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성씨)
|
|
이 문서는 특정 가문과 관련된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이 문서에 참고하신 문헌 또는 신뢰할 수 있는 출처가 문서 하단의 각주로 표기되어 있는지 위키백과 중립성에 어긋난 주관적인 내용이 있는지 확인해 주세요. 검증되지 않은 내용은 삭제될 수도 있습니다. 내용에 대한 의견이 있으시면 토론 문서에서 토론을 해주세요. |
김(金)씨는 한국과 중국의 성씨이다. 중국에서 생겨난 성씨지만 현재는 중국보다는 대한민국에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성씨이다. 김(金)이란, 한자로 황금이란 뜻이고, 일반적인 발음은 “금”이지만 성씨와 김포(金浦), 김천(金泉)과 같은 일부 지명에서는 “김”이라고 발음한다.
영문으로 표기할 때 성씨 김은 Kim(킴)으로 표기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로마자표기법에 따르면 Gim(김)이 정확한 표기이다.
한편, 중국등 중화권에서는 琻(김), 鍂(김) 씨와 같이 '김'으로 발음되는 다른 한자를 쓰는 성씨가 있는데, 대한민국에도 존재하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성씨조사때 나온 기타 및 미상 성씨 중에는 있을것으로 생각된다.
목차 |
명칭이 '김'이 된 이유 [편집]
'김'이라는 성씨가 '金'(쇠 금)이라는 한자를 쓰면서 '김'으로 발음하게 된 이유로는 조선왕조실록에 수록된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이성계가 쿠데타를 일으켜 조선을 개국시켰는데, 자신이 반란을 일으켜서 왕이 되었으므로 다른 사람이 또 반란을 일으켜 자신을 죽일 까 걱정하였다. 당시 왕씨들이 쿠데타를 일으키려 하고 있었고, 백성들의 민심도 좋지 않았는데, 음양오행설에 입각한 도참설이 떠돌았다. 음양오행설에서 木은 金에게 지기 때문에 성씨에 木이 들어가 있는 이(李)씨를 금(金)씨가 몰아내고 금씨가 왕이 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에도 금씨는 세력이 강한 성씨라서 금씨를 다 숙청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금씨의 기운을 꺾을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다. 바로 금씨를 '김'으로 읽으라는 것. 그때부터 金이라는 한자를 쓰는 모든 금씨들은 그 이후로 '김'이라고 불리게 되어 현재까지 내려오게 되었다.
신라 김씨 [편집]
신화에 따르면 신라 김씨의 시조는 석탈해의 양자 김알지(金閼智)이다. 실제로는 법흥왕 때부터 중국과의 교류가 증대되면서 대내외적으로 사용하였고, 636년(선덕여왕 5년)에 당나라에서 간행된 북제서에 진흥왕의 성을 김(金)으로 처음으로 기록하였다. 5세기 내물왕 때 석씨 세력이 사라지고 김씨들이 집권하였다. 이사부 장군은 삼국사기에는 김(金)씨로 되어 있는데, 삼국유사에는 박(朴)씨로 되어 있어 기록에 따른 차이도 있다. 혜공왕 때 무열왕계 왕족의 계보가 끊어지고, 사다함 후손 선덕왕의 신라 하대가 시작되었고, 10세기 국운이 쇠하여 멸망하였다. 현존 신라 김씨는 대부분 원성왕계 김경신의 후손이다.
- 부령(부안)김씨는 김알지(金閼智)를 시조(始祖)로 모시는 600여 본관(本貫), 1,000여만 신라김씨(新羅金氏)의 종가성씨(宗家性氏)이다. 대보공(大輔公) 칠세손(七世孫)인 미추왕(味鄒王)이 김씨로서는 처음 신라 13대 왕에 즉위하신 후, 신라역사 56왕 992년 중 38왕 586년 동안을 다스리다가 서기 935년 경순왕(敬順王) 9년에 국세가 쇠잔함으로 나라를 지탱하기 어려워 경순왕께서는 고려(高麗)에 양국(讓國)하니 태자이신 일(鎰)님께서는 양국을 반대하셨으나, 뜻을 이룰 수 없었다.
