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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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대모산에 있는 사찰에 대해서는 불국사 (서울) 글을 참조하십시오.
불국사
문명 신라 왕조
건립 연대 528년
건립자 김대성
발굴자 --
현 소재지 대한민국 경상북도 경주시
세계유산 불국사와 석굴암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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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 Ⅰ, Ⅳ
영어 명칭 Bulguksa
프랑스어 명칭 Temple Bulguksa
등록 구분 문화유산
등록 연도 19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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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불국사 공식 홈페이지

불국사(佛國寺)는 대한민국 경상북도 경주시 동쪽 토함산에 있는 이다.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 경역 전체가 대한민국의 사적 및 명승 제1호이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목차

[편집] 역사

신라 시대에 창건되었으며, 그 뒤로도 여러 번 수축되었다. 그러나 임진왜란의 병화에 목조 건물 전체가 타버리고, 점차로 재건되기는 하였으나, 신라 시대의 찬란하던 옛 모습과는 다르다.

[편집] 불국사고금창기에 따른 창건 역사

불국사고금창기》(佛國寺古今創記)에 따르면 불국사는 신라시대 법흥왕 15년(528년)에 법흥왕의 어머니 영제부인(迎帝夫人)의 새로운 사찰의 건립 소원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사찰 건립 후 574년 진흥왕(眞興王)의 어머니인 지소부인(只召夫人)이 절을 크게 중건하였는 바, 비로자나부처님(毘盧遮那佛)과 아미타부처님(阿彌陀佛)을 주조해 봉안하였다고 기록되고 있다. 문무왕 10년(670년)에 무설전(無說殿)을 새로 지어 화엄경(華嚴經)을 여기서 가르쳤다고 하며, 그 후 경덕왕 10년(751년)에 드디어 김대성(金大城)이 크게 개수하면서 오늘날 불국사에 상징물로 알려진 탑과 성교 등을 만들었다고 한다.

[편집] 삼국유사에 따른 역사

삼국유사》(三國遺事) 5권 대성효 2세부모(大城孝二世父母)조에는 역시 김대성이 불국사 창건자로 언급되고 있으며, 불교의 윤회설에 따라 전생(이전 생애)의 부모님을 기리기 위하여 석불사(石佛寺 : 석굴암)를, 현생(이번 생애)의 부모를 섬긴다는 뜻에서 불국사를 창건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불국사 가람 배치도

[편집] 건물 배치

현존하는 건물의 배치를 보면, 대웅전은 중앙에 위치하여 남향하였고, 그 앞에 석등(石燈)이 있으며, 다시 그 앞의 동서에 각각 석탑 1기가 서 있다. 동쪽 다보탑(多寶塔 : 국보 20호)의 기묘하고 정밀한 형태는 유례가 드물고, 서쪽 석가탑(釋迦塔 : 국보 21호)은 예로부터 애달픈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즉 이 탑의 축조를 맡은 당(唐)나라 석공(石工)의 아내 아사녀(阿斯女)가 남편을 찾아와서 탑이 완성되어 영지(影池)에 그 그림자가 비치기를 기다리다가 마침내 물에 빠져 죽었다는 애화(哀話)를 지니고 있어 무영탑(無影塔)이라고도 부른다.

[편집] 불국사의 건축물

[편집] 기타

  • 비로전 앞에 석등 모양으로 된 사리탑(舍利塔 : 보물 61호)은 한때 일본 사람에게 팔려갔다가 1934년 반환되어 제자리에 다시 세운 것이고, 이와 맞선 관음전 앞에도 석등이 남아 있다. 1970~1972년 정부 보조비를 포함한 총공사비 3억여 원을 들여 복원시켰다.
  • 경주시에서 시가 관리하는 입장료가 있는 유적지(및 박물관)는 경주시의 시민이라는 증거(신분증)가 있으면 무료 입장이 가능하다. 그러나 불국사는 다른 유적과 달리 대한불교조계종의 재산으로, 일괄적으로 입장료를 징수한다.
  • 지난 2007년 관광객이 극락전정면 처마밑의 현판에서 50센티미터가량의 나무로 만든 돼지가 발견하였다.

[편집] 평가

불국사는 신라 불교문화의 우수함을 보여 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관광지로서 외국인의 발길이 끊일 날이 없다.

[편집] 갤러리


[편집]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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