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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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김씨(慶州 金氏)
관향 경주
시조 김알지(金閼智)
주요 중시조 김명종, 김은열, 김인관
주요 집성촌 경북 경주시, 경남 진주시, 함남 영흥군, 함남 북청군, 전북 장수군
주요 인물 김홍집, 김정희
인구(2012년) 2,053,775명 (3위)

경주 김씨(慶州金氏)는 신화에 따르면, 서기 65년시림(계림)에서 김알지(金閼智)가 금궤에서 나왔다 하여 당시 신라탈해이사금이 “金”을 성씨로 지어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득성 연원과 생몰년은 정사가 아니므로 실제 역사는 아니다.

신라 김씨 왕조의 실체인 적석목관분은 4~6세기에 조성되었다. 신라 13대 왕 미추 이사금은 3세기 인물이지만, 왕릉의 조성 년대는 4~5세기이다. 미추 이사금이 경주에 처음 등장한 이후 17대 내물왕 이후로 김씨 왕조가 확립되었다.

550년, 법흥왕 때 신라에 문화 전반에 개혁이 있었다. 당나라는 수서, 당서을 간행할 때 진흥왕의 성을 김으로 표기하였는데, 당대의 문헌을 기준으로 그는 한국 최초로 김씨로 기록된 인물이다. 13세기에 간행된 삼국사기는 야사와 신화가 혼용된 부분이 많고 구전으로 전해지는 신화를 과장한 부분이 있어 당대의 문헌에 비하여 신뢰도가 낮다.

김알지는 설화로 전해지는 신라 김씨의 근원이며, 정사 기록, 당대 기록을 근거하면, 김씨를 최초로 사용한 인물은 법흥왕, 또는 진흥왕이다.

경주 김씨는 김알지의 여러 후손이 연합하여 구성된 성본으로, 영분공파 김명종, 대한공파 시조 김은열, 태사공파 김인관을 3개의 파조로 시작하였고,병자호란의 혼란기에 몇몇 성본이 추가되어 2010년 초 10개의 분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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