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자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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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자개(阿慈介 ? ~ ?)는 후백제의 임금 견훤의 아버지이다. 상주 고령군(古寧郡) 가선현(嘉善縣)[1] 출신이다.

견훤의 후손이 지었다는 《이비가기》에 따르면 아자개는 신라 진흥왕의 후손이라고 한다. 진흥왕의 증손자인 각간 작진이 왕교파리라는 여성을 아내로 맞아 각간 원선을 낳았는데 바로 이가 아자개라는 것이다. 《삼국유사》는 이러한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였다. 아자개는 원래 농민 출신이었으나 나중에 지금의 상주에 웅거하면서 세력을 키워 장군이 되었다. 918년고려로 망명했다.

충청남도 논산시에는 현재 아자개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는 묘가 있다.

생애[편집]

아자개(阿慈介) 아자개(阿慈个) 아자개(阿字蓋) 또는 원선(元善)이라고도 한다. 가계에 대해서는 삼국유사 권2 후백제 견훤조에 인용된 이제가기(李磾家記)에 의하면 아자개는 신라 진흥왕사도부인(思刀夫人) 사이에서 태어난 구륜공(仇輪公)의 후손이라고 한다.

아자개의 부인은 상원부인(上院夫人)과 남원부인(南院夫人)이며 자식은 5남 1녀(혹은 아들 4형제)가 있었으니 장남이 바로 견훤(甄萱)이라고 한다. 삼국사기 권50 견훤전에서도 견훤의 아버지가 아자개로 되어 있다. 아자개는 처음에는 농업에 종사하였지만 신라 하대의 혼란기에 전국 각지에서 농민을 포함한 지방세력이 봉기하자 그도 885년 (헌강왕 11) 887년 (진성여왕 1)에 사불성(沙弗城) 지금의 경상북도 상주을 근거지로 군대를 일으켜 장군을 자칭하였다. 그 뒤 그의 아들인 견훤892년 무진주(武珍州)를 점거하고 900년 (효공왕 4) 완산주(完山州)를 근거로 후백제를 세운 이후에도 아자개는 계속해서 상주지방에 웅거하고 있었으며 918년 (태조 1) 7월에 마침내 고려에 항복하였으나 고려사 태조 1년 9월 갑오조에는 9월에 항복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와 같이 아자개가 견훤과는 독자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바 이 때문에 견훤은 아자개의 아들이 아니며 양자는 출신 지방만 같을 뿐 전혀 별개의 지방세력이라는 견해도 있다.

가계[편집]

  • 제1부인 : 상원부인
  • 장남 : 견훤
  • 차남 : 능애
  • 제2부인 : 남원부인
  • 3남 : 용개
  • 4남 : 보개
  • 5남 : 소개
  • 장녀 : 대주도금

아자개가 등장하는 작품[편집]

참고문헌[편집]

  • 삼국사기(三國史記)
  • 삼국유사(三國遺事)
  • 고려사(高麗史)
  • 견훤(甄萱)의 가향(家鄕)에 대(對)하여 김상기 가람이병기박사송수기념논문집 1966 동방사논총 서울대학교출판부 1974)

주석[편집]

  1. 지금의 문경시 가은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