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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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
다른이름: 포르모사
Taiwan NASA Terra MODIS 23791.jpg
지리
Map of Taiwan.jpg
위치 동아시아
좌표 북위 23° 46′ 동경 121° 0′  / 북위 23.767° 동경 121.000° / 23.767; 121.000
면적 35,980 km²
최고점 위 산 3.9km
실효 지배
중화민국 중화민국
타이완 성
대도시 타이베이 시
가오슝 시
타이중 시
타이난 시
신베이 시
영유권 주장
중화인민공화국 중화인민공화국
타이완 성 (중화인민공화국)
성도 타이베이 시
중화민국 중화민국
타이완 성
성도 중싱 신촌
인구 통계
인구 약 2300만명

타이완(중국어 간체: 台湾, 정체: 臺灣, 병음: Táiwān, 주음부호: ㄊㄞˊ ㄨㄢ; 대만)은 동아시아에 있는 섬이다. 면적은 35,980 km²로, 시간대UTC + 8:00 시간이다. 별칭은 포르투갈어로 ‘아름다운 섬’이란 뜻을 가리키는 포르모사(Formosa)이다. 거주 인구는 약 2300만 명이다. 일본 제국의 패망으로 식민 통치가 끝난 1945년중화민국으로 반환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으나, 1949년 독립한 중화인민공화국이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위치 및 지형[편집]

일본 류큐 제도(琉球諸島, 유구제도)와 지나, 필리핀의 가운데에 위치한 교통 요지이다. 타이완에서 류큐 제도까지의 거리는 약 75 km, 중국 대륙까지는 약 150 km, 필리핀까지는 약 300 km다.

타이완의 지형은 이 많아, 전체 면적의 64%가 산지(山地)이다. 타이완 산맥(臺灣山脈, 대만산맥)이 섬의 동부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며, 봉우리들의 평균 고도는 3000m를 넘는다. 섬에서 가장 높은 위 산(玉山, 옥산)은 표고가 3997m에 이른다. 산맥의 동쪽은 평야부가 적고, 태평양 연안에서는 수직에 가까운 각도로 솟는 절벽이 계속된다. 그에 비해 서쪽은 비옥한 평야가 완만하게 타이완 해협(臺灣海峽)을 향해 펼쳐져 있다. 대부분의 이 타이완 산맥에서 발원하고 있어 모두 짧고 험난하다. 주요 하천은 서부에 집중되어 있으며, 가장 긴 하천은 중부를 흐르는 줘수이강(濁水溪 탁수계, 167km)이다.

기후와 천연자원[편집]

타이완의 기후는 온난 습윤 기후로 대변된다.[1] <최신 쾨펜-가이어의 기후 구분 지도>, http://ko.wikipedia.org/wiki/%EC%BE%A8%ED%8E%9C%EC%9D%98_%EA%B8%B0%ED%9B%84_%EA%B5%AC%EB%B6%84 섬 전체의 연평균 기온은 23 °C로 온난하다. 여름은 5월부터 9월까지로 평균 기온은 28 °C이나, 겨울은 12월부터 2월까지로 짧고 매우 따뜻하여 북부에서도 평균 기온은 10 °C를 넘는다. 높고 험한 타이완 산맥(臺灣山脈)과 계절풍은 타이완의 기후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타이완 북동부에 있는 지룽(基隆) 및 이란(宜蘭)의 다우(多雨)와 섬 남서부의 건조기후는 이러한 요인에 의한 것이다. 섬 전체의 연간 강수량은 2540 mm로, 평지보다 산지가, 서해안보다 동해안 쪽이 많다. 또 6월부터 10월에는 태풍이 많이 거쳐가 매년 큰 피해를 가져오고 있다.

타이완의 가장 중요한 천연자원은 따뜻한 기후로 생성된 비옥한 풍토라 할 수 있다. 광물자원으로는 석탄, 대리석, 유황, 석유, 천연가스 등이 산출된다.

식생과 동물[편집]

타이완에 분포하는 식물은 3800종이 넘는다. 삼림에 덮인 은, 고도(高度)에 따라 삼림 형태가 달라지며 다양한 식생이 분포한다. 표고(標高) 0-1980m는 열대아열대성의 식생이 나타나고, 1980-3050m는 낙엽수림대(帶)와 침엽수림대(帶)의 혼합 지대, 3050m이상은 침엽수림이다. 근래에는 고산 기후를 이용한 고랭지 야채 재배나 과일 재배가 행해지고 있다. 이곳에 서식하는 동물도 여러 종류가 있다. 포유류다람쥐과, 사슴, 멧돼지, 타이완곰 등 63종(1996년 시점)이 확인되었다. 또한 많은 (445종), 파충류(80종), 양서류(31종), 곤충을 볼 수 있다.