어머니 죽방왕후 박씨(竹房王后 朴氏) 태자비 김씨(太子妃 金氏), 그리고 두 아들과 충신, 의사, 유민(忠臣, 義士, 遺民) 등 수만명을 거느리고 설악산 근처 인제군 상남면 금부리(金富里) 부근에 신라소국(新羅小國)을 세워 조국광복을 도모하고자, 항려 투쟁을 벌이시다가 형세(形勢)가 불리하자 태자공은 마의(麻衣)를 입고 개골산에 들어가 초식을 하시며 은거(隱居)하셨으니, 이분이 곧 태자이신 일(鎰) 마의태자(麻衣太子)로 부안김씨(扶安金氏)의 관시조(貫始祖)이시다.
태자공의 曾孫이신 상서공(尙書公)(諱 : 景修)께서 처음으로 고려 문종(文宗:1067-1082)때에 문과에 급제하여 이부상서(吏部尙書) 우복야(右僕射) 벼슬에 오르시고 그 아들 춘(春)님께서 나라에 큰 공을 세우시니 부령부원군(扶寧府院君)에 책봉(冊封)되어 부령을 식읍으로 하사 받았기에 본관을 부령으로 정했다. 그 후 조선조 태종 16년(서기 1416)에 부령현(扶寧縣)과 보안현(保安縣)을 합쳐 부안군(扶安郡)이 되자 부안김씨(扶安金氏)라고 부르게 되었다.
첫째 김일(鎰) & 마의태자(麻衣太子) 부안 김씨,(소윤공파, 시직공파, 승지공파, 지평공파, 사직공파, 직장공파, 소감공파, 낭장공파, 시승공파, 좌승지공파)
둘째 김굉의 아들{김운발(金雲發)}은 나주 김씨,
셋째 김명종(鳴鐘)은 경주 김씨 의 영분공파,
넷째 김은열(殷說)은 경주 김씨 은열공파,
다섯째 김석(錫)은 의성 김씨,
여섯째 김건,
일곱째 김선(鐥)은 언양 김씨,
여덟째 김추(錘)의 아들(김위옹)은 삼척 김씨,
아홉째 김덕지(德摯)는 울산 김씨 등이 되었다.
경순왕의 아홉 아들 중 첫째 아들 김일(鎰)과 김굉을 제외한 일곱은 낙랑공주의 몸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아홉 아들 중 마의태자(麻衣太子)로 잘 알려진 김일은 망국의 한을 품고 개골산(愷骨山 : 금강산)으로 입산(入山)하였다.
- 강릉 김씨는 명주 호족 김주원, 김순식, 경순왕 아들 김건 계통이 있다. 김주원(金周元)은 김인문의 후손으로 전해졌으나 김인문은 당나라에서 병사하여 후손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강릉 김씨에서는 김문왕의 후손이라고 하고 있다. 김주원, 김순식의 후손은 왕씨가 되었다가 조선조에 김씨로 복성하였다. 인물로는 김헌창, 김인존, 김시습등이 있다.
- 경주 김씨는 경순왕계 영분공파 김명종, 대한공파 김은열, 태사공파 김인관등, 10여개의 파조가 있다. 처음에는 3개의 분파로 시작하여 구안동, 김녕으로 분파하고, 조선 시대에 여러 세력들이 경주 김씨로 통합되었다. 경주 김씨는 조선 후기에 세도 정치 가문으로 신안동 김씨와 경쟁하였다. 인물로는 고려조 김인경(金仁鏡), 조선조 김한구, 정안왕후, 김귀주, 정순왕후, 김정희, 김관주, 대한제국 때 김홍집, 김춘희 김도태, 김정록, 김동훈이 있다. 분파 김녕 김씨는 경순왕 후손 김염(金濂)이 시조이며, 본래 본관은 김해였는데 조선 후기 왕명으로 김녕으로 개칭되었고, 인물로는 정치인 김영삼, 군인 김재규이 있다. 분파 청풍 김씨는 김대유(金大猷)가 시조이며, 인물로는 김유정(金裕貞)이 있다. 분파 청도 김씨는 김지대(金之岱)가 시조이며, 인물로는 김정호가 있다. 울산 김씨는 경순왕의 계자 김덕지(金德摯)가 시조로, 인물로는 조선조 김인후, 대한제국 때 김병로, 김성수, 김상협, 김연수가 있다.
