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정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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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정방(蘇定方, 592년 ~ 667년)은 당나라의 장군이다. 본명은 소열(蘇烈)이었으며, 정방(定方)은 이다. 보통 본명보다는 소정방으로 불린다.

생애[편집]

소정방은 소옹(蘇邕)의 아들이다. 소옹은 지방의 향리였으며, 수나라 말기에 수천 명을 이끌고 반란을 토벌하였다.

당나라 태종이정(李靖)을 따라 동돌궐을 정벌하였고, 657년에는 서돌궐을 쳐 항복시킴으로써 중앙아시아 여러 나라를 모두 안서도호부에 예속시켰다.

660년(의자왕 20년) 3월 나·당 연합군의 대총관으로서 13만의 당군을 거느리고 산둥 반도에서 황해를 건너[1] 신라군과 함께 백제를 협공하여 사비성을 함락시키고, 의자왕(義慈王)과 태자 부여융(扶餘隆)을 사로잡아 당나라로 송환하였다. 이듬해인 661년(보장왕 20년)에는 나·당 연합군을 거느리고 고구려 평양성을 포위 공격하였으나 전세가 불리해지자 철군하였다.

이규보의 동명왕편에서는 소정방이 중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사망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삼국유사 태공 춘추공편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신라고전』에 말하기를 "소정방이 이미 고구려와 백제 두 나라를 토벌하고 또 신라정벌을 모의하며 머물러 있었다. 이 때 김유신이 그 모의를 알고 당나라 병사들에게 잔치를 베풀어 대접하면서 짐새의 독을 먹여 모두 죽이고 구덩이에 묻었다"고 한다. 지금 상주 경계에 당교가 있으니 이곳이 그들을 묻은 자리이다.


이와 관련하여 소정방이 신라에서 피살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667년 소정방이 죽자 당 고종은 그에게 장(莊)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관련 작품[편집]

드라마[편집]

주석[편집]

  1. 김부식 (1145). 〈본기 권28 의자왕〉, 《삼국사기》 “六月… 高宗詔 左武衛大將軍蘇定方爲神丘道行軍大摠管 率左驍衛將軍劉伯英•右武衛將軍馮士貴• 左驍衛將軍龐孝公 統兵十三萬以來征 ... 蘇定方引軍 自城山濟海 至國西德物島 (당나라 고종(高宗)이 조서를 내려 좌무위대장군(左武衛大將軍) 소정방(蘇定方)을 신구도행군대총관(神丘道行軍大摠管)으로 삼아 좌효위장군(左驍衛將軍) 유백영(劉伯英)•우무위장군(右武衛將軍) 풍사귀(馮士貴)•좌효위장군(左驍衛將軍) 방효공(龐孝公)을 거느리고 군사 13만 명을 통솔하여 와서 정복하게 하고, ... 소정방이 군사를 이끌고 성산(城山)에서 바다를 건너 우리 나라 서쪽의 덕물도(德物島)에 이르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