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백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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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百濟

892년 ~ 936년
History of Korea-Later three Kingdoms Period-915 CE.gif
915년의 한반도. 연두색이 후백제.
수도 무진주완산주
정치
공용어 중세 한국어
정부 형태 군주제
국왕
892년 ~ 935년
935년 ~ 936년

견훤
신검

후백제(後百濟, 892년~936년)는 892년(신라 진성여왕 6년)에 백제의 부흥 운동을 시작으로 900년 견훤이 완산주(오늘날의 전주시)를 도읍으로 삼아 세운 나라이다. 공식적인 국호는 백제이며 후(後)는 후대의 역사에서 삼국시대의 백제와 구분하기 위해 붙인 것이다.[출처 필요] 후고구려, 하대(下代)의 신라와 더불어 후삼국 중에 하나였다. 천수(天授) 19년(서기 936년) 고려왕건의 대규모 공격으로 인해 46년 만에 패망했다.

역사[편집]

견훤은 원래 신라 상주 지방 농민이었다가 신라군에 들어가 서남해 방면에서 호족의 반란을 진압하고 비장이 되었다. 이때 신라진성여왕 때 정치와 사회가 극도로 문란해져 있었다. 견훤은 거병하여 무진주(광주)와 완산주(전주)를 점령하였다. 그 후 892년 백성들에게 백제 의자왕의 숙원을 풀어주며 백제를 계승한다는 뜻에서 후백제를 건국하였다. 모든 관서(官署)를 설치하고 관직을 정하였으나, 관서와 관직명은 전하는 것이 없어 잘 알 수가 없으며 신라의 관제를 답습한 듯하다. 견훤은 건국하면서 중국오월(吳越)과 통교를 하는 한편 영토를 확장하기에 바빴다.

901년(효공왕 5) 대야성(大耶城)을 공격하고 918년(경명왕 2)에 왕건(王建)의 건국을 하례하여 외교적으로 유대를 가지려고 하였다. 그러나 920년(경명왕 4)에 견훤대야성을 공격하고 진례성(進禮城)[1]으로 진격할 때 신라고려왕건에게 구원을 청하여 그 도움을 얻었다. 이로 인하여 후백제와 고려와의 사이는 좋지 못하게 되고 반대로 신라·고려의 관계는 친밀하게 되어 후백제에게 공동의 적으로 종종 군사 행동을 가해 왔다. 이에 견훤은 먼저 신라를 징벌(徵伐)하려고 927년(경애왕 4) 10월에 대병을 거느리고 신라 서울 경주로 쳐들어가 마침 포석정(鮑石亭)에서 잔치를 벌여 흥에 취하고 있는 틈에 수도 경주를 습격했다.

이때 경애왕을 죽이고 왕족 김부(金傅)를 경순왕으로 추대했다. 또한 왕제(王弟)·재상(宰相)·역대진보(歷代珍寶)·병장(兵仗)·자녀(子女)·백공(百工) 등을 취하여 군사를 돌이켰다. 고려왕건은 이 소식을 듣고 크게 노하여 친히 정병을 거느리고 공산(公山)에서 견훤군을 맞아 싸웠으나 김락(金樂)·신숭겸(申崇謙) 등 장군을 잃고 겨우 몸을 피하여 돌아갔다. 이후 후백제와 고려는 충돌이 잦았다. 그 중 934년왕건의 운주(運州)[2] 친정으로 웅진(熊津)[3] 이북의 30여 성을 잃게 된 후백제는 큰 타격을 받았다.

그 이듬해인 935년(경순왕 9) 후백제의 내부에는 부자 형제(父子兄弟)의 불화로 파탄이 생겼다. 즉 여러 명의 처로부터 수십 명의 아들을 낳은 견훤은 넷째 아들 금강(金剛)을 사랑하여 왕위를 전하려 하자, 장자 신검(神劍)이 불쾌히 여겨 그 아우 두 사람과 모의하여 반란을 일으켜 아버지인 견훤을 금산사(金山寺)에 유폐한 후 금강을 죽이고, 신검이 대왕(大王)이 되었다. 견훤이 절에서 빠져나와 고려에 투속하게 되니 후백제는 완전히 분열되어 고려로 하여금 통일 사업에 좋은 기회를 주게 되었다.

그러던 중에 그해에 신라경순왕왕건에게 항복하였다. 또 견훤의 사위이며 후백제의 장군박영규(朴英規)도 사람을 왕건에게 보내어 내응(內應)하니 왕건은 10만 대군으로 선산 부근에서 신검의 후백제군을 격파하고, 다시 서로 진격하여 황산(黃山)[4] 부근에 진영을 쳤다. 그러자 신검이 다시 항거할 의기를 잃고는 그 아우 양검(良劍)·용검(龍劍)과 문무의 관리를 이끌고 나와 항복했다(936년). 후백제의 항복으로 왕건후삼국통일하여 고려 왕조 500년의 기초를 이루게 되었다.

후백제의 역대 국왕[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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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견훤, 재위 892년-935년
  2. 신검, 재위 935년-936년

연호[편집]

정치 제도[편집]

삼국사기고려사의 기록에 따르면, 견훤은 무진주를 점령한 이후, 한동안 스스로를 직접적으로 왕이라 칭하지 않고 신라서면도통지휘병마제치지절도독 전무공등주군사 행전주자사 겸 어사중승상주국 한남군개국공 식읍이천호(新羅西面都統指揮兵馬制置持節都督 全武公等州軍事 行全州刺史 兼御史中丞上柱國 漢南郡開國公 食邑二千戶)라 칭하였다. 견훤은 900년에 이르러서야 국호를 정하고 왕을 칭하였다.

또한, 후백제는 신라가 쓰던 관직명을 거의 그대로 사용하였다. 후백제의 관리였던 능환은 신라 관계의 6등위인 아찬(阿飡) 벼슬을 지냈던 것과 후백제의 장수였던 상귀 역시 신라 제 7관등에 속하는 일길찬(一吉飡) 벼슬을 지냈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루 미루어 보아 후백제는 신라와 매우 흡사한 사회 구조와 관직 체계를 지니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함께 보기[편집]

주석[편집]

  1. 무주
  2. 홍성
  3. 공주
  4. 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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