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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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총 | |
|---|---|
| 출생 | 655년 경상북도 경산시 |
| 사망 | 미상 |
| 국적 | 신라 |
| 별칭 | 자는 총지, 호는 빙월당 |
| 학력 | 한림 |
| 직업 | 학자 |
| 종교 | 불교 |
| 부모 | 원효 / 요석공주 |
| 웹사이트 | 설총 |
설총(薛聰, 655년 ~ ?)은 신라 시대의 대표적인 학자이다. 자는 총지(聰智), 호는 빙월당(氷月堂)이다.[1] 원효와 요석 공주(태종무열왕의 딸) 사이에 태어났으며, 신라 3문장(三文章 : 强首-강수·薛聰·崔致遠-최치원) 중 한 사람이며, 벼슬은 한림(翰林)에 이르렀다.
어려서부터 유달리 총명하여 널리 경사(經史)에 통했으며, 유학과 한문학에 조예가 깊었다.
설총은 고대 한국어를 한문으로 표현한 첫 문자 체계인 이두와 구결 문자를 규정한 것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으나,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설총은 다만 그때까지 존재하던 향찰의 집대성자였으며, 《육경》을 읽고 새기는 방법을 개발하여 한문을 국어화하고 유학 연구를 쉽게 그리고 빨리 발전시키는 데에 공이 컸다.[1] 강수와 함께 9경을 처음으로 구결(口訣)로 강론하여 후학을 지도하였다.
그의 작품으로는 〈화왕계〉라고도 불리는 〈계화왕〉(戒花王) 1편이 전한다. 이것은 한문으로 된 단편으로 꽃을 의인화(擬人化)하여 이야기를 전개한 것으로 당시 왕의 어질지 못함을 풍자한 글이다.
목차 |
가족관계 [편집]
함께 보기 [편집]
주석 [편집]
- ↑ 가 나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
바깥 고리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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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선정 이 달의 문화 인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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