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래군
동래군(東萊郡)은 현재의 부산광역시 전역과 울산광역시 울주군의 일부를 차지하던 행정 구역이었다. 지속적으로 부산에 편입되다가 1973년 최종적으로 양산군에 편입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동래군은 부산부로 명칭 변경된 '동래군'과 1914년 대대적인 행정구역 통폐합 당시 부산부와 분할한 '동래군'으로 나눌 수 있다. 전자의 경우에는 지금의 기장군과 강서구를 제외한 부산광역시의 대부분에 해당하며, 후자의 경우에는 지금의 강서구와 중구, 영도구, 동구, 서구를 제외한 부산광역시의 대부분에 해당한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부산부와 분리될 당시의 동래군은 동래면·남면·서면·북면·좌이면(구포)·사상면(沙上面)·사하면(沙下面)·기장면·일광면(日光面)·장안면(長安面)·정관면(鼎冠面)·철마면(鐵馬面) 12면으로 구성되었고, 부산부는 부산면, 사중면, 사하면 일부·대중면을 88정(町)·동(洞)으로 개편하였다.
동래군은 현재 부산광역시의 모태로서 조선 시대 이후로 좌수영과 독진 등 군사상 요충지였으며, 왜관 등 대일외교 사무를 총괄하던 중요 관문이었다.
목차 |
[편집] 유래
옛 동래군은 삼국시대에 거칠산군(居柒山)과 대증현(大甑縣)이 합해져서 생겨났다.
지금의 동래에서 해운대에 걸쳐 있던 거칠산은 말 그대로 "거칠다"의 우리말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거친 뫼’ 즉 황령산을 끼고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단 고대에는 "까실메"로 읽혔다. 현대어에 가깝게 "칠(柒)"자가 들어간 것은 우연의 결과이다.
지금의 부산포에서 낙동강 하구에 있었던 부산(釜山)이라는 이름의 기원이 되는 대증현(大甑縣)은 《동국여지승람》에서 "부산은 산이 가마솥 모양으로 생겼기 때문에 그 산 밑을 부산포라 한다."라고 하였는데, 그 산은 지금의 부산광역시 동구 좌천동에 있는 "증산"(甑山, 시루대 또는 부산)을 말한 것이다. 큰 시루를 뜻하는 "대증(大甑)"과 "부(釜, 가마솥)"는 뜻이 통하는 것으로 지금의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당감동 일대를 말한다.
[편집] 역사
- 1914년의 행정구역[1]과 현재의 행정구역 비교
| 1914년 | 현재 | ||
|---|---|---|---|
| 면 | 동·리 | 시·구 | 동·리 |
| 사하면 (沙下面) |
암남동 | 부산 서구 |
암남동 |
| 감천동, 하단동, 신평동, 장림동, 다대동, 구평동, 당리동, 괴정동 | 부산 사하구 |
감천동, 하단동, 신평동, 장림동, 다대동, 구평동, 당리동, 괴정동 | |
| 사상면 (沙上面) |
주례동, 학장동, 괘법동, 덕포동, 엄궁동, 감전동, 모라동, 삼락동, 유두동 | 부산 사상구 |
주례동, 학장동, 괘법동, 덕포동, 엄궁동, 감전동, 모라동, 삼락동 일부, 삼락동 일부 |
| 서면 (西面) [2] |
양정동, 범전동, 부전동, 초읍동, 연지동, 전포동, 부암동, 개금동, 가야동, 당감동 | 부산 부산진구 |
양정동, 범전동, 부전동, 초읍동, 연지동, 전포동, 부암동, 개금동, 가야동, 당감동 |
| 문현동, 대연동, 우암동, 용호동, 용당동, 감만동 | 부산 남구 |
문현동, 대연동, 우암동, 용호동, 용당동, 감만동 | |
| 남면 (南面) [3] |
광안동, 남천동, 남수동, 망미동, 민락동 | 부산 수영구 |
광안동, 남천동, 수영동, 망미동, 민락동 |
| 우동, 좌동, 중동, 재송동 | 부산 해운대구 |
우동, 좌동, 중동, 재송동 | |
| 동래면 (東萊面) [4] |