그 외의 섬들[편집]

타이완 주변에는 22개의 작은 섬이 있다. 이 중에는 현재 일본실효 지배하고 있는 조어도(釣魚島. 중국어: 댜오위 섬, 일본어: 센카쿠 제도)를 포함하고 있다.

  • 란위 섬(蘭嶼)
  • 뤼다오 섬(綠島)
  • 샤오류치우(小琉球)
  • 구이산 섬(龜山島)
  • 미엔화 섬(棉花嶼)
  • 펑지아 섬(彭佳嶼)
  • 댜오위 섬(釣魚島)

타이완 섬의 역사[편집]

타이완의 역사 연표
타이완 해협

타이완의 역사(臺灣史)가 역사 기록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624년 네덜란드 상인들이 타이완 섬(臺灣島)에 진출하면서 시작되었다. 물론, 그 이전 시기에도 타이완 원주민들이 정주, 생활하여 왔다. 고대부터 이어져 온 타이완은 오스트로네시아어족 원주민(原主民)들의 섬이었다. ·대 들어 점차 한족(漢族)이 이주하여 살기 시작하였다. 타이완의 역사는 크게 16세기 이전 시기(선사 시대 포함), 네덜란드 점령 시기, 정씨 왕국 시기, 청조(淸朝) 시기, 일본 제국 식민통치 시기, 중화민국 시기(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타이완)으로 나누는 것이 일반적이다.

선사 시대[편집]

타이완 섬에 맨 처음 도달한 민족 집단은 말레이 폴리네시아계의 민족(지금의 고산족)이다. 이들은 부족마다 따로 떨어져 생활했기 때문에 국가를 형성하지 않았고, 문자도 없었기 때문에 역사 기록을 거의 남기지 않았다.

지나와의 관계[편집]

중국 삼국시대에는 타이완을 이주(夷州)라 불렀는데 이릉 대전 이후 오나라는 주민부족에 시달렸다. 이에 손권230년 봄에 위온과 제갈직에게 정병 1만명을 준 뒤 이주와 단주 등을 샅샅이 뒤져서 주민들을 징발해오도록 명령했으나 위온과 제갈직은 가는 동안 풍랑을 만나 병력의 거의 대부분을 잃고 그렇게 징발해온 말레이 폴리네시아계 원주민은 고작 1천명에 불과했다. 이에 손권은 대노하여 위온과 제갈직을 주살했다.

13세기 후반 원나라펑후 제도에 행정 기관을 설치했다는 기록은 있지만 타이완은 통치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 뒤, 한족 등이 세운 명나라펑후 제도를 차지 했지만, 역시 타이완은 별도로 다스리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외래 정권과 한족의 유입[편집]

타이완에 관련된 역사가 문자로 기록되는 때는 유럽인의 상륙 이후이다. 17세기가 되면서 스페인인이 타이완의 북부지역 (타이베이 시, 지룽 시, 신베이 시 일원)을 차지하고, 네덜란드동인도 회사가 타이완의 남부지역 (타이난 시 일원)을 차지하였다.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농사를 짓기 위해 푸젠 성, 광둥 성에서 사는 한족들을 모집해 타이완으로 이주시켜 농업에 종사하게 하였는데, 이들이 타이완에 정착하면서 현대정치에서 본성인 그룹을 형성하게 된다. 중국 대륙에서 한족 남성이 유입되면서 원주민 여성과의 결혼 빈도가 늘어나 자연스럽게 타이완만의 독특한 혈통이 형성되었다.

정씨 왕국[편집]

명나라가 망할 위기에 놓여 남명으로 밀려나고 만주족중국 대륙을 장악하자 항청복명의 구호를 내건 정성공1661년에 타이완에 있던 네덜란드 세력을 침공해 이듬 해인 1662년 네덜란드 세력을 타이완에서 축출하고 타이완을 장악하였다.

1662년 정성공이 죽은 이후에도 아들 정경이 타이완을 통치하였다. 정민 정권은 오래가지 못했지만, 이때 처음으로 타이완에 사실상의 국가가 건설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청나라 통치 시기[편집]

정씨 왕국의 타이완 지배는 청나라의 타이완 정벌에 의해 끝나버렸다. 이로써 타이완은 청나라의 영토에 편입되었다. 그러나 당초 청나라는 정씨왕국을 응징할 목적으로 타이완을 공격했으므로 타이완을 직접 통치하는 것에 대해서는 소극적이었다.