- 구안동 김씨(석릉 김씨)는 경주 김씨 김숙승이 시조이다. 경순왕계를 구안동, 고려 개국 공신 김선평계를 신안동이라고 한다. 두 본관은 동시대에 시작되었으나 2000년 인구통계에 구안동은 대략 50만명, 신안동은 대략 5만명으로 나타났다. 안동의 고호는 석릉(石陵)으로 고대에는 석릉 김씨라고도 하였다. 인물로는 김시민(金時敏), 김자점(金自點), 김구(金九)등이 있다. 신안동 김씨(석릉 김씨)의 시조 김선평은 고려 개국 공신이다. 신안동 김씨는 안동의 호족으로 전할 뿐, 신라삼성연원보와 조선씨족통보에 구체적인 연원이 없다. 신안동 김씨의 세도 정치는 조선 개혁의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 조선이 몰락한 한 요인을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인물로는 조선조 김조순, 순원왕후, 김삿갓, 김좌진, 김옥균이 있다. 구안동과 신안동 김씨 인물로는 김용진, 김영진, 김기진이 있었다.
- 전주 김씨 구안동 김씨 분파이며 시조는 김태서이다. 인물로는 문인 김동인, 북한 정치인 김형직, 김일성, 김정일, 김정남, 김정철, 김정은등이 있다. 전주 김씨는 인구수가 적어서 이합집산 가능성이 없는 단일 신라 본관이다. 구안동 호족 김태서가 전주로 이거한 문헌이 남아 있다.
- 선산 김씨(일선 김씨)는 경순왕의 사촌이라는 김유렴(金裕廉)이 신라가 망할 때 왕건을 따라가 개성에 거주하였고 후손 김한충이 시조이다. 또 한명의 시조는 선산 호족 출신의 김선궁으로 왕건의 이름을 하사 받고 고려의 군병이 되었다. 인물로는 김원숭, 문화왕후가 있는데, 부정적인 인물이므로 김한충계, 김선궁계 모두 관련성을 부정한다.
- 광산 김씨의 시조는 김흥광(金興光), 중시조는 김위(金位), 김주영(金珠永)이다. 경주 김씨 대봉도, 조선씨족통보에 광산 김씨의 연원이 없다. 호남 지역에 기반을 두었던 세력들이 연합한 본관으로 추정하는 경우가 있다. 문중에서는 헌안왕, 신무왕, 신라 왕자 광산 도피설을 제시하고 있다. 인물로는 조선조 서인 김춘택. 김만중이 있다.
가야 김씨 [편집]
가야 김씨의 상징적 시조 가야 건국 신화에 등장하는 김수로(金首露)이다. 석이정전(釋利貞傳)에 따르면 가야산의 하늘의 신(神)인 이비가(夷毗訶)에 감응하여 두 아들을 낳았는데, 한명은 고령 대가야 시조 뇌질주일(惱室朱日)이고, 다른 한명은 김해 금관가야(金官伽倻) 시조 뇌질청예(惱窒靑裔)이다. 고성 소가야 시조는 김말로(金末露)이다. 5세기 금관 가야는 진한 사로국과 전쟁을 하였는데, 고구려의 공격으로 멸망하여 남해 해안등으로 도피하였다가, 일부 세력이 6세기 신라에 투항하였다. 이어 대가야의 이뇌왕, 월광태자가 진흥왕에게 투항하여 가야 소국은 모두 신라에 병합되었다.
김해 김씨는 가야 수로계를 선김(先金), 신라계를 후김(後金)으로 구분하여 불렀다고 한다. 조선 후기에는 가야계 선김, 신라계 후김, 일본계 사성김으로 나뉘었다. 가야왕손이라는 족보에 의하면 연안 김씨, 고성 김씨 등도 가야계 이다. 고려 시대 한반도 전역에 많은 가야 김씨 본파가 있었으나, 조선 시대 김해로 통합, 몇몇은 지역으로 통합되었다고 한다. 김유신 자손들은 신라 후기 충청도 지역에 주로 거주하였다, 따라서 김해가 본래 관향은 아니었고 가야 김씨로 불리었다.
김해 김씨의 실존 시조는 장군 김유신(金庾信)이다. 주요 인물로는 조선조 김홍도, 김만덕, 대한제국 때 김기창, 김길창, 김활란, 김한규, 김형원, 김원군, 김인승, 김경주 등이 있다.