반여동, 석대동, 반송동 | 반여동, 석대동, 반송동 | |
| 연산동, 거제동 | 부산 연제구 |
연산동, 거제동 | |
| 수안동, 칠산동, 복천동, 낙민동, 원동, 교동, 온천동, 여고동, 명장동 | 부산 동래구 |
수안동, 칠산동, 복천동, 낙민동, 안락동, 명륜동, 온천동, 사직동, 명장동 | |
| 회동동, 오륜동, 금사동, 서동 | 부산 금정구 |
회동동, 오륜동, 금사동, 서동 | |
| 북면 (北面) |
부곡동, 구서동, 선동, 두구동, 장전동, 노포동, 남산동, 청룡동 | 부곡동, 구서동, 선동, 두구동, 장전동, 노포동, 남산동, 청룡동 | |
| 좌이면 (左耳面) |
금성동 | 금성동 | |
| 화명동, 구포동, 덕천동, 금곡동, 만덕동 | 부산 북구 |
화명동, 구포동, 덕천동, 금곡동, 만덕동 | |
| 철마면 (鐵馬面) [5] |
이곡리, 연구리, 구칠리, 장전리, 웅천리, 백길리, 와여리, 안평리, 고촌리, 송정리, 임기리 | 부산 기장군 철마면 |
이곡리, 연구리, 구칠리, 장전리, 웅천리, 백길리, 와여리, 안평리, 고촌리, 송정리, 임기리 |
| 정관면 (鼎冠面) [6] |
달산리, 용수리, 방곡리, 예림리, 매학리, 병산리, 모전리, 월평리, 임곡리, 두명리 | 부산 기장군 정관면 |
달산리, 용수리, 방곡리, 예림리, 매학리, 병산리, 모전리, 월평리, 임곡리, 두명리 |
| 장안면 (長安面) [7] |
고리, 길천리, 오리, 명례리, 장안리, 기룡리, 용소리, 반룡리, 효암리, 좌천리, 월내리, 임랑리, 좌동리, 덕선리 | 부산 기장군 장안읍 |
고리, 길천리, 오리, 명례리, 장안리, 기룡리, 용소리, 반룡리, 효암리, 좌천리, 월내리, 임랑리, 좌동리, 덕선리 |
| 일광면 (日光面) [8] |
이천리, 삼성리, 학리, 청광리, 동백리, 화전리, 횡계리, 용천리, 문동리, 문중리, 칠암리, 신평리, 원리 | 부산 기장군 일광면 |
이천리, 삼성리, 학리, 청광리, 동백리, 화전리, 횡계리, 용천리, 문동리, 문중리, 칠암리, 신평리, 원리 |
| 기장면 (機張面) [9] |
동부리, 서부리, 대라리, 죽성리, 신천리, 청강리, 연화리, 대변리, 교리, 만화리, 내리, 석산리, 당사리, 시랑리 | 부산 기장군 기장읍 |
동부리, 서부리, 대라리, 죽성리, 신천리, 청강리, 연화리, 대변리, 교리, 만화리, 내리, 석산리, 당사리, 시랑리 |
| 송정리 | 부산 해운대구 |
송정동 | |
삼한시대에는 해운대 지역에 거칠산국(居柒山國)이 있었다. 서기 1세기 후반인탈해왕 대에 기장의 장산국과 함께 거칠산국이 신라에 점령되었다. 한편 부산포 일대에는 가야의 종발성(從拔城)이 세워져 신라와 가야의 각축장이 되었다. 내물왕 대인 서기 400년경에 가야가 신라를 대거침공했다가 광개토왕의 고구려군에게 대패하여 패망하자 부산 전역이 신라의 영역에 편입되었다. 옛 거칠산국은 거칠산군(居柒山郡)이 되고 종발성은 "큰 시루"라는 뜻의 대증현(大甑縣)이 되었다. 8세기 경 경덕왕에 의한 행정개편으로 거칠산군은 동래군(東萊郡)으로 개칭하였다. 대증현은 동평현(東平縣)으로 개명되어 기장현(機張縣)과 함께 동래군의 관할현이 되었다. 고려 때인 1018년 동래군이 동래현(東萊縣)으로 격하되고 울주(蔚州)의 속현이 되며 동래군의 속현이던 동평현은 양주(梁州)의 속현이 되었다.
조선시대 1397년 동래군에 진(釜山鎭)이 설치되었다. 1405년 울주의 속현이었던 동래현이 독립현이 되고 양주의 속현이었던 동평현이 다시 동래의 속현이 되었다. 1409년 동평현이 다시 양주의 속현이 되었다가 1428년에 다시 동래의 속현이 되었다. 1547년 동래현이 동래도호부로 승격되었다가 1592년에 다시 동래현으로 격하되었다. 1592년 울산 개운포에 있던 좌수영을 동래부 남촌면(현재 수영동)으로 옮겼다. 1599년 기장군이 폐현되어 그 남쪽을 동래현에 이속시켰다. 1617년 기장군이 복원되었다.
