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특급시

위키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개경에서 넘어옴)
개성의 구시가지
개성의 구시가지

개성특급시(開城特級市)는 한반도 중부에 있는 도시이다. 현재 북조선에 속한 도시이다. 개성은 고려의 옛 수도로서 500여 년간 번영한 고도(古都)이다. 개성은 송도(松都), 송악(松岳), 개경(開京), 송경(松京)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본래 경기도에 속했었으나, 북조선 치하에서 1951년에 개성지구(開城地區)로 바뀌었고, 개성직할시를 거쳐 2003년부터 황해남도에 속하게 되었다. 인근에 개성공업지구가 있다.

면적은 광복 당시 82㎢였으며, 인구는 2000년 현재 145,000명으로 추산된다.

목차

[편집] 지리

개성에서 판문점까지의 거리는 8km로, 이 도시에 동쪽에 바로 군사분계선이 위치해 있다.

산으로는 북쪽에 제석산, 천마산, 두석산이, 중앙에 송악산(松岳山: 해발 489m)이, 남쪽에 진봉산용수산이 있다. 대체로 여러 산들이 솟아 있으며, 아호비령산맥이 위치해 있다. 특히 시가지는 주위에 송악산, 자남산(子南山) 등 소나무가 많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이 도시를 송도(松都)라고 불리게 하였다.

하천으로는 림진강용수천, 례성강을 비롯한 크고 작은 하천들이 개성시를 지난다. 하천에는 평야가 펼쳐져 있다. 북조선에선 기후가 가장 온화한 지역이다. 시 면적의 55%를 삼림이 차지한다. 야생동식물도 서식하고 있다.

[편집] 역사

[편집] 삼국시대

백제시대에는 「동비홀(冬比忽)」이라고 불렸다. 신라시대인 757년(경덕왕 16년)에 지명을 「개성군(開城郡)」이라는 중국식으로 고쳤다.

[편집] 고려 500년의 도읍

왕건의 릉
왕건의 릉

이 지역은 바다로 많이 왕래한 호족의 본거지였고 왕씨 일가는 그 대표적인 존재였다. 궁예도 철원을 후고구려의 도읍으로 확정하기 전에는 한때 이곳을 임시 도읍으로 삼았다. 918년 왕건이 궁예를 몰아내고 고려를 세워 본격적으로 고려의 도읍이 된 이후로는 개주(開州), 개경, 개성부 등으로 불렸다. 이후 조선 왕조가 들어서 한양으로 천도할 때까지 489년간 고려와 조선 두 왕조의 도읍이었다. 또한 개성은 인접한 항구 도시벽란도와 함께 국제 상업 도시로 발달했으며, 당시의 개성의 인구는 30만 가량으로 추산되었다.

[편집] 조선시대

1394년 조선 태조는 한양으로 수도를 옮겼다. 1399~1405년 사이의 잠깐을 제외하고는 개성은 정치적 중심으로서의 기능은 잃었지만, 조선왕조에서도 개성은 중요한 도시 가운데 하나였다. 1438년 개성에는 개성부(開城府)가 설치되어, 개성부 유수(留守)가 파견되었다.

특히 개성은 상업의 중심지로 이름을 떨쳤다.

[편집] 근·현대

일제시대인 1930년 송도면(松都面)이 개성부로 승격되었고, 교외지역은 개풍군(開豊郡)이 되었다. 38선 이남에 위치한 이 도시는 광복으로부터 한국전쟁 발발 때까지는 남한에 속한 도시로, 1949년 개성시로 되었다. 그러나 한국전쟁 뒤에는 휴전선 이북에 속하게 되어, 북조선으로 편입되었다. 그리고 1954년에는 황해북도에 속하게 되었고, 1955년엔 개성시가 장풍군·판문군(板門郡)과 통합되어 개성직할시로 바뀌었다. 북조선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2003년에 개성직할시는 개성특급시가 되어 황해북도에 소속되었고, 판문군을 제외한 개풍군장풍군(長湍郡)은 개성특급시와 분리되어, 황해북도에 소속되었다. 개성특급시와 판문군을 합쳐, 개성공업지구를 신설했다.

[편집] 산업

농업경공업을 주로 한다. 농업은 논농사 중심이다. 쌀외에도 옥수수··수수·메밀도 생산된다. 축산업, 과수업, 양잠도 이루어진다. 개성특급시는 소규모의 메기농장과 개성시인삼농장, 그리고 개성시인삼가공공장이 있으며, 모직물과 편직물 각종 의류들을 생산하는 개성편집물공장과 개성수지공장이 있고, 개성일용품공장과 개성육류공장, 그리고 개성신발공장과 개성목재공장, 개성일용잡화공장 등이 있다.

