  203. 1단계 정밀수색 마쳤지만…세월호 실종자 구조소식 없어 - 연합뉴스, 2014년 6월 21일
  204. 하루만에 수색재개…돌아오지 않는 12명 실종자 - 연합뉴스, 2014년 6월 22일
  205. 해외의 재난 후 진상규명위원회 사례 - 참여연대, 2014년 6월 22일
  206. 참여연대 "재난 진상조사 기구에 충분한 권한 줘야" - 연합뉴스, 2014년 6월 22일
  207. 세월호서 CCTV 영상 저장장치 발견 - 동아일보, 2014년 6월 23일
  208. 16일만에 여성 시신 1구 수습…남은 실종자 11명 - 뉴스1, 2014년 6월 24일
  209. 세월호 참사 71일째…수색·장애물 제거 박차 - 뉴스1, 2014년 6월 25일
  210. 세월호 실종자 가족 "유임 정 총리 약속지켜라" - 연합뉴스, 2014년 6월 26일
  211. 세월호 참사 73일…수색·장애물 제거 병행 - 뉴스1, 2014년 6월 27일
  212. <정총리, '시즌2' 첫 외부행보…눈물의 진도 방문>(종합) - 연합뉴스, 2014년 6월 27일
  213. 與, 진도·제주서 세월호 현장조사…"진도서 기관보고"(종합) - 연합뉴스, 2014년 6월 27일
  214. 세월호 참사 74일째 추가 수습 없어…실종자 11명 - 연합뉴스, 2014년 6월 28일
  215. <정총리 "4월16일 영원히 기억되게 하겠다">(종합) - 연합뉴스, 2014년 6월 28일
  216. 정의장 "세월호 잊지않겠다"…실종자가족 위로(종합) - 연합뉴스, 2014년 6월 28일
  217. 닷새째 시신 수습 없어…남은 실종자 11명 - 뉴스1, 2014년 6월 29일
  218. 세월호 수색 인력·장비 '7월부터 대폭 축소' 계획 - 연합뉴스, 2014년 6월 29일
  219. 76일째인데…'알맹이' 없는 세월호 수색계획 발표(종합) - 연합뉴스, 2014년 6월 30일
  220. 진도 해역 100km 밖 의문의 시신…수색설명회는 무산 - JTBC 뉴스 9, 2014년 6월 30일 방영
  221. 복도 무너져 못들어갔던 4개 격실에도 진입하기로 - 조선일보(조선닷컴), 2014년 7월 1일
  222. 세월호, 3미터 더 가라앉아…장마 예고에도 '무대책' - JTBC 뉴스 9, 2014년 7월 1일 방영
  223. 해경 "장마에도 현 세월호 수색체계 유지" - 연합뉴스, 2014년 7월 2일
  224. 세월호 가족, 특별법 제정 촉구 전국 돌며 서명운동(종합) - 연합뉴스, 2014년 7월 2일
  225. 장마·파도로 세월호 현장 장비점검…오후 수색재개(종합) - 연합뉴스, 2014년 7월 3일
  226. 세월호 침몰 부실대응 해경 첫구속…진도VTS 소속 2명 - 연합뉴스, 2014년 7월 3일
  227. 열흘째 무소식…세월호 실종자 수색에 '전자코' 도입 - 연합뉴스, 2014년 7월 4일
  228. 세월호 참사 81일째…기상악화로 수색 중단(종합) - 연합뉴스, 2014년 7월 5일
  229. 정총리 "태풍으로 세월호수습 차질없어야" 대비지시 - 연합뉴스, 2014년 7월 5일
  230. 세월호 참사 82일째…태풍 북상에 수색 중단(종합) - 연합뉴스, 2014년 7월 6일
  231. '태풍 대비' 세월호 실종자 가족 지원시설 임시 철거 - 연합뉴스, 2014년 7월 7일
  232. "'언딘' 잠수 방식 문제"…수중수색 배제 검토 - JTBC 뉴스 9, 2014년 7월 7일 단독 보도
  233. 태풍 북상에 세월호 시신 유실 우려 - 연합뉴스, 2014년 7월 8일
  234. 관제 소홀 진도 VTS 센터장 등 3명 추가 영장 - 연합뉴스, 2014년 7월 8일
  235. "세월호 잊지 말길" 800km 십자가 순례 떠난 두 아버지 - JTBC 뉴스 9, 2014년 7월 8일