고려 김씨 [편집]
고려 김씨는 고대 시작된 성본이다. 동주 김씨는 고려사에 따르면 황해도 호족 출신 김행파(金行波)가 왕건에게 김씨 성을 하사 받았다. 후손으로는 천추태후의 정부 김치양(金致陽)이 있다. 삼별초 장군 김통정의 경우 본래 성씨는 질, 진이었는데 진이 김과 같아서 김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몽골이 고려을 간접 지배하던 시대에 한국은 한문 발음의 체계에 변이되는 과도기로 중대 중국어 발음과 광둥어, 몽골식 발음이 혼재하였다.
고려 중반에 시작된 본관으로는 연안 김씨(김섬한), 해주 김씨(2계통- 김사렴, 김문동), 해풍(개풍) 김씨(김숭선)가 있다. 연안 김씨는 김섬한의 형이 강릉에 유배되었다고 전하므로 강릉, 경주 김씨 계통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해주, 해풍(개풍)은 경순왕 후손이라고 한다.
중국 김씨 [편집]
한무제 어머니인 효경황후 왕지의 전남편은 김(金)씨였다고 한다. 흉노족 출신 김일제(金日磾)는 한무제에게서 김(金)씨를 사성받았다. 6세기 동위 관리 김응이 왕에게서 김씨 성을 받았다는 내용이 전한다. 초나라와 관련이 있는 오월의 전(錢)씨는 진와 유사하게 발음되고 뜻도 금과 같이 돈(황금)을 뜻하여 전류의 자손들이 김(金)으로 개성하였다. 초나라 근(靳)도 진으로 발음되어 진(金)씨가 되었다고 믿어 지기도 한다. 원나라 때 일부 호족에게 김씨로 재본성하였다. 송나라 때 중국에 들어온 유태인들이 김(金), 리(李), 애(艾), 장(张)씨 성을 등을 득성했다고 한다. 김(金)의 중국 남방 지방 광둥어는 감, 금이다.
후한말 인물 금위, 금선은 김일제 후손이라고 전한다. 여남 김씨 족보에는 동위 문무관 김응 이라는 인물이 있으나, 중국 기록에는 구체적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청나라 멸망 후 왕족이 만주 성씨 애신각라(愛新覺羅, 아이신교로[1])에서 아이신이 금을 뜻하여 한식 성씨 김(金, 진)으로 바꾸어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755년, 동위 관리 김응 후손 김충(金忠)은 당나라 사신으로 일본에 다녀 오다가 경북 영덕에 표착하였다. 신라 경덕왕은 김충(金忠)에게 남민(南敏)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남민(南敏)은 신라 여성과 결혼하고 영양으로 이거하여 영양 남씨를 창본하였다. 아들 김석중(金錫中)은 영양에 옮겨 정착하여 영양 김씨을 창본하였다. 이후 세보가 소실되어 영양 김씨는 김충황(金忠晃)을 1세조로 하였다. 다른 문헌에 영양 김씨의 시조는 고려조에 전서를 지낸 김윤철(金允轍)이다.
일본 김씨 [편집]
김충선(金忠善), 김성인(金誠仁)는 조선 선조, 정유재란 때 귀화한 일본인 장수이다. 병자호란 때 전공을 세워서 성과 이름이 하사되었다. 김충선은 경북 우록동에 정착하였다. 아들 김경원(金敬元), 김경신(金敬信), 김우상(金右祥), 김계인(金繼仁), 김경인(金敬仁)과 손자 김진영(金振英)이 벼슬에 올랐으며, 후손 김여삼(金汝三), 김용하(金龍河)는 효행으로 유명하였다. 김성인(金誠仁)은 경북 청도에 정착하였다. 후손으로는 김귀성(金貴成), 김흥발(金興發), 김득추(金得秋), 김수태(金守泰)등이 있다. 본관은 김해, 우록, 함박이다. 일본은 삼국시대 부터 가을 김(金)으로 적어 왔다.
본관 [편집]
| 이 글을 보려면 오른쪽 '보이기' 버튼을 누르세요! |
|---|
ㄱ [편집]
ㄴ [편집]ㄷ [편집]ㅁ [편집]ㅂ [편집]ㅅ [편집]ㅇ [편집]
ㅈ [편집]ㅊ [편집]ㅌ [편집]ㅍ [편집]ㅎ [편집] |
주석 [편집]
- ↑ 최근 KBS에서 푸이의 성을 아이신줘러라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