- 1895년 음력 윤5월 1일 동래부(東萊府)로 승격시키고 기장군을 속하게 하였다. [10]
- 1896년 경상남도 동래군으로 개편되었다. [11]
- 1906년 양산군 구포면을 편입하면서 다시 동래부로 승격되었다.
- 1910년 10월 1일 동래부를 부산부(釜山府)로 개칭하였다.[12]
- 1914년 4월 1일 부산부를 부산부와 동래군으로 분할하였다. 이때 기장군이 폐지되고 동래군에 흡수된다.[13] (12면)
- 1918년 1월 1일 좌이면을 구포면으로 개칭하였다.
- 1931년 4월 1일 동래면을 동래읍으로 승격하였다.[14] (1읍 11면)
- 1936년 4월 1일 서면·사하면 암남리를 부산부로 편입하였다.[15] (1읍 10면)
- 1942년 10월 1일 동래읍, 사하면, 남면, 북면 부곡리·장전리를 부산부에 편입하였다. [16] (8면)
- 1943년 10월 1일 구포면을 구포읍으로 승격하였다.[17] (1읍 7면)
- 1963년 1월 1일 구포읍·사상면·북면·기장면 송정리를 부산직할시에 편입하고,[18] 울주군 서생면을 동래군에 편입하였다.[19] (6면)
-
법률 제1173호 구 행정구역 신 행정구역 동래군 구포읍 일원(구포동, 금성동, 금곡동, 화명동, 덕천동, 만덕동) 부산진구 일부(구포출장소) 동래군 사상면 일원(덕포동, 삼락동, 모라동, 괘법동, 감전동, 주례동, 학장동, 엄궁동) 부산진구 일부(사상출장소) 동래군 북면 일원(남산동, 선동, 두구동, 노포동, 청룡동, 구서동) 동래구 일부(북면출장소) 동래군 기장면 송정리 법률 제1175호 구 행정구역 신 행정구역 울주군 서생면 일원 동래군 서생면 일원
- 1973년 7월 1일 현재 기장 지역 등 남은 동래군 지역 모두가 양산군에 편입됨으로써 행정구역명이 소멸되었다.[20]
- 1995년 3월 1일 양산군 기장읍, 장안읍, 일광면, 정관면, 철마면을 부산광역시 기장군으로 부활하였다. 군역이 1914년 폐지된 기장군과 일치하여, 군명은 기장군이 되었다.[21]
[편집] 함께 보기
[편집] 주석
- ↑ (신구대조) 조선 전도부군면리동 명칭 일람 (1917년)
- ↑ 서면은 서하면(西下面)과 동평면(東平面), 남면(南面, 부산부)의 합면이다.
- ↑ 남면은 용주면(龍珠面)과 동하면(東下面)의 합면이다.
- ↑ 동래면은 읍내면(邑內面, 부산부)과 서상면(西上面), 동상면(東上面)의 합면이다.
- ↑ 철마면은 상서면(上西面)과 하서면(下西面)의 합면이다.
- ↑ 정관면은 하북면(下北面)과 하서면의 합면이다.
- ↑ 장안면은 상북면(上北面)과 중북면(中北面)의 합면이다.
- ↑ 일광면은 동면(東面)과 중북면의 합면이다.
- ↑ 기장면은 읍내면(邑內面, 기장군)과 남면(南面, 기장군)의 합면이다.
- ↑ 칙령 제98호 地方制度改正件 (1895년 음력 5월 26일)
- ↑ 칙령 제36호 地方制度官制改正件 (1896년 8월 4일)
- ↑ 조선총독부령 제7호 (1910년 10월 1일)
- ↑ 조선총독부령 제111호 (1913년 12월 29일)
- ↑ 조선총독부령 제103호 (1930년 12월 29일)
- ↑ 조선총독부령 제8호 (1936년 2월 14일)
- ↑ 조선총독부령 제242호 (1942년 9월 30일)
- ↑ 조선총독부령 제297호 (1943년 9월 29일)
- ↑ 법률 제1173호 부산시정부직할에관한법률 (1962년 11월 21일)
- ↑ 법률 제1175호 시·군관할구역변경및면의폐치에관한법률 (1962년 11월 21일)
- ↑ 법률 제2597호 시설치와군의폐치분합에관한법률 (1973년 3월 12일)
- ↑ 법률 제4802호 서울특별시광진구등9개자치구설치및특별시·광역시·도간관할구역변경등에관한법률 (1994년 12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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