  236. 세월호 수색 닷새째 중단…태풍 북상에 긴장 - 연합뉴스, 2014년 7월 9일
  237. <세월호특위, '부실감사'·유병언 검거지연 질타>(종합) - 연합뉴스, 2014년 7월 9일
  238. 세월호 실종자 수색 엿새 만에 재개(종합) - 연합뉴스, 2014년 7월 10일
  239. 세월호 수색 재개 연기…재호흡기 현장 투입 불투명 - JTBC 뉴스 9, 2014년 7월 11일
  240. <전반전 마친 세월호국조 진상규명 헛발…與野 "네탓"> - 연합뉴스, 2014년 7월 11일
  241. 세월호 수색 지연…짙은 안개로 바지 고정 난항 - 연합뉴스, 2014년 7월 12일
  242. 세월호 수색에 수중재호흡기 잠수팀 투입 무산 - 연합뉴스, 2014년 7월 12일
  243. 세월호 수중 수색 재개…성과 없어 - 연합뉴스, 2014년 7월 13일
  244. 유속 빠른 대조기…세월호 수색 '난항' - 연합뉴스, 2014년 7월 14일
  245. "야속한 물살"…세월호 수색 성과 없어 - 연합뉴스, 2014년 7월 15일
  246. 세월호 수색 방식 바꾼다…'나이트 록스' 방식 도입 - SBS 8 뉴스, 2014년 7월 15일
  247. 세월호 특별법 이견 여전...내일 처리 불투명 - YTN, 2014년 7월 15일
  248. 세월호 마지막 격실 진입 총력…"실종자 존재 가능성" - JTBC 뉴스 9, 2014년 7월 16일
  249. 유속 느려지는 중조기…세월호 격실 수색 집중 - 연합뉴스, 2014년 7월 17일
  250. 광주서 세월호 지원 소방헬기 추락 5명 사망 - 뉴시스, 2014년 7월 17일
  251. <잠수방식 바꾸고 첫 실종자 수습…효과 있나?> - 연합뉴스, 2014년 7월 18일
  252. 수색 마친 구역서 희생자 발견…"전방위 재수색" 필요성 제기 - JTBC 뉴스 9, 2014년 7월 19일
  253. 진도. "[진도 여객선 침몰 / 밤샘구조] 구조 동참한 조도면 어민 150 여명, 배 60척 이끌고 수십명 구해", 《조선일보》, 2014년 4월 17일 작성. 2014년 4월 17일 확인.
  254. 최재영. "잠수요원, 선체 진입 어떻게?…"줄 하나에 의지"", 《SBS》, 2014년 4월 18일 작성. 2014년 4월 18일 확인.
  255. 특별취재팀. "<세월호참사> '머구리' 대거투입…첨단장비는 '글쎄'", 《연합뉴스》.
  256. MBN. "[세월호 침몰 참사 수색 머구리 위주로 전환…무인탐사 로봇은 철수 '왜?']", 《MBN》.
  257. 김윤수. "세월호 침몰 49시간 만에…공기 주입 시작", 《채널A》, 2014년 4월 18일 작성. 2014년 4월 18일 확인.
  258. 손석희. "이종인 "공기 주입, 생존자 있을 만한 곳에 해야..조타실은 의문"", 《JTBC》, 2014년 4월 18일 작성. 2014년 4월 18일 확인.
  259. <세월호참사> 4층 선미 창문 절단 곧 완료…선수 절단도 논의 - 연합뉴스, 2014년 5월 30일
  260. 연합뉴스특별취재팀. "<여객선침몰> 인양작업 어떻게…국내 해양사고 수습 최고 난제", 《연합뉴스》.
  261. 김현정. "구조현장 "잠수부는 500명…투입은 2명 뿐"", 《노컷뉴스》.
  262. 온라인뉴스팀. "[진도 여객선 세월호 침몰] 기상 악화로 사실상 '수색 중단'", 《스포츠월드》.
  263. 김지선. "[여객선침몰] '세월호' 실종자 저체온증·질식 우려", 《연합뉴스》.
  264. 윤진호. "`에어포켓`에 있다면 최대 72시간…객실에 산소 공급땐 시간 더 늘어", 《매일경제》.
  265. 허재원. "왜 전부 가라앉지 않나..'에어포켓'이 희망", 《YTN》.