그러나 왜적의 침입을 막아야 되는 등의 군사적인 이유로 타이완을 활용하였다. 청나라는 타이완 섬에 1부(府), 3현(縣)을 설치하고, 푸젠 성의 관할하에 두었다. 하지만 청나라의 통치력은 타이완 전역에 강력하게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이런 이유로 현재 타이완 독립을 주장하는 세력들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영유권 주장이나 1945년 중화민국 반환은 잘못되었다는 주장의 근거로 활용하고 있다.

한편 타이완 섬의 인구 대부분을 차지했던 원주민은 푸젠 성, 광둥 성으로부터 생활이 어려운 한족들이 대거 타이완으로 이주 및 정착하였고, 당시에 스스로 한족과 동화되어 가던 청나라는, 관청에서 조직적으로 타이완 원주민에게 성씨나 가계도, 족보 등을 부여하여 한족화를 추진하는 등의 여러 가지 이유로 청나라 조정과 원주민 모두 시간이 지나면서 한족에 동화되어 갔다.

일제 시대 (1895 ~ 1945)[편집]

19세기 후반이 되면서, 청나라일본 제국이나 구미 열강의 대외 진출에 대한 방어 거점으로 타이완의 중요성을 재인식하게 되어, 1885년에 타이완을 푸젠 성에서 분리해 타이완 성으로 승격시켰다. 하지만, 1894년 일어난 청일 전쟁에서 청나라가 패배하여 일본의 주도하에 시모노세키 조약이 맺어졌다. 이 조약에 따라 청나라는 만주펑후 제도를 비롯해 타이완 섬을 일본에게 할양하였고, 곧 타이완 성도 폐지되었다. 타이완 섬에서는 일본의 점령에 대한 저항 운동이 일어나 타이완 민주국의 건국을 선포하기도 했었지만, 일본의 강력한 진압으로 저항 운동은 사그러들었다. 그 후, 일본 정부는 타이완 총독부를 설립해 1945년 패망할 때까지 타이완을 통치하였다.

중화민국 시기 (1945 ~ 현재)[편집]

일본제국의 패망으로, 1945년 10월 25일 타이완 섬(臺灣島)과 펑후 제도(澎湖諸島)는 50년 만에 중화민국(中華民國)으로 반환되어 현재까지 통치되고 있다. 1949년부터는 중화인민공화국에서 중화민국에 대한 권리 일체를 주장하고 있다. 타이완을 수복하고 통치하기 위해 파견된 중화민국 정부의 관료와 병사들은 타이완 주민들의 기대와 다른 모습들을 보여 이들에 대한 주민들의 실망은 무척 커졌다. 타이완 주민의 이러한 불만은 1947년 2월 28일의 항거(2·28 사건)를 통해 폭발하게 된다. 봉기로 인해 중화민국 관료들은 주민들을 상대로는 협상을 할 것처럼 시간을 벌면서 뒤로는 장제스에게 본토 병력의 파견을 요청하였다. 3월 8일 본토에서 지원 병력이 도착하자 타이완에서는 대대적인 유혈진압이 시작되었다. 이 과정에서 본성인(本省人) 약 3만여명이 사망 또는 실종되었으며, 지금까지도 이 사건은 타이완 본성인(本省人)과 1945년 이후부터 타이완으로 이주하기 시작한 외성인(外省人) 사이에 깊은 앙금으로 남게 되었다. 1949년 12월에 중화민국국공 내전에서 중국 국민당중국 공산당에 밀려 난징에 있던 중화민국 정부를 타이베이로 이전하였고(국부천대), 이후 중화민국의 실효 통치 지역은 사실상 타이완 지구로 축소되었다.[1] 1996년 3월 23일 국민의 직접선거로 총통을 선출하도록 제도를 개선함으로써, 타이완은 중국 국민당 장기 집권을 마감하고 본격적인 민주화 시대를 열었다. 2000년 총통 선거에서는 민주진보당(民主進歩黨)의 천수이볜이 총통에 선출됨으로써 제헌 이래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루기도 하였다. 2008년 이후 다시 중국 국민당의 마잉주가 당선되어 총통에 취임 및 재선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양안 관계와 타이완[편집]

타이완은 제2차 세계 대전이 종료된 1945년에 연합국을 통해서 중화민국에 반환되었다. 이 때는 동지나해의 작은 섬에 불과했으나, 국공 내전에서 지나 공산당에게 밀린 지나 국민당1949년 난징 시국민정부타이베이 시로 전격 이전하면서 타이완은 중화민국의 중심지로 변모하여 새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같이 보기[편집]

참조[편집]

  1. 1945년 이후의 타이완 역사 내용은 「중화민국의 역사」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