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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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慶尙道), 또는 영남 지방(嶺南地方)은 현재의 경상남도, 경상북도, 부산광역시, 울산광역시, 대구광역시 일대를 차지하던 행정구역이다. 고종 33년인 1896년에 경상남도와 경상북도로 분할되면서 행정 구역명으로서의 경상도는 소멸하였으나 현재도 부산광역시, 울산광역시, 대구광역시경상남도, 경상북도를 통칭하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경상북도 경주시상주시의 앞글자를 따서 경상도라고 부른다. 호남 지방(전라도), 호서 지방(충청도)와 함께 삼남(三南)을 이루었다.

목차

[편집] 경상도

1896년 이후의 역사는 경상북도, 경상남도, 대구광역시, 울산광역시, 부산광역시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편집] 고대

경상도는 고대 진한변한의 영역이었다. 낙동강의 동쪽 지역에는 진한의 12개 소국이 존재했고, 낙동강 서쪽에 변한의 12개 소국이 자리하였다. 진한의 소국 가운데 현재 경주를 중심으로 한 신라가 성장하면서 점차 진한 소국들을 합병하였으며 4세기 내물마립간 시기에 낙동강 서쪽 및 경상북도 지역을 장악하였다. 변한의 소국들은 점차 통합되어 2~3세기 무렵 가야의 6개 소국 연합체를 구성하였다. 가야 연맹은 5세기 이후 점차 쇠퇴하여 백제, 신라의 침탈을 받았으며 532년 금관가야의 멸망을 시작으로 562년에 모두 신라에 정복되었다.

6세기 진흥왕 때 경상도 대부분을 장악한 신라는 완산주(完山州), 사벌주(沙伐州) 등의 행정구역을 설치하여 다스렸다. 685년 경, 신문왕이 9주를 정비하면서 경상도 지역에는 사벌주(沙伐州), 삽량주(歃良州), 청주(菁州)의 3개 주가 설치되었다. 757년에는 지명을 한식(漢式)으로 고치면서 사벌주를 상주(尙州), 삽량주를 양주(良州), 청주를 강주(康州)로 개칭하였다. 9세기 이후 신라가 혼란에 빠지면서 각지에서 호족 세력이 발호하였는데 경상도 지역에는 상주의 아자개, 김해의 소율희 등의 호족이 강성하였다. 10세기 초에 후삼국시대가 전개되면서 신라는 경주 인근의 일부 지역만 유지하였고 경상도 북부는 후고구려, 서부는 후백제가 각기 경영하였다. 935년에 신라 경순왕고려에 항복하면서 경상도 일대는 고려의 영토가 되었다.

[편집] 고려

고려 태조는 신라를 합병한 뒤 서라벌을 경주(慶州)로 개칭하고 동남도부서사(東南都部署使)를 두었다. 995년고려 성종이 영남도(嶺南道), 영동도(嶺東道), 산남도(山南道)를 설치하였으나 곧 유명무실해졌고, 고려 현종 대에 5도양계가 정비되면서 경상도가 설치되었다. 이후 여러 차례 명칭이 개칭되고 통폐합되기도 하였으나 대체로 조선시대까지 경상도의 영역은 유지되었다.

[편집] 근세

조선 개국 이후 경상도는 소속 고을의 통폐합이나 부활이 이루어졌을 뿐 그 영역은 유지되었다. 관찰사가 업무를 보는 감영은 상주, 경주, 안동, 대구 등으로 이전되다가 1601년 최종적으로 대구에 설치되면서 대구는 경상도 지역의 행정 중심지가 되었다. 1895년 지방제도 개편으로 23부제가 도입되면서 기존 경상도 지역에 진주부, 동래부, 대구부, 안동부가 설치되었다. 그러나 부제의 비효율성이 지적됨에 따라 1896년 13도제가 시작되어 경상도를 행정적으로 분리하여 경상남도와 경상북도가 탄생하였다.

[편집] 함께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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