  266. 헤럴드생생본부. "[진도 여객선 침몰 참사] 실종자 추가 290명 “살아있다면 격실"", 《헤럴드생생본부》.
  267. 배동민. "[종합2보광주서 세월호 지원 소방헬기 추락 5명 사망]", 《뉴시스》.
  268. "광주 헬기추락 탑승자 전원 사망소식, '베테랑 조종사들 피해 최소화하기 위해..'", 《헤럴드경제》, 2014년 7월 17일 작성. 2014년 8월 23일 확인.
  269. "광주 헬기 추락사고, 순직 소방관 영결식..눈물로 떠나보내", 《한국경제》, 2014년 7월 17일 작성. 2014년 8월 23일 확인.
  270. 디지털 뉴스팀. "세월호 사고원인 '변침' 잠정결론 ... 시간대별 구성", 《경향신문》.
  271. 박상진. "검·경, 세월호 침몰 사고원인 4가지 추정", 《SBS》.
  272. 뱃머리급격히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008245438&cp=du
  273. MBN. "[속보] 진도 여객선 침몰 이유? "안개 탓으로 암초 부딪혀…"", 《MBN》.
  274. 온라인뉴스팀. "진도 여객선 세월호 침몰 원인, 변침으로 잠정결론…'에어포켓만이 희망'", 《Gvalley》.
  275. 온라인 뉴스팀. "진도 여객선 세월호 침몰 원인 변침으로 잠정 결론 ... '에어포켓만이 희망'", 《티브이이데일리》.
  276. e뉴스팀. "진도 여객선 침몰에 해양 전문가 "변침·암초 아닌 내부 폭발 가능성 있어"", 《스포츠서울》.
  277. 김지아 기자. "[뉴스쇼 판] 필리핀 로로선 위험성 경고…허술한 해상 안전수칙", 《TV조선》, 2014년 4월 18일 작성. 2014년 4월 19일 확인.
  278. http://idyllicocean.com/shipsdb/ship2_info.php?lang=jp&id=74
  279. 이창구 기자. "[진도 여객선 침몰 참사] 세월호 만든 日조선소의 다른 배도 2009년 ‘판박이 좌초’", 《서울신문》, 2014년 4월 19일 작성. 2014년 4월 19일 확인.
  280. 김혜정 기자. "세월호 침몰, 日 아리아케호 사고와 똑 닮은 '쌍둥이 사고' 같은 조선소 배", 《서울경제》, 2014년 4월 18일 작성. 2014년 4월 19일 확인.
  281. 김한수, 김현아 기자. "[진도 여객선 참사] 사고 커진 이유, 미숙한 초기 대응이 참극 불렀다", 《부산일보》, 2014년 4월 17일 작성. 2014년 4월 19일 확인.
  282. 김지은. "[진도 여객선 침몰 참사] 이미 선체 손상 가능성.. 급선회하며 쏠림현상 겹친 듯", 《한국일보》.
  283. 객실 증축만이 아니다? 화물 더 싣기 위해 선수도 개조 - JTBC 뉴스 9, 2014년 4월 23일 방영
  284. 디지털 뉴스팀. "세월호 사고원인 '변침' 잠정결론 ... 시간대별 구성", 《경향신문》.
  285. e뉴스팀. "진도 여객선 침몰에 해양 전문가 "변침 · 암초 아닌 내부 폭발 가능성 있어"", 《스포츠서울》.
  286. 연합뉴스TV [세월호참사] 사고원인은?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422&aid=0000059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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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9. 세월호 참사, 총제적 안전관리 부실론 급부상 해운조합 운항관리 부실 도마 위…해수부 “운항관리자 독립성 강화·운항관리 개선할 것”, 《데일리안》, 2014.4.20
  290. 세월호 동적 안정성 붕괴, 《뉴시스》, 2014.4.17
  291. [세월호침몰사고] 유속 빠른 지역 빠르게 운항하다 복원력 잃었을 것, 《부산일보》, 2014.4.18
  292. [진도 여객선 침몰] “뱃머리 급히 돌리다 ‘외방경사’… 컨테이너 쏠려 침수”, 《국민일보》, 2014.4.18
  293. 과속과 유속 6단계설, 《연합뉴스》, 2014.4.17
  294. 세월호6단계 걸쳐 침몰, 《국제신문》, 2014.4.18
  295. 여객선침몰 과속+유속, 《연합뉴스》, 2014.4.17
  296. [여객선침몰 사고]“선박 과속과 바닷물의 유속 겹쳐 복원력 상실 가능성”, 《경향신문》, 2014.4.17
  297. 〔진도 여객선침몰] "세월호, 동적 안정성 붕괴로 침몰했을 것", 《뉴시스》, 2014.4.17
  298. [세월호참사] 사고원인은?, 《연합뉴스》, 2014.4.21
  299. 뉴스쇼 판 '맹수처럼 빠른 물살'…대형선박 항로 바꿔야, 《TV조선》, 2014.4.20
  300. 화물 차량 신고보다 더 실어 http://news20.busan.com/controller/newsController.jsp?newsId=20140419000050
