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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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부(異斯夫)
미상
시대 신라 상고기(6세기)
다른 이름 이질부례지, 태종(苔宗), 이종(伊宗)
관직 관등: 이찬(伊湌), 상대등
직책: 실직주군주, 하슬라주군주(何瑟羅州軍主), 병부령
주군 지증마립간법흥왕진흥왕
가문 김씨(혹은 박씨)

이사부(異斯夫, 생몰년 미상) 또는 김태종(金苔宗)은 신라 지증왕 ~ 진흥왕 시대의 장군 · 정치가로, 내물 이사금의 4세손이다.

일본서기》에는 이질부례지간기(伊叱夫禮智干岐) 또는 이질부례지나말(伊叱夫禮知奈末)로 소개되어 있다. 《삼국유사》에는 박(朴)씨, 이름은 이종(伊宗)이라 나타난다.

대한민국의 대중 가요인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과 〈독도는 우리땅〉에 등장한다.

생애[편집]

《삼국사기》에는 내물왕의 4세 손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삼국유사》에는 그의 성을 박(朴)씨로 기록하고 있다.

우산국 정벌[편집]

지증왕 6년(505년)에 실직주(悉直州)의 군주(軍主)가 되었으며, 512년에는 이찬의 관등과 함께 하슬라주(何瑟羅州)의 군주가 되어 우산국(于山國)을 정벌해 신라 영토로 복속시켰다.(《삼국사기》) 《삼국사기》 지증마립간본기 및 이사부열전, 《삼국유사》 지철로왕조에 따르면, 우산국 즉 지금의 울릉도(鬱陵島)는 하슬라주의 동쪽 바다 위에 떠있던 섬나라로서 육지와는 멀리 떨어져 있어 오가기가 쉽지 않다는 지리적 장점을 믿고 신라에 복속되지 않았는데, 하슬라주의 군주(軍主)가 된 이사부는 우산국 사람들이 용맹하기는 하지만 육지의 물속에 대해서는 다소 어둡다는 점을 발견하고, 힘이 아닌 꾀로서 정벌할 계획을 세우고 나무로 만든 사자상을 배에 많이 싣고 가서 우산국 해안에서 "너희가 만약 우리를 따르지 않는다면 이 짐승을 풀어서 너희를 모조리 짓밟아 죽여 버릴 것이다."라고 호령했고 우산국 사람들은 두려워서 항복하였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삼국유사》와 비교해보면 이사부(박이종)가 우산국을 정벌할 당시 이미 이찬이라는 관등을 가지고 있었으며, 하슬라주 군주라는 지위도 우산국을 정벌한 공로로서 획득하게 된 것으로 적고 있어 《삼국사기》와 차이가 있다.

가야 정벌[편집]

《일본서기》에는 법흥왕 16년에 해당하는 529년 가락국의 4개 마을을 점령해 가락국을 보호령화하는 한편 탁순국의 웅천(熊川)을 공격해 가락국의 부흥을 지원하던 오미노 케누(近江毛野)의 왜병을 패퇴시키고, 법흥왕(法興王) 18년(531년)에는 구례모라(久禮牟羅)의 백제군을 격파하여 이듬해에 금관국을 신라에 합병시켰다.

《삼국사기》 이사부전 앞에는 탈해왕(脱解王) 시대의 인물로서 당시 신라와 이웃해 있던 우시산국(于尸山国)과 거칠산국(居柒山国)을 정벌한 거도(居道)라는 인물의 열전이 실려 있는데, 많은 말을 모아놓고 병사들에게 말 위에서 하는 마상재를 매년 열어서 두 소국 사람들 앞에서 늘 보였고, 두 나라 사람들이 마상재를 보며 어느 순간 방심하면서 신라군을 방비하지 않고 있는 사이에 두 나라를 급습해 멸망시켰다고 적고 있다. 이사부전은 지증왕 때에 연해의 지방관이 된 이사부가 거도의 계략을 써서 가야를 멸망시켰다고 전하고 있다. 하지만 《삼국사기》에는 법흥왕 19년에 해당하는 532년에야 신라가 금관국을 멸망시켰다고 했으며, 이사부에 의한 가야 정벌 기사는 《삼국사기》에서 권4 신라본기 진흥왕 23년(562년)조에 수록되어 있고 열전에는 진흥왕본기에 해당하는 기사가 실려있지 않은데, 거칠부열전의 가야 정벌 기사는 본가야(금관국 및 대가야)의 점령이 아니라 당시 가야 연맹 가운데 일부를 점령한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1]

고구려와의 전쟁[편집]

진흥왕이 즉위한 이듬해(541년)에는 병부령이 되어 신라의 국정을 총괄하였다. 545년에는 왕에게 국사 편찬을 건의하였으며, 550년에는 백제와 고구려가 국경의 도살성(道薩城)과 금현성(金峴城)을 놓고 서로 싸워서 지친 틈을 타서 출진하여 두 성을 모두 빼앗고, 성을 증축해 갑사 1천여 명을 배치하였으며 이때 고구려의 탈환 기도를 물리쳤다. 또한 단양 신라 적성비에 따르면 이사부는 이 때를 전후하여 파진찬 두미(豆彌), 아찬 비차부(比次夫) · 김무력(金武力)과 함께 한강 상류 일대를 신라 영토에 편입시켰다. 562년 9월에는 가야 정벌에 출진하여 사다함(斯多含)의 활약에 힘입어 대가야를 멸망시키고 가야 세력을 모두 복속시켰다. 이후의 생애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다.

주석[편집]

  1. 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p.698

참고 자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