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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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문종
高麗 文宗
고려 제11대 황제
본명 왕휘(王徽)
재위 1046년 ~ 1083년
종교 불교
왕후 인평왕후
인예왕후
부왕 현종
모후 원혜왕후
이전 왕 정종
다음 왕 순종

문종(文宗, 1019년 12월 29일 (음력 12월 1일)[1] ~ 1083년 9월 2일 (음력 7월 18일)은 고려 제11대 천자(재위 1046년~1083년)이다. 는 휘(徽), 는 촉유(燭幽), 묘호문종(文宗), 시호강정명대장성인효대왕(剛定明大章聖仁孝大王)이다.

즉위 초 문하시중 최충에게 명하여 율령(律令)·서산(書算)을 정리하도록 명하였으며, 그의 치세기간 중 이자연최충을 통해 문치 정책을 펼쳤다. 현종(顯宗)과 원혜왕후(元惠王后) 김씨(金氏)의 셋째 아들이다.

생애[편집]

생애 초반[편집]

문종은 현종원혜왕후 김씨의 셋째 아들로 덕종정종의 이복 동생이며 정간왕에 추증된 평양공 왕기의 친형이었다. 덕종정종은 그의 이복 형이면서 동시에 이종 사촌 형이기도 했는데 이모이자 적모인 원성왕후[2]의 소생이었다.

1022년 낙랑군으로 봉해졌으며, 1037년 내사령에 임명되었다. 이복 형인 정종이 세상을 뜬 후, 정종의 유지로 왕위를 계승했다.

업적[편집]

문종은 즉위하자마자 문하시중 최충에게 명하여 율령(律令)·서산(書算)을 정리하게 함으로써 각종 법을 만드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장인인 이자연은 사심없이 그를 보필하였고, 이자연최충을 통해 문치 정책을 추진해 나간다.

불교를 신봉하여 1067년 흥왕사(興王寺)를 세웠고, 자신의 아들을 부처에게 바치겠다고 하고 태자 왕후(王煦)를 출가시켜 승려가 되게 하니 그가 바로 대각국사 의천이다.[3] 유학도 장려하여 이 무렵 최충의 9재(九齋)를 선두로 12도(十二徒)의 사학(私學)이 발달하였다. 지방에서도 중앙에서 파견하는 관리의 수가 늘었다.

국방과 외교에도 힘써 동여진(東女眞)이 북변을 침략하자 이를 토벌하여 동여진에 대한 초기의 정책은 다소 강경했으나 이후 점차 회유책을 썼고, 특히 송나라, 이슬람 등과 친선을 도모하여 교역이 융성하였다. 1056년 일본 사신이 개경을 방문하였다. 빈민 구휼에서도 치적을 쌓았다.

한편 일부 호족세력을 중심으로 쿠데타를 일으켜 자신의 친동생인 평양공을 추대하려 한 사실이 발각되자 1071년 평양공의 작위를 추탈하고 그 아들들을 유배보내기도 하였다.

사후[편집]

재위 37년간 고려의 문물 제도는 크게 정비되어 이 시기를 '고려의 황금기'라고 부르기도 한다. 불교, 유교, 미술, 공예 등 문화 전반에 걸쳐 괄목할 수준을 드러내 문화가 크게 발전되었다.

그의 즉위 직후 왕위를 계승한 장남 순종 역시 재위 1년만에 병사하여 둘째 아들 선종이 왕위를 계승하였다. 능은 개성시 장풍군에 위치한 경릉(景陵)이다.

가계[편집]

의종, 명종, 신종과의 관계[편집]

의종, 명종, 신종은 그의 4대손이면서 동시에 증손녀 사위가 된다. 의종, 명종, 신종인종의 아들로 문종-숙종-예종-인종으로 이어진다.

그의 서자인 양헌왕의 아들로, 문종에게는 손자인 강릉공 온(江陵公 溫)은 의종의 비인 장경왕후, 명종의 비인 광정왕후, 신종의 비인 선정왕후의 친정아버지이다.

주석[편집]

  1. 《고려사》권8〈세가〉권8
  2. 원성왕후와 원혜왕후, 원평왕후는 모두 김은부의 딸로 자매간이었다.
  3. 의천은 이미 출가한 외삼촌인 승려 김난원의 상좌가 되어 출가하였다.

관련 항목[편집]

전 임
정종
제11대 고려의 황제
1046년 - 1083년
후 임
순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