  301. JTBC. "침몰한 세월호 '과적' 의혹…'숨은 무게' 계산 안 했다", 《JTBC》.
  302. 윤정식. "흔들림 막는 균형장치 '스태빌라이저' 고장 났었나?", 《JTBC》.
  303. 세월호 전 항해사 "16번 채널 쓰면 문제 커져 사용 안 해" - JTBC 뉴스 9, 2014년 4월 21일 방영
  304. '결박 장치'…세월호에는 애초부터 없었다 - JTBC 뉴스 9, 2014년 4월 23일 방영
  305. 온라인뉴스팀. "[세월호 침몰사고]세월호 선장 "책임의식은 무면허, 탈출은 1등 항해사"", 《동아닷컴》.
  306. 문연철. "사고 당시 선장·선원들, 승객 두고 먼저 탈출", 《MBC》.
  307. 이현영. "세월호 선장 '승객 두고 먼저 탈출'…서해 훼리호 선장은 어땠나", 《티브이이데일리》.
  308. 세월호 선원들, 자신들만 아는 통로로 탈출 - 경향신문, 2014년 4월 21일 작성
  309. 청해진해운 대표 "죽을 죄를 졌습니다" - KBS 뉴스, 2014. 04. 18.
  310. 이종현. "[기자수첩] 침몰하는 대한민국에는 선장이 없다", 《조선비즈》.
  311. 지연진 (2014년 4월 18일). [세월호 침몰] 생존자들 극도로 불안해...PTSD 우려. 아시아경제. 2014년 4월 18일에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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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3. 디지털뉴스부 (2014년 4월 18일). "혼자 살아 미안"… 세월호 침몰 사고서 구조된 단원고 교감 자살. 경인일보. 2014년 4월 18일에 확인.
  314. 신현식 (2014년 4월 18일). 숨진 단원고 교감 '유서' 발견…"저승에서도 선생을…". 머니투데이. 2014년 4월 18일에 확인.
  315. 구조된 단원고 교감 숨진채 발견 - 동아닷컴(동아일보), 2014년 4월 19일 게재
  316. "어른이어서 미안해" 안산 합동분향소서 50대 숨져 - 고발뉴스닷컴, 2014년 5월 30일
  317. 세월호 승무원 딸 스스로 목숨 끊어 - 경향신문, 2014년 6월 26일
  318. 세월호참사 투신 경찰관 시신 9일 만에 발견 - 뉴시스, 2014년 7월 5일
  319. 특별취재팀 (2014년 4월 21일). <세월호참사> 세월호 기관사 자살 기도..생명 지장 없어(종합). 연합뉴스. 2014년 4월 21일에 확인.
  320. “나도 갈게”… 단원고 희생자 어머니 자살기도 - 세계일보, 2014년 5월 9일
  321. 단원고 학부모 합동분향소 인근서 또 ‘자살 기도’ - 파이낸셜뉴스, 2014년 5월 11일
  322. <세월호참사> 기상악화로 투입 인원 급감…오늘도 난항 - 연합뉴스, 2014년 4월 27일
  323. <세월호참사> 민간 잠수사 사천 후송 치료 - 연합뉴스, 2014년 5월 1일
  324. 수색작업 중 의식 잃고 쓰러진 ‘언딘’ 민간잠수사 사망 - 중앙일보, 2014년 5월 6일 앞서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잠수사가 마지막 희망'이라는 실종자 가족 등의 요구로 잠수사에 대한 식사와 작업 여건 등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사고 해역 인근에 대기 중인 해군 함정에는 군의관과 감압 체임버, 수술실 등이 갖춰져 있음에도 결국, 무용지물이었다.