개성인삼공장은 기업농장을 운영하고 있고, 개성인삼공장에서 생산되는 "개성인삼"은 가공 혹은 가공되지 않은 상태로 평양시로 운송되어진다.

자고로 개성인삼은 세계 여러나라 사람들이 동방의 명약이라고 알려져 있을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고, 19세기 미합중국에서 실험한 홍삼재배기술이 실패했을 만큼, 유능한 효과를 가지고 있었던 개성인삼은 약재관리소와 화장품공장에서도 비누나 건강 화장품, 피부노화방지에도 좋은 후과을 보이고 있으며, 화장품이나 악재에서도 유행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금융기관으로는 북조선중앙은행 개성 본사가 있다. 특히 인삼도자기는 해외로도 수출된다.

[편집] 교육과 관광

개성 성균관
개성 성균관

이 도시는 고려왕조 500년의 수도로서, 명승고적이 많다. 대표적인 역사적 유적으로는 만월대, 성균관, 선죽교, 남대문 등이 있다.

사회문화시설로는 개성학생소년궁전개성체육청소년학교가 있으며, 상업시설은 개성백화점이 있다.

그중에서 개성민속여관이라는 숙박시설은 선죽동에 있는 건물이며, 조선시대 때 지어진 전통한옥들과 봉사기관들이 많이 밀집해 있다. 이 곳은 마치 한국경기도 용인시경상북도 안동시의 한옥민속마을과 흡사한 형태이다. 개성민속여관은 1975년에 김일성 국가주석이 "우리의 문화와 풍습들을 잘 보존해야겠다." 고 하면서 여기를 "보전거리"라는 이름으로 바뀌였고, 여관들을 만들도록 하였다.

그래서 관광객 개성민속여관으로 가면 민족음식인 우메기(한과)와 인삼차, 송도보쌈김치(송도쌈김치)의 맛을 느낄 수 있으며, 북조선의 전통놀이를 즐길 수 있다. 이 곳은 최근 한국의 관광객에도 개방되고 있으며, 수입이 많다.

관광시설으로는 자남산려관과 개성민속려관이 있다. 의료기관에는 개성시인민병원과 개성시종합진료소가 있으며, 교육기관으로는 종합대학인 고려성균관과, 전문대학인 개성공업대학, 개성음악무용대학, 송악중학교, 개성소학교, 판문소학교가 있다.

[편집] 개성공업지구

2000년 8월, 김정일 국방위원회위원장과 정몽헌 현대 그룹 회장의 합의에 의해서, 북조선측이 토지와 노동력을, 한국 (현대)측이 기술과 자본을 제공하고, 개성에 일대 공업단지를 만드는 것이 정해졌다. 2002년 11월에, 북조선측은 "개성공업지구법"을 제정. 2003년 6월, 약 330만㎡를 조성하는 제1기 공사가 기공되어 2007년의 완성에 향해서 공사가 진행중이다. 다만, 쌍방의 의견 대립등도 있어, 단순하게 순조롭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런데도 남북의 송전선이나 서울로부터의 광섬유가 연결되는 등의 큰 진전도 많다.

[편집] 교통

평부선(경의선) 개성역이 위치해 있다. 그 외에도 평양-개성 고속도로 등이 있다.

[편집] 정보

개성특급시는 황해북도에 속하여 있는 도시로써, 개성시와 판문공업지구가 있다.

송악동과 자남동을 비롯한 20여 동과, 용흥리를 비롯한 10여 리가 있다.

  • 개성시에 있는 시설들
    • 개성시학생소년궁전
    • 자남산여관
    • 개성인삼농장
    • 개성시백화점
    • 개성시청소년체육학교
    • 개성시민속여관 -개성시민속여관은 한국의 용인시의 용인민속촌과 흡사함.

[편집] 바깥 고리

[편집] 같이 보기


황해북도의 행정 구역
개성특급시 | 사리원시 | 송림시 | 곡산군 | 금천군 | 개풍군 | 린산군 | 봉산군 | 서흥군 | 수안군 | 신계군
신평군 | 장풍군 | 토산군 | 평산군 | 황주군 | 연산군 | 연탄군 | 은파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