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백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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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백제(後百濟)는 892년견훤이 세운 나라이다. 신라, 태봉(후고구려)과 함께 후삼국의 하나였다가, 936년 고려태조 왕건에게 멸망했다. 막강한 해군과 전투력을 지니고 있었으며, 수도는 완산주(오늘날의 전주시)였다.

[편집] 역사

후백제의 시조 견훤을 “진훤”이라고 주장하는 역사학자도 있으나[출처 필요] 정설은 견훤이다. 견훤은 원래 통일신라 상주 지방 농민이었다가 신라군에 들어가 서남해 방면에서 호족의 반란을 진압하고 비장이 되었다. 이 때 신라는 진성여왕때 로 정치와 사회가 극도로 문란해져 있었다. 견훤은 거병하여 무진주와 완산주를 점령하였다. 그 후 백성들에게 백제 의자왕의 숙원을 풀어주어, 백제를 계승한다는 뜻에서 후백제를 건국하였다. 견훤은 건국하면서 중국의 오월과 통교하였다. 후백제는 영토 확장에 힘써 927년에는 신라로 쳐들어가 경애왕을 죽이고 경순왕을 왕으로 추대했다. 935년 견훤은 넷째 아들 금강에게 왕위를 물려 주려고 했으나, 이를 시기한 맏아들 신검이 반란을 일으켰다. 신검은 금강을 죽인 다음, 견훤을 금산사에 가두었다. 견훤은 탈출해 고려에 투항했고, 고려는 군사 10만으로 후백제를 총공격하여 멸망시켰다.

[편집] 후백제의 왕과 연호

  1. 견훤, 재위 900년-935년
  2. 신검, 재위 935년-936년

[편집] 정치 제도

후백제에 정치제도는 신라를 많이 모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