  325. <세월호참사> 잠수사 위해 물리치료사 충원·한의사 배치 검토 - 연합뉴스, 2014년 5월 19일
  326. 세월호 수색 민간 잠수사 13명 입원 치료 중 - 연합뉴스, 2014년 7월 13일
  327. 세월호 수색 인력·장비 '7월부터 대폭 축소' 계획 - 연합뉴스, 2014년 6월 29일
  328. 강은성. ""해도해도 너무하네"…세월호 사칭 스미싱 추가 발견", 《디지털타임스》, 2014년 4월 18일 작성. 2014년 4월 18일 확인.
  329. 정재봉 (2014년 4월 17일). 경기도교육청, 1학기 예정된 각 학교 현장 체험학습 보류. 경기도교육청. 2014년 4월 17일에 확인.
  330. 김윤나영 (2014년 4월 17일). 서울시교육청, "안전 우려 있는 수학여행 취소" 지시. 프레시안. 2014년 4월 17일에 확인.
  331. 김문호 (2014년 4월 18일). 수학여행 등 현장 체험학습 관련. 서울행복 교육소식. 2014년 4월 18일에 확인.
  332. 심영석. "대전교육청, 수학여행 · 수련회 검토 권고", 《news1》, 2014년 4월 17일 작성. 2014년 4월 17일 확인.
  333. 사고 해역에 퍼진 '세월호 유출 기름띠'. 위키트리 (2014년 4월 19일). 2014년 4월 19일에 확인.
  334. 이정하. "<진도 여객선침몰> "숨진 여승무원이 조끼를 양보했다"", 《뉴시스》, 2014년 4월 17일 작성. 2014년 4월 17일 확인.
  335. 조선일보. "[진도 여객선 침몰 / 안타까운 사연들]"우리 남편은 도망가지 않았어요"", 《조선일보》, 2014년 4월 18일 작성. 2014년 4월 18일 확인.
  336. <세월호참사> '살신성인' 승무원 박지영씨 등 3명 의사자(종합) - 연합뉴스, 2014년 6월 9일
  337. 밤 꼬박 새우며 뱃멀미 승객 얼음찜질 해주던 ‘진짜 선원’ - 동아일보, 2014년 5월 19일
  338. 정경화. "[진도 여객선 침몰 / 안타까운 사연들] "달아나" 등떠민 선생님.. 돌아보니 안계셔", 《조선일보》, 2014년 4월 18일 작성. 2014년 4월 18일 확인.
  339. 특별취재팀. "<여객선침몰> 침몰순간에도 빛난 단원고 스승과 제자", 《연합뉴스》, 2014년 4월 18일 작성. 2014년 4월 18일 확인.
  340. MBN. "[세월호 실시간]故 최혜정 교사, "걱정하지 마 너희부터 가"…'첫 발인'", 《MBN》, 2014년 4월 19일 작성. 2014년 4월 19일 확인.
  341. "내 손 잡아" 탈출 돕던 그 아저씨가 교감이었다… - 경향신문 사회 카테고리, 2014년 4월 21일 작성
  342. '우리들의 영웅' 고 정차웅군, 이승에서 18년 짧은 생 '마감' - 뉴스1, 2014년 4월 22일 작성
  343. [세월호 침몰 참사-단독] 갑판까지 나왔다가 친구 구하러 선실로…단원고 양온유양 살신성인, 국민일보, 2014년 4월 24일 작성
  344. 최기성. "긴박한 상황에도 구조에 힘써…목숨을 건 '살신성인'", 《OBS뉴스》, 2014년 4월 17일 작성. 2014년 4월 22일 확인.
  345. 특별취재팀. "<여객선침몰> 6살 여아 탈출시킨 단원고 박호진군", 《연합뉴스》, 2014년 4월 17일 작성. 2014년 4월 17일 확인.
  346. 특별취재팀. "<여객선침몰> 20여명 구하고 마지막 탈출한 김홍경씨", 《연합뉴스》, 2014년 4월 16일 작성. 2014년 4월 16일 확인.
  347. 강제남. "[진도여객선침몰]제주 화물차 기사 목숨 걸고 학생 등 생명 구해", 《뉴시스》, 2014년 4월 16일 작성. 2014년 4월 16일 확인.
  348. 인천시, 의인 양대홍 사무장 의사자 인정 신청 - 연합뉴스, 2014년 5월 23일
  349. 세월호 희생 교사들 '의사자' 추진 안했다…속사정 뭐길래? - 머니투데이, 2014년 6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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