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희종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고려 희종
高麗 熙宗
고려 제21대 황제
본명 왕영(王韺)
초명 왕덕(王悳)
재위 1204년 ~ 1211년
종교 불교
왕후 성평왕후
부왕 신종
모후 선정왕후
이전 왕 신종
다음 왕 강종

희종(熙宗, 1181년 6월 21일 (음력 5월 8일) ~ 1237년 8월 31일 (음력 8월 10일)은 고려 제21대 황제(재위: 1204년~1211년)이다. 는 영(韺), 는 불피(不陂), 묘호는 희종(熙宗), 시호인목성효대왕(仁穆成孝大王)이다. 신종선정왕후의 맏아들이다.

1204년부터 1211년까지 재위하는 동안 최충헌(崔忠獻)이 실권을 맡았다.

생애[편집]

1200년, 태자로 책봉되고 1204년에 신종의 양위를 받아 대관전(大觀殿)에서 즉위하였다.

1205년최충헌(崔忠獻)을 진강군 개국후(晋康郡 開國侯)에 봉하였으며 1206년에 다시 진강후(晋康侯)에 봉하고 흥녕부(興寧府)를 세우게 하였으며 1207년 최충헌의 청으로 유배자 300여명을 가까운 곳으로 옮겨 방면하였다. 1208년 개성 대시(大市) 좌우의 긴 행랑(行廊) 1,080영(楹)을 다시 짓게 하였는데 오부방리(五部坊里)와 양반의 집에서 미속(米粟)을 내게 하여 그 비용을 충당하게 하였다.

1211년 내시 왕준명(王濬明) 등과 함께 당시 정권을 휘두르던 최충헌을 죽이려다가 실패하였는데 이로 인하여 도리어 최충헌에게 폐위를 당하여 강화로 쫓겨났다가 뒤이어 자란도(紫鸞島)로 옮겨졌고 1215년 다시 교동으로 옮겨졌다가 1219년 서울에 봉영(奉迎)되었다. 이렇게 서울에 돌아와서 딸 덕창궁주(德昌宮主)를 최충헌의 아들 성(珹)과 혼인시켰다.

1227년 복위의 음모가 있다는 무고로 최우(崔瑀)에 의하여 다시 강화로 쫓겨났다가 교동으로 옮겨져 1237년법천정사(法天精舍)에서 승하하였다. 시호는 성효(誠孝)이며 능은 강화도 양도면에 위치한 석릉(碩陵)이다. 참고로 '고려왕조사' 등을 저술한 고려사학자인 류재하의 주장에 의하면 현재 약목유(柳)씨(곧, 문화柳씨 곤산군파)가 이 희종의 후손이라고 한다. 개성 왕씨 족보인 성원록에 보면, 희종의 손자인 광평공 혜의 자손이 유씨(柳氏)가 되었다고 하는데, 약목유씨(문화柳씨 곤산군파)가 이 후손이라고 한다.

가계[편집]

  • 조부 : 인종 (仁宗) - 제17대
  • 대왕대비 : 공예왕후 (恭睿王后) 임씨(任氏)
    • 백부 : 의종 (毅宗) - 제18대
    • 백부 : 대녕후 (大寧侯) 왕경(王暻)
    • 백부 : 명종 (明宗) - 제19대
      • 종형 : 강종 (康宗) - 제22대
        • 당조카 : 고종 (高宗) - 제23대
    • 백부 : 원경국사 (元敬國師) 왕충희(王冲曦)
  • 부왕: 신종 - 제20대
  • 모후: 선정왕후 김씨(宣靖王后)
    • 국왕: 고려 제21대 황제 희종 (熙宗)
    • 왕후: 성평왕후 임씨 (成平王后) - 영인후(寧仁侯) 왕진(王稹)의 딸.
      • 장남: 창원공(昌原公) 왕지(王祉)
      • 차남: 시령후(始寧侯) 왕위(王禕)
      • 3남: 경원공(慶原公) 왕조(王祚)
        • 손자: 광평공(廣平公) 왕혜(王譓) - 원종의 딸인 함녕궁주(咸寧宮主)와 혼인.
          • 증손자: 유익정(柳益貞) - 약목유(柳)씨(문화柳씨 곤산군파) 시조
        • 손자: 정안후(定安侯) 왕균(王畇)
      • 4남: 대선사(大禪師) 경지(鏡智)
      • 5남: 충명국사(冲明國師) 각응(覺膺)
      • 장녀: 안혜왕후 (安惠王后) - 고려 제23대 국왕 고종의 왕후.
      • 차녀: 영창공주 (永昌公主) - 단양백(丹陽伯) 왕서(王楈)와 혼인.
      • 3녀: 덕창궁주 (德昌宮主) - 최충헌의 아들인 영가후(永嘉侯) 최전(崔瑼)과 혼인.
      • 4녀: 가순궁주 (嘉順宮主) - 신안공(新安公) 왕전(王恮)과 혼인하여 딸 경창궁주를 낳음.
      • 5녀: 정희궁주 (貞禧宮主) - 영안공(永安公) 왕희(王僖)와 혼인.

희종이 등장하는 작품[편집]

전 임
신종
제21대 고려황제
1204년 - 1211년
후 임
강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