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명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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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명종
高麗 明宗
고려 제19대 국왕
본명 왕호(王晧)
초명 왕흔(王昕)
재위 1170년 ~ 1197년
종교 불교
왕후 광정왕후
부왕 인종
모후 공예왕후
이전 왕 의종
다음 왕 신종

명종(明宗, 1131년 11월 8일 (음력 10월 17일) ~ 1202년 12월 3일 (음력 11월 17일)은 고려 제19대 국왕(재위: 1170년 ~ 1197년)이다. 는 호(晧), 는 지단(之旦), 묘호는 명종(明宗), 시호황명광효대왕(皇明光孝大王)이다. 인종공예태후(恭睿太后) 임씨(任氏)의 셋째 아들이며 의종의 동생이다.

1170년부터 1197년까지 재위하는 동안 실권을 갖지 못하였으며 1170년부터 1179년까지 정중부(鄭仲夫)가 실권을 맡았고 1179년부터 1183년까지 경대승(慶大升)이 실권을 맡았으며 1183년부터 1196년까지 이의민(李義旼)이 실권을 맡았고 1196년부터 1197년 퇴위할 때까지 최충헌(崔忠獻)이 실권을 맡았다.

생애[편집]

정변과 즉위[편집]

명종은 1170년무신정변으로 의종이 폐위되고 무신들에게 추대되어 즉위하였다. 그러나 실권은 무신 정권의 지도자인 이고, 이의방, 정중부 등에게 있었다.

재위기간 중[편집]

1173년동북면병마사(東北面兵馬使) 김보당이 무신 정권 타도와 전(前) 임금인 의종의 복위를 천명하며 군사를 일으켰으나, 무신 정권에 의하여 진압되고 의종은 시해되었다.

1179년 정중부의 전횡을 탐탁지 않게 여긴 경대승이 정변을 일으켜 정중부를 죽이고 정권을 장악하였다.

경대승이 죽자, 명종은 경주로 달아난 이의민을 다시 불러들였다. 이의민은 새로운 무신 권력자가 되어 자신의 아들들을 모두 요직에 앉히고 부정부패를 일삼아 갖은 횡포를 부리다가, 나중에 가서는 스스로 임금이 되려는 야심까지 품게 된다.

유폐와 최후[편집]

1196년 음력 4월, 최충헌이 이의민을 참살하고 정권을 장악하여 최씨 정권 시대가 열리게 된다. 이때 최충헌은 거사의 명분을 얻기 위하여 앞으로의 국정개혁안의 내용을 담은 봉사 10조(封事十條)를 올리고 명종은 이를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러나 최충헌의 난 초기의 혼란기를 기회로 무신 정권을 타도하려 하였으나 1197년에 최충헌 형제의 정변으로 폐위를 당하고 창락궁(昌樂宮)에 감금되었다.

유폐된 지 6년 후에 병을 얻어 승하하였으며 능은 장단군 장도면에 위치한 지릉(智陵)이다.

고려 문종과의 관계[편집]

의종, 명종, 신종문종의 4대손이면서 동시에 증손녀 사위가 된다. 의종, 명종, 신종인종의 아들로 문종-숙종-예종-인종으로 이어진다.

문종의 서자인 조선국 양헌왕 (朝鮮國 禳憲王)의 아들이자 손자인 강릉공 온(江陵公 溫)은 의종의 비인 장경황후, 명종의 비인 광정왕후, 신종의 비인 선정왕후의 친정아버지가 된다.

가계[편집]

명종이 등장하는 작품[편집]

전 임
의종
제19대 고려국왕
1170년 - 1197년
후 임
신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